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19권 8화 – 무림 연합과 대 금제국군의 충돌

무림 연합과 대 금제국군의 충돌

두려움에 떨던 금군의 모습은 하루의 충분한 휴식과 새로운 방어 도구의 장만으로 용기백배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들의 눈에는 더 이상 두려움이 어려 있지 않 았다. 적군의 화살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새로운 방어 도구가 즉석에서 제작되어 지급된 것이다. 방패 두 장을 하나로 묶은 것이었는데, 적의 화살에 노출되는 병 사들만 지니면 되는 것이기에 서로 교대해 가며 들고 가면 되니 방패가 2배로 무거워졌다고 하지만 문제될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장수들의 설명을 듣 고 자신들과 싸우는 적의 규모를 알게 되었다. 겨우 1만 남짓한 기마병들이라니……. 17만 군세를 자랑하는 그들에게 그 수는 정말이지 가소로운 것이었다.

제아무리 적의 기마대가 신출귀몰한다 해도 무한만 점령하면 일은 끝나는 것이다. 무한이 주 전장이 된다면 그들은 그곳을 수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마대의 기동력이 보병들에 비해 월등히 뛰어난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도 충분한 활동 영역을 보유하고 있을 때의 얘기다. 어느 한 장소에 얽매이게 된다면 그들을 전멸시키 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봐야 했다.

또다시 금군을 공격하기 위해 접근하던 도중, 관지는 적병들의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봤다.

“일이 조금 어렵게 되었군.”

그 말에 제3천인대장 정삼(鄭三)이 의아한 듯 질문을 던졌다. 그는 오랜 세월 관지를 모시고 있었기에 상관이 이런 식으로 넋두리를 하는 것을 본 일이 없었기 때 문이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대장.”

관지는 금군을 손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오늘쯤이면 풀 죽은 강아지 꼴을 하고 비실비실 움직여야 정상이 아닌가? 그런데, 어찌 저놈들이 저렇게도 위풍당당하게 행군하고 있느냐 말이다. 아마도 이쪽의 세력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획득한 모양이야.”

그 말에 정삼은 고개를 숙이며 사죄했다.

“죄송합니다, 대장. 놈들의 척후병들을 보이는 족족 사살하라고 명령하고 꽤 많은 인원들을 풀어놨었는데, 그들만으로는 부족했었던 모양입니다. 제 불찰입니다.” “이미 지난 일이니 괘념치 말라.”

“이제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정삼의 의문에 관지는 간단명료하게 대꾸했다.

“뭘 어떻게 하겠나?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자, 가자!”

관지의 전투 방식은 어제와 바뀐 것이 하나도 없었다. 최대한 적들로부터 떨어진 거리까지 접근해서 화살을 퍼붓는 것이었다. 일단 관지는 말을 타고 병사들을 지 휘하는 금군 장수들을 찾았다. 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말을 중군(中軍)에 맡기고 걸어서 부하들과 함께 행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장수들이 보이지 않으니 목표는 선두에 선 병사가 될 수밖에 없다. 그의 화살이 파공성을 흘리며 날아가자, 처음 두 명까지 화살에 맞아 쓰러졌지만 그 뒤는 쉽지 않았다. 각자 방패를 꺼내어 앞을 가린 것이다.

퍽!

관지가 쏜 화살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방패에 꽂혔다. 두 겹을 덧대 놓은 것이었기에 뚫지 못한 것이다.

“제법이군. 조금 더 다가간다.”

관지의 명령에 기마대는 서서히 거리를 좁히며 화살을 쏟아 붓기 시작했다. 1백 장이었던 서로 간의 거리가 차츰 80장, 60장으로 좁혀졌다. 물론 그렇다고 금군 궁수들의 사거리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후퇴!”

“후퇴하라!”

더 이상 적의 전위 부대를 상대로 이 방법이 효과가 없음을 깨닫고 관지는 후퇴 명령을 내렸다. 물론 아예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적군의 규모는 무려 17만이나 된 다. 수십 리에 걸쳐 금군이 행군하고 있는 것이다. 제일 앞에서 걸어가는 적들이야 대비가 되어 있을지 모르지만 중군이나 후위는 얘기가 다를지도 모른다. 그렇기 에 그날 흑풍대는 적들의 이곳저곳으로 이동하며 화살을 무진장 쏴 댔다. 하지만 금군은 소수의 적 기마대와 드잡이질을 벌이는 대신 무한 침공을 우선시하는 듯 최 대한 방어에 힘쓰며 꾸준히 전진하고 있었다.

“이렇게 가면 힘들어지겠어.”

지도를 보며 관지가 중얼거리는데, 제3천인대장 정삼이 들어오며 보고했다.

“화살 보급이 끝났습니다. 또다시 출동하실 겁니까?”

“아니, 오늘은 그만 한다. 이런 식으로 화살을 마구 소모한다면 총타에서 많은 화살을 가져왔다고 하나 곧이어 바닥이 드러날 것이 분명하다. 더 이상 화살을 헛되 이 소모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그렇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관지와 마화 그리고 아홉 명의 천인대장들이 모여 차후의 작전에 대해 토의하기 시작했다. 한참 작전 토의를 하고 있을 때, 밖에서 10인대장 한 명이 들어왔다. 그 는 군례를 올린 후 보고했다.

“무한 방향에서 3만여 무리가 이쪽으로 이동해 오고 있습니다. 행색으로 봤을 때 병사들은 아닌 듯하고 무림인들이 아닌가 추측됩니다.”

그 보고에 관지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합류 지점에서 기다리다가 지쳐서 이리로 올라온 모양이군. 좋아. 기왕에 여기까지 왔으니 만나 봐야겠지.”

관지는 마화를 향해 명령했다.

“나는 그들을 만나러 가겠다. 귀관은 수하들을 인솔하여 작전지역으로 이동하도록.”

“존명!”

수라도제는 경비무사의 안내를 받아 막사로 들어온 사내를 찬찬히 바라봤다. 다부진 턱선과 시원하게 솟은 콧날. 그러면서도 어떤 일이라도 헤쳐 나갈 수 있 다는 강인한 정신력을 담은 강렬한 안광(眼光)을 내뿜는 두 눈. 그야말로 패기(覇氣)가 넘치는 뛰어난 무사임이 분명했다.

‘허, 이런 인재가 마교에 있었을 줄이야……..

감탄스러운 시선으로 새삼 다시 한 번 더 상대를 바라보는 수라도제였다. 상대가 머리 위에서 발끝까지 시커먼 갑주로 감싸고 있다 보니, 문득 과거 변방의 오랑캐 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찬황흑풍단이 생각났다. 검은색 갑주를 입은 단체는 지금까지 그것 말고는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생각은 그렇게 했지만, 수라도제 는 설마하니 상대가 찬황흑풍단과의 연관성이 있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원래 마교도들이 검은색을 좋아했기에, 그저 그러려니 했을 뿐이다.

흑색 갑주를 입은 무장은 눈매를 날카롭게 빛내며 입을 열었다.

“노부는 흑풍대를 맡고 있는 관지라고 하오. 여러 무림의 명숙들을 뵙게 되어 영광이라 생각하오.”

자성만마대를 제외한 마교의 상급 단체들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다. 더군다나 흑풍대의 경우 마교의 내전에만 출동했을 뿐, 정식으로 무림에 모습을 드러낸 적 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기에 좌중에 앉아 있는 인물들 중에서 흑풍대라는 단체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안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의 소개를 통해 한 가 지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상대는 바로 마교의 아홉 장로들 중의 한 명이었고, 마교와 무림맹이 연합하는 한 그만큼의 대우를 해 줘야 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말이 다.

“만나서 반갑소이다, 관지 장로. 노부는 서문세가의 수라도제라고 하오.”

자신의 소개를 한 수라도제는 좌중에 앉아 있는 각 문파들을 대표하는 인물들을 관지에게 소개했다. 그런 다음 관지에게 말했다.

“귀 단독으로 이곳에서 금군을 상대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니 참으로 놀랍소이다. 그건 그렇고, 노부들이 이곳으로 온 이유는 귀교에서 우리들과 연합하여 작 전을 수행할 의지가 있는지 알아 보려는 것이었소. 지금까지의 행동으로 봤을 때, 귀교는 우리들과의 연합 작전을 망설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오.” 그 말에 관지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여러분들을 못 믿어서 그렇게 행동한 것은 아니었소이다. 저들의 수는 엄청나고, 이쪽의 수는 양쪽이 연합한다고 해도 매우 적다고 볼 수 있소. 그렇기에 이왕이 면 본격적인 회전이 시작되기에 앞서 저들의 강성한 기운을 누르고, 사기를 떨어뜨릴 필요가 있었소이다. 아마 나중에 귀하들이 기다리고 있는 지점까지 진출한 금 군은 오랜 싸움에 지쳐 피폐한 몰골로 나타났을 거요. 그때, 연합하여 금군을 일거에 소탕할 생각이었소.”

“그렇소이까? 그런 줄도 모르고 달려온 노부들의 생각이 얕았는가 보오.”

수라도제의 말에 관지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기왕에 여기까지 오셨으니 좀 도와주셔야겠소이다. 이곳에 지도가 있소이까?”

곧이어 커다란 지도가 간이 탁자 위에 깔렸다. 관지는 지도의 이곳저곳을 손으로 짚으며 금군을 상대할 작전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라도제는 그런 관지 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몇 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 관지라는 마교의 장로는 마공을 연성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패도적인 마기가 뿜어져 나오지 않는 것이다. 아마도 마공 대신에 뭔가 다른 무공을 익힌 모양이 다. 그런데, 마공을 익히지 않은 자가 마교의 장로가 될 수 있을까?

둘째, 지도를 보며 그가 설명하고 있는 작전이다. 관지 장로의 행동 하나하나를 보면 그가 이런 일에 매우 능숙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만들었다. 그런 그를 보 며 수라도제는 그가 마교도가 아니라 군대의 장군이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그렇다면 마교는 왜 저런 전략과 전술에 능통한 장수 같은 인물을 키웠을까?

셋째, 저자는 강철로 만든 갑주를 입고 있었다. 보통 무림인들이라면 웬만해서는 입지 않는 갑주를 말이다. 그 상태에서도 자연스러운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 갑주 를 그가 평상시에도 자주 입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으로 미루어 봤을 때, 저자의 수하들도 갑주를 입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신검합일의 경지에 오른 강력 한 고수가 저토록 두터운 중갑주를 입을 정도인데, 그 부하들은 말할 필요도 없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마교는 왜 저런 단체를 키워 냈을까? 처음부터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예측이라도 했다는 말인가?

지금 현재의 정보들만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수라도제는 나중에 무영문 쪽에다가 통지를 해서 알아 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만약 마교 가 무림일통을 하기 위해 흑풍대를 키운 것이라면, 무림맹 쪽에서도 그런 중갑주로 무장한 단체가 하나 필요할 테니 말이다.

어찌 되었건 수라도제는 이것 하나만은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지금까지 너무나도 마교라는 곳을 잘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저런 수하들을 키워 내고, 또 그들의 충성을 받을 정도의 인물이라면 마교 교주는 상상 이상의 거목일 것이 분명했다.

‘허어, 마교 교주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다는 말인가? 저런 엄청난 세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의도는 또 뭐란 말인가??

시간이 흐를수록 수라도제는 관지에게 점점 빠져 들었다. 처음에는 단지 마공을 익히지 않은 자가 장로라는 사실에 놀랐지만 관지 장로의 설명이 계속되는 동안

적의 허를 찌르는 그의 치밀한 전략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수라도제는 어느 순간 관지 장로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금군 20만을 상대로 지금까지 싸워 왔다는 것이 수긍이 되었다. 아마도 자신들이 도우러 오지 않았다면 그 들만으로 20만을 끝장냈을 것이다. 만약 그렇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아까 전에 관지 장로가 말했던 것처럼 약속 지점까지 밀고 내려온 금군은 만신창이가 된 상태일 게 뻔했다.

“허어, 참으로 탐이 나는 인재로고. 이런 자가 어찌 흉악한 마교 무리에 섞여 있단 말인가. 참으로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구나.”

수라도제는 관지를 바라보며 군침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전략과 전술에 뛰어난 인재가 자신의 밑에 있다면 서문세가는 9파1방을 앞서가는 최강의 문파 가 될 것이 아닌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금군은 서서히 진격하여 평원 지대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최대한 빨리 무한을 점령하려 했었지만, 송군이 계속 괴롭혀 대기에 어쩔 수 없이 진격 속도가 느려진 것이다. 평원에 도착하여 드넓은 대지에 자라고 있는 곡식들을 보자, 금군 병사들의 마음도 한결 안정되었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휴대 식량이 다 떨어진다고 하 더라도 최소한 굶지는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금군이 평원 안으로 한참 진격하고 있을 때, 또다시 예의 그 시커먼 갑주를 입은 기마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사가 시작되다 보니, 금군 병사들 도 처음과는 달리 노련하게 그에 대처하기 시작했다.

여러번 충돌해 본 결과 적 기마대가 보유하고 있는 활의 사거리를 파악할 수 있었고, 또 그들의 수가 매우 적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날 가해진 공격은 다른 날과는 조금 달랐다. 불화살을 날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폭넓게 산개해서 쏘아 대기 시작한 불화살들은 크게 원을 그리며 여기저 기에 떨어져 내렸다. 그런데, 이때 괴변이 일어났다. 아무리 계절이 가을이라 초목들이 말라간다고 하지만 저렇듯 활활 타오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뭔가 손이라 도 써 놓았던 듯 불화살이 떨어지자마자 순식간에 불길이 확 퍼져 오르며 사방으로 번져 가자 금군 병사들의 눈에는 짙은 두려움이 깔리기 시작했다.

“제법 하는군.”

사방에 불길이 치솟고, 그에 따라 금군들이 이리저리 우왕좌왕 움직이는 것을 보며 수라도제는 감탄스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지금 돌격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사돈.”

“허허, 사돈. 조금만 더 기다리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종리영우의 말에 대답해 준 수라도제는 전장을 주의 깊게 살폈다. 적들의 주위에 놓아둔 인화 물질들이 활활 타오르며 짙은 연기를 뿜어낼 때, 바로 그때가 돌격해 들어갈 적기였다.

관지 장로의 작전에 따르면, 적은 이쪽의 군세를 기마병 1만으로 알고 있는 점을 최대한 이용하자는 것이다. 적은 아직까지 무림맹의 세력이 가세했음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최대한 이용하는 것이 이번 작전의 성공의 열쇠였다. 그리고 관지 장로의 작전은 집단전에 대한 경험이라고는 거의 없는 무림맹 고수들에게 매 우 적합한 것이었다.

무림맹에서 끌어 모은 각 문파들의 무사들은 지금까지 협동해서 격전을 벌여 본 적이 없는 인물들이다. 개개인의 무공은 엄청나게 강할지 몰라도, 상대가 조직적 으로 대항해 온다면 큰 피해를 당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난전으로 이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뒤죽박죽 얽힌 상태에서 작전이고 나발이고 무슨 필요가 있겠는 가. 개개인의 무력이 강한 쪽이 승자가 되는 것이다.

사방에서 치솟는 불길에 당황해하는 금군 병사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수라도제는 이윽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뒤를 돌아보고는 큰 소리로 외쳤다.

“돌격!”

수라도제가 앞에서 엄청난 경공술을 발휘하여 달려 나갔다. 그리고 수많은 문파에서 내로라하는 고수들이 앞 다투어 그 뒤를 좇아 달려갔다. 순식간에 벌판은 아 수라장이 되었다.

사방에서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오고, 단말마의 비명 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렇듯 뒤엉켜서 싸운다면 무술실력이 형편없이 떨어지는 금군 병졸들 이 압도적으로 불리할 것은 당연한 사실이 아닌가. 그런 와중에 멀찍이 떨어져서 적을 교란하고 있던 흑풍대가 들이닥쳤다. 그 순간 전장은 더욱 혼전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이제는 작전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었다. 눈앞에 보이는 적들을 베고 또 베는 것만이 살길이었다. 각각의 승리가 합쳐서서 한 지역의 적을 제압하고 나면, 그들은 또 다른 곳으로 달려간다. 이런 식으로 사방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혼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 와중에 눈에 띄는 인물들이 몇 있었다. 수십, 어쩌면 수백 명의 금군을 죽여 없앤 인물들이다. 서문세가의 태상가주 수라도제라든지 종리세가의 가주 종리영우, 제갈세가의 가주 제갈기 그리고 그 외에 많은 수의 무림명숙들이다.

그들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쌓아놓고 있었던 이름값을 하려는 듯 가장 위험한 전장에 뛰어들어 무자비한 살육을 감행하고 있었다. 특히나 그들 중에서 가장 이름 있는 수라도제의 경우 언제나 그에게 따라붙는 ‘화경의 고수’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금군 병사들이나 장수들을 그야말로 「학살하고 있는 중이었다.

“크아아악!”

매케한 연기가 가득 차 있는 전장에서 비명성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수라도제가 던진 거대한 도가 크게 한 바퀴 돌며 수십 명에 달하는 금군 병사들의 허리를 토 막 내고 지나간 후 수라도제의 손에 돌아갔다. 고색창연하던 그의 도는 어느새 금군 병사들의 붉은 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수라도제는 피에 젖은 거도를 꼬나 쥐고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주위를 여유롭게 둘러봤다. 그의 명호에 왜 전쟁의 신 아수라가 들어 있는지 알게 해 주는 한 장면이었다.

금군 병사들은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수라도제를 멍하니 바라봤다. 어떻게 저렇게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죽일 수 있다는 말인가? 피에 젖은 도를 쥐고 있

기는 했지만, 그들은 수라도제가 방금 전 그 엄청난 살육극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거친 욕설을 퍼부으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수라도제의 육중한 도가 다시 한 번 움직였다. 사방으로 번뜩하며 검강이 뿜어져 나간 후, 돌진해 들어갔던 금군 병사들의 몸은 예리한 뭔가로 잘려 나간 듯 피보라를 일으키며 산산이 분해되었다. 몸통에서 떨어져 나간 손과 발이 사방으로 굴러나갔다. 그 순간, 금군 병사들은 공포에 질린 비명을 지르며 이리저리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이 도망쳐 봐야 어디로 가겠는가. 사방에서 격전의 소용돌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 격전의 주인공들 중에는 무림의 명숙들도 있었고, 남궁세가가 자랑하는 창궁18수 같은 단체로 활동하는 인물들도 있었다. 모두들 나름대로 자신들의 이름값에 맞게 금군 병사들을 주살하며 뛰어난 전공을 세우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수라도제만이 예상한―이변이 이 격전지의 한구석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강호의 쓰레기들로 치부되고 있던 천지문의 눈부실 정 도의 분전이었다. 그들 5백 여 명은 인솔자 소연을 중심으로 금군을 상대로 괴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크으윽!”

소연의 거대한 도가 한 번 휘둘러질 때마다 서너 명의 금군 병사들이 피를 뿜었다. 창백하기 그지없는 안색을 하고서도 소연은 이를 꽉 악물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사람을 죽여 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그토록 뛰어난 무위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아직까지 바깥 세상에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는 지금 기절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렇게 지독한 피 냄새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맡아 본 적이 없었다. 속이 울렁거린다. 속 시원하게 토하고 싶었지만, 그녀 에게는 그럴 여유조차 없었다. 지금 그녀는 천지문의 제자들이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는 막중한 의무를 지고 있는 것이다.

천지문도들 중에서 조금 앞서 나간 인물이 여덟 명의 금군에게 포위되는 것을 보자마자 그녀는 신형을 날렸다.

“크아아악!”

그녀의 거도가 빛무리를 일으키며 기운차게 회전하는 순간, 여덟 명의 금군 병사들은 차마 바라볼 수도 없을 정도로 끔찍한 고깃덩이로 화해 버렸다. “우욱!”

순간 또다시 그녀의 뱃속이 울렁거렸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꽉 참으며, 다시금 도를 휘둘렀다. 부드럽게 흘러내렸던 그녀의 탐스러운 머리카락은 어느샌가 붉 은 선혈로 뒤덮여져 있었다.

악착같이 저항하던 금군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마침내 후퇴하기 시작했다. 10만에 달하는 피해를 입은 후에 내린 결정이었다. 그 후, 패퇴하는 적들을 추격하며 잔인하기 그지없는 살육전이 전개되었다.

이날, 금군은 너무나도 막심한 피해를 당했다. 17만에 달하는 병사들 중에서 살아서 도망친 자들은 겨우 5천도 안 되었다. 원수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장수들이 그 혼전의 와중에 전사했고, 마교와 정파 연합군이 노획한 물자는 너무나도 많아서 쌓아도 쌓아도 끝이 없을 지경이었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멍하니 서 있는 소연의 모습이 수라도제의 눈에 띄었다. 그녀의 발치에는 그녀가 사용하던 피 묻은 도가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주위로 몇몇 천지문도들이 토악질을 하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수라도제는 침착한 표정으로 주위를 빙 둘러봤다. 이곳은 격전이 벌어졌던 곳이다.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시체들이 사방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중에는 깨끗 하게 죽은 시체보다 끔찍한 형상으로 죽은 시체가 더욱 많았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대부분 검이나 도 같은 무기로 인해 죽은 시체였다. 뛰어난 내가고수들 이 무기를 휘둘렀으니 적당한 깊이로 베이는 정도를 넘어 아예 토막이 나 버린 것이다.

이번 전쟁에 참가한 무림맹 소속의 수많은 문파들 중에서 이런 대규모 격전을 겪은 적이 있는 문파가 있을 리 없다. 그렇다 보니 오랜 무림 생활을 거치면서 많은 살인을 경험해 본 사람들은 그래도 나은 편이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토악질을 하거나 아니면 소연처럼 새파랗게 질려 있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며 수라도제는 자신이 왜 소연 같은 뛰어난 여고수를 몰랐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도 그녀는 문파 내에서 수련은 열심히 했는지 모르지만, 강호 경험은 거의 없는 게 분명했다.

수라도제는 소연에게로 천천히 다가갔다.

“몸은 괜찮은가?”

소연은 화들짝 일어서서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대협께서 염려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런 격전장은 처음인지라…….?”

“허허, 부끄러워할 필요 없다네. 무림 경험이 좀 있다고 자부하던 사람들도 이런 난장판에서 제정신을 유지하는 인물들은 극히 드물 테니 말일세. 그래, 천지문의 사상자는 많지 않은가?”

그 말에 소연은 다소곳이 대답했다.

“소녀가 부족하여 다섯의 부상자가 나왔습니다. 큰 상처는 아니니 대협께서 심려해 주실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그 말에 수라도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거의 대부분의 문파에서 사망자가 최소한 몇 명씩은 나왔을 정도로 치열한 격전이었다. 그런데 단 한 명의 사망자도 없다 니. 수라도제는 주위에 흩어져서 쉬고 있는 천지문의 제자들을 살펴봤다. 무공이 제법 뛰어난 자도 보였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도 많았다. 그런 상황에서 단 한 명도 사망자가 없었다는 것은 그의 눈앞에 보이는 이 새파랗게 질려 있는 여인이 몸을 아끼지 않고 그만큼 열심히 뛰어다녔다는 증거였다.

“허어, 무공도 뛰어나지만 인성은 더욱 뛰어나도다. 그것 참, 정말 탐나는 인재로고…….?

수라도제는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그래, 슬하에 자식은 있는가?”

그 말에 창백한 그녀의 얼굴에 옅은 홍조가 떠올랐다.

“아직 결혼하지 못했습니다, 대협.”

그 말에 수라도제의 입이 귀밑까지 찢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수라도제는 재빨리 자신의 표정을 바로 잡은 후, 넌지시 말했다.

“허어, 그런가? 그럼 노부가 중신을 서 주면 되겠구먼.”

그 말에 소연은 당혹스러운 듯 대답했다.

“그, 그러실 필요까지는…….”

“아닐세, 내 좋은 혼처를 알아 보지. 지금까지는 무공을 연마하느라 주위를 돌보기 힘들었을 테지만, 자네처럼 뛰어난 인재가 핏줄을 남기지 않는다는 것도 무림 의 크나큰 손실이 아니겠는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수라도제의 속셈은 따로 있었다. 자기 문파에 있는 인재들 중에서 아직 결혼하지 않은 녀석을 하나 골라 그녀와 맺어 주는 것이다. 그러면 그 녀는 자연히 남편이 있는 서문세가로 들어 올 테니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는 거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자신의 계획이 마음에 든 듯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주위를 둘러보던 수라도제의 눈에 마교도들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또 노획품들을 챙기고 있었다. 그들의 움직임에는 이런 격전장을 수없이 많이 경험해 본 듯한 노숙함이 자연스럽게 풍겨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그들 모두에게서 마기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것이었다. 아마도 흑풍대라는 단체 자체가 모두 다 마공 대신 뭔가 다른 특별한 무공을 익히는 모 양이었다. 수라도제는 조금 전 전투에서 흑풍대의 활약을 몇 번이나 볼 수 있었다. 성난 이리 떼처럼 몰려다니며 금군 병사들을 휘몰아쳐 가는 그 모습은 수라도제 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그만큼 그들은 체계적으로 금군 병사들을 압박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이끌고 온 무림맹의 어쭙잖은 무사들보다는 훨씬 이러한 전투에 맞는 행동이었고, 무공이었다.

“확실히 뭔가 있음이 틀림없어. 마교가 저들을 키운 것을 보면 말이야. 그건 그렇고 참으로 무림은 넓구나. 큰 사건이 벌어지자 지금껏 이름 한 번 들어 본 적이 없 었던 용과 범 같은 인물들이 계속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보면 말이야.’

잠시 생각하던 수라도제는 뭔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래, 이 기회를 이용하여 그들을 포섭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듯하군.”

문득 수라도제는 소연이 자신의 시선을 따라 마교도들의 움직임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대단하지 않나? 마치 물을 만난 고기처럼 격전장을 휩쓸고 다니는 저들을 보며, 노부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네. 물론, 자네를 빗대어 말하는 것이 아니니 오 해는 하지 말게나.”

처음 이런 아수라장에 참여하게 되어 새파랗게 질려 있는 그녀가 혹여 자신이 말한 의도를 잘못 이해했을까 봐 급히 덧붙이는 수라도제였다. 하지만 당황한 수라 도제를 안심시키기라도 하듯 소연은 미소 띤 어조로 대답했다.

“오해를 하다니요, 당치도 않으신 말씀이십니다.”

그 말에 한결 안심한 듯 수라도제가 말했다.

“저들과 자네를 비교하지 말게. 저들은 저 옛날부터 격전장을 헤치며 살아온 인물들이라네. 마교라는 아수라장을 말일세. 철혈을 숭상하는 그들에게 있어서 이런 아비규환의 전쟁터는 고향처럼 익숙한 곳이겠지.”

소연은 수라도제의 말에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수라도제와 담소를 나누고 있는 소연의 모습을 멀리서 훔쳐보고 있는 사내가 있었다. 바로 하북팽가의 장로들 중 한 명인 혼원패권 팽선이다. 소연과의 비무는 도 중에 수라도제가 끼어들었기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언젠가 기회가 오기만 한다면 못다 끝낸 승부를 마무리 지을 속셈이었다. 그러자면 아무래도 상 대의 움직임을 조금이라도 더 관찰해 두는 것이 이익이 아니겠는가.

사실 팽선이 무림 후배에게 관심을 두게 된 것은 못다 끝낸 승부도 있긴 했지만, 비무 중에 느꼈던 묘한 위화감 때문이었다. 자신이 승리하는 것 같기는 했는데, 오 랜 무예로 다져진 그의 육감은 한 번씩 위험 신호를 보내 왔었다. 그것도 상대를 바짝 몰아붙이며 승기를 타고 있을 때 그 느낌이 왔던 것이다.

물론 아무리 뛰어난 고수라도 초식을 펼침에 있어서 허점이 없을 수가 없었다. 고수라면 상대의 그런 허점을 파고드는 자이고, 하수라면 그 허점을 알아채지도 못 한 채 자멸하는 자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던가.

팽선은 소연과 비무하면서 한참 공격에 열중하던 순간, 갑자기 등골이 오싹하는 느낌을 몇 번씩인가 받았었다. 공격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만들어진 허점으로 소연의 도가 뚫고 들어오는 착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소연은 방어에만 급급할 뿐, 공격은 가해 오지 않았었다. 그렇다면 자신의 육감이 틀린 것인가?

팽선은 자신과 함께 온 하북팽가의 다른 장로에게 청해 비무를 해 봤다. 물론 다른 사람이 알 수 없도록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에 가서 싸웠다. 그 장로와 자신은 거 의 비슷한 수준이었기에 용호상박의 대결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한순간이라도 한눈을 팔았다가는 생명이 위험할 정도다.

치열한 비무는 어느덧 끝났고, 그 장로는 돌아가 버렸다. 하지만 팽선은 돌아갈 수가 없었다. 치열한 대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등골이 오싹하는 그런 위기감은 전 혀 느껴지지 않았다. 소연과의 비무 때를 생각해 본다면 오히려 허전하기까지 했다.

“허어, 참 이상한 일이로다.”

한동안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던 팽선은 그 장로와는 워낙 오랜 시간 자주 비무를 해 봐서 상대의 공격하는 방식을 너무나도 뻔히 알고 있기에 그런 느낌이 들지 않 은 것이라고 결론지었었다. 똑같은 공격이라도 예상을 한 것과 못한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오늘에야 팽선은 그것이 아님을 알았다. 그것은 자신보다 뛰어난 고수를 상대했을 때 오는 느낌이었다. 한 순간 한 순간 자신의 허점이 드러날 때마다 상대

가 그것을 차분히 관찰하며 저놈을 이 한 수에 박살 낼까 말까 궁리하는 그 순간에 오는 위험 신호였던 것이다. 사실 그런 위험 신호를 감지한 것을 보면 소연과 그 의 수준 차이는 그리 크지 않은 게 분명했다. 만약 그 차이가 크다면 그런 것을 느끼기도 전에 황천길로 가게 되는 것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종이 몇 장 정도 의 간격일지라도 소연이 그보다 조금 더 실력이 높은 것이 확실했다.

“허어, 참. 아마도 수라도제는 저 계집의 간교한 속셈을 한눈에 꿰뚫어 보고, 내가 더 이상 망신을 당하지 않도록 해 주기 위해 끼어든 모양이군.”

그렇게 생각하자 수라도제가 중간에 끼어든 것이 고맙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저 간악한 계집은 어떤가?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있으면서 슬슬 밀리는 척하면서 노부를 방심하게 만들었다가, 나중에 한 방을 노려 노부에게 망신을 주려는 속셈이었겠지. 젠장, 그런 것 도 모르고 신이 나서 저 계집의 장단에 맞춰 놀아 주고 있었다니…….”

팽선이 지니고 있는 천지문도들에 대한 선입관은 대단히 안 좋은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소연이 고운 마음씨 때문에 그 당시 일부러 져 주고 있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마지막에 팽선이 승리를 거둬 버렸다면 문제가 없었겠지만, 수라도제 때문에 대결은 중지되지 않았던가. 그렇기에 팽선이 소연의 행동을 오해했 다고 해도 그를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열 받는 팽선이었다. 무림명숙인 자신을 무찌름으로써 그것을 발판으로 명성을 얻는 것이야 큰 문제가 될 수가 없었다. 사실 무림에서 가장 빨리 자신의 명성을 떨치려면 그 방법이 최고였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그런 일은 늘상 벌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

‘감히 나를 가지고 놀아?”

팽선은 분노에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노기에 찬 음성으로 외쳤다.

“그래, 두고 보자. 내 언젠가는 이 수모를 갚을 날이 있을 것이야.”

팽선은 주먹을 꽉 쥐며 복수를 다짐하고 있었다.

처절한 전투가 끝난 후, 수라도제가 이끄는 무림맹 연합 세력의 고수들은 마교에서 파견한 흑풍대가 보유하고 있는 엄청난 능력을 인정해야만 했다. 사실 대부분 의 정파 고수들의 경우, 중갑주를 착용한 그들의 모습에 처음에는 약간 경멸 어린 시선을 보내기도 했었다.

하지만 전투가 끝난 지금 그런 그들을 멸시하는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상상도 못할 정도로 막강한 전투력과 조직력으로 시종일관 전투를 유리하게 이끌 어 나간 그들에게 약간의 두려움마저도 느끼고 있었다. 한 명 한 명을 상대한다면 이쪽이 이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런 평지에서 집단 대 집단으로 싸운다면 누가 그들을 상대할 수 있을 것인가? 생각만 해도 간담이 서늘한 느낌이었던 것이다.

피 튀기는 전투를 벌이기는 했지만, 의외로 무림인들의 피해는 적었다. 그것도 다 흑풍대가 전장을 무림인들이 싸우기 가장 편한 상태로 만들어 준 덕분이었다. 전 투가 끝나자마자 흑풍대는 질서 정연하게 양양성을 향해 앞서 나가 버렸다. 군대처럼 철저하게 체계가 잡힌 그들은 사상자를 처리하는 것에 있어서도 수라도제 쪽 에 비해 그 속도가 훨씬 빨랐다.

수라도제는 각 문파의 수장들에게 명령하여 사망자의 유품을 수습하고는 죽은 자의 넋을 간단하게 위로했다. 부상자는 부상의 경중에 따라 가벼운 자는 휴대한 약 품으로 치료하고, 무거운 자는 후송하여 의원에서 치료받게 했다. 중상을 당한 자들에게는 치료가 끝난 후 자신이 소속된 문파로 돌아가라는 명령이 내려져 있었다. 그런 다음에야 그들은 흑풍대의 뒤를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다.

거의 3만 명에 이르는 무림인들이 이동하는 것이다 보니 흑풍대에 비해 그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었다. 서로 간에 실력 차가 매우 심하게 나기에 경공술을 사용하 여 하루 종일 달려갈 수도 없었다. 그렇기에 수라도제는 전체 무림인들을 실력에 따라 다섯 개의 무리로 나눴다. 물론 구성원 개개인들의 실력에 따른 구분이 아니 라 각 문파가 보낸 정예들의 평균적인 실력을 말함이다.

기력을 손상시키지 않는 한도 내에서 적당한 수준의 경공술을 사용하여 이동하게 된 후부터 무림맹 연합의 진격 속도는 한층 빨라졌다. 며칠 동안 강행군을 시작 한 후에야 그들은 양양성을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