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3권 – 7화 : 철사자회 (4)
철사자회 (4)
“자넨 이번 쌍룡무회에 누가 우승 할 것 같나?”
“흠, 워낙에 쟁쟁한 후보들이 참가 하다 보니 고르기가 쉽지 않네. 차 기 검신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남 궁비, 주먹 하나면 무서울 게 없다 는 황보각, 그리고 한 자루의 칼로 하늘도 쪼갠다는 사도명. 누가 우승 을 하더라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네.”
“허허, 자네, 너무 중천오가 쪽으로 무게가 쏠려 있는 것 아닌가? 이번 쌍룡무회엔 그 셋 못지않은 사파 쪽 고수들도 대거 참가를 하네. 대표적 인 인물로 이도류를 귀신같이 쓴다 고 알려진 쌍검귀 고추월과 백 근짜 리 철부를 공깃돌처럼 다룬다는 패 력부 만상호를 들 수 있지.”
쌍룡무회를 앞두고 서안 일대의 주 루는 발 디딜 틈 없이 크게 붐볐다. 강호 최고의 축제를 구경코자 전국 에서 몰려든 무사들 때문이었다. 덕분에 서안의 경제는 큰 호황을 맞이했다.
주루나 객잔은 말할 것도 없고 엉 뚱하게 일품점까지 매출이 크게 늘 었다. 그 이면에는 여자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사내들의 쓸데없는 자존심이 크게 작용했다.
“죄송합니다, 소점주님, 갑자기 주 문 물량이 늘어나는 통에 도저히 시 일을 맞출 수 없어서…….”
바쁘게 손을 놀리고 있는 설우진 앞에 풍채 좋은 중년 사내가 안절부 절못하고 서 있었다. 그는 앞서 당 가의 무사들에게 납치를 당해 고초 를 겪은 바 있는 서안 지점장 황태 성이었다.
“공짜로 일해 주는 거 아니니까 그 렇게 미안한 표정으로 쳐다볼 것 없 어요. 내가 일한 만큼 철저히 보수 를 받아 갈 생각이니.”
“아이고, 보수라면 걱정 마십시오. 소점주께서 속도만 좀 내 주신다면 수익금의 절반을 드리도록 하겠습니 다.”
황태성이 수익금의 오 할을 보수로 약속했다.
점장으로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 만 그는 자신의 판단을 믿었다.
‘소점주님은 한때 무한에서 신의 손으로 불릴 정도로 뛰어난 자수 솜 씨를 자랑했지. 이 점을 부각시킨다 면 평소보다 배 이상 비싼 가격으로 도 분명 불티나게 팔려 나갈 거야.’
황태성은 일품점이 무한 일대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을 때 업무차 무한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당시 일품점 앞은 옷을 사기 위해 몰려든 이들로 크게 북적였다. 그리 고 바로 그때 충격적인 장면을 목도 했다. 옷을 사려는 사람들끼리 경쟁 이 붙어 원래 팔고자 했던 가격보다 높은 가격에 옷이 팔린 것이다.
‘소점주님이 아무리 속도를 낸다고 해도 이틀 사이에 만들어 낼 수 있 는 옷의 양은 한계가 있어. 많아 봐 야 다섯 벌 정도일 텐데 그 정도로 는 기대만큼의 수익을 내기 힘들 거 야. 하지만 그 다섯 벌을 특별하게 만든다면 얘기는 달라지지.’
황태성은 무한에서 보고 느꼈던 점 을 십분 활용해 새로운 판매 수단을 고안해 냈다.
그것은 바로 설우진의 작품을 한정 판으로 홍보해 판매하는 방식이었 다. 한정판은 판매 수량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구매자들 사이에 자연 스럽게 경쟁이 붙을 수밖에 없었다. 황태성이 나가고 설우진은 홀로 작 업실에 남아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 로 바늘을 놀리기 시작했다.
그는 황룡학관에 입관한 뒤에도 틈틈이 자수를 놨다. 자수를 놓는 것 자체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그보 다는 벽뢰진천을 성장시키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컸다.
자수와 뇌기는 언뜻 보면 전혀 궁 합이 안 맞아 보이는 조합이지만 의 외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부분이 많았다.
뇌기는 천지간에 가장 강한 기운답 게 거칠고 사나운 성질을 띠고 있었 고 그만큼 다루기도 힘들었다.
그런데 자수에 뇌기를 활용하기 시 작하면서 뜻밖의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뇌기의 거친 성질이 자수 를 통하면서 점점 순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순화는 뇌기가 본연 의 성질을 잃었다는 게 아니라 설우 진이 자유자재로 뇌기의 강약을 조 절할 수 있게 된 것을 뜻한다.
“간만에 제대로 몸 좀 풀어 볼까.”
설우진은 단전에 머물러 있는 뇌기 를 손끝으로 끌어모았다. 예전 같았으면 거칠게 반항했을 뇌기가 지금 은 말 잘 듣는 강아지처럼 그가 의 도하는 대로 바늘 끝에 머물렀다. 뇌기를 머금은 바늘은 비단 위를 자유롭게 유영했다.
밑그림이 그려져 있지 않은데도 그 의 손놀림은 거침이 없었다. 그 뒤 로 이각여의 시간이 흘렀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놀랍게도 비단에는 운 무 사이로 두 마리의 용이 서로의 몸을 휘어 감으며 하늘로 오르고 있 었다. 그리고 용들은 각각 푸른빛의 여의주와 붉은빛의 여의주를 머금고 있었다.
‘쌍룡무회를 상징하는 두 마리의 용. 그 의미를 아는 자들이라면 앞 다퉈 사려 들겠지.’
설우진은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 를 머금으며 다음 옷으로 손을 가져 갔다.
다음 날 아침.
작업실을 찾은 황태성은 방 한쪽에 수북이 쌓여 있는 옷들을 보고 자신 의 눈을 의심했다.
하루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 다. 많이 만들어 봐야 다섯 벌 정도가 한계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눈앞에 쌓여 있는 옷들은 족히 스무 벌이 넘어 보였다.
“서, 설마 이 옷들을 다?”
황태성이 놀란 마음을 추스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간만에 힘 좀 썼어요. 급하게 만 드느라 마감은 좀 대충했는데, 그 정돈 이곳의 점원들로 충분히 손을 볼 수 있을 거예요.”
“제가 한번 봐도 될 까요?”
“얼마든지.”
설우진이 완성된 옷을 한 장 건넸 다. 황태성은 조심스럽게 옷을 받아 들고 등에 새겨진 자수부터 확인했 다.
바느질 상태, 수놓인 문양의 정교 함, 바탕이 되는 옷감과의 조화까지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었다.
특히 한 올 한 올 섬세하게 표현 된 자수는 두 마리의 용이 금방이라도 승천할 듯한 생동감을 안겨 줬다.
‘신의 손이라는 수식어는 과장된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건 뭐, 소 문보다 더 대단하군.’
황태성은 설우진의 솜씨에 혀를 내 둘렀다.
하루라는 짧은 시간에 이 정도의 완성도로 스무 벌이 넘는 옷을 만들 어 내다니.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가 않았다.
“열심히 팔아 봐요. 파는 건 그쪽 몫이니까.”
설우진이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러고 곧장 학관으로 향했다.
오늘은 쌍룡무회에 참가하는 관도들끼리 결의를 다지는 자리가 약속돼 있었다.
“누가 안 온 거지?”
“음, 백무영이 안 보이는데.”
“에이, 여기는 그 자식이 낄 자리 는 아니지. 중천회주라는 거창한 감 투를 두르고 있기는 하지만 무공 실 력은 형편없잖아.”
“하긴, 그 자식이 나가면 우리 학 관 망신이지. 천자 조에도 실력이 아닌 돈으로 올라온 놈이니.”
연회장으로 자주 쓰이는 청월관에 일단의 무리가 모여 있었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왼쪽 가슴에 천天 자가 수놓인 무복을 입고 있었다.
“백무영이 선발 명단에서 제외됐다면 나머지 자리에는 누가 들어오는 거지?”
황보군천이 모두에게 물음을 던졌 다. 그는 황보세가의 막내로 육척 에 육박하는 큰 키에 쇳덩이처럼 단 단한 근육을 온몸에 달고 있었다.
“아무래도 천자 조만으로 명단을 꾸미기는 뭐하니 구색 맞추기 용도 로 지자 조나인 자조에서 나머 지 인원을 뽑지 않았을까?”
곱상한 외모의 북리환이 의견을 냈 다.
그는 북리세가의 셋째로 당세기, 소예상과 더불어 천자 조 내에서 수석의 자리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두 사람은 동심계를 운영하진 않아 도 암암리에 그들을 따르는 이들이 상당했다.
“음, 그러고 보니 올해 인 자 조에 는 남궁가에서 온 검귀가 있었지.”
남궁벽의 이름이 거론되자 모두의 얼굴에 다양한 감정들이 떠올랐다. 어떤 이는 호기심을, 또 다른 이는 노골적인 경계심을 드러내기도 했 다.
바로 그때 그 장본인이 청월관 안 으로 들어섰다. 이곳에 오기 전에 한바탕하고 온 모양인지 무복이 땀 에 절어 있었다.
남궁벽은 자신에게 모인 시선을 가볍게 무시하고 구석 자리로 가서 조 용히 앉았다.
빠르게 굳어지는 얼굴들. 불편한 심기가 표정에서 그대로 엿보였다.
“어이, 후배, 선배들을 봤으면 인사 정도는 해야지!”
발끈한 황보군천이 남궁벽을 불렀다.
말은 점잖게 하고 있지만 그의 두 눈은 이미 시뻘건 불을 뿜고 있었 다.
하지만 남궁벽은 그의 말을 깔끔히 무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