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1권 19화 – 고속 승진
고속 승진
묵향은 마교로 돌아온 다음 상세한 보고를 올렸다. 교주는 묵향보다도 그를 수행했던 네 명의 고수들이 보고한 것을 읽어 보고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묵향을 맞이 했다.
“교주님을 뵈옵니다.”
“이번 임무의 성과는 잘 받아 보았다. 그런데 왜 암살을 하지 않고, 정면 대결을 택했나? 이겼으니 다행이지만 졌다면 본좌는 우수한 고수를 한 명 잃을 뻔하지 않 았나?”
“송구스런 말이지만 그 정도의 고수와 만난 이상 죽더라도 한번 검을 섞어 보고 싶었습니다. 덕분에 배운 것도 많습니다.”
“클클, 그따위 말을 하다니……. 제법 간이 큰 녀석이군. 네 녀석은 본좌와 대결을 해서 이길 자신은 있느냐?”
“기회만 주어진다면…….”
“크하하하, 광오한 녀석이군. 3황 중 한 명을 죽일 만한 실력이라면 그 정도의 배짱은 있어야 하겠지. 그래 네 녀석이 원하는 것은 교주의 자리냐?”
“아닙니다. 저는 무공을 더욱 익히고 싶습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혼자였고, 또 많은 수하들을 이끌 자신도 없습니다.”
“흠, 독보천하(獨步天下)는 가능하지만 무림제패(武林制覇)는 불가능한 친구로군. 너는 무림을 제패해 보고 싶은 생각은 없느냐?”
“제 한 몸 다스리기도 힘든데 어찌 무림 전체를 손에 넣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일을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내 아들은 무공이 너만큼 뛰어나지 못하다. 너는 나이도 어리지만 본좌와 겨룰 수 있을 정도의 무공을 쌓았다. 너에게 교주의 직위를 이어 주려 하는데, 너의 생각 은 어떠냐?”
“싫습니다. 교주의 직책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무공을 쌓을 시간이 없습니다.”
“크흐흐흐, 세상을 살다 보니 별 녀석도 다 있군. 유백에게 들으니 너의 무공의 주(主)는 마공이 아니라 정파의 무공이라고 하더군. 네가 생각하기에는 어떤가?”
“마공이 주축이 아닌 것은 사실이지만 정파의 무공도 주축이 아닙니다. 둘 다 섞여 있다고 봐야지요. 살수란 흔적을 남기지 않아야 하기에 여러 가지 정파의 무공 을 익혔을 뿐, 마공보다 뛰어나다는 생각으로 익힌 것은 아닙니다.”
“그것 또한 유백에게서 들었다. 이번에 부교주와 의논을 해 본 결과 너를 부교주로 임명하고자 하는데 어떠냐?”
“충분히 자유 시간을 주신다면 좋습니다.”
“물론 시간은 충분히 주어질 것이다. 대신 본교의 원칙상 부교주는 수하를 거느리지 못한다. 대신 다섯 명 정도의 독립 호위대를 거느리지. 잡다한 일이 없는 만큼 자네에게는 아주 괜찮은 직위인 것 같은데?”
“그렇다면 좋습니다.”
“호위는 어떻게 하겠나? 자네가 지명할 사람이 있나?”
“교주님이 뽑아서 주십시오. 대신 마기(魔氣)를 풍기지 않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나중에 보내 주겠네. 숙소는…….”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교주님, 제 숙소는 좀 한적한 곳에 작은 초가집 하나만 세우고 거기서 밥해 줄 사람 하나만 있으면 좋겠습니다. 번잡한 곳에 숙소를 잡으면 신경이 집중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그건 자네 좋을 대로 하게나. 위치를 알려 주면 내총관이 알아서 해 줄 거야. 그럼 모든 게 끝났으니 이만 돌아가 보게나. 부교주로 정식 임명되는 것은 한 달 후에 할 것이네. 그때 임명식에 사용할 검을 골라 보게. 천마보고에 쓸 만한 검들이 몇 개 있으니 그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게나. 호위 무사들에게 말해 놓을 테니 들어가서 고르게.”
묵향은 묵혼을 가리키며 교주에게 말했다.
“저는 이걸로도 충분합니다.”
“아니야, 본교의 부교주가 정강으로 만든 보통 검을 사용한다면 모든 이들이 비웃지.”
“하지만 저는 이런 모양의 검에 익숙해져서 다른 것은 사용하고 싶지 않습니다.”
“흠, 그렇다면 내가 지시해서 새로 하나 만들어 주지. 시간은 걸리겠지만 내 무량(武樑)에게 일러둘테니 그에게 말하면 만들어 줄 거야.”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피곤할 테니 이만 물러가 보게나.”
묵향은 교주에게 인사를 한 후 유백에게 가서 얘기를 나눴다. 본타에서 정이 많이 든 사람은 유백 한 사람뿐이었고, 또 묵향을 그만큼 아껴 준 사람도 그뿐이었다. 유백은 묵향을 진심으로 반갑게 맞이했다. 유백은 묵향이 부교주가 되어 오랜만에 돌아온 것을 축하하기 위해 밤새도록 술을 마셨다. 그 도중에 유백은 묵향에게 조 언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자네는 본교 내 격리된 곳에서 생활해서 잘 모르겠지만, 마교 내에는 여러 개의 무공비급을 보관하는 장소가 있어. 서열 1백 위 이상급이 들어갈 수 있는 장소가 천마보고지. 그 안에는 여러 가지 초상승마공과 정파에서 탈취한 상승의 무공들이 들어 있어. 그리고 마존무고(魔尊武庫)에는 2천 위 이상급의 고수들이 들어갈 수 있지. 그 외에 네 곳 천동무고(天東武庫), 지서무고(地西武庫), 현남무고(玄南武庫), 황북무고(黃北武庫)에는 모두 똑같은 책들이 들어 있는데, 이곳은 그 외의 하급 고수들이 사용하는 마공들이 있지.
왜 네 곳으로 만들어 놨느냐 하면 그중에 한 곳이 소실될 우려도 있고, 또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다 보니 한 곳에 같은 비급 네 권을 놔두는 것보다는 네 곳에 나누어 보관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그렇게 만든 거야. 자네의 경우 모든 곳에 다 들어갈 수 있으니 마음에 드는 새로운 무학들을 연구할 수 있을 거야. 그중에서도 마존 무고에 들어 있는 북명신공은 꼭 한 번 살펴보게나. 북명신공은 교주의 허락이 있어야 볼 수 있는 세 가지 무공 중의 하나지. 나머지 두 가지는 교주가 허락하지 않 겠지만 북명신공은 아마 관람을 허락할 거야. 나중에 밑져 봐야 본전이니 한번 청해 보도록 하게나.”
“예.”
유백은 술 한 잔을 입에 털어 넣으며 말을 이었다.
“마교의 고수들이라면 흑미륵마공(黑彌勒魔功)을 꼭 익히지. 이것에 대해 들어 봤나?”
“아뇨.”
“금강불괴(金剛不壞)란 말은?”
“들어 봤습니다.”
“금강불괴란 것은 소림사가 만든 금강불괴신공에서 유래된 것인데 신체를 강철과 같이 단단하게 만들 수 있는 무공이지. 그와 비슷한 것으로 고목신공(枯木神功) 이란 것도 있지. 이것은 사람의 신체를 나무와 같이 딱딱하게 만들어 웬만한 도검으로는 상처를 입지 않도록 해주는 무공이야. 마교에서도 그에 대비하는 무학들을 만들었는데, 그중 하나가 흑미륵마공이네. 이 마공을 운용하면 어지간한 타격에는 상처를 입지 않지. 몸의 껍질만을 튼튼히 만들어 주는 금강불괴와는 달리 혈관과 혈도(穴道), 뼈까지 강철처럼 단단하게 만들어 주어 웬만한 타격에서는 치명상을 입지 않게 막아 준다네. 이건 꼭 익히면 좋을 거야.”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자네의 경우 원체 강기를 잘 다뤄 별 문제는 없겠지만 적수공권에서는 소수마공(素手魔功)만 한 것이 없지. 아니면 혈수마공(血手魔功)이나. 소수마공은 극음, 혈수마공은 극양의 마공이야. 그 마공을 운용한 팔은 희거나 붉은 광택을 발하며 도검이 불침하고, 그 뿜어 나오는 한기나 열기에 적이 치명상을 입는다고 전 해지지. 아주 근거리의 적을 공격하는 데는 최적의 무공일세. 일부 초고수들은 그중 하나나 아니면 둘 다 익히고 있을 거야. 자네도 익혀 두는 게 좋을 걸세.”
“명심하겠습니다.”
“그 외에도 수많은 무학들이 있지. 교주의 경우 자전마공을 극성까지 익히고 있는데, 왜 자네도 봤잖아? 교주의 얼굴이 자색을 띠어 기괴하게 보이는 걸. “예.”
“자전마공은 그 위력이 엄청나다고 들었어. 그것 또한 상당히 배우기 어려운 극양의 마공이지. 조금 익혀서는 효과를 보기 힘들지만 8성 이상 익히면 그 위력이 대 단한 마공이야. 물론 자네의 경우는 좀 힘들 거야, 큭큭…….”
갑자기 유백이 웃자 묵향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소리죽여 웃을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웃으십니까?”
“하하, 자네는 여자를 멀리하는 인물인데……. 자전마공을 익히는 데는 여자가 필수거든.”
“필수라뇨?”
“너무나 강력한 양강(陽剛)의 무학이라 그 양기(陽氣)를 주체할 수가 없지. 끊임없이 욕정이 일어나게 돼. 하루에도 여러 번씩 정사(情事)를 치르지 않으면 그 욕 화를 다스릴 방법이 없지. 그러면서 자연스레 여자의 음기(陰氣)를 흡수하여 균형을 잡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혈맥이 터져서 죽는다네. 이제 알겠나? 킬킬……. 그 말을 들은 묵향은 약간 얼굴을 붉히며 퉁명스레 대꾸했다.
“그래도 제가 익히지 못할 거는 없잖아요?”
“자네는 동자공(童子功)을 익힌다고 헛소문을 내 나중에 있을 사태에 대비하는데, 그걸 익히면 여태까지의 노력은 말짱 헛거지.”
“아, 그 점까지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 외에 무형마공(無形魔功)도 익혀 둘 만하지. 유마권(柔魔拳), 마영지(魔影指), 마음장(魔陰掌)의 세 가지가 있는데 모두 무형(無形), 무성(無聲)이라 상대가 방 어하기 대단히 까다로워. 대체적으로 위력이 좀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래도 기습에는 최고지. 거기에 10성까지 익히면 상대의 내장만 가루로 만들 수도 있다 고 하더군.”
“하지만 저는 이미 그것과 비슷하게 펼칠 수 있는데요?”
“그래도 한번 봐 두는 게 좋아. 자네가 펼치는 수법과 어떤 방식이 다른지 알아 두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알겠습니다.”
“흑살마장(黑殺魔掌)도 한번 봐 두게나. 익히는 걸 권하지는 않지만, 엄청난 위력을 지닌 마공으로 그 장법에 격중되면 살이 검게 급속도로 썩어 들어가기에 붙은 명칭이지. 약간의 상처라도 입으면 그 부분부터 썩기 시작해서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그걸로 끝이야. 거기에 이걸 극성으로 익히면 강기의 형태로 발사할 수 있지. 너무나 악랄한 마공이고 또 익히기도 까다롭지만 그래도 위력은 대단하다네. 그걸 극성으로 익힌 사람은 탈퇴한 부교주인 암흑마교 교주, 흑살마제 장인걸뿐이야. 9성 이상 익히기가 대단히 힘든 마공이지. 다음에 이 사람을 만나면 아주 조심해야 해. 알겠나?”
“예, 마음에 새겨 두겠습니다.”
밤새도록 술을 마시며 얘기를 나눈 묵향은 다음 날 일찌감치 무량을 찾아갔다. 무량은 천마창(天魔廠)이라 불리는 고수들을 위한 무기 제작소를 책임지는 뛰어난 장인이다. 그가 만든 이름 있는 마병(魔兵)들이 많았고, 서열 5백 위 안에 들어가는 인물들은 그에게 직접 부탁해서 병기들을 만들어 사용했다.
천마창은 마교 주력 부대의 무기 생산 장소로 이름이 높은 곳이었다. 그들 외의 일반 마도의 무리들은 마전창(魔戰廠)이라는 곳에서 생산하는 무기를 사용했다. 그가 도착하자 무량이 반갑게 맞이했다. 무량은 50세는 넘어 보이는 나이든 장인으로 잘생기지는 않았지만 우락부락한 표정에 굵은 호랑이 수염이 뻗쳐 있는 당당 한 노인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교주님께 통보는 받았습니다.”
묵향은 묵혼을 허리에서 풀어 무량에게 주며 말했다.
“이 모양대로 만들어 줄 수 있겠나? 가볍고 날카롭게…….?
“예, 교주님께서 현철(鐵)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걸 사용하면 현철 자체의 무게가 있는지라 가볍게는 안 되는뎁쇼?”
“그렇다면 최대한 검신을 얇게 만들어 주게나.”
“현철 자체가 너무나 강해서 얇게 만들기는 하겠지만 그렇게 얇게는 힘들 겁니다. 시간이 좀 걸려도 상관없습니까?”
“상관없어. 내 살아생전에 못 써도 상관없으니 천천히 자네 마음껏 만들게.”
무량은 묵혼검의 손잡이 부분을 자세히 보더니 말했다.
“손잡이 이쪽을 자르셨군요. 손잡이 길이는 이 정도로 해 드릴까요? 그리고 검집도 아주 수수하고, 칼날받이도 없군요.”
“칼날받이는 만들지 말고, 손잡이는 정확히 그 정도, 그리고 검신의 길이도 그대로 해 주게.”
“그렇다면 검의 이름은?”
“이것과 같이 「墨魂(묵혼)」이라고 음각으로 검신에 파 주게나.”
“그러시다면 이 검을 파기할 생각이십니까? 검날이 아주 깨끗한데요? 오래 사용하신 것 같은데도 검날에 손상이 없는 걸 보니 대단히 아껴서 사용하신 것 같군요. 같은 이름, 같은 모양의 검을 두 자루나 가지실 필요가 있을까요?”
“파기할 생각이네. 검은 한 자루면 충분해. 너무 많아도 필요 없어.”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그러더니 무량은 들어가서 묵직한 현철 한 덩어리를 가져오더니 묵향에게 내 주었다.
“여기에 진원지기(眞原之氣)를 약간만 불어넣으십시오.”
약간 의아하게 생각한 묵향이 물었다. 진원지기란 거저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일가 피붙이에게도 나눠 주는 것을 꺼릴 정도로 무림인에게는 생명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진원지기를? 왜 그래야 하나?”
“진원지기는 각 무인의 품성을 나타내죠. 그걸 불어넣어 검을 만들면 그 주인의 마음에 꼭 드는 녀석이 나옵니다. 지독한 마인(魔人)일수록 엄청난 마검(魔劍)이 만들어지니 부교주님 마음에 쏙 드는 마검이 만들어질 겁니다.”
“알겠네.”
묵향은 씁쓸하게 미소 지으며 진원지기를 현철 덩어리에 불어넣었다. 그 모습을 보며 무량이 다시 물었다.
“묵혼검은 짧고 얇기 때문에 만드는데 현철이 그렇게 많이 들어가지 않아 남는 게 있을 겁니다. 그걸로 뭘 만들어 드릴까요? 표창을 몇 개 만들어 드릴까요?”
“아닐세, 묵혼검과 비슷하게 생긴 얇고 작은 단검을 하나 만들어 주게나. 야숙할 때 사슴이라도 잡으면 썰어 먹는 데 쓰게.”
“알겠습니다. 그럼…….”
묵향을 힐끗 쳐다본 후 무량이 말을 이었다.
“평상시 밖에 나가실 때도 그 차림 그대로 나가십니까?”
“왜, 내 모양이 어때서?”
“보아하니, 암기를 사용하지 않으시는 것 같아서요.”
“나는 암기를 안 써. 단도도 없어서 큰 사슴을 잡으면 묵혼으로 썰어서 구워 먹었는데, 검으로 하자니 귀찮아서 그러네.”
“세상에 검으로 사슴 고기를 써시다니……. 알겠습니다. 신경 써서 단도 하나를 만들어 드리죠.”
“고맙네. 나중에 완성되면 연락을 주게나.”
“빨리 만들기는 힘들 겁니다. 한 반 년 정도 기다리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동안은 이 녀석을 사용해 주십시오.”
그러면서 묵혼을 다시 묵향에게 건네줬다. 묵향은 그 묵혼을 허리에 찼다.
“알겠네. 그럼 수고하게나.”
그 후 묵향은 여태 봐 뒀던 마교 총단 건물에서 많이 떨어진 산중턱 으슥한 곳에 작은 집을 한 채 만들도록 지시했다. 작은 방 두 개, 목욕탕 한 개, 부엌 한 개가 딸 린 작은 집으로 전에 소연이 모녀와 함께 살던 집과 거의 같은 구조였다.
집이 완성되자 묵향은 계속 그곳에서 묵었다. 한 번씩 유백이 놀러오는 외에 묵향의 집에 찾아오는 이는 없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정상적인 단계를 거치 지 않은, 벼락출세를 한 장본인인 데다 살수 출신이라 거의 아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일종의 비밀 병기 같은 성격도 띠고 있어서 그가 부교주의 직위 에 올랐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