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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니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우리 일행이 기다리는 풀숲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자, 지금부터 몇 분 안에 모든 것이 결판난다. 난 바스타드를 단단히 쥐었다. 어째 저곳까지의 거리가 이렇게도 멀어보이지? 그때 자크가 고함을 빽 질렀다.
“이 계집애야! 어디가!”
“오줌싸러 간다, 왜!”
레니…………, 레니! 정말 대단해. 레니는 눈을 부릅뜬 채로 그야말로 표독스럽게 대꾸했고 그러자 고함을 지른 자크가 더 놀라버렸다. 그는 입을 딱 벌린 채 레니를 바라 보다가 말했다.
“그, 그럼 멀리 가지 말고 그, 그 근처에서…………….”
그때 하슬러가 말했다.
“일어나서 따라가, 자크.”
“예?”
하슬러는 두말하지 않았고 그러자 자크는 투덜거리며 일어났다. 레니는 차가운 눈으로 자크를 쏘아보다가 몸을 휙 돌렸다. 자크는 계속해서 투덜거리며 따라왔다. “썅. 별 우스운 직책을 다 맡게 되네.”
난 레니를 보내고 자크까지 지나보낸 다음 천천히 자크의 뒤를 따라갔다. 자크의 뒤통수를 바라보다가 난 잠시 고개를 돌려 넥슨을 바라보았다. 넥슨은 그대로 바위 라도 된 양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샌슨은 도대체 어디 있을까?
수풀 속으로 적당히 걸어 들어오자 자크는 말했다.
“거기서 볼일 봐. 달아날 생각은 절대 하지 마!”
그러고는 자크는 몸을 휙 돌렸다. 순간 나와 그는 서로를 마주보게 되었다. 가슴이 내려앉는 기분이군. 하지만 자크는 그저 기분 나쁜 얼굴로 팔짱을 끼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뒤에선 레니가 혁대를 붙잡고는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었다. 좋아, 지금이다. 난 살짝 옆으로 움직인 다음 바스타드의 손잡이로 자크의 목 뒤를 내려찍었 다.
퍽!
“크윽!”
완전한 불의의 기습을 당한 자크는 그대로 앞으로 쓰러졌다. 난 재빨리 레니에게 다가갔다. 그때 레니는 바지를 끌어내리려다가 기겁하면서 도로 올리는 참이었다. 난 두말하지 않고 그대로 레니를 들어 어깨에 둘러메고는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달려가기 시작했다.
“뭐야!”
뒤를 돌아보니 하슬러는 우리를 보고는 잠시 창백한 얼굴이 되었다. 아마 하슬러가 보기에 레니는 허공에 떠오른 채 거꾸로 날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 러나 곧 하슬러는 이를 갈면서 외쳤다.
“인비저빌리티!”
하슬러는 즉시 롱소드를 빼들었다. 그 외침에 넥슨이 벌떡 일어났다. 넥슨은 내 쪽을 쏘아보더니 역시 검을 뽑아들었다. 스르렁!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무 서운 속도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슬러도 달려왔다. 그때였다.
“어어억!”
갑자기 하슬러가 땅에 굴렀다. 샌슨이구나! 넥슨은 주춤하더니 잔뜩 쉰 목소리로 말했다.
“한두 놈이 아니군! 받아라!”
넥슨은 하슬러의 근처 허공을 베어대기 시작했다. 그때 허공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핫하하! 이 자식아. 뭐하는 거지?”
넥슨은 샌슨의 웃음소리를 듣더니 곧 검을 돌려 아무 말도 하지 않고는 그대로 허공을 베어내었다. 그러나 샌슨은 다시 웃을 뿐이었다.
“자세는 여전히 엉성하군. 좀 상대해 주고 싶지만 시간이 허락지 않는데.”
좋아, 됐어! 난 그대로 앞으로 달려갔다. 레니는 내 어깨 위에서 바들바들 떨면서 비명을 토해 내었지만 난 신경 쓰지 않고 달려갔다. 이제 조금만 더 달려가면……… 바아우우웅!
갑자기 무서운 바람이 나를 스치고 지나갔다. 뭐, 뭐야? 말도 안 돼. 달리고 있는데 바람이 날 앞질러 분다고? 그때 갑자기 어깨가 허전해지기 시작했다. 어라? 갑자 기 레니가 왜 이리 가벼워지는 거지?
“꺄아아악!”
“레니 양!”
칼의 고함소리. 놀라서 고개를 돌려보니 레니가 허공에 떠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저게 뭐야? 레니는 그대로 뒤로 떨어질 듯이 날았다. 마치 누군가 보이지 않는 사람 이 그녀를 낚아채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땅에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둥둥 뜬 채 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레니는 허공에서 허우적거리며 비명을 질렀다.
“꺄아악! 내려줘어!”
칼은 기가 막혀서 외쳤다.
“네드발 군! 무슨 짓인가?”
“예? 제가 아니에요! 샌슨? 샌슨이야?”
“어, 어, 나도 아닌데?”
샌슨의 목소리였다. 그것도 내 바로 옆에서 들려왔다. 어떻게 된 거야? 우리 둘 다 아니라면 레니가 왜 갑자기 새들과의 친척 관계를 주장하게 된 거지? 이루릴이 짧 게 뭐라고 중얼거리자 샌슨의 모습이 갑자기 나타났다. 그는 내 옆에서 입을 딱 벌리고 선 채로 허공을 날아가는 레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와 샌슨은 서로를 얼빠진 모습으로 바라보았으나 샌슨이 먼저 움직였다.
“자, 잡아!”
그제야 나도 정신을 차렸다. 레니는 어느새 꽤 멀어지고 있었다. 난 그녀를 붙잡으려 했다. 내뻗은 손이 레니의 발목에 닿으려는 순간, 레니는 내 손을 절묘하게 피해 서는 다시 계속 날아갔다. 짧은 순간 공포에 질린 레니의 얼굴이 보였다. 나는 정신없이 달리기 시작했지만 레니는 빠른 속도로 멀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날아 가는 방향에는……
넥슨이었다. 넥슨은 어느새 한쪽 무릎을 꿇고 서서는 롱소드는 땅에 꽂아두었다. 그리고 한 손을 자신의 얼굴 앞에 세로로 세우고 다른 손은 우리들 쪽으로 뻗고 있 었다. 뒤에서 제레인트가 쥐어짜는 음성으로 말했다.
“에어 엘리멘탈! 맙소사, 저 녀석은 고작 재가 프리스트라고 하잖았습니까?”
칼이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이루릴의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그 숨결에 생명을 담고 모든 것을 바라보며, 종속될 수 없는 운명을 가진 자여. 구원을 원하는 소녀에게 날아가 그녀를 보호해요!”
덜컹 소리가 났던가? 아니, 그렇지는 않았다. 하지만 레니는 허공에서 멈춰버렸다. 그리고 곧 사나운 바람이 그녀 주위에 몰아쳤다. 넥슨이 불러낸 바람과 이루릴이 불러낸 실프가 허공에서 싸우고 있는 모양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실프는 맹렬할 바람이 되어 레니를 끌어당기려 했다. 그러나 넥슨의 바람 역시 무서운 힘 으로 레니를 휘몰아 갔다. 순간적으로 레니는 허공에 뜬 채 양쪽으로 잡아당겨지게 되었다. 그녀의 붉은 머리가 붉은 불꽃처럼 흩날렸다.
“잡아!”
샌슨은 고함을 지르며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 역시 발밑의 자갈을 마구 튀겨올리며 달리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허공에 뜬 레니를 붙잡기 위해 달려갔다. 그러나 저쪽에서도 하슬러가 달려오고 있었으며 자크도 어느 새 몸을 일으키더니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이야아아압!”
우리는 죽을 힘을 다해 달려갔다. 하지만 계곡에는 온통 바위와 돌덩어리뿐이었고, 그래서 우리는 계곡의 바위 틈을 제대로 달리지 못해 비틀거렸다. 이루릴과 넥슨 은 각자의 위치에서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눈을 감고 캐스팅을 계속하고 있었고 그들의 힘이 더해짐에 따라 허공에 뜬 레니 주위에는 무서운 회오리바람이 일어났다. 레니는 허공에서 숨이 막히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 주위에 일어나는 회오리는 이제 모습을 드러내려 하고 있었고 넥슨의 바람의 포효 소리와 실프의 웃음소리가 계곡 을 가득 메웠다.
“우루루루루루!”
“까르르르르르!”
저 웃음소리에 돌아버리는 기분이 든다. 실프들은 미친 듯이 웃고 있었고 바람은 계곡이 떠나가라고 고함을 질러대었다. 내가 다시 한번 비틀거린 순간 하슬러는 이 미 레니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가까이 오지 마!”
내 말을 들어줄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난 무턱대고 고함을 질렀다. 역시 하슬러는 내 말을 전혀 듣지 않은 채 레니에게 손을 내뻗었다. 레니는 여전히 숨막힌 얼굴로 그 손을 공포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받아랏!”
칼이 바위 위로 뛰어오르더니 그 위에 무릎을 꿇으면서 곧장 화살을 한 대 쏘아붙였다. 쉬이익! 순간 하슬러는 입을 꽉 다물었다.
뭐가 움직였지? 하슬러 주위의 공간에 잠깐 번뜩이는 빛이 휙 지나갔다. 요란한 울림 소리와 함께 화살은 두 동강이 난 채로 계곡 위의 하늘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핑그르르르, 맙소사, 화살을 쳐냈어?
하슬러는 화살을 쳐내고는 그대로 도약해 올랐다. 그가 도약한 곳은 물론 레니가 떠 있는 장소였다. 그러나 그 사이에 난 충분히 달려가 있었다. 난 다시 한번 하슬러 에게 정지를 명령했다.
“멈춰!”
하슬러가 레니의 다리를 잡기 직전, 난 온몸을 그에게 부딪쳐가는 데 성공했다. 퍼어억! 우리 둘은 서로 엉킨 채 바위 무더기 사이로 곤두박질쳤다.
“크으윽!”
우리들은 바위 사이로 우겨넣듯이 처박혔고 난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아무래도 허리가 좀 상한 것 같은데. 간신히 고개를 들어보니 하슬러는 내 아래에 깔 려 있었다. 하슬러는 바위에 틀어박힌 채 고통에 겨운 얼굴로 날 올려다보고 있다. 그때 난 후회할 짓을 하고 말았다. 난 하슬러를 깔아뭉갠 것이 미안해져서 히죽 웃 었던 것이다.
퍼어억!
하슬러의 오른주먹이 멋지게 움직였고 내 턱은 오른쪽으로 급격하게 뒤틀렸다. 이 자식이!
“에에에라!”
난 머리가 오른쪽으로 돌아간 김에 그대로 반동을 주어서 다시 아래로 내려꽂았다. 두 손으로 하슬러의 어깨를 단단히 쥔 다음 그의 얼굴을 들이박은 것이다.
“커헉!”
아이고, 내 이마! 하지만 네 녀석도 앞니 몇 개는 나갔을 거다! 난 앞머리를 쥔 채 일어났다. 와, 계곡의 색깔이 희한하군. 그리고 하슬러도 얼굴을 감싸쥔 채로 일어 났다. 우리들은 서로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동시에 검을 뽑아들었다. 손을 치운 하슬러의 얼굴을 보니 아쉽게도 그의 앞니는 이상 없었다. 나는 하슬러에게 씨익 미 소를 지어주었다. 하지만 하슬러는 무표정했다.
“이야아아압!”
기합 역시 나 혼자서 질렀다. 난 기합과 함께 온 힘을 다해 바스타드를 아래에서 올려쳤다. 바위 투성이라 발디딤이 불편하긴 했지만 난 최선을 다했다.
“이이일자무우우식!”
위로 두 번 올려치고 세 번째는 낮게 몸을 숙이며 옆으로 돌려쳤다. 그러곤 곧장 죽어라고 몸을 옆으로 날렸다. 그러지 않을 수 없었는데, 두 번의 공격을 피하고 마 지막 하단 공격은 훌쩍 뛰어서 피한 하슬러가 그대로 공중에서 찍어 들어왔기 때문이다. 내 몸은 다시 한번 바위들 틈에 볼품없이 처박히고 말았지만 덕분에 허리가 날아가지는 않았다. 챙캉! 하슬러의 검에 맞은 바위가 불꽃과 함께 굉장한 소리를 내었다. 터텅! 내 몸이 바위에 부딪히자 내 눈에서도 불꽃이 튀었다. 끄윽. 바위 틈 에 거꾸로 처박힌 바람에 일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간신히 고개를 들자 내 목을 향해 내리꽂히는 롱소드의 은광이 번뜩였다. 난 눈을 감으며 외쳤다.
“제미니!”
“시끄럽다!”
샌슨의 고함소리. 눈을 뜨니 뒤로 훌쩍 뛰는 하슬러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내 머리 위쪽에서는 샌슨이 롱소드를 든 채 서 있었다. 샌슨은 말했다.
“가서 레니를 잡아! 이야아합!”
샌슨은 곧장 바위를 밟으며 위로 뛰어올랐다. 샌슨은 온몸의 힘을 실어 하슬러를 내려쳤다. 그러나 하슬러는 OPG를 가지고 있었고 그가 검을 휘둘러 샌슨의 검을 쳐내자 샌슨은 거의 허리가 통째로 돌았다. 난 악을 쓰고 말았다.
“멍청아, 힘 차이가…….”
그리고 난 말을 맺지 못했다. 허리가 돌던 샌슨은 그대로 다리를 끌어올려 하슬러의 옆구리를 걷어차 버린 것이다. 샌슨은 그대로 몸을 돌려 다시 제자리에 섰고 하 슬러는 옆으로 나가떨어졌다.
“힘 차이가 어떻다고?”
“……없다고! 젠장. 사람이 아니었지.”
샌슨은 피식 웃으며 곧장 하슬러에게 달려들었다. 난 레니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때였다.
“이놈!”
뒤통수 쪽에서 들려오는 자크의 고함소리, 이럴 때는! 나는 곧장 앞으로 굴러버렸다. 이거 왜 일어서기가 이다지도 힘든 거야! 바위들 위로 구르는 것은 온몸의 근육 전체를 해체시키는 기분이 들었다. 간신히 다시 일어나서 뒤를 돌아보자 바위를 찌른 채 날 올려다보는 자크의 모습이 보였다. 자크가 들고 있는 대거는 바위 속에 깊 숙이 박혀 있었다. 젠장!OPG 가진 놈들은 사람도 아냐!
나는 그 욕설이 나에게도 해당된다는 사실을 무시하면서 바스타드를 바로 잡았다. 그리고 자크는 ‘끙!’ 하는 소리를 내면서 일어났다. 대거는 간단히 뽑혀나왔다. 자 크의 오른손 손가락이 기묘하게 움직이더니 그는 곧 대거를 거꾸로 쥐고는 오른손을 허벅지에 붙였다. 그리고 비어 있는 왼손은 앞으로 뻗어 나를 견제했다. 희한한 자세인데. 어쨌든 앞을 가리는 것이 없으니 그대로 돌진이다. 난 바스타드를 그대로 앞쪽으로 찔러넣었다. 그때였다. 네리아가 고함을 질렀다.
“무릎 꿇어!”
자크는 앞으로 내민 왼손을 급격히 몸 앞쪽으로 당기며 그대로 뒤로 반 바퀴 돌아서 오른손의 대거를 거꾸로 들이대었다. 내 바스타드는 자크의 몸 앞 허공을 찔렀고 난 오른쪽에서 내 목을 노리고 날아드는 대거를 만나게 되었다. 순간적으로 자크의 몸에 가려졌다가 나타나는 대거라서 무섭도록 빨랐다. 그러나 난 고함소리가 시키 는 대로 무릎을 꿇었기 때문에 간신히 대거는 내 머리 위로 지나갔다. 쉬이익! 난 무릎을 꿇었다가 대거가 내 머리카락 몇 올을 잘라내면서 머리 위로 지나가자 그대 로 몸을 튕겨올렸다.
“턱 조심!”
난 바스타드를 당길 수가 없어서 그대로 오른팔 팔꿈치로 자크의 턱을 올려쳤다. 자크는 힘껏 돌고 있던 중이라 앞이 완전히 비어 있었다.
“쿠으윽!”
자크는 1큐빗 정도 솟아오르더니 그대로 뒤로 날아갔다. 네리아가 함성을 질렀다.
“멋지다, 후치!”
“고마워요, 네리아!”
난 즉시 레니를 바라보았다. 이루릴과 넥슨은 그때까지도 꼼짝도 하지 않은 채 호각의 싸움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어느 새 제레인트와 칼이 레니에게 달려들었다. 그 들은 레니를 붙잡아 끌어내리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러나 바람의 힘은 무서웠다. 칼이 온 힘을 다해 레니의 허리를 당기고 있는데도, 아니 칼과 제레인트 두 사람이 거의 레니에게 매달리다시피 했는데도 레니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레니는 자지러지는 비명을 질렀다.
“아아아악!”
이런 제기랄! 이 상황을 처리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넥슨!”
난 자크를 뛰어넘어 곧장 넥슨에게로 달려갔다. 자크는 날 잡으려 했으나 네리아가 재빨리 트라이던트를 내밀어 자크를 도망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난 지체 없이 넥 슨에게 달려들 수 있었다. 넥슨은 얼굴이 벌겋게 될 만큼 화가 나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바람은 곧장 사라졌다. 레니는 칼과 제레인트의 위에 떨어졌다. 레 니의 비명소리가 칼과 제레인트의 비명과 섞여서 들어왔다.
좋아, 됐다! 난 바스타드를 어깨 너머로 완전히 젖혀들고 뛰어올랐다.
“받아랏, 넥슨!”
난 곧장 넥슨을 내리쳤다. 넥슨은 무서운 기세로 롱소드를 뽑아들었다.
콰앙!
나와 넥슨은 동시에 뒤로 밀려났다. 서로의 검이 부딪히는 순간 팔목이 부러져 나가는 고통이 느껴졌다. 눈앞이 번쩍하는데? 난 잠시 바스타드를 한 손으로 쥐고 다 른 손으로 팔목을 열심히 주물렀다.
“우웅, 짜릿한데?”
넥슨 역시 눈앞에 불이 번쩍했던 모양이다. 그도 한 손으로 롱소드를 쥐고는 다른 손으로 팔목을 주무르고 있었다. 난 그 모습을 보며 히죽 웃었다. 그러자 넥슨 역시 날 보며 히죽 웃었다.
“죽인다!”
넥슨의 얼굴에 남아 있던 웃음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그는 사정없이 달려들었다. 어어엇! 난 재빨리 바스타드를 돌려 그의 검을 막아내었다. 넥슨은 쉴새없이 찌르고 베어 들어왔으며 난 팔이 빠져나가라고 그의 검을 막아내었다. 창창창창창! 이야! 내가 이걸 다 막다니! 내가 이렇게 대견할 수가 없는걸.
넥슨은 무리할 정도로 공격하다가 모조리 막히고 나자 곧 리듬을 잃기 시작했다. 좋아! 난 정신없이 그의 공격을 막아내면서도 빠르게 생각했다. 넥슨의 동작에서 한 번, 딱 한번의 틈만 생기면, 그 틈을 노려 한 방의 수를 노리는 거다. 이 대결을 단번에 결정낼 수 있는 수법, 기회는 한번뿐이다! 잠시 후 내가 크게 몸을 뒤틀었을 때 넥슨의 검이 크게 허공을 베게 되었다. 그리고 넥슨은 커다란 빈틈을 노출했으며 그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바로 지금이다!
“안녕!”
난 곧장 뒤로 돌아서 달리기 시작했다. 넥슨의 얼빠진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어? 어? 이 자식아, 서라앗!”
너 같으면 서겠냐! 칼과 제레인트는 간신히 일어나고 있었고 난 그들 옆에 있던 레니를 다시 낚아채어 들어올렸다.
“실례. 벌은 나중에 받을게.”
레니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내 옆구리에 끼이게 되었다. 난 그녀를 옆구리에 낀 채 달려가면서 외쳤다.
“달아나요!”
제레인트는 잠시 내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는 당황하여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그는 그제야 내 뒤로 육박해 오는 넥슨의 모습을 본 모양이다. “테페리여!”
그리고 제레인트는 달리기 시작했고 그의 로브는 찢어져라 나풀거렸다. 칼은 아무 말 없었지만 역시 단호하면서도 확고한 태도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나는 달려가면 서 외쳤다.
“샌슨! 네리아! 가자구요! 파티는 끝났어요!”
“좋아!”
하슬러와 그야말로 봐줄 만한 검격을 교환하고 있던 샌슨은 거세게 공격하여 하슬러를 물러나게 한 다음 역시 몸을 빼내어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긴 트라이 던트로 자크를 몰아세우고 있던 네리아 역시 다람쥐처럼 가볍게 몸을 돌렸다. 그러자 하슬러와 자크들 역시 사용 어휘의 상당 부분을 욕설에 할애하면서 우리들을 쫓 아왔다.
“월 오브 아이스!”
이루릴의 낭랑한 캐스팅 소리와 함께 우리들 뒤로 굉장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콰드드드득! 고개를 돌려보니 계곡이 없어져 있었다. 우리들 바로 뒤로 거대한 얼음의 벽이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잠시 후 그 뒤쪽에서 굉장한 기합소리가 들려왔다.
“으아아아아압!”
콰광! 기억이 있는 장면인데? 넥슨, 하슬러, 자크의 OPG 트리오는 대미궁에서 벽을 부수던 그 기세를 십분 발휘하여 얼음벽을 송두리째 박살내며 달려왔다. 계곡에 부는 바람에 무수한 얼음 입자가 흩날렸다. 햇살에 비치는 수천 개의 얼음조각들이 허공으로 비상하며 눈부시게 반짝였고 그 사이로 세 명의 추적자들은 무서운 기세 로 달려왔다. 제레인트는 목이 터져라 외쳤다.
“테페리여! 테페리여! 당신의 성실한 지팡이를 구원해 주소서!”
그의 간절한 기원은 참으로 희한한 방법으로 보답받게 되었다. 우리들 뒤로 달려오던 세 명은 자신들이 부숴버린 얼음조각을 밟고 나동그라진 것이다.
“으아악!”
“으하하! 이러니까 당신을 좋아해요, 테페리!”
제레인트는 그렇게 불경스러운 말을 외치며 웃었다. 이윽고 앞쪽으로 수풀을 헤치고 뛰어들어가자 이루릴과 함께 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네리아는 외쳤다. “됐어! 후치, 내려!”
난 레니를 내려주었다. 레니는 그때까지도 혼이 나가버린 얼굴로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곧 눈물이 그렁그렁해지더니 네리아에게 매달렸다. “네리아 언니!”
네리아는 레니를 안고는 그녀의 등을 쓸어내렸다.
“고생 많았지? 미안해. 일찍 못 구해 줘서. 하지만 이야기는 천천히 하자구.”
그리고 네리아는 즉시 레니를 데리고 에보니 나이트호크에 올랐다. 칼과 이루릴도 각자의 말 위에 올랐고 제레인트는 슈팅스타 위에 뛰어올랐다. 나도 제미니 위에 올랐는데 제미니는 그 와중에서도 풀을 뜯고 있다가 내가 갑자기 뛰어오르자 발길질을 했다. 자칫 떨어질 뻔했지만 급히 고삐를 당겨서 다행히 낙마하지는 않았다. 이…………, 정말 주인 속을 뒤집는 말 같으니라구! 예전에 나였다면 당장에 떨어졌을 거다! 이젠 말 타는 실력이 제법 되니까 괜찮지만. 난 제미니 위에 탄 채로 고개를 돌 려 넥슨 쪽을 바라보았다.
넥슨과 하슬러, 자크들은 간신히 일어났다가 다시 미끄러지는 짓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들은 얼음에게 퍼부어줄 만한 욕설을 모른다는 것이 천추의 한인 양 고함을 질러대고 있었다. 간신히 일어난 자크와 하슬러는 이미 거리가 너무 멀다는 것을 깨닫고는 씁쓸한 얼굴로 우리들을 쏘아보았지만 넥슨은 우리 쪽을 향해 달려오기 시
작했다. 그는 달려오면서 돌멩이들을 들어 집어던지면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이 찢어죽일 녀석들아!”
마음대로 고함질러. 어차피 말이 없으니 우리들을 따라오지는 못할걸. 하하하. 칼은 기분 좋은 얼굴로 롱 보를 꺼내들더니 말했다.
“이별 선물이오! 휴리첼!”
칼은 경쾌하게 활시위를 놓았다. 탱!
“으악!”
넥슨은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리고 하슬러와 자크 역시 재빨리 앞으로 쓰러졌다. 칼은 빙긋 웃으며 몸을 돌렸고 난 가슴이 터질 듯이 웃었다. “푸하하 하!” 칼은 화살을 걸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됐어! 레니도 구출했고 넥슨들은 말이 없으니 우리들을 쫓아오지 못한다. 게다가 지금 그들은 화살이 날아오는 줄 알고는 머리를 들지 못한 채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우리가 그들로부터 수백 큐빗쯤 떨어지고 났을 때 상처입은 거인이 고함을 지르는 듯한 무서운 굉음이 들려왔다.
“이놈들………….. 이놈들………… 이놈들……!”
“반드시 죽일 테다…………. 죽일 테다…………. 죽일 테다!”
넥슨의 처절한 저주가 계곡을 쩌렁쩌렁 울리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소리는 우리들로 하여금 더욱 말에게 박차를 가하도록 만들었고, 우리는 삽시간에 그들로부터 수천 큐빗 이상 떨어져버렸다.
“이제 좀 쉴까.”
샌슨은 이마의 땀을 닦으며 피곤한 음성으로 말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거의 말도 제대로 못 꺼낼 정도로 지쳐 있었다.
우리는 중간에 아주 잠깐씩 숨을 돌려가면서 그날 저녁까지 영원의 숲을 빠져나오고 말았다. 말도 사람들도 더 이상은 달릴 수 없게 되어 멈춰 선 것은 태양이 온 세 상에 저녁 인사를 던질 무렵이었다.
영원의 숲을 빠져나오자 우리들은 붉은 산맥의 기슭 부분에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샌슨은 짐 속에서 지도를 꺼내어 주위를 둘러보다가 우리들이 붉은 산맥의 분수 령, 흔히들 말하는 블러드혼의 아래쪽에 있다고 말해 주었다. 나는 블러드혼이라는 곳이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과 유서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천천히 알아도 무방할 테니 지금으로선 이스트 그레이드로부터의 거리가 더 궁금하다고 말해 주었고, 샌슨은 블러드혼을 지나 조금 더 산맥을 따라 이동하면 붉은 산맥을 넘 을 수 있는 고개 중 세피아파인 고개가 나타나며 그 세피아파인 고개를 넘어서면 바로 이스트 그레이드라고 말해 주었다.
“여기서 반나절 거리쯤 되겠는데. 음. 그럼 이대로 세피아파인 고개까지 전진할까? 그럼 내일은 곧장 이스트 그레이드에 들어설 수 있을 텐데.”
샌슨의 의견에 대해서는 인간과 엘프와 말 모두가 거부의 의사를 표명했고 그래서 우리들은 그대로 멈춰 서서 야영 준비를 시작하게 되었다.
일행이 멈추게 되자 제레인트는 말에서 내리더니 신성한 로브 자락을 땅에 아무렇게나 던져버렸다. 그는 그렇게 드러누워 씩씩거리면서 붉어지는 노을을 바라보았 다.
“도, 도대체 오늘 하루 동안, 푸우, 푸우, 얼마의 거리를 달린 겁니까? 헉, 헉.”
샌슨은 지도를 들여다보며 골똘히 생각하더니 말했다.
“얼마 되지 않아요. 17펜큐빗 정도?”
17펜큐빗이라…………, 그럼 17만 큐빗인가? 맙소사. 정말 많이도 달렸군. 네리아 역시 파랗게 질린 얼굴로 땅바닥에 구겨지듯이 앉았다. 칼은 하얗게 질려 있었고 레니 의 얼굴은 노랗게 변해 있었다. 사람들의 얼굴을 들여다 보며 그 색깔을 감상하는 것만도 참 흥미로운 일이었다.
모두들 지칠 대로 지쳐버린 까닭에 상당히 뻔뻔스러워졌다. 그래서 샌슨은 혼자서 주위의 지형을 살피기 시작했다. 양심을 두드려대는 망치 소리가 귀에 들려오는 것 같아서(사실은 거칠게 뛰고 있는 내 맥박소리였을 것이다.), 난 간신히 일어나 그를 도와 야영 준비를 했다. 나와 샌슨은 잠시 후 산봉우리 아래에 형성된 숲에서 약간 으슥 한 지형을 골라서 우리 일행과 말들을 숨겼다. 정말 뛰어난 명마라면 하루 30펜큐빗을 뛸 수 있다지만 우리 말들도 이 정도면 상당히 고생한 셈이다. 그래서 샌슨과 난 말들의 편의도 최대한 돌봐주었다.
우리들이 장작을 해서 돌아왔을 때에는 사람들은 모두 잠들어 있었다. 사람이 아닌 이루릴은 일행 옆에 앉은 채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가사도 없이 그저 콧소리로 흥얼거리는 노래였는데 아마 자장가가 아닐까 싶다. 잠든 사람들은 이루릴의 노래를 들으며 히죽히죽 웃기까지 했다. 샌슨과 나는 장작을 내려놓고는 그 얼굴을 바라 보며 속이 시원해지도록 웃었다.
“모두들 저녁 생각도 없는 모양이군. 나도 말을 너무 달려서 입맛이 없어.”
난 샌슨을 노려보며 그렇게 말했고 그러자 샌슨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안장 주머니를 뒤졌다. 잠시 후 샌슨은 빵덩어리 하나를 들고서는 나무 아래에 주저앉았다. 레니와 네리아는 서로 꼭 껴안고 잠들어 있었다. 그녀들의 똑같은 붉은 머리 때문에 마치 자매처럼 보였다. 제레인트는 언제나처럼 몸을 최대한 작게 웅크리고 새우 잠을 자고 있었다.
장작불이 탁탁 소리를 내면서 불타오르고 우리 위에 지붕처럼 펼쳐진 나무들이 발갛게 변하기 시작했다. 이미 나뭇잎들은 떨어져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고 있었지만 모닥불빛이 엉겨붙은 나무들은 마치 다시 찾아온 가을을 누리는 듯하다. 칼은 몸을 뒤척이더니 눈을 떴다. 그는 잠시 갑자기 잠을 깬 사람 특유의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눈을 비비며 일어나 앉았다.
“아, 이런 내가 잠들었군.”
샌슨은 빵조각을 뜯으면서 말했다.
“그냥 주무세요. 나와 후치가 불침번을 서지요.”
“자네들도 피곤할 텐데 그래서야 되겠는가. 난 잠깐 눈을 붙였으니 내가 먼저 불침번을 서지.”
난 피식 웃으며 모닥불을 쑤셔 불이 잘 붙도록 하면서 말했다.
“사실 너무 흔들려서 잠도 오지 않아요. 아직까지 몸이 흔들리는 느낌인걸요.”
“허허, 그런가.”
칼은 모닥불 옆으로 당겨 앉으며 손을 펼쳐 불을 쬐었다. 난 불빛을 바라보며 말없이 앉아 있었다.
갑자기 지루해지는군. 난 칼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이제 갈색 산맥으로 달려가면 되는 건가요? 바이서스 임펠에는 들를 필요가 없을까요?”
“특별히 그럴 일은 없겠지. 보급 이외에는 다른 볼일이 없지 않은가?”
“뭐, 엑셀핸드나 아프나이델과 합류해야 되지 않을까요?”
“하긴, 아인델프 님이 계셔야 크라드메서를 찾는 일이 수월해지겠지. 음. 우리들만으로 크라드메서의 레어를 찾는다는 것은 무리가 있을 테니까. 가는 길에 들러서 합류하도록 해야겠군.”
우리는 다시 말없이 모닥불을 바라보았다. 한참 후 칼이 입을 열었다.
“세레니얼 양.”
“네.”
엘프란 참 이상하다. 칼이 갑자기 말을 걸었는데도 전혀 당황한 기색 없이 마치 기다리던 질문을 받는 것처럼 침착하게 말한다. 칼은 그것이 놀랍지도 않은지 평온하 게 말했다.
“핸드레이크는 확실히 살아 있는 것입니까?”
난 칼의 질문에 정신을 차렸다. 대미궁에서 이루릴은 드래곤 로드에게 질문했다. 핸드레이크는 어디에 있느냐고. 어디에 묻혀 있느냐는 식의 질문도 아니었다. 그리 고 몇 주일 전, 일스 공국에서도 이루릴은 비슷한 말을 했다. 클래스 10의 마법은 그 마법의 창시자에게 배우면 된다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이루릴은 핸드레이크가 아 직 생존해 있으며 그에게서 직접 클래스 10의 마법을 배울 생각이라는 말이 된다. 하지만, 핸드레이크는 역사라는 나라의 주민이지 현실이라는 나라의 주민은 아니지 않는가? 그러나 이루릴은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믿기 어렵군요….. 300년 전의 인물이 살아 있다니요. 인간의 수명은 그렇게 길지 않습니다.”
이루릴은 차분히 칼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검은 눈동자는 불기운을 전혀 반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맑고 깊은 눈이다.
“마력은 신력을 거부하는 법이지요.”
“그렇게 들었습니다만.”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마나를 다루는 자는 결국 신의 율법도 뛰어넘을 수 있다는 말이 되겠지요. 혹은 핸드레이크의 말처럼 신을 속이는 것일지도 모르겠 습니다만, 어쨌든 그 율법을 피할 수 있을 겁니다.”
칼은 미간을 좁혔다.
“그게 가능할까요?”
“믿어지지 않으십니까?”
칼은 장작개비 하나를 모닥불에 던졌다. 불티가 위로 팍 튀어올라 순간적으로 분수처럼 흩어져 날아갔다.
“인간은 유피넬과 헬카네스를 동시에 따릅니다. 유피넬의 추종자라면 헬카네스를 무시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헬카네스의 추종자라면 또 반대의 경우 가 가능할지도. 하지만 양자 모두를 따른다는 말은…….”
“양자 모두를 거부할 수도 있다는 말이겠지요.”
칼은 고개를 들어 앙상한 나뭇가지를 올려다보았다.
음. 유피넬과 헬카네스를 모두 무시한다라. 하지만 그게 가능할까? 유피넬은 질서고, 헬카네스는 혼돈이다. 그 양자가 아닌 상태라는 것이 있을 수가 있나?
칼은 불기운들이 어려서 마치 단풍나무처럼 바뀐 겨울 나무를 바라보며 말했다.
“인간들 중 어떤 이의 말이 생각납니다.”
“어떤 말입니까?”
이루릴의 질문에 칼은 다시 시선을 내려 이루릴을 바라보았다.
“그자는 아주 과격한 논법에 의해 질서는 혼돈의 한 기형이라고 말했지요.”
음? 질서가 혼돈의 기형이라구?
“그게 무슨 말이지요?”
내가 갑자기 끼어들자 칼은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는 곧 인자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며 말했다.
“네드발 군. 돌멩이 네 개를 주워 땅에 던져보게. 돌멩이들은 아무렇게나 흩어지겠지? 그것들이 별자리처럼 어떤 모양을 이룰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던져보기 전에 는 알 수가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그렇지요.”
“하지만 아주 우연히 그 돌멩이들이 완전한 정사각형을 이룰 수도 있겠지?”
“예? 어…………, 우연히라면, 예. 그럴 수도 있겠지요.”
“돌멩이들이 그리는 모습은 결국 하나의 혼돈일세.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다는 말일세. 하지만 그 돌멩이들이 어쩌다가 완전한 조화와 질서를 가진 정사각형을 그 릴 수도 있는 문제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질서라는 것이 혼돈 중의 한 특이한 형태임을 알 수 있지 않은가? 특이할 뿐이지만 결국 다른 것들과 별로 다 를 것도 없다는 말일세.”
잠깐, 잠깐. 이게 무슨 말이지? 어라. 말이 되는 것 같은데?
“어, 하지만 그것들이 완전히 정사각형을 그릴 확률은 없잖아요?”
“그렇지. 하지만 한번 그렸던 모양을 또다시 그릴 확률도 매우 드물지. 모양에 대해 특별히 생각하지 않는다면, 정사각형이든 비뚤어진 평행사변형이든 혹은 마름모 이든 간에 그 모양을 특별히 생각하지 않는다면 돌멩이들이 그릴 수 있는 형태들은 모두 똑같은 확률을 가질 뿐이야.”
“어, 어……, 그렇네요?”
칼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해 볼 수 있을 것이네, 네드발 군. 모든 것은 원래가 혼돈이며, 질서라는 것은 그 무수한 혼돈의 형태 중 하나일 뿐이다. 모래사장에 펼쳐진 무수 한 모래알 중 한 알을 들어올려 거기에 이름을 붙인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꽤나 설득력 있게 들리는걸? 난 그 다음에 나올 말을 생각해 보고는 놀라서 칼을 바라보았다. 칼은 웃으며 말했다.
“따라서 세계에 유피넬이라는 것은 없다. 그리고 유피넬의 반대 개념으로서의 헬카네스라면, 헬카네스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난 놀란 얼굴로 칼을 바라보았다가 다시 이루릴을 바라보았다. 모닥불의 이글거리는 불빛에 비친 이루릴의 얼굴엔 깊은 그림자가 움직였다. 하지만 무표정한 얼굴이 었다.
이거 괴이한걸. 이루릴은 엘프인데. 엘프라는 것은 유피넬의 어린 자식이잖아. 그런데 유피넬이 없다는 저런 말을 듣고도 별 반응이 없는걸. 하지만 이게 말이나 되 는 소리인지? 난 고개를 심하게 가로저었고 결과적으로 머리가 아파졌다. 그러나 칼이 먼저 말했다.
“재미있는 생각이지? 하지만 말일세. 이건 관념의 유희 정도일 수밖에 없다네. 우리 눈앞에 유피넬의 어린 자식이 계시지 않은가?”
아! 그렇군! 쓸데없이 고민할 필요가 하나도 없었네? 그래서 이루릴도 별 표정이 없었던 모양이구나. 난 고개를 끄덕이며 이루릴을 바라보았다.
“하하, 그렇네요. 이미 엘프가 있는데 유피넬이 없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말도 안 되겠네요.”
그런데 이루릴의 표정이 이상했다. 지금껏 무표정하던 얼굴에 갑자기 미소가 떠오른 것이다. 그 미소라는 것이 정말 괴상했다. 미소라면 반드시 있어야 할 기쁜 느낌 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이루릴은 고개를 갸웃하면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왜 갑자기 불안한 느낌이 드는 걸까? 칼의 얼굴을 쳐다보니 그 역시 조금 의아한 얼굴이 되어서는 이루릴을 바 라보고 있었다.
“세레니얼 양?”
이루릴은 말없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무서운 느낌이 들었다. 이건 현실감이 하나도 없다. 이루릴은 여전히 저기 앉아 있는데, 그것이 나와 같은 시간, 나와 같은 공간을 숨쉬는 존재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이게 무슨 괴상한 느낌이지? 심지어 이루릴이 바라보는 하늘마저도 내가 보는 하늘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그녀는 마치 태초의 하늘, 창세의 첫 밤하 늘과 첫 별빛을 바라보는 것처럼 앉아 있었다.
“네. 우리는 유피넬의 어린 자식이라고 하지요.”
나와 칼은 아무런 말도 못한 채 이루릴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루릴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음. 왜 블러드혼이라고 부르는지 알겠군.
거대한 바위, 산봉우리가 전부 하나의 바위였다. 바위의 색깔은 갈색에 가까웠는데 희한하게도 꼭 말라붙은 피의 색깔처럼 보였다.
“으스스한 봉우리야.”
네리아는 쌀쌀한 아침 공기 속에서 부르르 떨면서 말했다. 레니는 감탄한 표정으로 그 붉은 봉우리를 바라보았다.
블러드혼 좌우로 좌악 펼쳐진 붉은 산맥의 토질 전체는 불그스름한 빛깔을 띠고 있었다. 게다가 산맥의 거의 대부분을 뒤덮은 수림 역시 대부분 적송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땅의 빛깔을 빨아들여 자라난 나무가 아닐까 생각되는데.
일행들은 지친 말 위에 지친 기수로 앉은 채 서로에게 정말 딱하다는 시선을 보내었다. 제레인트는 한숨을 푹푹 쉬면서 말했다.
“가죠, 뭐.”
“저희들이 가기 위해선 말의 동의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이루릴의 말이었다. 사람들도 물론 지쳐 있었지만 말들 역시 며칠 동안 계속된 강행군에 모두들 지쳐 있었다. 제레인트는 이루릴의 말에 잠시 머리를 갸웃거리더니 말 위에서 뛰어내렸다. 다른 사람들이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그는 말들의 앞에 서서 거창한 동작으로 팔을 들어올리더니 말들을 축복하기 시작했다. 그 축복의 말을 잠시 들어보자.
“이봐, 난 어차피 바닷바람 부는 일스의 프리스트일 뿐이니까 너희들처럼 대지의 영혼에 닿아 있으면서 동시에 바람의 영혼에 귀 기울이는 우아한 짐승에 대해서는 잘 몰라. 하지만 내가 보기에 너희들은 어차피 네발짐승이니까 우리보단 발이 두 배인 셈이잖아. 왼쪽 앞발이 달릴 때 왼쪽 뒷발이 쉰다든지, 혹은 오른쪽 앞발이 달 릴 때 왼쪽 앞발이 쉰다든지, 뭐 너희들만의 독특한 요령이 있을 거라고 생각돼. 머리를 써보란 말이야, 머리를. 아, 물론 내 생각이 단견일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해. 게 다가 우리들이 타고 있으니까 무거울 거라는 것도 이해해. 십분 인정한다구.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들이 몸을 가볍게 만들 재주가 있는 것은 아니잖아. 우리들로 서는 방도가 없으니까 다리 많은 너희들에게 부탁할 뿐이야. 아, 미안하다구, 미안해. 그렇게 푸르릉거리지 마. 다행히 소금기 물씬 배인 프리스트도 프리스트라는 사 실은 변함이 없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한 너희들의 편의를 돌보겠어. 테페리의 축복을.”
저 길고 장황한 축복의 말이 끝나고 나서 제레인트는 두 손을 빛나게 만들어 말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에보니 나이트호크는 제레인트를 경계했지만 네리아가 그의 고삐를 쥔 채 안심시켰기 때문에 달아나지는 않았다. 제미니 역시 제레인트를 경계했으며 내가 녀석의 모가지를 틀어쥐고 윽박질렀기 때문에 달아나지는 못했다. 제 레인트는 모든 말들을 축복한 다음에 다시 장엄하게 말했다.
“이거 보라구. 자, 너희들도 부정할 수는 없겠지. 난 할 도리를 다했어.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되겠지? 사실 인간들 중에서도 프리스트의 축복을 자주 받는 사람이라 는 것은 없단 말이야. 그러니 이제 너희들도 최선을 다해 줘. 서로 돕고 사는 거 아니겠어? 게다가 같은 길을 걷는 동료로서 말이야.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동료이니만 큼 난 동료가 풀을 뜯든 네 발로 걷든 상관하지 않고 동료로 생각하겠단 말이야. 그러니 너희들도 내가 고기를 뜯든 너희들에 올라타 있든 상관치 말고 동료로서 최선
을 다해 줘. 알았지?”
말들은 멀뚱히 제레인트를 바라보았고 칼은 웃으며 한 마디 했다.
“감동적인 설교였습니다.”
“하하! 설교 연습도 많이 하니까요.”
윽. 제레인트는 칼이 칭찬을 한 줄 아는가 보군. 제레인트는 자신의 설교에 깊은 감동을 받은 얼굴로 말에 올라탔고 샌슨과 나는 그를 외면한 채 히죽 웃었다. 샌슨은 웃음기를 거두고는 외쳤다.
“자! 출발!”
제레인트의 축복이 효험이 있었는지 말들은 꽤 상쾌한 속도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붉은 산맥의 붉은 흙먼지들이 하늘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흙들이 도대체 물기가 없는 것인지 메마르고도 팍팍했다. 마치 뼈처럼 단단한 땅인걸. 말들의 발굽이 걱 정될 지경이다. 그러나 말들은 단단한 겨울 대지 위를 잘도 달려간다. 우리 왼쪽으로 붉은 산맥이 쉼없이 흘러갔다.
샌슨은 달리며 외쳤다.
“세피아파인 고개를 넘어서면, 이스트 그레이드 입구의 마을이 있습니다! 거기서 쉬면 될 것입니다!”
칼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달려! 우리들의 가장 믿지 못할 원수도 시간이고, 우리들의 가장 든든한 동지도 시간이오. 일주일 내에 무슨 일이 있어도 갈색 산맥에 도착해야 하오!”
“하, 하, 하아!”
“이랴아, 에, 하!”
두두두두두. 말들의 발은 쭉쭉 뻗어 대지를 당겼다가 힘차게 밀어내었다. 그때마다 우리는 무서울 정도로 남쪽으로 튕겨나갔다. 마침내 적송들의 붉은 기운이 더욱 짙어지면서 우리는 세피아파인 고개에 접어들었다.
고개 앞에서 우리들은 잠시 멈춰 서서는 우울한 기분으로 세피아파인 고개를 올려다보았다.
오전 동안 달려오면서 계속 우리 왼쪽으로 치달아 내려오던 붉은 산맥이 갑자기 낮아지면서 거대한 고개를 형성하고 있는 장소였다. 좁은 선상지를 돌아 들어가면서 굽어진 산등성이들과 절벽들이 첩첩히 계속되는 장소로서 사실 고개라기보다는 산맥 사이의 협로라고 불러야 더 정확할 것 같다.
“상당한 장소야.”
네리아는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뒤에 탄 레니를 돌아보았다. 레니는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칼은 한참 동안 고개를 바라보더니 샌슨에게 물었다. “이 고개의 길이가 얼마나 되는가?”
“흠…………, 약 4.8펜큐빗입니다.”
그러자 칼은 일행에게 하마를 지시했다.
“잠시 쉬도록 하십시다. 저걸 넘어가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 난 그중 두 번째 방법을 택하고 싶소.”
“그럼 먼저 첫 번째 방법을 말해 보세요.”
“천천히 쉬어가면서 무리없이 넘어가는 것. 오늘 고개의 정상까지 올라가 쉬고 내일 아침에 쾌적하게 고개를 내려가는 거겠지.”
“두 번째 방법은?”
“이를 악물고 단숨에 넘어가는 것. 오늘 해 안에 고개를 넘어 내일은 쾌적하게 평지를 달리는 것.”
“……둘 다 뒷부분이 쾌적하다는 것은 마음에 드는군요.”
“그런데 아무래도 고개를 내려가는 것도 말들에겐 쉬운 일은 아닐 거야. 그냥 오늘 고생해 버린 다음 내일 평지를 걸으면서 쉬도록 하세나.”
모두들 조급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칼의 의견에 찬성했다. 그래서 우리들은 중간에 휴식 없이 단숨에 고개를 넘기 위해 고개 아래에서 푹 쉬기로 했다. 말들도 모두 제멋대로 풀을 뜯게 내버려두고 우리들도 모두 마음대로 뒹굴었다. 제레인트는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들 고향 사람들은 모두 이렇습니까?”
“무슨 말씀인지?”
“비록 오후에 저 고개를 단숨에 넘는다는 합리적인 계획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마음이 불안해서 어디 쉴 수가 있습니까?”
제레인트가 저렇게 말하는 이유는 아마도 샌슨 때문이겠지. 샌슨은 풀밭에 그야말로 온몸의 관절을 다 편 상태로 드러누워 마음껏 코를 골아대고 있었다. 누가 보더 라도 미친 듯한 강행군을 시도하는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는 태도다. 하긴,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난 마른 풀잎을 뜯어 잘 다듬은 다음 귀를 파고 있었으니까. “다가올 일을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칼 역시 그렇게 말하며 땅에 드러누워 버렸다. 제레인트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바닥에 앉았다.
네리아는 약간 떨어진 곳의 바위 위에 레니와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녀들은 서로 번갈아가며 서로의 어깨를 주물러주고 있었는데 서로가 상대의 손아귀 힘이 너무 세다고 투덜거렸다.
“아, 아아, 좀 살살, 살살 해애, 레니!”
“아아악, 아후, 네리아 언니, 좀…………! 어깨 부서져요.”
뭐 이런 식이다. 엄살들은 이루릴은 약간 낮은 나무 위로 올라가 가지 사이에서 다리를 쭉 뻗고는 나무 등걸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바람이 몇 차례 불어서 마른 풀잎들을 날려버릴 뿐, 모두들 완전히 편한 자세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심심한걸. 난 휘파람을 불다가 그것도 지루해져서 누웠다. 바 닥에 드러누우니 이루릴의 곧은 두 다리가 잘 보였다. 이루릴의 다리는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신기하군. 이루릴은 쉴 때도 몸을 거의 움직이지 않는 데. 평소에도 쓸모없는 행동이 거의 없지만 말이야. 샌슨을 보라구. 잠시도 가만히 누워 있지를 못해서 왼쪽 다리를 오른쪽 무릎 위에 올렸다가 오른쪽 다리를 왼쪽
무릎 위에 올렸다가 옆으로 누웠다가 바로 눕기도 하고, 어쨌든 가만히 누워 있지를 못한다.
레니는 칼에게 다가갔다.
“칼 아저씨. 힘드시죠?”
“아니, 괜찮소. 레니 양이야말로 우리들 탓에 정말 고생이 많아요. 우리들 따라나서서 한번이라도 재미있었던 적이 없지요?”
레니는 칼의 등 뒤에 무릎을 꿇고는 칼의 어깨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칼은 멋쩍은 표정이 되었다. 네리아는 깔깔 웃고는 칼 앞에 주저앉았다. “칼 아저씨. 내 어깨 주물러줘요.”
칼은 피식 웃고는 네리아의 어깨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네리아, 칼, 레니가 앉아 있는 것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레니는 말했다.
“뭐 지금까지 재미없었다고는 말 못하겠어요. 델하파의 술집에서 술잔을 나르던 레니가 어떻게 이런 여행을 할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을까요.”
“미안하오. 고생만 시키고.”
“아뇨. 천만에요.”
그때 위에서 이루릴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가 옵니다.”
우리들은 천천히 일어나 앉았다. 이루릴은 나무 위에서 먼곳을 바라보고 있었고 우리들은 이루릴의 시선 방향을 가늠하다가 고갯길을 올려다 보았다.
지금 고갯길에서는 뭔가 굉장히 많은 것이 움직이고 있는 모양이다. 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차츰 멀리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꽤 많은데?”
“어디의 군대인가?”
그러자 이루릴이 대답했다.
“저 군대의 지휘관은 막대기로 지휘를 하는군요. 그리고 병졸들의 투구의 뿔은 날카롭지만 모두 네 발로 걷고 있고.”
막대기로 지휘하는 지휘관과 네 발로 걷는 병사들・・・・・이라구? 칼이 말했다.
“소떼로군.”
그러고 보니 멀리서 들려오는 그 소리들 사이사이로 음메거리는 소리와 방울 소리 같은 것이 들려왔다. 웬 소떼가 고갯길을 넘어오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