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1권 – 22화 : 종횡무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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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왕전생 1권 – 22화 : 종횡무진(3)


종횡무진(3)

“우리는 참 호흡이 잘 맞는 것 같네. 처음에 자네를 봤을 때만 해도 머리보다 주먹이 앞서 걱정이 많았는데………….”

“크흠.”

“앞으로도 우리 잘해 보세. 자네의 그 몸, 앞으로도 요긴하게 쓰일 거야.”

‘저게 말이야, 방구야.’

막철의 눈에서 불길이 솟구쳤다. 이성이 마비되어 가는 전조였다.

“이, 개…….”

결국, 막철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당장에라도 고간의 얼굴을 후려칠 기세였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방해꾼이 등장했다.

쾅!

화끈하게 문을 부수고 들어온 이는 복면을 쓴 의문의 사내였다. 과격한 등장과는 어울리지 않게 전체적으로 몸이 호리호리하고, 키도 주 변을 둘러싼 풍야패 식구들보다 머리 하나 정 도가 더 작았다.

“웬 놈이냐?”

문 쪽에 앉아 있던 행동대장 감영이 사나운 얼굴로 사내의 앞길을 가로막고 섰다.

그는 풍야패 이전에 시전을 장악하고 있던 작 은 주먹패의 두목이었다. 따로 무공을 배운 적 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뒷골목 싸움으로 다져진 실력은 잠시나마 호걸륜을 위기에 몰아 넣을 정도로 대단했다.

그리고 또 하나, 성질이 더럽게 급했다.

“이 새끼가 귓구멍이 막혔나! 내가 지금 누구 냐고 묻고 있잖아.”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감영이 거친 욕설과 함께 주먹을 내뻗었다. 뒷골목 싸움으로 다져 진 그의 주먹은 차돌처럼 단단했다.

하지만 오늘은 상대가 나빴다.

복면인은 감영의 주먹을 가볍게 받아 내더니, “비켜.”라는 퉁명스러운 한마디와 함께 손목을 가볍게 비틀어 감영을 내동댕이쳤다.

“크아악.”

독종으로 알려진 그의 입에서 찢어지는 비명 이 새어 나왔다. 짧은 순간에 큰 힘이 가해졌는 지 그의 오른쪽 손목은 눈에 훤히 들어올 정도 로 뒤틀려 있었다.

짧은 순간, 방 안에 정적이 흘렀다.

풍야패의 그 누구도 감영이 이리 쉽게 당할거라고 생각지 못한 것이다.

“이것들아, 뭘 멀뚱히 쳐다보고 있어. 혼자서 힘들면 한꺼번에 조져.”

막철이 수하들에게 소리쳤다.

이에 복면인을 둘러싸고 있던 풍야패의 식구들이 일제히 주먹을 움켜쥐고 달려들었다.

그런데, 복면인에게 다가가는 순간.

하나둘 게거품을 물며 쓰러졌다. 고통이 심한지 다들 몸을 바르르 떨었다.

“도, 독이다.”

한쪽에서 두려움에 찬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뭐지, 이 익숙한 장면은?’

막철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묘한 기분에 휩싸 였다. 그리고 이내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의 이 상황이 며칠 전에도 똑같이 반복됐음을.

“다들 놈의 사술에 현혹되지 마. 독처럼 보이 지만 독이 아니다. 연장 챙겨 들고 거리를 유지 하면서 놈의 빈틈을 노려. 제 놈도 사람인 이상 결국엔 지칠 수밖에 없다.”

막철이 동요하는 식구들을 진정시키며 전면 에 나섰다.

그의 손에는 언제 뽑아들었는지 잔뜩 날이 선 소태도가 들려 있었다. 그 소태도는 설우진에 게 된통 당한 뒤, 복수를 위해 거금을 주고 마련한 동영의 물건이었다.

‘저 자식이 또 천지 분간 못하고 날뛰네.’

복면인, 아니 설우진은 살기등등한 모습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막철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지난번에도 꼬리에 불붙은 멧돼지처럼 무식 하게 달려들더니 이번에도 칼만 바뀌었지 그때 의 재판이었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면 너랑 놀아 주겠지만 지금은 한시가 급한 상황이니 단번에 잠재워 주마.’

설우진은 이곳으로 오는 동안 한껏 예열된 뇌 기를 주먹으로 흘려 보냈다. 가느다란 뇌기가 손끝을 타고 피어올라 주먹 전체를 휘감았다. 팟.

설우진의 신형이 허공을 갈랐다.

그 거친 발놀림에 디딤돌 신세로 전락한 상다 리가 요란하게 부러졌다.

“어, 어!”

막상 설우진이 공격을 해 오자, 막철은 처음 의 기세와 달리 주춤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뽑아 든 소태도가 부끄럽게 여겨질 정도였다.

‘이런 쓰벌, 왜 몸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거야. 저딴 애새끼가 뭐가 무서워서.’

막철은 스스로를 욕하며 애써 소태도를 휘둘렀다.

기세가 밀린 상황에서 억지로 한 공격이라 칼 끝에는 제대로 힘이 실려 있지 않았다. 설우진 은 그 빈틈을 놓치지 않고, 뇌기를 머금은 주먹 을 그대로 소태도를 향해 내질렀다.

땡강.

소태도가 주먹에 맞아 그대로 동강이 났다. 막철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그것을 멍하니 바라봤고, 소태도를 동강 낸 주먹이 그대로 그 의 안면에 내리꽂혔다.

“커억.”

코가 뭉개지고, 코피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설우진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더 이상 귀찮은 일이 없게 본보기를 보이려는 듯 연이어 맹타를 날렸다. 막철은 흉측하게 일그 러진 얼굴로 살려 달라 애원했지만 그가 정신 을 잃을 때까지 일방적인 구타는 계속됐다.

쿵.

한 백 대쯤 맞았을까.

막철이 정신을 잃고 호걸륜의 발아래 쓰러졌다.

뒷골목 왈패치고는 놀라울 정도의 맷집이었다.

“딱 보니 그쪽이 두목인 것 같은데, 자리를 옮 겨서 얘기를 좀 하지.”

설우진이 막철의 등판에 발을 올려놓고 호걸륜과 시선을 맞췄다.

“진호패에서 보냈소?”

호걸륜이 무거운 표정으로 물었다.

전후 사정을 고려해 봤을 때, 그들 말고는 달리 의심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진혼팬지 뭔지 나하곤 상관없는 이름이야.”

“그럼 누가?”

“그냥 내 발로 찾아온 거야. 너희들한테 긴히 부탁할 일이 있어서.”

설우진은 당당하게 자신이 찾아온 목적을 밝혔다.

이에 감정이 격탕되었는지 호걸륜의 입술 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그 부탁이 무엇이오?”

“간단해, 그냥 내가 지목하는 몇 개 상단만 털어 주면 돼.”

“우리보고 지금 강도질을 하란 말이오?”

“왜? 너희들이 매일같이 하는 짓이잖아. 시전

상인들을 등쳐 먹는 거, 그게 강도질이 아니면 “뭐야.”

“그, 그건…….”

호걸륜은 말문이 턱 막혔다.

설우진의 말대로 그들은 시전 상인들에게 보 호비라는 명목으로 돈을 뜯어냈다. 아무리 좋 은 말로 포장하려 해도 그 본질은 변하지 않았 다.

“생각할 시간을 좀 주겠소?”

“나쁜 머리 굴린다고 무슨 뾰족한 수가 나올 것 같아? 그냥 옆에 족제비같이 생긴 놈한테 물 어봐. 보아하니 잔머리 좀 굴리게 생겼는데.” 

설우진이 고간을 찍었다.

감정을 훤히 드러내는 호걸륜과 달리 그는 오 히려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입을 뗐다.

“귀인께 정식으로 인사 올립니다. 소인은 풍 야패의 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고간이라 합니다.”

“네놈 이름은 알아서 뭐하게.”

“알아 두시면 요긴하게 쓰일 데가 있을 겁니 다. 그리고 부탁하신 일은 뒤탈 없이 깔끔하게 처리하겠습니다.”

“후훗, 역시 머리가 좋아서 그런지 빠릿빠릿 하네. 좋아. 너희들이 칠 곳은 역성, 호경, 매숙, 창성, 고명 상단이야. 모두 포목을 취급하는 곳 이지.”

“빼앗은 물건들은 어찌할까요?”

“너희들이 잘하는 거 있잖아, 장물 세탁. 출처 가 드러나지 않게 깔끔하게 처리해서 풍야시전 에 풀어. 대신 어중이떠중이들이 달려들면 곤 란하니까 가격은 시세보다 높게 잡아.”

“그럼 물건을 팔기 힘들 텐데요.”

“그건 걱정 마. 시전에 풀기만 하면 무조건 팔릴 테니까.”

설우진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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