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13권 5화 – 아르티어스 옹의 잘못된 화풀이

아르티어스 옹의 잘못된 화풀이

아르티어스 어르신은 크루마에 다녀온 후 그런 식의 조사로는 아무래도 다크를 찾을 수 없겠다는 생각에 식음(食)을 전폐하고 며칠 동안 머리를 감싸 쥐고 궁리 를 시작했다. 아무리 아르티어스가 드래곤이라고 하더라도 어디에 숨었는지도 모르는 호비트 한 마리를 찾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던 것이다.

호비트의 개체수가 드래곤처럼 몇 백 마리뿐인 것도 아니고, 수십억에 이르지 않던가? 그 엄청난 숫자에서 하나를 찾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끙끙대며 고 민하던 아르티어스 옹이 갑자기 손가락을 딱 소리가 나게 튕기며 벌떡 일어섰다. 그렇게나 애타게 찾아 헤매던 방법이 떠올랐던 것이다.

“맞아! 그 방법이 있었지. 그 녀석의 몸속에는 엄청난 마나가 축적되어 있으니 그걸 목표 삼아 차근차근 찾아보는 거야.”

확실히 아들 녀석의 몸에 축적된 마나는 보통 사람들의 그것에 비해 엄청났다. 물론 아들을 납치한 놈들이 마법진을 이용한다든지 해서 그것을 조사하지 못하게 막는다면 몰라도 그렇게 조심성이 없는 놈들이라면 드래곤인 자신의 능력으로 충분히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 잘난 척하는 호비트나 엘프 마법사라면 불가능하 겠지만…….

일단 아르티어스 어르신은 드래곤인 본체로 돌아간 상태에서 마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트랜스포메이션한 육체로 끌어 모을 수 있는 마나에는 한계가 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르티어스는 레어의 중앙에 마련되어 있는 거대한 홀에서 본체로 변신했다. 하지만 본체로 변신하고 보니 자신의 몸집에 비해 레 어가 터무니없이 작았다.

<제기랄! 본체는 너무 몸집이 커. 오랜만에 변신을 하니 더 좁아 보이잖아.>

아르티어스 어르신은 투덜거리면서 몸을 돌돌 말기 시작했다. 꼬리를 몸쪽으로 돌돌 말고, 머리도 마찬가지로 돌돌 말고……. 일련의 작업이 끝나고 나자 제법 여 유공간까지 생겼다.

<흐흐흐, 보아라! 브로마네스여. 내 레어도 크지 않느냐? 성룡이 들어가고도 공간이 이만큼이나 남았잖아. 괜히 레어 확장한다고 쓸데없는 데 신경 쓰느니 나 같 으면 낮잠이나 자겠다.>

아르티어스 옹은 호기롭게 중얼거린 후 작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괜히 호비트와 관계를 맺어 이런 쓸데없는 생고생을 사서 하고 있는 아르티어스가 현명한 것인 지, 아니면 자신의 욕구를 충실히 쫓아가고 있는 브로마네스가 현명한 것인지, 그건 누구도 판단할 수 없을 것이다.

<끄응……. 여기에도 그 정도 클래스가 한 놈 있었군.>

아르티어스는 한쪽에 놔둔 자그마한 잉크병 안에 그 거대하면서도 날카로운 손톱의 끝을 조심스럽게 살짝 담갔다가 꺼냈다. 그런 다음 낑낑거리며 그 옆에 놔둔 작은 종잇조각 위의 한 지점에 손톱 끝을 콕 찔렀다. 그러자 그 종잇조각 위에는 새까만 작은 점 하나가 찍혔다.

그 종잇조각이 드래곤의 몸체에 비했을 때 매우 작은 듯 느껴지겠지만, 사실 드래곤의 몸집이 너무 큰 것이지 그 종잇조각이 작은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 종잇조각은 각 국가에 1천 명 이상이 거주하는 작은 마을들까지 표시되어 있는 상당한 정밀도를 자랑하는 지도였기 때문이다. 호비트들이 와이번을 길들여 탑 승하기 시작한 이후로 지도의 정밀도는 엄청난 가속을 붙여 매우 정밀해졌기에 꽤 신뢰성이 높아졌다고 할 수 있었다.

거의 3일 동안 전 세계를 탐색 마법으로 뒤지는 ‘무식한 짓을 한 후 아르티어스 어르신은 탈진해서 일주일 정도 뻗어 버렸다. 아무리 그가 드래곤이라고 해도 그 런 식으로 마법을 쓰는 것은 정말 미친 짓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아르티어스는 그것이 상당히 무모한 방법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 이상 좋은 해답이 떠오르지 않았기에 밀어붙였던 것이다.

아르티어스 어르신은 잠에서 깨어난 후 지도를 보기 쉽게 호비트의 몸체로 트랜스포메이션을 했다. 아르티어스 어르신의 자그마한(?) 레어에 비해 그의 거대한 본 체는 너무나도 거추장스러웠으니까 말이다.

그런 다음 여섯 장의 지도를 만족스런 표정으로 훑어보았다. 여섯 장의 큼직한 지도 위에는 군데군데 시커먼 점들이 큼직하게 찍혀 있었다. 또 어떤 것은 힘 조절 을 조금 잘 못하여 지도에 아예 커다란 구멍을 뚫어 버린 것들도 있었다.

“그러니까 전부 다 했을 때, 한 50군데 정도 되는군. 자, 이제 생각을 정리해 보자…….”

드래곤이 용언 마법을 쓰기 시작했을 때에야 상대 드래곤은 이웃이 가지는 용언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아르티어스는 성체인 드래곤만이 뿜어내는 그 독특한 존재 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헤즐링은 다르다. 헤즐링은 아직 용언 마법을 쓸 정도의 능력이 안 되기에 드래곤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힘든 것이다. 그렇기에 오차까지 아주 많은 초 원거리 탐색 마법으로 전 세계를 뒤지다 보면 이게 헤즐링인지, 아니면 호비트인지, 엘프인지 알아낼 재주가 없는 것이다.

또 웜급 드래곤 정도 되면 드래곤으로부터도 자신의 기척을 숨길 수 있었다. 하지만 영역을 지키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드래곤이 드래곤만 알아볼 수 있는 자신 의 기척을 숨길 이유는 거의 없었고, 사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런 것을 즐기는 어긋난 오크 발톱 같은 괴짜가 한두 마리는 꼭 있는 법이다.

또 헤즐링과 그 아버지가 함께 살고 있다면 그 둘이 함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자신이 포착한 그 존재가 헤즐링이라는 것을 눈치 챌 수 있다. 그러나 24시간 내 내 헤즐링과 함께 꼭 붙어서 놀아 주는 드래곤은 거의 없었다. 위험하지만 않다면 주변에 놀러 다니는 것까지 막지는 않았고, 아버지인 드래곤도 뭔가 일이 생기면 따로 돌아다닐 수도 있는 것이다.

그 외에도 생각하기 힘든 여러 가지 오차 및 부정확성으로 인해 아르티어스가 확인할 수 없는 것들도 있었다. 그렇기에 아르티어스 어르신이 처음부터 자신의 아 들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은 처음부터 여기에 표시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표적이 동쪽 대륙에 전역에 걸쳐 56개나 되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이제 아르티어스 어르신의 기억에 의존한 확인 사살’이 시작된 것이다. 어쨌든 찾아다니는 수고를 덜려면 최대한 머리를 굴려야 했으니까 말이다.

아르티어스는 붉은색 잉크가 찍힌 펜을 가지고 와서 지도에다가 또 다른 표시를 하기 시작했다. 아르티어스는 산맥이 그려진 한쪽 구석에 찍혀 있는 검은 점에 엑

스(X)표시를 하며 중얼거렸다.

“이건 아마도 아르메디아가 낳은 헤즐링일 거야. 론다 산맥 남서쪽에 산다고 들었으니까 말이지. 그리고 이놈은.

아르티어스는 기억을 더듬으며 자신이 주워들은 헤즐링들의 서식지를 지워 나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아르티어스는 키아드리아스와 함께 살고 있는 카렐을 지워 버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자, 이렇게 해서 24개만 남았군. 흐흐흐, 예상보다는 좀 많이 남았지만 뭐 좋아. 이제 하나씩 개별적으로 방문하면서 알아 보면 손쉽게 찾아낼 수 있겠지. 자, 아들아! 힘들더라도 조금만 참고 있어라. 아빠가 간다.”

아르티어스는 그 말과 동시에 공간 이동해 버렸고, 이제 주인이 떠나 버린 텅 빈 레어만이 남았다.

아르티어스는 공간 이동을 시작한 지 몇 초 후 지상 1킬로미터쯤 높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공간 이동을 끝내자마자, 에이비에이션 마법을 통해 고도를 떨 어뜨리지 않으면서 또다시 탐지 마법을 사용했다. 레어에서 행한 광범위 탐지 마법으로는 정확한 위치를 잡을 수 없었기에, 이곳까지 공간 이동해 온 상태에서 또다 시 탐지 마법을 사용해야만 했던 것이다.

막강한 정신력을 갖춘 드래곤으로서는 두세 가지 마법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기에, 이제 노룡이 다 되어 가는 아르티어스로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곧이어 자신의 시야에 상대의 위치가 잡혔다. 아르티어스는 눈에 힘을 주며 중얼거렸다.

“이번에도 엉터리는 아니겠지?”

하지만 도착해 놓고 보니 이번에도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이었다. 아르티어스가 도착한 곳에는 아름다운 엘프 소녀가 꽃을 따고 있었다. 그녀는 붉은색의 아름다 운 꽃을 따다가 귀 위에 꽂았다. 붉은색의 꽃이 그녀의 푸른 머리색에 아주 잘 어울려 보였다. 그러다가 그녀는 갑자기 광포한 기운을 느끼고는 재빨리 시선을 그쪽 으로 돌렸다.

처음에는 몬스터인 줄 알았지만 그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상대가 몬스터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두려운 존재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 다. 그녀는 눈앞에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흉악스런 기운을 내뿜는 붉은 머리를 길게 기른 미청년을 두려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상대의 의도는 뭘까? 그리고 왜 아버지의 영역에 이렇듯 허락도 없이 들어와서는 자신을 노려보는 것일까? 그녀가 아버지에게 교육받기로는 드래곤은 될 수 있는 한, 남의 영역에 들어가서는 안 되며 혹시 들어갈 일이 있다면 정중히 허락을 구해야만 한다고 들었던 것이다.

“야, 꼬맹이! 너 이리로 와 봐.”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자신을 부르고 있었지만, 쌍심지를 잔뜩 돋운 상대의 무섭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봤을 때 결코 좋은 뜻으로 부르고 있는 것은 아닌 듯했다. “예? 저 말인가요?”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자신밖에 없었기에 엘프 소녀는 죽을상을 하고는 아르티어스를 향해 주춤주춤 다가갔다. 아르티어스는 다가서는 소녀의 멱살을 다짜고 짜로 잡아 쥐고는 으르렁거렸다.

“너 말이야. 용언의 힘을 쓸 능력도 안 되는 주제에 왜 이렇게 나돌아 다니는 거야? 응? 한번 죽도록 맞고 싶냐?”

여러 번의 헛걸음으로 슬슬 열이 오르기 시작한 아르티어스 옹이 화풀이를 하려는 찰나 뒤에서 점잖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갑자기 자신의 영역 저 한 귀퉁이에서 막강한 드래곤의 존재감이 잡히자 서둘러서 이쪽으로 공간 이동해 왔던 것이다.

“누구신데 제 영역에 허락도 없이 들어오셨습니까? 그리고 왜 제 아이를 괴롭히고 있는 거죠?”

뒤에서 척 봐도 붉은 머리 청년이 드래곤, 그것도 전성기를 맞이한 노회한 드래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기에, 상대의 잘못을 잘 알면서도 이렇듯 정중하게 물어 온 것이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런 정중함 따위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아르티어스 어르신의 정신 상태는 온전하지 못했다. 아르티어스 어르신은 잡고 있던 소 녀를 던져 버린 후 뒤로 획 돌아서면서 노기에 찬 어조를 터뜨렸다. 꼬맹이보다는 화풀이하기 더 좋은 상대가 제 발로 나타난 것이다.

“뭐야? 그래, 너 잘 만났다. 자식새끼를 낳았으면 여기저기 인사를 다니면서 소개를 해 둬야 할 거 아냐? 싸가지 없게도 이런 곳에 처박혀서 애를 길러서는 나로 하 여금 또다시 헛걸음을 하게 만들어? 너 오늘 한번 죽어 봐라.”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제, 제발 이러지 마세요. 꾸에에엑~~~.”

상대방 드래곤의 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끓어오르는 성질을 수습하기 위해 분풀이 상대를 찾고 있던 아르티어스 옹에게 재수 없게도 잘못 걸린 것이 그들 에게는 불행이었던 것이다. 아르티어스는 이곳에 온 목적은 까맣게 망각하고 대뜸 막강한 마법 공격부터 퍼부으며 상대의 기선을 제압해 나갔다.

블루드래곤은 황급히 마법 방어막을 치면서 회피했지만, 상대는 아예 자신을 죽일 작정인지 그 공격의 강도를 더욱 더해 가고만 있었다. 옷이 여기저기 찢어진 비 참한 몰골의 엘프 여성은 화가 머리끝까지 난 듯 외쳤다.

“이런 미친 드래곤 같으니라구. 나도 더 이상은 못 참겠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비행 마법을 사용하여 엄청난 속도로 공중으로 비상해 버렸다. 얼마나 빨리 이동했는지 그녀의 몸은 순식간에 작아졌고, 곧이어 푸른 하늘만이 보였다.

“훗! 하늘로 도망치면 못 쫓아갈 줄 알았냐?”

아르티어스도 곧바로 하늘로 몸을 날렸다. 그런데 엘프 여성이 사라졌던 저 먼 하늘 위에서 희미한 푸른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저건 화가 단단히 난 상대가 드래곤으로 현신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흥! 본체로 현신하면 겁먹을 줄 알았나? 그래 봐야 바뀌는 것은 하나도 없어.”

곧이어 아르티어스의 몸도 찬란한 금빛 광채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르티어스가 본체로 돌아가는 것을 채 끝내기도 전에 저 멀리서 블루 드래곤 한 마리

가 엄청난 속도로 접근해 오고 있었다. 물론 그 녀석은 먼저 본체로의 현신을 시작했던 화가 머리끝까지 난 이웃이었다.

아르티어스는 상대가 지척에 도달했을 때 가까스로 본체로의 현신을 끝낼 수 있었다. 아르티어스의 눈에,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머리 한가운데 난 뿔에서 스파크 를 뿜어내고 있는 블루 드래곤의 얄미운 대가리가 순간적으로 보였다. 아마 곧이어 블루 드래곤의 브레스가 터질 것이다.

“이동(移動)!”

뇌전이 대기를 가르며 뿜어져 나갔다. 하지만 그사이에 끼여서 전기 충격을 받으며 뼈저리게 반성을 하고 있어야 할 그 노망난 골드 드래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 다. 뇌전이 뿜어져 나오는 그 순간 무식하게도 본체 그대로 공간 이동해 버렸던 것이다. 아무리 드래곤의 용언 마법이 강하다고 하지만, 그 무거운 본체를 통째로 용 언 마법만으로 공간 이동하는 것은 상당히 무리한 일이었던 것이다.

<어디 있지?>

블루 드래곤이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며 상대를 찾는 그 순간, 블루 드래곤은 자신의 머리 위에 뭔가 이질적인 섬뜩한 마나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블루 드래곤 이 재빨리 옆으로 몸을 틀려는 순간 불로 지지는 듯한 무지막지한 고통이 전해져 왔고, 그와 동시에 엄청난 폭발음이 들려왔다. 아르티어스가 양손에 만든 헬 파이 어를 각각 상대의 양쪽 날개에 던져 버렸던 것이다.

“쿠에에엑!”

엄청난 고통에 블루 드래곤은 괴성을 질러 댔다. 활짝 펼쳐져 있는 취약한 날개를 향한 일격! 이건 정말 치명적이었다. 아무리 드래곤 본으로 덮여 있고, 또 방어 마법으로 보호된다고 하더라도 헬파이어의 충격을 완전히 막아 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진 아르티어스의 공격. 이건 드래곤들끼리의 전투를 꽤 많이 해 본 그의 숱한 경험이 깔려 있었다. 물론 간 크게도 말토리오 산맥에 들어온 애송이들을 족치며 얻은 것이었지만…….

아르티어스는 헬 파이어 여섯 방을 상대의 날개에 연속적으로 퍼부은 후 급속히 상대와의 거리를 좁혀 들어갔다. 그런 후 아직 충격의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대의 몸 위에 올라서서는 힘껏 오른쪽 날개를 향해 발길질을 해 버렸다. 우지끈하는 괴성이 울려 퍼지며 오른쪽 날개가 꺾였다. 그리고 블루 드래곤의 거대 한 몸체는 땅으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으헤헤헤! 이런 거야 식은 죽 먹기지.>

아르티어스 어르신은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날개를 한껏 몸에 붙여 추락하는 블루 드래곤을 따라 급강하하기 시작했다. 이제 최후의 일격을 먹일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저 높은 하늘 위에서 떨어져 내린 블루 드래곤의 몸은 엄청난 굉음을 토해 내며 땅에 처박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황금색 드래곤 또한 블루 드래곤이 방금 만들어 낸 거대한 구덩이 옆에 날개를 퍼덕이며 우아하게 착륙했다.

블루 드래곤은 마법을 이용해서 순간적으로 대지와 자신의 몸 사이에 완충 공간을 만들었지만 워낙 높은 곳에서 떨어지다 보니 그 충격을 완전히 해소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다 보니 정신이 오락가락했고, 온몸은 크고 작은 상처들로 만신창이였다. 그는 무지막지한 고통을 참으며 우선 회복 마법을 몸에 걸었다. 그런 후 분노에 찬 괴성을 질러 대며 방금 자신의 몸뚱이가 대지와 격돌하며 만들어 낸 구덩이에서 기어 나왔다. 그리고 곧이어 블루 드래곤은 구덩이 위에서 기다리고 있는 거대한 골드 드래곤을 볼 수 있었다. 상대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먹이가 튀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블루 드래곤의 눈이 절망으로 물드는 순간, 골드 드래곤의 거대한 발이 대기를 갈랐다. 퍽하는 둔탁한 소리가 났고, 블루 드래곤의 몸이 수십 미터는 날아가서 곤 두박질 쳤다.

아르티어스는 힘겹게 일어서려고 하는 상대를 향해 그 거대한 다리를 튕기며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왔다. 그러면서 아르티어스는 광기에 물든 표정으로 통쾌하게 외쳐 댔다.

<감히 내 허락도 없이 말토리오 산맥에 둥지를 틀다니. 맛 좀 봐라.>

블루 드래곤으로서는 도대체가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힘든 말을 내뱉은 아르티어스는 한쪽 발을 한껏 들었다가 상대의 무릎 부분을 모질게 짓밟았다. 우드드득!

<쿠아아아악!>

블루 드래곤의 관절은 기괴한 음향을 내며 부서졌고, 곧이어 고통에 찬 비명이 길게 길게 울려 퍼졌다. 블루 드래곤은 “여기는 말토리오 산맥이 아닌뎁쇼?”하고 항변하려 했지만 고통 때문에 더 이상 생각이 연결되지 않았다. 생전 처음 당해 보는 너무나도 강렬한 고통에 기절해 버렸던 것이다. 블루 드래곤의 길쭉한 목은 요 란한 소리와 함께 먼지를 피워 올리며 땅바닥에 무너져 내렸다. 아르티어스는 쓰러진 상대의 몸 위에 한쪽 발을 올린 채 승리의 괴성을 질러 댔다.

<쿠오오오오오!>

감히 자신에게 도전한 놈은 어떻게 되는지를 과시하기 위해 한껏 드래곤 로어를 뿜어내던 아르티어스는 갑자기 이게 드래곤 간의 영역 싸움이라든지 뭐 그런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딴 건 다 좋았는데 여기는 말토리오 산맥이 아닌 것이다. 이건 순전히 잘 지내고 있는 온순한 이웃 드래곤을 찾아가서 무조건 박살 낸 것이 아닌가? 그것도 비슷한 등급도 아니고 3천 살도 안 되는 애송이를 말이다.

<크에엑! 이런 실수가 있나. 그냥 주변 어른들한테 인사 하지 않았다고 따끔하게 ‘훈계’만 할 생각이었는데……. 하기야 이것도 훈계는 훈계군. 내가 생각해도 좀 심하긴 했지만 말이지.>

아르티어스는 쓰러져 있는 블루 드래곤의 몸에 회복 마법을 걸어 준 후 길쭉한 꼬리를 슬슬 흔들면서 뒤뚱거리며 헤즐링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자기 딴에는 약 간은 쑥스러운 듯한 걸음걸이였는데, 그걸 바라보는 헤즐링의 입장에서 그건 더 이상 도망칠 곳도 없는 먹이를 앞에 두고 그 순간을 즐기며 공포감을 조성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헤즐링은 너무나도 공포에 질린 나머지 자신의 본체로 돌아갈 생각도 못 하고, 도망칠 생각도 못 한 채 작은 바위틈에 꼭꼭 숨어 있었다. 또 여태껏 자신이 살아오 면서 가장 강할 거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던 자기 아버지도 손도 못 쓰고 박살나는 판에 자신이 본체로 돌아가서 발악해 봐야 한주먹 거리도 안 될 것은 당연한 사실 이었다.

아르티어스는 황금빛 찬란한 고개를 아래로 쭉 내려 오들오들 떨고 있는 엘프 소녀를 쳐다봤다. 물론 자신의 행동이 과했기에 조금 미안한 듯한 감정이 담긴 눈길 이었지만, 그 눈길을 받은 소녀는 너무나도 공포에 질려서 뒤로 털썩 주저앉아서는 오줌을 지리고 있었다. 아르티어스 옹은 상대가 자신을 악마로 생각하든 뭐로 생 각하든 그런 것은 신경도 안 쓰고 자신의 생각대로 중얼거렸다. 일단 이렇게 해 둬야 나중에 뒷수습이 될 테니까 말이다.

<너의 아비가 깨어나거든 주변에 살고 있는 어른들에게 인사 좀 하라고 전해라. 헤즐링을 출산하는 경사스러운 일을 치렀으면, 그 기쁨을 이웃 모두와 함께 나눠 야 할 것 아니냐? 안 그래?>

수긍하지 않으면 자신을 죽일 것 같았기에 소녀는 기를 쓰고 대답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너무나도 떨려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기에 열심히 고개만 끄덕였다. <그래,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착한 아이로군. 흐헤헤헤. 아무리 드래곤이 혼자서 생활한다고 하지만, 그래도 살아가면서 예의라는 것이 필요한 때가 있단다. 무 슨 말인지 알겠냐?>

무슨 뜻인지 이해할 생각도 못하고 소녀는 죽자고 고개를 아래위로 흔들었다.

<너도 앞으로 예의바르게 생활해야지. 연장자들에게 인사도 꼬박꼬박 하고 말이야. 흐흐흐. 그럼 나는 바빠서 이만 가 봐야겠다.>

어느 정도 뒷수습을 해 놓고 아르티어스 옹은 재빨리 그 자리를 벗어났다. 물론 그 뒷수습도 자기 마음대로 한 것이었지만, 그에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한바탕 난리를 쳤더니 속은 시원하군.’

아르티어스는 거대한 날개를 활짝 펼쳐 하늘 위로 한껏 날아오른 후, 맹렬한 속도로 케락스를 향하여 날아가기 시작했다. 다음 목표가 케락스시에 있었기 때문이 다. 하지만 잠시 후 아르티어스는 인간의 모습으로 다시금 변신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황금빛 나는 거대한 드래곤인 채로 그곳에 가 봐야 좋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문 득 들었기 때문이다.

<젠장, 귀찮기는 하지만 또다시 트랜스포메이션해야겠군. 딴 건 다 좋은데 이 덩치는 너무 거추장스럽거든.>

아르티어스 어르신은 투덜거리며 하늘을 나는 도중에 곧바로 호비트로 트랜스포메이션했다. 물론 자신의 몸은 그 순간 떨어지기 시작했지만, 곧이어 떨어지는 것 을 멈췄다. 비행 마법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후 그의 몸에서 희뿌연 빛이 뿜어져 나오는 순간 아르티어스는 더 이상 그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케락스시로 공 간 이동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