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3권 – 12화 : 분란 조장 (1)
분란 조장 (1)
다음 날 아침.
늘어지게 잠을 자고 있던 상관추에 게 동생이 죽었다는 비보가 전해졌 다. 처음엔 술이 덜 깨 헛소리를 들 은 거라 생각했는데 소식을 전해 온 이를 보니 관복을 입고 있었다.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그 는 포쾌를 따라 동생이 안치되어 있 다는 관청으로 향했다.
관청 후원에 볏짚으로 얼굴이 가려 져 있는 시체 한 구가 보였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볏짚을 걷어 냈다.
“호, 홍아.”
볏짚 아래 동생의 얼굴이 있었다. 아니라고 믿고 싶은데 입고 있는 옷이나 자신과 꼭 닮아 있는 외모가 동생임을 확신시켜 줬다.
“도대체 누가 이런 거야?”
상관추는 상관홍의 얼굴을 감싸 안 으며 말을 걸었다. 하지만 차갑게 식어 버린 시체가 대답을 할 리 만 무했다.
그렇게 한참을 망부석처럼 동생의 얼굴을 껴안고 있던 상관추가 자리 에서 일어섰다.
슬픔으로 얼룩져 있던 두 눈은 짙 은 살의와 광기로 뒤덮여 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용케 이성은 유 지하고 있었다.
‘홍이의 몸에 남아 있는 상처들은 모두 쾌검에 의해 만들어졌어. 그리 고 검이 파고든 방향이 제각각인 걸 로 보아 다수가 한꺼번에 덤벼든 게 분명해. 단순한 시비로 싸움이 일었 다면 이 정도로 정교한 상처가 남지 는 않았을 테고…………. 남은 가능성은 하나야. 원한에 의한 살인’
상관추는 동생의 몸에 남아 있는 흔적을 통해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 다.
그런데 그 추론에는 한 가지 맹점 이 있었다. 그건 상관홍의 활동 무 대가 섬서가 아닌 호남이란 사실이다.
이에 상관추는 다른 방향으로 생각 을 선회했다. 원한의 대상을 동생이 아닌 자신에게 맞춘 것이다.
‘가만, 이 상처들 모두 쾌검에 의 한 거잖아. 혹시 운검문 그 개자식…….’
고민의 끝자락에 운검문이 걸렸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상관추는 상처 의 절단면을 까집었다. 신기하게도 살갗 안쪽의 살들이 부챗살 모양으 로 밀려나 있었다.
상관추는 그길로 곧장 하오문을 찾았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운검문의 문도 들이 머물고 있는 객잔을 찾아냈다.
서안 외곽에 자리한 풍연이란 곳이 었다.
위치가 좀 외지기는 해도 주변 풍 광이 아름다워 찾는 이가 꽤 많았 다. 한데 공교롭게도 그 안에 설우 진이 들어가 있었다.
설우진은 낭인 시절 지겹도록 노숙 을 경험했다.
수중에 돈이 있어도 상행을 따라다 니다 보면 야영을 해야 할 때가 많 았기 때문이다. 그건 소위 급이 올 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의뢰주가 편의 차원에서 막사를 제공해 주기 는 했지만 푹신한 침상이 있는 객잔 과는 비할 바가 못 됐다.
그런 경험이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설우진은 잠자리만큼은 신중하게 선 택했다.
설우진의 간택을 받은 풍연은 두 가지 부분이 다른 객잔에 비해 우월 했다.
일단 주변의 풍광이 수려했다. 창 을 열면 황하의 지류가 한눈에 펼쳐 지고 그 주변으로 청죽림이 조성되 어 바람이 불 때마다 귀를 간질이는 매혹적인 목소리를 들려 줬다. 그리 고 또 하나의 강점은 온천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물에 유황이 많이 함유되 어 있어 피로를 푸는 데 제격이었다.
“아하, 시원하다.”
후원에 마련된 온천탕 안.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 사이로 설 우진의 얼굴이 보였다. 꽤나 오랫동 안 몸을 담그고 있었는지 얼굴이 벌 겋게 익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 남궁벽과 조인창 도 허리까지 몸을 담그고 있었다. 편안한 표정으로 누워 있는 설우진 과 달리 두 사람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다들 왜 죽상이야? 학관으로 돌아 가면 한동안 이런 호사는 못 누리니 까 화끈하게 즐겨.”
“우, 우진아, 넌 안 뜨거워? 난 살이 녹아드는 것 같은데.”
“뭘 이 정도 가지고 호들갑이야. 황산 인근에 있는 승룡은 이것보 다 배는 더 뜨거워. 조금만 더 참고 견뎌 봐. 뜨거움 뒤에 찾아오는 시 원함을 느낄 수 있을 테니.”
설우진이 승룡천을 언급하며 밖으 로 나가고 싶어 하는 조인창의 발목 을 붙잡았다.
할 수 없이 조인창은 남궁벽에게 무언의 도움을 청했다.
그런데 그놈의 자존심이 뭔지, 남 궁벽은 설우진에게 약한 모습을 보 이지 않으려 부득불 온천 안에서 버텼다.
그 뒤로 반 시진의 시간이 흘렀다. 조인창은 완전히 넋이 나간 표정이었고 남궁벽도 처음의 기세는 온데간데없이 격한 숨을 몰아쉬었다.
그런데 둘과 달리 설우진은 말짱했다.
한 시진 넘게 온천을 즐겼으니 지 칠 만도 하건만 그의 얼굴은 활기가 넘쳐흘렀다.
“너희들, 뭐 해? 씻었으니 이제 든 든하게 배를 채우러 가야지.”
설우진이 홀쭉하게 들어간 배를 가 볍게 매만지며 물 밖으로 걸어 나왔 다.
온몸에 물기가 흥건했다. 한데 몇 걸음을 내딛기 무섭게 물기가 감쪽 같이 사라졌다. 몸 안에서 강한 열 기를 품고 있던 뇌기가 빠르게 수분을 증발시킨 것이다.
위의 경우처럼 설우진은 벽뢰진천 을 실생활에서 다양하게 활용했다. 밥을 지을 때는 열기를 응축시켜 불을 만들고, 물고기 반찬이 생각날 때는 가까운 냇가를 찾아 뇌기를 흘 려보내기도 했다.
“먼저 음식 시켜 놓고 있을 테니 적당히들 하고 식당으로 건너와. 몸 에 좋은 것도 오래 하면 독 된다.”
설우진이 옷을 걸치며 두 친구에게 충고의 말을 건넸다. 순간 둘의 얼 굴이 약속이라도 한 듯 사납게 일그러졌다.
“대사형, 공걸 사형은 어때요?”
“의원 말로는 적어도 반년 이상은 요양을 해야 한다고 하더구나.”
“다시 검을 잡을 순 있는 거죠?”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구나. 하지 만 걸이는 강한 아이이니 분명 이겨 낼 것이다.”
풍연의 식당 한편에 운검문의 제자 들이 식사를 하기 위해 모여 있었 다. 그들은 한결같이 쌍룡무회에서 큰 부상을 입은 공걸의 상태를 걱정했다.
공걸은 비무가 끝난 뒤 곧장 가까 운 의원으로 옮겨졌다. 부상자가 생 길걸 미리 대비하고 있었기에 치료 는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이대로 가만히 계실 거예요? 그자는 일부러 둘째 사형을 해하려 했어요. 이는 명백히 우리 사문에 대한 도전이라구요.”
운검문의 막내 강명국이 복수를 부 르짖었다. 물론 그 대상은 상관추였 다.
하지만 다른 제자들은 섣불리 그 감정에 휘말리지 않았다. 다들 나이 도 있고 상관추가 만만한 상대가 아 니라는 걸 인지하고 있어서다.
“막내야, 네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만 그 일은 신중하게 접근해 야 한다. 걸이는 정상적인 비무 과 정에서 부상을 입었다. 고의성이 어 느 정도 드러나기는 했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명분이 부족하다.”
“하, 하지만…….”
“당장은 억울하고 분해도 참아라. 힘이 없는 정의는 결국 공허한 외침 일 뿐이다. 대신 그 분한 감정을 토 양 삼아 네 손에서 선풍검을 꽃피우 도록 해라. 우리 사형제들 중 최고 의 재능을 지닌 너라면 분명 운검문 의 사조께서 이뤄 내셨던 풍검천인 의 경지에 오를 수 있을 게다.”
대사형 석곡산이 강명국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힘을 북돋았다.
“대사형 말이 맞아. 국이 넌 입문 한 지 삼 년도 안 되어서 선풍검의 초식들을 모두 깨쳤잖아. 그 재능이 라면 충분히 풍천검인의 경지에 오 르고도 남을 거야.”
“나도 우리 막내 사제를 믿어.”
주위에 둘러앉아 있던 사형제들이 저마다 응원의 말들을 건넸다. 그제 야 잔뜩 골이 나 있던 강명국의 얼
굴에 가는 미소가 번졌다.
“자, 다들 식사하자.”
석곡산이 먼저 젓가락을 들었다. 앞쪽에는 먹음직스러워 뵈는 음식 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의기소침해 있는 사형제들을 달래고자 석곡산이 사비를 보태어 주문한 음식이었다. 그런데 석곡산이 막 교자 하나를 집어 들려는 순간, 풍연의 문짝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안쪽으로 튕겨 져 들어왔다.
그 사달을 만든 이는 다름 아닌 상관추였다.
상관추는 사납게 부릅뜬 두 눈으로 식당 전체를 좌우로 훑었다.
그러다 한곳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석곡산을 비롯한 운검문의 사형제 들이 앉아 있는 곳이었다.
“지금부터 내 앞을 가로막는 것들 은 모두 사정없이 베고 지나갈 것이 다. 괜히 눈먼 칼에 죽고 싶지 않으 면 당장 이곳을 나가라.”
상관추가 대도를 뽑아 들고 큰 소 리로 외쳤다.
그 기세에 눌린 손님들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건물 밖으로 뛰쳐 나갔다.
잠시 후 운검문의 사형제들과 상관추가 마주했다.
“대관절 무슨 연유로 이른 아침부터 소란을 피우는 게요?”
석곡산이 정중하게 물었다.
“크큭, 시치미를 떼시겠다? 네놈 들, 지난밤 어디에 있었느냐?”
“다들 이곳에서 잠을 청했소.”
“그걸 증명해 줄 이가 있느냐?”
“다들 자고 있을 시간인데 누가 증 명을 해 주겠소!”
“뻔뻔스럽게 잘도 입을 놀려 대는 구나. 네놈들은 지난밤 이곳에 있지 않았다. 내게 앙심을 품고 술에 취 해 비틀거리는 내 동생을 노린 거지.”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요?”
“두 눈 똑바로 뜨고 봐라. 내 동생의 몸에서 나온 네놈들의 무공 흔적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