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9권 – 18화 : 구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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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왕전생 9권 – 18화 : 구출 (1)


구출 (1)

‘하아, 너무 기가 차서 말도 안나 오네.”

설우진은 정이건의 행동에 순간적 으로 할 말을 잃었다.

사고는 제 놈이 쳐 놓고 그 뒷수 습은 남에게 일방적으로 떠맡기다 니, 맘 같아선 당장에 머리채를 틀 어쥐고 앞으로 내던지고 싶었다.

하지만 손만 부르르 떨 뿐 그 마 음을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아 직까지는 정이건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송 사부, 저 인간한테 본때를 보여 줘.”

정이건이 등 뒤에서 얄밉게 소리쳤다.

이에 설우진은 그 대신 황진설에게 화를 풀었다.

“어이, 검 집어넣지. 남의 집에 와 서 소란을 피워 봐야 서로 좋을 게 없잖아.”

“못 보던 얼굴인데……… 이건이 놈 에게 나의 이야기를 듣지 못한 게 냐?”

황진설은 금방이라도 설우진을 잡 아먹을 듯 사나운 눈빛으로 바라봤 다.

“내가 당신에 대해서 알아야 할 필 요가 있어? 내가 그쪽의 부하도 아 닌데?”

“허허, 유유상종이라고 하더니. 그 건방진 태도는 이건이 놈과 쏙 닮았 구나. 내 강호의 선배로서 네놈에게 따끔한 가르침을 내리마.”

황진설이 왼발을 앞으로 내디디며 화려한 검무를 추기 시작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상대를 혼내기 위 한 검이 아니라 눈을 즐겁게 해 주 는 검 같았다.

하지만 그 화려함 속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숨어 있었다.

미검문이 자랑하는 연화검은 검의 화려한 움직임으로 상대의 눈을 현혹한 뒤 기습적으로 빈틈을 찌른다.

한마디로 겉과 속이 다르다는 뜻이다.

이를 방증하듯 설우진의 옷에 생채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전부 사혈이 위치한 자리였다.

‘늙은이가 아예 작정하고 덤벼드는 군. 그럼 이쪽에서도 그에 걸맞은 대접을 해 줘야지.’

설우진이 눈을 부라리며 천뢰도로 손을 가져갔다.

카카캉.

전광석화처럼 도갑을 빠져나온 천 뢰도가 전면에서 덮쳐 오는 연화검 을 연속적으로 후려갈겼다.

기교대 기교의 대결이 아닌, 힘대 기교의 대결로 몰고 간 것이다.

천뢰도는 힘으로 황진설의 연검을 찍어 눌렀다.

황진설이 연화검의 후반 절초를 전 개하며 천뢰도의 힘을 상쇄해 보려 했지만 근본적인 힘의 차이가 너무 극명했다.

쨍그랑.

결국 힘에서 밀린 황진설의 검이 산산이 부서졌다.

사방으로 비산하는 검 편에 미검문 의 제자들이 화들짝 놀라 도망을 쳤 다.

하지만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던 황진설은 검 편을 피하지 못했다. 

“크, 크윽.”

황진설이 옅은 신음을 토해 냈다.

그의 몸 곳곳에는 부서진 검 편이 박혀 있었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것

같은 데, 검이란 거 함부로 뽑는 거 아니 야. 내가 뽑아 든 검이 상대가 아닌 나를 향할 수도 있거든.”

설우진은 천뢰도를 다시 본래의 자 리로 되돌리며 싸늘한 눈빛으로 황 진설의 얼굴을 일별했다.

“그, 그런 대단한 실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왜 고검문 따위에 붙어 있는 것이오?”

황진설은 그게 납득이 안 됐다. 방금 전 검편이 부서질 때 그는 확실히 깨달았다. 설우진이 자신보다 최소한 세수 이상은 앞선 고수 라는 걸.

한데 그 사실을 깨닫고 보니 그만 한 고수가 고검문에 있다는 게 이해 가 되질 않았다.

무림이란 세계에서 고수는 모두가 탐내는 보물이다. 따라서 당연히 그 몸값도 높을 수밖에 없고 대다수의 고수들은 큰 세력에 속해 있다.

예외의 경우가 있다면 가족이나 사 승의 관계로 엮였을 때다. 작은 문 파라도 재능이 뛰어나거나 뜻하지 않은 기연을 얻게 됐을 경우에는 고 수가 될 수 있다.

그런데 황진설이 알기로 고검문은 그 예외의 경우에 해당되지 않는다.

전대 문주에겐 형제가 없고 거둬들인 제자들 또한 그 숫자가 많으며 재능도 평범했다.

“내가 어디에 붙어 있든 그건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잖아. 그리고 경고 하는데 쓸데없는 수작질로 분란 일 으키지 말고 얌전히 있어. 오늘과 같은 일이 또 생긴다면 그땐 네 검 이 아니라 내 칼로 목을 썰어 버릴거야.”

설우진이 황진설의 귓가에 대고 속 삭이듯 말했다.

작은 목소리였지만 황진설의 귀에 는 천둥보다 더 큰 소리로 들렸다. 

“문주님, 그만 돌아가시지요.”

황진설에게 단단히 경고한 뒤 설우진은 정이건을 잡아끌고 고검문의 천막으로 향했다.

정이건은 취중임에도 불구하고 쥐 죽은 듯 얌전히 설우진의 뒤를 따랐다.


드르렁, 드르렁.

황룡학관에 밤이 찾아왔다.

고검문의 막사에선 정이건이 요란 하게 코를 골아 대고 있고 그 주변 에는 문도들이 몸을 웅크린 채 쪽잠 을 취하고 있었다.

하지만 예외인 이도 있었다.

바로 설우진이다.

그는 막사 안에 머물며 날이 저물기만을 기다렸다. 물론 그 와중에도 반복적으로 학관의 구조를 떠올렸다. 동선 낭비를 최소화하기 위함이 었다.

‘슬슬 움직여 볼까.’

설우진이 은밀히 막사에서 빠져나 와 상원문 쪽으로 향했다. 전문적으 로 은신술을 배운 건 아니었지만 잠 입은 낭인 시절에 자주 했던 일인지 라 꽤 몸에 배어 있었다.

사사삭.

설우진은 한 마리 들고양이처럼 양 손을 바닥에 짚고 사족 보행을 했 다.

사족 보행은 바닥에 몸을 붙임으로 써 적들의 시야에서 자유로울 수 있 는 데다가 소리까지 최소화할 수 있다.

잠시 후 상원문이 보이는 곳에 설 우진이 멈춰 섰다. 상원문 앞쪽에는 기세가 남다른 이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이거 놈들의 이목을 속이고 안으 로 들어가기가 쉽지 않겠는걸. 다들 눈이 아닌 기감으로 주변을 경계하 고 있잖아.’

설우진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상원문에 배치된 경비 무사들은 어 지럽게 여러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 지 않았다.

왜일까? 그건 설우진의 짐작대로 눈이 아닌 기감으로 주변의 움직임 을 읽기 때문이다.

‘놈들의 이목이 흐트러지는 건 교대를 하는 그 순간뿐이야. 그 작은 틈을 노려야 해.’

설우진은 조용히 때를 기다렸다. 시간이 반 각여쯤 흘렀을까, 묵직 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교대를 하기 위해 온 을조의 경비 무사들이었다. 현재 마천은 갑을병정 총 네 개의 조로 나누어 경비 인력을 운용하고 있었다.

조별로 열 명씩.

그리고 그 수준은 입마에 들어 있었다.

입마는 강호의 일반적인 기준으로 절정급에 해당한다.

“빌어먹을, 언제까지 이 짓거리를 반복해야 하는 거야? 우리 짬밥에 이건 아니잖아.”

“불만 있으면 대주님의 면전에 대 고 따져, 여기서 미주알고주알 떠들 지 말고.”

“넌 그럼 이 상황이 납득이 된다는 거냐?”

“천주님이 직접 내리신 명이다. 달 리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어.”

상반된 외모의 두 사내가 날 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적랑대의 조장인 백홍과 흑 사였다. 전위대에서 조장이라 함은 스무 명 이상의 대원들을 이끄는 위 치로 마천 내에서 상당히 높은 지위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중원에 들어온 뒤 그들은 일개 경비 무사로 전락했다. 지난번 설우진을 놓친 일에 대한 질책성 인 사였다.

‘에이, 내가 미친놈이지. 저놈하고 무슨 대화를 하겠다고.’

백홍은 흑사를 사납게 흘겨봤다. 흑사는 적랑대 내에서도 천에 대한 충성심이 두텁기로 유명했다. 천이 원하면 지옥 불길이라도 서슴없이 뛰어들겠다고 할 정도였다.

그에 반해 백홍은 마천을 성공의 발판으로 여겼다.

이 점이 바로 둘 사이의 좁힐 수 없는 큰 간극이다.

잠시 후 교대조가 눈에 들어왔다.

백홍은 술이나 한잔해야겠다며 정 식으로 교대 절차를 밟지 않고 숙소 로 향했다.

흑사는 그 모습에 눈살을 찌푸렸지 만 굳이 그를 붙잡으려 하지 않았 다.

한데 그 사소한 행동이 때를 기다 리고 있던 설우진에겐 기회로 작용 했다.

사사삭.

설우진은 백홍이 빠진 자리로 재빨 리 몸을 이동했다. 그리고 그 자리 에 가까워졌을 때 흑사는 교대조와 눈을 맞추며 인수인계를 했다.

짧은 순간 기감의 영역에 빈틈이 생겼다.

설우진은 재빨리 그 안으로 파고들어 문 쪽에 바짝 몸을 붙였다.

그사이 교대가 끝나고 병조가 상원 문 앞을 지켰다.

병조에는 조장급이 없었다.

이에 설우진은 과감하게 상원문을 박차고 지붕으로 올라섰다. 문을 열 면 소리가 날 수밖에 없기에 아예 문을 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그 방법은 주효했다.

설우진이 상원문의 지붕 위에 올라 섰는데도 경비 무사들은 정면에만 시선을 두고 있었다.

어려운 첫 번째 관문을 넘은 설우 진은 조심스럽게 내원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머릿속에 그려 놨던 동선 대로 빠르게 발걸음을 내디뎠다.

다행히 사자관으로 향하는 길목에 는 경비 인력이 전혀 배치되어 있지 않았다.

잠시 후 사자관으로 통하는 문이 보였고 기억하는 모습 그대로였다. 하지만 설우진은 섣불리 문을 열지 않았다.

‘사자관에 벽이가 감금돼 있는 게 맞는다면 분명 저 안엔 적잖은 숫자 의 적들이 매복해 있을 거야. 나라 도 그리했을 테니까.’

설우진은 기감을 넓게 확장시켰다. 사자관 안에 도사리고 있을 적들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기감에는 걸리는 것이 없었다.

“어떡한다…?”

설우진은 코앞에 사자관을 두고 망설였다.

하지만 이미 결론은 난 상태다. 적진 한복판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남궁벽을 빼내 간다는 건 현실적으 로 불가능했다.

적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설우진이 올 것에 대비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 이다.

사실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 설령 함정이 있다 하더라도 남궁벽을 구 하기 위해선 그 사지로 들어가야만 했다.

‘설우진, 천하의 낭왕이 겨우 이 정도에 졸아서 되겠어? 더욱이 천신 동에서 전보다 더 강한 힘을 얻었잖 아!’

설우진은 약해지는 마음을 다잡으 며 문고리로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힘차게 잡아당겼다.


“이 멍청한 놈아, 대체 여기가 어디라고 제 발로 찾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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