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13권 20화 – 몬스터와 인간의 대 결전
몬스터와 인간의 대 결전
가니에 법왕은 열 명의 성기사를 호위로서 대동한 채 비룡을 타고 날아올랐다. 통신의 권능을 가진 사제를 통해 일단 대략적인 보고는 해 놨지만, 아무래도 이번 일의 심각함에 대해 교황을 비롯하여 세 명의 법왕들과 상의하는 것이 좋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배후에 마왕이 있다면 얼마나 위험한지, 정작 법왕 자신도 잘 모르고 있었다.
법왕 일행이 쟈코니아 산맥 주위에 다다랐을 때였다. 본토와 점령지를 가르고 있는 것이 쟈코니아 산맥이었으니 그들은 어쩔 수 없이 그곳을 향해 날아갔고, 본토 로 가는 도중에 혹시나 몬스터의 대 부대가 이동하는 모습도 정찰을 해 두는 것이 좋을 듯하기에 잡은 진로였다. 그런데 그들의 진로 저 앞쪽에서 작은 점 수십 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것들은 뭐냐?”
수십 개의 점들은 점점 더 가까워 오고 있었다. 법왕 일행은 그것이 비룡을 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은 진작 알아봤다. 하지만 그들이 적인지 아군인지는 알 수 없었다. 저들은 적일까? 아니면 본토에서 황급히 오고 있는 증원군일까?
“거리가 멀어서 잘 모르겠사옵니다. 좀 더 접근해야 알 수 있사옵니다.”
법왕 일행은 조금 더 접근한 후에야 접근해 오는 와이번들이 아군이 아니라 마왕에게 포섭된 몬스터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와이번 위에 타고 있는 것은 사람 이 아니라 트롤들이었다.
“모두들 퇴각하라.”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법왕 일행은 왔던 곳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하지만 마왕의 사악한 마력을 받은 적들의 비룡은 이쪽보다 월등하게 빨랐다. 곧이어 자신들 이 따라잡히자 성기사들은 각자 오라 소드를 뽑아 들고 적들과 싸우기 시작했다.
일단 성기사들이 오라 소드를 뽑아 들자 몬스터들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트롤들은 준비해 뒀던 강철 도끼나 창 따위를 던졌지만, 오라 소드가 형성하는 굳건한 반 원형의 방어벽을 뚫지는 못했다. 강철 도끼를 간단하게 튕겨 낸 성기사는 그대로 전진해 들어가서 트롤의 상체를 베어 버렸다.
사람이 길들인 와이번이라면 위에 타고 있는 사람이 죽으면 도망가는 것이 보통인데, 이 와이번들은 위에 아무도 없는데도 도망가기는커녕 혼자서 공격을 가해 왔 다. 하지만 와이번이 뿜어내는 불길마저도 막강한 오라 소드의 방어벽을 뚫지는 못했다. 이렇게 일방적인 싸움이 전개되는데 뒤쪽에 처져 있던 와이번이 앞쪽으로 쓱 나섰다. 그 와이번에는 트롤이 아닌 시커먼 로브를 걸친 인간이 타고 있었다.
그 마법사는 곧바로 검붉은 원구를 만들어 냈다. 성기사들은 그 마법사가 원구를 언제 던질 것인지 대비하는 순간, 자신이 타고 있던 와이번이 미친 듯이 발작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성기사들과 법왕의 안색이 노래지는 그 순간, 그들이 타고 있던 와이번은 하늘 높이 비상하면서 별의별 곡예비행을 해 대며 그 위에 타고 있는 사람을 떨어뜨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곡예비행을 해도 떨어지지 않도록 해 주는 안장에 앉아 있는 그들은 사력을 다해 안장에 몸을 고정시키며 버텼다. 그것을 침착하게 보고 있던 로브를 입은 사내가 외쳤다.
“떨어져랏!”
그와 동시에 열한 마리의 와이번은 방금 전까지 자신의 주인이었던 인간들을 태우고 땅바닥을 향해 급강하하기 시작했다. 인간들이 길들인 와이번의 경우 자신의 목숨을 버리라는 명령을 결코 듣지 않았지만, 흑마법에 의해 제어되기 시작한 와이번에게는 자신의 생명을 지킨다는 자연의 법칙조차도 통하지 않았다.
와이번이 급강하함에 따라 순식간에 땅바닥이 성기사들의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들 더 이상 앞을 보고 싶지 않은 듯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곧 이어 엄청난 굉음을 울리며 흙먼지와 함께 피에 젖은 고깃덩이들이 흩뿌려졌다.
그것을 만족스런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던 로브를 입은 사내는 자신의 옆에 있는 트롤에게 명령했다.
“밑에 모습을 드러낸 타이탄들을 수거하라고 육상 부대에게 연락해라.”
명령을 받은 트롤은 크르르 목이 울리는 기묘하면서도 굵직한 저음으로 대답했다.
“크르르, 이예.”
트롤은 와이번을 몰아서 급하강을 하며 저 밑 숲 쪽으로 빠른 속도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아르곤 제국의 군대나 기사단은 이동 속도가 느렸기에 아직까지 몬스터의 주력 부대와 충돌하지 않고 있었지만, 알카사스의 주력 부대는 엔테미어 공국으로 재빨 리 급파되어 이미 몬스터의 대군과 접전을 펼치고 있었다. 이것도 다 알카사스에 거미줄처럼 퍼져 있는 영구적인 공간 이동 마법진 덕분이었다.
몬스터들은 지능지수가 낮기 때문인지 처음부터 작전이나 각 병과의 병사들끼리의 상호 보완 따위는 생각도 안 한 채 저돌적인 돌진을 감행해 왔다.
2만 마리에 다다르는 오크를 주력으로 하는 몬스터의 대 부대에는 트롤과 오우거, 고블린 따위들이 뒤섞여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도끼나 철퇴 따위를 휘두르며 돌진해 들어오는 장면은 사람의 오금을 저리게 할 만큼 공포스런 그 무엇이 있었다.
알카사스 본토로부터 황급히 파견된 군대는 재빨리 방어 태세를 정비했다. 시간이 너무 없었기에 완벽한 방어선을 구축할 수는 없었지만, 일단 2개 보병사단과 1 개 기병 여단이 우선적으로 도착한 상태였기에 기사단이 올 때까지 시간을 버는 것이 그들의 임무였다.
중갑 보병(重鉀步兵:Havy Footman)들이 3열로 늘어서서 창을 앞으로 곤두세운 상태로 두터운 방패로 막아 튼튼한 방어진을 형성했다. 그런 후 그 뒤에 궁병(弓 兵 : Archer)들이 언제든지 쏠 수 있도록 준비한 상태로 대기했다. 궁병들과 함께 쇠뇌(弩)나 투석기(投石機)도 발사 준비를 갖추고 있는 상태였다.
기동력이 빠른 타이탄 따위가 등장할 가능성이 많은 통상의 전투에서는 쇠뇌나 투석기 따위의 굼뜨고 명중률도 낮은 무기를 들고 다니지 않지만, 상대는 몬스터였 기에 몇 개 가지고 온 것이다. 그리고 중갑 보병을 중심으로 좌우익은 기민한 움직임을 보일 수 있는 경갑 보병(輕鉀步兵: Light Footman)이 자리를 잡았고, 중갑 보병의 뒤에는 경갑 기병들로 이루어진 기병 여단이 대기하고 있었다.
원래 저 우악스런 몬스터를 상대로 하는 데는 최강의 전투력을 가지고 있는 중갑 기병(重鉀騎兵:Havy Trooper)을 가지고 있는 편이 좋겠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 다는 훨씬 듬직했다.
모두들 몬스터들이 돌진해 들어오는 것을 보며 떨리는 마음을 억누르고 전의를 불태우고 있을 때, 기사들이 도착했다. 그것도 일부만이 아니라 원로원 소속의 정 예 기사단이 통째로 온 것이다. 팔콘 기사단은 원로원으로부터 명령을 전달받은 즉시 출동했고, 엔테미어 공국에 도착한 후에야 사태가 위급함을 알았다. 그래서 그 들은 서둘러서 전선에 도착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다 원로원에서 그들을 투입할 것을 재빨리 결정한 덕분이었다.
그들이 서둘러 전투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상공을 까맣게 덮으며 수백 마리의 크고 작은 와이번들이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보통 와이번들은 매우 난폭한 성격을 가 지고 있기에 야생의 와이번을 잡아서 길들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보통 알에서 깨어난 새끼 때부터 공들여서 키우는데, 그 과정에서 성질을 못 이기고 적응하 지 못하는 것들이 태반이 넘었기에 와이번의 가격은 엄청나게 비쌌던 것이다.
그런데 어떤 나라에서 저렇게 많은 와이번을 보유하고 있다는 말인가? 저마다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와이번은 급속도로 거리를 좁혀 왔고 곧이어 시커먼 덩어리들 이 하늘 위에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우왓! 피해랏!”
와이번들은 화살이 닿지 않는 저 높은 곳에서 저마다 발에 움켜쥐고 온 바위 덩어리를 떨어뜨렸다. 하늘 위에서 처음 떨어뜨릴 때야 별것이 아니었는지 몰라도 수 백 미터 높은 곳에서 떨어져 내리다 보니 엄청난 가속도가 붙어 버렸다. 그리고 그것은 몬스터들과 일전을 벌이기 위해 촘촘하게 대형을 짜고 있는 보병들 머리 위 로 사정없이 떨어져 내렸다.
바윗돌에 맞아서 납작하게 바뀐 전우들을 바라보며, 병사들은 길길이 뛰며 살길을 찾아 버둥거렸다. 그리고 바로 이때 몬스터의 떼거리가 보병들의 코앞에 당도했 다. 와이번들은 몬스터가 도착하기 직전에 보병들이 화살이나 창 따위로 공격하지 못하도록 기가 막히게 막은 것이다. 그리고 사방에서 몬스터들의 괴성이 들려오 며 살과 피가 튀기 시작했다.
중무장한 인간들 2만 5천과 몬스터 3만의 대결. 몬스터의 주력 부대가 비교적 덩치가 작은 오크였던 점을 감안한다면 그렇게 무리한 대결도 아니었다. 거기에다가 기사단까지 도착한 상태가 아닌가? 하지만 와이번의 바윗돌 투하로 인해 우왕좌왕하다가 적을 맞은 알카사스의 정규군은 초전부터 밀리고 있었다.
바로 이때, 알카사스 군 후방에서 타이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수는 급속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벌써 적의 기사단이 도착해 있는 모양입니다.”
시커먼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는 인물이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상대방이 몬스터들을 상대로 초장부터 기사단을 투입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몬스터들을 후퇴시키는 것이 좋겠소.”
발칸 폰 크로아 후작의 결정에 로브를 입은 사내는 의아한 듯했다. “예? 적들은 50대 남짓입니다. 이쪽도 그 정도는 되지 않습니까?” 이번에는 크로아 후작과 함께 서 있던 카슬레이 백작이 끼어들었다.
“각하의 말씀이 옳으신 것 같습니다.”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카슬레이 백작은 난투극이 벌어지고 있는 전장을 가리켰다.
“저놈들이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타이탄을 꺼낼 수는 없다는 말일세. 전투는 그대들이 해야 하는 거야. 잊었나?”
로브를 입은 사내는 무너지는 전세 때문에 자신이 잠시 잊고 있었던 사실을 기억해 냈다. 그는 즉각 고개를 숙이며 공손하게 대답했다. 이 두 명의 기사단장들은 지금은 아니꼽더라도 자신의 상관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마법사들보다는 기사들의 계급이 한 단계 높은 것이다.
“아, 죄송합니다. 즉시 각하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로브를 입은 사내는 앞에 대기하고 있는 오크에게 재빨리 지시했다.
“후퇴 신호를 보내라, 빨리.”
뿌우우우우~~~.
뿔 나팔 소리가 길게 이어지자 몬스터들은 재빨리 뒤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을 따라서 타이탄과 병사들이 맹렬하게 추격해서 따라붙으며 도망치는 몬 스터들을 살육했다. 후퇴 신호가 나오자 발이 빠른 오우거 같은 초대형 몬스터들은 이미 도망친 지 오래였고, 그다음으로 트롤들이 긴 다리로 날쌔게 튀어 버렸다. 남은 것은 자그마한 고블린이나 상체에 비해 하체가 짧은 오크였다.
병사들이나 기사들이 1미터도 채 안 되는 자그마한 고블린들을 베고, 뒤뚱뒤뚱 도망치는 오크들을 때려잡는 동안 타이탄들은 더욱 속도를 높여 오크나 트롤들을 깔아뭉개며 초대형 몬스터들을 잡기 위해 달려 나갔다.
자신이 마왕에게 할당받은 몬스터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것을 보며 로브를 입은 사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엔테미어 공국의 수비대를 간단
하게 전멸시켰고, 여기저기의 성과 요새들을 무참하게 박살 냈을 정도로 몬스터들의 전투력은 뛰어났다. 그런 몬스터들이 자신이 보는 앞에서 떼죽음을 당하고 있 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마왕에게 보고 되면 자신은 엄한 질책을 받게 될 것이 분명했다.
바로 이때, 카슬레이 백작이 슬그머니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조금 더 깊숙이 들어온다면 가능성이 있겠는데요? 후작 각하.”
크로아 후작도 미소를 머금으며 대답했다.
“경도 그렇게 생각했나?”
“예.”
카슬레이 백작은 크로아 후작에게 대답한 후, 로브를 입은 사내에게 시선을 돌려 지시했다.
“오우거들 보고 저 뒤편으로 도망치라고 하게.”
카슬레이 백작이 가리킨 곳은 높직한 언덕이었다.
“예?”
“저것을 이용해서 놈들의 시각을 차단한 후에 적 타이탄을 상대하자는 말일세.”
“아, 예. 알겠습니다. 즉시 신호를 보내겠습니다.”
호된 질책을 당할 것이라며 떨고 있던 로브의 사내는 다시금 솟아오르는 희망을 안고 재빨리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타이탄들에게 쫓겨 맹렬히 도망치던 오우거들 은 뒤쪽에서 동료가 죽어 나가건 말건 신경도 쓰지 않고 죽자고 산 뒤편으로 달아났다. 그리고 타이탄들도 그 뒤를 쫓았다.
크로아 후작은 기사들을 인솔하여 산 쪽으로 달려가면서 외쳤다.
“놈들이 산 뒤쪽으로 돌아가면 곧장 몬스터들에게 반격 명령을 내리게 놈들이 저 뒤쪽의 장면을 볼 수 없게 해야 하네. 알겠나?”
“명심하겠습니다.”
산 뒤편으로 팔콘 기사단의 타이탄이 뒤쫓아 들어가자, 여태껏 열심히 도망치기만 했던 오우거들이 갑자기 뒤로 돌아서며 공격을 가해 왔다. 오우거가 휘두르는 거대한 도끼와 철퇴, 그것의 위력은 엄청난 것이었지만 타이탄의 방패를 꿰뚫지는 못했다. 그리고 웬만한 타격으로는 오우거가 두르고 있는 두터운 강철 갑옷을 뚫 고 상처를 주기도 힘들었다. 그때부터 치열한 난타전이 전개되었다.
50대의 타이탄과 50여 마리의 오우거들. 처음에는 거의 80여 마리나 되었지만 도망치는 과정에서 상당수가 죽어 나자빠지고 겨우 50여 마리가 남은 것이다. 팔콘 기사단의 오너들은 이제 곧 이것들을 전멸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아무리 오우거의 힘이 대단하고, 또 두터운 강철 갑옷을 입고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상 대는 생명체였다. 이쪽처럼 통짜 쇠가 아닌 것이다.
바로 그때, 그들의 뒤쪽에 50여 대의 타이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크라레스의 지원군이 온 모양입니다, 각하!”
‘몬스터(Monster)’라는 것은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줄곧 인간에게 피해만 입혀온 족속들을 말하는 단어였다. 그렇기에 이 몬스터라는 존재는 모든 인간들 의 공통된 적이었다. 그런 만큼 크라레스의 기사단이 모습을 드러내자, 그들은 지원군이거나 아니면 크라레스 쪽에서 몬스터를 밀어붙이다가 이쪽까지 온 것이라 고 생각했던 것이다.
크라레스의 타이탄들은 두 종류였다. 크라레스 중앙 기사단의 문장인 히아신스를 흉갑에 그려 넣은 테세우스 30대와 아무런 문장도 그려져 있지 않은 금빛 나는 타이탄 17대였다. 미카엘과 팔시온, 그리고 미디아가 행방불명되었기에 3대의 타이탄이 빠진 것이었다.
어쨌건 알카사스의 기사들은 이 금빛 나는 타이탄을 본 적은 없었지만 치레아 기사단의 타이탄이 금색이라는 소문을 들은 터였다. 또 테세우스는 지난번 전쟁에서 알카사스의 기사들이 고전을 면치 못했던 강적이었다. 하지만 이런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들을 만나자 든든한 생각이 앞섰다. 강력한 적이 한순간에 동지가 된 다면 얼마나 든든하겠는가?
하지만 저마다 검을 빼들고 돌진해 온 크라레스의 타이탄들은 오우거는 본체만체하고, 곧장 알카사스의 타이탄들을 향해 검을 날렸다. 갑작스럽게 기습을 당한 그 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십수 대의 타이탄들이 목 뒤쪽에 검이 푹 박힌 채 나뒹굴었다. 그곳은 타이탄의 관절 부분이었고 속에 기사가 탑승해야 하 므로 두께가 비교적 얇았다. 그곳을 꿰뚫었으니 속에 타고 있는 기사가 멀쩡할 리 없었다.
곧이어 사태가 어떻게 전개되는 것인지 눈치 챈 팔콘 기사단은 크라레스의 기사단들과 맹렬한 격투를 벌였다. 하지만 이미 십수 대의 타이탄이 먼저 고철이 된 상 태에서 그들보다 더 월등한 실력을 지닌 기사들을 상대로 살아남기를 바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산 뒤편에서 전개되는 전투도 마찬가지였다. 산 뒤편으로 도망쳤던 오우거 50여 마리가 다시 돌아오는 것을 시작으로 전개된 몬스터들의 반격, 재생력이 강한 트롤과의 격전, 이 모든 것은 정말 피비린내 나는 악전고투일 수밖에 없었다.
산 뒤쪽에서 들려오는 커다란 쇳소리가 아군 타이탄의 생존을 알려 주고는 있었지만, 정작 그들이 이곳으로 달려오지 않는 바에야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 리고 그 커다란 쇠끼리 부딪치는 굉음이 잦아들기 시작할 무렵, 알카사스의 군대는 몬스터들에게 쫓겨 후퇴하기 시작했다.
“흠, 이놈들이 내 부하라는 말인가?”
거드름을 떠는 듯한 용병대장의 말에, 그를 이곳에 안내해 온 기사의 눈초리가 썩 곱지 않게 바뀌었다. 어디 감히 용병 기사 따위가 대 코린트 제국의 기사에게 이
따위 반말 짓거리를 내뱉는다는 말인가? 하지만 그 기사는 괜히 상대와 말다툼을 벌이는 대신 슬쩍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결말을 맺었다. 그런 다음 로체스터 전 하의 명령서를 전해 주었다.
“내일 즉시 출발하라는 전하의 명령서다.”
기사는 더 이상 용병대장의 꼬락서니를 보고 싶지 않은 듯 서둘러 떠나 버렸다. 그리고 그곳에는 40여 개의 눈동자들이 이 해골 가면을 쓴 인간을 나름대로 품평하 고 있었다. 이윽고 그들 중의 한 명이 앞으로 쓱 나섰다. 구레나룻을 아주 풍성하게 기른 털보 사내였다.
“당신이 우리들의 대장이오?”
용병대장이 고개를 살짝 끄덕여 답하자 그 털보 사내는 요란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핫! 만나서 반갑소. 여태껏 이름만 들어왔기에 어떤 빌어먹을 녀석이 우리 대장인 줄 알 수가 있어야지. 먼저 대장을 처음 만난 만큼 신고식을 해야 하지 않 겠소?”
여태껏 용병 생활이라고는 해 보지도 않았던 키에리는 그게 무슨 소린가 해서 되물었다.
“신고식이라니?”
“용병에게 있어서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밑천은 이 알몸뚱이 아니겠소? 돈을 많이 준다고 해서 왔지만, 아무리 돈이 좋다고 해도 죽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지.” “그래서 감히 내 실력을 알고 싶다는 거냐?”
“그렇다고 볼 수 있지. 그대가 어느 집구석에서 검술을 배웠는지 모르지만, 일단 이름을 알려 줘야 당신을 알 것 아니오? 또 사실 이름을 알려 준다고 해도 거짓말 일 가능성도 있기에 그걸 믿기도 힘들고 말이오. 우리들은 당신에게 목숨을 맡겨야 하는 만큼 당신의 실력을 알고 싶소.”
털보 사내는 동료들이 빙 둘러서 있는 한가운데로 걸어가며 용병대장에게 손짓을 했다. 거기에서 한판 하면서 자신을 꺾는다면 실력을 인정해 주겠다는 몸짓이었 다. 용병대장은 가소로운 듯 미소 지으며 털보를 따라 그곳으로 걸어 들어갔다.
바로 이때, 한 용병이 자신의 옆을 통과하려는 용병대장의 발을 슬쩍 걸었다. 그놈은 용병대장이 자빠지기를 기대하고 건 것이었겠지만 결과는 조금 예상과 달랐 다. 용병대장의 발이 슬쩍 들리더니 그대로 내리찍어 버린 것이다.
“으아아악!”
비명을 질러대며 자신의 발등을 주무르고 있는 그에게 눈길 한 번 안 주고 용병대장은 털보에게로 다가갔다. 털보는 슬쩍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검 주 위로 살벌하게 요동치는 마나의 기운을 내뿜기 시작했다. 전력으로 한판 해서 서로 간의 상하 관계를 확실하게 해 보자는 몸짓이었다.
그 순간 용병대장의 몸이 거의 3미터의 거리가 무색하게 느껴질 만큼 엄청난 속도로 털보에게 파고들었다.
“헉!”
털보가 기겁을 하며 놀랐을 때, 그때 이미 그의 멱줄은 용병대장의 우악스런 손에 꽉 잡힌 상태였다. 용병대장은 멈추지 않고 상대를 들어 올림과 동시에 주먹을 휘둘러 털보의 복부에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르게 주먹을 몇 방 먹였다.
퍽퍽퍽!
몇 번의 타격음이 연이어 들려오고 나서 털보는 눈이 반쯤 돌아간 채 입에 거품을 물고 있었다. 음식 찌꺼기가 섞여 있는 거품을 말이다. 멱줄이 꽉 막혀 있으니만 큼 위에서 꾸역꾸역 올라오는 토사물이 밖으로 힘차게 배출될 길을 찾지 못하고, 조금씩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다.
용병대장은 털보의 목을 꽉 움켜쥔 상태에서 높이 들어 올렸다. 털보는 이미 기절해 버렸는지 얼굴색까지 거무죽죽하게 변한 채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용병대 장은 매서운 눈매로 주위를 삥 둘러보며 으르렁거렸다.
“또 누가 내 실력을 시험해 볼 텐가?”
용병들은 털보가 손 한 번 써 보지 못한 채 무지막지하게 박살 나는 것에 간담이 서늘했는지 서로의 눈치만 볼 뿐, 아무도 선뜻 나서지 않았다. 용병대장은 차디찬 시선으로 용병 기사들을 쓱 훑어본 후 털보를 옆으로 내던진 다음 자신에게 배정된 천막으로 걸어갔다.
“저 털보 놈이 깨어나면 나한테 보내. 그리고 여태껏 서로 실력은 다 재봤을 테니 제일 윗줄 세 명도 털보와 함께 오면 될 거야.”
용병대장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용병들은 그가 천막 안으로 들어간 후에 털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털보는 기절한 채 입으로는 구토물을 꾸역꾸역 쏟아 내고 있 었다.
용병대장은 안으로 들어서는 털보와 그 일행들을 날카로운 눈초리로 쏘아봤다. 용병이란 것들은 아무리 돈에 팔려 왔다고는 하지만 일단 살아야 뭔가를 해먹을 수 있기에 각자 자신의 안위를 엄청나게 따지며, 자유분방한 족속들이기에 처음부터 기를 죽여 놔야 편히 부려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상부의 명령을 전달하겠다. 몬스터들이 각국에서 날뛰는 만큼 우리들은 그곳에 가서 놈들의 규모와 세력, 그리고 어떤 놈이 감히 몬스터들을 규합한 것 인지 밝혀내라는 것이다.”
아직까지 몬스터들이 그렇게 엄청난 규모로 세력을 응집했다는 것을 알 리 없는 용병들은 조용히 서 있었다. 집단행동을 하는 몬스터라고 해 봐야 오크나 고블린 정도였고, 그런 놈 몇 백 마리 정도 때려잡는 것쯤이야 별로 어려울 것은 없다고 나름대로 생각한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 네 놈이 네 명씩을 맡아서 1개조를 편성한다. 여기는 군대나 기사단처럼 상하 관계가 확실하지 않으니 그렇게 확실하게 선을 그어 놓는 것이 좋겠 다. 너희들이 조장이라는 책임을 맡는 대신 월급을 10골드 더 올려 주마. 이의는 없겠지?”
사납게 노려보며 윽박지르는 것을 보면, 이의를 들어줄 마음은 처음부터 없음이 확실했기에 용병 넷은 일제히 대답했다.
“예.”
“조금 있다가 황궁에서 마법사 두 명이 올 것이다. 그들이 도착하는 대로 출발할 테니 준비하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전하 첩자들이 재미있는 정보를 보내 왔사옵니다.”
“뭔데 그러느냐?”
“예, 몬스터들이 집단적으로 난동을 부리고 있는 모양이옵니다.”
“그래? 겨우 몬스터들 따위가 난동을 부려 봤자 별수 있겠느냐? 겨우 그것을 가지고 재미있는 정보라고 하는 것이냐?”
“그것이 아니옵니다. 이번 난동은 오크 몇 개 부족이 연합해서 일으킨 그런 작은 규모가 아니옵니다.”
무슨 소린가 하며 미네르바가 자신을 향해 시선을 올리자 이블리스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말토리오 산맥과 쟈코니아 산맥에 있는 모든 몬스터들이 모여 들었사옵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것으로는 거의 10만에 가까운 숫자이옵니다.”
“뭣이?”
“예, 이 정보가 들어왔으니까 드리는 말씀이옵니다만, 전에 렉손 요새에서 일어난 사건을 기억하시옵니까?”
미네르바는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본국 타이탄 2대가 파괴되었지 않았사옵니까? 단독 행동이었다면 몰라도 2대가 함께 나가서 몬스터들에게 파괴된 적은 단 한차례도 없었는데 말이옵니다. 그것을 보면 그때 오우거들이 떼를 지어 이동하고 있었다고 가정할 수 있지 않겠사옵니까?”
“그래서?”
“그들은 계속 산맥을 타고 남하하여 이번 난동에 참여하려고 했다고 볼 수도 있지 않겠사옵니까? 아르곤의 2개 용병 기사단이 하룻밤에 전멸한 것을 보면 오우거 같은 초대형 몬스터들이 함께하고 있다고 봐야 하겠습지요.”
“뭣이? 기사단까지 피해를 입었다는 건가?”
“예, 여러 가지 정보를 종합하여 판단하건데,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몬스터들은 남쪽에서 세력을 집결하여 난동을 부리기로 작정을 했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되 면 본국은 또 다른 중흥기를 맞이할 수 있지 않겠사옵니까? 타국들이 몬스터들의 등살에 시달리고 있을 때 말이옵니다.”
미네르바는 슬그머니 미소 지었다. 이블리스의 예상이 정확하다면 이것은 또 다른 기회를 그녀에게 제공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경의 말도 일리가 있군. 몬스터의 이동 경로에 대해서 철저하게 조사해 보게. 그리고 산맥에 접해 있는 요새들의 경비를 강화시키고 말이야. 그런 다음 일이 어떻 게 진행되는지 지켜보자구. 본국에게까지 불똥이 튀지만 않는다면 몬스터들의 세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이익이 아니겠는가?”
“예, 그렇사옵니다.”
“이것으로 코린트의 힘이 좀 약화될까? 아니면 아르곤의 힘은?”
“코린트는 몰라도 아르곤은 상당히 고생을 할 것으로 추정되옵니다. 난동의 중심에 아르곤의 점령지가 위치하고 있으니까 말이옵니다.”
“좋아좋아! 아르곤의 세력이 약해진다면 본국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거겠지. 이렇게 되면 아르곤의 세력권이라 넘보지 못했던 동쪽으로의 진출이 쉬워지지 않 겠나? 쓸데없이 빙 둘러갈 필요 없이 직통 항로를 개설할 수도 있을 테고 말일세. 각국의 세력과 몬스터의 세력을 파악하는 데 모든 첩자들을 풀어 보게나.”
“옛,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