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라자 2권 – 제3부 : 50명의 꼬마들과 대마법사 펠레일 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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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라자 2권 – 제3부 : 50명의 꼬마들과 대마법사 펠레일 6화

6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우리가 쓰러뜨린 늑대들의 옆을 지나게 되었다. 아까는 조사가 더 급해서 그냥 놔두고 지나쳤던 것들이다. 그것들은 아까와는 달리 모두 썩어 있는 모습이 되어 있었다.

“썩어 있네?”

“언데드였잖아. 몸을 박살내어 버리자 다시 원래대로 시체의 모습으로 돌아간 거지.”

칼의 설명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시 질문했다.

“그럼, 아까 달아났던 놈들도 다 시체가 되었을까요? 우리가 디바인 마크를 회수했으니까………….”

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그건 아닐세. 이제 더 이상 이 영지가 세이크리드 랜드가 아니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이미 일어난 일이 취소되지는 않아. 늑대들은 여전히 언 데드 몬스터로 남게 될 거야. 에델린 양이 그러지 않았는가. 뱀파이어는 그대로 남게 될 거라고. 이놈들도 마찬가지지.”

“그것 참…….”

사만다는 그 조각난 채로 썩어 있는 모습들을 보며 얼굴을 크게 찌푸렸다. “끔찍스럽군.” 하지만 크라일은 싱긋 웃으며 늑대들의 발을 잘라서 모으 기 시작했다. 터커는 언짢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뭐하는 거야?”

“늑대 발톱 목걸이가 얼마나 비싼 건 줄 알아?”

“저런 젠장맞을 놈이 있나. 에이, 퉤!”

“얼씨구? 야! 우리 수중엔 돈 한푼도 없다고! 그러니까 레너스로 가려고 했던 거 아냐?”

“그래도 그렇지. 에이, 언데드 늑대들의 발톱을 뽑아 목걸이를 만들어? 찝찝하게시리.”

크라일은 콧방귀를 탕탕 뀌었다. 결국 사만다가 구부정하게 엎드려서 작업하고 있던 크라일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크라일은 보기 좋게 나뒹굴었다. “칵! 그 따위 흉물스러운 짓 멈추지 못해! 뜨거운 맛 좀 볼래?”

사만다는 말로만 그치지 않고 당장 테페리의 디바인 마크를 뽑아들었고 크라일은 질겁하면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는 일행의 뒤를 따라오면서 한참 궁시렁거렸다. 칼은 좀 어이가 없는 얼굴로 사만다에게 질문했다.

“크레틴 양. 신의 권능을 그렇게 함부로 협박 등에 사용해도 됩니까?”

“뭐 어때요! 저런 발칙한 녀석은 신벌을 좀 받아도 돼요!”

칼은 할말 없다는 투로 빙긋 웃어버렸다. 하지만 나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저, 칼.”

“응?”

“이 늑대들이 다 어디서 나타난 걸까요?”

“응?”

“이 늑대들 모두 시체였다고 했죠? 하지만 상태를 보아하니 모두 죽은 지 오래된 건 아니잖아요? 제일 많이 썩어 있는 놈도 아직 형체는 그럴듯하잖 “아요.”

사만다가 피식 웃었다.

“그거야 당연하지. 언데드가 될 수 있는 나이는 정해져 있거든.”

“언데드가 되는 나이?”

“죽은 지 얼마가 지났느냐에 따라 언데드가 될 수 있느냐………….”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고 어떻게 이렇게 많은 늑대 시체들이 있느냐 하는 거예요. 죽었으니까 언데드가 된 거 아니에요? 그렇다면 왜 늑대들이 이 렇게 많이 죽었죠?”

“어? 글쎄?”

칼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말했다.

“글쎄…………. 아마 대규모 늑대 사냥이라도 했던 것 아닐까? 가을철에 추수가 끝나고 나면 간혹 사냥을 하지 않는가. 녹음이 울창한 계절에는 사냥하

기도 힘들고.”

“그럼, 여기가 세이크럴라이즈되기 직전에 늑대 사냥이 있었고, 그리고 게덴의 힘이 펼쳐지자 그때 죽은 늑대들이 일어났다?”

“그럴 수 있겠지.”

“말이 안 되는데요?”

칼은 멈춰 서서 날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멈춰 섰다.

“늑대들을 왜 사냥하지요? 가죽이나 고기도 필요없는 게 늑대예요. 가축에 피해를 입힌다는 것 정도로 볼 수도 있지만, 들어오면서 보셨다시피 여긴 목장 같은 것도 없는데요?”

칼은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말했다.

“사람이 피해를 본 게 아닐까?”

“말이 되는군요. 하지만 다음 문제가 남아 있는데, 왜 늑대들이 아무것도 잘려 있지 않지요?”

크라일은 눈을 크게 떴다. 난 크라일을 흘깃 바라보았다가 말했다.

“크라일 씨처럼 발톱을 뽑는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겠죠. 하지만, 사냥을 했다면 대개 증거를 남겨요. 고기나 가죽이 필요없으면, 그래도 죽이고 나 서 뭘 자르든 잘라요. 어, 그러니까, 에………… 아무것도 자르지 않았다면 자기가 사냥을 얼마나 했는지 뭘로 증명하죠?”

터커가 턱을 쓸면서 말했다.

“하긴. 사냥을 그냥 하는 경우는 드물지. 자, 나가서 모두 늑대를 죽이자? 아니, 사람들이 일하는 방식은 그게 아니지. 늑대의 피해가 크므로 늑대 꼬 리를 몇 개 가져오면 무슨 보상을 하겠다. 이런 게 사람의 방식이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예. 그걸 말하고 싶었어요. 그렇잖아요, 칼?”

“허어, 그렇구만, 네드발 군. 정말 늑대들이 왜 이렇게 많이 죽은 걸까?”

칼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늑대들을 살폈다. 펠레일이 입을 열었다.

“병에 의해 죽은 것이 아닐까요?”

“무슨 말이오?”

“여긴 세이크리드 랜드였습니다. 그러니, 늑대들도 병에 걸려 죽었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늑대들이 영지에 왜 들어오겠소? 영지에 들어와야………….”

“그건, 늑대들이 우연히 이 마을의 사람들이 죽어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겁니다. 공격하기가 쉽지요. 실제로 방어가 약해진 마을은 몬스터들이나 늑대들의 공격을 받는 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늑대들은 이 마을에 공격해 들어왔고, 그러다가 자신들도 병에 걸려 죽어버렸겠지요.”

“아! 그렇구먼.”

칼은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나는 펠레일의 말을 듣는 순간 소름이 쫙 올랐다. 나는 벌벌 떨면서 되물었다.

“뭐라고요?”

펠레일은 의아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이 늑대들은 병에 걸려 죽었다가………….”

순간, 펠레일도 마치 물벼락이라도 맞은 듯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허옇게 질린 얼굴로 날 바라보았고, 나도 그런 얼굴로 펠레일을 바라보면서 다급하게 질문했다.

“당신, 당신들, 시체를 태웠다고 해, 했지요?”

“그, 그렇습니다.”

“각 집에서 시, 신발이나 수저의 숫자를 세어봤어요?”

“아, 아니. 그렇게까진 하지 않았는데………….”

“그럼, 그럼 그냥 시체만 옮겨 태웠어요? 얼마나 되었죠? 예?”

“대략, 200여 구 좀 넘었는데…………”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말도 안 된다.

“시체가 200여 구, 신전에 90여 명. 그럼 300명 정도? 말도 안 돼! 이 넓은 영지에?”

나와 펠레일의 대화를 듣고 있던 다른 사람들도 파랗게 질려버렸다. 이 넓은 영지에 300명이라니, 어림도 없다. 적어도 2000명은 넘을 것이다. 그 렇다면 나머지 1700명은? 펠레일은 와들와들 떨면서 말했다.

“우, 우리가 오기 전에 이, 이 영지의 주민들이 묻은 것이 아닐까요?”

“태운 게 아니라 묻었다면 큰일이잖아요!”

나는 거의 발악하듯이 대꾸했고 펠레일도 화들짝 놀랐다. 묻었다면 정말 큰일이다. 병에 걸려 죽은 늑대들이 모조리 일어나 우릴 덮쳤다. 그렇다면, 병에 걸려 죽은 사람들도 일어나 우릴 덮칠 수 있다!

“어, 하, 그렇다면, 왜 늑대들만 설치고, 그, 그것들은……………? 아, 아직 나타나지 않았잖아요?”

펠레일은 숨막히는 목소리로 질문했다. 갑자기 사만다가 고함을 질렀다.

“몇 살이죠?!”

우리는 놀라서 사만다를 바라보았다. 나는 얼떨결에 대답했다.

“열일곱 살인데요?”

사만다는 늑대를 가리키며 황급하게 말했다.

“아니, 네 나이 말고! 저 늑대들, 몇 살이죠? 아무도 몰라요?”

우리는 당황한 눈으로 서로 쳐다보았다. 능숙한 사냥꾼이라면 몰라도 늑대의 나이를 어떻게? 그때 이루릴이 늑대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차이가 좀 있지만 대략 일곱 살에서 열 살 정도의 놈들이군요.”

사만다는 몹시 긴장했는지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말했다.

“그럼, 7일에서 10일일 거야. 사람들은? 아이들은 병에 걸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대략 20세 이후겠지. 그럼 죽은 지 20일이 지나야 언데드가 될 수 있어.”

나는 멍청한 얼굴로 사만다를 바라보았다. 사만다는 계속 혼잣말하듯이 말했다.

“하지만, 펠레일의 말대로라면 늑대들은 사람들이 병에 걸리고 나서 공격해 왔을 거야. 그러니까 사람들이 죽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 더 전이다. 최 소한 10일보다 훨씬 전이다. 그리고 늑대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어젯밤부터. 그렇다면 며칠 지나지 않아…………….”

사만다는 말꼬리를 흐렸지만 우리 모두는 끔찍스러운 공포를 느꼈다. 샌슨이 황급히 질문했다.

“잠깐만요! 그러니까 나이만큼의 날짜가 지나야 언데드가 될 수 있어요?”

“예. 그래요. 그래서 드래곤이 언데드가 되려면………….”

“아니, 잠깐만요! 그렇다면 이 영지에 과거에 죽었던 자들은요? 이번의 병 때문이 아니라 그 전에도 죽었던 사람들이 있을 것 아녜요?”

“아!”

샌슨, 이렇듯 현명할 수가! 그렇다. 죽은 자들이 일어나 우릴 덮친다면, 벌써 그렇게 되었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 영지에서 과거에도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 테니까. 사만다의 말대로 나이만큼의 날짜가 지나야 한다 해도 그런 자들은 벌써 그 날짜가 지났을 것이다. 하지만 사만다는 고개를 가로저었 다.

“아뇨. 그들은 기다렸을 거예요!”

사만다는 거침없는 태도로 설명했다.

“이 정도 크기의 영지에선 1년에 두세 명 정도가 죽을 뿐이죠. 그리고 몇 년만 지나면 이미 시체가 썩어서 일어날 수 없을걸요? 그렇다면 과거에 죽 었던 자들 중 일어날 수 있는 것은 열 명 정도? 그 정도로 덤벼올 수가 없었겠지. 그렇지만 최근에는 질병 때문에 엄청난 숫자가 죽었을걸요. 그렇다 면 그들이 다 일어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한꺼번에 덮쳐올 수 있어요!”

사만다는 숨을 몰아쉬었다가 다시 말했다.

“하지만 이젠 더 기다릴 필요가 없겠죠! 우리가 그 디바인 마크를 회수해서 세이크럴라이즈를 취소시켰으니까 더 이상 죽은 자들이 일어나진 않아 요. 그렇다면 그들은 이제………….”

“뛰어!”

터커의 고함소리. 우리는 신전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빌어먹고 또 빌어먹을! 왜 그 생각을 못했지?”

터커는 달리면서 욕설을 뱉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누가 그런 것을 짐작했겠는가. 우리는 모두 이를 악물면서 달렸다. 펠레일은 헉헉거리며 말했다. “그, 그래서 테페리는………… 아이들을 찾으러 가는 것을 반대………….”

그렇군! 사만다는 아이를 찾으러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지금 더 급한 것은 아이들이 아니라 어쩌면 당장 일어나 신전을 덮치고 있을지도 모르 는……………, 신전이 저쪽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멈춰요!”

이번엔 이루릴의 고함소리. 우리는 멈춰 서서 의아한 눈으로 이루릴을 보았다. 이루릴은 눈을 부릅떠서 신전 방향을 보고 있었다.

“좀비군요. 수효는, 음……… 삼백쯤 되어 보이는군요.”

우리들은 모두 질겁해서 신전이 있는 언덕을 보았다. 여기선 그 아스라한 모습만이 보였다. 그리고 그 언덕 아래쪽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무엇인가도

보였다. 저게 다 좀비라고? 우리는 황급히 건물 벽 쪽으로 붙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거리가 엄청나게 멀다. 약 2000큐빗 정도?

매일 책을 읽다 보니 시력이 좋지 않은 칼은 눈살을 크게 찌푸리며 신전을 바라보았다. 칼은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이거, 꿈틀거리는 것만 보이는데, 지금 뭣들 하고 있소?”

우리는 모두 이루릴을 바라보았다. 이루릴은 조용히 말했다.

“신전으로 들어가려 하고 있군요. 하지만 들어가지 못하는데요?”

사만다가 손가락을 딱 튕겼다.

“에델린 님이 막고 있는 거야!”

크라일이 숨가쁘게 말했다.

“좋아. 그럼, 아니 그런데 삼백이라고? 이 영지에 그것밖에 안 돼? 어, 혹시 나머지는 어디 숨어 있는 건가?”

터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사만다가 말했잖아. 나이만큼의 날짜가 지나야 언데드가 될 수 있다고. 그러니까, 만일 이 영지에서 사람들이 죽어간 것이 20일 전이라면 스 무살 이전의 시체들만 일어날걸. 나머지 시체는 이제 일어나지 못해. 우리가 디바인 마크를 회수했으니까.”

칼은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숫자가 맞는군요. 그럼, 여러분. 일단 접근해 봅시다.”

우리는 다시 달려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뛰었다. 언덕 쪽으로 다가감에 따라 점점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언덕 아래의 집들 뒤에까지 도착했다. 언덕 쪽을 바라보니 등골이 서늘해져 왔다. 사만다는 신음소리를 내었다.

“테페리여…………….”

300여 명의 좀비들이 언덕을 새카맣게 채우고 있었다. 군데군데 썩은 시체들. 회색의 살갗에 가득 묻은 흙덩이들과 계속 빠져나가는 머리카락들. 지독한 악취가 바람을 타고 날아와 구역질이 나려 한다.

“그웨에에에…….”

“가츠츠르르……

그것들은 인간의 소리 같지 않은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언덕 위로 전진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전진과 달리, 좀비들은 앞으로 무조건 전진하고 있었 다. 앞에서 더 전진하지 못하면 그것을 타넘고 올라가려 했다. 그러다가 굴러 떨어지면 그대로 그 뒤의 놈이 밟고 지나갔다. 마치 거대한 개미떼를 보 는 것 같다. 조금의 틈도 보이지 않고 맹목적으로 앞으로 전진하고 있다. 놈들이 서로 타고 올라 거대한 산을 만들고 있어 신전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 다. 그렇게 맹목적으로 신전에만 달려들고 있어 우리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하긴 쳐다본다 해도 우린 벽에 가려 있어 보이지 않겠지.

“저놈들, 내버려두면 저희들끼리 알아서 다 뭉개지겠는데? 제일 밑에 있는 놈은 가루가 됐겠어?”

크라일이 이를 드러내며 잔인하게 말했지만 사만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에델린 님이라도 계속 막지는 못해! 저 정도의 언데드에서 뿜어지는 힘만이 아니야, 저 무게를 생각해 보라구! 크라일 너라면 300명의 무게를 막을 수 있겠어?”

크라일은 이를 갈기 시작했다.

그때 펠레일이 나섰다. 펠레일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우리가 숨어 있는 집 뒤쪽의 2층 집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우리가 영문을 모르고 따라들어가 려 하자 펠레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들어오지 마십시오. 위험합니다. 이 안에 갇히면 도망가지 못합니다.”

“잠깐! 그럼 너는?”

터커의 다급한 질문에 펠레일은 미소를 지었다.

“저도 곧 나올 겁니다. 준비하고 있으십시오.”

펠레일은 그대로 사라졌다. 우리가 의아한 표정으로 기다렸다. 그런데 잠시 후, 샌슨이 내 팔을 잡아당겼다. 샌슨은 손가락을 들어 위를 가리켰고, 위를 쳐다보니 펠레일은 집의 2층에서 창문으로 몸을 내밀어 손을 앞으로 뻗고 있었다. 눈을 감고 중얼거리는 폼이 캐스팅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파이어볼!”

불덩어리! 거대한 불덩어리가 생겨났다. 아프나이델이 보여줬던 바로 그것이다. 펠레일의 가슴에서 생겨난 거대한 불덩어리는 그대로 우리 머리 위 를 날아 저쪽의 좀비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서로 엎치고 덮쳐서 산을 이루고 있던 좀비들은 피하지도 못하고 직격을 당하고 말았다. 불덩어리는 멋 지게 그 좀비들의 산 한가운데에 맞았다.

화르르르! 콰광! 타오른다! 좀비들의 산이 그대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좀비들은 불에 타면서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며 흩어지기 시작했다.

“키괘애애애액!”

“쿠아아아아악!”

하지만 좀비들의 산이 너무 높았다. 위쪽에 있던 놈들은 불에 타올랐으나 그놈들이 흩어지자 아무런 피해도 받지 않은 아래쪽에 깔려 있던 놈들이 보였다. 그놈들은 일제히 방향을 바꿔 우리 쪽으로 걸어오려 했다. 하지만 너무 얽혀 있느라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 쪽으로 먼저 달려 온 놈들은 불에 타오르고 있던 놈들이었다.

“키궤에에에!”

불 붙은 좀비들이 뒤로 불똥을 흩날리며 달려오고 있었다. 사방으로 휘젓는 팔에 붙은 불길이 아름다운 날개처럼 보인다. 날아오르려나? “공겨억!”

샌슨이 고함을 지르는 순간, 터커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터커는 다급하게 말했다.

“물러나, 천천히 물러나! 서로 섞이면 펠레일이 마법을 못 써!”

우리는 천천히 뒷걸음질쳤다. 어, 이거, 너무너무 무섭군. 불이 붙은 좀비들이 달려오고 있는데 천천히 물러나야 되다니. 그냥 뒤로 돌아 마구 달려 가고 싶은데. 그러나 이루릴은 물러나지 않았다. 이루릴은 고개를 숙이고 캐스팅에 들어갔다.

“그리스!”

달려오던 놈들은 갑자기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그놈들의 발이 하늘로 솟구치며 뒤로 나가떨어지는 장면은 꽤나 코믹했다. 달려오던 놈들이라 멈추 지도 못하고 앞에 쓰러진 놈들에 걸려 계속해서 쓰러졌다. 순식간에 우리 앞에는 좀비들의 산이 만들어졌다. 아주 공격하기 쉬운 목표, 2층의 펠레일 이 다시 외쳤다.

“파이어볼!”

불덩어리가 차곡차곡 쌓인 좀비들에게 직격되었다. 콰아아앙!

폭발음으로 귀가 멍멍하다. 좀비들의 시체 조각이 불 붙은 채로 튀기 시작했다. 역겹다, 정말! 차곡차곡 쌓인 장작더미에 불이 붙은 꼴이다. 불길이 하늘로 치솟았다. 난 눈을 돌리고 싶었다. 펠레일이 외쳤다.

“앞이 안 보입니다!”

터커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외쳤다.

“내려와! 그리고 칼잡이들은 날 따라! 이루릴 양은 조금 후 펠레일과 함께 나와서 뒤를 쳐요!”

이루릴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샌슨, 크라일은 터커를 따라 불에 타오르고 있던 좀비 장작더미(?)를 돌아서 언덕 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언덕 이 다시 눈앞에 나타났다. 두 번이나 불덩어리에 맞았지만 아직도 많은 수의 좀비들이 남아 있었다. 터커가 외쳤다.

“펠레일과 이루릴이 뒤를 칠 수 있도록 유인해 간다. 천천히 왼쪽으로!”

우리는 왼쪽으로 달려가며 야유를 보내기 시작했다. 크라일은 팔치온을 하늘로 휘저으며 고함을 질렀다.

“야! 야! 이쪽이다, 덤벼봐!”

샌슨도 만만찮았다. 그는 크라일을 흘깃 보더니 롱소드를 검집에 꽂아넣고 팔짱을 턱 끼더니 손을 내밀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헤이, 식사 준비됐다!”

대단한 배짱. 난 샌슨에게 욕을 한바탕 해주고 싶었지만 크라일은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하더니 역시 팔치온을 꽂아넣고 팔짱을 꼈다. 터커는 말이 안 나온다는 표정이었다.

“크아아악!”

우리를 본 좀비들이 일제히 달려오기 시작했다. 나와 터커는 슬금슬금 물러났으나 샌슨과 크라일은 그대로 서 있었다. 저거 정말 못 봐주겠네! 둘은 서로 곁눈질을 하는 폼이 죽어도 먼저 달아나지는 않겠다는 속셈인 듯했다. 그러면서도 둘의 다리는 달달 떨리고 있었다. 터커가 그 뒷모습을 보다가 결국 못참고 고함을 질렀다.

“후치, 내버려두고 뛰어!”

그러자 샌슨과 크라일은 기겁하더니 황급히 뒤로 돌아 달려오기 시작했다. 가관이다, 가관!

우리는 달음박질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좀비들을 유인하기 위해 뒤로 슬쩍슬쩍 쳐다보면서 팔을 휘저어대었다. 좀비들은 몸이 썩어 있어서 그런지 빨리 달리지는 못했다. 하지만 물밀듯 밀려오는 좀비들의 모습에는 머리털이 곤두설 지경이다. 발소리만으로도 귀가 멍할 지경인데 놈들은 썩어들어 가는 목으로 고함까지 지르고 있었다.

“케레레레레!”

“크아아악!”

우리는 언덕을 크게 돌았다. 그리고 언덕 위쪽에 있던 좀비들은 우리 오른쪽에서도 달려내려오기 시작했다. 이젠 멈추면서 여유를 부릴 수 없다. 우 리들은 숨이 턱에 닿을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점점 장난이 아니라는 느낌이 드는 순간이었다.

“그 숨결에 생명을 담고 모든 것을 바라보며, 종속될 수 없는 운명을 가진 자여. 파멸을 통해 영생을 구가하는, 파괴하지 못하면 존재할 수 없는 힘 이여. 그 모순의 섭리로써 춤을 추어요!”

쉬르르르르! 기괴한 소리에 달리고 있던 우리들은 뒤로 돌았다. 그리고 그대로 몸이 굳어버렸다.

불바람, 불의 장막이다!

길게 늘어진 불길이 마치 커튼처럼 좀비들의 등 뒤에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뒤의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거대한 포물선을 그리더니 그대로 우리를 쫓아오던 좀비들에게로 내리꽂혔다. 그러고는 좀비들 사이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불의 파도다! 좀비들은 마치 파도에 휩쓸리듯 아우성치기 시작했다. 크라일은 눈을 부릅떴다.

“어? 어? 펠레일이 저런 마법도 썼어?”

샌슨이 당장 대꾸했다.

“이루릴 양이오! 저건 정령술이지, 멋있지 않아요? 어, 그러니까, 후치? 저게 뭐냐?”

“그게 중요해? 안 달릴 거야? 불 속에서 헤엄칠래?”

그제야 크라일과 샌슨도 퍼뜩 정신을 차린 모양이다. 파도가 치듯이 뒤쪽에서부터 좀비들을 휩쓸어 오는 불길은 그대로 우리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 던 것이다. 투투투투투. 샌슨과 크라일은 목이 터져라 고함지르며 달려가기 시작했다.

“우아아아아!”

그러나 터커는 달려가지 않았다. 그는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키며 내게 말했다.

“저것 봐. 저건 정말…….”

파도는 우리에게까지 달려오지 않았다. 그것은 다시 커다랗게 우회했다. 소용돌이, 아이고 맙소사, 소용돌이다! 불꽃의 소용돌이가 좀비들을 빨아들 이기 시작했다. 거대한 소용돌이가 된 불길은 이제 회오리가 되어 하늘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좀비들은 마치 회오리바람에 휩쓸린 먼지들처럼 하 늘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파파파파파파!

“오…… 이런 걸 보다니!”

터커의 신음소리 같은 탄성이었다. 그의 얼굴은 불기운으로 벌겋게 되어 있었다.

우리 앞에서 약 직경 30큐빗의 불꽃 회오리가 솟아올랐다. 그것은 그대로 휘말려 올라가 하늘을 꿰뚫을 듯했다. 그리고 차츰 그 아래쪽이 땅에서 떠 올랐다. 빙빙 돌던 불꽃은 그대로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쉬르르르르! 우리는 그것이 까마득히 사라져 올라갈 때까지 시선을 떼지 못했다. 마침내 불 의 회오리는 작아져 보이지 않게 되었다.

시선을 내려보니, 땅에는 소용돌이 모양으로 타버린 흙이 보였다. 그리고 그 너머에서 이루릴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이루릴의 등 뒤에는 펠레 일, 칼, 사만다가 우리처럼 고개를 뽑아올리며 하늘을 보고 있었다.

이루릴은 불꽃에 시커멓게 타버린 땅을 조심스럽게 걸어왔다. 그녀가 발자국을 뗄 때마다 재가 조금씩 날렸다. 우리가 멀거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이루릴은 우리 앞으로 걸어와 멈춰 섰다.

“괜찮아요?”

우리는 기운이 쭉 빠진 걸음으로 언덕을 올라가고 있었다. 나와 샌슨, 크라일, 터커 등은 마구 달렸기 때문에 조금 지쳐 있긴 했지만, 그것보다는 너 무 엄청난 것을 보아버려 다리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그게 뭐지요? 정령술에 별로 조예가 없긴 하지만, 저런 것은 보도 듣도 못했습니다.”

펠레일이 내가 묻고 싶던 것을 아주 간절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루릴은 대답했다.

“샐러맨더의 힘을 실프에 실은 것이죠.”

펠레일의 얼굴엔 온통 ‘나 놀랐소!’라고 써둔 것 같았다.

“그, 그게 가능합니까?”

“당연히 가능하죠. 파이어볼 마법은 어떻게 운용되나요?”

“예? 아, 그것은…….”

“이력()이 조화를 이루기 위한 방식이 아닌가요. 마나의 집중, 임계점까지 억제하기. 임계 순간의 차크라의 이동 궤도에 따른 마나의 배치.”

“그것은 이력이라기보다는 운동 방식의 이질점 같군요. 알파 급수는 파이어 차크라에 따른 변경 정도이겠고 마나는 이때 집중됨으로써 억제되는 것 이므로…………….”

칼잡이들은 슬프다. 나, 샌슨, 터커, 크라일은 제각기 하늘, 발끝, 핼버드,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펠레일은 이후로도 한참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를 했고 이루릴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우리를 슬쩍 보더니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다른 힘이 동시에 작용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요. 간단하잖아요? 운동 에너지와 중력이 동시에 물체에 작용하면 포물선을 그리지 않나요? 그래서 능숙하게 활을 쏘는 사람은 멀리 있는 과녁을 똑바로 겨냥하지 않고 비스듬히 위쪽으로 쏘아서 맞출 수 있고.”

음, 이건 좀 알아듣겠군. 크라일은 이루릴의 말을 알아듣는 자신이 대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샌슨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맞아요. 흠. 똑바로 쏘지 않지요.”

그리고 펠레일이 다시 끼어들었다.

“하지만 정령은 데미인텔릭 아닙니까? 마나처럼 넌인텔릭이 아닌데요?”

다시 잠잠해지는 칼잡이들. 이루릴은 대답했다.

“전 유피넬의 율법을 따르는 엘프니까요.”

“아! 그, 그럼 인간은 불가능합니까?”

“글쎄요. 인간 정령사가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전 인간이 아니니까, 인간과 정령의 교감에 대해서는 체험할 수가 없어서요.”

펠레일은 고개를 끄덕였고, 그러자 우리 칼잡이들마저도 뭔가 대단히 안심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이해는 전혀 안 되지만. 난 신학에도 그렇지만 마 법학에도 취향이 안 맞을 모양이다. 그때 사만다가 언덕 위를 보더니 팔을 휘두르며 고함을 질렀다.

“예! 우린 괜찮아요!”

언덕 위를 보니 에델린이 신전 정문으로 나와서 팔을 흔들고 있었다. 그런데 이루릴은 눈을 찌푸렸다.

“표정이 이상하네요?”

이루릴은 에델린의 얼굴이 보이나 보다. 그때 에델린의 고함소리가 가늘게 들렸다.

“슈가 없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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