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4부 – 162화 : 몽인 선사의 유물. (2)

극악서생 4부 – 162화 : 몽인 선사의 유물. (2)


1. 몽인 선사의 유물. (2)

사리? 득도한 고승을 화장하면 나온다는 소문의 그, 사리? 맙소사! 몽인 선사를 살해한 것도 모자라, 그 분의 사리까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서 이용하겠다는 거였다니, 인호와 소희가 그렇게 빡 돌만도 했어!

나도 새삼 울컥 치밀어 오르는 것이 있어서 잠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소희는 빠르게 감정을 추스르고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는 것 같았다. 무심 청년 인호는 이제 그렇다 치고, 소희와 정훈도 나이에 비해 많은 사건들을 겪으며 지내는 이들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우리도 철수하자. 놈들이 금방 다시 오진 않을 테니까, 좀 쉬면서 천천히 앞일을 생각해 보자구.”

나는 비교적 태평한 소리를 하면서 먼저 러브하우스 쪽으로 돌아섰다. 그러나 당연히도 내 속마음이 그렇게 태평할 리가 없었다.

-자룡대주! 적들은 우리가 아직 파악하지 못한 방식으로 우리를 감시중일 거야. 곧, 리치몬드를 통해서 적들이 사용할만한 수법들을 알려 줄 테니, 보안 강화에 참고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천주. 우리는 솔직히, 이 방면에 취약한 편인데, 리치몬드양이 합류하게 되어 다행입니다.

흐음. 자룡대주는 지하무림에 대한 자부심이 강해서 외부 손님에게 의지해야하는 상황 자체를 불쾌해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반기는 기색이군. 이 아가씨, 리치몬드도 이미 어느 정도 지하무림과 한 식구가 되었다고 인식하고 있는 거 같군.

-리치몬드가 대단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기존의 인적 자원을 안 쓸 이유도 없겠지?

-아, 지금 말씀은 혹시?

-‘귀혼마군(鬼魂魔君)’, 그를 부르고 싶군.

-아, 역시?

훗. 어쩌니 해도, 역시 같은 식구의 합류를 더 반기는 기색이긴 하군.

-그를 오늘 중으로 호출하도록!

-복명!

사실 대교는 ‘덕방’ 녀석도 부르자는 제안을 했었지만, 현재 상황에서 그 정신없는 길치 녀석을 부르면, 적보다 우리 측이 더 혼란스러워 질 거 같으니까, 녀석은 일단 패스~

자룡대주에게 기본 지시를 내리면서 러브하우스로 돌아오니, 거실에서는 소교와 금동이, 뇌룡대주가 돌아갈 채비를 하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소교는 우리와 아쉬운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다가 문득 뭔가 생각이 난 듯, 주위를 살피다가 결국 주방쪽 복도 한 켠에 우두커니 서서 남몰래(?) 소교를 배웅중이던 데릭을 발견했다.

“아~ 거기 계셨군요!”

반갑게 외친 소교는 누가 말릴 틈도 없이 데릭에게 달려갔고, 간밤의 특별식과 아침 식사 등에 감사의 인사를 했고, 마무리로 ‘친절한 분’이라는 치명타(?)를 남기며 돌아섰다. 감동이 지나쳐서 오히려 아무런 반응을 못하게 된 데릭은, 소교의 모습이 게이트 안으로 사라진 후에도 혼이 나간 마네킹, 혹은 망부석 모드가 되어 있었다. 나는 데릭의 눈앞에서 손을 흔들어 보았지만, 그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요몽. 이 사람, 숨은 쉬고 있는 거 맞지?

「예. 그렇기는 하네요.」

-음~ 근데 우째, 너도 기분이 정상적이진 않은 거 같다?

「에효~ 신디가 인호님께 그 꼴이 되어서 돌아갔는데, 저라고 기분이 좋을 리가 있겠어요?」

그렇군. 요몽은 인호와 신디의 애절한 러브 스토리에 기대가 컸는데, 인호가 신디에게 가차없이 살수를 쓰는 것을 봤으니, 나름 충격 먹고 낙심을 할만도 해.

「근데요, 주인님, 주인님께선 신디가 불쌍하지도 않으세요? 아까는 말려 주지도 않으시고, 지금도 신디를 별로 생각하지 않으시는 거 같아요.」

요몽은, 불만을 드러내며 입술을 삐죽였으나, 곧바로 상황 해설(?)을 들려주기는 어려웠다. 나도 모든 상황을 확실하게 파악했다고 자신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그 얘기는 나중에 다시하자. 넌 일단 주변 경계에나 더 신경 쓰고 있어.

「그야 뭐, 저도 할 일은 하는 요정인지라, 그러기는 할 거지만, 에효~ 신디양이 불쌍해서 어쩌나아~」

짜식이, 심란하게스리.

-대교! 현재 상황에서 그나마 가장 보안이 괜찮은 장소로 가야겠다. 아까 호크 일행이 떠났던 그 방, 거기가 괜찮을 거 같은데?

그래. 그 방은 ‘피비’를 수송해왔을 때, 그녀를 웨인가의 친위대가 구출하러 올 것을 대비해서 선정된 방이었어.

-아, 예. 저도 그곳이 괜찮을 거 같아요.

으음. 내 말에 동감을 표하면서도 왠지 기운이 없는 전음이로군. 요몽 정도는 아닐지 몰라도, 대교 역시 신디 일 때문에 심란한 모양이야. -인호!

나는 ‘작전 회의 장소’로 향하면서 인호를 불렀다.

-아까 말야. 정말 신디를 해치려던 건 아니었지?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인호는 조금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신디 매퍼를 죽여서라도 드웨인 매퍼를 끌어내고 싶은 마음, 그리고 또 다른 마음. 둘 중 어느 쪽이 더 강했었는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흠. 소위 ‘또 다른 마음’이 구체적으로 뭔지는 밝히지 않는군. 그나저나, 보통 이런 심리 상태를 묘사할 때는 비유적인 표현일 경우가 많은데, 인호는, 정말로 마음을 둘로 나누는 심법을 익혔다고 했지?

드웨인 매퍼의 요괴, 안젤리카는 ‘환영의 천사, 아라크네’처럼 타인의 마음을 읽어내는 마인드 리딩 능력이 강한 모양이었다. 그런 적과 싸우기 위해서 인호는 오래도록 자신의 마음을 둘로 나누는 심법을 수련해서 완성했다는 건데, 마인드 컨트롤의 무공 버전인 셈이었다.

-마음을 둘로, 혹은 여러 개로 나누는 거, 나도 거기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은 사람이지만, 지금은 그보다!

나는 인호에게 피식 웃어 보인 다음, 본격적으로 인호의 또 다른 마음에 대해서 묻기 시작했다.

-그 오스카라는 요물이 상대의 에너지 흐름을 빠르게 간파하여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은 오래전에 겪어봐서 알았을 테고, 그래서 현천기공의 운용을 몇 개인가로 특화해서 강화한 공격법을 따로 수련했겠지? 현천기공의 기본 흐름을 알고 있는 요물도 대처하기 어려울 정도로, 현천기공이되,

현천기공이 아닌 수법을 말이야.

내가 제대로 이해하고 묘사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인호는 일단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주고 있었다.

-그 편법이 통할지 확인하기 위해서 더 굳이 싸움을 걸었던 거지?

또 끄덕끄덕. 역시 그랬군.

-현천기공의 변칙 사용은 보기 좋게 성공했어. 신디와 오스카가 당황하는 것으로 봐선, 오스카가 이미 한번 분석 완료한 공격 에너지에 다시 당하는 경험은 처음이었던 모양이야.

인호의 얼굴에 스스로의 성과에 만족해하는 미소가 희미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인호, 넌 오스카를 공격할 때의 내력 패턴을, 신디에게 살수를 쓸 때도 그대로 사용했어. 바로 직전까지의 패턴에도 빠르게 적응하는 오스카가 신디를 보호할 수 있도록 말야. 안 그래?

흐음. 이번 지적질(?)에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지만, 부정하지도 못하는군. 이것으로 대교와 요몽이 다시 희망의 불씨(?)를 되살려도 되려나? -인호. 지나친 참견일지도 모르지만, 인호의 또 다른 마음이 만약 신디에 대한……………

유준 형님!

아차. 너무 성급하게 앞서 나갔나?

-저의 또 다른 마음은 ‘스승님의 마음입니다.

에? 이건 또 뭔 소리?

인호는 어느 사이 걸음을 멈추었고, 나 역시 함께 멈춰 서게 되었다.

-스승님께선, 그 분께선, 놈들에게 살해당하시는 마지막 순간에도, 그들을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이런, 몽인 선사가 그렇게 지나치게 자비로운 유언을 남기셨다고?

-스승님께선 그 이유를………

‘인호야. 너는 저들을 용서해야 하느니라. 내가 이미 저들을 용서했느니라.’

인호의 전음을 듣는 건데도 왠지몽인 선사의 자비로운 목소리를 직접 듣는 기분이 들고 있었다. 몽인 선사의 부처님 같은 유언을 밝힌 인호는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지만, 나는 잠시 더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인호는 지금 드웨인 매퍼에 대한 복수심을 불태우며 이곳에 와있는 거야. 복수를 포기하라는 건, 아무리 스승의 유언이라도 따를 수 없다는 거지. 하지만 그럼에도 역시, 스승의 유언에 담긴, 그 분의 마음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어서 손속에 망설임이 생겼을 뿐이었다는 건가? 으~ 젠장! 난 불교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이런 패턴은 정말 싫다 싫어! 이런 경우에는 함무라비 법전이 짱이거늘!

-오라버니?

-아, 알았어, 대교. 정신 챙기고 갈게.

쳇. 인호 이 친구, 아까 와본 방이라고 먼저 가버렸군. 다른 일행들도 뒤따라 들어가 버렸고 말이지.

다함께 작전 회의 장소로 가다가 최고 지휘관이 뒤쳐진 셈이지만, 먼저 실내에 자리 잡고 앉은 이들 모두 별다른 기색 없이 나를 기다려주고 있었다. 조금 민망한 기분으로 내 자리에 앉으며 대교에게 물었다.

-아무것도 없던 방을 빨리도 회의실 분위기로 바꿔주었네. 그런데 저거, 저 해골 장식들도 비연대가 달아 놓은 거야? 리치몬드 좋아하라고?

실내의 사방 벽에는 작은 주먹만한 해골 모형(?)들이 걸려 있었고, 긴 회의 탁자의 한 가운데에도 묘한 해골 인형이 놓여져 있었다. 그러나 대교는 고개를 저으며 리치몬드를 보았다.

-그런 보고는 받지 못했어요. 리치몬드양이 직접 설치한 모양이어요.

나도 리치몬드를 돌아보자, 녀석이 씨익- 웃었다.

“일종의 경보 장치라고 생각하면 돼. 매퍼 형제들이 어떤 수법을 쓸지는 나도 몰라서, 모든 ‘이드의 흐름을 감지하고 알려주는 녀석을 불러 보았지.” 이드의 흐름? ‘이드’라는 건, ‘마력을 의미하는 마법사들의 용어인 건가? 그리고 경보 장치 역할을 하는 녀석을 ‘불렀다’고?


“다른 해골은 그렇다 치고, 저 녀석은 살아있는 건가?”

나는 탁자 위의 기묘한 해골 인형을 가리켰고, 리치몬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특별히 ‘프로페서’라는 이름을 가진 녀석인데, 사방의 장치에서 감지하여 보내주는 신호를 분석해서 우리에게 알려 줄 거야.”

프로페서? 대학 교수라는 의미던가? 그래서 그런가? 해골 인형이면서도 왠지 학자풍의 비주얼을 가지고 있구먼.

해골 교수님께서는, 리치몬드가 소희에게 받은 짚단 저주 인형 정도 크기였고, 금빛의 작은 방석위에 앉아 있었다. 리치몬드 때문에 해골바가지들에게 익숙해졌음에도 ‘기묘하다’고 느꼈던 것은 다른 해골들에 비해 머리만 대빵 큰 대두 해골 인형이었기 때문이었고, 거기에 인간처럼

안경까지 쓰고 있었다.

응? 해골 교수가 갑자기 눈빛을 반짝이며 입을 여네? 뭐라고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도 하는데?

「라틴어예염. ‘루나의 힘을 가진 소녀가 근처에 나타났다’고 하네염. 흑주님을 말하나 본데, 저희들만은 못해도, 꽤 대단하네염.」

요몽 말과 달리, 이드인지 뭔지, 오컬트 계열의 에너지 흐름을 잡아내는 것은 몽몽보다도 한 수 위일지도 모르겠군.

“유준. ‘에메랄드 문의 힘을 가진 소녀가 가까이 왔나봐. 그녀는 상관없겠지?”

“당연하지. 흑주는 그냥 호기심에 와본 걸 거야. 그리고 여긴 본래 녀석의 집이잖아. 그런데 그보다, 주변 탐지만하는 거야? 아니면 이곳의 대화나 그런 것까지 새어나가지 못하게 할 수도 있는 건가?”

“비밀 보호도 가능해. 음. 하지만, 내가 전에 프로페서의 도구를 많이 잃어버렸어. 그래서 지금 있는 것들로는 이 방보다 조금 더 큰 정도의 공간밖에 보호하지 못해.”

현재 벽에 걸려있는 해골 네 개만으로는 출력의 한계가 있다는 거군. 좀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이게 어딘가 싶구먼.

“당장은 이 정도로 충분해. 고맙다, 리치몬드.”

“후후. 뭘.”

“소희야. 너도 이런 건 처음 보는 거냐?”

내가 묻자, 해골 교수님을 재미있어하는 눈으로 지켜보던 소희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리치몬드양의 망토 안에는 정말 무궁무진한 마법 아이템이 있는 거 같아요.”

“그러게 말이다. 나도 리치몬드의 망토만은 조금 부럽기도 해.”

나와 소희가 자신을 주목하자, 리치몬드는 기분 좋게 무서운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뭐든 원하는 것이 있으면 말해. 두 사람에게는 뭐든 주어도 아깝지 않아.”

거참. 이렇게 천진한(?) 녀석을 대체 어떤 녀석들이 ‘죽음의 공주’라고 비방하며 두려워했는지 모르겠네. 으음. 어쨌거나, 이 귀염둥이(?) 리치몬드 덕분에 마음 편히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군.

“좋아. 그럼 이제 시작해 보자구.”

나는 좌중을 스윽 한번 돌아본 다음, 소희를 지목했다.

“소희야. 아까 오스카의 생체 모니터인지, 하여간 그걸로 보았던 아가씨 말인데, 그녀의 이름이 ‘민지연’이라고 했지?”

“예. 지연 언니는 할아버지와 특별한 인연이 있어서, 할아버지의 사리는 현재 그 언니가 지니고 있어요. 사실 그 언니는 재단의 특별 관리대상이라서 항상 재단의 보호를 받고 있는 상황이에요. 하지만 재단에서 매퍼 가문의 움직임을 모르고 있는 상태에서는 재단에서도 그 언니를 완전히 보호해주기 어려울 거예요.”

완전히 적에게 잡혀있는 건 아니라도, 인질은 인질인 셈이군. 이런 식의 인질 잡기는 막장 악당들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는 거지.

“그럼 재단에 보호 요청을, 그게, 그렇게 하는 건 너희들 입장에서 곤란하겠지?”

그래. 인호 일행은 현재 재단의 ‘사사로운 복수 금지’ 정책을 어기고 여기에 와 있는 거지. 나중에라도 알려지면 어떤 징계를 받을지 알 수 없다고 하지만, 그건 일단 나중에 고민하기로 하고!

“그렇다면 그녀와 살짝 접촉해서 선사의 사리만 받아와도 될 텐데, 왜 굳이 그녀까지 데려오겠다고 한거지?”

아무래도 이상했던 점을 꽤 늦게 물어보게 된 거였고, 소희는 난처해하면서 어색하게 웃었다.

“그게, 실은, 지연 언니가 그걸 그냥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소희는 한 손을 들어 자신의 쇄골과 가슴 사이의 한 곳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여기쯤의 피부 아래에 박혀서 융합된, 그런 상태예요.”

뭐시라? 득도한 고승의 사리가 왜 멀쩡한 처자 가슴 한복판에, 아, 아니, 자칫 오해가 생길법한 표현은 삼가기로 하고!

“뭐야?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음. 재단 회원들의 개인 정보는 기밀이지만, 하는 수없이 말씀드려야겠네요. 그러니까, 지연 언니는 아주 오랜 세월동안 자신도 모르는 가운데

재단의 특별 회원으로 관리 받았던 케이스였어요. 그건 그만큼 특별한 체질을 타고 났기 때문이었는데………….”

소희는 차근차근 사연을 얘기해 주었고, 나는 오래지않아 그 아가씨의 몸에 선사의 사리가 융합되어 버린 이유를 알게 되었다.

“뭐야. 결국 인호가 오버했던 거네.”

나의 툭 던지는 사연 감상평에 당황한 것은 인호였다.

“혀, 형님?”

“그래 뭐, 그 아가씨가 굉장한 영매(靈媒) 체질이고, 그녀를 차지하기 위해서 마계 출신의 어마무시한 악령까지 나타났다는 거지? 그리고 그 놈을 몰아내기 위해서는 선사의 불력이 담긴 사리로 그녀의 몸을 칠 수밖에 없었던 거고 말이지.”

나는 꽤 긴 스토리를 초간단 압축 정리한 다음에 거기서도 핵심 사항을 뽑아냈다.

“그런데, 악령을 쫓아내기 위해서는 소위 ‘등짝 스매싱’같은 걸 해도 되었을 텐데, 왜 하필 이쁜 처자 가슴팍에!”

“형님!”

“크흠. 거, 뭐, 강적과 싸우다보면 경황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었겠다싶긴 한데, 그래도 오버했던 건 인정하지?”

“유, 유준 형님. 지금 그게 중요한 사항이 아닌 것 같습니다만.”

“어허~ 이 친구 보게? 멀쩡한 처자 가슴에 이따만한 흉터를 남겼다며? 그러고도 아무런 책임의식이 없다는 거야? 소희야! 넌 어떻게 생각하냐?” 내가 소희까지 끌어들이자, 인호도 어쩔 수없이 소희를 보았다. 소희는 자기 오빠의 시선을 슬쩍 회피하며 입을 열었다.

“저기, 오빠. 솔직히 여자 가슴에 그런 건 좀 그랬어.”

인호는 결국 고개를 떨구었고, 나는 승자의(?)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흐으음. 사연이 꽤 무거운 편이어서 오히려 분위기를 깨고 싶었고, 그건 잘된 거 같은데 말야. 사실 지난 사연 못지않게 당장의 상황도 큰 문제로군. 짤없이 그 아가씨를 통째로 데려와야 한다는 건데, 그녀는 사건 당시의 기억을 모두 잃고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지? 그런 아가씨를 대뜸 미국으로 데려오면, 부녀자 납치 조직의 두목으로 지명수배자 신세가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겄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