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3권 – 9화 : 쌍룡무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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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왕전생 3권 – 9화 : 쌍룡무회 (2)


쌍룡무회 (2)

북리환이 설우진에게 먼저 다가섰 다.

그는 당세기처럼 거만하지도 백무 영처럼 성급하지도 않았다.

‘호오, 이 녀석은 좀 다를지도 모 르겠는데. 아까는 자세히 안 봐서 몰랐는데, 기운을 몸 안에 완벽하게 갈무리했잖아. 저 정도 경지라면 절 정의 끝자락에 들어섰다고 보는 게 맞을 테지.’

설우진은 북리환의 몸 안에서 맹렬하게 휘돌고 있는 기운을 읽어냈다. 그 기운은 밖으로 드러난 기운 보다 훨씬 크고 짙었다.

“인자조의 설우진입니다.”

‘저 녀석이 무슨 바람이 분 거지?” 

남궁벽이 의외라는 표정으로 설우 진을 바라봤다. 그의 기억 속에 설 우진은 언제나 선배들에게 싸가지없 는 후배였다. 저토록 공손하게 인사 를 건네는 경우는 본 적이 없었다. 

“너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었다. 신입치고는 실력이 꽤 대단하다지?” 

“뭐 누구한테 맞고 다니지 않을 정 도는 됩니다.”

설우진은 자신의 실력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 누구에 우리도 포함되나?”

북리환이 직설적으로 물었다. 자연 스럽게 모두의 시선이 설우진의 입 으로 모였다. 대답 여하에 따라서 싸움으로 비화될 수도 있었다. 잠시 후 설우진의 입이 열렸다.

“제가 말한 누구는 황룡 학관에 속 해 있는 모두를 뜻합니다.”

일순간 방 안에 깊은 침묵이 감돌 았다. 자신들의 상상을 넘어서는 답 이 설우진의 입에서 나온 것이다. 

“저, 미친놈.”

당세기가 그동안 꾹 눌러 왔던 속 내를 입 밖으로 내비쳤다. 그에 반해 북리환은 침착하게 대화를 이어 갔다.

“본관에는 관도들을 제외하고도 수 십에 이르는 무학사님들이 계신다. 정녕 그분들하고도 싸워 이길 수 있 다는 말이냐?”

“싸울 수만 있다면 가능합니다.” 

설우진은 지속적으로 강한 자신감 을 내비쳤다.

“북리환, 저 자식 말장난에 놀아날 필요 없어. 어차피 증명하지 못할 걸 알고 입으로만 떠벌리는 거야.”

당세기가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 었다. 하지만 북리환은 손을 들어 그의 말을 끊은 후 뜻밖의 제안을 했다.

“천자 조에 본가에서 온 무학사가 한 명 있는데 붙어 볼 의향 있나?”

“강자와의 싸움이라면 마다할 이유 가 없지요.”

“그렇다면 쌍룡무회 이후에 자리를 한번 마련하지.”

“그냥 싸우면 아무래도 흥미가 떨 어지지 않겠습니까? 서로 조건을 걸죠.”

설우진이 내기를 제안했다.

“나한테 원하는 게 있나?”

“북리세가의 칼을 보여 주십시오.” 

“본가의 칼을 보여 달라? 흥미로운 조건이군. 좋아. 본가 출신의 무학사 를 꺾는다면 그 조건을 들어주지. 대신 네가 진다면 내 밑으로 들어와 라.”

북리환이 마지막에 숨은 속내를 드러냈다.

그 조건을 설우진도 흔쾌히 수락했다.

“날짜가 정해지면 따로 기별을 하도록 하지.”

“연락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둘은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냐? 무학사 와 붙겠다니?”

“왜, 내가 못 이길 것 같아?”

“결과를 걱정하는 게 아니다. 입장 을 바꿔 생각해 봐라. 네가 무학사 의 입장이라면 어떨 것 같냐? 천 자 조도 아니고 인자 조의 애송이 가 겁도 없이 싸움을 걸어온다면.”

“뭐, 기분 더럽겠지.”

“바로 그거다. 너와 무학사의 대결 이 성사된다면 앞으로 학관 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골치가 아파질거다.”

남궁벽은 진심 어린 충고를 했지만 설우진은 태연자약했다.

“후훗, 벽이 많이 컸네, 내 걱정도 하고. 근데 넌 지금 중요한 사실을 하나 간과했어.”

“……?”

“너와 나의 결정적인 차이가 바로 이거지.”

설우진이 상의 왼편에 꽂혀 있는 휘장을 가리켰다. 휘장에는 검은색 바탕에 흰색 수실로 문文이라는 글자가 수놓여 있었다.

‘아, 이 녀석……… 문과생이었지.’

남궁벽은 휘장을 보고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그는 설우진이 자신과 다른 문과생 이라는 걸 종종 잊어버렸었다. 수업 이 끝난 후에 진행되는 대련이 문제 였다. 그 대련에서 설우진은 무과에 서도 손꼽히는 성적을 거두고 있는 남궁벽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였다.

무과생보다 더 싸움을 잘하는 문과생.

어느 누가 착각하지 않겠는가.

“이왕 말이 나온 김에 문과는 언제까지 다닐 셈이야? 문과 성적도 별로라면서.”

“사내새끼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베어야지.”

“그런 발상 자체가 문과엔 안 어울 린다고. 괜히 몸에 맞지 않는 옷 억 지로 껴입으려 하지 말고 그쯤에서 맞춤옷으로 갈아입지그래!”

남궁벽이 전과를 강력히 추천했다. 황룡학관은 일 년 차 수업 과정 마지막에 전과의 기회가 주어졌다. 물론 기본적인 시험은 치러야 했다. 하지만 남궁벽을 능가하는 싸움 실 력을 지닌 설우진이 전과 시험에 떨 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 방했다.

그러나 설우진의 의지는 확고했다.

“인마, 난 누가 뭐라 해도 끝까지 문과생으로 남을 거야.”

‘그리고 낭왕은 무식했다라는 오명을 깔끔히 털어 낼 거야.’


쌍룡무회의 무대가 되는 태평장에 는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몰려들 기 시작했다. 보다 가까운 자리에서 비무를 보기 위함이었다.

쌍룡무회의 첫날은 앞서 예고한 대 로 신인전이 펼쳐질 예정이었다. 비무대 주변에 하나둘씩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기 시작했다. 비무대 가 바라보이는 정면 쪽이 가장 경쟁이 치열했다.

한편, 참가 선수들은 비무대 뒤편 에 마련된 대형 막사 안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경기를 코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라 그런지 다들 얼굴이 상기돼 있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한 사람.

설우진만은 막사 귀퉁이에서 고개 를 한껏 뒤로 젖히고 단잠에 빠져 있었다. 지난밤에 자스민과 보낸 뜨 거운 밤이 문제였다.

“저 자식 이대로 둘 거야? 하늘 같은 선배들이 눈앞에 있는데 퍼질 러 자다니. 저건 자유분방한 게 아 니라 개념이 없는 거야.”

당세기가 늘어지게 잠을 자고 있는 설우진을 행태를 성토했다. 이에 몇 몇 관도들이 동조해 함께 목소리를 높였다.

“세기 말이 맞아. 이대로 두면 다 른 후배들도 우릴 무시하게 될거야.”

“어떤 식으로든 본때를 보여 줘야 해.”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하지만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설우진의 코 고는 소리는 점점 높아져만 갔다.

결국 참다못한 당세기가 설우진 쪽 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 그 앞 에 서서는 가볍게 발끝을 차올렸다. 노리는 곳은 설우진의 발목 위 정강이였다.

‘한 대 맞으면 정신이 번쩍 들거다.’

마지막 순간에 발끝에 힘이 실렸다.

감정이 다분히 실린 공격이었다.

잠시 후 당세기의 발끝과 설우진의 정강이가 맞닿았다.

뚜둑.

섬뜩한 소리가 났다. 다들 설우진 이 신음을 내며 깨어날 것이라 예상 했다.

한데 신음을 토해 낸 쪽은 설우진 이 아니라 당세기였다.

‘이, 이 자식, 다리에 무슨 짓을 한 거야? 엄지발가락이 완전히 나갔잖아.’

당세기는 오른쪽 발을 부여잡고 애 써 아픔을 삼켰다. 동기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신음을 뱉어 낸 그 순간부터 이미 그는 망신살이 뻗친 상태였다. 

“호호, 제 주제도 모르고 후배를 가르친다고 나서더니 꼴좋네. 그러 게 평소에 근력 운동 좀 하지 그랬 어. 매일 앉아서 독이나 암기만 만 지고 있으니까 자는 애 하나 못 깨 우는 거잖아.”

소예상이 노골적으로 당세기의 행 동을 비웃었다.

수치심에 당세기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소예상, 입 조심해. 방금 전엔 내 가 잘못한 게 아니라 이 녀석이 다 리에 꼼수를 부린 거야.”

“무슨 꼼수?”

“녀석의 정강이를 한번 봐 봐. 아 마 무쇠 철판이 숨겨져 있을 거야. 그게 아니라면 내 발가락뼈가 부러 졌을 리 없어.”

당세기는 설우진이 신성한 비무에 서 꼼수를 부렸다 주장했다. 신체의 일부에 철판을 숨기는 행위는 비무 대회에서 심심찮게 발생했다. 철판 을 숨기면 특정 부위의 방호력을 끌 어올릴 수 있어서다.

“그게 사실이라면 징계감이잖아.” 

황보군천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북리환이 설우진에게 호감을 표시한 이후로 설우진에게 노골적인 적의를 드러내고 있었다.

“내 말이 그 말이야. 실제로 그런 꼼수를 부린 거라면 쌍룡무회의 명예를 더럽힌 행위니 마땅히 징계위원회에 회부해야 한다고 봐.”

당세기가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북리환이 당사자를 깨워서 물 어보자 제안했다. 모두가 동의했고 남궁벽이 다가가 설우진의 목 언저 리로 손가락을 가져갔다.

모두가 의아하게 쳐다보는 가운데 남궁벽이 간지럼을 태웠다. 그 순간 설우진이 움찔하며 눈을 떴다.

“뭐야, 벌써 경기가 시작된 거야?” 

설우진이 주변을 휙 둘러보더니 다 시 남궁벽과 시선을 맞췄다. 남궁벽 은 가볍게 고개를 가로젓고는 옆쪽의 당세기를 검지로 가리켰다.

절로 찌푸려지는 이맛살.

설우진이 퉁명스러운 어투로 물었다.

“선배, 또 무슨 일이죠?”

“네놈의 정강이를 좀 확인해 봐야겠다.”

“다짜고짜 그게 무슨………….”

‘개소리죠?’

“모른 척 시치미 떼지 마라. 네놈 이 정강이에 철판을 숨긴 사실을 다 알고 있다.”

당세기는 자신이 정강이를 후려 찬 사실을 밝히며 철판을 내보이라 강경하게 요구했다.

“그러니까, 제가 쌍룡무회에서 좋 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정강이에 철판을 숨겼다 그 말이죠?”

“그래, 아직 대회 전이니 지금이라도 순순히 사실을 밝힌다면 가벼운 징계 정도로 끝낼 수 있다.”

“철판이 없으면 어쩌려고요?”

“없을 리 없다.”

당세기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다.

“그럼 까 보시죠, 있는지 없는지. 대신 없으면 선배님도 저한테 딱 한 대만 맞으시죠.”

설우진이 오른쪽 정강이를 당세기 앞으로 내밀었다.

‘뭐야, 왜 저렇게 당당하지?’

당세기는 살짝 당황한 눈치였다.

발가락에서 전해져 오는 통증은 분명 철판이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설우진의 눈빛은 흔들림이 전혀 없었 다.

하지만 기호지세라,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었다.

결국 당세기는 설우진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설우진의 왼쪽 바짓단을 조심스럽게 위로 추켜올렸다.

당연히 설우진의 정강이엔 아무것도 없었다.

“자, 확인되셨죠? 그럼 아까 약속 한 대로.”

설우진이 기습적으로 당세기에게 달려들었다. 깔끔하게 맞아 주겠다 는 아까의 말과 달리 그는 빠르게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그가 그리 행동할 줄 뻔히 예상하고 있던 설우진은 한 박자 빠르게 움직여 당세기 의 왼쪽 정강이를 오른발로 툭쳤 다.

당세기는 순간적으로 찌릿한 느낌 이 들었다.

하지만 뼈가 부러지거나 금이 갈 만한 통증은 아니었다.

‘이 자식 일부러 약하게 친 건가?’ 

당세기는 의아한 표정으로 설우진 을 쳐다봤다. 그런데 입꼬리가 한껏 말려 올라간 모습이 결코 선의로 비 춰지지는 않았다.

사소한 소란이 마무리된 뒤 본격적 인 비무에 앞서 대진표를 짜기 위한 추첨이 진행됐다.

공교롭게도 설우진은 당세기와 같 은 조가 됐다.

“꼭 일회전 통과해라. 모두가 보는 앞에서 널 내 발아래 무릎 꿇릴 것 이다.”

‘미안하지만 그건 어려울 것 같은 데. 네놈은 일회전도 통과 못 하고 보기 좋게 떨어질 거거든.’

설우진은 한바탕 선전포고를 하고 비무대로 향하는 당세기의 뒷모습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자, 받게. 이번 쌍룡무회에 참여키로 한 주요 무사들의 명단이네.”

해천인이 진추성에게 한 장의 종이 를 건넸다. 그 안에는 무사들의 이름과 경기 날짜가 상세하게 적혀 있 었다.

“이들의 무공을 훔쳐 내란 말씀이시죠?”

“그러하네. 정사 양쪽에 인망이 두 터운 자들이니 분란을 일으키기기에 제격이지.”

“무공을 훔쳐 낸 후 그자들은 어찌 합니까?”

“모두 죽이게. 흔적이 남아선 안될 일이네.”

“꽤나 괴로운 일이 되겠군요.”

항상 웃는 낯빛이던 진성의 얼굴 에 그늘이 번졌다.

“거짓된 하늘을 걷어 내고자 하는 일일세. 그 과정에서 피가 번지는 것이야 막을 도리가 있겠는가.”

“전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게 옳은 길인지.”

“자네 아버지는 평생 강호의 안녕 만을 위해 힘써 왔네. 한데 지금 그 에게 남은 것이 무엇인가? 산산이 부서진 단전과 병든 마음뿐일세.” 

해천인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옳고 그름이 가늠되지 않는다면 아무 생각 말고 내가 시키는 대로만 움직이게. 자네가 겪을 괴로움, 내가 대신 가져감세.”

“휴우, 알겠습니다. 일단은 해공께 서 원하시는 대로 움직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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