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1권 – 20화 : 종횡무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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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왕전생 1권 – 20화 : 종횡무진(1)


종횡무진(1)

‘진시까지 앞으로 네 시진 정도. 속도를 끌어 올리려면 이 방법밖에 없어.’

완성된 밑그림을 바라보며 설우진이 바늘에 실을 꿰었다. 그리고 단전에 잠들어 있던 뇌정 을 슬며시 깨웠다. 뇌기를 이용해 호무보의 속도를 끌어올린 것처럼 뇌기를 손끝에 모아 작업시간을 단축하겠다는 심산이었다.

허황된 발상 같지만 당사자인 설우진의 표정 은 무척 진지했다.

잠시 후, 뇌기가 혈도를 타고 손끝으로 흘러 들어 갔다.

미세하게 움직이는 뇌기의 흐름을 느끼며 설 우진은 바늘을 조심스럽게 잠의 아래로 가져갔 다.

그런데 바늘을 잠의에 찔러 넣기도 전에 우려 했던 사태가 벌어졌다. 바늘 코에 걸려 있던 실 이 뇌기의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순식간에 재 가 돼 버린 것이다.

“역시, 쉽지가 않네. 하긴 천지간의 가장 강맹 한 기운이라는 뇌기니까………….”

설우진은 바늘 코에 남아 있는 그을린 실의 잔해를 보며 살짝 이맛살을 찌푸렸다.

뇌기는 그 특성상 오행기처럼 세밀하게 다루 기가 어려웠다. 쉬운 예로, 전답의 좁은 수로 안으로 격랑이 친다고 가정을 해 보자. 물은 사 방으로 튀어 오르고 수로는 격랑의 세기를 견 디지 못하고 균열을 일으킬 것이다.

이처럼 뇌기는 양날의 검과 같은 특성을 지니고 있다.

잘 다루면 세상의 그 어떤 기운보다 강한 힘 을 발휘할 수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는 되레 몸이 크게 상할 수 있었다. 그래서 유구한 강호 의 역사 속에서도 뇌기를 다룰 줄 아는 무인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설우진은 다시 벽뢰진천을 운기하며 뇌기를 손끝으로 모았다. 이번에는 그 양을 의식적으 로 전보다 더 줄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실이 타 버렸다.

“빌어먹을, 뭔 놈의 내공이 이렇게 다루기가 힘들어. 이건 숫제 구파의 비전심법을 익히는 것 같잖아.’

계속되는 실패에 설우진은 속에서 울화가 치밀었다.

벽뢰진천은 강호사에서 마공으로 분류되어 있다. 그래서 비동에서 벽뢰진천을 얻었을 때 속성으로 익힐 수 있을 거라 자신했었다.

한데, 그 자신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벽뢰진천의 일단공인 축뢰까지는 벽력신마가 남긴 뇌정을 통해 어렵지 않게 돌파할 수 있었지만 다음 단계인 제뢰에서 성장세가 멈춰 버렸다.

제뢰는 뇌기를 몸의 일부처럼 만드는 일종의 숙련 단계로, 이를 거쳐야만 뇌기를 기반으로 다양한 무공을 구사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반발력이 강한 뇌기를 움직이는 건 쉬 운 일이 아니었다. 조금만 방심해도 기운이 흩 어지는 건 기본이요, 심한 경우 되레 뇌기가 엉 뚱한 곳으로 흘러가 내상을 입기도 했다.

“정신 차리자, 설우진! 이 정도 시련은 예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설우진은 마음을 다잡고 다시 바늘을 들었다. 그리고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손목을 타고 들어오는 뇌기를 엄지와 검지에 서서히 응축시 켰다. 실이 타지 않도록 뇌기의 움직임을 제한 한 것이다.

잠시 후, 잠의 위로 오랫동안 침묵하고 있던 바늘이 그 자태를 뽐냈다. 다행히 바늘 코에 걸 린 실은 멀쩡했다.

슥슥 슥슥슥.

잠의 위로 실을 매단 바늘이 한 마리 잉어처 럼 빠르게 유영했다. 그리고 잠의에 물결이 칠 때, 봉황의 깃털이 생생하게 일어났다.

그 와중에 설우진은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동시에 두 가지 일에 집중하면서 생겨난 뜻하 지 않은 효과였다. 무아지경 속에서 벽뢰진천 의 제뢰는 빠르게 성장해 갔다. 처음에는 양을 조절하는 데 그쳤다면 그 이후에는 정련된 뇌 기를 외부로 발출해 유형화시키기까지 했다. 유형화된 뇌기는 봉황의 날개에 빛을 더했다. 실에 뇌기를 입혀 반짝이는 효과를 연출한 것 이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설우진은 그 변화 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저, 정말 가져왔네.”

화무연에 참석하기 위해 바쁘게 꽃단장을 하 고 있던 모용설은 봉황 잠의를 품에 안고 찾아 온 설우진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그녀는 지난밤에 화무연에 입고 나갈 옷을 급 하게 구했다. 구매처는 암상이었다.

전국을 무대로 활동하는 암상은 세간에 불법 적인 물건만 취급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들이 취급하는 품목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특히, 여성들이 선호하는 노리개와 잠의는 전 국 각처에서 수집된 것들로 그 질이 상당했다. 하지만 문제는 가격이었다. 암상에서 파는 물 건들은 기본적으로 비쌌다. 두 배 비싼 건 양호 한 수준이고 심한 경우에는 열 배까지 값이 뛰 기도 했다.

모용설이 지난밤에 구매한 칠보 봉황 잠의는 무려 금전 열 냥짜리 옷이었다. 화무연에 참석 하기 위해 챙겨 온 여비가 바닥이 날 정도로 큰 지출이었다.

물론, 비싼 만큼 옷은 그녀의 마음에 쏙 들었다.

“미안해서 어쩌지, 일정이 급해서 옷을 구매 해 버렸는데………….”

난감한 표정으로 모용설이 말꼬리를 흐렸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을 이미 예상했다는 듯 설 우진은 실망하는 기색 하나 없이 조용히 봉황 잠의를 앞으로 내밀었다.

“먼저 약속을 어긴 건 저희 쪽이니 이 옷은 그냥 드릴게요.”

“이러지 않아도 되는데.”

“저희 부모님께서 꼭 갖다 드리라고 했어요.” 

설우진이 강경한 태도를 취했다. 봉황 잠의를 받지 않으면 방에서 나가지 않을 기세였다. 모 용설은 어쩔 수 없이 봉황 잠의를 건네받았다. 그때까지도 그녀는 봉황 잠의에 대해서 별다 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 이미 맘에 드는 옷을 손 에 넣은 데다 하룻밤 새 제대로 된 봉황 잠의를 완성하기는 불가능하다 여긴 것이다.

그런데 그 생각은 무심결에 봉황 잠의를 펼쳐 본 후 완전히 사라졌다.

‘보, 봉황의 날개가 빛나고 있어. 보석을 박아 넣은 것도 아닌데 어쩜 이런 조화가! 내가 여태 껏 봐 온 봉황들 중 가장 아름답고 신비로워.’ 

모용설 봉황 잠의에 완전히 매료됐다.

아침에 입으려고 벽에 걸어 뒀던 칠보 봉황

잠의의 존재는 이미 머릿속에서 사라진지 오래였다.

“이거 입어 봐도 될까?”

모용설이 간절한 표정으로 설우진을 바라봤다.

이에 설우진은 씩 웃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 순간 뜻하지 않은 문제가 발생했

다. 마음이 급했던 나머지 모용설이 그 자리에 서 옷을 갈아입기 시작한 것이다.

옷이 한 꺼풀 한 꺼풀 벗겨졌다.

어릴 때부터 무공을 익혀서 그런지 그녀의 몸 은 옅은 구릿빛에 탄력이 넘쳤다. 그리고 무엇 보다 가슴 가리개에 살짝 가려진 가슴의 굴곡 이 제법 깊었다.

꿀꺽.

설우진은 그 모습을 빤히 쳐다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보통의 아이라면 민망함에 고개를 돌렸을 법 도 하건만 그의 눈은 오히려 초롱초롱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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