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1권 – 24화 : 전복위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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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왕전생 1권 – 24화 : 전복위화(1)


전복위화(1)

“무슨 일이죠?”

“지금 손에 들고 있는 옷들 좀 볼 수 있을까요?”

“아직 작업이 안 끝났는데요.”

“상관없어요. 자수만 확인하려는 거니까.” 

‘입고 입는 옷이나 허리에 차고 있는 검을 보 면 명문가 규수들 같은데, 상대하기 귀찮기는 하지만 가게를 위해서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설우진은 그녀들의 요구에 순순히 따랐다. 옷을 건네받은 두 소녀는 한동안 말없이 옷을 바라봤다. 정확히는 옷 한복판에 수놓인 자수 였다.

화려하게 만개한 두 송이의 꽃.

금방이라도 나비가 날아들 듯, 생생한 아름다 움이 느껴졌다.

-설아 언니의 봉황 잠의보다는 못하지만, 이 것도 정말 예쁘지 않아?

-응, 이전에 봤던 꽃 자수들과는 뭔가 느낌이 다른 것 같아. 마치 내기를 두른 검처럼. 남궁지연의 눈빛에 이채가 떠올랐다.

친구인 제갈혜미가 자수 그 자체의 아름다움에 주목했다면, 그녀는 자수 안에 담겨 있는 기운에 주목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무공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천재라는 세간의 평을 받고 있던 큰오빠, 남궁천에 비견될 정도였다.

‘이자, 정체가 뭐지? 사물에 기를 불어넣는 건 검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절정의 고수들이나 가능한 경지인데.’

남궁지연이 고개를 돌려 설우진을 빤히 쳐다 봤다.

설우진은 노골적인 그녀의 시선에 살짝 눈꼬리를 추어올렸다.

‘이 계집이 왜 자꾸 사람 얼굴을 쳐다보는 거 야? 물건을 봤으면 살 건지 말 건지나 결정할 것이지.’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요?”

“아, 불쾌했다면 사과할게요. 그냥, 조금 이해가 안 되는 게 있어서.”

“그게 무슨?”

“혹시 무공을 익히지 않았나요?”

남궁지연은 돌려 묻지 않았다. 직설적인 남궁 가 특유의 성정이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뭘 보고 그런 오해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전 평범한 포목점의 아들입니다. 무공을 익혔다면 이 손으로 자수를 놓을 게 아니라 검을 쥐었겠지요.”

설우진은 얼토당토않은 얘기라며 딱 잘라 말했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수준에 오르기 전까지는 무공을 익혔다는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않을 생각이었다.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는 건 강호 불변의 진 리가 아니던가.

설우진이 강하게 부정하자, 남궁지연도 더는 묻지 못했다. 하지만 심중에는 큰 의구심이 남 았다.

‘겉보기엔 분명 무공을 익힌 흔적이 없어. 하 지만, 저 자수 안에 담긴 기운.. 그건 분명 정 련된 내기의 흔적이야.’

“지연아, 이거 하나만 사면 안 될까?”

남궁지연이 설우진에게 정신이 팔려 있는 사 이, 제갈혜미가 꽃이 수놓인 옷을 들어 올리며 특유의 애교 섞인 말투를 선보였다.

그 순간, 설우진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제갈혜미가 구매 의사를 밝히는 순간 그녀는 귀한 고객의 신분으로 격상된 것이다.

“역시 예쁜 얼굴만큼이나 보는 눈도 높으시네요. 은전 스무 냥만 내세요. 그럼 이 옷은 아가 씨의 것이 됩니다.”

설우진이 적극적으로 제갈혜미의 마음을 흔들었다.

이에 제갈혜미는 애처로운 표정으로 남궁지 연을 바라봤고, 그 눈빛에 못 이긴 남궁지연은 옷값을 대신 치렀다.

“혹시, 옷 말고 다른 것도 주문할 수 있나요?”

셈을 치른 뒤, 남궁지연이 물었다.

“음…………… 자수가 들어가는 거라면 모두 가능합 니다. 단, 주문 제작의 경우 비용이 더 추가됩니다.”

“그럼 요대 하나만 주문할게요. 원하는 문양 은 뇌운이에요.”

‘뭐지? 설마, 자수에 녹아든 뇌기를 읽은 건가 ?’

설우진은 남궁지연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하지만, 표정의 변화가 거의 없어 그 속내를 읽기란 쉽지 않았다.

“여기 은전 쉰 냥이에요. 물건은 언제 찾으러 오면 되죠?”

“요대에 들어가는 자수는 크기가 작으니, 하루 정도면 작업을 끝낼 수 있습니다.”

“그럼 내일 이 시간에 찾아오도록 하죠.”

먼저 셈을 치른 뒤, 남궁지연은 제갈혜미를 데리고 가게를 나섰다.


퍽!

머리가 세차게 돌아갔다.

바닥으로 피가 튀고 조각난 이빨이 그 위로 나뒹굴었다.

“망해 가던 설가 포목점이 기사회생했다. 대 체 일 처리를 어떻게 한 것이냐?”

포대월의 성난 목소리가 대청 안에 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불과 사흘 전까지만 해도 그의 기분은 한껏 들떠 있었다. 윗선으로부터 뛰어난 위기관리 능력을 높이 평가한다는 치하의 말을 듣기까지 했다. 장로 자리가 눈앞에 찾아온 듯했다.

그런데 다음 날 비보가 날아들었다. 물량을 확보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던 설가 포목점이 기적적으로 재기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며, 면목이 없습니다. 설마 설가 포목점에서

이런 식으로 반격을 해 올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어떤 놈들이 연관됐는지는 알아냈느냐?”

“흑점을 통해 알아본 바, 풍야패 쪽에서 산적 들을 움직였다 합니다.”

“허허, 어이가 없어 말이 다 안 나오는군. 천 하의 대원 포목점이 일개 흑도패 따위에 뒤통 수를 맞다니. 이제 어찌할 것이냐?”

포대월이 손에 묻은 피를 수건으로 닦아 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제 오랜 지우가 현청에서 하급 관리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을 잘 버무려 설가 포 목점과 산적들이 손을 잡고 있다는 식으로 고 변을 한다면 가게 문을 닫게 하는 건 물론이고 점주인 설무백까지 잡아넣을 수 있을 겁니다.” 

모대강은 악에 받친 얼굴로 새로운 계책을 내 놨다.

그 계책이 맘에 들었는지, 노기로 그득했던 포대월의 얼굴이 살짝 펴졌다.

“이번엔 확실히 끝낼 수 있겠지?”

“네, 이 목을 걸고 약속할 수 있습니다.”

“좋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믿어 보지. 그리고 하급 관리로는 일 처리가 더딜 테니 부현령 과의 만남을 주선해 주지.”

“감사합니다. 실수 없이 신속하게 처리하겠습니다.”

모대강은 그길로 흑점을 찾아갔다.

그리고 풍야패와 연관이 있는 산적들과 풍야 패 조직원 명부를 확보해 직접 그들을 포섭했 다. 돈에 움직이는 자들답게, 대부분은 모대강 편으로 돌아섰다.


“도련님, 큰일 났습니다.”

밀린 일감을 처리하느라 늦게 잠이 들었던 설 우진은 귓가에 들려오는 다급한 목소리에 눈을 떴다. 창밖을 보니 점원 장씨가 헐레벌떡 뛰어 오고 있었다.

“아저씨, 무슨 일인데 그리 호들갑이에요?” 

설우진이 옷을 챙겨 입고 장씨를 맞았다.

“지, 지금 포쾌들이 가게로 와서 점주님을 잡 아갔습니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예요. 왜 포쾌들이 아버지를 잡아가요?”

“경황이 없어서 제대로 듣지 못했는데, 점주 님이 산적들과 손을 잡고 포목을 빼돌렸다고…”

‘니미, 설마 꼬리를 잡힌 건가?’

설우진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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