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수 출현 (1)
“자네, 괜찮나?”
자욱한 먼지구름 속.
황유하가 설우진의 어깨를 흔들었다.
“속 울렁거리는데, 그만 좀 흔드시 죠.”
“목소리를 들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겠군. 한데, 방금 전 그 공격은 뭔가?”
“폭뢰라는 기술입니다. 뇌기를 응 축시켜 한꺼번에 터뜨리는 것인데, 그 위력이 강한 만큼 몸에 가해지는 충격도 상당합니다.”
퉤.
황유하의 물음에 답하면서 설우진 은 입안에 고여 있는 피가래를 뱉어 냈다.
급하게 펼친 폭뢰는 그에게 적잖은 내상을 안겨 줬다.
이를 방증하듯 숨을 내쉴 때마다 가슴이 찌릿했고 단전 부근이 송곳 으로 찌르는 것처럼 아팠다.
충격이 가해질 때 본능적으로 강철 무의를 운용했기에 망정이지 그리하 지 않았다면 지금쯤 바닥에 쓰러졌 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놈들은 죽었겠지?”
설우진은 가슴을 감싸 쥐며 전면을 살폈고 광대로 분해 있던 자객들은 주변에 널브러져 있었다.
특히 폭발의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 던 자객 우두머리는 몸통만 덩그러 니 남겨져 있었다.
“고맙네. 자네 덕분에 이 늙은이가 목숨을 연명하게 됐으이.”
황유하가 설우진의 어깨를 잡으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한데, 설우진은 굳은 표정으로 대 화를 이었다.
“아직 안심하기엔 이릅니다. 놈들 이 굉천뢰까지 준비해 온 걸 보 면……… 이대로 상황이 종료되진 않 을 겁니다.”
설우진은 자객들의 죽음을 확인하 고도 마음을 놓지 못했다. 자객들의 배후에 수호세가가 있음을 알기 때 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사방으로 흩어지는 먼지구름 사이로 일단의 무리가 달 려 나왔다.
그들의 얼굴에는 지옥도에나 등장 할 법한 섬뜩한 형상의 악귀 탈이 쓰여 있었다.
‘대체 어디서부터 일이 틀어진 거 지? 내부에 공조자를 심고 굉천뢰까 지 동원했는데도 황유하 저 늙은이 를 해치우지 못하다니.’
악귀탈 너머에서 서슬 퍼런 적의가 번뜩였다.
그 눈빛의 주인은 이번 일을 암중 에서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 위가렴 이었다.
“내가 제갈명 그 늙은 너구리를 너 무 얕봤어. 설마 비밀 호위를 시종 으로 위장해 숨겨 뒀을 줄이야. 한 데 누구지? 고희연에 참석하는 고수 급 실력자들은 모두 그 위치와 동선 을 파악해 두고 있었는데………….”
위가렴이 의아한 시선으로 설우진 을 바라봤다.
설우진의 얼굴은 역용술을 통해 이 십대 중반의 평범한 남자의 얼굴로 변해 있었다. 자신의 정체가 드러날 것을 우려해 전생에서 익힌 재주를 다시 한 번 활용한 것이다.
‘이제 와서 놈이 누구든 상관할 바 아니지, 어차피 현무십령의 손에 죽 음을 맞게 될 테니.’
-환시술이 유지되는 건 앞으로 반 각여 정도. 그 안에 무슨 일이 있어 도 놈들을 해치워야 한다. 힘을 아 끼지 말고 모두 쏟아부어라.
위가렴이 현무십령에 척살령을 내 렸다.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현무십령은 유령과도 같은 신법으로 공간을 뛰 어넘었다. 순식간에 좁아진 거리. 설우진은 두 눈에 잔뜩 힘을 주며 발도세를 취했다.
잠시 후, 현무십령의 검이 연환해서 날아들었다.
마치 한 사람이 열 자루의 검을 휘두르는 것처럼 그 움직임은 유기적이면서도 날카로웠다.
카카캉!
설우진은 정신없이 날아드는 검격 을 야수안을 활용해 최대한 흘려보 냈다.
뇌기가 고갈된 상태에서 정면으로 맞서는 건 무리라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흘리는 것만으로도 단전에 적잖은 충격이 가해졌다. 목울대를 타고 피가 넘어오는 것이 이대로는 얼마 못 버틸 것 같았다.
‘빌어먹을. 이렇게 발이 묶여선 축뢰를 쓸 수가 없는데………….’
설우진은 가슴이 답답했다.
축뢰는 단시간에 내기를 채울 수 있는 공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 공능을 사용하기 위해선 한 가지 충족되어야 할 전제 조건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격렬한 신체 의 움직임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점 이다.
한데 지금 그는 철저히 발이 묶여 있었다. 등 뒤에 커다란 혹을 달고 있었기 때문이다.
‘설우진, 정신 차리자!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고 있으면 가 죽을 얻어서 나온다고 했다. 분명 뭔가 방법이 있을 거야.’
설우진은 정신없이 검을 흘려보내면서 전생의 기억을 되짚었다. 무수한 실전 경험 속에서 답을 찾고자 한 것이다.
잠시 후, 무슨 좋은 생각이 떠올랐 는지 설우진은 사방에서 짓쳐 드는 검을 거칠게 앞으로 밀어낸 뒤 살짝 몸을 수그렸다. 그리고 외쳤다.
“업히세요!”
“설마, 날 업고 싸우겠다는 겐가?”
“지금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선 우리가 한 몸이 되어 움직이는 수밖 에 없어요.”
설우진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망설일 시간이 없다는 뜻이었다.
이에 황유하는 그의 등에 올라탔고 그때부터 설우진은 활발하게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황유하의 무게가 더해져 두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지만 이를 악물고 참 아 냈다.
그 와중에 현무십령의 공격은 더 거세졌고 이에 설우진은 야수안을 극한으로 발휘해 치명상을 피해 갔 다.
지친 몸으로 공격을 다 피할 순 없으니 최소한의 피해로 시간을 끌 고자 한 것이다. 때문에 그의 몸은 순식간에 피로 물들었고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처럼 아슬아슬해 보였다.
“그만하지. 이대론 자네가 죽어.”
등에 업혀 있던 황유하가 다급히 설우진을 말렸다.
“후훗, 그런 소리 마세요. 돈을 받기로 한 이상 중도에 도망칠 수는 없습니다.”
갑자기 설우진의 기세가 확 바뀌었다.
축뢰의 발동 요건이 갖춰지면서 단 전에 뇌기가 들어찬 것이다.
수비에서 공세로 전환한 그는 정면 에서 날아드는 검을 피하지 않고 천 뢰도에 폭뢰를 실어 맞받아쳤다. 검과 도가 맞물리는 순간, 폭뢰는 강한 폭음을 내며 검을 밀어냈다.
그 여파로 한 몸처럼 움직이던 현무십령의 연계가 끊겼다.
그 순간 설우진의 눈빛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그는 먹잇감을 노리고 달려드는 한 마리 매처럼 순간적인 쇄도를 통해 멈칫하는 현무십령 중 하나를 공격 했다.
현무십령은 검을 휘둘러 정면에서 쇄도하는 천뢰도를 옆으로 쳐 내려 했지만 힘에 밀렸다.
결국 검을 저만치 밀어낸 천뢰도가 훤히 드러난 현무십령 중 하나의 가 슴을 사선으로 갈랐다.
가슴에서 뿜어져 나온 뜨거운 핏물 이 그대로 설우진의 얼굴을 적셨다.
‘이건 말도 안 돼! 본문의 현무십 령이 어찌 저리 저 한 놈한테 휘둘 릴 수 있단 말인가?’
뒤쪽에서 여유 있게 현무십령의 싸 움을 지켜보고 있던 위가렴의 손이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초조함으로 땀이 차오른 것이다.
그는 현무십령이 밀릴 거라고는 꿈 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현무십령은 현무문의 미래를 책임질 재능 있는 후기지수들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 이다.
한데 믿었던 현무십령이 속수무책 으로 밀리고 있었다. 불리한 와중에 도 반전을 꾀하려 열심히 움직이고 는 있었지만 번번이 뇌기를 머금은 칼날에 틀어막혔다.
‘현무십령이 감당하기엔 버거운 상 대야. 그리고 무엇보다 시간이 없어?
위가렴은 현무십령을 뒤로 물리고 검을 뽑아 들며 앞으로 나섰다.
시리도록 차가운 기운이 사위에 번 졌다.
‘드디어 우두머리가 나서는 건가.’
설우진의 시선이 위가렴의 얼굴에 꽂혔고 한눈에 만만치 않은 상대라 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특히 오른손에 들린 청백의 검이 위협적 으로 느껴졌다.
“늙은이와 함께 네놈의 숨통도 끊어 주마.”
위가렴이 서슬 퍼런 일갈을 내지르 며 전면으로 짓쳐 들었다. 가볍게 내딛는 걸음인데도 설우진과의 간격은 순식간에 좁아졌다.
검이 닿을 수 있는 범위에 이르자 위가렴은 쾌속하게 검을 휘둘렀다. 설우진은 반사적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정면으로 막으면 위험하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든 것이다.
간발의 차이로 위가렴의 검이 옷깃 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 순간 옷깃이 얼어붙었다.
‘무슨 이런 무지막지한 냉한지검이 있어?’
설우진은 등골이 오싹했다. 상대는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한 강자 였기 때문이다.
튼실한 기본기는 말할 것도 없고 살갗을 따갑게 만드는 냉한지기는 그 자체로 매우 위협적이었다.
위가렴은 지속적으로 공격을 이어 갔고 검 끝에서 흘러나오는 냉기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짙어졌다.
‘빌어먹을, 몸의 반응이 조금씩 늦 어지고 있잖아.’
공방이 격화되는 동안 설우진의 얼 굴엔 초조함이 번졌다. 사위에서 뻗 쳐 오는 냉한지기의 영향으로 몸놀 림이 전에 비할 데 없이 둔탁해진 것이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등에 업혀 있 는 황유하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냉한지기의 영향으로 호흡을 잇는 데 어려움이 생긴 것이다.
이에 설우진은 단전의 뇌기를 천뢰도 쪽으로 끌어 모았다. 열심히 검을 피하며 축뢰를 운용한 터라 뇌기 의 양은 부족하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반격을 가할 틈이 없다는 데 있었다.
위가렴은 천뢰도가 조금이라도 움 직일라치면 잽싸게 검을 뻗어 냉한 지기를 뿌렸다. 교묘하게 흐름을 끊 는 그 공격에 설우진은 번번이 반격 의 때를 놓쳤다.
그사이 뒤로 물러나 있던 현무십령 이 설우진의 등 뒤를 점거했다. 위 가렴의 공격을 피하는 데 신경이 쏠 려 있던 설우진은 미처 그들의 움직 임을 막지 못했다.
‘빌어먹을, 이대론 호위들이 정신을 차리고 달려오기 전에 내가 먼저 당하겠어. 이젠 손해를 감수하더라 도 정면으로 맞부딪쳐야 해.’
설우진은 머릿속으로 육참골단의 수를 떠올렸다.
육참골단은 자신의 살을 내주고 적 의 뼈를 끊는다는 뜻으로 무력이 약 한 낭인들이 위기의 순간에 자주 사 용하는 수법이었다.
그가 마음을 먹은 순간 위가렴의 검이 예리하게 옆구리로 파고들었 다.
설우진은 반사적으로 몸을 비틀며 그 반동을 이용해 앞쪽으로 신형을 튕겼다.
‘이놈이!’
예상치 못한 상대의 반격에 위가렴의 눈꼬리가 크게 떨렸고 눈 깜짝할새 두 사람의 신형이 교차했다.
카카캉!
두 자루의 도검이 맹렬하게 맞물리 면서 한쪽에서는 뇌기가 소용돌이치 고 다른 한쪽에선 냉기가 휘몰아쳤 다.
이때 두 사람의 대응이 갈렸다. 위가렴은 뇌기를 피해 뒷걸음질을 치는 데 반해 설우진은 오히려 앞으 로 더 치고 들어갔다. 물론 그 와중 에 냉기는 그대로 뒤집어써야 했다. 온몸이 얼어붙는 느낌.
하지만 설우진은 감각이 무뎌지는 가운데서도 이를 악물고 공격을 이어 갔다.
이에 당황한 위가렴은 순간적으로 발이 꼬였고 다급히 자세를 바로하 려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오른쪽 옆구리가 훤히 드러나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설우진은 그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굳어서 힘이 잘 들어가지 않 는 오른손에 뇌기를 밀어 넣어 위가 렴의 옆구리를 사선으로 갈랐다. 역한 노린내와 함께 붉은 피가 비 산했다.
위가렴은 옆구리를 움켜쥐고 믿기 지 않는다는 얼굴로 설우진을 바라 봤다.
“크큭, 억울해할 것 없어. 뒤를 바라보고 사는 놈은 앞만 보고 사는 놈을 절대 이길 수 없는 법이거든.”
“이, 이놈, 잘난 척하지 마라.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위가렴이 설우진의 등 뒤를 점하고 있던 현무십령에게 전음으로 공격을 명했다.
한데 어찌 된 일인지 현무십령은 설우진을 그대로 지나쳤다. 위가렴 이 발끈해 소리치던 그때 저편에서 맹 내 주요 고수들이 달려오고 있던 것이다.
그 안에는 천중오가와 가주들 그리 고 십팔 장로가 섞여 있었다.
“이걸로 끝났다고 생각하지 마라. 다음번에 만났을 땐 반드시 네놈의 목을 벨 것이다.”
위가렴은 청백검을 갈라진 옆구리 로 가져갔고 청백검이 내뿜는 냉기 에 피를 뿜어대던 상처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잠시 후 위가렴을 비롯한 현무십령 이 자리를 떴다.
“맹주님을 해하려던 놈들이다. 전 력으로 뒤를 쫓아라!”
모용황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검룡대에 명령을 내렸다.
검룡대는 맹 내 제일의 무력 조직 으로 숫자는 일백 명에 불과하지만, 그 한 명 한 명이 모두 절정 급의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털썩.
지원군이 온 것을 눈으로 확인한 설우진은 바닥에 힘없이 주저앉았고 그 모습을 본 모용황이 그에게 달려 왔다.
“자네, 괜찮은가?”
“전 괜찮으니 일단 맹주님부터 살 피시죠.”
설우진은 등 뒤에 있는 황유하를 손끝으로 가리켰다. 아까부터 숨소 리가 가늘어져 거의 끊기기 직전이 었다.
모용황은 얘길 듣고 황유하의 상태 를 확인한 후 다급한 표정으로 쌍장 을 등에 갖다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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