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8권 – 24화 : 승부수를 던지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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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왕전생 8권 – 24화 : 승부수를 던지다 (2)


승부수를 던지다 (2)

“추구하는 길이 다른데 어찌 함께 하겠습니까. 어르신, 지금이라도 마 음을 바꾸시지요. 그리하면 천하를 논하는 자리에 함께할 수 있을 겁니 다.”

위가렴이 달콤한 말을 늘어놨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해천인의 마음을 돌리 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래서 그는 오늘 몇 번이나 신추 명을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일부러 손을 쓰지 않았다. 정에 약한 해천인의 약점을 파고든 전략 이었다.

“좋다. 너희들 뜻대로 할 터이니 추명이는 놔주도록 해라.”

해천인이 어렵게 입을 뗐다. 위가 렴의 작전이 주효한 것이다.

“하하하! 잘 생각하셨습니다. 군사 님은 제가 직접 모시겠습니다.” 

위가렴이 해천인의 옆으로 다가와 그를 부축했다. 그리고 약속대로 수 하들을 뒤로 물렸다.

“몸조리 잘해. 다음엔 웃는 얼굴 로 보자고.”

위가렴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신추 명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신추명은 그의 비열한 미소에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도통 두 팔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잠시 후 두 사람의 모습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신추명은 홀로 남겨졌다. 

“하아, 이를 어찌해야 한단 말인 가? 군사님의 도움 없이는 사형이 뜻을 펼쳐 나가기 불가능하거늘…”

신추명은 해천인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역천회 내에서 적사호의 입지는 무 척 좁았다.

뒤늦게 문주위에 오른 데다 회 내 부에 힘이 되어 줄 조력자가 전무했다.

그런 상황에서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이는 군사인 해천인뿐이었다. 한데 그 마지막 희망을 위가렴이 앗아가 버렸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어둠 저편에 서 진득한 살기가 전해져왔다. 

‘역시, 날 살려 보낼 생각 따윈 없 었군.”

스릉.

스산한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그 리고 예고된 수순처럼 어둠 속에서 달빛에 반사된 시퍼런 검광이 그의 목덜미로 날아들었다.

‘끝인가.’

밀려오는 절망감에 신추명은 눈을 감았다.

“너무 포기가 이른 거 아닙니까?”

바로 그때, 낭창한 목소리가 귓가 에 전해졌다.

어딘가 모르게 귀에 익은 목소리, 신추명은 반사적으로 눈을 떴다. 바로 앞에 넓은 등판이 보였다. 그 리고 그 너머로 굵직한 손이 검날을 틀어쥐고 있었다.

‘손에 강기를 둘렀어. 본문에서도 저만한 무위를 보일 수 있는 사람은 사형과 장로들뿐인데.’

수강을 확인한 신추명은 상대의 정 체가 더욱 궁금해졌다.

하지만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의 문의 사내는 앞으로 튀어나갔다. 그의 손에는 부러진 검날이 쥐여 있었다.

푹.

벼락같은 손놀림으로 사내가 척마 대원의 목덜미에 거꾸로 쥔 검날을 쑤셔 박았다.

척마 대원은 비명을 지를 새도 없 이 흙바닥 위로 쓰러졌다.

“저기…….”

신추명이 그에 대해 묻기 위해 어 렵게 입을 뗐다.

“자세한 얘기는 아까 그 영감님을 구하고 나서 합시다.”

사내가 신추명의 말을 일방적으로 끊으며 어둠 속을 내달렸다.

-왜 아직도 소식이 없는 게냐?

-아무래도 문제가 생긴 듯합니다. 

-빌어먹을, 대체 문제가 생길게 무에 있느냐! 놈은 기력이 모두 소 진돼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이다. 한 데 그런 놈 하나 후딱 처리하지 못 하다니…………

-제가 가서 깔끔하게 처리하겠습 니다.

척마 대원들과 은밀히 얘기를 나누 던 위가렴의 얼굴이 미세하게 뒤틀 렸다.

그는 애당초 해천인과의 약속을 지 킬 생각이 없었다.

신추명은 통천문 내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무위가 뛰어나다. 통천문을 배제하기로 결론이 난 이상 그만한 실력자를 살려 두는 건 어리석은 일 이었다.

전음이 끊긴 직후 척마 대원들 중 일부가 대열에서 이탈했다.

‘설마 통천문 놈들이 마중이라도 나온 건가?’

위가렴은 가슴 한 구석에서 불안감이 치밀어 올랐다.

이 일대는 통천문의 영역이다. 과거에 비해 크게 세력이 줄었다고 하지만 오랜 세월 통천문이 보여 준 저력을 감안한다면 그들이 움직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었다.

-속도를 높인다.

위가렴은 척마대에 일괄적으로 지시를 내렸다.

그런데 척마대가 속도를 높이기도 전에 어둠 속에서 날카로운 파공성 이 일었다.

사사삭 삭삭.

척마대의 기척이 하나둘씩 끊기기 시작했다.

몇몇이 검을 고쳐 잡고 저항해 보 기도 했지만 압도적인 무력의 차이 에 모두들 목을 움켜쥐며 쓰러졌다. 

“웬 놈이냐?”

위가렴이 검을 고쳐 잡고 일갈을 내질렀다. 밀려드는 두려움을 떨쳐 내기 위함이었다.

“여어, 여기서 얼굴을 또 보네.” 

척마대의 기척이 모두 끊김과 동시에 어둠 속의 암살자가 위가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암살자는 손에 눈에 익은 칼을 쥐고 있었다.

“네, 네놈은……?”

“용케 내 칼을 기억해 낸 모양이네. 하기야, 그때 좀 심하게 당하긴 했지.”

빠드득.

위가렴이 이를 악물었다.

가까스로 잊고 지내던 악몽 같은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들끓는 분노는 설빙무진의 기운을 한껏 끌어올렸다. 그의 주변으로 허 연 서리가 내려앉기 시작했다.

“죽여 버리겠어.”

고조된 설빙무진의 힘을 등에 업은 위가렴이 설우진을 향해 달려 나갔 다.

지난날 설우진의 방해로 황유하 암 살에 실패하면서 그는 많은 걸 잃었 다. 역천회 내에서의 기반이 무너진 건 물론이고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 주던 아버지마저 등을 돌렸다. 때문에 그는 일 년 가까운 시간을 스스로의 의지와 상관없이 은인자중 해야만 했다.

그때 느꼈던 절망과 분노는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

휘이잉.

그가 내딛는 걸음 뒤로 사나운 북풍한설이 몰아쳤다.

일선에서 물러나 있는 동안 설빙무 진 수련에 매진한 덕분에 그의 무위 는 전보다 한 단계 성장해 있었다. 시리도록 차가운 기운이 검 끝에서 휘몰아쳤다.

가공할 냉한지검이었다.

‘이거 만만히 볼 수준이 아닌데.’

밀려드는 한기에 설우진은 급하게 뒷걸음질을 치며 전면에 천뢰도를 휘둘렀다.

칼끝에 모인 뇌기가 강한 열기를 발산했다.

두 개의 상반된 기운이 정면에서 충돌했다.

스스슥.

밤하늘에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뇌기에서 발산된 열기가 그의 정면에서 휘몰아치는 냉기를 한순간에 상 쇄시켜 버린 것이다.

순간 위가렴의 얼굴이 굳었다. 방금 전에 전개한 검격에는 칠성에 달하는 설빙무진의 공력이 실려 있 었다.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첫 번째 공격에서부터 전력을 다한 것이다. 한데 그 공격이 보기 좋게 막혀 버렸다.

‘내가 강해진 만큼 이놈도 강해졌 다는 건가?”

위가렴은 흥분되는 마음을 진정시 키고 다시 차분히 설빙무진의 기운 을 끌어올렸다. 그러고는 천천히 검 에 그것을 덧씌웠다.

청색의 검신이 순식간에 백색으로 변했다.

“오늘은 이 설백마검으로 네놈의 목숨 줄을 끊어 놓겠다.”

설백마검이 전면에서 쇄도했다.

수비는 도외시한 공격 일변도의 검 공이었다.

설우진은 바쁘게 발을 움직이며 끊 임없이 천뢰도에 뇌기를 흘려보냈 다.

한데 이번에는 뇌기가 한기에 밀렸 다.

도검이 맞닥뜨릴 때마다 천뢰도의 도신에 자욱한 서리가 내려앉았다. 

‘크윽, 손의 감각이…………….’

천뢰도를 타고 오른 한기가 오른손을 감쌌다. 뇌기를 발산해 밀어내려 했지만 여의치가 않았다.

그사이 위가렴의 공세가 더욱 격해 졌다. 강기들이 맞물리면서 사방으 로 그 파편이 튀었다. 한기에 얼어 붙어 있던 손등에 파편이 날아들면 서 설우진의 오른손은 순식간에 피 로 얼룩졌다.

“크큭, 처음의 기세는 다 어디로 갔느냐!”

우위를 점한 위가렴이 설우진을 한 껏 비웃었다.

하지만 설우진은 그의 말에 동요하 지 않고 냉정하게 상황을 진단했다. 

‘놈의 무공은 확실히 전에 비해 진 일보했어. 몸이 온전하지 못한 상태에서 장기전으로 끌고 가는 건 무리야.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설우진이 위가렴의 검을 뒤로 흘려 보내며 옆을 스쳐 지나갔다.

그가 향하는 방향에는 해천인이 서 있었다.

‘안 돼, 놈의 손에 군사가 넘어가 면 이제까지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게 돼.’

해천인을 향해 나아가는 설우진을 보면서 위가렴은 마음이 급해졌다. 지금 그에겐 설우진을 해치우는 것 보다 해천인을 확보하는 것이 더 중 요했다. 해천인은 아버지인 위성웅 이 역천회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위가렴은 검에서 설빙무진의 한기 를 거둬들였다.

기력이 쇠한 해천인으로선 그 기운 을 감당할 수 없어서였다.

한데 그 판단이 치명적인 실책으로 이어졌다.

설우진은 해천인을 낚아챌 듯 내뻗 었던 손을 그대로 회수하며 반대편 에 쥐고 있던 천뢰도를 건네받아 기 습적으로 휘둘렀다.

이미 이번 공격을 위해 뇌기를 충 분히 모아 둔 상태였다.

뒤늦게 이를 발견한 위가렴이 부랴부랴 설빙무진의 한기를 다시 검에 끌어모았다.

하지만 시간이 부족했다.

쾅.

요란한 굉음과 함께 위가렴의 신형 이 뒤로 튕겨져 날아갔다. 설우진은 그 모습을 눈에 담으며 뒤따라 몸을 움직였다. 확실히 마무리를 짓기 위 함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뒤에서 해천인 이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그를 죽여선 안 되네. 이용하 기에 따라서 지금의 판을 뒤엎을 수 있는 중요한 패가 될 수 있네.”

천뢰도가 간발의 차이로 위가렴의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결과적 으로 해천인이 그를 살린 것이다. 

“운 좋은 줄 알아라.”

설우진이 위가렴의 마혈을 제압했다.

그사이 해천인이 두 사람의 곁으로 걸어왔다. 자연스레 두 사람의 시선 이 얽혔다.

‘자네였군, 우리 일을 방해한 장본 인이.’

설우진을 바라보는 해천인의 눈빛 은 복잡한 감정을 띠고 있었다. 그는 설우진이 펼치는 무공이 벽뢰 진천임을 한눈에 알아봤다. 설빙무 진에 맞설 수 있는 뇌공은 벽뢰진천 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그걸 알고 나니 화가 나면서도 한 편으론 궁금했다. 대체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

“일단 고맙다는 인사부터 해야겠군.”

해천인이 가볍게 고개를 숙여 마음 을 표했다.

‘이 양반이 역천회를 실질적으로 이끌던 수장이였단 말이지.’

설우진은 해천인을 빤히 쳐다봤다. 그는 신추명이 잠력환을 복용하려 할 때부터 이미 그 근처에 도사리고 있었다. 섣불리 나서서 적들을 경동 케 하기보다는 방심을 틈타 움직일 계획이었다.

덕분에 그는 해천인과 위가렴이 나 누는 대화를 모두 엿들을 수 있었 다.

“몸은 좀 괜찮습니까? 안색이 창백 해 뵈는데.”

설우진이 속내를 감춘 채 말을 걸 었다.

“기력이 조금 떨어진 것 빼고는 말 짱하네. 그보다 어떻게 날 구한 것 인가?”

“그게, 저녁 무렵부터 검보를 수련 중이었는데 멀리서 거친 숨소리가 들려오더군요. 그냥 무시하려다 그 놈의 호기심이 뭔지…………”

“허허,결과적으로 자네의 호기심 이 날 구한 거로군.”

“굳이 따지자면 그런 셈이지요. 그 보다 왜 군사라는 지고한 위치에 계 신 분이 오늘과 같은 소란에 휘말린겁니까?”

“미안하네만, 외인에게 그것을 말해 줄 수는 없네.”

해천인은 말을 아꼈다. 아직 설우 진의 진의를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 기 때문이다.

설우진도 굳이 그것을 자세히 캐묻 지는 않았다.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저 멀리서 십 수개의 횃불이 일렁이며 일단의 무리가 달려왔다. 그 선두에는 적사호가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적사호가 설우진을 쳐다보며 물었다.

설우진은 해천인에게 얘기했던 그대로 적사호에게 전했다.

“그 계기야 어찌 됐든 정말 큰일을 해줬다. 네 덕분에 한결 일이 쉬워 졌다.”

적사호는 진심으로 기뻐했다.

지금 그에게 절대적으로 부족한 건 사람이다. 한데 설우진이 해천인을 구함으로써 사람을 늘릴 수 있는 길 이 열렸다.

해천인은 역천회의 일반 무사들 사 이에서 인망이 두터웠다. 지위를 내 세우지 않고 그들과 스스럼없이 어 울린 덕분이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어르신. 진즉 에 모셔 왔어야 했는데 송구스럽습 니다.”

“아닐세, 놈들의 속셈을 알고 있었 으면서도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한 내 잘못이 더 크네.”

-그보다 왜 벽뢰진천의 전수자가 자네와 함께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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