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14권 18화 – 황실 사냥대회
황실 사냥대회
“공작 전하, 긴급 정보가 도착했사옵니다.”
“뭐냐?”
“예, 발렌시아드 후작 각하께서 우려하신 대로 그녀는 드래곤과 만난 것이 확실하옵니다. 벼룩에게서 온 보고에 따르면 그녀가 아버지와 함께 치레아 공국에 도착 했다고 하옵니다.”
“이런 빌어먹을…….?
“그리고 그녀의 탈출을 도운 그 무녀 계집과 또 다른 한 명의 일행도 도착했다고 하옵니다. 그녀는 도착 즉시 현재까지 치레아를 책임지고 있었던 그란트 반 리에 카르토 백작을 불러들여 여태까지의 일을 보고받았다고 하옵니다.”
“경은 그녀의 다음 행동이 어떨 것이라고 생각하나?”
“예, 아마도 그녀는 본국과 크루마에 대한 복수를 할 가능성이 가장 크지 않겠사옵니까? 그런 만큼 그 복수 대상에서 본국을 빼 버리는 것이 최우선적인 과제라고 사료되옵니다.”
“그렇겠지…….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나?”
“일단 그녀에게 사신을 보내어 해명을 하는 것이 좋을 듯하옵니다. 미네르바가 그녀를 우리에게 넘겼기에 어쩔 수 없었다고 말이옵니다.”
“그것이 통할까?”
“통하도록 해야겠지요.”
로체스터 공작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제임스를 불러라. 아무래도 그가 적격일 것 같군.”
“예, 전하.”
제임스는 치레아 대공이 코린트에 체류했을 때 매우 즐겨 마셨던 아주 강한 술 두 상자와 드래곤에게 뇌물로 바칠 포도주 한 상자, 그리고 그 외에 몇 가지 금은보 화를 선물로 가지고 치레아 공국으로 떠났다. 로체스터 공작은 그녀를 만났을 때, 어떤 식으로 해명할 것인지 몇 가지 당부를 해서 제임스를 보낸 후 초조하게 기다 렸다. 마법진으로 갔으니 치레아에 곧장 도착했을 것은 뻔한 노릇이었다. 제임스는 한 시간도 안 되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로체스터 공작은 그가 너무 빨리 돌아온 것에 대해 찜찜함을 느끼며 다급하게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되었나?”
제임스는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
“황송하옵니다, 전하. 그녀는 만나 보지도 못했사옵니다.”
물론 그때 다크는 술타령을 한다고 제임스를 만난다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 이유를 모르는 로체스터 공작은 더욱 난감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 다. 혹시, 그녀가 코린트까지도 복수의 대상에 넣지 않았다면, 사신을 만나 보지도 않고 돌려보낼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뭣이라고?”
“그녀를 만나고 싶다고 청을 넣었으나 곧장 거절당했사옵니다. 대신, 그 드래곤은 만났사옵니다.”
그 말에 로체스터 공작의 혈색이 조금 돌아왔다. 어찌 되었건 문제는 다크가 아니라 그 뒤에 있는 드래곤이 아니던가?
“그래? 그건 잘되었군. 그런대로 이쪽의 사정에 대해 이해해 주는 눈치던가?”
“예, 그게……..
난처한 어조로 제임스는 말을 이었다.
“그런대로 이해해 주는 것 같은 눈치였사옵니다. 하지만….
“하지만?”
“그때 그가 본국에 나타났을 때 모든 것을 알려 주지 않은 것에 대한 죄는 나중에 묻겠다고 하더군요.”
“으휴~ 산 넘어 산이군.”
“드래곤은 별 잔소리 없이 이쪽에서 건네주는 모든 선물을 받았사옵니다. 그런 만큼 어쩌면 별 탈 없이 넘어갈 수 있지 않겠사옵니까?” 로체스터 공작은 드래곤이라는 족속은 치가 떨린다는 듯이 힘주어 말했다.
“욕심이 목구멍까지 차 있는 족속들을 그런 이유 하나만으로 믿기는 힘들지. 어쩐다…….?”
이때 레티안이 옆에서 참견해 왔다.
“전하, 나중에 일어날 일을 지금부터 앞당겨서 걱정하실 필요는 없을 것이옵니다.”
“응? 왜 그런가? 경에게 뭐 좋은 생각이라도 있나?”
“일단, 본국은 그녀가 찾아올 두 번째 대상이라는 점이 중요하옵니다. 먼저 그녀는 자신을 배신한 크루마부터 찾아가지 않겠사옵니까?”
“그런데?”
“예, 일단 그들이 크루마에서 행패를 한껏 부리고 난 후에는 화가 많이 풀릴 것이라는 점이지요. 그런 상태에서 본국에 온다면, 어쩌면 말만 잘하면 넘어갈 수 있을 것이옵니다.”
“그럴까?”
“예, 그리고 그녀가 풀려났다는 사실을 크루마에 알릴 필요가 있사옵니다.”
“그것은 왜?”
“미네르바는 보통 뛰어난 여자가 아니옵니다. 그녀는 무슨 짓을 해서라도 크루마의 멸망을 막으려고 할 것이옵니다. 만약, 미네르바가 그녀를 잘 구슬려서 넘어간 다면, 주범인 크루마를 놔뒀는데 공범의 입장인 우리들에게 크루마보다도 가혹한 처분을 내릴 이유는 없을 것이 아니옵니까?”
“흐음, 그러니까 크루마 쪽에다가 팔밀이를 하자는 말이군.”
“예, 전하.”
로체스터 공작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경의 말에도 일리는 있군.”
로체스터 공작은 제임스에게 말했다.
“경은 지금 바로 엘프리안으로 가라.”
“예, 전하.”
“그곳에서 드래곤이 크루마에 어느 정도 피해를 입히는지 세밀하게 관찰하도록. 드래곤은 될 수 있으면 인간의 일에는 관여를 하지 않았었다. 그런 만큼 크루마에 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를 주시하면서, 본국의 대처 방안을 논의하기로 하지.”
“예, 전하.”
코린트로부터 치레아 대공의 탈출 소식을 접한 미네르바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부하로부터의 보고에 한동안 말도 못하고 앉아 있던 그녀는 이윽고 정신을 차린 후 불같이 분노했다. 회의 중이었기에 부하들이 다 보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평소 와 달리 미네르바는 그런 것까지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이런 망할 녀석들! 완전히 힘 빠진 계집애 하나 단속을 못한다는 말인가?”
분노하고 있는 그녀에게 지오그네가 조언을 올렸다.
“그녀는 지하 궁전에서 탈출한 전례가 있지 않사옵니까? 코린트 쪽에서 그녀에 대한 대비를 조금이라도 허술하게 했다면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한 것이옵니다. 전 하, 어서 대책을 강구하셔야만 하옵니다. 언제 그녀가 기사단을 이끌고 쳐들어올지 알 수 없는 노릇이 아니옵니까?”
“기사단이 문제가 아니야. 분노에 가득 찬 드래곤이 문제지.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한단 말인가?”
그 자리에 모인 인물들 중에서 다크가 드래곤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미네르바의 참모장인 이블리스와 궁정 마법사 마리나 지오그네뿐이었기에, 모두들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정보관인 바르데 후작은 경악하고 있는 모두를 대변하여 미네르바에게 정중하게 질문을 던졌다. 바르데 후작까지 모르고 있었을 정 도로 그녀와 드래곤 사이의 연관성은 최고의 극비사항이었던 것이다.
“전하, 치레아 대공이 드래곤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이옵니까? 왜 그녀의 일에 드래곤이 분노하여 나선다는 것이옵니까?”
“젠장! 나도 확
이다. 경은 지금 즉시 그린레이크에게 연락해서 이동용 마법진을 몇 개 더 준비시키도록 해라. 황실 피난 건에 대해서는 지오그네 경에게 모든 것을 맡기겠다.”
“옛, 전하.”
이때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이블리스가 끼어들었다.
“전하, 분명히 드래곤이 쳐들어온다면 폐하를 피신시키는 것이 옳은 판단일 것이옵니다. 하오나 딴 것이라면 몰라도 황제 폐하를 피난시키는 일은 결코 전하의 독 단으로는 처리할 수 없는 사안이옵니다. 폐하를 어떤 식으로든 납득시킨다고 하더라도 그린레이크 전하께서 가만히 계실 리가 없기 때문이옵니다.”
미네르바는 갑자기 골치가 아파 오는지 머리를 지그시 누르면서 투덜거렸다.
“젠장, 그렇지. 그 망할 녀석을 잊었군. 그렇다면 이 일을 어떻게 한다? 경에게 좋은 생각이 없나?”
이블리스는 이미 생각해 뒀다는 듯 재빨리 대답했다.
“대규모 사냥 대회를 여는 것이옵니다.”
“뭐?”
“황실의 수렵 지역에서 대규모 사냥 대회를 여는 것이지요. 명분은 크루마의 발전을 위해 황실과 귀족 간의 돈독한 유대로 하고, 한 일주일 정도로 계획해서 성대 하게 말이옵니다.”
“사냥이라…….”
“예, 그러면서 수도 내에 있는 모든 귀족들을 사냥 대회에 초대하는 것이 좋지 않겠사옵니까? 그리고 그 가족들도 말이옵니다.”
미네르바는 사냥 대회를 개최하면서 얻을 수 있는 효과를 알아채고는 감탄사를 터뜨렸다.
“호오, 그것 아주 좋은 생각이군. 그러면 황족과 귀족들의 피난을 별 탈 없이 일거에 처리할 수 있겠어.”
“예, 그리고 폐하께서 가시는 것인 만큼 수도 방위군의 상당수를 합법적으로 대피시킬 수 있사옵니다. 아무래도 상대가 드래곤이라면 군대의 필요성은 거의 없어 지니까 말이옵니다.”
미네르바는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지오그네에게 말했다.
“좋아, 즉시 그렇게 시행하게. 사냥 대회 일정을 너무 급작스럽게 잡은 것을 가지고 그린레이크가 뭐라고 떠들기는 하겠지만, 뭐 그 정도는 어떻게 무마시킬 수 있 겠지. 나머지 세세한 사항은 경이 알아서 처리해 주게.”
“옛, 전하.”
미네르바는 이제 테시온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경은 타이탄 생산 시설 및 인원들을 모두 시외로 대피시킬 수 있도록 준비해라. 대피 자체는 폐하께서 별장으로 가신 후에 할 수 있겠지만, 그 규모와 인원이 엄청 난 만큼 준비 작업을 갖추는 것도 만만한 일은 아닐 것이다.”
“예.”
“대신 절대로 그린레이크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비밀스럽게 일을 처리하도록 해라.”
“옛, 전하.”
““바르데 후작.”
“옛, 전하.”
“경은 수도에 체류하는 귀족들 모두에게 사냥 대회에 참가할 것을 권해라. 경은 정보관인 만큼 수도 내에 얼마나 많은 귀족들이 들어와 있는지 파악하고 있겠지?” “옛, 전하.”
“그들 모두가 참석해야 한다. 물론 보잘것없는 귀족들이야 빠져도 상관없다.”
“예, 즉시 시행하도록 하겠사옵니다.”
“그리고 워렌.”
“옛, 전하.”
“경은 수도 방위군에게 협조를 구해서 2개 사단 규모를 여름 별장으로 이동시키도록 해라.”
미네르바의 명령에 워렌은 난처한 듯 대답했다.
“전하, 그건 너무 많은 수이옵니다. 그렇게 되면 수도에는 1개 사단밖에 남지 않는데……. 여태껏 그렇게 많은 병력이 수도를 비운 전례가 없사옵니다.”
“물론 그것은 나도 잘 알고 있다. 방위 사령관에게 이번 임무 자체가 드넓은 사냥터에서의 폐하의 호위인 만큼 병력이 많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하면 이해할 것이 다.”
“예, 전하.”
“경은 제2근위대를 거느리고 방위군 1개 사단과 함께 여름 별장을 향해 먼저 출발하도록 해라.”
“옛!”
일단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되는 지시를 다 내린 후 미네르바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뭔가 빼먹은 것은 없나 하고……. 그러다가 그녀는 생각해 냈다. 다크를 납치
했던 그때, 그녀의 동료들도 함께 체포했었음을 기억해 낸 것이다. 그들을 돌려보낸다면 아마도 어느 정도 복수의 강도가 감해지지 않을까? 미약한 희망이기는 했 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이블리스.”
“옛, 전하.”
“그때, 그녀와 함께 체포했던 포로들은 어떻게 되었나?”
“아, 예, 정보부에서 포로들을 신문하겠다고 해서 건네줬사옵니다.”
“뭐? 정보부에서?”
“예, 전하, 그들은 모두 다 치레아 기사단원들이었기에 그들을 신문하면 많은 정보를 획득할 수 있지 않사옵니까? 치레아 대공을 체포했던 것은 철저하게 기밀로 취급되었지만, 그 동료들의 경우 도주하는 것을 잡아들인다고 한바탕 소동을 벌였기에 정보부에서 넘겨 달라고 하는 것을 거절할 수 없었사옵니다.” “그랬던가?”
“예, 그 건에 대해서도 전하께 서류가 올라갔고 결재까지 받았었사옵니다.”
“글쎄. .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군.”
미네르바에게는 하루에도 수십 내지 수백 건씩 서류가 올라오기에, 하나하나를 기억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미네르바는 이블리스가 직접 설명을 하는 중요 한 사안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읽어 보지도 못하고 서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미네르바는 일단 지나간 일을 가지고 시시콜콜 따지는 성격은 아니었기에 곧장 시선을 바르데 후작에게로 돌렸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나? 지금쯤이라면 포로에 대한 신문은 끝났을 텐데?”
바르데 후작은 식은땀을 닦으며 말했다.
“그게…, 그들을 그린레이크 전하께서 데려가셨사옵니다.”
“뭣이?”
“드라쿤급 타이탄을 무려 세 대나 노획할 수 있었던 데다가, 그들을 세뇌한다면 전력적으로도 엄청난 이득이 있지 않겠사옵니까?”
“이런 제기랄, 벌써 세뇌 작업에 들어갔다면 어떻게 할 수가 없지 않나? 지오그네 경, 정신계 마법을 쓴 것을 다시 되돌릴 방법은 있나?”
미네르바의 물음에 지오그네는 난처하다는 듯 대답했다.
“일단 정신계 마법을 쓴 상태에서 다시 원상태로 되돌린다는 것은 불가능하옵니다. 정신세계란 것은 워낙 복잡한 것이기에 한번 엉클어져 버리면 인간의 힘으로 되돌릴 수는 없사옵니다.”
“인간의 힘으로 되돌릴 수 없다고? 그렇다면 드래곤이라면 어떻겠나?”
“물론 그쪽은 차원을 달리하는 정신 체계를 가진 존재이기에, 인간의 정신세계쯤은 쉽게 치료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좋아, 이블리스.”
“예, 전하.”
“마법사협의회에 연락을 넣어서 그들을 돌려 달라고 협조 공문을 보내라. 그들이 필요하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빨리 돌려 달라고 말이다.”
“예,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