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1권 – 23화 : 종횡무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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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왕전생 1권 – 23화 : 종횡무진(4)


종횡무진(4)

그로부터 나흘 뒤.

풍야시전에 대량의 포목이 풀렸다.

그런데, 가격이 꽤 높게 매겨져 있었다. 무명 천은 한 필에 은전 두 냥, 비단 천은 은전 스무 냥이 넘었다. 최근의 포목 시세와 비교하면 한 배반의 차이였다.

“뭐가 이렇게 비싸? 천에 금테를 두른 것도 아니고.”

“그러게, 은전 스무 냥이면 저 밑의 마가 포목 점에서 비단 두 필은 너끈히 살 수 있는데.” “이보쇼, 멀리서 와서 이곳의 시세를 잘 모르 나 본데, 적당히 가격 낮추쇼. 그 가격으론 사 흘 밤낮을 버티고 있어도 무명천 한 필 팔기 힘 “들 거요.”

오가는 사람들이 저마다 충고를 건넸다.

하지만 판을 벌여 놓은 상인은 요지부동, 처음의 가격을 고수했다.

그 뒤로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해가 어스름해져 오자 시전을 오가던 이들의 발걸음도 조금씩 뜸해졌다.

‘그자의 말대로 과연 팔 수 있을까?’

좌판이 내려다보이는 객잔 어귀에 낯익은 얼 굴이 보였다. 이번 일을 진두지휘한 고간이었 다. 그는 평소 교분을 나누고 있던 산적들과 연락을 취해 설우진이 얘기했던 상단들을 털게 했다. 맨입으로 움직일 자들이 아니기에 상당 한 수준의 공금이 사용됐다.

역시, 돈의 힘은 강력했다.

산적들은 열심히 상행 중인 상단을 털었고 막 대한 양의 포목이 은밀히 풍야패의 근거지로 들어왔다.

이후, 고간은 역용술과 화술에 능한 이를 수 배해 훔쳐 온 포목과 함께 시전으로 내보냈다. 그가 바로 천면객 능소강이었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합니까?

능소강이 뒤를 돌아보며 입술을 들썩거렸다. 입 모양으로 말을 전하는 구화술의 일종이었 다.

-날이 저물 때까지만 기다려 보지.

고간도 능숙하게 구화술로 대화를 이어 갔다. 능소강은 순간 짜증이 치밀었지만 풍야패에 빚진 돈이 있는지라 순순히 따를 수밖에 없었 다.

그렇게 기다림에 지쳐 갈 무렵, 서른 중반으 로 보이는 남녀 한 쌍이 급하게 달려왔다. 설무 백, 여소교 부부였다.

오백 필을 두 사람에게 넘겼다.

거래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고 반대편에서 여러 대의 수레가 시전 안으로 들어섰다. 그 선 두에는 설우진이 있었다.

설우진은 수레에 포목들을 차례차례 실었다. 힘을 과시하기라도 하듯 한 번에 무려 열 필 의 포목을 어깨에 올렸다.

그리고 포목을 실으면서 자연스럽게 이 층에 앉아 있던 고간과 눈을 맞췄다.

-수고했다. 뒤탈 생기지 않도록 깔끔하게 정리해라.

-역시, 어린 분이셨군요. 뒷일은 걱정 마십시오. 공자님 댁에 해가 갈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둘은 자연스럽게 구화술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구화술은 설우진이 초보 낭인 시절에 익혔던 잡기들 중 하나였다.

풍야시전에서 대량으로 포목을 사들이며 설 가 포목점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가까스로 넘겼 다.

여소교는 밤낮을 잊고 작업에 열중해 밀렸던 주문을 맞췄고, 설우진도 그 옆에서 한몫 도왔 다.

그리고 설무백은 이번과 같은 사태가 재현되 는 걸 막기 위해 타지에 근간을 두고 있는 포목 상인들과 접촉해 계약을 진행했다. 그들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기에 계약은 순조 롭게 마무리됐다.

“이곳이 모용 언니가 얘기한 가게 맞지?”

“응. 시전으로 들어서는 입구 반대편에 위치해 있다고 했으니까, 저기가 맞아.”

“그럼 이제 우리도 봉황 잠의를 입을 수 있는 건가?”

“정말 똑같은 걸로 주문하려고?”

“헤헤, 너무 예뻤단 말이야.”

열다섯쯤 됐을까.

깨물어 주고 싶을 만큼 아담한 체구에 귀여운 얼굴을 한 소녀와 늘씬한 키에 긴 머리를 허리 까지 늘어뜨린 청순한 외모의 소녀가 나란히 설가 포목점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녀들은 나흘 전에 끝난 화무연에 참석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돈은 있니?”

청순한 외모의 남궁지연이 철없는 친구 제갈 혜미에게 물었다. 이에 제갈혜미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돈도 없으면서 무슨 봉황 잠의를 산다는 거 야?”

“돈은 지연이 네가 많잖아. 친구 좋다는 게 뭐 야. 나중에 다 갚을 테니까 조금만 빌려주라.”

“휴우, 넌 대체 언제 철들래? 너도 삼 년만 지 나면 성인이야. 그리고 네가 이제까지 나한테 빌린 돈이 얼만 줄이나 알아?”

“얼만데?”

제갈혜미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이에 남궁지연은 손가락 열 개를 활짝 펼쳐 보였다.

“은전 열 냥? 에이, 얼마 안 되네.”

“이것아, 열이 아니라 천이야.”

“으윽, 언제 그렇게 많이 빌렸지? 별로 쓴 데도 없는 것 같은데.”

제갈혜미가 한껏 볼을 부풀렸다.

남들이 보면 깜찍하기 이를 데 없는 애교였지 만 수년 동안 그 모습을 봐 온 남궁지연은 눈 하 나 깜짝하지 않았다.

“지연아, 마지막으로 한 번만.”

“안 돼, 계속 이렇게 떼쓰면 성 오라버니한테 다 말해 버릴 거야.”

남궁지연이 짐짓 무서운 표정으로 제갈성의 이름을 언급했다. 제갈성은 제갈혜미의 둘째 오라비로 성정이 곧고 엄하기로 유명했다.

“치사한 계집애………….”

“치사해도 어쩔 수 없어.”

“그럼 구경만이라도 안 될까? 이대로 돌아가기엔 너무 아쉬울 것 같은데.”

제갈혜미가 중재안을 내놨다.

남궁지연은 이도 냉정하게 거절하려 했지만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 낼 것 같은 친구를 보 고 있자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남궁지연은 제갈혜미의 손을 잡고 설가 포목점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손님. 무엇을 찾으시나요?” 

점원 장씨가 그녀들을 맞았다.

이에 제갈혜미가 잠의를 보여 달라 큰 소리를 냈다. 장씨는 두 소녀의 치명적인 매력에 얼굴 을 붉히며 별관으로 안내했다. 별관에는 여소 교가 만든 잠의들이 옷걸이에 가지런히 걸려 있었다.

제갈혜미는 별관을 누비며 자신이 원하는 봉 황 잠의를 찾아 헤맸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그 녀가 원하는 봉황 잠의는 보이지 않았다.

“지연아, 없어.”

“네 앞에 걸려 있는 옷, 봉황 잠의 아니야?”

“봉황 잠의는 맞는데………중요한 게 빠졌어. 모용 언니의 옷에서는 이 날개 전체가 빛났었는데, 이 옷은 너무 밋밋해.”

봉황 잠의를 입고 화무연에 나섰던 모용설 설우진의 응원에 힘입어 당당히 우승을 차지했다. 그녀가 지닌 재색도 크게 한몫했지만 무엇 보다 봉황 잠의의 역할이 컸다.

“아저씨, 혹시 이것 말고 다른 봉황 잠의는 없나요?”

제갈혜미가 장씨에게 물었다.

이에 장씨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오늘은 날이 아닌가 보다. 성년이 된 후에 다시 찾아오자.”

남궁지연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

바로 그때.

별관 안으로 설우진이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밤새 작업한 옷들이 들려 있었다.

벽뢰진천이 제뢰의 벽을 깬 뒤로 그는 일부러 라도 자수에 매달렸다. 자수를 반복할수록 뇌 기의 운용이 부드러워지는 걸 느낀 것이다. 

“저기요!”

제갈혜미가 다급히 설우진의 손목을 붙잡았다.

설우진은 뭐냐는 표정으로 그녀의 위아래를 가볍게 훑었다. 그녀의 미모에 혹해 그 뒤를 졸졸 따라다녔던 점원 장씨와 달리 그의 표정은 무덤덤함을 넘어 시큰둥하기까지 했다.

‘뭐야, 이 절벽은.’

설우진의 시선은 그녀의 가슴에 닿아 있었다. 제갈혜미는 몸에 쫙 달라붙는 궁장을 입고 있 어 몸매가 그대로 드러났는데 안타깝게도 가슴 선이 너무 밋밋했다. 옆에서 바라보지 않으면 그 굴곡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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