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3권 – 6화 : 철사자회 (3)
철사자회 (3)
이틀 뒤, 철사자회가 정식으로 동 심계에 등록됐다.
철사자회에 남궁벽이 들어갔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청소도 다 끝내 지 않은 철사자회 사무실에 관도들 이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특이한 건, 여관도보다는 남관도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야, 누구는 인기 많아서 좋겠 다.”
설우진이 문 앞에 모여든 관도들을 가리키며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우거지상을 한 남궁벽이 검을 껴안고 문밖에 선 남 관도들을 사납게 노려보고 있었다.
“우진아, 어떻게 해?”
“제 발로 받아 달라고 찾아왔는데 억지로 쫓아낼 순 없잖아.”
“그래도 숫자가 너무 많은데, 아직 제대로 체계가 잡혀 있지도 않은 우 리가 감당할 수 있을까?”
“그렇게 걱정되면 선별해서 뽑아. 어차피 철사자회를 관리하는 건 네 몫이니까.”
설우진은 조인창에게 철사자회 운 영에 관한 전권을 모두 떠맡겼다. 조인창은 부담된다며 극구 사양했지만 네가 맡지 않으면 철사자회를 해 산시킬 수밖에 없다는 협박에 울며 겨자 먹기로 전권을 위임받았다.
‘정말 어떡하지, 내 주제에 사람을 뽑을 자격이 있을까?’
조인창은 좀체 마음의 결정을 내리 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그 모습이 답답했는지 결국 설우진이 전면에 나섰다.
쾅!
설우진의 거친 손길에 여닫이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 소 리에 놀란 이들이 한 발짝 뒤로 물 러서 일제히 설우진을 바라봤다.
“너희들, 우리 철사자회가 뭘 목표 로 하고 있는지는 알고 찾아온 거야?”
“이거 대단히 실망스러운데, 동심 계라는 게 한뜻을 가진 이들이 모여 서 창대한 목표를 함께 이뤄 나가는 건데 철사자회가 뭘 하려는지도 모 르고 무작정 들어오겠다고? 아서, 그런 마음가짐으론 본회에서 단 하 루도 버티지 못하니까.”
“단 하루라도 버티면 들어갈 수 있는 거지?”
모두가 당황해하는 가운데 유난히 체구가 왜소해 뵈는 이가 조심스럽 게 질문을 던졌다. 평소 존재감이 없어 이름 대신 무영이란 별명으로 불리고 있는 여창위였다.
“그 몸으론 버티기 힘들 텐데?”
설우진의 시선이 여창위의 몸을 가 볍게 훑었다.
그는 또래의 남자들답지 않게 팔다 리가 야리야리했다. 툭 건드리면 부 서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 로.
하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여기 모인 이들 중 가장 뜨겁게 빛나고 있었 다.
‘자식, 보기 보단 강단이 있네. 그 러고 보니 저 녀석 만년 하위권을 달리면서도 끝까지 포기는 안 했었 지.’
설우진의 뇌리에 연무장을 힘겹게 돌던 여창위의 모습이 떠올랐다.
당시 하위권에 처져 있던 관도들은 열 명이 넘었다. 여창위는 그중에서 도 맨 뒤에 자리하고 있었다. 모두 그가 완주를 못 할 것이라 생각했 다. 한데 앞서가던 관도들이 하나둘 씩 포기를 할 때 그는 이를 악물고 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기어코 완 주를 해 냈다.
“좋아. 누가 됐든 철사자회의 수련 을 단 하루라도 버텨 낼 수 있다면 회원으로 받아 주겠어. 단, 중도에 포기하는 놈들은 벌금을 내야 해. 동심계를 운영하려면 기본적으로 소 요되는 돈이 꽤 많거든.”
설우진이 조건부 시험을 내걸었다. 예상대로 관도들 사이에서 큰 소요가 일었다. 대다수는 부정적인 반응 이었다.
“앞으로 셋을 셀 테니 수련에 참가 코자 하는 이들은 이쪽 왼편에 서. 한번 결정이 내려지면 번복되는 일 은 없을 테니 신중하게 고민하고 선 택해. 하나……”
숫자를 세기 무섭게 여창위가 설우 진의 왼편으로 향했다. 그 뒤로 서 넛 정도가 눈치를 보더니 여창위의 뒤로 바짝 붙어 섰다.
“셋!”
최종적으로 수련에 참가키로 한 인 원은 일곱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한 때 큰 번영을 누렸던 구파 속가문의 자제들이었다. 설우진은 그들의 면면을 한 명씩 확인하더니 갑자기 손 을 내밀었다. 여창위는 엉겁결에 첫 번째로 그 손을 맞잡았다.
“철사자회에 들어온 걸 축하한다.”
설우진은 입가에 가는 미소를 그리 며 맞잡은 손을 흔들었다.
“이, 이게 무슨?”
여창위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었다.
수련을 견뎌야 한다는 생각에 잔뜩 각오를 다지고 있었는데 갑자기 합 격을 했다는 말을 들으니 쉬이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후훗, 그런 넋 나간 얼굴로 쳐다 볼 것 없어. 내가 진짜 너희들에게 원했던 건 남들보다 뛰어난 재능이 아니라 하고자 하는 의지였으니까. 너희는 벽이가 좋은 가문에서 나고 자라서 강해진 줄 알지? 그거 다 남 잘되는 꼴 못 보는 인간들이 지 어낸 헛소문이야. 녀석은 여기 있는 그 누구보다 필사적이야. 강해지기 위해서, 검의 끝을 보기 위해서 앞 만 보고 달리지. 녀석이 강한 건 바 로 그 때문이야.”
설우진이 남궁벽을 제대로 띄웠다. 자신을 향한 칭찬이 내심 기분 좋 았는지 남궁벽의 입꼬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그럼, 네가 강한 건 무슨 이유야?”
여창위가 뜻밖의 물음을 던졌다.
사실 동기들은 설우진이 강하다는 인식을 별로 갖고 있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입관 초기에 환영연 에서 남궁벽을 한 방에 때려눕히는 기사를 선보이기는 했지만 그 이후 로는 딱히 이렇다 할 인상을 남기지 못해서다. 그리고 무엇보다 동기들 대다수는 무과였고 설우진은 문과였 다. 그 실력을 보고 싶어도 볼 기회 가 거의 없었다.
“왜 내가 강하다고 생각하지?”
“우연히 두 사람이 대련하는 걸 봤어.”
‘언제지? 보통은 사자관에서 대련 을 하는 터라 볼 수가 없었을 텐데. 가만, 혹시 그땐가? 신하촌에서 돌아와 진탕 술을 마신 날.’
설우진은 그날 친구들과 술을 진탕 마시고 밤늦게 학관 연무장을 찾았 다. 마음이 괴로울 땐 몸으로 푸는 게 최고라는 스스로의 지론을 따른 것이다. 그런데 그 뒤를 남궁벽이 막무가내로 따라왔다. 반쯤 눈이 풀 려 있는 상태라 말릴 수도 없었다. 결국 연무장 한복판에서 달밤의 비 무가 치러졌다.
“그날은 벽이가 취해 있어서 나한 테 당했던 거야. 입관 환영연 때처 럼.”
“취한 사람치고는 검의 움직임이 무척 예리해 뵈던데?”
“밤이라서 그렇게 보였던 거겠지. 내가 벽이만큼 강했다면 왜 무과가 아닌 문과를 지원했겠어?”
맞는 말이었다.
남궁벽을 이길 정도의 실력자가 뭐 가 아쉬워 무과가 아닌 문과를 택했 겠는가.
하지만 여창위는 납득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밤이라서 잘못 보았다? 남들이라 면 그럴 수 있지만 내 경우엔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천통안을 익혔으니까’
여창위는 소림 속가문의 하나인 숭 산검문의 후계자였다. 숭산검문은 마천과의 전쟁 당시에 본산인 소림 을 도와 전장에서 맹활약을 했었다.
하지만 그 활약이 전쟁이 끝난 뒤에 는 독으로 돌아왔다. 고수라 칭할 만한 이들이 모두 전장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이후 숭산검문은 이 름뿐인 무가로 전락해 버렸다.
현재 숭산검문에 전해지는 무공은 보리심공과 달마삼현검 그리고 천통 안뿐이었다.
천통안은 천리안에서 파생된 안법 으로 야밤에도 사물의 모양을 훤히 분별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공능 을 자랑했다.
“자, 자, 쓸데없는 호기심은 그쯤 접어 두고 안으로 들어가자고.”
설우진이 여창위의 어깨를 거칠게 감쌌다. 그리고 더 말을 이을 새도 없이 방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숙부님, 오셨습니까?”
당세기가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가문의 어른이자 학관의 부회주인 당규철이 방문을 한 것이다.
“이번 쌍룡무회에 본관의 관도들도 참여키로 최종적으로 결정이 났다. 하니 당가의 이름을 드높일 수 있도 록 만전을 기하도록 해라.”
“염려 마십시오. 이번 쌍룡무회를 위해 오랫동안 실력을 가다듬어 왔 습니다. 상대가 누구든 지지 않을 자신 있습니다.”
“쯧쯧, 자신감이 넘치는 건 나쁘지 않다만, 과신은 금물이다. 우리가 널 내세웠듯 다른 유력 가문에서도 저 마다 자신 있는 패를 꺼내 들었다.”
당규철이 함께 명단에 올라간 이들 중 유의해야 할 상대로 소예상과 황 보군천, 북리환을 뽑았다. 당연한 얘 기겠지만 세 사람 모두 천자 조에 속해 있었다.
‘아직도 날 못 믿으시는 건가?’
당세기는 내심 섭섭함을 감추지 못 했다.
그간 숙부의 눈에 들기 위해 밤낮 으로 수련에 임했던 그였다. 한데 자신을 바라보는 숙부의 눈에는 여 전히 불신의 감정이 짙게 깔려 있었 다.
“비폭화우는 얼마나 익혔느냐?”
당규철은 조카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냉담하게 대화를 이었다. 비폭화우는 당가 최고의 절학으로 알려진 만천화우에서 파생된 암기술 이었다. 만천화우에 비해 초식이 단 순화되고 위력도 반감된 측면은 있 었지만 그 자체로도 충분히 무서운 절학이었다.
“한 달 전에 팔 성의 경지를 밟았습니다.”
“음, 네 형에 비해 여전히 한발씩 늦는구나. 뭐, 그래도 팔 성의 비폭 화우라면 쌍룡무회에서의 성적은 걱 정할 필요가 없겠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됐다. 어차피 네 역할은 차기 가 주가 될 네 형을 옆에서 보좌하는 것이니.”
당세기의 얼굴 표정이 딱딱하게 굳 어졌다. 당규철의 입을 통해 다시 한 번 자신의 위치를 뼈저리게 느낀 것이다.
“난 이만 가 보마. 쌍룡무회가 얼 마 남지 않았으니 몸 관리에 유념토록 해라.”
제 할 말만 하고 당규철은 그대로 방을 나섰다.
그가 떠나고 난 뒤 분에 못 이긴 당세기가 책상에 있던 화병을 문에 던졌다.
그 충격에 화병은 산산이 부서졌고, 부서진 파편 사이로 모란이 애 처롭게 고개를 떨궜다.
“이게 얼마만이지? 못 본 새, 신 수가 훤해졌군. 역시 속세의 물이 좋기는 좋은 모양이야.”
서안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등 천루.
깔끔하게 흑색 경장을 차려입은 미 청년이 위가렴에게 말을 걸어왔다. 나이는 위가렴 쪽이 한참이나 많아 보이는데도 그의 말투는 거침이 없 었다.
“진추성, 그놈의 주둥이는 여전히 경박하구나.”
“후훗, 그러는 너야말로 너무 무게 잡는 거 아니야? 누가 보면 네가 회주인 줄 알겠어!”
가벼움 속에 날카로움이 번뜩였다. 그 속내를 이해했는지 위가렴의 얼 굴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아아, 그렇게 정색할 것 없어. 그 냥 오랜만에 만난 친우에게 건네는 농담일 뿐이니까.”
진추성이 친근하게 다가와 위가렴 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겼다. 하지만 위가렴은 눈살을 찌푸리며 대번에 그의 손목을 잡아채 억지로 밀어냈 다.
“언제고 그 입 때문에 크게 경을 칠 날이 올 것이다.”
“지껄이라고 있는 게 요 입인데 나 중 일이 무서워 가만히 놔둘 순 없 지. 너야말로 속에 담아 두고 있는 말 삭이지 말고 가감 없이 얘기해. 그거 오래되면 상하고 똥내 나.”
진추성이 유들거리는 말투로 위가 렴의 속을 긁었다.
위가렴은 한껏 상기된 얼굴로 허리 에 손을 가져갔고 여차하면 검을 뽑 아 들 기세였다.
“자네들은 여전하구만 그게 다 젊 다는 증거일 테지.”
일촉즉발의 순간.
해천인이 두 사람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출현에 두 사람은 황급히 허리를 굽혔다.
“해공,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진추성이 친근하게 안부를 물어 왔다.
“쓸데없이 일을 많이 벌여 놔서 그 런지 아플 새가 없었네. 자네야말로 아버님의 병세는 어떠신가?”
“해공께서 보내 주신 약 덕분에 많 이 좋아지셨습니다. 의원 말로는 한 두 해 정도만 더 고생하면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실 수 있을 거라 했습니다.”
“그 얘길 들으니 한결 마음이 가벼 워지는군. 괜히 병간호에 바쁜 자네 를 불러들인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무슨 그런 말씀을, 해공이 아니었으면 아버님께선 진즉 제 곁을 떠나 셨을 겁니다. 언제든 제 힘이 필요 하시면 불러 주십시오.”
“허허, 그 말을 들으니 절로 힘이 나는군. 자, 이제 본격적으로 일 얘 기를 나눠 보세.”
해천인이 두 사람을 자리로 안내했다.
그들이 머무는 방엔 날이 새도록 불이 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