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4부 – 49화 : 몽몽 선생의 질투?
9. 몽몽 선생의 질투?
대교가 혼자 앉아 있던 장소는 산아래 국도와 산길 입구에 세워놓은 우리 차 키트 1.5호까지 내려다보일 정도로 전망이 좋은 바위였다. 나와 대교 는 그 바위에 나란히 앉았다.
이곳은 광염 어르신의 대장간으로부터… 산에 익숙한 편인 내 걸음으로 30분 정도의 거리…! 대교도 참. 거 뭐, 실수로(?) 정혼자의 몸을 볼 수도 있는 거지. 그런 일 때문에 이런 곳까지 단숨에 달려와 숨어 있을 건 또 뭐람. 사실 쪽팔려서 숨고 싶었던 건 나였는데 말이지. …음. 암튼.
난 현재 정글이의 상태와 나의 계획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을 해주었고, 대교는 자기가 아까 왜 달아났는지 같은 건 까맣게 잊은 듯 초롱초롱 눈빛 을 반짝이며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니까, 내 생각에 정글이는 나와 혼연일체가 되어서 내가 보내는 내공을 모으고 관리하는… 단전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얘기야. 앞으 로 훈련을 상당히 해야 할 것 같기는 하지만,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
“아…! 설마 일이 그렇게 공교롭게 이어질 줄은……”
대교는 새삼 놀랍다는 표정으로 좀처럼 정글도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요전에, 당신께서 정글도를 사용해 온 방식을 들었을 때는 솔직히 정글이가 마음 상해 했을까 봐 걱정했어요. 하지만 결국에는 오라버니의 훌 륭한 동반자가 되어 주었군요.”
“어~ 그게 말이지. 광염 어르신의 영혼이 나한테서 완전히 나가기 전에 아주 일부지만 그 분의 과거 기억을 엿볼 수 있었거든? 근데 그 양반 사 상이랄지, 생각하는 게 나하고 비슷했었나봐. 적어도 이 녀석을 쓰는 방식은 말야.”
그랬다. 물론 광염 어르신은 정글도를 자기가 만들고도 그리 오래 쓰진 못했던 모양이지만……
“정글이로 장작을 패고, 그걸로 밥해 먹다가 정글이를 불쏘시개로 쓰기도 하고, 귀엽다며 안고 자기도 하고. 하여간 그분은 정글이를 쇠 속에서 발견한(?) ‘자식’이며 같은 ‘인간’처럼 여겼던 것 같아. 딱히 ‘칼’로 생각하지도 않고, 그냥 우리 애가 자르는 것도 좀 하긴 하지… 정도였다고 할까?”
“후후~! 정말 유준 오라버니와 닮은 분이었네요.”
“아니, 난 그 정도는 아닌데… 음. 뭐, 약간은 인정.”
대교는 잠시 더 고운 미소를 보이며 정글이를 살짝 매만져 보기도 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오라버니도 잘 아시겠지만… 강호의 전설에는 이 정글도처럼 영혼을 가진 도검에 대한 이야기도 제법 있지요. 더구나 드물게는 칼을 차지한 자가 어떤 무공 수위. 아니, 설사 무공을 전혀 모르는 자가 손에 쥔다고 해도, 신물(神物)의 영험함이 그를 절세의 고수로 만들어 준다고 하였고요. 당연 히 그런 신물이 강호상에서 발견되기라도 하면, 그걸 차지하기 위한 피의 광풍이 불었기에 의식 있는 자들은 신물이 아니라 귀물(鬼物)이라 평했 다고 하죠.”
확실히 그것도 전형적인 무협지 패턴 중 하나이지.
“그래. 그리고 그런 전설은 대부분 칼이 주인의 정신을 지배하여 살인귀로 만들거나, 인간의 탐욕을 흡수하며 점점 더 강해진다거나…하는 얘기가 따라 붙지.”
“후후. 저도 이야기로 듣거나 책으로 읽었을 뿐, 실제로 본바가 없기에 그저 담화의 흥을 돋우는 얘깃거리로만 여겼었지요. 하지만 이제 보니… 정 말 이렇게 존재할 수가 있는 거였네요. 더구나… 전설과 달리 이렇게 착하고 충실한 성품이니, 정말 대견하고 마음이 든든해요.”
“후훗~ 역시 그렇지?”
대교는 이번엔 자신의 청명검을 보듬어 들며 당부하기 시작했다.
“청명・・・ 청명아. 너도 언젠가는 유준 오라버니의 정글이처럼 성장해주었으면 좋겠구나. 그래 넌 분명히 누구보다 총명하고 아름다운 검… 가장 사랑스런 소녀가 될 수 있을 거야. 그렇지..? 응?”
“들었지, 정글아. 조금만 기다려라. 네 짝지는 정말 멋진 최고의 소녀 검이 된다는구나. 아, 물론 너도 더 분발해야겠지? 응?”
…훗. 누가 보면 둘이 손잡고 하얀 방에 들어가야 할 커플로 보일지도 모르겠군. 적어도 이런 점은 패도광협 선배와 청명신니 커플을 능가할⋯ 음. 이건 별로 자랑할 게 못되려나? 아니, 아니 그보다, 이렇게 자꾸 패도 청명 커플과 우릴 비교하는 것 자체가 좀 그렇군. 처음에야 선배들의 경우가 부럽고 다 좋아 보였었지만, 사실 이제 우리도 그에 못지않은 무적의 커플로 거듭났지 않은가! 앞으로 좀 더 분발하여 역대 최고의 닭살 커플 자리는 우리가 차지해야………
“아, 그런데요.”
“응? 어, 왜?”
“아… 저기… 아, 아까… 오해하지 마시라고요.”
“…뭔 오해?”
“저기. 그러니까. 전 이, 이상한 거 본 게 아니고………….”
쯧. 오해를 하지 말라면서 너무나 오해할 만한 태도를 보이는군. 그렇게 목덜미까지 빨갛게 붉히고 더듬거리면 누가 봐도 수상하지이! “전, 그냥・・・ 너무 놀라서… 본 것 같다는 착각을……”
“훗. 너도 참. 봤으면 또 어떠냐, 인마.”
사실 좀 어떻기는 해. 하지만 얘가 이러니 나라도 좀 뻔뻔스러워질 필요가 있겠어.
“후후~ 천년 전엔 너무 당돌해서 오히려 날 놀라게 할 때도 있더니, 우째 요즘은 이렇게………….”
“아이 참. 그땐 그때고요. 지금은… 우움… 천년 전의 저는… 곡주의 여자로 세뇌되어 있을 때였잖아요.”
그야… 그랬지. 내가 대교에게 거의 유일한 불만이었던 것도 그런 점이었고.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비취각(翡翠閣)에서 받았던 교육까지 다른 사람의 일처럼 잊혀지고.. 아, 서, 설마!”
응? 얘, 갑자기 왜 옷매무새를 추스리며 몸을 움츠리고 그래?
“오라버니께선… 혹시… 그, 그때의 저를… 제 모습을 낱낱이 기억하시는 건…..”
…이거, 대교가 곡주 앞이라고 충성스럽게 훌렁 훌렁 눈부신 나신을 자랑하던(?) 때를 말하는 것 같군.
“어・・・ 그게, 그러니까, 난 너에 비해 그리 먼 일은 아닌 거……….”
대교 이 녀석, 잔득 울상을 하고 어쩔 줄 몰라 하네. 아니, 아예 눈물까지 글썽글썽.. 에고. 안되겠다.
“…같기는 해도! 핫핫! 너도 알다시피 난 기억력이 별로 안 좋잖아? 벌써 다 잊었어! 그래. 네 나체.. 아, 아니 하여간! 잊었다구!”
“거짓말…! 뭐든 다 기억하시는 분이면서… 히잉~ 어떻게~!”
에구구! 결국 울렸.. 아, 아니지. 내가 딱히 울렸다고 하기는 좀 억울하잖아, 이거!
“어, 야아~ 오늘 너도 나 봤잖아. 그럼 쌤쌤이지.”
“치이 못 봤다고 했잖아욧! 제가 누구처럼 거짓말쟁이인 줄 아세요?”
그럼 지금 다시 보여 줄게! …라고 할 뻔했네.
“어허. 이거야 원. 다 큰 처자가 뭐 이리 부끄럼이 많담? 까짓, 우린 곧 부부가 사이인… 으, 음? 어.. 뭐, 그런거잖아, 어차피.”
“모, 몰라욧!”
오우 젠장. 대교보고 뭐랄 것도 없구나. 나도 막상 부부라는 말을 내 입으로 하고 나니까. 으~ 왜 갑자기 이렇게 열에너지가 머리 쪽으로 몰려드 는 거냐…? 이거, 닭살 커플 지존의 자리를 노리려면 좀 더 용기(?)를 내야 그, 긍께・・・ 이럴 땐 내가 더 강하게 분위기를 주도해서 얼레리꼴레리 를…………
[주인니임!]
윽! 요몽, 이 녀석은 왜 또 이럴 때……………!
[…두 분의 담소, 프로젝트명 ‘알콩달콩’을 방해하여 죄송합니다.]
“됐다, 이놈아, 몽몽 흉내내지 말고 뭔 일인지나 얘기해.”
[웅~ 정말 전 방해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치만, 코드명・・・ 하여간 닥터 제이씨가 지금 저 앞에 와있는 걸요?]
에?
나는 흠칫 놀라서 요몽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고, 대교 역시 이제야 닥터 제이의 기척을 알아채는 것 같았다.
몽몽의 도청 방지 시스템 때문에 우리의 대화를 들었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거, 이거. 우리도 좀 너무했네. 닥터 제이가 저렇게 가까이 왔는데도 모르고 있었다니 말야.
나와 대교는 조금 민망한 표정이 되어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판 못지않게 허약 체질로 알고 있는 닥터 제이가 예상 밖으로 가벼운 걸음과 빠른 속도로 산길을 올라오고 있었다.
[몽몽 오빠의 스캔에도 닥터 제이 씨의 장비를 다 알 수는 없지만요. 지금은 옷 안에 보행 보조 장치를 장착하고 있는 것 같아요.]
과연 그래서 저렇게 힘들이지도 않고 올라오시는 거군. 옷 위로 거의 티가 안 날 정도면 무지하게 심플한 장비면서도 성능은 훌륭한 모양이네. “어・・・ 뭐야, 두 사람. 날 마중 나와 준 건가?”
당연히 그럴 리가 없지만……………
“뭐, 그냥… 음. 어쨌든 어찌 된 거죠? 벌써 어르신 장례가 끝났나요?”
“그건 아닐세. 난 본래 형식적인 장례에는 관심이 없었다네.”
닥터 제이는 우리 앞에서 걸음을 멈추며 말을 이었다.
“홍씨 부인, 광염의 아내가 오늘에야 장례식장에 도착했거든. 그녀는 광염이 가는 길을 보고 싶어 하지 않을 정도로 그를 증오했지만. 뭐, 어쨌든 그녀에게 전달할 건 다 전달했고 해서 돌아오는 거라네.”
아・・・ 굳이 자신이 직접 병원으로 가고 이제껏 있었던 건, 그런 이유 때문이었나? 어르신이 아내에게 전달할 뭔가를 부탁해서… 음?
닥터 제이가 올라 왔던 산길을 다른 묵직한(?) 그림자가 올라오고 있었다. 놀라지 않은 건, CR들 중의 한 명이 아까 닥터 제이 대신 광염 어르신의 유해를 들고 그의 뒤를 따라갔었다는 보고를 받은 바 있기 때문이었다.
“어멋?”
그림자, 아니 순박한 인상의 ‘소녀’가 우릴 알아보고는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으음.. 저 아이, 덩치는 BB형제나 비비안보다 약간 작을 뿐인⋯ 사실 꽤 큰 체구의 소녀이기는 한데… CR애들 중에서 가장 수줍음이 많고 여성적 인 성격의 소녀라지…? 비록 BB형제나 비비안처럼 강철화 된 피부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힘’ 하나 만큼은 BB형제조차 능가하여 CR 최 고의 천하장사 소녀라고 했어. 이름이 아마・・・ ‘로즈’. 그래 ‘로즈’였지?
천하장사 로즈는 닥터 제이의 눈치를 한 번 살피더니, 그가 웃으며 위쪽을 턱짓하자 그와 우리를 지나쳐서 먼저 대장간 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동 스피드는 비록 보통 사람 수준이지만… ‘힘’에 관한 한 그야말로 ‘힘의 여신’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아이라네. 아, 물론 자네들도 잘 알고 있겠지만 말이야.”
닥터 제이의 말을 들었는지, 로즈의 걸음이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는 다시 서둘러 달아나듯 멀어지고 있었다.
“저렇게 수줍음이 많은 성격도 여전하군.”
아, 그러고 보니 닥터 제이는 원판보다도 CR 애들의 탄생에 더 깊이 관련된 사람이었지, 참! CR애들이 자신들을 탄생시킨 연구소를 엄청 증오하 면서도, 그곳의 보스였던 닥터 제이를 미워하지 않는 건・・・・・・
“대부분 당신이 손을 써줬던 거라면서요?”
“아, CR들을 외부로 배치되게 했던 거 말인가? 뭐 그거야 당시의 나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 오히려 문제는 그 전에 아이들의 무한한 잠재력을 상부에서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정보 조작이었다네. 결과적으로 잘 해냈던 거긴 하지만…..”
닥터 제이는 문득 씁쓸한 표정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저 아이들과 모든 생체 실험의 희생자들에게 난 결국 부끄럽고 면목 없는 ‘창조주’… 아니 악마에 불과했다네. 그건 내가 앞으로 그 아이들에게 어떻게 사죄하고, 어떤 일을 해 주던… 결코 변할 수 없는 진실이지.”
닥터 제이의 고개가 위로 들려지며 밤하늘을 향했다.
“그런 의미에서… 난 광염, 그 양반이 진심으로 부럽다네. 그는 자신의 아이에게 끝내 창조주이자 아버지로서의 도리를 다했으니……”
…으음. 오늘 어째 아주 드물게 닥터 제이의 속내를 보게 된 것 같은데…………?
“하지만, 이런 넋두리도 아직 이른 것 같군. 우린 곧 그 아이들을 최후의 싸움에 동원해야 할 테니 말이야.”
어…? 지금 이 말은… CR애들이 최후의 싸움에 가장 큰 전력이 될 거라는… 말하자면, 내가 판타지아 섬에서 원판의 암호를 해독한 방향이 맞다 는 얘기?
“저기, 원판의 독자적인 작전까지는 잘 모른다고 하시긴 했지만, CR애들에 관한 사항은…………….”
“하운 군은 말이야.”
닥터 제이는 살짝 내 말을 끊고, 피식 웃었다.
“본래 내게도 많은 말을 해주지 않는다네. CR 아이들이 앞으로 어떤 역할을 맡게 될지도 내가 유추해 냈을 뿐, 한 번도 제대로 설명을 들은 적은 없었어. 다만, 지금 자네도 나와 비슷한 결론을 내린 상태라면… 그것이 하운 군의 진의일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고 봐야겠지.”
내~참. 다른 건 몰라도 이런 결정적인 일을…………
“이렇게 중요한 일까지도 서로 상의했던 게 아니었다고요?”
“그렇다네. 물론 나 역시 내가 아는 것을 하운 군에게 모두 알려준 건 아니었어. 예를 들어 하운 군은 자네에게 죽은 엘이 가짜였다는 사실을 모 르고 있을 걸? 흐후후~.”
닥터 제이의 자랑(?)은 날 더욱 어이없게 만들고 있었다.
“…댁들, 같은 편 맞아요?”
원판과 닥터 제이가 나에게 많은 걸 숨기는 것도 이해되는 측면이 많아. 하지만 설마 자기들끼리도 이렇게까지 소통이 되지 않고 있을 줄은…………
“어쩔 수 없지 않은가. 하운 군과 나는 그만큼 조심에 조심을 더해야 할 처지라네.”
“그거야 바람직한 보안 자세라고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일껏 지하에 숨어서 ‘안전 라인’을 구축한 건 닥터 제이잖아요. 그것도 믿을 수 없었던 겁니까?”
“물론… 내 나름대로 애써 안전한 정보 교환 라인을 만들어 놓았지. 하지만 세상에 ‘절대’란 없는 거라네. 상대가 프리메이슨의 사도들이라면 더더 욱 그렇지. 우린 둘 중의 한 명이 잘못되어 남은 사람이 혼자 일을 진행해야 할 때도 대비해야 했고, 우리의 비밀 소통을 사도들이 도청하고 있을 거 라는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어야 했다네.”
사도들을 피해 일을 진행하면서도 사도들이 알고 있을 것을 대비한 작전도 세우며, 그 작전마저 사도들이 알고 있을 경우를 대비해서 이중 삼중의 역 작전을 꾸밈과 동시에… 으~ 몰라! 싫다, 싫어, 이딴 거!
.젠장. 어쨌든, 그래서 지금까지 계속 같은 편끼리도 말을 아끼고 서로의 의중을 추측하면서 일을 진행해왔다는 건가요? 모든 일을?”
“뭐, 그런 거지.”
“적을 속이기 이전에 댁들이 헷갈리지는 않고요?”
“그럴 리가… 훗. 사실 나름 재미가 있으면서도 우리 역시 피곤하긴 해. 그래서 최근 자네와 몽몽이라는, ‘완전한 안전지대’가 확보 된 것을 다행으 로 생각한다네.”
“원판 녀석은 나하고 있을 때도 완전히 솔직하지는 않은 것 같던데요?”
“그야, 자네가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되면 자네의 행동에서 하운 군의, 아니 우리의 계획이 적에게 읽힐 수도 있을 테니…
“우쒸~! 여하간 결론은, 원판이나 닥터 제이나 계속 나에게 솔직하지 못할 거라는 얘기잖아요. 댁들에 비해 내가 너무 단순 무식이라서!”
“이런, 이런・・・ 자네가 단순무식이라니, 우린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네. 오히려 그 반대로 너무 감이 좋아서 이렇게 조심하고 있는 거 아니겠나. 다만…….”
“다만?”
“알아채는 ‘감’은 우리 수준 이상일 때도 많건만, 그 이후의 행동은 솔직히……………”
“솔직히?”
“음. 매우 심플하고 화끈하지. 음, 음. 그래. 사내답고 좋아.”
“…그냥. 본래하고 싶었던… 말씀을 더 솔직히, 하시지 그래요?”
“…난 성격 급한 커플이 내 앞에서 칼을 들고 있을 때는 몸을 사리는 편이라네.”
“후, 훗! 그러시군요.”
쳇. 좋다 이거야. 조만간 원판과 닥터 제이를 한 자리에 모이게 해서 나와 삼자대면을 하고 있는데도 이렇게 나오는지, 어디 한 번 보겠쓰~!
“그나저나・・・ 진도는 어느 정도 나간 건지 물어도 되겠나?”
“예?”
“몽몽 군이 우리의 히든카드에 날개를 달아 주는 일말일세.”
음. CR애들의 불완전성을 보완하는 연구 말이로군.
“어・・・ 그게, 몽몽도 ‘소요 시간 추정’조차 어려운 일이라고 한 거라서………….”
자신 없는 대답을 해야 하는 것이 좀 불쾌했지만, 정작 닥터 제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한 다는 표정이었다.
“그래. 아무리 몽몽 군이라도 단기간에는 어려운 일이겠지. 나를 비롯하여 세계에서 엄선된 천재 과학자들이 수십 년에 걸친 연구로도 불가능했던 일이었으니… 아, 그래. 몽몽 군에게 진행 상황을 좀 알려달라고 해주겠나? 내가 큰 도움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음? 그러고 보니 몽몽의 유일한 약점이 ‘창의성’이라는 건 몽몽 스스로 인정한 거니까, 그런 점은 닥터 제이가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그건, 곤란할 거 같은데요?]
요몽 녀석, 닥터 제이에게도 인식되는 모드로 나오는군.
“요몽. 넌 끼어들지 마.”
[에이~ 넘 그러지 마세요, 주인님. 조금 전에 몽몽 오빠가 저에게 모든 일을 맡기고 떠났단 말예요.]
“뭐? 그건 또 뭔 소리야?”
[몽몽 오빠가요. 방금 얘기 나온 그 연구, 그거에 거의 모든 시스템 자원을 집중한다고 했어요. 그래서 주인님 보조는 전부 저에게 일임한다고… 주인님께도 그렇게 전해달라고 했어요.]
어…? 그런 거야 말릴 이유가 없는 일이지만, 몽몽이 나에게 직접 보고를 하지도 않고 그냥 멋대로 짱 박혔다는 건 으음. 뭐지?
[후웅~ 제가 보기엔요, 몽몽 오빤 지금 좀 삐쳤어요.]
“뭐?”
[몽몽 오빠도 알고 보니 질투가 보통이 아니라는…………….]
요몽은 말하다 말고 두리번거리고 주위을 살핀다. 내가 보기에도 이쯤에서 몽몽이 출동하여 요몽을 체포해 갈 만한 타이밍이었지만, 어째 몽몽은 전혀 나타날 기미가 없었다.
[우웅 봐요. 이번엔 정말 보통 각오가 아니라깐요.]
“……그러니까, 그게 왜 그러냐고.”
[정글도・・・ 정글이에게 선수를 빼앗겼잖아요.]
에?
[몽몽 오빤 그동안 주인님의 단전 회복을 위해서 많이 연구하고 그랬는데, 결국 해결책은 엉뚱한 곳에서 나왔으니………….]
뭐…시여. 그러고 보니 정글이의 강력한 염 에너지를 보고 할 때부터 좀 기운 없는 목소리였던 것 같기도 하네?
[몽몽 오빤요, 그동안 나름 자부심이 컸다고요. 주인님의 중요한 문제는 모두 자신이 해결할 수 있다고 말예요. 그래서 이번엔 주인님 뵐 면목도 없 다고 했어요.]
…몽몽. 고 녀석도 참…! 그래서 머리 질끈 싸매고 산 속(?)으로 들어갔다는 건가? 현재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반드시 자기가 해결해서 명예 회복을 (?)하겠다고?
“…훗. 그럼 그거 해결할 때까진 나오지 않겠데?”
[예. 그 덕에 당분간 주인님 보조 체계의 짱은 저 요몽 되겠습니당!]
“뭐, 썩 믿음은 안 간다만. 하여간 잘 부탁해.”
[피이~ 넘 하세욧! 저두 할 땐 확실히 하는 요정이라구욧!]
“그래. 알았다, 알았어.”
나는 닥터 제이를 돌아보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들으셨죠?”
“들었네.”
“역시나 당분간 하실 일이 별로 없으실 것 같네요.”
“그렇다면……….”
“본래 예정대로, 우리 가게나 좀 부탁해요.”
“…음.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된다면 기꺼이 명령에 따르지. 아, 물론 일당을 달라는 얘긴 아닐세.”
“명령에 따른다는 분이 뭔 조건을…….”
“첫째, 난 하루에 적어도 한 끼의 메뉴는 럭셔리한 라면을 원하네.”
에?
“자네가 직접 끓여야 해. 자네 집안은 전통적으로 남자가 끓인 라면이 더 맛있어. 백합과의 여러해살이 풀… ‘파’ 송송은 기본이겠지?” “그거야 뭐, 어려울 건 없지만…”
“달걀은 두 개. 하나는 흐트러트려서 국물과의 조화로운 퓨전을, 하나는 노른자의 형태 보존을 원하네.”
“그, 그런 금단의 옵션을………….”
“둘째, 난 역시 다른 복장은 싫어. 유니폼 자율화를 원하네.”
“…쳇. 맘대로 하세요.”
“셋째, 카운터에 기업용 인터넷 라인과 시중에서 구입 가능한 최고 사양의 조촐한 PC만이라도.
“됐구요! 그냥 하실 거예요, 말 거예요?”
“냉정한 고용주로군. 세계적 두뇌들의 지휘자였던 자를 고용하면서 심심풀이 장난감도 제공하지 않겠다니… 으음. 알겠네. 그냥 진씨 집안의 라면 으로 만족하기로 하지. OK?”
“…OK.”
쯧. 대교하고 놀러(?) 나갈 때마다 경호 요원들에게 가게 맡기기 뭐해서 부탁하는 거지만, 과연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네.
다음 날, 아침 8시쯤.
나는 드르륵~ 우리 가게 셔터를 올렸고, 닥터 제이는 가게 안을 천천히 살피며 알 수 없는 불길한(?) 미소를 띄웠다.
으음. 이 양반, 어쩐지 좀 불안하긴 한데 그래도 할 수 없지.
지난 밤, 대장간을 떠나 집으로 복귀하는 동안에도 나는 계속 운전을 했고, 닥터 제이는 뒷좌석에서 느긋하게 주무셨기에 별로 피곤한 기색이 없었 다. 물론 그렇지 않더라도 무조건 가게를 맡길 생각이었지만 말이다.
“가격은 제품에 찍힌 소비자 가격에………….”
“설명은 필요 없네. 그동안 자네의 주변 모든 정보가 체크되어 하운 군과 나에게 보고 되었다는 사실을 잊었나. 난 이 가게 모든 제품의 마진율까지 도 낱낱이 알고 있다네.”
“에? 그딴 것까지 알아서 어따 쓰려고 그랬대요?”
“후후~ 정보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언젠가 쓸모가 있기 마련이라네. 오늘만 해도 이렇게 잘 써먹을 수 있게 되었잖은가.”
“그야 뭐………….”
“조금 전, 진유준표 라면… 잘 먹었네. 오랜만에 즐거운 식사였어.”
사실 어느 정도는 장난으로 한 소린 줄 알았었다. 하지만 닥터 제이는 아침부터 라면을 찾더니, 내가 끓인 라면을 정말 거나하게 많이도 드시는 통 에 나와 대교는 추가로 끊여서 먹어야 했을 정도였다.
하긴, 나도 군대에서처럼 오래 라면을 끊었다가 간만에 먹게 되면 환장하게(?) 맛있긴 했었지.
“음… 그럼, 전… ‘믿고 갈게요.”
“그래. ‘믿고 가게나.”
난 잘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가게를 나왔고, 문 앞에서 기다리던 대교가 쿡, 웃었다.
“오라버니도 참..! 그렇게 불안하시면 그냥 적당한 수하에게 맡기지 그러셨어요.”
“그게 말이지.”
난 키트 1.5호에 타고 시동을 건 다음에 말을 이었다.
“난 이렇게라도 저 양반이 일상적인 세계로… 우리 가족들과 다시 접하기 시작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물론, 우리가 프리메이슨과의 싸움을 끝내 고 나서도 저 양반이 평범한 인생을 살 것 같지는 않지만………….”
“아……!”
대교는 비로소 닥터 제이가 나의 이모부라는 사실을 상기한 것 같았다.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 그런 것도 모르고…….”
“아니, 아니, 대교 네가 뭐 잘못한 것처럼 그럴 필요 없어. 나도 이러는 게 사실 의미가 있는 건지는 몰라. 그냥・・・ 오래도록 남처럼 살았던 이모부가 우리 가게도 봐주고 그런 얘기를 나중에 어머니께 하고 싶기도 하고, 하은이에게도 들려주고 싶고………….”
그래. 하은이! 지금은 그 녀석이 가장 큰 문제다. 이모부가 우리 집안에 다시 식구로 받아들여지는 것보다, 하은이의 아빠로 돌아가는 것이 더 어 려울지도 모른다.
으음~ 어쨌든! 솔직히 지금은 당장 내가 아쉬우니까 이러는 거지, 뭐.”
난 차를 출발시켰고, 목적지는….
“요몽. 좀 찾아봤냐?”
[넵! 서울 근교의 인적 없고 넓어서 주인님께서 별 짓을 다해도 될 만한… 아, 죄송. ‘주인님과 정글이의 합체 변신 특훈’ 장소를 수배해 놨습니당!] 이 녀석, 죄송이란 말 다음에도 보고 수준이 별로 변하지 않는군. 벌써부터 몽몽이 그립기도 하지만…
“좋아. 안내해.”
[옛썰~!]
며칠 후.
흐음. 이거 참………..
난 닥터 제이가 알아서 셔터를 올리고 가게에 들어가는 뒷모습을 보며,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키트 1.5의 시동을 걸었다. 밝은 얼굴로 옆에 앉아 있던 대교가 입을 열었다.
“닥터 제이께서 생각보다 너무 잘해 주시는 것 같아요.”
“글쎄 말야. 난 혹시 강마에 식으로 할까 봐 걱정했는데 말이지.”
“예? 아… 그 인기 드라마 속의 남자요? 후후~ 그러고 보니 외모만으로는 일견 그런 인상을 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불과 며칠 사이에 단골 아 주머니들이 너무나 좋아하세요. 너무나 근사하고 친절한 분이라고요.”
거참 너무 잘해 줘도 괜히 불안할 것까지는 없겠지만, 하여간 뜻밖이긴 하네.
사실 닥터 제이는 하은이와 우리 일당들(?)한테나 항상 유들유들한 모습을 보이는 거지, 프리메이슨에 근무(?)할 때는 엄청난 카리스마와 칼처럼 냉철하고 도도한 남자로 유명했다고 한다.
그래서… 어려 보이는 손님이 담배나 술을 찾는다거나 할 때는 물론이고, 냉장고를 열어 놓고 음료수를 오래 고른다거나하는 경미한(?) 잘못을 한 손님에게도 대뜸 ‘이런 응가덩어리!’라고 일갈할 것만 같았어. …뭐, 아님 된 거지만…………
난 비교적 안심하며 ‘훈련장’으로 출발했다. 요 며칠 계속 야외에서 정글이와 호흡을 맞춰 오고 있었지만, 같은 장소에서의 훈련은 오늘이 마지막 이었다. 내일부터는 집에 멀지 않은 내 전용 체육관을 이용할 예정이었다.
지난 번 에레보스 암살단의 시그마 일행에게 습격 받았을 때, 우린 옆 동네의 학교 예정지의 체육관을 싸움장소로 이용했었지. 그 이후, 자룡대주 는 학교 부지와 체육관을 통째로 매입해버린 다음에 체육관 내부를 내가 무공 수련하기 좋게 개조해 왔지. 내가 그런 일로 너무 재정 낭비하지 말라 고 했더니, 나중에 내가 쓰지 않게 되기라도 하면, 많은 차익을 남기고 되팔 자신이 있다나…? 하여간 대단한 아가씨야.
[・・・주인님.]
“왜. 요몽.”
[아무래도 조금 전・・・ 서울에 도착한 거 같아요.]
“누가 인마.”
[조담놈 씨요.]
이런. 우리 원룸촌 멤버들 중에 가장 먼저 복귀하는 건 그 녀석인가?
[우후~ 확인되고 있는 행적이 정말 재밌네요. 정말 고생 많이 하면서 돌아오고 있는 모양이에요.]
“음… 자세한 건 좀 있다가 듣기로 하고, 우선 닥터 제이에게 연락해 줘. 그 녀석이 집에 도착하는 대로 우리 훈련장으로 보내라고 말야.” [넵!]
조담놈 녀석, 녀석답지 않게 타이밍 잘 맞췄네. 안 그래도 슬슬 스파링(?) 상대가 필요하다고 생각 중이었는데 말야.
얼마 후.
우리의 키트 1.5호는 요 며칠 계속 나의 훈련장이 되어주었던 야산 앞에 도착했다. 포장 도로에서 비포장으로 바뀐 후에 그리 깊이 들어가는 게 아 닌데도 상당히 외진 분위기였다. 나는 3분의 1쯤 깎여 있는 야산 앞의 공터에 서서 가볍게 손발을 털며(?) 몸을 풀기 시작했다.
누군가 공장 같은 걸 지으려고 터를 닦다가 말았던 모양이고. 그래서 지금 이 공터의 여기저기 커다랗게 파이고 부서진 흔적들은 중장비가 동원 된 상황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훗. 하긴, 때로 중장비가 되기도 하지, 나의 정글도는.
나는 어제 마지막으로 생긴 중장비(?) 흔적, 폭호결(暴虎訣)을 시전했던 지점 앞에 서서 잠시 신중하게 살펴보았다.
흠… 역시 흔적에서도 약간의 티가 나는군. 아주 약간이긴 해도 초식의 연결 타이밍이 늦었었다는 증거! 그렇지 않았다면 이쪽 흔적의 끝과 다음 으로 연결되는 부분의 흙이 덮인 패턴이 달랐을 텐데. 뭐, 하여간 다른 결에 비해서 매끄럽지가 않은 건 분명해.
본래 폭호결은 주로 방어형, 혹은 다수 적의 기세 제압용 초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산의 지배자인 호랑이가 무섭게 포효하는 소리는 공격신호가 아 니라 경고, 혹은 위협의 의미가 강하듯 말이다.
그래서 폭호결은 다른 도결보다 오히려 한 타이밍 빨리 펼쳐져야 하는데 정글이가 아직 이점을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사실, 이 녀석이 몸(?)에 익은 생사금마도결(生死金魔刀)을 이렇게까지 완벽에 가깝게 따라하는 것도 참 기특한 거지만…
난 습관적으로 정글도를 빙글빙글 돌리며 나와 정글도 위의 허공에 서 있는(?) 소년 정글이를 보았다. 녀석이 조금 전의 나를 따라서 몸 푸는 시늉 을 계속하고 있는 모습은 나름 귀여웠다.
“…인마. 오늘은 나보다 여기, 예쁜 대교 누님(?)과 먼저 수업을 해야 해.”
난 정글도를 대교에게 넘겼고, 대교는 녀석을 들고 나와 조금 떨어진 곳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멋?”
대교가 약간 당혹한 소리를 내고 쓴웃음을 지은 건, 정글도가 대교의 손에서 빠져나와 재빨리 나에게 돌아와버렸기 때문이었다.
“어허~ 이 녀석, 또 까먹었냐? 대교는 괜찮테두? 내가 계속 알려줬잖.. 아니, 넌 눈치도 없니? 척 보면 몰라?”
내가 다시 잘 타이르며(?) 다시 대교에게 넘기자, 정글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다시 대교를 거부하지는 않았다. 대교는 다소 섭섭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더 기특해 했다.
“오라버니에 대한 충심이 갸륵하여 좋구나. 그리고 네가 날 아주 잊지는 않은 것 같아서 다행이야.”
확실히 정글이가 대교에게만큼은 상당히 다르긴 하다. 방금도 대교에게서는 그냥 빠져 나오기만 했을 뿐이지만, 며칠 전 시험 삼아 정글도를 수하 들에게 건네줘 봤을 때는 반응이 장난이 아니었었다.
“꺅!”
호기심에 받아들던 자룡대주는 손에 불똥이 떨어지기라도 한 듯 화들짝 놀라서 제대로 쥐어 보지도 못했다.
“아앗!”
은사마군 역시 곧바로 손잡이를 놓았음에도 손바닥에 약간의 화상을 입은 모양이었다.
“으왓! 뭐, 뭐야! 이 자식이~!”
천음마군은 고집스럽게 몇 초간 쥐고 버티다가 까닥했으면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빠질 뻔 했을 정도로 타격을 받았다.
그게 엄청난 열기가 피부는 물론이고, 손의 혈도를 타고 올라오더라나? 정글이가 자아를 가지게 되면서 꽤 까칠 아니, 그냥 낯을 가리는 건 지도 모르지만, 하여간 그랬는데 대교만은 처음부터 그렇게 심하게 거부하지 않았었지.
녀석과 내가 처음 만날 때부터 대교 역시 옆에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건지, 아니면 나에게는 대교도 ‘염의 소통’이 이루어질 정도로 가까 운 사이라는 걸 인식하는 건지도 모른다. 어쨌든 정글이의 까칠 폐쇄성이 대교에게만 적용되지 않는 건 다행이었다.
뭐 아무리 대교라도 자신의 심법, 원앙해비(鴛鴦偕飛)를 정글이에게 어떻게 가르칠지는 난감한 모양이지만… 어떻게든 시도해본다고 했으 4……
나는 대교가 정글도를 들고 일단 자리에 앉는 걸 보았다. 아무래도 다독거리며 친해지는 것부터 시작하려는 것 같았다.
“요몽. 이제 조담놈 얘기 좀 들어보자.”
[넵! 조담놈 씨는, 그러니까…….]
윽!
갑자기 전방의 허공에 극장 스크린 크기의 커다란 세계지도 영상이 떠올랐다.
[오홍홍~ 전 몽몽 오빠보다 스케일이 크답니다.]
“오히려 부담스럽… 아, 아니 됐다. 그냥 해.”
요몽은 호릉~ 날아서 미국 남부 해변의 한 지점, 우리가 조담놈을 떨구었던 바다 위의 한 지점을 손으로 짚었다.
[아 글쎄! 여기, 여기 처음부터 조담놈 씨는 미련 맞게 헤엄을 쳐서 주인님을 따라 오기 시작했던 모양이에요.]
요몽은 약간 더 한국 쪽 방향의 바다 위를 짚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아주 바보는 아닌지… 지나던 요트가 조담놈 씨에게 강탈된 것이 이 지점쯤이래요. 대략 50~60KM 정도는 헤엄쳤었네요. 어쨌든, 구명조 끼만 겨우 입고 바다에 버려졌던 요트 주인이 어찌어찌 구조된 다음에 신고를 하고… 범인의 몽타주가 경찰 망에 뜬 것이 오늘 새벽이라서 그때서 야 저희들도 알게 된 거죠. 아, 물론 조담놈 씨는 계속 변장 중이라서 몽타주만으로는 주인님과 조금(?) 닮은 남자라는 티가 안 나네요.]
흐음. 헤엄만 쳐서 오려고 했던 것보다는 나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하필 무동력 요트라니………
[그 다음… 여기하고 요기쯤을 정기적으로 찍는 위성에서 문제의 요트 사진을 확인했는데요. 훗. 이동 경로에 문제가 많죠?]
그럴 줄 알았다. 하루 정도는 엄한 방향으로 표류에 가까운 상태로 갔었군.
[결국 요트를 버리고… 여기 이 지점에서 화물선에 오를 때까지의 수십 킬로를 또 헤엄쳐 간 걸로 추정되고요. 아, 근데 이 화물선도 방향이 틀려서 결국 선장실 점거…! 네… 그 후로는 요기, 이쯤까지 그럭저럭 오다가 이 해역의 군대가 출동하는 바람에 탈출해서 다시 얼마간 또 수영… 그리고 또………….]
내~ 참. 그냥 첨에 뒤로 좀 빽해서 우리가 출발했던 공항에서 비행기 타고 오면 되는 걸, 뭐 하러 저렇게 생쇼를 하면서 온 건지 모르겠네. 그 녀석, 그거… 혹시 저러는 것도 수련의 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그리하여… 조담놈 씨가 인천항에 상륙한 건 오늘 아침 7시경인 것 같아요. 상륙 전에 한국 해상에서 불법 조업 중이던 중국어선 몇 척을 침몰 시킨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건 아직 확인 중이고요. 어쨌든… 상륙하자마자 이번엔 오토바이 절도와 주유소 요금 떼먹기를 저질렀군요. 이건 지금 지하무림 사람들이 피해자들을 만나서 처리해 주고 있으니까 국내에서 수배자가 되진 않겠네요.]
그 녀석, 전에는 돈이 좀 있는 것 같더니만 이제 다 떨어진 모양이군. 계속 날 따라다니려면 범죄를 저지르지 말라는 조건을 추가해야겠어. 말을 들 어먹을지는 모르겠지만…………
[・・・ 약 30분 10초 전에 주인님 댁에 도착했다가, 지금은 이쪽으로. 아, 거의 다 왔네요. 저 아래서 막 자룡대주와 아, 만나자마자 무지 혼나기 시 작하네요?]
아, 자룡대주가 있었지?
[왜 자꾸 멋대로 다니며 말썽을 피느냐고… 흐음. 바다에서 일어난 일은 별로 언급하지 않으면서, 인천에서 오토바이 훔친 건 집중적으로 비난을… 어, 앞으로는 자룡대주가 ‘용돈’을 줄 테니 눈에 띄는 짓 좀 하지 말라고………….]
“훗. 그래. 그래서 조담놈은 뭐래?”
[그냥, 풀이 죽어서 알았다고만 하는데요?]
“핫하핫!”
[아! 자룡대주가 이쪽을 알려주자, 갑자기 맹렬하게 경공을 쓰기 시작해요! 4분.. 아니, 그 전에 도착할 것 같아요.]
“대교!”
내가 손을 내밀자, 대교는 즉시 정글도를 내게 던져주었다.
“아쉽게도 아리따운 누님과의 과외는 잠시 중지. 이제 특별 수업…..!”
정글이는 내 말보다도, 직접 뭔가 감을 잡은 건지, 벌써 조담놈이 달려오고 있는 방향을 주목하고 있었다.
“그래. 정글아. 우리와 거의 맞먹는 짝퉁과의 실전형 스파링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