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샌슨은 우선 주인장을 업고서 방으로 옮겼다. 우리는 여관의 방마다 돌아다니며 투숙객을 조사해 보았다. 투숙객들은 많지 않았지만 모두들 제각기 다른 병에 걸려 있었다. 미치겠군. 이건 칼라일 영지처럼 작은 영지도 아니야. 엄청나게 큰 항구라고. 샌슨은 질린 얼굴이었지만 그래도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모두 한 방으로 모아라. 아냐, 홀이 좋겠군. 후치, 시트를 끌어모아. 제레인트 씨는 이 여관 전체를 막아주십시오. 네리아와 이루릴은 나와 함께 환자들을 옮깁시 다.”
이루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돼요. 지금 바로 움직여야 돼요.”
“예?”
“여긴 대단히 큰 도시이고 우린 겨우 다섯 명입니다. 오늘 아침에서야 이런 일이 발생한 것으로 보아 아마 어젯밤에 의식이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 해가 뜨면서 발병이 시작되었고요. 아직까지는 환자가 별로 많지 않겠지만 우리가 치료하느라 시간을 소모하면 환자는 더 늘어날 거예요. 그러니 빨리 디바인 마크를 찾는 것이 더 나을 겁니다.”
“아, 예.”
제레인트는 우리들이 도대체 무슨 말을 나누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난 그에게 설명했다.
“프리스트시니까, 세이크리드 랜드는 아시죠?”
제레인트의 얼굴이 하얗게 바뀌었다.
“맙소사, 여기가! 모험의 시작으로는 너무 과격한데?”
“지금 모험이 문제가 아니에요. 시간을 끌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갈 거예요. 빨리! 당신은 테페리의 프리스트예요. 당신이 우릴 안내해야 된다고요. 세이크럴라이즈 의 증거물을 찾아서 회수해야 돼요!”
제레인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알겠어. 그런데 너희 일행은 이 일에 대해 너무 잘 아는데?”
“우리는 몇 주일 전에 바로 이런 세이크리드 랜드를 지나왔거든요.”
제레인트의 눈에 선망과 동경이 떠올랐다고 해서 지금 우쭐거리고 있을 수야 없다. 우리는 그를 다그쳐서 밖으로 나왔다. 네리아는 질린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그림자가…..!”
항구도시 특유의 저 단단한 돌 건물은 지금 찬란한 회색이었다. 회색이 저렇게 찬란할 수 있다니. 그러나 그 요괴스러운 음영의 부재는 보는 사람을 미치게 만들고 있었다. 제레인트 역시 얼이 빠져버린 채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때였다.
“크아아악!”
재빨리 옆을 돌아보았다. 조금 떨어진 건물에서 웬 사나이가 달려나왔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입에는 거품을 물고 머리는 풀어헤치고 손은 미친 것처럼 휘젓고 있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곧 우리 쪽으로 달려왔다. 샌슨이 악에 받혀서 고함질렀다.
“제기랄! 간질병이다!”
“우오오오!”
샌슨은 무기를 뽑아들려다가 곧 고개를 가로젓더니 검집째로 검을 들어올렸다. 그러고는 곧 무지무지한 속도로 검집을 휘둘렀다. 퍼어억! 사나이는 맞고는 그대로 나가떨어져 기절해 버렸다.
“좀 미안하지만, 시간이 없으니 어쩔 수 없어.”
샌슨은 기절한 사나이에게 사과를 보내었고 제레인트는 대단히 감탄한 얼굴로 샌슨을 바라보았다. 제레인트는 입술을 핥고는 말했다.
“이, 이거, 이건 진짜 모험이군.”
샌슨은 콧방귀를 뀌고는 곧 마구간에서 말을 꺼내면서 내게 말했다.
“후치! 장작개비를 찾아서 전부에게 쥐어줘. 무기는 안 돼. 나에게도 하나 가져다주고.”
“알았어.”
난 빠르게 장작개비를 찾아서 각자에게 내밀었다. 레니는 부들부들 떨면서 그 몽둥이를 받아들었고 이루릴도 탐탁찮은 눈으로 받아들었다. 네리아는 트라이던트를 거꾸로 쥐었고 제레인트는 자신의 스태프를 힘껏 쥐었다. 샌슨은 말에 올라타더니 말했다.
“레니! 당신은…… 아니, 우리와 함께 있어요. 그게 안전하니까.”
“에?”
“설명할 시간이 없어요! 우리 옆에 붙어 있어야 돼!”
그러자 네리아는 레니를 잡아올려 에보니 나이트호크에 태웠다. 레니는 말에 처음 타는 것인지 치마를 주체하지 못해 애먹으며 올라탔고 모두들 말에 오르자 샌슨은 말했다.
“제레인트, 아니, 레니! 이 도시의 한가운데가 어딥니까?”
“예? 예?”
“가운데! 그러니까 도시의 정중앙 말입니다!”
레니는 눈물이 그렁그렁한데다가 당황해 버려 말을 제대로 못했다.
“자, 잠깐만요. 우리 아빠에게 가는 것이 아니라…………”
“아니! 제기랄. 당신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서라고요! 우리 말을 믿어요!”
레니는 완전히 혼란에 빠져버렸다. 샌슨은 속이 타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이루릴이 조용히 말했다.
“일단 시내 쪽으로 달리죠. 우리는 도시의 외곽 쪽에 있으니까 저쪽이 중심 방향이겠군요.”
“이랴아!”
샌슨은 다급하게 출발했지만 곧 우리들 중에 노새에 탄 사람이 있는 것을 깨닫고는 혀를 차며 속력을 줄였다. 우리는 애타는 마음과는 달리 트롯 정도의 가벼운 속력 으로 달려가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미칠 것 같은 광경이었다.
그림자 하나 없는 건물들에선 비명소리나 신음소리들이 울려퍼졌고 간혹 타는 듯한 갈증을 호소하며 바다에 뛰어드는 사람의 모습까지 보였다. 고열로 정신 착란을 일으킨 모양이다. 건물의 문으로 비척거리며 기어나오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사람들은 그렇게 기어나오다가 무슨 말인지 모를 말을 외치면서 쓰러져버렸다. 샌 슨은 달려가면서 그 중 변변해 보이는 사람, 그러니까 악성 무좀인 듯한 병으로 고생하는 사나이에게 외쳤다.
“이봐! 시청으로 달려가서 빨리 프리스트들을 모두 집합시키라고 그래! 이 도시는 지금 세이크리드 랜드라고 전하라고!”
사나이는 무슨 말인지 몰라 잠시 얼떨떨한 얼굴로 샌슨을 바라보며 말했다.
“뭐? 뭐라고? 무슨 랜드?”
“세이크리드 랜드!”
사나이는 의심스러운 표정이었지만 나름대로 기민한 사람인지 즉각 몸을 돌려 달려가기 시작했다. 샌슨은 이를 악물었다. 그때 제레인트가 다급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이것은 누군가가 저주를 내렸다는 말이군요?”
샌슨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곧 놀란 눈으로 제레인트를 바라보았다.
“당신! 어떻게 말을 하면서 이 방어막을 계속 형성할 수 있지요?”
어라? 그러고 보니 우리들은 계속 그 푸르스름한 막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제레인트는 전혀 기도를 하지 않고 있었다. 에델린은 기도하는 동안 다른 일을 전혀 하지 못했는데? 나 역시 놀란 표정으로 제레인트를 바라보았고, 그러자 제레인트는 말했다.
“예? 아, 예. 이것 덕분이죠.”
제레인트는 로브 자락 속으로 손을 집어넣더니 곧 찬란한 빛을 뿜어내는 디바인 마크를 꺼내었다. 모두들 눈이 부셔서 어쩔 줄을 몰랐다. 특히 제레인트는 크게 놀란 표정이었다.
“와? 진짜 반짝거리네?”
우리는 조금 괴상한 눈으로 제레인트를 바라보았다. 음, 저건, 아. 테페리의 하이 프리스트가 그에게 선물한 바로 그것이었다. 샌슨은 놀란 얼굴로 말했다.
“그거, 굉장한 물건인가 보군요?”
제레인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샌슨은 다행스러운 얼굴이 되더니 다시 앞을 향해 달려갔다.
델하파는 꽤 넓은 도시였지만, 안타까운 마음이 이끄는 속도로는 순식간에 횡단할 수 있는 거리였다. 샌슨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말했다.
“아무래도 여기쯤인 것 같다. 그럼 제레인트……………, 젠장!”
샌슨은 말을 하다가 화를 내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들이 서 있는 곳은 주위로 다섯 개의 갈림길이 있는 광장이었다. 테페리의 프리스트는 선택의 폭이 둘일 경우에만 그 권능을 사용할 수 있다. 이런, 다섯 개라니. 우리는 어쩔 줄 모르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때 이루릴이 말했다.
“땅에 묻었을 겁니다. 모두 포석이 깔려 있으니 지금 즉시 포석이 파헤쳐진 곳, 흙이 드러나 있는 곳을 찾아보지요.”
“아! 그렇군! 그럼…….”
“으아아아!”
뭐야? 우리는 얼빠진 얼굴로 네리아를 바라보았다. 네리아는 어떤 방향을 바라보며 질려 있는 상태였다. 뭐지? 뭣 때문에? 우리는 네리아가 바라보는 방향을 쳐다보 았다.
“오, 맙소사. 테페리여!”
“젠장!”
멀리 항구쪽에서 물살이 움직이고 있었다. 파도는 아니었다. 수면 아래에서 무언가 엄청나게 많은 것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해변으로 걸어올라오고 있었다.
바다로부터 수많은 해골들과 시체들이 걸어나오고 있었다.
“수장된 시체들! 그것들이 언데드가 되었어!”
샌슨의 고함소리였다. 그렇다. 여긴 항구 도시다. 그들은 시체를 어떻게 처리하는가. 그들은 평생토록 거친 바다에 애증을 던지며 살아왔던 선원들을 마지막에 어디로 돌려보내는가.
“우아아!”
항구쪽에서 아스라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이루릴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말했다.
“흙을 찾으세요. 빨리!”
그러곤 이루릴은 래셔널 셀렉션을 돌렸다. 샌슨은 놀라서 외쳤다.
“뭐하는…… 안 됩니다! 방어막을 벗어나면 이루릴도 병에 걸려요!”
“전 괜찮습니다. 빨리 그 디바인 마크를 회수해 주세요.”
이루릴은 그렇게 말하며 바로 달려갔다. 샌슨은 악을 쓰기 시작했다.
“이런! 멍청한! 혼자 달려가서 어쩌겠다고!”
“악쓰는 건 나도 할 수 있어! 이루릴을 생각한다면 어서 흙을 찾아!”
네리아의 앙칼진 고함소리였다. 그리고 나도 외쳤다.
“괜찮아! 이루릴은 칼라일 영지에서도 병에 걸리지 않았어. 그때 에델린은 이루릴을 축복하지 않았잖아?”
샌슨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지만 다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도 저 많은 언데드를 어쩌겠다고!”
우리는 모두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제기랄. 칼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지도자 없는 쥐떼처럼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그때 난 레니를 보았다. 그녀는 힘겹게 입 술을 놀리고 있었다. 네리아는 내 시선을 보더니 자기 앞에 앉아 있는 레니를 내려다보았다.
“뭐라고? 이봐! 조용히 좀 하라고!”
네리아는 레니에게 몸을 기울였다. 레니는 힘겹게 말했다.
“흙이라면…… 저쪽에 공원이…….”
“달려!”
우리는 레니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제레인트는 우리들이 방어막의 범위를 벗어날까 봐 죽어라고 달려왔다. 잠시 건물들과 골목을 지나고 나자 과 연 넓은 공원이 보였다. 공원은 이 접시 모양의 도시를 둘러싸고 돌아가는 환형 도로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어 아래쪽으로 멀리 항구가 보이는 약간 높은 지대였다. 이 공원에도 포석이 깔려 있기는 했지만 나무들과 풀이 자라는 곳은 흙이 드러나 있었다. 그런데 이 넓은 곳에서 어떻게 그걸 찾지? 우리는 막막한 눈으로 사방을 둘러보 았다. 그때 난 샌슨의 얼굴을 보고 놀라고 말았다.
샌슨의 눈에서 불꽃이 튀기고 있었던 것이다.
난 그 얼굴에 질린 채 샌슨의 시선을 따라갔다. 이른 아침, 이 타오르는 듯한 대기 속으로 꿈틀거리는 아지랑이들. 그 사이로 공원 저편에 서 있는 사람의 모습이 보 였다. 그 사람은 공원 한켠의 바위 위에 편안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넥슨 휴리첼!”
넥슨, 넥슨! 저 빌어먹을 놈. 저놈이 여기 왜 있는 거지? 넥슨은 고개를 들어 작렬하는 태양을 흘깃 바라보다가 다시 우리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의외로군. 꽤 빨리 오는군.”
난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질렀다.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것이냐! 네가 이 도시를 세이크럴라이즈한 것이냐?”
넥슨은 빙긋 웃으며 일어났다. 샌슨은 턱을 덜덜 떨면서 말에서 내렸다. 난 말에서 내린 다음 네리아에게 말에 타고 있도록 손짓했다. 레니가 걱정되는 것이었다. 네 리아는 고개를 끄덕였고 제레인트는 의아한 얼굴로 노새에서 내려섰다. 제레인트는 나에게 살며시 물어왔다.
“저 사람은 누구지?”
“우리나라의 반역자예요. 자이펀과 손잡고 반역을 꿈꾸다가 들통나서 달아났지요. 그런데 왜 여기 있는 거지?”
샌슨은 검을 뽑아들면서 음산하게 말했다.
“여기서 뭐하냐?”
“기다리고 있었지.”
“우리를? 우리를 따라온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너희들이 이 도시에 있는 것을 알게 되었지.”
난 갑자기 어젯밤의 기억이 떠올랐다. 창가를 날아가던 박쥐.
“그 박쥐가!”
샌슨은 의아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난 이를 악물면서 외쳤다.
“그 뱀파이어도 와 있었군! 낮이라서 못 나오는 모양이지? 그렇군. 역시 이 도시의 이 질병도 그 여자의 작품이군?”
샌슨은 눈을 크게 뜨더니 곧 넥슨을 사납게 노려보았다. 넥슨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놀랍군. 정말 무서운 놈들이야. 모르는 것이 없는걸.”
“왜? 왜 자이펀과 바이서스의 전쟁에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이 나라에 이런 짓을 하는 거야?”
넥슨은 히죽 웃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검을 뽑아들었다.
“설명할 의무가 없다.”
“뭐야?”
그때 샌슨이 앞으로 나섰다. 롱소드를 쥔 샌슨의 팔에 힘줄이 돋는 것이 보였다. 지독한 열기와 지독한 감정의 소용돌이로 공원은 기이하게 보였고, 모든 것이 백열 하여 끓어오르는 아지랑이 사이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보았다.
샌슨은 말했다.
“아마 넌 디바인 마크의 위치를 알겠지. 말한다면 죽이지 않겠다.”
넥슨은 피식 웃었다.
“너희들은 여러 가지로 방해가 된다. 너희들에 대한 복수를 생각하고 있었긴 하지만, 그것은 좀 더 장엄하고 고상한 장면에서 이루어지길 바랐지. 이런 시시한 장소 에서일 줄은 몰랐지. 하지만 기회가 왔으니, 내 복수심을 충족시키겠다.”
“말은 필요없군.”
샌슨은 앞으로 달려나갔다. 제레인트가 기겁한 고함을 질렀다.
“샌슨 씨! 나가면 병에 걸립니다!”
그러나 샌슨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쾅!
넥슨 저 빌어먹을 자식은 여전히 내 OPG를 끼고 있었다. 그는 무서운 힘으로 샌슨에게 검을 휘둘러대었다. 하지만 샌슨은 그 굉장한 힘이 실린 검을 상대하지는 않 았다. 샌슨은 가볍게 발을 놀리며 넥슨의 검을 피해 나갔다. 그리고 샌슨은 평범하게까지 보이는 찌르기를 시작했다.
넥슨은 질겁하며 물러났다. 샌슨의 공격은 극히 평범했지만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공격이었다. 단순한 중단 찌르기. 그리고 곧 가벼운 상하단 베기. 넥슨은 극히 놀란 얼굴로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샌슨은 가볍게 발을 움직여나갔고 그의 팔은 계속 움직였다. 마치 파리나 쫓는 듯이 가벼운 팔놀림. 그러나 넥슨은 그 가벼운 검의 궤 적에 당황하며 계속 물러나는 것이다.
네리아는 감탄을 터뜨렸다.
“대단해…….”
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을 새도 없이 샌슨과 넥슨의 대결을 바라보았다. 샌슨은 여전히 귀찮은 파리를 쫓는 노인처럼 검을 이리저리 휘둘러대었다. 하지만 그 공격 에 넥슨은 주춤거리며 물러나는 것이다. 넥슨은 몇 번 반격하려는 듯이 어깨를 움직였지만 그때마다 반격을 포기하며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네리아는 침을 삼키며 말했다.
“전부 막히고 있어………… 저렇게 간단히 휘두르는 건데.”
달인이군그래. 샌슨은 대충대충 넥슨을 공격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그가 항상 연습하는 그 교본에 나오는 공격 자세 그대로였다. 그런데도 넥슨은 어쩔 줄 모르면서 물러났다.
그러나 한참 밀려나던 넥슨은 고함을 질렀다.
“으아아!”
넥슨은 고함을 지르며 뒤로 크게 뛰었다. 그러곤 뒤로 내디딘 발로 그대로 다시 땅을 박차며 돌진했다. 순전히 힘으로 밀어붙이기로 작정한 듯했다. 샌슨은 주춤거리 며 물러났다. 바우우웅!
목 뒤에 소름이 돋았다. 이 뜨거운 태양 아래서 갑자기 한기가 느껴진다. 넥슨이 휘두른 검에서는 믿을 수 없는 소리가 들려왔고 샌슨은 아랫입술을 깨물면서 뒤로 물러났다. 검으로 막아낼 수는 없다. 저 무지막지한 힘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샌슨은 뒤로 물러나면서 견제를 위해서 아래를 베었다. 그러나 넥슨은 그것을 무시하 면서 검을 휘둘러내렸다.
“크으윽!”
“아아악! 샌슨!”
네리아의 비명소리. 피다! 피! 넥슨은 허벅지에 깊은 상처를 받으면서도 샌슨의 어깨를 내리쳤다. 저 자식이 완전히 미쳤구나! 아래로 깊이 베어들어가던 참이라 샌 슨은 간신히 목이 통째로 날아가지는 않았다. 대신 어깨에 깊은 부상을 입으며 뒤로 물러났다. 샌슨은 어깨를 부여잡으며 말했다.
“뭐냐…………, 죽으려고 작정한 거냐?”
넥슨은 빙긋 웃었다. 다리에 깊은 상처를 입어 바지가 피에 젖어가는데도 그는 웃고 있었다. 하얗게 타오르는 태양 아래 그의 웃음이 시퍼렇게 빛났다.
“상처는 고치면 그만이야. 희생을 두려워하면 결과를 얻지 못해.”
“희생을………, 그래. 너다운 행동이군. 아무 데나 가벼운 희생이라는 말을 붙이는. 그 아이도 가벼운 희생이었지?”
샌슨은 경멸적인 표정으로 넥슨을 바라보았고 넥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넥슨은 고함을 질렀다.
“죽어랏!”
넥슨은 무자비하게 검을 휘둘러대기 시작했다. 견디지 못한 내가 달려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그 순간 샌슨이 갑자기 피를 토하며 물러났다.
“크으…… 칵!”
샌슨은 황급히 입을 가로막았고 네리아와 레니는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샌슨은 하얗게 된 얼굴로 말했다.
“폐병인가? 젠장. 하필이면……….”
넥슨은 싸늘하게 웃었다. 제기랄! 난 앞뒤 없이 달려나가고 말았다. 샌슨은 뒤를 보더니 놀란 표정을 지었다. “후치! 이 자식아, 나오지 마!”
“시끄러워! 입에서 피 토하면서 할말 못할 말 구분도 못하는 바보 같으니! 물러나!”
난 바스타드를 단단히 감아쥐고 넥슨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샌슨이 거칠게 내 어깨를 붙잡아 밀어버려 난 휘청거렸다. 제기랄, 이런 때 샌슨과도 싸워야 되나? 그러나 바로 그 순간 넥슨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이런 제기랄!
“쾅쾅쾅콰앙!”
대지가 진동했다.
말들의 비명소리, 이힝힝힝힝! 나는 샌슨에게 밀리다가 그대로 발디딤이 불안해져서 땅에 주저앉고 말았고 달려들던 넥슨도 휘청거리느라 더 이상 달려들지 못했다. 이게 뭐야? 네리아는 고개를 돌려 바라보다가 외쳤다.
“바다가!”
바다에서 거대한 소용돌이가 일어나고 있었다.
칼라일 영지에서 본 그것과 같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때는 불의 회오리였고 지금은 물의 회오리라는 것. 이루릴이구나! 이루릴이 바다에 거대한 소용돌이를 일으켜 서 언데드들을 휘말아올리는 소리였다. 바다에서 하늘로 뻗어오르는 그 소용돌이는 직경이 수십 큐빗은 되어보였고 이 거리에서 보아도 그 크기에 압도당할 지경이 었다. 제레인트는 그 광경에 질려 부들부들 떨었고 넥슨마저 얼빠진 표정으로 그 광경을 내려다보았다.
“그 엘프인가. 놀랍군. 그때처럼 정령 둘을 불러들인 모양이군. 저건………… 실프와 언딘인가?”
난 최대한 빠르게 일어나며 외쳤다.
“그래! 이제 곧 그녀가 올 것이다. 그러면 넌 끝장이야! 지금은 낮이라서 그 뱀파이어도 널 돕지 못해! 항상 네 옆에 붙어다니던…………, 어라?”
그 마부는? 항상 넥슨에게 붙어다니던 그 말없는 마부는 어떻게 된 거지? 갑자기 넥슨의 눈에 이상한 빛이 번뜩였다. 뭐지?
“아아악!”
비명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말에서 떨어지는 네리아가 보였다. 그리고 네리아 대신 말에 올라타는 남자의 모습도 그 마부다! 네리아는 팔에 깊은 상처를 입 고 있었고 제레인트는 황급히 스태프를 휘저었다. 그러나 마부는 검을 휘둘러 가볍게 스태프를 쳐내고는 그대로 말을 출발시켰다. 샌슨이 외쳤다.
“너, 레니를!”
저 빌어먹을 녀석이 레니를 노리고 있었군! 넥슨은 히죽 웃었다. 그러나 그때 쇠약한 네리아의 음성이 들려왔다. “실수야, 실수.”
뭐라고? 그리고 다음 순간 레니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에보니 나이트호크, 저 용맹한 말은 바뀐 주인을 인정하지 않았다. 에보니 나이트호크는 발길질을 하며 마부와 레니를 떨어뜨려버렸다. 나와 샌슨은 잠시 서로를 쳐 다본 다음 곧장 레니에게 달려갔다. 지금 이 순간에는 레니가 가장 중요하다. 그녀는 크라드메서의 드래곤 라자, 절대로 보호해야 된다.
뒤에서 넥슨이 고함질렀다.
“거기 서라!”
웃기네. 샌슨은 어깨와 입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무섭게 달려갔고 나 또한 무슨 말인지도 모를 고함을 지르면서 달려갔다. 마부는 말에서 떨어진 충격으로 몸을 가누 지 못했고 그 사이에 우리는 레니를 붙잡았다. 레니는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나와 샌슨은 레니를 뒤로 돌리면서 앞을 가로막았고 제레인트와 네리아가 양쪽에서 레니를 둘러쌌다. 달려오던 넥슨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끈질긴 놈들이군!”
그럼! 우리는 순종 헬턴트 사나이거든? 샌슨은 온몸이 피범벅이 된 채로 웃고 있었다. 하하. 나도 쌀쌀맞게 웃으며 넥슨을 바라보았다. 넥슨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우 리를 바라보았다.
“웃어? 뭐가 우스운 거지?”
난 피식거리며 말했다.
“인생이 너무 즐겁거든. 드문드문 불쾌한 녀석들이 끼어들긴 하지만 말이야.”
샌슨은 콜록거리면서도 웃었다.
“쿨럭, 큭큭. 그래, 여기도 죽을 자리로는 괜찮군. 쿨럭. 인생이 장밋빛이군.”
넥슨은 우리들의 이야기를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때 그 마부가 비칠거리며 일어났다. 마부는 넥슨에게 다가서더니 머리를 조아렸다. 넥슨은 말했다. “됐어. 예상 외의 일이었으니.”
말을 하던 넥슨은 갑자기 휘청거렸다. 마부는 당황해서 넥슨을 부축했다. 저 녀석, 역시 다리의 상처가 크지?
넥슨은 이를 악물면서 우리를 노려보다가 마부에게 뭐라고 귓속말을 했다. 그러자 마부는 손을 품 안에 집어넣었다. 뭐지? 마부는 품속에서 스크롤을 꺼내었다. 넥 슨은 마부에게 부축된 채로 말했다.
“오늘도 아쉽게 헤어져야겠군.”
무슨 말이야? 마부는 한 팔로 넥슨을 부축한 채 이빨과 손으로 스크롤을 찢었다. 그러자 그 순간 이 뜨거운 태양빛 아래에서 다시 한번 무서운 빛이 터져나왔다. 잠 시 후 눈을 떠보니 넥슨과 마부의 모습은 사라졌다. 제레인트가 힘없이 말했다.
“텔레포트…….”
털썩. 샌슨은 무릎을 꿇었다. 레니와 네리아는 모두 질겁을 하면서 샌슨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샌슨은 조용히 팔을 휘저으며 말했다.
“제레인트 씨. 치료가 되겠습니까?”
“아, 예.”
“그럼 됐습니다. 후치. 잠시 네가 좀 찾아봐라. 그 디바인 마크를.”
난 온몸에서 피를 흘리다시피 하고 있는 그를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알았어.”
하지만, 하지만 어디서 그것을 찾지? 젠장. 난 일단 미친 듯이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난 흙이 보이는 곳은 모조리 달려가 보았다. 하지만 일 일이 다 파헤쳐 보아야 하나? 제기랄! 도대체 어떻게 땅속에 있을 그것을 찾는다는 말이야?
그때였다. 멀리서 다가닥거리는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달려오고 있는 래셔널 셀렉션과 이루릴의 모습이 보였다. 이루릴은 말이 채 멈추기도 전에 뛰어내리며 말했다.
“여기서 빛이 번뜩이던데요? 어머, 샌슨!”
“넥슨…………, 그 개자식이 여기 있었어요.”
네리아의 대답에 이루릴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녀는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 흙이 있군요. 이 근처인가요?”
“예. 그럴 것 같아요.”
이루릴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역시 당황한 얼굴이 되었다. 공원에는 온통 나무들이었고 따라서 엄청나게 많은 흙이 있었다. 이걸 도대체 어쩌면 좋지? 칼라일 영지에 서는 얼마 되지 않는 네거리였다. 하지만 여기는 너무 넓다!
그때 제레인트가 나에게 말했다.
“이봐. 찾는 것이 디바인 마크야?”
“예? 아, 예. 그래요.”
“진작 말하지!”
제레인트는 혀를 차며 말했다. 그리고 그는 곧 자신의 디바인 마크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잠시 참아주십시오. 잠시면 될 겁니다.”
그리고 제레인트는 곧 푸른 방어막을 없애버렸다. 그는 디바인 마크를 두 손으로 들고 기도에 들어갔다. 우리들 모두 숨죽인 가운데, 그는 기도를 마치고 외쳤다. “디텍트 디바인 파워!”
그는 잠시 디바인 마크를 들러올린 채 서 있다가 당황한 얼굴이 되었다.
“어라? 무슨 느낌이 이렇지?”
이루릴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더니 말했다.
“여기 전체가 세이크리드 랜드입니다. 이 도시 전체에 디바인 파워가 가득한 셈이지요. 디텍트로는 알아낼 수가 없을 겁니다.”
그녀의 목소리에도 짜증스러운 느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아니, 내가 짜증스러워서 그런 것인가? 제레인트는 당황한 얼굴이 되더니 다시 방어막을 형성했다. 우리는 잠시 말을 잃은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간은 급한데, 방법은 없다. 난 일단 다시 뛰어다니며 흙을 살피기 시작했다.
“후치! 이런, 돌아와!”
제레인트가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빨리 찾아야 된다고!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돼. 제기랄! 하지만 이렇게 해서 언제 찾아내지? 도시에선 계속 사람들이 죽어갈 텐데!
“커억, 헉!”
갑자기 숨이 막혀왔다. 뭐야, 이건? 조금 달렸다고 왜 숨이 막혀와? 난 핑핑 도는 머리를 붙잡으며 허리를 꺾었다.
“헉, 커어억! 콜록콜록, 카아악!”
이런, 천식인가? 무슨 병이지? 숨이 막힌다. 나도 걸려버렸어. 난 숨이 막힌 채로 주저앉아 버렸다. 이루릴이 달려와 날 일으켰지만 도대체 숨이 쉬어지질 않는다.
“우…… 칵! 커어억! 쉬이익, 쉭.”
목에서 피리소리 같은 소리가 난다. 제기랄, 하필이면! 안 돼, 빨리 찾아야 돼! 그런데 왜 앞이 캄캄해지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