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9권 – 4화 : 흉사 (1)
흉사 (1)
씨익.
사일한 순간적으로 등골이 오싹 했다.
눈앞에 화살이 날아들고 있는데 설 우진은 웃고 있었다.
그 웃음에 담긴 의미를 알아내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 다.
사일한이 작정하고 날린 연환시는 설우진의 잔상을 꿰뚫고 뒤쪽의 나무에 연달아 틀어박혔다.
공격을 미리 예상하고 있지 않았다면 절대 보일 수 없는 기민한 움직 임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사 일한은 다급한 목소리로 오낙성을 불렀다.
“오 선배님, 놈이 파 놓은 함정입 니다! 대원들을 다시 이곳으로 불러 들이십시오!”
사일한의 외침에 오낙성은 다급히 설우진의 뒤를 쫓았다.
하지만 간발의 차이로 우거진 숲 안으로 들어가는 설우진을 놓치고 말았다.
‘놈은 염궁대의 한복판으로 뛰어들 어 염 대주의 손목을 벴어. 아무리 부상을 당한 몸이라지만 일대일로 맞붙는다면 대원들이 위험해.’
삐익.
오낙성이 입술을 모아 세게 휘파람 을 불었다. 대원들을 한 곳으로 불 러 모으는 신호였다.
하지만 그건 결과론적으로 잘못된 선택이었다.
설우진은 길목에 매복하고 있었다. 무리해서 한 명씩 쫓아다니기보다는 길목에서 돌아오는 대원들을 한꺼번에 치겠다는 심산이었다.
타다닥.
급하게 달려오는 발소리.
설우진은 천뢰도에 뇌기를 집중시켰다.
옆구리가 시큰거렸지만 그 정도 고통쯤은 이번 공격을 위해 충분히 감 내할 수 있었다.
삼장, 이장, 일 장.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설우진은 그 잠깐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위쪽으로 몸을 띄워 벼락처럼 칼을 휘둘렀다.
기습적인 일격에 진혼대원들은 검 한번 제대로 휘둘러 보지 못하고 가 슴을 내줬다.
“크윽.”
순식간에 추격대의 태반이 바닥에 쓰러졌다.
가슴에 깊게 새겨진 상흔은 강한 정신력으로 무장한 그들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이놈!”
수하들이 당하는 모습을 발견한 오 낙성이 검을 뽑아 들고 아래로 날듯 이 뛰어내렸다.
그의 검은 시퍼런 검기를 머금고 있었다.
순식간에 설우진의 눈앞까지 치달 은 오낙성은 질풍처럼 검을 내질렀 다.
현무문의 검은 쾌속무비했다.
그 말인즉슨 한 번 선공을 내주면 역공을 전개하기가 쉽지 않다는 뜻 이다.
그런데 설우진은 생각지도 못한 방 법으로 그의 검을 봉쇄했다.
바닥에 쓰러져 신음하고 있던 진혼대원을 끌어 올려 방패막이로 세운 것이다.
수하를 아끼는 마음이 큰 오낙성으 로선 무리를 해서라도 검의 방향을 틀 수밖에 없었다.
간발의 차이로 검이 빗나갔다.
“이, 이 비겁한…….”
오낙성이 살짝 창백해진 얼굴로 설 우진을 잡아먹을 듯 노려봤다. 이런 치졸한 수를 쓸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것이다.
“목숨이 걸린 싸움이야. 당장에 내 가 죽게 생겼는데 뭔들 이용하지 못 할까.”
설우진은 낭인의 관점에서 얘기했다.
낭인들은 목숨이 최고의 재산이다. 잘난 강호인들이 지껄이는 도의 따 위는 하등의 관심도 없었다.
‘무시무시한 무공 실력에 악랄한 심보까지, 적사호 그자가 정말 위험 한 칼을 손에 넣었군.’
오낙성은 입술을 깨물며 다시 검병 을 바로 쥐었다.
그리고 전음으로 대원들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모두들 미안하다. 다음 생에는 내 너희의 그림자가 되어 평생을 바치 마.
-부대주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부디 놈을 죽여 저희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해 주십시오.
짧은 작별 인사가 끝났다.
오낙성은 살기 어린 눈빛으로 설우 진을 바라보며 다시금 검을 전개했 다. 마음을 독하게 먹었는지 아까와 같은 흔들림은 엿보이지 않았다.
‘이거 단단히 마음을 먹은 모양이 네. 뭐,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지 만 그런다고 결과가 달라지지는 않 지.’
설우진은 한결 과감해진 오낙성의 검격에 쥐고 있던 진혼대원을 내던지고 천뢰도로 맞섰다.
카캉캉캉.
두 사람의 신형이 빠르게 교차했다.
오낙성은 선공의 우위를 살려 거칠 게 설우진을 몰아붙였다. 설우진은 수비에 전념하며 반격의 때를 기다 렸다.
그렇게 싸움이 격렬해지고 있을 무 렵, 사일한은 재차 시위에 철시를 걸었다.
이번엔 세 개가 아니라 하나였다.
‘단일 점에 모든 힘을 실어야 해. 놈이 빈틈을 드러내는 그 순간에.’
사일한은 마냥 결판이 날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 없었다.
싸움 도중에 개입하는 건 오낙성에 게 실례되는 일이었지만 지금 그에 겐 설우진을 잡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렇게 얼마를 기다렸을까, 설우진의 신형이 크게 흔들렸다.
오낙성의 검을 막아서는 과정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나무뿌리에 발 이 걸린 것이다.
‘지금이다!’
사일한이 두 눈을 번뜩이며 시위를 놨다.
내기를 머금은 철시는 오낙성의 어 깨 너머에 보이는 설우진의 왼쪽 가 슴을 향해 날아갔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설우진이 허 리를 튕기며 기습적으로 오낙성의 옷깃을 잡아챘다.
자연스럽게 겹쳐지는 두 사람의 몸.
“안 돼!”
뒤에서 안타까운 외침이 터져 나왔 다.
하지만 그 말이 전해지기도 전에 이미 철시는 오낙성의 등판을 꿰뚫 고 말았다.
“크윽.”
오낙성은 가슴을 비집고 나온 철시 를 보며 힘겹게 숨을 뱉었다.
그냥 빠르기만 한 화살이 아니라 그 안에 내력까지 실려 있었기에 충 격은 더 컸다.
“이, 이렇게 허무하게………….”
오낙성은 어이가 없었다.
분명 승기를 잡은 판이었다.
한데 눈앞의 적이 아니라 등 뒤의 아군에 의해 그 판이 거짓말처럼 뒤집혀 버렸다.
“너무 저쪽을 원망하진 마. 제 딴에는 잘해 보려고 그런 거니까.”
설우진이 오낙성의 몸을 가볍게 껴 안으며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다. 그리고 고통을 덜어 준다는 명분으 로 명치 한복판에 천뢰도를 거칠게 쑤셔 넣었다.
잠시 후 오낙성의 고개가 아래로 꺾였다.
‘어, 어떻게 하지?’
활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사일한은 지금 제정신이 아니었다. 오낙성을 도우려 한 행동이 오히려 그를 죽음으로 이끌었으니 그 충격 이 오죽할까.
그가 넋을 놓고 있을 때 설우진이 천천히 위로 걸음을 옮겼다, 오른손 에는 오낙성의 피로 붉게 물든 천뢰 도를 들고,
‘도망쳐야 돼. 이대로 있다간 나도 오 선배처럼 죽을 거야.’
사일한은 궁술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지형적인 이점을 안고 있음에 도 선뜻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도망칠 생각부터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