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1권 24화 – 북명신공
북명신공
묵향은 본타로 돌아가서 교주에게 호된 질책을 받았다. 임무를 끝낸 후 5년간 근신을 해야 하는데, 교주의 허락도 없이 말썽을 더 부렸다는 걸 교주가 알아 버렸기 때문이다.
묵향은 무당산에 올라가 시비를 건 죄로 2년의 근신이 추가되었다. 묵향은 매일 수련에 수련을 거듭하며 단조로운 생활을 했다. 그의 무공도 솔잎을 셀 수 있는 숫 자만큼 계속 증가되어 나갔다. 그것도 4년, 4년간 솔잎을 세자 더 이상의 진전이 없었다.
묵향은 1년간 왜 그런지 끊임없이 생각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짚어 봤지만 더 이상의 방법이 없다는 걸 알고 교주를 찾았다. 교주에게는 묵향이 오래전부터 원해 왔던 것이 있었고, 어쩌면 그것이 묵향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장벽을 무너뜨릴 하나의 쐐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 때문이었다. 교주는 묵향이 근신 중이었 지만 그가 무공의 수련 때문에 상의할 것이 있다고 하자 요청을 거절하지는 않았다. 묵향이 들어서서 인사를 올리자 교주는 퉁명스럽게 물었다.
“뭣 때문에 그러나?”
“북명신공(北神功)을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북명신공은 역대 교주들만이 보아 온 무공이다. 그렇기에 자네는 볼 수 있는 권한이 없어.”
“그래도 교주님의 은혜를 바랍니다.”
“왜 그러나? 북명신공을 익히지 않아도 자네는 강해. 왜 그렇게 강함에 집착하나.”
“강함에만 집착하는 게 아닙니다. 무공의 끝을 알고 싶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요 근래에 수련에 수련을 거듭했는데, 더 이상의 진전을 이룰 수 없었습니 다. 인간의 한계가 바로 눈앞을 가로막고 있는데, 제 실력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한계를 뚫고 나갈 수 있는 방법이 혹시나 있을지 몰라서 부탁하는 겁 니다.”
“역대의 교주들은 모두 다 그 비급을 봤고, 본좌도 그걸 봤다. 하지만 자네가 말하는 그 정도의 도움이 되기는 힘들 거야…….”
“그래도 한번 보기를 원합니다.”
“자네가 아무리 원한다 하더라도 역대 교주들이 정한 규칙을 어길 수는 없어. 나를 이어 교주가 되겠다면 그걸 보여 줄 수도 있네.”
“그건 벌써 얘기가 끝난 걸로 아는데요.”
“그렇다면 나는 이걸 보여 줄 수는 없네. 내 목을 따기 전에는 규칙을 어길 수는 없어.”
그러자 묵향은 순식간에 기를 끌어 모으며 묵혼검을 뽑았다. 뽑아 들었다 싶은 순간 묵혼검은 푸른빛으로 이글거리며 교주의 목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마치 예 상이라도 하고 있었던 듯 교주는 가까스로 뒤로 물러났다.
“잠깐! 내 보여 주겠네. 원, 성미가 이렇게 급해서야…….”
교주는 목을 만지며 투덜거렸다.
“아직도 붙어 있는지 의심이 가는군. 정말 자네의 어검술은 공포스럽군. 아무리 내가 내 목을 따야 한다고 말했지만 정말 그렇게 달려들 줄이야……. 혹시나 하고 준비하고 있었기에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농담 한마디 하고 저세상 갈 뻔했군.”
“보여 주시겠습니까?”
“보여 주겠네. 대신 자네 혼자만……. 그리고 들고 나갈 수는 없고 내 연공실(硏功室)에서 보고 나가게나.”
“감사합니다.”
““따라오게.”
묵향이 교주 전용의 연공실에서 기다리자 교주는 곧 책자 한 권을 가지고 왔다. 교주는 묵향에게 그것을 건네주었다.
“여기 있네. 도움이 될지 모르겠군……..
묵향은 떨리는 마음으로 책자를 바라봤다.
「北神功(북명신공)」
그가 첫 번째 종이를 펼치자 웅대한 필치로 글이 쓰여 있었다. 필체로 보아 글쓴이의 호쾌함을 짐작할 수 있었다.
「본좌는 저 멀리 북명의 하늘에서 열두 조각의 별을 모아 이곳에 남기니 이것을 북명신공이라 명명한다. 개개의 조각은 연관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며 또 무공이 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니, 이것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자 천하 무림인이 꿈꾸어 온 생사경(生死境)을 열리라.」
그다음 장을 열자 한쪽에는 오래된 양피지에 팥알 정도 크기의 옛 발해의 문자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 양피지는 놋쇠 조각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책장에 고정되 어 있었고, 그 뒷장부터는 그 양피지의 발해 문자를 한문으로 번역해 놓은 형태로 내용이 이어지고 있었다.
양피지는 열두 장이었는데, 대부분이 오랜 세월에 의해 헤어져서 일부 글자를 알아보기가 힘들었고, 찢겨진 것도 있었으며, 일부는 불에 타서 약간의 내용이 소실 되기도 했다. 뒷장의 번역은 앞장의 웅장한 필치와는 달리 세심하고 꼼꼼하며 부드러운 필체로 된 것으로 보아 아마 이것을 번역한 서생의 필체임이 확실했다. 아마 구휘는 발해어를 모르니 발해어를 할 줄 아는 서생에게 부탁해 번역한 것이 분명했다.
묵향은 이 북명신공을 보기 위해 유백에게 발해 문자를 익히라는 조언을 들은 후 오랜 시간 발해 문자와 씨름을 해 온 결과 그럭저럭 발해어를 읽을 수 있었다. 그 는 양피지의 원문을 읽어 나가며 해석을 해서 그것이 서생의 해석과 맞아떨어지는지 살펴보기 시작했다.
한참을 읽어 나가던 묵향은 이 내용이 상당히 친숙하다는 걸 느꼈다. 조금 더 읽어 보자 이것이 어검술에 관계된 내용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사용 하는 방법과 서생의 진기 운용 방법이 약간 다르다는 걸 알아낸 묵향은 그 부분을 더욱 꼼꼼히 해석했다. 그 결과 그가 알아낸 것은 서생의 해석에 좀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진기 운용의 일부가 틀리게 기술되어 있었다. 이건 일부러 틀리게 기록한 것이 확실했다. 그 서생이 왜 착오를 일으켰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묵향은 원 문의 내용과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서로 비교하고 검토하며, 또다시 실험을 하면서 어느 쪽이 더욱 좋은 방법인지 차근차근 연구해 나갔다. 이것이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이었으므로 일부 읽을 수 없는 부분까지 모두 짐작이 가능했다.
오랜 시간 첫째 장을 가지고 씨름한 결과 묵향은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미세한 차이에 의해 어검술의 위력에 차이가 남을 깨달았고, 자신이 어검술을 익 히는 데 어떤 부분을 잘못 생각하고 있었는지 알아냈다. 묵향은 오랜 경험과 깨달음으로 어검술을 알아낸 것이 아니라 단순히 여러 종류의 어검술과 비슷한 내용을 가지는 검술을 짜 맞추어서 익힌 것이기에 정통과는 약간 차이가 났던 것이다.
두 번째 장에는 상승의 무공을 익히는 데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수련을 행하는데 신경 써야 할 부분들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상당부분 묵향이 몸으로 체득해 낸 것이기에 이것을 알아내기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세 번째를 보니 이것은 무공이라는 그 자체를 두고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설명을 하고 있었다. 공력이 쌓이는 과정이나 그 공력을 제어하여 뿜어내는 기법, 그리고 그걸 한 번에 끌어올려 10성의 공력을 있는 대로 뿜어내는 요령도 있었다. 이것을 읽으면서 묵향은 대단한 희열을 느꼈다. 무림인들은 언제나 상대를 만나면 싸우 기 전에 먼저 공력을 끌어올려 준비를 한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냥 한 번에 10성의 공력을 뿜어낸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준비 없이 있다가 상대의 기습을 맞받아 치기 위해 5성 정도의 공력만 갑자기 끌어올려도 그 영향으로 상당한 내상을 입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렇기에 수많은 고수들이 자신보다 무공이 떨어지는 살수들에 게 암습당해서 저세상에 가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 있는 내용은 순간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최대량의 내공을 자신의 8성 공력까지라고 기술하고 그 기법에 대해 쓰여 있었다. 하지만 좋아하던 것도 잠시, 이것의 밑 부분의 일부가 찢어져 나가고 없었기에 묵향으로서는 그 밑 부분을 알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 아쉬울 따름이었 다.
네 번째는 검(劍)과 도(刀)를 다루는 데 주의해야 할 여러 가지에 대해 조언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는 상승의 검법을 이루는 데 필요한 많은 내용이 있었다. 이것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갈라져 나가고 있었는데 기를 검에 가두는 방법과 기를 검에서 뿜어내는 방법이었다. 가두면 어검술이 되고 뿜으면 검기, 검풍, 검강이 된다. 그 수많은 요령들과 주의해야 할 점들을 간략히, 그러면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을 꼭 집고 넘어가는 것이 정말 어떤 자가 기술했는지 대단한 고수임에 틀림없었다. 다섯 번째는 강기(氣)에 대한 내용이었다. 강기를 발생시키는 여러 가지 기법들에 대해 쓰여 있었고, 여러 가닥을 뿜어내면서 어떤 식으로 기를 조절해야 하는 지 기술되어 있었다.
여섯 번째는 기를 제어하는 방법에 대한 내용으로, 능공섭물(能空攝物)에서부터 시작하여 어기전성(御氣傳聲)까지 무엇이든 기를 응용하여 사용하는 방법은 대 부분 짚고 넘어가고 있었다. 다만 너무나 간략하게 설명해 놓은지라 알아보기에 힘든 것이 문제점이라고 할까…….
일곱 번째는 이기어검술에 대한 내용이 쓰여 있었다. 이 부분은 앞쪽의 상당 부분이 어검술에 대해 기록한 부분과 비슷했다. 오른쪽 옆 부분이 불에 타서 없어져 버려 전체적으로 알아보기에는 대단히 힘들었지만 묵향 자신이 이기어검술을 알고 있었기에 대략 어떤 식으로 연결될지 짐작할 수는 있었다.
여덟 번째는 강기(氣)를 제어하는 기법에 대해 기록되어 있었다. 뿜어낸 강기를 제어하는 요령으로 더욱 깊게 들어가면 심검(心劍)을 운용할 수 있게 되는 내용 이었다. 아쉽게도 일부가 찢어져서 모든 내용을 알 수는 없었다.
아홉 번째는 기를 뿜어내는 여러 가지 요령에 대한 것이었다. 이것은 강기에 비해서 광범위한 영역을 파괴하기 위한 요령들이었다. 기의 종류에도 여러 가지가 있 다. 부드러운 성질, 강한 성질, 폭발적인 성질, 끌어당기는 성질 등 여러 가지 성질의 기를 발하는 요령에 대해 기술되어 있었다.
열 번째는 몸속의 쓸데없는 나쁜 기를 없애는 방법에 대해 기록되어 있었다. 이것은 간단하게 사용한다면 해혈 수법에도 응용이 가능했지만 이건 더욱 차원이 높 은 방법이었다. 주화입마를 통해 폭주하는 기를 없앤다든가 심지어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내공을 소멸시킬 수도 있는 기법이었다.
열한 번째는 기의 흡수 방식에 대한 기록이었다. 대자연의 기를 자신의 체내에 흡수하는 기법이 쓰여 있었는데, 이걸 약간 응용하면 상대의 내공을 흡수하는 것도 가능했다. 하지만 원래 여기에는 자연의 기를 흡수하여 정순한 내공을 쌓는 기법이 수록되어 있었다. 내공을 흡수하는 것은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며 일단 모 든 기법을 터득하고 나면 신의 경지를 만들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열두 번째는 자신의 기를 골고루 체내에 쌓아 두는 요령이었다. 필요 없을 정도로 넘쳐 나는 내공을 체내에 분산시키는 기법이었다.
이 내용을 전부 다 읽고 난 다음에야 묵향은 어떻게 해서 마교의 흡성대법이 만들어졌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흡성대법은 상대의 내공을 흡수함과 함께 그 내공을 체내에 쌓아 두는 방법이었다. 그러니까 열한 번째와 열두 번째를 이용하여 만들어진 무공인데, 쌓아만 두자니까 자신의 내공이 아니라 이것을 억누르기가 힘들어 소림의 금강합환심법(金剛合幻心法)을 훔쳐다가 이종의 진기를 녹여서 합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 많은 내공을 흡수하면 몸이 버티지 못한다는 것에 있 었고, 또 아무리 금강합환심법으로 이종의 진기를 섞어서 흡수한다 하더라도 진기 간의 미세한 충돌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심한 경우 진기의 제어에 실패해서 주화입마에 빠져 비명횡사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 때문에 마교에서 정통의 무공을 익히는 고수라면 흡성대법을 익히지는 않는다.
그런데 묵향이 의아하게 생각한 부분은 열한 번째 양피지였다. 양피지의 아랫부분에는 좀 더 오래된 발해 문자로 무어라 쓰여 있었고, 그 부분을 번역한 것도 찢겨 나가고 없었다. 이 부분의 글자는 묵향도 해석할 수 없었기에 아마 대단히 중요한 무엇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그 부분만을 베껴 적었다.
묵향은 다시 맹렬히 수련을 시작했다. 북명신공은 너무 간략하게 설명되어 그 전반적인 내용을 알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그거라도 감지덕지해야 할 판이었고, 그 것을 익히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렇게 세월이 흘러 드디어 교주가 제한한 근신 기간의 종료가 1년 앞으로 다가왔을 때 묵향은 교주의 호출을 받았다. 묵향이 교주에게 가 보니 교주는 여러 명의 장로들과 의논을 하고 있다가 묵향을 반겼다.
“어서 오게나. 이번에 부탁할 일이 있어서 불렀네.”
“어떤 일입니까?”
“사천에서 당문(唐門)과 약간의 일이 생겼네. 처음엔 별거 아닌 일로 사파 연합의 한 방파인 지령회(蜘逞會)와 시비가 붙었는데, 서로가 한 치도 양보하지 않다 보 니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이 일이 벌어져 벌써 세 번에 걸친 혈투를 벌인 모양이야. 거기에 5대세가(五大勢家)의 둘까지 가담해서 공방전을 해 대니 급기야는 그들 이 본교에 지원을 요청했고, 본교의 세 개 분타에서 고수들을 보냈지만 상대가 원체 대단하다 보니 이렇다 할 성과를 못 올리고 있어. 까짓 거 사천당문쯤이야 한번 에 쓸어버릴 수도 있지만 5대세가는 만만하게 볼 수 없지. 그들의 뒤에는 9파1방과 무림맹이 버티고 있단 말이야. 이런 쓸데없는 일로 전면전을 펼치고 싶지 않고, 거기다 지금은 때가 아니야. 될 수 있으면 서로가 좋은 상태에서 사태를 종결짓고 싶은데, 자네가 이 일을 처리해 주겠나?”
“글쎄요, 저는 근신 중이라…….”
“하하하, 근신은. 잊어버리게나. 기억력도 좋군. 나는 벌써 잊었는데 말이야. 난 자네의 부탁을 다 들어줬는데 자네는 내 부탁을 들어주지 않겠다는 말인가?” “저 말고도 좋은 사람이 있잖습니까? 혁무상 장로 같은…….”
“아니야. 이놈의 사건은 언제 전면전으로 발전할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본교에서는 총력을 투입할 수도 없는 입장이야. 아수혈교도 있고 그놈의 암흑마교도 있 고……. 그래서 전면전이 벌어지면 지금의 힘으로 모든 걸 해결해 나가야 한단 말일세. 내가 자네를 보내는 이유는 최악의 경우 자네라면 전면전으로 몰고 나가지 않고 그들의 우두머리들만 몽땅 다 저세상으로 보내 버리면.”
“아하! 왜 제가 필요한지 알겠군요. 좋습니다.”
“알겠네. 자네에게 수라마참대(修羅魔斬隊)를 내주겠네.”
“적당히 마무리 짓는데 그들을 데리고 갈 필요가 있을까요?”
“아니야, 이들을 사용하라는 말이 아니라 무력시위(武力示威)용이야. 될 수 있으면 쌍방 간의 위신을 세워 주면서 분쟁을 종결시키되 도저히 말로 해서 통하지 않 으면 어느 정도 맛을 보여 주도록 하게나. 요즘 우리들이 조용하니까 이것들이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모양이야. 만약 갑작스럽게 전면전이 된다면 그 부근에 있는 세 개 분타와 한 개의 비밀 분타에서 끌어 모을 수 있는 힘이 그렇게 많지 않으니 그것도 대비해서 데리고 가라는 걸세. 그리고 인원도 5백 명 정도밖에 안 되니 그렇게 눈에 띄지는 않을 거야.”
“알겠습니다. 그 외에 다른 게 있습니까?”
“흐음, 험험…….”
그러더니 교주는 묵향에게 어기전성(御氣傳聲)으로 말했다. 어기전성이란 전음과는 달리 완전히 기(氣)를 제어(御하여 거기에 소리(聲)를 실어 상대에게 전달 (傳)하는 무공으로 내공이 대단한 경지에 이르지 않으면 시전이 불가능하다. 내공이 높을수록 그 전달할 수 있는 거리도 멀어지며 화경에 이르면 5장 정도의 거리 에 소리를 보낼 수 있다. 일반 무림인들이 사용할 수 있는 전음(傳音)의 기술은 소리에 내공을 실어 멀리 보내는 것이기에 아주 작은 소리라도 내야 하므로 약간이 라도 입을 움직여야 하지만, 어기전성은 기를 통해 의사를 전달하므로 입을 움직일 필요가 없다. 일부 복화술(腹術)을 배운 무림인들이 어기전성을 흉내 내기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전음의 변형된 형태에 불과했다. 많은 사람들이 어기전성이 전음에 비해 뛰어남을 알고 있지만 별로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는 익히기도 어 려울뿐더러 전달할 수 있는 거리가 짧기 때문이었다.
《낯 뜨거운 부탁이네만…, 험험..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 사천 부근에 살고 있는데……. 등량산(燈亮山)에 가면 정량사(整良寺)라는 절이 있는데, 지석(知) 스님이라는 분에게 이걸 전해 주게나.》
그러면서 교주는 품에서 작은 꾸러미를 꺼내어 묵향에게 줬다. 그런 후 아수라의 모습이 생동감 있게 새겨진 흑옥패(黑玉佩)를 건넸다.
“이 천마령(天魔令)을 가지고 가서 모든 일을 처리하게. 이번 일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재빨리 종결짓게나. 그 모든 행위를 교주의 이름으로 허락하겠네.” “존명!”
묵향은 전반적인 사태 파악 및 정보 수집을 위해 사군자를 먼저 파견하고 인도(人屠) 동방뇌무(東武)를 호출했다. 동방뇌무는 마교의 최고 정예인 5대 무력 세력 중 두 번째 수라마참대를 지휘하는 마교 서열 11위의 장로였다. 수라마참대가 교외에 출동한 것은 단 세 번. 하지만 수라마참대에 대해 거의 무림에 알려지지 않은 결정적인 이유가 증인이 될 만한 사람은 모두 다 저세상에 보냈다는 데 있다. 그야말로 상대 문파의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개 한 마리 남기지 않고 모두 다 죽여 버렸으니 그에 대한 소문이 퍼질 리가 없었다.
깡마른 체구에 4척 3촌이나 되는 장검을 등에 메고 있는 그는 수라마참대의 대주가 된 후 처음 출동했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을 무자비하게 죽였던지 그 명호가 단 번에 인도(人屠 : 사람 백정)로 바뀌었을 정도였다.
키가 5척 6촌인 인도는 깡마른 몸매로 인해 더욱 크게 보였다. 길게 째진 눈과 광대뼈가 튀어나온 얼굴은 그의 성격이 잔인하고 무자비함을 대변하고 있었다. “부르셨습니까?”
“어서 오시오. 다름이 아니라 사천에서 벌어진 일을 해결하려는데 좀 도와주셔야겠소.”
“예.”
“수라마참대를 이끌고 비밀 분타에서 대기하시오. 만일의 경우 부르겠으니 내가 부르기 전까지는 부하들을 풀어 놓지 말기 바라오. 이번 일은 최선을 다해 화친 (和親)을 해야 하오. 그것이 불가능할 때 무력을 행사할 것이니……. 무슨 말인지 아시겠소?”
“예.”
“3일 내로 출발하도록 하시오.”
“존명!”
묵향은 그날 오후에 출발했다. 날씨도 그럴듯하니 좋았고 오랜만에 하는 세상 구경이라 기분도 상당히 가벼웠다. 거기에 귀찮은 수하들을 몽땅 다 따로 움직이게 만들어 뒀으니 홀가분해서 더욱 기분이 좋았다. 그는 말을 천천히 몰아 길을 가면서 여기저기를 둘러보았고, 색다른 풍물이 있으면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구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