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1권 26화 – 담판
담판
다음 날 아침 일찌감치 지령회를 나선 묵향 일행은 당문을 향해 길을 재촉했다. 점심때가 지나서 당문에 도착한 일행은 문주와의 회담을 원했고 그 회담은 받아들 여졌다. 한 나이 든 고수가 태청당(太晴堂)이라는 건물로 묵향 일행을 안내했다. 묵향이 바라보니 크지 않으면서도 꽤 위엄 있게 잘 지어진 건물에는 웅대한 필치로 「堂(태청당)」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었다. 이때 그들을 안내해 온 나이가 지긋한 사내가 말했다.
“여기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무기는 가지고 가실 수 없으니 저에게 맡기시지요.”
“알겠네. 너도 검집을 풀어라.”
묵향은 묵혼검과 옥령인의 검을 죽에게 주었다.
“너희들은 여기서 기다려라. 난(蘭), 예물을 다오.”
준비한 예물을 난이 묵향에게 건네주자 묵향은 옥령인을 이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일곱 명이 묵향을 기다리고 있었다. 문 쪽에는 여섯 개의 의자가 놓여 있 었고, 그 반대쪽에는 일곱 개의 의자가 놓여 있었다. 모두 앉아 있다가 일어나서 묵향 일행을 맞이했다. 그런데 묵향으로서도 경악스러운 것은 사천으로 오는 도중 에 놀려 준 그 여인이 일곱 개의 의자 가운데 앉아 있다가 일어서며 똥 씹은 얼굴로 묵향을 노려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묵향은 그 여인을 잠시 바라보다가 껄껄 웃 었다.
“하하하, 정말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그러더니 오랜만이구려, 옥 소저.”
그 여자는 노화가 머리끝까지 뻗쳐 허리의 검을 뽑았다.
“흥! 못된 녀석! 네 녀석의 농간 때문에 그 쓴 약재를 세 번이나 씹어 먹었는데, 당 문주의 말로는 그게 절대 춘약이 아니라고 하더군. 나를 가지고 놀다니 내 기필 코 네놈을 찢어…….”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묵향이 싸늘하게 말했다.
“오늘 화해는 그른 것 같은데, 할 수 없이 지금 모두 죽여서 조속히 해결해야겠다.”
그와 동시에 아무것도 없던 묵향의 손에서 푸른색 강기가 치솟아 올랐다. 그 길이는 무려 3척에 이르렀고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막대기 같은 모양이었다. 모두 이 걸 보고 경악성을 터트리며 다급히 검을 뽑아 들고 일어섰다.
“심검(心劍)을…….”
묵향은 중인들이 경악하건 말건 싸늘히 외쳤다.
“나를 원망하지 말게나…….”
그와 동시에 묵향의 신형은 앞으로 쏘아 나갔다. 첫 번째 목표는 옥 소저라는 그 버릇없는 계집이었다. 묵향이 섬전과 같은 속도로 자신에게 쏘아져 들어오자 옥 소저는 황급히 뒤로 물러섰고 대신 옥 소저의 좌우에 있던 사내들이 날렵하게 몸을 날리며 묵향의 강기를 맞받았다. 검과 강기의 덩어리가 충돌하며 불꽃을 일으켰 고, 다음 순간 두 남자는 피를 뿜으며 뒤로 튕겨 나갔다. 묵향이 재차 목표를 향해 강기의 덩어리를 날리려는 순간 옥령인이 묵향의 앞을 가로막았다. 묵향은 싸늘한 눈초리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비켜.”
“이러지 마세요. 말로 해결하면 될 것을 꼭 힘으로 해결해야 하나요? 이리 온 것도 서로 좋게 해결하기 위해서잖아요. 그리고 그걸 저한테 다 맡긴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지금 분위기를 보고도 몰라. 저쪽에서 먼저 검을 뽑았다구. 그럼 내가 목을 내밀며 ‘날 죽여 주슈’ 할 줄 알았어?”
묵향과 옥령인의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던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아직도 말로 풀 수 있는 희망이 있음을 깨닫고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보시오, 대협. 우리 서로 말로 잘 풀자고 모인 게 아니오. 서로 이성을 찾고 대화로 해결해 봅시다.”
그 남자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선 이유는 묵향의 무공을 보니 이 방에 있는 모든 사람이 덤빈다 하더라도 상대가 불가능한 고수라는 걸 알아챘기 때문이다. 심검(劍)은 왕년의 정파 최고의 고수 구휘조차도 이론적으로 가능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힘들다고 두 손을 들었던 지고(至高)의 무공이다. 그런데 이걸 익힌 자라 고 한다면 구휘보다 더 강했으면 강했지 약할 리가 없었다. 나중에 싸우게 되더라도 일단 상대의 말을 들어서 밑질 것은 없기에 대화를 청하고 나온 것이다. 이때 튕 겨 나가서 벽에 심하게 부딪쳐 그 호신강기 덕분에 벽에 구멍을 뚫을 뻔한 남자가 몇 번 기침을 하며 피를 뱉어 내고는 일어섰다.
“잘 해결하자고 모인 것이니 서로 말로서 해결하도록 해 봅시다.”
그러면서 옆에 떨어진 자신의 애검을 보았다. 검날은 다행히 상하지 않았다. 그의 검이 보검이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검과 함께 두 토막이 났을 것이다. 그 리고 옆의 사람을 보니 그도 주춤주춤 일어서고 있었다. 그의 도(刀)도 대대로 내려오는 보도였기에 화를 피할 수 있었다. 이때 밖에서 한 명이 다급히 문을 열고 들 어섰다. 그의 뒤에는 약 50여 명의 수하들이 검을 뽑아 들고 서 있었다.
“문주님 괜찮으십니까?”
그러자 묵향에게 말로 해결하자고 하던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말했다.
“약간의 오해가 있었으니 너희들은 소란 떨지 말고 나가거라.”
“예, 그럼 물러가겠습니다.”
건장한 체격에 꽤 정성들여 수염을 다듬은 문사풍의 얼굴을 가진 사내는 수하들이 물러가자 묵향에게 말했다.
“아직 소개를 못했군요. 본좌는 이곳의 문주인 당진천(唐眞天)이라고 합니다. 자자, 모두들 앉으십시다.”
그러면서 그가 자리에 앉자 묵향도 더 이상 소란을 피울 수는 없어서 강기를 거둬들이고 의자에 앉았다.
“밖의 분들은 안 들어오십니까?”
“아, 그들은 모두 제 수하들입니다. 그 아이들은 적수공권(赤手空拳)에 능하지 못해 저 혼자 들어왔죠. 그리고 제 검과 이 소저의 검을 지킬 사람도 필요하구요. 너 도 거기 서 있지 말고 이리 와서 앉거라.”
옥령인이 묵향의 옆에 앉자 묵향이 정식으로 자기소개를 했다.
“본인은 지령회를 대신해서 중재를 위임받은 마교의 부교주 묵향이라고 하오. 그리고 이쪽은 그쪽과 대화를 풀어 나갈 옥령인 낭자요.”
상대방 남자는 옥령인의 얼굴을 보고는 잠시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는데, 그 반대쪽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표정이 한결같이 이상했다. 물론 묵향으로서는 그 이유 를 짐작하기 어려웠지만 아무래도 저 여자와 자매라고 하니까 그래서 그럴 거라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저쪽에서 소개를 해 왔다.
“저분은 종리세가(鍾里世家)의 패도(覇刀) 종리영우(鍾里英宇) 대협이십니다.”
그러자 묵향에게 도를 맞대고 튕겨 나갔던 그 남자가 포권을 했다.
“그리고 이분은 제갈세가(諸葛世家)의 패검천령(覇劍天嶺) 제갈기(諸葛忌) 대협이십니다.”
“대협은 무슨…, 아무튼 그대의 대단한 무공에는 정말 놀랐소이다.”
그러면서 검을 잡고 튕겨 나갔던 사내가 포권했다.
“그리고 이쪽은 무림맹에서 나오신 매화문검(梅花文劍) 옥매화(梅花) 여협이십니다.”
하지만 그 여인은 묵향을 모르는 체했다. 그녀는 방금 전에 놀란 가슴이 진정이 안 되었는지 아직도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이쪽은 내 자식 당인걸(唐仁傑)입니다. 귀하의 눈에는 차지도 않겠지만 그래도 무림에서는 꽤 소질이 있는 기재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래도 자식이라고 당 문주는 자랑을 약간 하고 다음 사람을 소개했다.
“저 두 사람은 본문의 외총관 이정과 내총관 당평입니다. 그럼 회의를 진행해 보기로 하지요. 이봐라, 차를 가져오너라.”
그러자 밖에서 시비 세 명이 들어와 각자의 의자 옆 팔걸이에 차를 올려 줬다. 묵향은 시비 중 한 명에게 예물을 건네주었다.
“이건 작은 성의이니 받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리고 말을 잘 해뒀으니 옥령인과 상의를 해 보십시오.”
당 문주는 의아한 듯이 묵향에게 물었다.
“저 옥령인 소저는 무림맹주의 손녀입니다. 그런데 그녀와 의논을 해서 합의점을 찾아냈다 하더라도 귀교에서 그걸 받아들일 겁니까?”
“그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옥령인 소저에게는 내가 모든 걸 말해 뒀으니 서로 상의해 보도록 하십시오. 나는 원래 여기 저 소저의 안전만 책임지기로 하고 따라 왔으니 말이오.”
그러자 옥령인 소저가 차분히 말했다.
“천마신교는 지령회와 당문이 쓸데없는 일에 자존심을 세워 일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냥 서로 휴전할 수는 없을까요?”
그러자 내총관이 침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지금까지 본문이 입은 피해는 상당합니다. 우리는 그 피해에 대한 보상을 어느 정도 받기를 원합니다.”
“만약 보상을 안 해 주겠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러자 옥매화 소저가 싸늘하게 내뱉었다.
“그렇다면 회의는 해 보나 마나야.”
그녀의 말에 외총관도 거들었다.
“다시 소모전을 하는 수밖에 없소.”
당 문주가 그들의 말에 추가하여 자신들의 의견을 밝혔다.
“무림맹에서 추가로 50여 명의 고수가 가담했고, 새로이 제갈세가와 종리세가에서도 1백여 명의 고수가 도착했습니다. 그 외에 주변에서 다음에 벌어질 충돌에 자신들의 제자를 보내 주겠다고 약속한 문파가 세 곳이나 됩니다. 우리는 지령회의 회주가 당문에 정중히 사과하고 피해를 어느 정도 보상해 줘야만 한다고 생각합 니다.”
그러자 묵향이 나직이 그러나 또박또박 물었다.
“그 문파들의 이름을 알려 줄 수 있습니까?”
의아한 표정으로 당 문주가 말했다.
“그건 왜 묻습니까?”
그러자 옆에 앉은 옥령인이 대신 답했다.
“묵향 부교주는 이곳에 오실 때 수라마참대를 이끌고 오셨습니다.”
앞에 앉은 사람들이 경악했다. 수라마참대라면 마교의 최고 정예가 아닌가? 그들을 이런 소모전에 끌고 오다니……. 거기다 이 싸움은 마교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도 아닌데…….
정신을 수습한 당 문주가 묵향에게 물었다.
“옥령인 소저가 하는 말이 정말인가요?”
“그렇습니다.”
“귀하는 우리들을 협박하는 겁니까?”
옥령인이 당 문주에게 대답했다.
“협박이 아니에요. 지금 천마신교는 이 별 볼일 없는 소모전을 오래 끄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질질 끌면 천마신교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꼴이 된다는 것이죠. 그래 서 협상을 해 보고 잘 끝나면 다행이지만 만약 무력을 써야 한다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재빨리 종결지어 버리라는 교주의 명령이 있었답니다.”
“아무리 수라마참대라도 당문과 2대세가를 한 번에 무너뜨리기는 쉬운 일이 아닐 거요.”
“협상이 결렬되면 묵향 부교주는 지금 앉아 계신 여러분들부터 먼저 죽인다고 했습니다. 그런 후 수라마참대를 풀어 우두머리를 잃고 우왕좌왕하는 나머지를 한 번에 처리할 거라고 하시더군요. 제가 하는 말에 거짓이 보태진 건 없습니다. 대신 여기서 서로가 화해를 한다면 서로 간에 예물이 오가야 하며 서로 간에 사과가 대 외적으로 행해져야 합니다. 그러면 천마신교 측에서는 예물을 보태어 좀 더 많이 이쪽으로 드릴 것입니다. 천마신교가 원하는 것은 양쪽 다 외부에 체면을 손상당하 지 않고 일이 끝나는 것이죠. 그리고 이건 빨리 해결되어야 합니다.”
“귀교가 왜 그렇게 서두르는지 모르겠군요. 우리 두 세가가 여기 합동한 것도 귀교가 개입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랜 시간 모른 체하다가 갑자기 빨리 화해하 지 않으면 쓸어버리겠다고 협박을 하다니……. 그 이유부터 설명해 주지 않겠습니까?”
묵향은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혹시 그대들은 암흑마교라는 단체를 알고 계십니까?”
그러자 옥매화 소저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알고 있어요. 본맹에서 수집한 정보로는 그것은 혈교의 한 분파인 것 같으며 그 수는 거의 5천에 이르는데, 고수들이 많아 정보 수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그 암흑마교는 혈교가 아니라 본교에서 이탈한 1천 명의 제자들이 세운 단체요. 그대들이 말하는 4천왕의 한 명인 흑살마제 장인걸이 그를 추종하는 1천여 고수 들을 이끌고 나가 세운 단체지요. 그들의 행동을 본교에서는 치밀하게 감시하고 있고, 또 그 밖에도 아수혈교를 비롯한 여러 보이지 않는 세력들을 견제하고 있습니 다. 그들에 대해 신경 쓰는 것만 해도 마교에서는 벅찰 지경이오. 몇 해 전에는 많은 부녀자들이 납치되는 것을 보고 일종의 사이한 대법을 연성하는 무리가 있는 줄 알고 새외(外)로 천마혈검대가 출동하기도 했소. 그들을 토벌하고 나니 단순한 인신매매단이라는 걸 알고 철수했지만……. 아무튼 우리들은 지금 보이지 않는 적과의 싸움으로 정신이 없소. 그래서 교주의 명령으로 그대들과의 협상을 중재하고 있고, 만약 안 된다면 여러분을 기습해 잿더미로 만들고 수라마참대를 빨리 본 교로 돌려보낼 것이오.”
그러자 옥매화 소저가 비웃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하지만 지금 알았으니 기습은 힘들 텐데요.”
묵향은 싱긋 웃으며 옥령인에게 말했다.
“당신 언니는 이번에 쓴 약을 너무 먹어서 머리가 잘못된 모양이군. 왜 내가 돌아갔다가 이리 다시 와야 하지? 솔직히 말해서 당문쯤 박살 내는 건 나와 사군자만 있어도 충분해. 지금 수라마참대는 제갈세가와 종리세가를 부술 준비를 하고 있지. 당문이 박살 났다는 말을 들음과 동시에 그 두 세가도 끝장날 거야.”
말이 끝남과 동시에 문 밖에서 묵향의 검이 날아 들어왔다. 묵향은 자신의 앞에 날아와서 둥둥 떠 있는 묵혼검을 집어서는 허리에 찼다.
“그대들은 나에 대한 예비 지식이 하나도 없는 모양이군. 본교에서는 교주의 근처 2장 안으로 들어가려면 검을 차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있지. 역대에 제법 많은 교주들이 암습으로 저세상에 갔거든. 하지만 그 규정에 유일한 예외로 인정받은 사람이 나야. 아무리 교주라도 내게 검이 있든 없든 간에 죽이고자 마음먹으면 곧장 지옥으로 보내 드릴 수 있다는 걸 모두 알기 때문이지. 자, 그대들은 어떻게 하시겠소? 화해요? 아니면 싸움이오?”
당 문주가 굳어진 얼굴로 대꾸했다.
“이건 완전한 협박이란 걸 알고 있소?”
그의 말에 묵향도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나는 당신에게 불리한 걸 권하는 게 아니오. 오히려 유리하지. 본교에서는 그대가 화해에 응한다면 은화 2천 냥을 드릴 거요. 대신 그대들도 우리 쪽에 예의를 표 시해야 하오. 사실 본교에서 각 문파에 은자 1천 냥씩을 줘도 되겠지만, 그러면 남들 보기에 모양새가 안 좋지. 그러니 우리에게 받은 돈 중에서 1천 냥을 그대들이 지령회에 주면 그들도 아주 좋아할 거요. 그리고 그대들이 약간 숙이고 들어오는 데 대한 사례로 본교에서 가지고 있는 당문의 실전된 무공비급 중 세 가지를 돌려 드리겠소. 내가 양보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요. 서로 상의들 해 보시오.”
그런 다음 옥령인에게 말했다.
“너는 밖에서 기다려라.”
“존명!”
그와 동시에 국은 섬전과 같이 튀어 오르며 최고의 속도로 경공술을 펼치며 사라져 갔다. 그 엄청난 속도를 보며 중인들은 경악했다. 그 속도만으로 봤을 때는 결 코 자신들의 아래가 아니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들이 부교주를 직접 호위하는 자들이니 뭔가 달라도 다른 점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을 때 묵향이 국에게서 받 은 세 개의 꾸러미를 당 문주에게 주었다.
“이것이 약속한 비급들이오. 물론 모두 다 정본이오. 대신 본타에는 이것을 하나도 틀리지 않고 완벽하게 베낀 사본이 있으니 그 점은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는 품속에서 금표 한 장을 꺼내며 말했다.
“이것은 꽤 신용 있는 전장에서 발행한 금표로 금화 1백 냥입니다. 오늘 중으로 화해를 해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지령회주에게는 벌써 말해 두었으니 그도 아주 좋아할 겁니다.”
묵향이 화해의 선물로 약속했던 것들을 순식간에 내주자 당 문주는 다소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될 수 있으면 서로 좋게 지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번에 본교에 사건이 생기지 않았으면 이렇게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힘들었을 거요. 그럼 본인은 이만 가 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묵향은 그들에게 정중히 포권한 후 옥매화에게 말했다.
“깜빡 잊고 그냥 갈 뻔했군. 이건 당신 거니 돌려드리겠소.”
묵향은 품속에서 전에 옥매화에게서 빼앗았던 모든 물건들을 꺼내 놓았다. 그 속에는 텅 빈 지갑도 있었다.
“죄송하게도 지갑 안에는 돈이 한 푼도 없는데…, 가난한 절에 당신의 건강을 빌며 시주했으니 아마 죽을 때까지 춘약의 피해는 입지 않을 거요.”
묵향이 이죽거리며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머리끝까지 화가 난 옥매화 소저가 순간적으로 검을 빼 들고는 묵향을 찔러 왔다. 하지만 그녀의 검은 묵향의 몸 근처에 서 더 이상 들어가지 못했다. 무엇에 막힌 것처럼 튕겨 나갔던 것이다. 옥매화가 낭패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외쳤다.
“이게 무슨 사술(邪術)이냐?”
그걸 보고 묵향이 미소 지었다.
“툭하면 사술 타령이군. 사술은 아니니 그대 할아버지에게 물어보면 이게 뭔지 알려 줄 거요.”
묵향은 고소하다는 듯이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옥령인이 조르르 따라 나왔다.
“벌써 가려고 그래요?”
“그럼, 올 때도 말했지만 나는 해결사나 비슷한 존재야. 본교에서 해결하기 힘든 일이 있을 때만 내가 나서지. 이제 일이 끝났으니 돌아가야지.”
“돌아가시면 뭘 하시는데요?”
“뭘 하긴, 매일같이 수련이지. 너도 나 같은 고수가 될 수 있어. 매일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죽자고 수련만 한 30년 하면 돼.”
“저는 그럴 수가 없어요. 어떻게…, 아무리 무공을 좋아하는 언니도 그 정도까지는 안 한다구요.”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그렇게 해 왔어. 일이 끝났으니 가서 또다시 수련을 해야지.”
“당신 같은 고수도 수련이 필요해요?”
“나는 아직 너희들이 말하는 현경의 수준에 머물러 있어. 그래도 남자로 태어나서 생사경은 넘어 봐야 하지 않겠냐?”
“본맹에 한번 찾아오실 수는 없으세요? 할아버지가 참 좋아하실 거예요.”
묵향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갑작스런 묵향의 웃음에 옥령인은 약간 괘씸한 듯 물었다.
“왜 웃는 거예요?”
“네 할아버지는 정파의 기둥이고 나는 천마신교의 부교준데 뭘 좋아하겠니? 이 철없는 아가씨야, 네 언니처럼 검을 뽑아 들고 죽이려고 하지 않으면 다행이지.”
“그건 당신이 만날 때마다 언니를 놀려 대니까 그러죠.”
“내가 없더라도 적하마령검법을 열심히 익힐 수 있지?”
“예.”
“그럼 다음에 혹시 만나면 비무를 해 보기로 하지. 그때는 그런 엉터리 검무를 추지 않기를 바란다.”
묵향은 사군자를 향해 돌아서며 외쳤다.
“돌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