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13권 21화 – 아르티어스의 과거
아르티어스의 과거
“야, 이 망할 녀석아! 내가 그렇게 일렀거늘 어떻게 그렇게도 동족 간에 불화를 일으키는 것이냐? 네놈은 꼭 그렇게라도 해서 이 애비 얼굴에 똥칠을 하고 싶냐? 위대한 골드 일족에 너 같은 놈이 태어날 거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 더군다나 왜 나한테서 너 같은 개망나니가 태어났다는 말이냐? 응?”
“누가 개망나니라는 겁니까?”
뻔뻔하게도 말대답을 하는 아들놈을 향해 아르티엔은 손바닥을 있는 힘껏 날렸다. “퍽”하는 소리와 함께 “에구”하는 아들놈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아르티엔은 손으로 직접 이 아들을 가리키는 대신 구타하는 형식으로 그 위치를 알려 준 것이다.
“네놈이지 누군 누구야! 네놈이 태어나고 나서 내가 한시도 편안할 날이 없으니 으이구! 너처럼 있는 대로 말썽만 부려 댄 헤즐링이 있었다는 말은 내 평생 들어 본 적이 없다. 아이구! 내 평생 그렇게 큰 잘못도 없었는데, 왜 너 같은 놈이 태어났느냔 말이다.
근처 드래곤 둥지들을 찾아가서 인사라는 명목으로 그들의 낮잠을 방해한 것도 모자라서, 애지중지하는 물건들을 도둑질하고, 부수고……. 네놈이 헤즐링만 아니 었다면 목숨이 몇 개 있어도 모자랐을 거다. 헤즐링이란 점을 악용하여 이웃 드래곤을 괴롭히는 것도 모자라서, 산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들에게 해코지를 했잖 아! 엘프들을 이리저리 괴롭히고, 그래서 그놈들이 너를 잡아서 닦달하려고 하면 헤즐링이라는 것을 알려 주며 손도 못쓰게 만들고 말이야. 그러다가 웬만큼 괴롭 히는 것으로는 양이 안 찼는지 산에 불까지 질러서 결국은 엘프들이 짐 싸들고 도망가게 만들지 않았냐?”
“그런 적 없습니다. 증거를 대시라니까요.”
“헛소리하지 마! 누가 네놈이 불 질렀다는 걸 모를 줄 알아?”
또다시 작렬하는 아르티엔의 손바닥. 아르티어스는 뒤통수를 어루만지며 투덜거렸다.
“제발 말로 하자구요.”
“말로 하고 있잖아! 내 아들만 아니었으면 벌써 죽여 버렸을 거라는 거 몰라? 그건 그렇고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그렇지, 엘프들을 쫓아낸 후에 건드리기 시작한 것은 드워프였지. 별의별 방식으로 드워프들을 볶아 대더니, 나중에는 드워프들이 광산이 무너지지 않도록 군데군데 설치해 놓은 버팀목을 부숴 버리고 말이야. 그 덕분에 드워프 수십 명이 압사(壓死)하는 바람에 내 원대했던 계획에 얼마나 큰 차질이 왔었는지 네놈은 아느냐? 내 그런 식으로 악질적으로 노는 헤즐링이 있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었어.”
“뭐가 악질적이라는 겁니까? 그냥 어렸을 적에 재미 삼아 해 본 것을 가지고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계시다니…….”
“뭐가 재미 삼아야!”
퍽!
“쿠엑!”
“말썽만 부려 대는 흉악한 놈을 겨우겨우 5백 년을 참아 낸 후에 분가시키며 기뻐한 것이 며칠이나 지났다고 그 후부터 들려오는 것은 몽땅 다 최악의 소문들 뿐. 그래도 그때는 괜찮았어. 네놈이 둥지를 틀고 난 후 처음에 시작한 것은 유희였으니까 말이야.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검술을 익힌다고 깝죽거리면서 영웅 이 되겠답시고 패거리를 끌고 왔다 갔다 하며 말썽을 부려 댔지만, 뭐 그것도 다 젊을 때의 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영웅이 되려면 타도해야 할 사악한 마법사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마법사를 찾을 수 없자 네놈은 어떻게 했냐?”
“글쎄요. 기억이 잘 안 나는데요?”
또다시 뒤통수를 때린 후 아르티엔은 말을 이었다.
“왜 기억이 안 나? 이번에는 네놈이 그 사악한 마법사가 되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괴롭혔냐? 주변에 있던 수많은 국가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고, 온갖 못된 짓은 다 해 대고……. 그러다가 두목이 되어가지고는 못된 짓을 하기가 체면상 조금 힘들다고 생각했는지 그다음에는 이리저리 패거리를 끌어 모아서 산적질, 도적질에 다가 살인, 강간, 약탈, 방화…….
뭐 그것도 좋다 이거야. 조금 과격하기는 했지만 네놈 나름대로 호비트들과 어울려 유희를 즐기겠다는데 누가 뭐라고 해? 그런데 왜 급기야는 그런 쓰레기들을 모 아서 드래곤 슬레이어가 되려고 했느냔 말이다. 그린 드래곤 그레사이어가 찾아와서 하소연을 할 때 나는 쥐구멍이 있다면 들어가고 싶었단 말이다. 알겠냐? 어떻 게 드래곤이란 놈이 하고 많은 놀이를 놔두고 드래곤 슬레이어 노릇을 하려고 할 수가 있냐?”
“그거 다 옛날 옛적에 했던 일이라구요. 요즘은 시켜도 그런 짓 안 해요.”
“떽! 어른이 말하면 듣고 있어!”
“쿠엑!”
아르티엔은 호되게 아르티어스의 머리통을 쥐어박은 후 말을 이었다.
“내가 오우거로 변신하고 닦달하지 않는 것만도 천행으로 여기란 말이다.”
사실 아르티엔이 소녀가 아닌 거대한 오우거로 변신한 채, 인간으로 변신해 있는 아르티어스의 머리통을 향해 일격을 휘둘렀으면 곧장 변사체로 바뀌었을 것이다. “네놈이 드래곤 슬레이어 놀이를 하며 많은 드래곤들을 괴롭힐 때 내가 알아봤어야 했어. 그때 드래곤들이 내 얼굴을 봐서 네놈을 용서해 준 것이 이렇게도 내 기
나긴 생에 치명적인 오점을 남길 줄이야……. 그때 반쯤 죽여 놨으면 그런 일은 절대로 하지도 않았을 텐데 말이다. 네놈이 드래곤 슬레이어가 되겠답시고 설쳐 대 며 말토리오 산맥을 휘저어 댄 덕분에 거기에 터전을 잡고 살던 드래곤들이 모두 다 귀찮아서 떠난 것 아니겠냐? 얼마나 네놈의 악행이 하늘을 찔렀으면 드래곤들 이 다 떠날까! 아이구, 내 팔자야! 그러다가 나중에는 드래곤 슬레이어 놀이도 싫증이 나니까…….
어쩌구 저쩌구. 아르티엔의 잔소리는 끝이 없었다. 아르티엔은 아르티어스가 4천3백여 년을 살아오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고 살아온 증인이었다. 사실 옆에 서 지켜볼 필요도 없었다. 그놈이 뭔가 못된 짓거리를 했을 때는 곧장 누군가가 달려와서 고자질을 했으니까 말이다.
아르티엔은 드래곤의 그 엄청난 기억력 때문에 아르티어스가 저질러 놓은 얼토당토않은 짓거리들을 본의 아니게 모두 다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아르 티어스에게 잔소리 삼아 쏟아 붓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아르티어스가 수천 년을 살아온 만큼 그 잔소리 또한 하루 이틀에 끝날 일이 아니었다.
“으아아악! 나를 제발 죽여 줘요. 이런 생고문을 하지 말고요!’
아르티어스는 속으로 울부짖고 있었지만, 그래도 아르티엔의 잔소리를 듣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만약 잔소리를 듣지 않겠다고 대들면, 드래곤들 중에서 가장 높은 마법 실력을 가지고 있는 노룡이자 자신의 아버지가 그를 가만히 놔둘 가능성이 없었던 것이다. 파워와 실력, 모든 면에서 뒤지니 할 수 없이 오늘도 잔소리를 듣고 있는 아르티어스 옹이었다.
“으아아악!”
한참 훈계(?)를 듣고 있다가 갑자기 괴성을 지르기 시작하는 아르티어스의 뒤통수를 “딱” 치는 소리가 레어 안을 울릴 정도로 호되게 갈긴 아르티엔은 또다시 잔 소리를 이어 가기 시작했다.
“내가 너를 때린 것도 아닌데 웬 비명이얏! 조용히 하고 듣고 있어! 다 네놈에게 뼈가 되고 살이 되라고 얼마 남지 않은 귀중한 시간을 바쳐서 설교하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그게 언제냐! 네놈이 나에게서 독립하고 나서 2백 년이 흐른 시점인데 말씀이야. 그때 네놈이 무슨 황당한 짓거리를 했냐 하면..”
아르티어스는 죽을 지경이었다. 지금이 어떤 때인데 이런 노망난 드래곤의 옛날 옛적 추억담을 듣고 있어야 하는 것인가? 뭐 간혹 가다가 뒤통수가 번쩍번쩍하며 골이 띵해 왔지만 그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보배와도 바꿀 수 없는 아들 녀석이 어디에 잡혀 가서 무슨 일을 당하고 있는지도 알지 못하는데 여기에 잡혀서 오도 가도 못하고 있는 자신이 정말 한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놈은 지금쯤 아비가 구출해 주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아르티엔의 옛날 옛적 추억담을 듣고 있자니, 장난 삼아 계집들을 잡아다가 저질렀던 못된 짓거리들이 머릿속에 확연히 떠올랐다. 노예 상인에게 팔려가며 천벌을 받을 거라고 바락바락 저주를 퍼붓던 계집부터 시작해서, 네놈의 딸년도 이런 일을 당할 거라는 물귀신 저주 등등 수없이 많은 저주를 들었지만, 그때 그에게는 아 무런 감흥을 주지 못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들놈이 사라지고 나니 그때 일이 덜컥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그러면서 아르티어스는 등줄기가 서늘해지며 오한이 나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원 체 그런 짓을 소싯적에 많이 해 봤기에, 계집이 잡혀가면 무슨 일을 당할 것인지 확연히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일을 조금이라도 덜 당했을 때 아들놈을 구 출하려고 그렇게 노력하는 것인데, 왜 이렇게 일이 꼬이는 것일까? 갑자기 통곡이라도 하고 싶어지는 아르티어스 옹이었다.
<묵향14 – 외전 : 다크 레이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