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2권 16화 – 텐령 평원 대회전의 결말
텐령 평원 대회전의 결말
마교의 밀실에서 비밀회의가 이루어지고 있을 때 옥영진 대장군이 지휘하는 대군과 철진천은 몽고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한판 승 부를 벌였다. 현재 송은 모든 국력을 요와의 전쟁에 쏟아 붓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때 옥영진 대장군이 거느린 정예를 물리친다면 송은 요와의 전쟁을 마치고 국력을 회복한 후가 아니면 몽고를 건드릴 수가 없다. 하지만 대 전쟁 후 하루 이틀에 국력을 회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대 전쟁 후에는 언제나 염전사상(厭戰思想)이 판을 치기에 웬만큼 시일이 흐르지 않고는 타국에 대한 침략은 생각도 못 하는 것이다.
위정자가 침략을 원한다고 해서 무조건 전쟁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은 역사가 말해 준다. 저 고구려라는, 중원의 변방에 자리한 강대한 이민족 을 정벌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중원의 젊은이들이 피를 흘렸던가. 하지만 고구려와의 전쟁에 지친 국민과 군대를 부추겨 반기를 들어 수나라를 건설 한양제도 자신이 무엇을 이용해 정권을 찬탈했는지 잊어 먹고 다시 고구려를 건드렸다가 아들인 문제에게 목이 날아갔다. 문제 역시 자신이 어떤 배 경으로 아버지를 시해할 수 있었는지 잊어버리고 고구려를 쳤다가 나라가 망하는 사태로 연결되었던 것이다.
중원의 역사야 알든 모르든 호전적인 몽고족도 계속적인 전쟁에는 지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아는 철진천이기에 무슨 짓을 해서라도 옥영진의 목 을 베어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를 원했다. 하지만 옥영진 대장군 편에서도 이 전쟁에서 질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몽고 통일을 염원하고 또 그 정도 의 능력이 있는 철진천을 죽여 후환을 없애지 않는다면 송이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친김에 수하들의 반발도 무릅쓰고 ‘더럽고 치사한 살육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는 몽고인들이 앞으로 수십 년은 아예 ‘중원’이라는 말만 들어도 공포에 질리게 만들 심산이었다.
전투가 시작되자 모든 것이 옥영진 대장군의 생각대로 진행되었다. 옥영진 대장군은 3개의 부대로 나누어 전쟁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 덩어리로 이루려고 했었는데, 적이 각기 1만씩의 좌우 날개를 만들어 포위당하는 것을 방비함과 동시에 여차하면 적을 포위할 수 있는 진형을 사용할 거라는 카타쿠이의 정보를 듣고 바꾼 것이다. 처음에는 혹시나 하고 진형을 완전히 갖추지 않았는데, 그들의 진형을 보고 옥영진 대장군은 황색 깃발을 흔들 어 각기 1만씩의 몽고 연합군에게 상대 좌우 날개와 대치하도록 지시했다. 몽고군 좌우 날개의 우두머리인 카타쿠이나 테쿠진이 이쪽 편인 이상 좌 우 날개에 대한 대비군을 보낼 필요는 없었지만 이쪽이 보내지 않으면 철진천이 의심할 것 같아서 취한 조치였다. 그리고 만에 하나 마길수 상장군의 조언대로 적의 속임수일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한 대비이기도 했다.
연합군의 진형은 좌우 날개의 몽고군 1만씩과 중군의 몽고군 6만. 후군의 흑풍단 9천의 당당한 형태였다. 보병들은 방어 작전이 아닌 이런 광활한 평지에서의 기동전에는 써먹을 수 없으므로 본진을 지키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라는 명령을 내려놓았다. 개전(開戰)부터 전세는 연합군에게 유리하 게 진행되었다. 적의 좌우 날개는 어쩐 일인지 싸움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고 밀리기 시작했고, 좌우측 날개가 밀리자 연합군의 좌우 날개와 중군에게 집중 공격을 받은 몽고군은 막심한 피해를 입었다. 그 전투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던 옥영진 대장군이 마길수 상장군에게 말했다.
“하하하, 자네의 우려와는 달리 아주 빨리 끝나겠군.”
“모든 게 다 대장군의 복(福)이십니다. 허허, 언제나 무운(運)이 함께하는군요.”
“이 상태라면 흑풍단을 투입할 필요도 없겠군. 괜히 노영을 불러들였어.”
약간의 질책성이 있는 옥영진 대장군의 말에 마길수 상장군이 약간 무안한 듯 웃으면서 사과했다.
“허허, 제가 너무 과민했던 것 같습니다. 용서해 주시기를………….”
“하하하, 용서고 뭐고 할 것까지 있나. 자네도 잘되자고 한 소리였는데 말일세.”
이러쿵저러쿵 희희낙락 농담을 하면서 관전하는 사이 전세가 일변(變)하기 시작했다. 좌우 날개가 밀리면서 중간에 노출되어 집중타를 얻어맞던 적의 중군이 일시적으로 후퇴했고, 몽고 연합군은 그 뒤를 바짝 추격해 들어갔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그때 뒤로 밀리던 중군이 돌아서면서 연합군 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여태까지 아군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게 행동해 온 적의 좌우 날개가 밀고 들어간 연합군의 측면과 후면을 포위하면서 집중 공 격을 가해 왔다. 독 안으로 들어가 버린 몽고 연합군의 군사들은 당황하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전사자가 속출했다. 놀란 얼굴로 전세의 변화를 바라 보던 마길수 상장군이 옥영진 대장군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오늘 전투는 패색이 짙군요. 후퇴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무리를 해서라도 지금 결판을?”
“흠, 지금 결판을 내기로 하지. 이번 싸움에서 밀리면 우리 측에 가담한 몽고 족장 놈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정말 철진천이라는 자는 대단 하군. 한 번씩 나를 놀라게 만드니 말일세.”
“그럼 흑풍단의 총력으로 적의 좌군을 박살 내 버리고 그 여세를 몰아 적의 중군을 포위 공략하심이 어떨까요?”
“그게 좋겠군. 수하들에게 지시하라. 하지만 전투는 완만하게 진행해서 동맹한 부족들에게 일부러 피해가 크게 돌아가게 하도록. 이 전투에서 모두 힘을 소진해 버려야 더 이상 통일하겠다고 깝죽거리는 놈이 없겠지.”
“예l.”
마길수 상장군의 지시를 받은 흑풍단 9천 기는 좌측으로 돌격해 들어가서 적의 좌군과 치열한 기마전을 전개했다. 흑풍단은 뛰어난 고수들로 편성 된 만큼 몽고군들이 그 적수가 되지는 못했다. 다만 옥영진 대장군의 지시로 연합군에 참여한 몽고병들의 피해가 더 커지도록 전투는 완만한 속도로 진행되었다.
아침에 시작된 그날의 전투는 해가 질 때까지 계속되었고 쌍방의 피해는 막심했다. 흑풍단의 피해는 거의 없었지만 몽고병 측에는 반 이상의 사상자 가 나온 격렬한 전투였다. 그리고 몽고가 배출한 뛰어난 무장 철진천은 이 전투에서 누군가의 칼에 맞아 전사했으니……. 그로 인해 새로운 영웅이
배출될 때까지 몽고의 통일은 50여 년 늦춰지게 된다.
혼전 중에 철진천이 전사하고도 전투는 계속됐다. 몽고에게 패배란 곧 노예로 전락됨을 의미했기에 그들은 죽기를 무릅쓰고 격렬하게 저항했다. 하 지만 그것도 잠시…………. 더 이상 싸울 여력마저 떨어진 그들은 뿔뿔이 흩어져 후퇴했고, 그에 따라 쫓기는 자들에 대한 처절한 사냥이 시작되었다.
추격전의 주역은 흑풍단이었다. 그들은 전력을 다해 전투를 전개하지 않았기에 연합군에 비해 더 많은 체력을 비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몽고 통일 의 뿌리까지 뽑아 버리기 위해 추격전은 밤새도록 도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전개되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옥영진 대장군은 흩어진 천인대장급 이상의 고급 장수들을 소집하여 뒷마무리에 따르는 작전 지시를 했다. 5개 천인대를 제외 한 나머지 천인대들은 모두 다 흩어져서 주변을 깨끗이 정리하라는 명령이었다. 그리고 더 이상 필요 없어진 보병대는 본진 수비를 위한 1천 명만 남 겨 두고 모두 본국으로 후퇴하라는 명령도 함께 떨어졌다.
국광은 자신의 백인부대를 이끌고 추격전에 나서기 전에 자신의 막사에 들렀다. 그로서는 이번 작전이 아마도 몽고에서 마지막 작전이 될지도 모른 다는 생각에 다급해졌기 때문이다. 작전이 끝나면 흑풍단은 본국으로 후퇴할 것이고, 본국에 도착하면 자신에게 주어졌던 하부르는 노예로 팔려갈 게 뻔했다. 국광의 타는 속을 알 리 없는 하부르는 국광이 들어오자 반갑게 맞이했다.
“무사하셨으니 다행이에요.”
자신을 껴안는 하부르를 떼어 놓은 국광은 수하에게서 얻어온 흑색 의장용(儀用) 경갑주 한 벌을 하부르에게 내밀었다.
“빨리 이걸 입어라.”
“예?”
“빨리 입어. 그리고 바지와 신발은 내 것을 써라. 그거 입은 다음 나하고 같이 말 타러 가자.”
“예.”
엉겁결에 하부르는 갑주를 입기 시작했고, 국광이 멀리 나들이를 데리고 가겠다는 말에 옷을 갈아입는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국광은 복장을 갖춘 하부르를 백인대에 끼워 넣어 표시 안 나게 만든 후 출발했다. 옥영진 대장군에게 부탁하는 게 더 좋을지도 모르지만 만약 거절당했을 때는 아예 하 부르를 빼돌리지 못하기 때문에 국광이 서둘렀던 것이다.
안면 보호대까지 착용해 두 눈만 내놓은 하부르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갑옷을 자세히 살펴보면 똑같은 번호를 가진 사람이 둘 있 다는 것을 알겠지만, 국광의 부탁을 받은 데다가 하부르를 놓아 줄 거라는 말에 그동안 정이 많이 든 백인대 대원들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열심히 보호했다. 그러니 점쟁이가 아닌 바에야 하부르가 거기 끼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국광 일행은 북쪽으로 달리고 달려 마을을 찾아 헤맸다. 다른 백인대들도 국광의 일행처럼 마을이나 패잔병을 찾아 헤매고 있을 것이다. 다만 그들 은 약탈과 살인을 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이 국광의 일행과는 다를 뿐이었다. 북쪽으로 4일간 달려 올라갔을 때 산에 가려진 작은 마을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만일을 대비해 대부분의 수하들을 마을 주변에 포진시킨 다음 국광은 하부르와 몇몇 수하들만을 거느린 채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마을에 들어섰을 때 마을 사람은 한 명도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걸 보고 마화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이거 벌써 누가 다녀간 거 아냐?”
“아닐 거야. 다녀갔다면 시체가 즐비할 텐데……………. 알다시피 본보기로 죽이는 거니까 묻을 필요가 없지.” “그렇군.”
말에서 내린 국광은 파오 앞에 서서 낮지만 내공을 실어 목소리가 멀리 퍼지도록 해서 몽고어로 말했다. “모두들 나오시오. 족장을 만나서 얘기할 것이 있소.”
저쪽 파오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더니 노인과 몇 명의 장정이 나왔다.
“나으리…,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저희 부락은 작아서 식량도 없고 또 쓸 만한 처녀도 없습니다요.”
국광이 뭐라 말하려는데, 뒤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안 된다는 만류의 목소리와 함께 한 소년이 국광 앞으로 나섰다.
“당신들이 원하는 사람은 나지 이 사람들이 아니오. 나만 잡아가고 이들을 해치지 마시오.”
15세 정도로 보이는 아이는 단단한 체격과 어딘지 모르게 기품 있는 말투와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국광은 그 아이에게 흥미를 느끼고 아이의 생 김새를 자세히 뜯어보며 말했다.
“그렇게 못 하겠다면?”
아이는 그 나이 또래에 어울리지 않게 침착했다.
“이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순박한 사람들이오. 이들을 헤칠 필요는 없지 않소?”
소년의 말을 듣고 국광은 비웃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재미있는 녀석이군. 네 녀석의 힘으로 나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렇지는 않소. 당신들 검은 악마들은 너무나 강하오. 하지만 아무리 강하다 해도 그렇게 재미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옳지 못하오. 늑대도 배가 고 플 때만 사냥하듯 당신들도 그 강함에 맞게 저들에게 관용을 베풀어 주시오.”
“하하하, 재미있는 녀석을 이곳에서 만났군.”
국광은 갑자기 정중한 어조로 소년에게 말했다.
“용의 눈을 가진 소년이여. 나는 자네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하고 싶다. 물론 그 부탁을 들어준다면 나도 자네의 부탁을 들어주지.”
소년은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무엇이오?”
“저 아이는 하부르, 이번 전쟁에서 부모를 잃은 아이다. 내가 딸처럼 아끼던 아인데 사실 중국인인 내가 몽고인인 저 아이를 데리고 중원으로 들어 갈 수는 없다. 이곳에 남는 것이 저 아이에게도 좋을 거고. 저 아이를 맡아 주겠나?”
“부탁이란 그것뿐이오?”
“그렇다.”
“하지만 당신이 떠난 후에 내가 저 아이를 죽여 버릴지 어떻게 믿고 나에게 맡긴다는 거요?”
“나는 너를 믿는다. 용의 눈은 가지고 싶다고 아무나 갖게 되는 것이 아니거든.”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하부르가 마침내 참지 못하고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두 손을 꼭 쥐고 국광에게 사정했다.
“나으리…, 저를 버리실 건가요?”
국광은 그런 하부르를 애처롭게 바라보며 부드러운 어조로 타일렀다.
“아니야. 다만 너를 위해 가장 좋은 길을 선택했을 뿐이다. 너는 몽고인…………. 몽고의 초원에서 동족들과 있어야 행복할 수 있어. 내 말대로 하거라, 응?”
“나으리…, 흐흑.”
국광은 울고 있는 하부르를 이끌어 그 소년에게 넘겨주었다.
“이 아이의 이름은 하부르. 아무도 손대지 않은 순결한 몸을 가지고 있으니 자네가 좋은 배필(配匹)을 얻어 짝을 지워 줬으면 하네…………. 성격도 착하 고 순박한 아가씨야.”
“약속하겠소.”
국광은 그 소년을 다시 한 번 자세히 바라보고는 떠나려 하다가 말했다.
“용의 눈을 가진 소년을 만난 기쁨의 표시로 자네에게 이걸 선물하고 싶군. 자네는 무기가 없으니 지니고 있으면 자그마한 보탬이 될 걸세.”
국광이 갑자기 허리에 찬 검을 풀어서 건네주자, 약간 당황한 소년이 고개를 저었다.
“당신에게 이걸 받을 이유가 없소.”
“내 작은 성의라고 봐 주게. 이 검은 그렇게 좋은 검도 아니고 그냥 호신용으로 쓰기에 적당한 그저 그런 검이니 받아 주게나. 그리고 나한테는 따로 좋은 검이 하나 있어.”
몽고에서는 철이 생산되지 않는다. 그래서 몽고에서는 검을 대단히 아끼며, 정강(精剛) 정도로만 만들어도 보검으로 칠 정도다. 역대로 중국에서는 몽고 등 이민족에게 무기는 물론 철의 수출을 금지하고 있었고, 솥도 좋은 철로 만들면 그걸 잘라서 무기를 만든다고 일부로 불순물이 많은 철로 만 들어 수출하고 있었다. 그런 형국이니 국광이 내미는, 보석이 많이 박힌 검은 그들이 한눈에 봐도 뛰어난 보검임이 확실했기에 아무 이유도 없이 주 는 것을 거절한 것이다. 하지만 국광이 사정하듯 말하자 소년은 망설이다가 그 검을 받았다.
“몸을 잘 숨기도록 해라. 아마 한 달 정도 지나면 우리들은 몽고에서 철수할 거다. 장차 몽고의 별이 될 자네를 지금 죽이지 않음은 내 상관인 옥 나 으리에 대한 반역이나 다름없으나, 나는 큰 나무가 될 게 분명하다고 싹부터 자르고 싶지는 않아. 자네는 요절(夭折)하지 않는다면 몽고의 역사에 남 는 영웅이 될 거야. 쓸데없는 만용을 부리지 않는다면 자네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 그럼, 인연이 있다면 훗날 다시 볼 수 있겠지. 잘 있 게나.”
그 말을 끝으로 국광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소년은 당당히 떠나가는 국광을 보고 불현듯 그의 이름을 물어보지 못했다는 생각에 다급히 외 쳤다.
“당신의 이름은 뭐요?”
국광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멀어져 갔다. 다만 그의 목소리만이 초원을 꿰뚫고 들려왔다.
“내 이름은 국광……. 아니지, 묵향…………. 묵혼검의 주인이다.”
소년은 세월이 지나며 뛰어난 무장(武將)으로 성장했지만 국광의 우려대로 우연히 만난, 사이가 좋지 못한 부족의 식사 초대에 응했다. 사실 그들 부 족의 식사 초대에 응하지 않아도 문제될 것은 없으나 ‘겁쟁이’라는 비난을 받고 싶지 않아 식사에 동참한 후 독이 든 마유주를 마시고 젊은 나이에 죽 었으니 또다시 몽고의 통일은 뒤로 미루어졌다. 소년과 결혼해 네 명의 자식을 낳은 하부르는 그 장자의 이름을 테무진〔鐵武眞]이라 지었다. 몽고의 통일은 3대에 걸친 소망으로 내려오다가 송의 약체를 틈타 테무진의 손에서 마침내 이루어지게 된다.
마을에서 멀어지며 마화가 물어 왔다.
“묵향은 또 뭐예요? 대장 이름은 국광이라고 안 그랬어요?”
“……”
국광으로부터 아무런 답이 없자 마화는 옆에 있는 임충에게 확인을 구했다.
“임충! 대장 이름이 국광 맞지?”
“응.”
마화는 조금 놀리는 투로 말했다.
“갑자기 애한테 국광이라고 하려니까 부끄럽던 모양이죠? 없는 이름을 지어서 불러 주게? 묵향이라고 하니까 지금 대장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것 같기는 하지만….”
“……”
“앞으로 계속 묵향이라고 불러도 돼요?”
“안 돼!”
“왜요? 국광보다는 백배 나은데…..”
그러자 떼를 쓰던 마화의 귀에 소리가 들려왔다. 국광은 입도 달싹이지 않는데 소리가 들려오는 걸 보고 마화는 그것이 말로만 듣던 어기전성(御氣 傳聲)이라는 걸 눈치 챌 수 있었다.
《왜 안 되는가 하면 그건 내 본명이기 때문이야. 과거를 모르는 만큼 만약 나에게 적이 있다면 나는 아주 좋지 못한 상황에 처할 수 있어.》
국광의 말은 아주 정당했기에 마화도 할 수 없이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