극악서생 4부 – 159화 : 로미오와 줄리엣 (2)
10. 로미오와 줄리엣. (2)
밥먹고 하자는 나의 절규(?)에 인호는 차분하게 화답했다.
“예. 아침 식사는 중요하죠. 좋은 습관이십니다.”
“그, 그치?”
인호는 먼저 돌아섰고, 나는 대교에게 왠지 맥 빠진 전음을 보내야했다.
-대교, 아무래도 나의 ‘대한민국 모범청년 타이틀’은 이 친구에게 양보해야 할 거 같아.
-후후, 그러게요.
나보다 모범적이며 재미없는 청년 인호를 앞세워 거실로 나와 보니, 원판 녀석은 보이지 않고, 그 녀석에게 매퍼 가문에 대해서 어떤 얘기든 들었을 소희와 정훈, 둘이 뭔가 상의하고 있는 듯 했다.
「우리 원판씨의 환상 자태를 실은 승용차는 지금 막 서글픈 안녕을 고하고 출발을… 흑~」
-요몽! 됐거든?
요몽의 오버질을 배경음으로 깔며 멀어지고 있는 원판의 차가 창밖으로 보였고, 러브하우스 앞마당에 가득했던 사람들과 파티 집기들도 말끔하게 치워져 있었다. 현관 쪽에서 금빛 광채가 비치는 것으로 보아, 해골 집사와 그의 수하 시종, 시녀 스켈레톤들이 리치몬드의 망토 속으로 복귀하고 있지 싶었다.
“천주!”
거의 동시에 포권하며 다가온 것은 자룡대주와 페트라였다.
“비연대 부대주로부터, 이제야 보고를 받았습니다! 뭐, 어, 어떤 말씀을 드려야 할지.”
“훗. 그렇게 부담스러운 얼굴을 하면 내가 애쓴 보람이 없잖아. 그냥 덕분에 잘 놀았습니다.하고 말면 되는 거지, 뭐.”
자룡대주와 페트라는 잠시 눈빛을 교환하는 것 같더니, 결국 매우 송구스러워하던 표정을 거두고 밝게 웃으며 재차 포권했다.
“속하들의 유흥 시간을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종종 부탁드리, 아, 이건 아니고! 하여간 감사드립니다, 천주!”
으음. 내 수하들답게 한술 더 뜨는군. 하긴, 우리 지하무림은 부어라 마셔라 풍조가 만연한 조직이니, 진짜 앞으로도 종종 내가 ‘알콜 파티 가디언’이 되어야 할지도 모르겠네.
“어쨌거나, 이제 다 같이 밥부터 먹자. 뭐, 그냥 쉬고 싶은 사람들은 그러도록 하고.”
“복명!”
밤을 세워 놀았음에도 씩씩하게 복명을 외친 두 아가씨가 돌아서자마자 시그마의 텔레파시가 날아왔다.
‘로드! 저희들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됐어, 시그마, 당신들도 언능 지하로 가서 쉬어. 팍팍 쉬어!’
‘감사합니다, 로드!’
시그마와 산드라 커플이 고개 숙여 인사하고 파팟, 사라지자, 이번에는 천우신의 전음이 들려왔다.
-고생했네, 친구. 난 자네와의 시간이 다소 아쉬웠네만, 이제 우린 언제든 또 자리를 가질 수 있겠지? -당근, 말밥!
훗. 이 표현, 무지 오랜만에 써보는군. 어쨌거나 나도 이제, 말밥이든 뭐든 먹어야………….
-흠음. 대교의 눈치가 수상하다했더니, 그런 일이 있었군.
사영? 역시 초고속 눈치의 소유자다우시구먼.
-넵! 장인어른도 신경쓰지 마시고……
-난 신경 안 쓰네. 가장은 때로 묵묵히 그런 일도 해야 하는 법이지.
-아, 예에.
“로드.”
“아, 거, 쫌! 이제 밥 좀 먹자, 밥!”
“예, 예? 지금 그 말씀을 드리려고.”
으잉? 이번에는 주방장, 데릭이었네?
“로드! 오늘 아침은 성녀님을 위한 만찬이므로 로드께서도 만족하시리라 믿습니다.”
“웬 성녀? 아, 하여간 땡쓰, 데릭!”
소교를 성녀(聖女)라고까지 추앙하는 것을 따지는 건 나중으로 미루기로 했다. 나는 감히 장인어른 사영까지 재촉하여 서둘러 식사 장소로 향했는데, 우리의 아침은 러브하우스 뒤뜰에 마련되어 있었다.
“와우~!”
나도 모르게 감탄부터 나왔다. 드넓은 야외 식탁이 우리 한국식 진수성찬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하나같이 한식 명인의 손길을 거친 것처럼
정갈하면서도 푸짐하고 맛깔나게 보이는 비주얼이었던 것이다.
“이, 이거, 기대 이상인데? 아, 혹시, 이것도 소희, 네가 도와준 거냐?”
내가 자리에 앉으며 묻자, 맞은편에 자리를 잡는 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하지만 저는 몇 가지 레시피만 알려주었을 뿐이에요. 데릭씨가 거의 혼자 이렇게까지 준비를 하다니, 저도 놀랐어요.”
으음. 말이 그렇지, 크게 놀라지 않는 것으로 보아 많이 도와준 모양이군. 왠지 ‘저는 음식은 잘 못해요. 그냥 돌상정도 차려요’라는 소리를 듣는 기분이야. 하여간 소희 이 녀석, 이쁘고 똑똑하며 요리까지 잘하는, 소위 일등 신부감일세. 나중에 누가 짝이 되든 행복할겨. 단, 주변에 귀신이나 요괴가 득실대는 환경을 견딜 수만 있다면 말이지.
“장인어른! 어서 드시지요!”
나는 예의바른 모범 사위감으로써, 장인어른 사영이 먼저 첫술 뜨시는 것을,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기다렸다가 그것을 ‘준비 땅’하는 신호로 삼아, 단거리 육상 선수처럼 폭발적인 스퍼트로 식사를 시작했다.
우오오~ 밥도, 김치도, 불고기도, 뭐든 맛나도다! 워어~ 우걱우걱우걱~
얼마나 정신없이 달리, 아니, 먹었을까?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의 바로 옆자리에 ‘흑주’가 앉아 있었다.
-어, 언제왔냐?
-아까.
에고, 그랬었나? 흑주야 본래 소리와 기척 없이 오가는 것이 특기인 녀석이지만, 이번에는 내가 정신이 없기도 했었구먼. 어쨌거나 이 녀석, 오늘은 보는 눈이 많아서 조신하게 깨작깨작 먹고 있는 건가?
-대교! 흑주 녀석 오늘은 먼저 따로 먹지 않았나봐?
내가 흑주 앞으로 음식접시 몇 개를 끌어 당겨주며 묻자, 대교는 소리죽여 웃기부터 했다.
-후후. 오늘 아침에는 흑주님도 데릭씨에게 조금 놀랐어요. 데릭씨가 흑주님을 상대로 목숨을 걸고 음식을 지켜냈거든요.
끄으음. 그랬군. 어쩐지 더 자세히 듣지 않아도 그림이 그려지네. 데릭이 음식들 앞을 가로막고 서서, 자신의 목에 주방 칼을 댄 채 비장하게 외쳤을 소리도 들리는 거 같아.
‘나의 성녀, 소교님을 위해 준비한 요리입니다! 이걸 먼저 드시려면, 차라리 내 주검을 밟고 드십시오오!’
뭐, 대충 이러지 않았을까? 암튼, 그렇게 지켜낸 요리를 가장 맛나게 먹어줘야 할 소교는, 으음~ 다행히 맛있게 먹고 있는 기색이로군. 비교적 맛있게, 그러니까, 먹,는,다?
문득 깨달은 것은, 내 기억 속에 소교의 먹는 모습이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천 년 전부터 소교와 함께 식사를 한 것은 한두 번이 아닌데도 말이다. 나는 새삼 다시 기억을 검색해보며 깨달았다.
그래. 그러고 보니 소교는, 수저를 들고 있을 때도 평소와 거의 같은 분위기였고, 그래서 ‘저 애가 밥을 먹는구나’하는 인식을 잘 못했던 거 같아. 식사 때조차 흰 꽃잎 흩날리는 배경 속에 앉아있는 애잔 소녀의 자태를 그린 한 폭의 수채화였고, 애써 이성적으로 찬찬히 살펴보아야만 겨우 손에 자신의 손가락처럼 가는 나무젓가락이 들려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그런 식이었다고 할까?
데릭의 반응이 궁금하여 찾아보니, 그는 소교의 식사 시중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한 듯, 멀찍이 떨어진 러브하우스 뒷문에 서 있었다. 문틀에 기대 선 채, 하염없이 소교를 바라보고 있는 데릭의 두 눈에서 주르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자신의 요리를 성녀, 혹은 여신님께서 맛나게 들어 주시는 모습이, 못 견디게 감격스럽다 이거지? 하아~ 데릭 저 어설픈 뱀프를 어찌하면 좋을꼬? 「에고, 데릭씨가 또 저러고 있네. 아까도 삼십분 넘게 눈물을 그치지 못하더니.」
-응? 아까도? 요몽. 그 얘긴 혹시?
헤헤~ 맞아염. 아까 데릭씨는 예정대로 소교님께만 한 가지 회심의 특별 요리를 먼저 진상 했습죠. 그런데 우리 소교님께서 곧바로 그 특별식의 진가를 알아봐 주시지 뭐예요? 다들 그 특별식에 대한 소교님의 설명을 듣고 있는데, 데릭씨는 홀로 감격을 추체하지 못하고 뛰쳐나가더니, 숲속으로 달려가 대성통곡을 하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습죠.」
끄음. 지금보다 훨씬 심했었던 모양이군. 하긴, 그냥 먹어만 줘도 저럴 정도인데, 특별식의 진가를 제대로 알아주기까지 했다니, 더더욱 따따블로 감동 먹고 충성심, 아니, 신앙심(?)이 더더더욱 깊어졌겠구먼.
「우히~ 어쨌거나, 아직 퀴즈 타임이 끝난 건 아니었네염! 자아~ 이제라도 맞춰보세요! 이 수많은 요리, 반찬 중에서 그 특별식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요몽은, 득의만만한 표정으로 허리춤에서 뭔가를 꺼내들었다.
「주인님께서 못 맞추신다에, 저는 이 손모, 아, 아니!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이 간식을 걸겠어요! 주인님께서 맞추시면 이걸 패티에게
양보하겠다고욧!」
요몽이 만화 ‘타짜의 ‘아귀’ 표정과 자세로 내민 것은 ‘천하장사 쏘시지’였다.
「마지막 힌트를 드리자면, 조금 전까지 주인님께서 드신 메뉴 중에 있, 아앗? 그, 그걸 어떻게? 말도 안돼요!」
요몽은, 아연실색하여 손에 든 쏘시지를 투욱 떨구었지만, 나는 태연하게 문제의 정답을 입에 넣고 맛나게 아작아작 먹어 보였다. 「으아아~ 또 주인님의 ‘찍기 신공’에 당한건가? 내 쏘시지이!」
요몽은, 절규하며 쏘시지를 패티에게 바치러 사라졌고, 나는 정답을(?) 하나 더 집어 들었다.
훗. 역시 정답은 맛있군. 하여간 어설픈 ‘아귀’는 ‘지리산 작두’, 아니, 나 ‘계룡산 정글도’에게 안 되지, 암!
나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리치몬드를 돌아보았다. 생각해보니 리치몬드의 식사 모습도 아직 본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리, 리치몬드.”
내가 조금 당황한 것은, 리치몬드가 맨손으로 포기김치를 주욱~ 찢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어, 녀석은 고개를 잔뜩 쳐들고 입을 아앙- 벌리더니, 내밀어진 혀 위에 김치를 한쪽부터 내려놓고 있었다.
뭐, 뭐냐? 저 녀석이 어떻게 우리나라 김치를 저렇게 맛나게 먹을 수가 있는 거지? 비주얼까지 영판 나스럽게, 아, 아니, 잠깐? 나스럽게? -대교! 리치몬드가 지금 설마?
-후후. 맞아요. 리치몬드양은 오라버니의 시범(?)을 따라하고 있는 거예요.
윽! 역시나!
“리, 리치몬드, 괜찮냐? 안 매워”
일단 그것부터 물었더니, 리치몬드는 김치를 야물딱지게 씹어 삼키고는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우리 성에도 매운 향신료는 많았어. 이거, 맛있네. 그리고 이렇게 마무리하는 거 맞지?”
“아, 아니! 손가락까지 빨 필요는 없, 그, 그게 맛있긴 한데.”
으~ 젠장. 왠지 말이 꼬인다.
“그리고 이건 이렇게.”
리치몬드는 젓가락으로 소면을 쿠욱 찍더니, 그걸 둘둘 말아서 커다란 소면볼(?)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한껏 아앙~ 입을 벌렸지만, 소면볼은 리치몬드의 애기 입에 비해 너무나 거대(?)했다.
“으움. 이건 좀 힘들겠네.”
“그, 그래. 무엇보다, 그건 일반적인 한국식 식사 문화가 아니야. 그게, 그러니까, 암튼, 한국 문화는 서둘지 말고 천천히, 특히, 나를 따라하지 말고 배우는 것이 좋겠어.”
“응. 그럴게.”
리치몬드는 선선히 대답했지만, 포기김치를 찢어서 입에 넣는 것은 계속하고 있었다.
-대교! 웃지만 말고, 네가 따로 잘 설명해줘.
-쿡! 음, 그럴게요. 하지만 지금 바로 그러면, 편안한 식사에 방해가 될 거 같아요. 리치몬드양은 이렇게 즐거운 식사가 정말이지 오랜만이라고 해요. 끄음. 그것도 그렇겠군. 골든 스켈레톤 모드로 800년을 살아 왔으니, 그동안은 인간적인 식사를 못했겠어. 해골바가지 상태에서는 맛을 느낄 수 있는 혀도 없고, 어떻게 음식을 삼킨다고 해도 뼈사이로 빠져 나가버려서 배를 채울 수도 없을 테고 말이지.
하는 수없이 그냥 지켜보고 있자니, 리치몬드는 상추와 깻잎을 들고 잠시 망설였다. 녀석은 소면볼의 교훈을 생각했는지, 자신의 애기 입으로도 한입에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작고 앙증맞은 쌈을 만들어서 먹기 시작했고, 그런 리치몬드의 모습을 우리 못지않게 신기해하며 보고 있던 자룡대주가 참지 못하고 전음을 날려 왔다.
-처, 천주! 리치몬드양이 보통의 인간 소녀에 가깝게 보이고 있어요. 심지어 귀엽기까지!
훗. 이번에는 자룡대주도 오버하는군.
-아, 그런데 천주. 리치몬드양은 어째서 화장을 지운 것입니까?
-아, 그거? 나도 물어봤는데, 금방 얼굴에 뭐가 나고 가렵더래. 애기 피부에 성인용 화장품은 너무 독했나봐.
-아~! 페트라가 그 점을 간과했군요. 그렇다면 제가 한국 직수 천연 한방 화장품을……………
-저기, 자룡대주. 페트라도 이태리 화장품 명인의 천연 화장품 어쩌고 하는 걸 내가 말렸어. 쟨 그냥 저대로가 좋을 거 같아.
-아, 알겠습니다.
자룡대주는 매우 아쉬워하는 표정이었고, 나도 한국 한방 화장품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싶기도 했으나, 역시 리치몬드는 어설프게 화장을 시키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그나저나, 대교! 나는 이 집의 주인장인 S형님한테, 아침에도 인사를 못했네?
그럴 수밖에 없었다. S는 내가 싸움을 끝내기도 전에 러브 하우스로 복귀하여 지하로 들어가 버렸으니 말이다.
-음. 걱정하지마세요. 제가 대신 인사를 드렸는데, 신경쓰지 말고 필요한 만큼 계속 이 집을 이용해도 좋다고 하시며 처소로 드셨어요. 아, 그리고 카이씨의 한복 모습을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것 같았고요.
아, ‘미스 카이’만 한복을 입지 않았던 것은, 새벽에 복귀하는 자기 님에게만 그 모습을 보이고 싶었던 거였군. 그럼 오늘 새벽, S행님은 미스 카이의 옷고름을 풀며 어화둥둥 내사랑아 모드로… 크흠!
나는 한국식 19금 상상을 애써 끊으며 슬쩍 리치몬드의 눈치를 살폈다. 리치몬드는 골든 스켈레톤 모드일 때만 텔레파시 능력을 쓸 수 있다고 했으나, 역시 방심은 금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리치몬드는 별 눈치 없이 식사를 마치는 것 같았고, 돌아보니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수저를 놓는 분위기였다.
-대교, 장인어른도 함께 식사를 하셔서 좋긴 한데, 장인어른 성격에 용케 하루 제끼실 결심을 하셨네?
-실은, 이제부터는 저희에게 좀 더 시간을 내실 수 있게 되셨어요. 어제 ‘오이숙’께서, 아, ‘혈의문의 부문주’라고 해야겠군요. 그분께서 캔들 리 사무실에 합류하셨다고 하네요.
응? 오이숙? 전에 대교의 매니저이자 보디가드였던 ‘오삼숙’의 형님이, 혈의문의 이인자였던 건가? 어쨌거나, 믿을만한 인물이 보강되어서, 사영 본인은 이제 일손을 어느 정도 놓을 수 있게 되었다는 거군. ‘귀문의 홍’도 그렇고, 캔들 리 경호팀이 더 강화되는 것은 좋은데, 까칠한 장인어른을 모셔야하는 시간이 많아지는 것은 내가 쫌, 커흠. 지금의 속마음을 대교에게 들킨 건 아니겠지?
-오라버니.
-으, 응? 왜?
괜히 켕겨서 돌아보았으나, 대교는 별다른 기색 없이 두 손을 들어 차 마시는 시늉을 해보였다.
-어, 나야 뭐, 언제나 대교가 끓여주는 차는, 뭐든 오케이지.
-후후. 오라버니도 참.
대교는 웃으며 일어섰고, 그러자 주변에서 대기 중이던 비연대 몇 명이 재빨리 모여들었다. 어여쁜 처자들에게 차 접대를 시키는 관습(?)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었으나, 오늘은 비연대 처자들을 제외한 병력들이 전부 술에 뻗어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
「쥔님! 주인님!」
요몽 녀석, 나와의 도박, 아니 그냥 퀴즈 승부에 진 댓가로 아끼는 간식을 날린 충격에서 빨리도 벗어났군.
「진 것이 분하기는 하지만, 그보다 넘넘 궁금해요! 대체 어떻게 정답을 알아내신 거죠? 제가 드린 힌트나 여러 가지 정황에서도 그 정답을 유추할
근거를 찾지 못하겠어요!」
-어, 그건 말이다, 요몽.
요몽은, 눈빛을 초롱댔지만, 나는 잔인하게(?) 말했다.
-담에 갈켜주마.
「으익! 그런 게 어딨어욧!」
-얌마. 이제부터 모두와 작전 회의에 들어가야 해.
「왜 하필 이때에!」
-진정해, 임마. 매퍼 가문과의 싸움을 대비한 작전 회의, 여기서 오늘 가장 중요한 안건은, ‘로미오 유인호, 줄리엣 신디’! 잊었냐?
「오오잉? 그랬었죠, 참!」
요몽은, 재빨리 뿔따구 모드를 지우고 헤헤거리기 시작했고, 나는 천천히 인호를 돌아보았다. 진즉에 식사를 마쳤던 무심 청년 인호는 소희가 따라준 식혜를 마시며 평화롭기까지 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의 불구대천지 원수 가문, 그 매퍼가의 막내 아가씨, 신디는 이제 불과 사십 분정도 후에 도착할 예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