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4부 – 161화 : 몽인 선사의 유물. (1)
1. 몽인 선사의 유물. (1)
신디 매퍼를 죽여서 드웨인 매퍼를 끌어낸다?
신디가 드웨인의 여동생인 점을 생각하면, 확실히 효율적인 유인책일 수는 있었다. 하지만 나는 물론이고, 불심 청년 유인호가 선택할만한 방법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인호가 신디를 죽이겠다는 말에는 진심이 느껴졌고, 치솟는 살기도 지극히 흉맹했다.
“이, 인호씨?”
신디는 몸을 떨면서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못했고, 인호는 그런 신디를 향해 거침없는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오라버니?
「주, 주인님! 말려주세요!」
대교와 요몽이 아니더라도, 나 역시 이미 정글도를 고쳐 잡고 있었다. 그러나 섣불리 참견할 수는 없었기에 일단 대기 상태로 사태를 지켜봐야 했다. 신디의 요물 오스카는 처음부터 신디의 바로 뒤에 바짝 붙어 있었는데, 외견상으로는 그냥 커다란 초록색 덩어리에 눈알만 잔뜩 붙어있는 형태의 기괴한 요물이었지만, 지금은 어쩐지 인간처럼 당혹해하고 있다는 느낌이 전해지고 있었다.
전처럼 신디를 자신의 모체 안으로 수납(?)하는 식으로 보호하고 싶은데, 신디가 거부하고 있는 거 같지? 하는 수없이 신디의 앞으로 이동하여 인호를 막아서는데, 놈이 발산하는 마력도 만만치 않아.
“오스카. 너도 오랜만이군.”
인호가 시니컬한 음성으로 인사를 건네는 순간, 오스카도 움찔하는 기색이 있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파아앗~!
요물 오스카의 몸체가 좌우로 펼쳐졌고, 마치 거대 괴물의 입처럼 인호를 덮쳐 버렸다. 인호의 전신이 순식간에 오스카에 먹혀(?) 보이지 않게 되자, 내 뒤쪽에서 두 줄기의 강력한 기운이 솟구쳤다.
“소희! 정훈! 진정해!”
나는 소희와 정훈을 나서지 못하게 했고, 신디도 급하게 입을 열었다.
“그, 그래요! 오스카는 인호씨를 해치려는 것이 아니에요! 오스카도 인호씨를 잠시 진정시키기 위해서··
쿠와앗~!
거친 기운이 폭사되는 소리와 함께 오스카의 몸체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그만큼 얇아진 오스카의 몸체가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으나, 곧바로 다시 움츠러들며 본래의 형태로 돌아가고 있었다. 인호가 전신에서 폭사한 기운을 오스카가 버텨 낸 모양이었다.
“이, 인호씨가 정말 많이 강해진 건 알아요. 하지만 오스카는 한번이라도 당해 본 공격에는 완벽하게 적응할 수 있어요. 오스카는 인호씨와 처음 만났을 때 인호씨의 공격을 받았었기 때문에 또다시 당하지 않아요.”
신디, 이 아가씨, 자기 측 능력을 마구 발설해 버리는군. 정말이지, 모든 적들이 이 아가씨만 같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진유준씨! 이제 당신이 인호씨를 설득해 주… 아?”
파앙~!
신디의 말을 끊은 것은 다시 오스카 안쪽으로부터 터져 나온 타격음이었다. 소리뿐이 아니었고, 이번에는 양상이 달랐다. 파앙! 펑! 파앙!
프로 복서가 샌드백을 치는 것처럼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요물 오스카의 몸체 여기저기가 불쑥불쑥 튀어 오르기 시작했다. 파앗! 팍!퍽!콱! 팍!
타격음이 점점 더 둔탁해지며 튀어 오른 요물의 몸체 표면으로 인호의 손바닥과 주먹의 모양이 새겨지고 있었다.
“맙소사! 인호씨가 어떻게?”
신디가 당혹해하는 소리를 냈을 때, 오스카도 안쪽으로부터의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츄악~ 빠르게 몸체를 풀어 인호를 토해(?)냈다. 요물의 장막은 걷혀졌으나, 드러난 인호의 전신은 반투명의 선홍색 불길에 휩싸여있는 것처럼 보였다.
“신디, 오스카, 너희들은 내가, 아직도 9년 전과 같을 거라고 생각했나?”
불길처럼 뜨거운 음성과 함께, 인호는 다시 신디와 오스카에게 한 걸음을 내딛었다. 이번에는 신디와 오스카가 동시에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으나, 인호의 신형이 좀 더 빨랐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인호의 양손에 무서운 기운이 응집되어 있었다.
마, 막아야, 아니, 아직 아니야!
나는 이를 악물며 참았고, 인호의 치명적인 일장이 신디에게 작렬했다.
“아흑!”
억눌린 신음성과 함께 뒤로 날려진 신디를 오스카가 겨우 받아 감싸고 있었다. 창백한 얼굴로 입에서 피를 흘리며 늘어진 신디의 처절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인호는 다시 일장을 치켜들었다.
이제 더 이상 두고 볼 수는 없, 아! 온다! “멈춰!”
상당히 먼 곳에서 들려온 고함소리였다. 하지만 그 고함 소리와 거의 동시에 엄청난 마력의 발산체가 날아들고 있었다. 아직은 약간 먼 거리의 자인 놈이 한 손바닥을 이쪽으로 향한 채 날아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고, 인호와 그의 주변 공간이 빠직빠직 소리를 내고 있었다.
쐐애액!
나의 삼시전결이 쏘아지자, 자인 놈은 다급하게 회피 비행을 해야 했고, 인호를 포함한 공간의 압축 현상도 사라졌다. 자인 놈은 분노에 찬 얼굴로 이를 악물고 있었으며, 놈의 등 뒤에서 얼굴을 내민 에리카도 날카롭게 외쳤다.
“진유준님! 신디 아가씨에게 무슨 짓을 한 거죠?”
쯧. 내가 신디에게 살수를 쓴 것도 아닌데 약간 억울, 아니, 적어도 ‘방조’의 책임은 있는 건가?
“신디 아가씨는 전령으로 오신 것뿐인데… 아?”
카아앗!
괴음과 함께 검은 화살이 날았고, 에리카의 커다란 요정 날개 한쪽이 꿰뚫어졌다.
“큿!”
불의의 일격을 당한 에리카가 힘겨운 날갯짓으로 간신히 자신과 자인 놈의 몸을 착지 시키고 있었다. 슬쩍 뒤를 돌아보니, 소희가 요괴 활 묵정을 들고, 방금 시위를 놓은 모습으로 그림처럼 서있었다.
멋진 궁사의 포스로군. 분위기뿐 아니라, 지금의 ‘요력 화살’은 정말 대단했어. 나의 삼시전결 못지않은 스피드로 쏘아진데다, 약간 휘어지며 목표물을 적중시키는 것 같았지? 역시 묵정은 그동안 진짜 힘을 제대로 보인 적이 없었던 거야.
“오빠! 조금 비켜주겠어?”
소희의 요청에 따라, 인호가 조금 옆으로 비켜섰고, 소희는 묵정을 자인과 에리카 커플에게 겨눈 자세 그대로 걸음을 옮겨 내 앞으로 나서고 있었다. 정훈 역시 인호 못지않게 살벌한 기운을 발산하며 소희와 함께 나섰고, 자인 놈은 그런 불무도 사문의 모습을 노려보며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비틀린 웃음을 떠올렸다.
“흥! 내가 밤에만 네크로노미콘의 힘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좋아! 내가 너희들 모두 끝장을…….”
“자인! 그만둬요! 드웨인 님은 당신에게 그러한 일을 허락하지 않았어요!”
에리카가 드웨인을 언급하며 막자, 스멀스멀 피어오르던 자인 놈의 광기가 주춤했다. 에리카는 다시 나에게도 외쳤다.
“진유준님! 모두 그만두게 해주세요!”
끄음. 저 요괴인지 요정인지 모를 아가씨 때문에 더는 뒤로 빠져있을 수가 없게 되었군. 말릴 때는 말리더라도, 가급적이면 불무도가와 매퍼가의 화끈한 전초전을 보고나서 말리고 싶었는데 말이지.
“인호!”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사실 무엇보다, 오스카에게 의지하여 기대 선채, 간신히 의식을 잃지 않고 있는 듯한 신디의 처연한 모습이 엄청 마음에 걸리기도 했다.
“참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은 알고 있어. 하지만 신디 양은 전령으로 보내진 거고, 어떤 전쟁중에라도 전령을 해치는 건 금기잖아.”
솔직히 이미 어느 정도(?) 해친 상황이지만, 그건 일단 그렇다 치고.
“그리고 아까 신디양이 했던 말, 드웨인이 인호에게 원하는 것이 있다고 했는데, 우린 아직 그게 뭔지, 구체적으로 듣지 못했어.”
인호는 적과 대치하느라 내게 뒷모습만을 보이고 있는 상태였고, 곧바로 입을 열어 대답하지도 않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대답을 들은 것으로 간주하는 태도로 에리카에게 물었다.
“에리카. 신디는 아까, 드웨인이 인호에게 ‘뭔가 가져오길 원한다’고 했어. 설마 인호가 너희들이 찾고 있는 그 ‘이상한 책’을 숨겨두고 있었다는 주장을 하는 건 아닐텐데, 대체 뭘 가져오라는 거지?”
“맞아요. 여기 이 남자는 네크로노미콘에 대해서조차 잘 알지 못하죠.”
에리카는 인호를 보며 단정적으로 말했지만, 인호를 비웃는다거나 그런 기색보다는 왠지 안쓰럽게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진유준님이 이상한 책이라고 표현하는 그 책, 그건 우리들까지도 진짜 명칭을 모르고 있으니, 앞으로는 ‘생명의 서’라고 지칭하겠어요.”
‘생명의 서? 지들이 찾는 물건의 진짜 명칭도 모른다는 것이 뜻밖인데다, 임시 명칭도 의외일세? 그 미지의 책이 가진, 최소한의 특성을 표현한
말일 텐데, 그게 ‘’생명’이라고? ‘생명의 힘’을 악당들이 남을 해치면서까지 노린다니, 뭔가 심하게 모순적이잖아.
“드웨인 님은 그 ‘생명의 서를 찾기 위한 단서를 최근에야 확인하게 되었는데, 그 단서를 풀기 위해서 꼭 필요한 물건은, 음~ 아무래도 직접 보여드리는 것이 더 확실하겠군요.”
에리카는 고개를 돌려 신디와 요물 오스카를 보았다.
“아가씨. 그걸 이들에게.”
신디는, 에리카의 요청을 받자, 자신도 모르게 힘겨운 시선을 들어 인호를 올려다 보았고, 인호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다시 맥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어떤 물건인지 몰라도, 그걸 밝히는 것만으로도 인호에게 더욱 미움을 살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신디 아가씨. 어쩔 수 없어요. 차라리 빨리 모든 일이 끝나야 아가씨의 악몽도 끝날 수 있을 거예요.”
에리카는 진심으로 신디를 걱정하고 있는 기색이었지만, 신디는 한손을 힘겹게 들어서 그 손의 엄지 끝을 깨물었을 뿐이었다. 그러자 요물
오스카가 스스로 자신의 몸체 일부를 개방하기 시작했다.
마치 표피 아래에 작은 모니터를 숨기고 있다가 드러내는 듯한, 아, 아니, 진짜 작은 스크린이 맞는 건가? 깨끗하게 반짝이는 스크린 위로 떠오르는 저 영상은… 여자? 물건이 아니라 젊은 여자의 얼굴이잖아? 긴 생머리에 무지 청초한 미녀인건, 그렇다 치고, 이거 뭐야?
“지, 지연 언니?”
소희가 신음처럼 화면 속의 청초 미녀 이름을 흘려내더니, 무섭게 부릅뜬 눈으로 에리카를 돌아보았다.
“당신들 설마, 지연 언니를 인질로, 아, 아니, 그전에, 설마, 설마 당신들, 당신들이 원하는 것이, 할아버지의 그, 그………
소희는 차마 끝까지 말을 맺지 못하고, 크윽~ 이를 악물었다. 현재 나의 위치에서는 소희의 표정도 제대로 보기 어려웠으나, 보지 않아도 지금의 소희가 얼마나 무서운 분노에 휩싸여 있는지가 생생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소희의 분노가 묵정에게 전달되고 증폭되어 한없이 끔찍하고 어두운 기운으로 타오르기 시작하는, 맙소사! 소희와 묵정의 잠재력이 이정도일 줄은 몰랐어! 이, 이걸 어떻게 말려? 이대로 소희가 폭발하면 줄리엣 신디고 뭐고 한방에, 이, 이건 어떻게든 해야………………
“소희야.”
소희를 부르는, 바위처럼 묵직한 음성은 인호의 것이었다.
“오, 오빠?”
엄청난 기세로 타오르고 있는 소희와 묵정의 검은 요력 앞으로 인호가 나서서 가로막았다. 인호는 자신도 소희 못지않게 격동하고 있는 상태였지만, 그걸 놀라운 정신력으로 억제하며 나서고 있는 것 같았다.
“소희야. 네가 먼저 언급했듯, 저자들은 지연씨를 인질로 잡고 있는지도 몰라. 그러니, 지금은 참아주었으면 좋겠구나.”
유인호, 니가 짱먹어라. 참을성 지존으로!
내심 그런 소리를 중얼거리며 보고 있자니, 인호는 소희가 겨우 진정하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에리카쪽을 돌아보았다.
“말하라. 내가 지연씨를 이곳에 데려오겠다고 약속하면, 너와, 너희들 중 누구도 지연씨를 해치지 않겠다고 약속할 수 있겠는가?”
인호의 단도직입적인 말에, 에리카는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인호는 잠시 기다려주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에게 불가능한 약속을 강요할 수는 없겠지. 그렇다면, 지연씨의 안전을 위해서는 너의 목숨까지 걸겠다는, 그런 약속을 할 수는 있겠는가?”
얼핏, ‘인질의 안전에 문제가 생기면 너를 죽이겠다’와 비슷한 말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약속의 주체를 에리카로 지정함으로서 에리카를 속박하는, 그런 의도가 있는 말인듯 싶었다. 에리카는 요괴답지 않게 인간적으로 고심하는 기색으로 침묵하다가 결국에는 낮은 한숨을 토해냈다. 그녀가 입을 열려하자, 자인 놈이 먼저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에리카! 쓸데없는 약속까지 할 필요는 없어! 지금 당장 내가 저자를 죽이고 한국으로 가서………….”
“자인!”
자인의 말을 끊은 에리카가 조금 전보다 더욱 깊은 한숨을 몰아내고는 자인을 안쓰러워하는 눈으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지금의 제게는 드웨인님의 명령을 완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요. 자인, 당신은 조금만 더, 당신의 에리카를 믿어 주었으면 좋겠어요. 예전처럼.”
“에, 에리카. 나, 난 언제나 너를…”
자인은 뭔가 변명을 하고 싶은 눈치였으나, ‘예전처럼’이라는 에리카의 말과 그녀가 자신을 응시하는 시선을 이기지 못하고 입을 다물고 말았다. “유인호님, 당신은 우리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무서운 남자였군요.”
인호는 그 어느 때보다 심상치 않은 눈으로 에리카를 노려보고 있었으며, 에리카는 그런 인호의 시선을 마주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저, 매퍼가의 수호 요마 에리카! 유인호님, 당신께서 ‘민지연’이란 여자를 드웨인님께 데려 온다면, 저는 저의 목숨과 모든 능력을 다해서 그녀를 보호하겠어요!”
“좋아, 에리카, 당신이 인과율을 아는 요마인 것을 믿겠어.”
이, 이거, 아무래도 단순한 약속이 아니라, 일종의 ‘계약’을 맺고 있는 거 같지? 나와 시그마가 주종의 계약을 맺었던 것처럼 말이지. 그러려면
시그마처럼 에리카도 뭐든 자신의 신체 일부를 인호에게 맡겨야하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 방면에 무지한 내가 아는 체하기도 뭐해서 가만있자니, 에리카가 문득 꾸벅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럼, 유인호님께서 준비가 되면,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에리카의 등 뒤로 예의 커다란 요정 날개가 돋아나는데, 아까 요력 화살에 맞아서 손상된 부분이 벌써 복원된 모양이었다.
“인호, 씨. 저는…..”
신디의 힘없는 목소리가 그녀를 뒤덮는 오스카의 몸체 때문에 끊어졌고, 요물 오스카는 빠르게 투명화 되어 사라져버렸다.
한 팀은 날아서 가버리고, 한 팀은 눈 녹듯 사라지고, 여하간 이렇게 불무도가와 매퍼가의 전초전이 끝나게 되었군. 자인 매퍼 놈이 생각보다 강해서 걱정했는데, 우리의 불무도 사문도 만만찮은 저력을 보여주어서 새삼 든든하구먼.
나는 비교적 나쁘지 않은 기분으로 멀어져가는 자인과 에리카 커플을 볼 수 있었으나, 인호 일행, 특히 소희의 표정은 아직도 심하게 어두웠다.
“저기, 소희야.”
나는 조심스럽게 소희를 불렀고, 소희는 잠깐 눈을 감고 좀 더 마음을 가다듬는 기색을 보인 다음에야 입을 열었다.
“유준 오빠, 드웨인 매퍼, 그 자가 원하는 것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서 남기신, ‘사리’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