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19권 1화 – 이이제이(以夷制夷)

이이제이(以夷制夷)

무림맹주와 무림사에 길이길이 남을 협정을 맺은 묵향은, 협정을 마친 무림맹주 일행이 멀어져 가는 것을 보며 투덜거렸다.

“젠장, 그 빌어먹을 장인걸 때문에 내가 저런 쓰레기들과 손까지 잡아야 하다니…….”

곁에 서 있던 군사 설민은 묵향의 눈치를 살피며 은근슬쩍 입을 열었다.

“어쩔 수가 없지 않습니까. 제아무리 본교의 힘이 강하다고는 하지만 거대한 제국을 상대로 혼자 싸울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 말에 묵향의 안색이 더 일그러지자 설민은 재빨리 머리를 굴려 다급히 말을 이었다.

“교주님께서 이번 협정에 대해 너무 마음 상해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금과의 전쟁 대부분은 정의를 부르짖는 저놈들에게 은근슬쩍 떠넘기고, 본교는 배신자 장 인걸을 잡는 데 전력을 다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설민의 그 말은 마음에 들었는지 묵향은 말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묵향은 발길을 돌려 수하들과 함께 감숙성 분타로 이동했다. 감숙성 분타는 오래전에 철영 부교주가 몰래 건설해 놓은 곳이었기에, 현재 무림 각지에 건설되고 있 는 타 분타들과는 달리 철통같은 방어진을 이미 갖춰 놓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관지 장로가 흑풍대를 거느리고 비밀리에 이동하여 대기 중이었다.

감숙 분타에 도착한 묵향은 관지 장로를 은밀히 불렀다.

“관지 장로.”

“예, 교주님.”

“그대는 흑풍대를 이끌고 무한에서 양양성으로 이어지는 방어선을 지키도록 하게.”

묵향의 말이 떨어지자 관지 장로의 몸이 끓어오르는 격동에 부르르 떨렸다. 완전무장을 갖춘 흑풍대를 이끌고 감숙 분타에 대기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관지는 이미 이런 명령이 떨어질 것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만 하고 있는 것과 그것이 명령이 되어 자신에게 하달되었을 때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렇기에 묵향의 명령은 짧았지만 그의 가슴은 주군에 대한 감동과 다시금 대 송제국을 위해 한 몸 바쳐 싸울 수 있다는 충성심에 불타올랐던 것이다.

“옛, 목숨을 걸고 명령을 완수하겠나이다.”

“아, 목숨을 걸 필요까지는 없네. 자네는 본교에 아주 소중한 인재니까 말일세. 자네는 한 가지만 주의해 주면 돼. 본교가 개입했음을 장인걸이 눈치 채지 못하게 하는 것, 알겠나?”

“옛, 교주님의 말씀 명심하도록 하겠습니다.”

“자네만 믿겠네. 어찌 되었건 한시가 급하니 지금 바로 떠나는 것이 좋을 게야.”

“존명!”

관지가 서둘러 흑풍대가 대기하고 있는 막사를 향해 달려가는 뒷모습을 보며 묵향은 미소를 지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마교에 몸담고 있기는 했지만, 그는 황실 에 대한 충성심과 대송의 앞날을 걱정하는 진정한 장수였다.

“관지가 갔으니 아마도 장인걸이 직접 나서지 않는 한 방어선이 무너질 일은 없겠지.”

묵향은 혼잣말로 중얼거린 후, 뒤돌아서서 설민 군사에게 말했다.

“자, 이제부터 금을 박살 낼 계책이나 의논해 보기로 할까?”

그러자 설민은 약간 난감한 기색으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상대는 문파가 아니라 불붙듯 강렬한 기세로 일어서고 있는 거대한 제국입니다, 교주님. 아무리 무림맹과 연합했다고는 하나 쉬운 상대가 아니지 않겠습니까? 거 기에다가 더욱 안 좋은 것은 송 황실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설민의 자신 없어 하는 말투에 묵향의 인상이 팍 일그러졌다.

“이런 망할! 자네는 머리는 좋은데 왜 그렇게 소심한가! 쯧쯧, 설무지는 안 그랬는데, 어찌 그 핏줄에서 저 모양인지 모르겠군. 잘 들어! 문파나 국가나 다 똑같은 거야. 그놈들을 거대 문파, 그러니까 무림맹이 조금 더 커졌다고 생각하고 기탄없이 말해 보란 말이야!”

묵향의 질책에 설민은 얼굴을 붉히며 슬쩍 고개를 숙였다. 하필이면 아버지와 비교해서 말하다니…….

사실 지략으로만 따진다면 자기 아버지를 능가한다고 자부하는 설민이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그의 아버지와 그가 처한 환경이 달랐다는 점이다.

설무지는 묵향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자신의 계책을 원 없이 펼쳐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에 비해 설민은 어떠했나? 교주는 행방불명이 된 상태였고, 고집불통의 늙은 아버지와 용과 범같이 무섭기 짝이 없는 말 안 듣는 부교주들 사이에 끼어

수많은 눈치를 봐야만 했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가 군사의 자리에 올랐을 때 두 부교주 간의 힘의 균형을 맞추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해야 했다. 만약 거기에 실패했다면 마교는 곧장 내전으로 치달았을 테니 말이다.

대국적 견지에서 마교의 중흥을 꾀하는 것도 좋다. 설민도 그걸 알고는 있었지만, 실행할 여유조차 없었다. 금방이라도 터질 듯 아슬아슬하기 그지없는 마교의 상 황을 유지해 나가는 것만으로도 그에게는 너무나도 벅찬 일이었던 것이다.

그것이 오랜 세월 지속되다 보니 자연 설민은 윗사람의 눈치를 보는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의 성격이 그렇다고 해도, 그도 자존심이 있는 사람이 었다. 묵향의 말에 울컥하지 않는다면 그는 사람이 아닐 것이다.

설민은 마음을 굳게 먹고 묵향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마음과는 달리 처음에는 제법 컸던 목소리가 말이 이어질수록 조금씩 작아지고 있었다. “병법에 이르기를 적의 기세가 강할 때는 피하라고 했습니다. 정면에서 승부하는 것보다는 그들을 피로하게 하여 자신들이 지닌 바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선결 과제일 것입니다.”

묵향은 짜증스럽다는 표정으로 소리쳤다.

“그래서 뭘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이야! 그 방법을 말해 보란 말이야!”

묵향의 노성에 찔끔한 설민은 아까보다 더욱 작아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속하의 생각으로는 이이제이(以夷制夷)의 병법을 쓰는 것이 어떨까 하는데…….”

“뭐! 이이제이?”

아무래도 묵향의 표정을 보아하니 자신의 생각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듯하자 설민은 고개를 팍 숙이고 정신없이 중얼거렸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왜 묵향의 말에 자신이 울컥했는지 가슴을 치고 싶은 설민이었다.

“예, 그러니까 이쪽에서 금을 치기 전에 먼저 이민족들의 힘을 빌리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금은 이민족도 상대해야 하고, 이쪽도 상대해야 하고…….? “그렇지. 바로 그거야! 홍진 장로.”

설민의 생각과는 달리 묵향은 이이제이의 계책이 마음에 들었는지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마교의 정보를 총괄하고 있는 비마대 대주인 홍진 장로를 불 렀다.

“예, 교주님.”

“금을 칠 만한 세력이 있는가? 참, 그러고 보니 요의 잔존 세력들이 아직 남아 있다고 들었는데 그들의 세력은 어떤가?”

묵향의 질문에 홍진 장로는 자신이 아는 대로 대답했다.

“그들을 이용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아직 남아 있기는 하나 현재 잔존하고 있는 요의 세력은 조만간에 붕괴될 것이 확실합니다. 뛰어난 인재가 있어 구심점 역 할만 제대로 해 준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도 있겠습니다만……. 현 상황에서 인재를 키울 여유도 없지 않겠습니까?”

“흠, 그렇다면 요의 잔존 세력은 도무지 도움이 안 된다 그거로군. 그렇다면 고려는 어떤가?”

고려라는 말에 홍진 장로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단호하게 말했다.

“고려의 군사력이 강하다고는 하지만 그들이 나설 이유가 없습니다. 괜히 금과 전쟁을 해 봐야 잃는 것은 많아도 얻을 것은 하나도 없으니 말입니다.” 자신의 계책을 묵향이 받아들인 듯하자 설민은 자신감을 얻었는지 슬쩍 입을 열었다.

“교주님,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고려는 불가능하겠지만, 몽고족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않겠습니까? 교주님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그들은 척박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자들입니다. 이쪽에서 뭔가 그럴듯한 대가만 약속해 준다면 전쟁쯤이야 불사하지 않겠습니까?”

설민의 말에 묵향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중얼거렸다.

“대 송제국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은 지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흐르지도 않았지 않은가? 더군다나 몽고를 일통할 만한 실력자도 없다고 들었는데…….”

오래전 찬황흑풍단에 소속되어 자신의 손으로 몽고를 휩쓸었던 묵향이었기에 설민의 의견에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홍진 장로 또한 설민의 의견에 찬동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흠, 설민 군사. 내가 받은 정보로는 몽고 쪽도 힘들 것 같소. 누군가가 몽고를 일통할 만큼 큰 세력을 지닌 것도 아니고, 군소부족들은 각자 족장의 뜻에 따라 자신 들의 이익에 따라 이전투구(泥田鬪狗)를 벌이고 있는 실정이오. 특히 몽고의 동남쪽에 위치한 족장들은 상당수 금 쪽에 붙기 시작하고 있다고 들었소. 그들로서는 금과 연합하여 요의 잔당들을 치는 쪽이 매우 실속 있는 선택이라고 생각할 테니 말이오.”

그 말에 자신 있게 앞으로 나섰던 설민의 고개가 팍 수그려졌다.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묵향이 홍진 장로에게 물었다.

“금에 가장 협력적인 부족은 어딘가?”

“몽고에서도 흉폭하기로 손가락에 꼽힌다는 타타르 부족입니다.”

묵향은 빈정거리듯 말했다.

“호오, 흉폭하기 그지없다고? 그렇다면 원수질 일 또한 적지 않았겠군. 그 주위에 있는 족장들 중에서 타타르족이라면 이를 가는 족장들이 당연히 있을 거야. 안 그런가?”

“물론 그런 부족도 있습니다. 테무진이라는 젊은 부족장이 타타르족 사람들을 가장 증오한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그가 지닌 세력은 너무 보잘 것이 없어…….” 

홍진 장로는 대수롭지 않은 듯 대답했지만, 묵향의 생각은 달랐다. 묵향은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내며 질문을 던졌다.

“그래? 왜 그렇게 증오한다고 하던가?”

“그의 아버지를 독살했다고 하더군요.”

그 말에 묵향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흠, 과연 증오할 만도 하군. 그래, 그가 몇 살 때 아버지를 잃었지?”

왜 그런 것을 교주가 궁금해하는지 의아해하면서도 홍진 장로는 성실하게 대답했다. 사실 묵향이 행방불명된 후, 비마대는 그를 찾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투자했 다. 심지어 개방이나 무영문 쪽의 정보까지도 슬그머니 사들였을 정도였으니 더 이상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그랬기에 홍진 장로가 몽고의 상황을 자세히 파악 하고 있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언젠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가 어렸을 때라는 것은 확실한 모양입니다.”

“좋아, 바로 그 녀석으로 하자. 몽고는 그야말로 치열한 약육강식의 세계야. 아무리 뛰어난 족장이었다고 해도, 그가 죽은 후 그의 부족이 유지되었을 리가 없지. 모두 뿔뿔이 흩어지는 게 정상이니까 말이야. 그런 와중에 젊은 나이에 자신의 힘으로 그 정도까지 세력을 키운 것을 보면 보통 놈은 아니야. 조금만 도와주면 타타 르를 박살 내 버릴 거야.”

묵향이 테무진을 선택한 데는 과거 몽고 원정 때의 경험이 큰 영향을 미쳤다. 과거 철진천이라는 거목을 뒤에서 기습해서 척살하자마자 그를 따르던 몽고 부족들 은 순식간에 흩어져 버렸지 않았던가. 그들에게 있어서 이미 죽은 자에 대한 의리 따위는 눈곱만큼도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 로 몽고의 대지는 척박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흉폭하기 그지없다는 타타르 부족이 그 아버지를 죽이고 후환이 될지도 모르는 그의 핏줄을 살려 둘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약 간의 세력까지 유지하고 있다면 테무진이라는 부족장의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묵향은 홍진 장로가 던진 말 몇 마디에 테무 진이 충분한 이용 가치가 있다고 확신했던 것이다.

금에 협조적인 부족을 없애려면 어차피 누군가를 하나 택해서 키워 줘야 했다. 그래서 타타르 부족을 가장 증오하는 자를 물어본 것이었는데, 그 부족장이 능력까 지 겸비하고 있다니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묵향이 고개를 주억거리자 설민과 홍진 장로는 의아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그들로서는 교주가 왜 세력도 미미한 테무진이라는 부족장을 선택했는지 이해할 수 가 없었던 것이다.

묵향은 자신의 생각대로 테무진이 타타르를 박살 냈을 때를 가정해 봤다.

“아마 그때쯤이면 장인걸이 요를 끝장내 버렸을 거야. 요가 없어지면 몽고와 금은 국경을 마주하게 되지. 그때, 테무진을 충동질해서 금을 괴롭히게 만든다 면.

생각을 정리한 묵향은 곧장 고개를 설민 쪽으로 돌리며 지시했다.

“홍진 장로가 말한 그 테무진이라는 족장을 우리 쪽으로 끌어들여라. 물론 타타르 부족을 상대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 주겠다며 말이야.”

설민은 묵향의 명령이 납득되지는 않았지만 하늘같은 교주의 명령에 감히 토를 달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대답했다.

“옛, 교주님.”

묵향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장인걸, 그 광활하기 그지없는 대지를 모두 다 지키려면 쉬운 일이 아닐 거다. 흐흐흐.”

혼자 좋아하고 있는 묵향을 향해 홍진 장로가 난처하다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교주님,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물론 테무진이 이이제이 병법의 적임자일 수도 있지만, 그의 세력은 너무나도 보잘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세력이 큰 케레이트족의 수장 옹칸을 끌어들이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그는 남부 몽고에서 가장 강대한 세력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랜 세월 송과 교역을 해 왔기에 협상의 묘미를 잘 알고 있는 족장입니다. 그렇기에…….”

묵향은 더 이상 들을 것 없다는 듯 확정적으로 말했다.

“본좌는 테무진이 적격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홍진은 필사적으로 간언했다. 사실 그가 생각했을 때, 교주의 계획은 너무나도 실현 가능성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를 끌어들여 봤자 본교의 지원이 없다면 그다지 쓸모가 없지 않겠습니까? 어느 정도 타타르와 대항할 수 있는 세력을 만들려면 무사나 물자를 지원해 줘야 할 텐데, 그렇다고 본교의 무사를 보내 줄 수도 없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그가 있는 곳은 몽고의 동북부입니다. 물자를 지원하는 것도 결코 녹록한 일이 아닙 니다, 교주님.”

홍진 장로는 동의를 구하려는 듯 설민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설민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얼른 고개를 돌려 홍진 장로의 시선을 외면했다. 그 모습에 홍진 장로는 내심 설민에게 이를 갈며 말을 이었다.

“테무진을 어느 정도의 세력까지 키워 주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막대한 양의 물자를 지원해 줘야 하는데 그 물자를 어떻게 전달한단 말입니까? 드넓은 몽고 벌판을 가로질러야 합니다. 충분한 호위를 붙여야 할 텐데, 언제 장인걸과 전면전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렇게 많은 고수들을 뺄 수 있겠습니까? 잘해 봐야 자성만 마대가 한계일 겁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정도 세력이 이동한다면 장인걸이 눈치 챌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장인걸 또한 사방에 첩자들을 깔아 놨을 테니 말입니다.”

홍진 장로의 말이 꽤 그럴듯하자 딴청을 피우던 설민이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홍진 장로의 의견도 일리가 있습니다. 물자를 호위하기 위해 많은 무사들을 움직인다면 무영문이 눈치 챌 게 불 보듯 뻔합니다. 무림맹과 협약을 맺은 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우리가 아무 해명 없이 그 정도 세력을 움직인다면 괜한 의심만 살 수도 있습니다.”

설민의 말에 묵향도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곧 무슨 생각을 했는지 설민을 향해 단호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본좌가 직접 이 일을 처리하겠다. 무림맹과 장인걸의 눈을 피하기 위해 최소한의 병력으로 움직일 것이니 군사는 장영길 장로에게 통보해서 자성만마대 대원들 중에서 5백 명만 차출해 두라고 일러라.”

“교, 교주님. 그 정도 일로 교주님께서 직접 가신다는 것은…….”

“왜, 본좌가 가면 어때서? 본좌가 못 미덥다는 말이냐?”

홍진 장로는 당황한 듯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저, 절대로 그런 뜻은 아닙니다, 교주님. 교주님께서 가신다면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지금 교주님께서 자리를 비우신다는 것이…….”

묵향은 손을 쓱 쳐들며 홍진 장로의 말을 막았다.

“그건 걱정할 필요가 없다. 몽고에서의 일을 끝낸 후, 곧바로 남하할 테니 남은 일은 너희들이 잘 처리해 주리라 믿는다. 만약 돌아왔을 때, 일처리가 시원치 않았 을 때는……..”

그러면서 묵향은 설민과 홍진 장로를 힐끗 노려봤다. 그러자 그 둘은 찔끔하며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기대에 부응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교주님.”

사실 묵향이 지금 자리를 비울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막강한 마교의 힘을 믿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