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유니콘 인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다시 상인들과 모험가들을 찾아다녀 보는 것이 어떠냐는 의논을 하게 되었다. 아프나이델이 그 의 견에 반대했다.
“안 됩니다. 넥슨 휴리첼의 경고를 생각하자면 제각기 흩어져서 돌아다니는 것은 위험할 거라고 생각됩니다.”
“흠. 넥슨 그 친구가 정말 문제로군요. 그 친구뿐만 아니라 수도의 모든 변태들이 우릴…………, 그런 말 좀 하지 마! 에 수도의 모든 도둑 길드 멤버들이 우릴 노리고 있 을 거라고 생각해야겠지요.”
우리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인원은 일곱 명. 반씩 흩어진다 치면 네 명과 세 명이다. 확실히 불리한 숫자다. 그렇다고 일곱 명이 모두 우르르 돌아다니자니 그것도 참 골치 아픈 노릇이다. 난 내 손을 바라보며 시무룩한 얼굴이 되었다.
“난 넥슨 그 사람 잡고 싶은데.”
“응, 무슨? 아, 네 OPG.”
“예. 그것 되찾아야 된다고…………, 왜 그러세요?”
아프나이델의 얼굴이 밝아지고 있었다.
“그렇지! 넥슨 휴리첼은 너의 OPG를 가지고 있지! 여러분. 빛의 탑으로 갑시다.”
“예?”
“넥슨 휴리첼을 붙잡는 데 도움이 될 물건이 있습니다. 그를 붙잡는다면 후치 군의 OPG도 회수할 수 있고 우리들도 불안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빛의 탑으로 가서 스크롤을, 에, 좀 비싸겠지만………….”
그러자 길시언은 걱정 말라는 얼굴이 되었다. 모험가는 넘치는 게 돈밖에 없는 모양이다.
“필요한 물건이라면 얼마든지 구입하십시다. 그런데 뭐가 필요합니까?”
“가서 말씀드리지요.”
그래서 우리는 두 번째로 빛의 탑을 찾았다.
아프나이델은 마법사라 그런지 별로 놀라지 않았지만 네리아와 엑셀핸드는 대단히 기이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들도 ‘빛의 탑-2F’라는 현판에는 정말 어이가 없는 모양이다.
“2층이라고? 그렇다면 높으니까 탑은 탑이네.”
네리아의 얼빠진 말에 나는 빙긋 웃었다.
“탑은 이 안에 있어요.”
“이 안에?”
네리아와 엑셀핸드는 나머지 일행을 보며 대단히 의심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쨌든 그 삐걱거리는 계단을 밟고 2층으로 올라가니 여전히 ‘인간과 드워프가 여길 찾아온 것은 수천 년 만이군.’이라고 말할 것 같은 노인이 앉아 있었다. 혹시 저 노인은 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저번에 왔을 때와 똑같은 모습인데? 노인은 우리 모습을 둘러보다가 의아한 표정을 짓고는 말했다.
“빛의 탑에 들어가시려는 거요?”
그러자 이번에는 아프나이델이 나섰다.
“길드 소속의 마법사입니다.”
“증명은?”
아프나이델은 뭔가 손짓을 해보였다. 별로 어려운 손짓은 아니었는데 희한한 것은 아프나이델이 손짓을 하자 허공에 손가락의 궤적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빛나는 선 이 허공에 그려지며 무언가 글자 같은 것이 만들어졌다. 그러자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들어가 보시오.”
네리아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노인을 보다가 노인 옆의 문을 바라보았다. 우리도 그랬지. 그래서 나와 샌슨은 네리아의 반응을 보기 위해 뒤에서 기다렸다. 칼과 길시언, 아프나이델이 들어가고 나자 네리아는 우릴 돌아보더니 주춤거리며 문으로 다가갔다. 그녀는 문에 다가가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우리에게 말했다. “이상하네. 세 사람이나 들어갔어? 저 뒤가 그렇게 넓어?”
“응. 넓어.”
네리아는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러고는 나오지 않았다. 어라? 우린 부리나케 뛰쳐나왔는데? 나와 샌슨은 서로 마주보았다. 그때 갑자기 네리아의 웃음소리가 들려 왔다.
“어머나…………, 까르르르!”
우리는 서로에게 심각한 표정을 선물했다. 그 다음 우리는 엑셀핸드에게 기대를 걸었다. 엑셀핸드는 우리 둘이 들어가지 않고 가만히 서 있자 몹시 의심스럽다는 표 정을 지어보이고는 문에 다가갔다. 그도 문 안으로 들어갔고, 역시 조용해졌다. 나와 샌슨은 다시 한번 서로를 쳐다보았다.
“이상하네?”
그때 노인이 고함을 빽 질렀다.
“너희들은 왜 올 때마다 시간 끄는 거야!”
우리는 후다닥 문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문 안으로 뛰어 들어가자 여전히 붉은 핑크빛의 하늘이 보였고, 핑크빛 하늘에 흰 선으로 날아가는 해오라기의 모습들과, 이번에는 왜 그런지 모르지만 해와 별이 동 시에 둥글게 떠오르고 있었다. 아래를 내려다보자 황금빛의 꽃들 사이로 크게 웃으며 팔짝팔짝 뛰고 있는 네리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너무너무 예뻐어!”
나와 샌슨은 맥이 풀려버렸다. 엑셀핸드는? 엑셀핸드는 근엄한 자세로 풀밭 가운데 서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뒤에는 칼과 길시언, 아프나이델의 모습도 보 였다. 허 참. 왜 두 사람은 놀라지 않는 거지? 내가 질문해 보았다.
“엑셀핸드, 놀라지 않아요?”
“뭐 말인가?”
“이런 환상적인 모습이 있는데…………. 네리아도 저렇게 즐거워 하잖아요.”
“이런 속임수에, 뭐가?”
속임수? 물론 이건 환상이고 에, 또, 잘은 모르겠지만 일단 현실은 아니며… 뭐 그런 것인데, 어쨌든 그건 나도 알지만 그렇다고 놀라지 말라는 법은 없잖아! 아프 나이델이 웃으며 설명했다.
“드워프가 왜 마법을 익히지 않으시겠나.”
에구, 난 몰라. 대답하지 않겠어. 칼이 덧붙여 설명해 주었다.
“내 알기로, 드워프의 깊은 눈은 절대 눈에 보이는 허상에 속지 않는다네, 네드발 군. 우리 인간들은 눈에 보이는 모습에 마음마저 흔들리지. 그러나 드워프들께서는 눈에 보이더라도 믿을 수 없는 것이면 마음에 한점 흔들림을 느끼지 않으신다고 들었지. 맞습니까, 아인델프 님?”
“그렇다네. 그건 당연한 거 아닌가? 머리는 생각하라고 달려 있는 것이네.”
“옳으신 말씀입니다만, 인간은 그렇게 되기 어렵군요.”
아프나이델이 미약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뭐, 그래서 좋은 점도 있습니다.”
엑셀핸드는 가소롭다는 듯한 표정으로 아프나이델을 바라보았다.
“합리적이지 못한 눈을 가진 것이 무에 좋은가?”
“드워프들에게 자랑할 만한 문학이 있습니까?”
“문학? 그걸 뭣에 쓰는가.”
아프나이델은 싱긋 웃을 뿐 대답하지 않았고 칼은 그 문답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길시언은 어느새 그 뒤죽박죽 탑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네리아는 어느새 조그 맣게 보일 때까지 달려가 버려 고함을 좀 지른 다음에야 돌아왔다.
돌아온 그녀를 보니 가관이었다. 가슴과 머리가 잘 안 보일 정도로 꽃을 가득 끌어안고는 새빨개진 얼굴로 씩씩거리고 있었다. 그녀가 숨을 몰아쉴 때마다 가슴에 있 는 꽃들이 눈발처럼 꽃잎을 흩날렸다. 네리아는 목멘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너어무 좋다, 예쁘다아! 이것 봐, 후치야. 이거 전부 금이야! 꽃잎도 금이고 꽃술도 금실이야!”
“예. 그렇네요.”
갑자기 네리아는 겁먹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내가 이거 꺾어가면 마법사들이 화를 내는 거 아닐까? 그래서 캄캄한 감옥에 가두고, 먹다 남은 음식 찌꺼기만 주고, 날 실험 재료로 쓰고, 금단의 의식의 제물 로 쓰거나 괴물에게 시집보내고……”
차라리 발랄한 그녀의 상상은 아프나이델의 말에 제지당했다.
“원하는 대로 가져가세요.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을 겁니다.”
“정말이에요? 정말?”
“예.”
나는 샌슨을 붙잡기 위해 애써야 했다. 샌슨은 즉각 고향에 계신 그녀를 위해 수만 송이의 황금꽃을 꺾는 열성적인 젊은이의 모습을 취하려 했던 것이다. 나는 샌슨 에게 귓속말로 말했다.
“샌슨! 이런 것이 가능한 것은 이 공간뿐이라는 말, 기억 안 나?”
샌슨의 얼굴이 실망감으로 가득 찼다. 네리아한테는 좀 있다가 말해 줘야지. 네리아는 계속 품속의 꽃들에 코를 파묻고는 즐거운 표정이었다.
뒤뚱뒤뚱 뛰어다니면서 나비를 붙잡기 위해 애쓰는 드래곤의 옆을 지나(땅이 좀 울리던데.), 손수건으로 정성스레 태양 표면을 문질러 광을 내는 남자에게 인사를 건네 고 나서(네리아는 거의 정신 착란을 일으킬 듯한 표정으로 할딱거렸다.), 그 뒤죽박죽 탑으로 걸어갔다.
“저게 빛의 탑이야?”
안으로 들어섰다. 내 예상대로라면 분명히 그 동안 천장과 벽의 모양이 몇 개는 바뀌어 있을 것이다.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역시 바뀐 것 같았다. 아프나이델은 중 앙의 수정구에 손을 얹고 말했다.
“길드원입니다. 스크롤의 구입을 원합니다.”
“어떤 스크롤을 원하십니까?”
오래간만에 들어도………… 역시 닭살이 돋는다. 네리아는 놀란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프나이델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로케이트 오브젝트의 스크롤이 필요합니다.”
“아!”
칼이 탄식을 뱉었다. 로케이트 오브젝트? 물건을 찾는다고? 무슨 물건? 칼은 말했다.
“OPG를 찾으면, 그렇다면 넥슨도 찾을 수 있겠군.”
아? 그게 그렇게 되나? 그거 기발한데? 다시 그 성별 불확실한 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의 숙련 정도를 말씀해 주십시오.”
아프나이델은 갑자기 좀 주저했다. 그러더니 낮게 말했다.
“……클래스 3의 러너입니다.”
“클래스 2는 마스터이십니까?”
아프나이델의 고개가 더 아래로 처졌다.
“아니오……………. 클래스 2는 익스퍼트입니다만.”
“클래스 1은 마스터이십니까?”
아프나이델은 최대한 낮아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아마 부끄러운가 보다. 우리들은 그게 뭐 부끄러울 게 있냐는 듯한 얼굴을 지어주기 위해 애썼다. 뭔 말인지 모르겠지만. 잠시 후 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케이지 님께서 여러분을 만나실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샌슨과 나는 곧 열심히 천장을 살폈다. 혹시 가까운 데서 떨어지면 받아내야지! 우리는 온몸의 근육을 팽팽히 긴장시켰다. 그리고 그 순간!
“안녕들 하시오?”
음. 케이지라는 그 마법사는 홀 옆의 벽이 갈라진 틈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그런데 그는 방과 방 사이의 틈으로 힘겹게 비집고 나오려다가 그만 화가 나버렸다. “뭐가 이렇게 좁아! 에잇!”
그래서 나와 샌슨은 그 늙은 마법사를 붙잡아 끌어내 주었다. 케이지는 끙끙거리고, 신음을 좀 내뱉었으며, 심지어 코끝까지 시뻘개졌지만 어쨌든 나오는 데는 성공 했다. 그는 몸을 툭툭 털면서 말했다.
“원이런 젠장. 잠시만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문도 없는 방에 갇히겠군. 그래, 스크롤을 원하신다고?”
“그렇습니다.”
케이지라는 마법사는 훤칠한 키에 근엄하게 생긴 늙은이였는데 희한하게 수염을 깨끗이 면도했다. 우리는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그의 턱을 바라보았고 그러자 그는 헛기침을 조금 했다.
“흠. 뭣들 보는 거요? 실험 도중에 어쩌다가 수염을 좀 태웠소.”
“07, 41….. 죄송합니다.”
칼은 당황해서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는 고개를 돌리며 웃음을 감추었다. 케이지는 다시 헛기침을 좀 하고 나서는 손가락을 튕기며 뭐라고 말했다. 그러자 허공에서 튼튼하게 생긴 상자가 나타나더니 아래로 텅 떨어졌다. 우리는 놀라서 한 발자국 물러났지만 케이지는 별 표정 없이 말했다.
“무슨 스크롤을 원하시오?”
“예. 어떤 물건을 좀 찾으려고, 로케이트 오브젝트를 원합니다.”
“당신 숙련도는?”
아프나이델은 아예 처음부터 말해 버렸다.
“클래스 1의 마스터입니다.”
“어디까지 하는데?”
“클래스 3까지…….”
“클래스 3까지? 흐음. 그렇다면 유효 거리가 얼마 되지 않을 텐데.”
“얼마나 되겠습니까?”
“글쎄. 한 이삼백 큐빗이 넘어버리면 거의 거리는 못 맞춘다고 봐야 할 거요.”
“이삼백이라. 그것 참.”
아프나이델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삼백이라고? 그렇게 가까운 곳에 있을까? 아프나이델은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 없지요. 일단 두 개만 부탁하겠습니다.”
밖으로 돌아나오는 길에 날개 달린 개구리를 잡으러 뛰어다니는 네리아를 잡으러 뛰어다니는 소동이 있었다. 네리아는 목이 터져라 웃으며 개구리뜀으로 뛰며 그 개
구리를 잡으려 했고 덕분에 우리는 눈은 좀 즐거웠지만 네리아를 붙잡느라 고생은 좀 해야 했다.
네리아는 가슴 가득 끌어안은 꽃에 코를 파묻으며 낄낄거렸다.
“너무너무 예뻐. 으헤헤. 금꽃이다, 금꽃. 그런데 이 꽃씨를 받아다가 심으면 다시 이런 꽃이 날까? 음. 데미 공주님에게 물어보면 전문가답게 말해 주겠지?”
난 어깨를 으쓱하면서 대답을 회피했다. 예상이지만 아마도………………
계단을 다 올라왔다.
우리들이 차례로 나오고 나서도 네리아는 계단 꼭대기에 서서 그 신비로운 광경을 아쉽다는 듯이 바라보느라 맨 마지막에 나왔다. 자, 이제 나오기만 하면 그 꽃은 사라지겠지? 이히히.
이윽고 네리아가 나왔다. 그리고 그 꽃은 사라져버렸다.
“어머!”
네리아는 펄쩍 뛰었다. 난 웃으며 말했다.
“우하하. 저 안에 있는 모든 것은 환상에 속하는 것으로…………, 네리아?”
네리아는 망연히 자신의 빈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꼼짝도 하지 않고, 정말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난 놀라서 네리아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눈가엔 눈물이 맺히고 있 었다.
“네리아? 이런, 네리아!”
네리아는 꼼짝도 하지 않은 채 그저 거기 그대로 꽃이 있는 양, 빈손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 눈의 눈물 방울은 더욱 굵어졌다. 난 당황해 버렸다.
“이런, 미안해요. 네리아. 실망했군요. 미리 말했어야 했는데.”
“허무해…….”
“예? 뭐, 뭐라고 그랬지요? 네리아?”
대답 없이 네리아는 손을 축 늘어뜨렸다가 그 반동으로 다시 올렸다. 그러고는 머리를 뒤로 젖히며 마치 햇살이 눈부시다는 듯이 손으로 눈을 가렸다.
“하하하…….”
그녀는 웃었다. 하지만 웃는 것은 입뿐이었다. 눈은 가려버려서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달려나가 버렸다. 책상에 앉아 있던 노인을 제외하고는 모두들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난 노인을 바라보았다. 그 노인만은 희미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어쨌든 우리는 모두 당황해서 빛의 탑을 내려왔다. 대로로 나오니 네리아는 어느새 에보니 나이트호크에 올라타 심드렁한 표정으로 우릴 보고 있었다.
“느리네. 빨리 가요. 배고파.”
이런 상황에서 뭐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난 정말 그를 존경해 버릴 테다!
“여관까지 누가 빨리 가나 내기!”
샌슨을 존경해야 되나? 샌슨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네리아는 웃으며 에보니 나이트호크를 출발시켰다.
“좋아!”
“야! 비겁해!”
곧 샌슨도 출발해 버렸다. 나라고 질 수야 없다! 난 제미니를 급하게 출발시켰다. 아니, 출발시키려 했다. 그때 그 말만 들려오지 않았더라도 출발했을 것이다. “푸하하! 바람처럼 빠른 드워프 앞에 누가 앞서 달리느냐!”
웃느라 도저히 출발할 수 없었고 그래서 난 엑셀핸드에게까지 앞을 내어주고 말았다. 그런데 아무래도 우린 바이서스 임펠의 폭주족으로 소문나겠는걸?
유니콘 인으로 돌아온 순서는 역시 에보니 나이트호크가 일등이었다. 그러나 말구종의 증언에 의하면 슈팅스타와 에보니 나이트호크는 그야말로 박빙의 승부를 벌 였다고 한다.
저녁 시간이 될 때까지 우리는 각자 맘 편하게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그래서 난 살짝 여관을 빠져나왔다. 수도의 길에 익숙하진 않지만 어렵게 어렵게 내가 원하는 것을 구할 수 있었다.
여관에 돌아와보니 역시나 샌슨과 길시언은 환호를 올리고 뒤뜰로 달려가 버린 후였다. 그리고 하인 하녀들과 손님들 상당수도 역시 환호를 올리고 따라가 버린 모 양이다. 그래서 홀은 고요했고 칼과 아프나이델은 각자 채광이 좋은 자리에서 책을 읽으며 간혹 뭔가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고 있었다. 엑셀핸드는 적당한 테이블에 앉아 파이프를 피워물고는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엑셀핸드는 대단히 만족한 얼굴을 한 채 눈을 가늘게, 거의 감은 것처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는 네리아가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샌슨과 길시언은 역시?”
뒤쪽에서 들려오는 박수와 검 부딪히는 소리를 들어 알고 있지만 확인 삼아 물어보았다. 네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노래처럼 운율을 맞추어 말했다.
“전사들은 부지런하네.”
그러곤 부드럽게 이었다.
“시간만 나면 대무, 대무, 대무.”
“아가씨의 한숨은 듣지도 않나요?”
나 역시 노래하는 것처럼 네리아의 말을 받으며 자리에 앉았다. 네리아의 눈이 동그래지더니 곧 웃으며 말했다.
“아가씨의 시선은 보지도 않나요?”
마치 바딩 대결 같은걸? 바딩 대결이란 바드들이 서로 즉흥곡으로 대결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우리들처럼 이렇게 간단하게 하지는 않고 꽤 오래 노래한 다음 상대 편이 부드럽게 그것을 받아넘겨 다시 자신의 노래를 해야 된다. 하지만 난 마음 편하게 했다. 밖에서 구해 온 물건을 네리아에게 내밀며 노래를 받았다.
“전사는 나보다 검을 더 좋아하네.”
네리아는 내가 건넨 꽃다발을 보더니 눈이 동그래졌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꽃에 코를 파묻으며 노래를 불렀다.
“검을 들고 뛰느니, 나와 춤춰요.”
“이렇게 과감하게 말하니, 미운가요?”
“그래도 어쩔 수 없네. 봐요, 햇살이 따사로워요.”
엑셀핸드는 미소를 지으며 파이프를 끄덕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가락이 점점 살아나는 것을 느끼며 노래했다.
“봄바람이 귓가를 간질이는 삼월이 오면.”
네리아는 꽃 한 송이를 뽑아들더니 귀에 꽂으며 노래했다.
“봄맞이 축제에 반짝이는 웃음 조각들.”
“낙엽이 바람을 타고 도는 시월이 오면.”
네리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칼에게 다가가며 노래했다.
“추수제의 유쾌한 농부의 노래.”
“두 개의 달이 떠올라 세상을 비추면.”
네리아는 꽃 한 송이를 칼의 귀에 꽂아주었다. 아프나이델은 고개를 돌리며 웃었고 난 배를 잡고 웃었다.
“트윈문의 축제에서라면 나도 용기가 생겨요.”
“나와 함께 춤춰요. 봐요, 즐겁지 않아요?”
“나와 함께 춤춰요. 하나, 둘, 셋.”
칼은 서툴게 웃으며 우리들의 노래를 감상했다. 역시 칼이라서 귀에 있는 저 꽃을 차마 뽑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어렵지 않아요. 전사 양반. 날 보아요.”
“내 손을 잡아요. 칼자루를 놓고서.”
“어렵지 않아요, 전사 양반. 그냥 춤춰요.”
“즐겁게 내딛고 신경 쓰지 않으면 그게 춤이죠.”
우리는 어스름이 내릴 때까지 노래불렀다. 길시언과 샌슨도 석양이 내려 서로 볼 수 없을 때까지 대무를 계속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아프나이델은 자신의 계획을 진행시켰다.
아프나이델은 방 가운데 섰고 우리는 모두 입을 다물고 그를 주시했다. 아프나이델이 신경을 집중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방 안의 조명은 모두 최대로 낮춰두었다. 그래서 지금 방 안에는 촛불 하나만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아프나이델이 격정적으로 손짓을 함에 따라 그의 얼굴은 손 그림자에 가려 나타났다 사라졌다 했고 그때마다 그의 동공에 반사되는 촛불 빛이 번뜩였다. 어두운 방 안에 침울한 아프나이델의 목소리가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계속되었으며 그리고 주위에는 모두 과거의 한 시간에 영혼을 붙들어매 둔 것처럼 생긴 사람들이 앉아 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모두들 이런 기괴한 빛 아래에 지극히 생기 없어 보이는 얼굴이다. 어쩌면 그것은 아프나이델의 저 치열하며 음울한 캐스팅 동작 때문에 무 거워진 내 마음이……
잠시 후 열린 창문으로 박쥐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푸드드득! 우리는 경탄스러운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프나이델은 팔을 내밀었고 그러자 박쥐는 부드럽게 아프나이델의 손에 매달렸다. 아프나이델은 다른 손으로 그 박쥐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흐음. 저게 이루릴인 가.
“충실한 내 친구. 언제나 부를 때마다 달려와 주어 고맙구나.”
우리들도 한결 살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원 참. 아프나이델의 캐스팅 동작은 항상 우리들의 심장을 오그라들게 만드는군. 아프나이델은 너무나 정성 어린 동작으로 모든 힘을 다 기울인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캐스팅한다. 아마 아프나이델도 아직 달인은 아닌가 봐. 달인이라면 대충대충 할 텐데.
아프나이델은 박쥐의 귓가에 대고 뭐라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창가로 걸어가 박쥐를 다시 날려보냈다. 박쥐는 퍼드덕거리며 검은 손수건처럼 날아가 버린다. 그 다음 아프나이델은 조심스런 손놀림으로 빛의 탑에서 사둔 스크롤을 꺼내었다. 우리는 다시 숨을 몰아쉬고는 조용해질 준비를 갖추었다.
아프나이델은 스크롤을 찢으며 시동어를 말했다.
“로케이트 오브젝트!”
아프나이델은 뻣뻣하게 몸이 굳어버렸다. 그는 눈을 꽉 감고 이빨도 앙다물고 있었다. 그의 팔이 사람의 팔이라기엔 너무 딱딱한 동작으로 들리더니 서서히 제자리 에서 돌기 시작했다.
“여기군…………. 그 OPG야. 확실해………….”
나는 침을 꼴깍거리며 아프나이델을 바라보았고 아프나이델은 빙빙 돌다가 벽을 가리켰다. 우리는 모두 그 벽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뭐가 보이는 것처럼 애써 심각 하고 그럴 듯한 표정을 서로 짓다가 곧 맥이 빠져버렸다. 아프나이델이 저쪽이라면 저쪽이겠지. 그런데 저쪽으로 얼마나 떨어져 있는 거야? 100큐빗? 1000큐빗? 수 십만 큐빗? 아, 물론 수십만 큐빗까지야 되지 않겠지만 그래도 무조건 저쪽이라니.
아프나이델은 눈살을 크게 찌푸렸다.
“제길…………. 거리가…………, 거리를 모르겠어.”
한참 동안 정신을 집중하고 있던 아프나이델이 한숨을 푹 쉬면서 눈을 떴다.
“방향은 파악했습니다만 거리를 알 수가 없군요.”
“어느 정도 떨어져 있다는 것도 모르겠습니까?”
아프나이델은 고개를 많이 숙이며 말했다.
“예. 오후에 케이지 님이 말씀하셨다시피 제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200큐빗 정도 거리밖에 안 됩니다. 그보다는 더 멀 텐데, 문제는 250큐빗 정도인지 수천 큐빗인 지는 모르겠다는 겁니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그 박쥐가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저쪽 방향의 도시를 감시하게 해두었습니다만, 방 안에 있거나 하면 어차피 알 수가 없겠지요.”
칼은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그렇습니까? 그럼 왜 낮에 시도하지 않고 밤에 시도했습니까?”
“넥슨은 수배당하고 있는 자이니만큼 낮에는 움직임이 없을 겁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보복하겠다고 했으니 밤에 움직일 확률이 더 높다고 생각했습니다.”
“흠. 논리적인 생각이오. 그런데 스크롤은 왜 두 개 구입했습니까?”
“이루릴이 찾아내면 확인해 보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이루릴로부터는 연락이 없군요.”
“그럼 잠시 후 한 번 더 시도해 보고 그래도 거리를 알 수 없다면 그냥 불침번을 서면서 자도록 합시다. 그게 낫지 않을까요?”
“예. 알겠습니다.”
우리는 잠시 기다리기로 했다. 서로서로 잡담을 나누면서 한 시간쯤 보내고 나서, 아프나이델은 한 번 더 시동어를 말하며 스크롤을 찢었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 다.
“방향이 달라……… 응? 움직인다.”
움직인다고? 우리는 숨죽인 채 아프나이델을 바라보았다. 아프나이델은 고개를 가로젓더니 눈을 떴다. 그러고는 숨쉴 사이 없이 다시 캐스팅을 시작했다.
“이루릴…………. 이쪽 방향이다. 주욱 날아가라. 힘의 강도가 달라진다…………. 움직이는 속도를 봐선· 말이다. 말을 탔다면 역시 대로. 대로에서 말이나 마차들을 유의 해서 살펴보자…. 멍청이! 그건 퇴비 수레잖아! 파리는 천천히 쫓고 어서 날아가. 그래. 비틀거리지 말고. 이쪽 방향이다………….”
아프나이델은 안타깝다는 듯이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
“좀더 찾아보고……. 말이야, 말……. 그렇다면 어디의 방 안이나 실내에 있는 것은 아니야. 그리고 말을 달리고 있으니까………… 틀림없이………… 찾을 수 있어.” 아프나이델은 갑자기 입을 딱 벌리더니 말했다.
“저쪽! 150큐빗!”
아프나이델은 창문 쪽을 가리키며 외쳤고 우리는 그의 말에 벼락치듯 일어났다. 뭐라고? 150큐빗이라고? 아프나이델은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이루릴! 왜 말을 보지 못했어? 100큐빗? 이럴 수가!”
“이야아아아!”
길시언의 동작이 가장 빨랐다. 길시언은 재빨리 창 쪽으로 달려가더니 베란다 문을 쾅 열어젖히며 프림 블레이드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의 얼빠진 목소리가 들려왔 다.
“대로에는 아무것도 없소!”
“50큐빗! 없다고요?”
우리들도 모조리 달려나갔다. 대로에는 밤이라 걸어다니는 사람들뿐이었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말 같은 것이라고는 저기 하늘에 떠 있는 것 말고는 아무 데도…………… 하늘에 떠 있어?
“하늘이다!”
“뭐라고?”
“꺄아아아악!”
우리들이 지른 고함 소리가 대로에 걸어가던 사람들에게도 들렸나 보다. 대로에서 비명 소리가 요란했다.
검은 밤하늘에 달을 등지고 떠 있는 말들과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모두 셋. 이 아름다운 도시 바이서스 임펠의 야경 위로 그들은 시커먼 그림자, 흉흉한 적의만을 띤 채로 떠 있었다. 아프나이델이 쥐어짜는 목소리로 말했다.
“팬텀 스티드다! 하늘을 날아오고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