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18권 3화 – 마교와 뒷거래를?

마교와 뒷거래를?

급히 소집된 무림맹의 장로들을 향해 매화문검(梅花雯劍) 옥진호(玉振湖) 장로가 엄숙하게 말했다.

“현천검제가 마교의 간세라는 정보가 입수되었소이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큰일이기에 여러분을 급히 소집한 것이오.”

밀실에 모여 있는 자들은 모두 현재 무림맹의 핵심을 이루는 장로들이었다. 옥진호 장로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장로들 중 한 명의 얼굴빛이 변하며 역정을 버럭 냈 다. 그는 바로 청호진인(淸湖眞人)이었다.

“매화문검 장로! 그게 무슨 말이오. 그런 중대한 사항을 맹주님께 아뢰지 않고 장로들끼리 상의하자고 하는 저의가 뭔지 우선 알고 싶소.”

그는 현 맹주인 태극검제가 무당에서 뽑아 온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이렇듯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었다. 만약 중요 사항들을 맹주에게 보고하지 않고 장로들끼리 처리한다면 맹주의 위치는 뭐가 되겠는가. 완전히 허수아비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옥진호 장로는 온화한 어조로 대응했다.

“아아, 청호 장로의 말씀이 백번 지당하지요. 하지만 청호 장로께서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소이다.”

그 말에 청호진인은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

“노부가 무엇을 간과하고 있다는 말씀이오?”

“만약 이것이 헛소문이라면, 그에 대한 책임을 청호 장로께서 지시겠소이까?”

“그, 그건…….?”

청호진인은 잠시 당황한 듯하더니 한숨을 푹 내쉬며 중얼거렸다.

“무량수불…, 매화문검 장로의 말이 옳은 듯하오. 아직 완전히 확인되지도 않은 민감한 사항을 무턱대고 맹주께 보고드릴 수는 없는 일이겠지요.” 옥진호 장로는 좌중을 쭉 둘러본 후 말을 이었다.

“노부는 이 일을 맹주께 보고드리는 것이 옳은 일인지 아닌지 상의해 보고자 여러분을 모신 것이오. 아직까지 이 사건이 진실인지 아닌지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 았소이다. 하지만 그 사건의 주체가 화산파의 장문인이라는 것이 가장 큰 문제요. 완벽한 물증도 없이 공개 석상에서 거론하기에는 너무나도 큰 거물이란 말입니다. 이 일을 조금이라도 잘못 처리하면 무림맹은 씻을 수 없는 타격을 받을 수도 있소.”

“그렇지만 어찌 조사를 한다는 말입니까, 매화문검 장로? 화산에다 첩자를 파견해서 조사하다가 그게 들통이라도 나는 날에는 무슨 소리를 들으려구요.”

수많은 말이 오갔지만 쓸 만한 의견은 없었다. 문파라는 배타적인 단체가 지니는 독특한 특성상 어느 날 갑자기 첩자를 투입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게다 가 조사할 대상이 화경의 고수가 아닌가. 그의 이목을 피해 가며 정보를 얻기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힘들 것이 분명했다.

이때 공수개(空手) 장로가 주저주저 하는 듯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말을 꺼냈다.

“이번에 본방에서 특급 기밀 정보가 도착했소이다. 하지만 이것을 어떻게 처리할까 오랜 시간 고민했었는데, 마침 화산 장문인의 일도 있고 하니 지금 밝히는 것 이 좋을 듯싶구려.”

“무슨 정보인데 그렇게까지 고심을 하셨습니까, 공장로?”

공수개는 긴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후우~, 옥화 봉공님의 문제요.”

그 한마디에 모두가 공수개 장로가 왜 그렇게 고심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현재 무림맹에서 옥화 봉공이 차지하고 있는 입김은 가히 엄청난 것이었다. 그리고 정 보력에서도 개방보다 무영문이 앞서니, 개방의 설 자리가 점점 더 줄어들고 있었다. 그런데 개방에서 옥화 봉공에 대해 뭐라고 한다면 다들 시기와 질투에 의해 모 함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그렇다 보니 개방 쪽에서는 더한층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공수개 장로는 말을 이었다.

“옥화 봉공께서 뭔가 마교와 뒷거래를 하고 계신 듯하오.”

그 말에 모두들 경악했다. 그도 그럴 것이 무영문은 정파 최고의 정보 단체였다. 게다가 무영문은 옥화무제가 봉공이 된 후 무림맹의 일에 매우 깊숙이 관여하고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그들이 배신한다면 무림맹이 얼마나 큰 타격을 받을지는 짐작조차 하기 힘들었다.

옥진호 장로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씀, 책임지실 수 있소이까?”

“죄송한 말이지만, 아직까지 확실한 물증을 잡지는 못했소이다. 하지만 얼마 전, 무영신마 사건 때 벌어진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보아 그분께서 마교와 뭔가 뒷거래를 했다는 것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소.”

그러면서 공수개 장로는 무영신마 사건 때 개방에서 파악한 모든 것을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옥진호의 눈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것을 기회로 옥화 봉공에게 복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옥진호는 이빨을 뿌드득

갈면서 중얼거렸다.

“놀라운 일이군요. 만약에 그 마두가 심기가 깊으신 옥화 봉공까지 끌어들였을 정도라면, 현천검제를 포섭하는 거야 일도 아니었겠지요.”

옥진호 장로로서는 가급적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만약 공수개 장로가 그녀의 배신에 대한 명확한 물증까지 지니고 있었다면 그의 입 에서 좀 더 심한 쌍소리가 튀어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심증만 있을 뿐 물증은 전무했다. 그렇다 보니 아직까지는 무림맹 봉공으로서 예우를 해 줘야만 하는 것이다. “으음, 그렇다고는 하나 아직까지 물증이 없지 않소? 확실한 물증이 잡힐 때까지는 모든 일을 조심스럽게 진행해야만 하오.”

“물론이외다. 무영문과 옥화 봉공님에 대해서는 공수개 장로께서 수고를 해 주셨으면 하오.”

“워낙 무영문이 뛰어난 단체이다 보니, 노부가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소이다. 하지만 개방 외에는 그쪽을 조사할 단체가 없으니…, 미력하나마 노력해 보겠소이 Ct.”

“그럼 공수개 장로만 믿겠소.”

옥진호는 공수개 장로를 치하한 후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건 그렇고, 화산 쪽은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좋겠소이까? 고견이 있으신 분은 기탄없이 말씀해주시오.”

이 회의가 하루 종일 진행된 것만 봐도 장로들이 현천검제의 처리에 얼마나 고심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저게 걸리고, 또 저렇게 하자니 이 게 걸리고…….

결국 그들은 맹주에게 이 사실을 밝히고, 그의 처분을 기다리자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어찌 되었거나 무림맹의 대가리는 맹주니까 말이다.

개방이 자신의 치부를 밝혀내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뒷조사를 시작했다는 사실을 꿈에서도 알 리 없었던 옥화무제는 지금 환희에 찬 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녀 는 자신의 손에 들린 보고서를 몇 번이나 읽고 또 읽었다. 이게 꿈이 아니었으면 하는 심정으로 말이다.

시간이 지나도 옥화무제로부터 아무런 말이 없자 보고서를 들고 온 총관은 찜찜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뭔가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라도 있나 하는 생각 에서다.

“워낙 지급으로 도착한 정보이기에 누락된 부분이 많습니다. 혹시 마음에 안 드시는 부분이 있으시다면, 좀 더 자세히 조사해서 올리라고 지시를 내리겠습니다.” 옥화무제는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보고서를 내려놓았다.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어차피 패배는 패배니까요.”

“작전상 후퇴하는 척하면서 금을 함정으로 몰아넣기 위한 술책일 수도 있습니다. 좀 더 정보를 취합하신 후에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물론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조차 없었다. 옥화무제의 명석한 머리는 벌써 전체적인 상황을 포착한 상태였다.

“이게 만약 처음 벌어진 전투라면 총관의 말이 맞겠죠. 하지만 지금 요 황제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상태고, 게다가 병력도 금에 비해 훨씬 많았어요. 그런 얄팍한 작전까지 쓸 이유가 없죠.”

옥화무제는 잠시 생각을 정리한 다음 명령했다.

“요에다 좀 더 많은 첩자를 파견하세요. 아마 조만간에 요 황제는 더 많은 병력을 파병할 게 분명해요.”

“어쩌면 금과 휴전할 가능성도 있지 않겠습니까?”

총관의 말에 옥화무제는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호호, 그럴 리는 없을 거예요. 아직 요는 이 전쟁에 주력 부대를 투입하지도 않았어요. 그런 상황에서 자존심만 구기고 휴전할 리 없잖아요. 주력 부대를 투입해서 완전히 끝장낼 궁리만 하겠죠.”

한참 동안 궁리를 하던 옥화무제는 힘 있게 말했다.

“기회는 단 한 번! 요가 금을 멸하기 위해 대규모 파병을 했을 때, 그 뒤를 치는 거예요.”

“태상문주님의 현묘한 계책대로라면 대승은 확실할 것입니다. 하지만 전쟁을 하는 것은 본문이 아니라 송의 어림군입니다. 어림군의 장군들이 과연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옥화무제로서도 그것이 가장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었다. 총관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본문에서 이미 조사를 끝마쳤듯요에서도 본국에 많은 첩자를 파견해 놨습니다. 그들의 눈을 피해가며 전쟁 준비를 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리고 적절한 순간을 노려 한 번에 대규모로 병력을 투입해 파죽지세로 요를 몰아쳐야 합니다. 과연 그런 탁월한 지휘 능력이 작금의 어림군 장수들에게 있을지 의심스럽 습니다. 물론, 태상문주님께서 직접 군을 지휘하실 수 있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형편은 그렇지가 않습니까? 동관을 통해 채 재상에게 지시를 내리고, 채 재상은 추밀원에 지시를 내리고, 또 추밀원에서는 정군관에, 정군관은 각 장수에게 지시를 내리는 이런 방법으로는 결코 군을 효과적으로 움직일 수가 없을 겁니다.”

잠시 어두운 안색으로 말을 듣던 옥화무제는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총관의 말이 맞는 것 같군요. 그건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이번 기회를 놓칠 수는 없어요. 다음 기회는 언제 올지 알 수 없으니 말이에요. 좋 아요. 아무래도 군부의 수장과 의논을 해 봐야겠네요. 동관에게 지시를 넣으세요. 임청 원수와 독대를 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보라고 말이에요. 실질적으로 군을 움직이는 정군관만 장악할 수 있다면 이번 전쟁은 반드시 승리할 수 있을 거예요.”

총관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옛, 곧 동관에게 태상문주님의 명을 전하겠습니다.”

“요에 있는 첩자의 수를 늘리세요. 요의 주력 부대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세밀하게 관찰해야만 해요. 요가 금을 짓밟는다고 정신이 없을 때, 그때가 요를 침략할 절 호의 기회가 될 테니까요.”

“옛, 명대로 따르겠습니다.”

총관이 나간 후 옥화무제는 흥분된 마음으로 다시 한 번 보고서를 읽었다. 이제 열 받은 요 황제가 대군을 동원하여 금을 치는 것을 기다리는 일만 남은 것이다. 그 때를 잘 노려서 요를 치면 연운16주의 탈환은 물론이고, 운만 잘 따라준다면 요를 멸망시킬 수도 있으리라. 그리고 요를 없애 버린다면 그녀의 권력 기반은 더욱 튼 튼해지는 것이다.

옥화무제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이때를 얼마나 기다려 왔던가…….”

그녀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 탄성을 질렀다.

“맞아, 황금빛 찬란한 봉황이 나타났다는 보고가 올라왔었지. 설마 했었는데, 역시 상서로운 징조였던 모양이야. 그러고 보면 하늘도 본문을 돕는 모양이야. 오호 호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