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1권 – 25화 : 전복위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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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왕전생 1권 – 25화 : 전복위화(2)


전복위화(2)

산적들을 이용하려 맘을 먹었을 때, 어느 정 도 뒤탈은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풍 야패를 이용했고, 빼앗은 포목들도 웃돈을 주 고 사게끔 유도했다.

한데, 결국은 사달이 나고 말았다.

‘내가 대원 포목점을 너무 만만히 봤나………….’

설우진은 그길로 풍야패의 근거지로 달려갔다.

산적들을 고용한 그들이 설가 포목점에 불리 하게 진술을 한다면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 되는 걸 알기에 그 입부터 막으려는 것이다. 그런데, 풍야패의 근거지는 텅 비어 있었다. 그가 올 걸 미리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급하 게 자리를 뜬 흔적이 역력했다.

“빌어먹을, 애당초 흑도패 따위를 믿고 일을 진행하는 게 아니었어. 돈만 보면 눈이 뒤집히 는 놈들인데 대체 뭘 믿고…………….”

설우진은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힘으로 밀어붙이면 다 된다고 여겼던 낭왕 시절의 오만함이 부른 화였다.


“형님, 괜찮을까요?”

“어차피 호랑이의 등에 올라탄 신세다. 여기 서 머뭇거리면 죽도 밥도 안 된다.”

“하지만… 그가 가만있지 않을 텐데요.” 

고간이 우려 섞인 표정으로 호걸륜을 쳐다봤 다.

그는 대원 포목점과 손을 잡는 걸 강하게 반 대했었다. 일단은 대원 포목점의 약속을 믿을 수 없었고, 무엇보다 설우진이 두려웠다.

“그놈이 아무리 잘나 봐야 열세 살 꼬맹이다.

내 백사문에 사람을 보내 달라 청을 해 놨으니, 놈에 대해선 걱정할 것 없다.”

호걸륜은 자신만만한 얼굴로 백사문을 거론 했다.

백사문은 그가 오랫동안 줄을 대 온 사파일문 이다. 무한에서는 제법 이름이 알려진 곳인데, 사파치고는 양보다 질에 높은 가치를 둬 꽤 뛰 어난 수준의 무사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특히, 백사문에서는 사룡대주 엽위천의 무위 가 유명했다.

엽위천은 마흔의 나이에 절정의 경지를 엿봤고, 쉰 줄에 들어선 지금은 완숙한 절정의 경지 를 자랑했다.

“혹, 엽 대주님이 직접 오시는 겁니까?” 

고간이 넌지시 엽위천의 이름을 언급했다. 내심 그 정도가 아니면 설우진을 막을 수 없 을 거라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호걸륜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백사문이 미쳤냐! 이런 일에 엽 대주를 보내 게. 객쩍은 소리 그만하고 밥이나 처먹어.”


“설무백, 죄를 인정하느냐?”

“이, 이건 모함입니다. 저는 그저 시전에 나온 물건을 구매했을 뿐입니다.”

“허허, 이놈이 끝까지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구나. 여봐라, 증인들을 안으로 불러들여 라.”

심리가 진행 중인 관부 안.

대원 포목점의 사주를 받은 부현령이 결박된 채 바닥에 무릎 꿇린 설무백에게 죄를 추궁했 다. 당연히 설무백은 강경한 어조로 무죄를 주 장했다.

하지만 상황은 점점 그에게 불리하게 흘러갔다.

얼굴도 한번 본 적 없는 산적과 흑도패가 마 치 짜기라도 한 듯 자신에게 돈을 받았다 증언 을 한 것이다.

“대인, 억울합니다. 저는 맹세코 저들에게 돈을 건넨 적이 없습니다.”

“그럼 풍야시전에 대량으로 물건이 풀린 게 단순한 우연이란 말이냐?”

“그, 그건…….”

사실, 설무백도 그게 이상하기는 했다.

포목은 곡물처럼 수요의 변동이 심한 품목이 아니다. 계절별로 조금씩의 차이는 발생하지만 평균으로 따지면 거의 일정한 수준을 유지했다

그런데 이번에 풍야시전에서 풀린 포목은 그 양이 지나치게 많았다. 물건을 구매할 당시에 는 밀린 주문을 소화해야 한다는 생각에 미처 그 부분을 고려하지 못했는데,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함정에 걸려든 것 같았다. 

‘설마, 이 모든 게 대원 포목점의 계략…………..?’ 

설무백의 얼굴 표정이 굳어졌다.

만약, 그의 짐작대로 사건의 배후에 대원 포 목점이 있다면 이 함정에서 벗어날 방도가 없었다.


“형아, 어떡해? 아, 아버지 잘못되는 거 아니겠지?”

초상집이 되어 버린 집안.

설우결이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설우진의 품에 안겼다. 설우결은 공교롭게도 아버지가 포 쾌들에게 끌려가는 현장을 목도하고 말았다. 그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 바지춤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결아, 걱정 마. 아버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 형이 꼭 구해 낼 거야.”

“정말이지?”

“그럼, 이 형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전에 확인 했잖아. 아무 걱정 말고 넌 어머니 곁을 지켜. 이런 때일수록 가족이 똘똘 뭉쳐야 돼.” 

“응, 알았어.”

설우결이 손등으로 눈물을 훔쳐 내며 안방으로 향했다.

동생을 방으로 보낸 뒤 설우진은 야음을 틈타 무한현청으로 향했다.

밤이라 그런지 현청 주변은 조용하다 못해 고요했다.

가끔 들려오는 소리라곤 순찰을 도는 포쾌들 의 발소리와 뇌옥에서 흘러나오는 신음뿐이었다.

설우진은 날렵하게 담을 뛰어넘어 뇌옥으로 향했다. 중요 길목마다 포쾌들이 진을 치고 있었지만, 절정에 다다른 그의 신법은 그들의 눈 을 쉽게 속였다.

‘저곳인가?’

빠르게 내달리던 설우진의 발걸음이 멈춰 섰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불빛이 은은하게 새어 나오는 한 채의 건물이었다. 입구 쪽에 두 명의 포쾌가 창을 쥐고 서 있는 것이 뇌옥으로 짐작 됐다.

설우진은 조심스럽게 입구로 향했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이 다른 방향을 향하는 순 간, 기습적으로 쇄도해 수혈을 찍었다. 포쾌들 의 몸이 스르르 무너졌다. 설우진은 그들의 품 을 뒤져 뇌옥 열쇠를 찾아냈다.

끼익.

뇌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쾌쾌한 악 취가 코를 찔렀다. 하지만, 설우진은 그 악취조 차 느끼지 못한 채 정신없이 뇌옥 안을 뒤졌다. 그렇게 얼마를 움직였을까.

설우진의 두 눈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애타게 찾던 아버지를 발견한 것이다.

“아, 아버지…………….”

그의 시선이 향한 자리.

설무백이 지친 얼굴로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고초가 심했는지 옷가지는 군데군데 찢겨 있고 얼굴색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그 모습에 흥분한 설우진은 뇌옥 문을 양손으 로 틀어쥐었다. 당장에라도 문을 부수고 안으 로 들어갈 기세였다. 하지만, 마지막 이성이 그 를 붙잡았다. 여기서 힘을 쓰면 당장에 아버지 를 구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사태는 더 심각해 질 게 분명했다.

“젠장.”

설우진은 이를 악물고 뒤돌아섰다.

콱 움켜쥔 주먹에선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설우진, 꼴좋다. 벽뢰진천을 얻고 나서 세상 을 다 가진 것처럼 기고만장하더니 정작 아버 지 한 사람조차 구해 내질 못하는구나. 이래서 한 자루의 붓이 천 자루 칼보다 강하다고 가르 치는 건가…………’

설우진은 극심한 자괴감에 휩싸였다.

그리고 그 자괴감은 공부에 무관심했던 자신 을 뒤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회귀 전이나 지금이나 그는 공부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회귀 전에는 자수에 푹 빠져 살았고 지금은 전생에 누리지 못했던 여유로운 삶을 즐기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런데 이번 일을 겪고 나서 절실히 깨달았다.

무식한 힘은 되레 자신이나 가족에게 화가 될 수 있음을.

‘이번 일만 무사히 마무리되면, 황룡으로 가 야겠어. 전국에서 난다 긴다 하는 천재들이 모 이는 곳이니 내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 줄 수 있 겠지.’

설우진은 공부에 대한 의지를 확고히 했다. 그 사이, 뇌옥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교대를 하기 위해 찾아왔던 을조 포쾌들이 열쇠가 사 라진 걸 안 것이다. 날카로운 고함과 함께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횃불을 든 포쾌들 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정체가 들통날 수 있는 위험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설우진은 당황하지 않고 벽을 차고 뛰어올라 천장에 거꾸로 매달렸다. 잡을 것이 마땅치 않은 상황임에도 그는 유연하게 팔다리 를 움직여 입구 쪽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낭인시절에 익혀 둔 잡기가 또 한 번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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