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2권 2화 – 되살아난 북명신공

되살아난 북명신공

다음 날부터 국광에게는 완전히 다른 인생이 펼쳐졌다. 그가 아는 거라고는 말을 돌보는 것뿐. 그런 그에게 옥영진은 무공을 익혀라! 뭘 해라 하면서 많은 지시들을 해 댔다. 국광도 처음에는 그 말을 듣는 것 같더니 곧 지겨워졌다는 듯 모든 지시를 한 귀로 흘려 버리고 빈둥거렸다.

조금 더 지나자 빈둥거리기도 질렸는지 이 사람 저 사람 찾아다니며 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옥영진은 국광이 글을 모조리 잊어버렸다는 걸 눈치 챘다. 그런 그에게 무공비급을 던져 줬으니 짜증을 낼 만도 한 것이었다. 옥영진은 여러 명의 우수한 선생들을 붙여 줬고 국광의 지식은 급속도 로 성장했다.

그는 한 번 하려고 마음먹으면 밤을 새워서라도 해냈고, 죽자고 책을 읽어 대는 바람에 옥영진이 그의 내력을 몰랐다면 과거에 서생이었으리라고 착 각할 정도였다.

그는 여러 가지 책들을 읽더니 나중에는 병서(兵書)를 주로 읽기 시작했고, 그다음에는 진법(陣法)을 기록한 서적들을 열심히 읽었다. 며칠이고 서고 (書庫)에서만 생활하니 옥영진은 그의 얼굴을 보기도 힘들었다. 그는 읽고 읽고 또 읽어 끝내는 서고 안의 모든 책을 다 읽은 다음에야 서고에서 나왔 다. 국광이 서고에서 나왔다는 말을 전해들은 옥영진은 그를 만나고 싶어 수하에게 물었다.

“그는 지금 어디에 있나?”

“서고에서 나오더니 국화를 심어 놓은 후원에서 국화만 뚫어져라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속하가 불러올까요?”

“아니, 내가 가 보지.”

옥영진이 후원에 들어섰을 때도 국광은 계속 국화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옥영진은 그를 방해하기가 미안해서 기척을 숨기고 뒤로 다가섰다. 국광의 3장 뒤쯤 다가섰을 때 갑자기 국광의 신형이 번쩍이더니 옥영진의 코앞으로 다가왔다. 국광은 푸른색으로 빛나는 오른손을 뻗어 옥영진의 멱줄을 거 머쥐려고 하다가 순간 그가 옥영진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급히 초식을 회수하며 뒤로 물러섰다. 국광이 물러선 다음에도 옥영진의 창백해진 안색은 회복되지 않았고, 그제서야 사지가 떨려 왔다. 그는 아직도 자신이 살아 있는 것 같지 않았던 것이다. 그를 보면서 국광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렇게 기척을 죽이고 제게 접근하지 마십시오.”

“자네의 무공이 놀랍군. 그게 무슨 초식인가?”

“그냥 본능적으로 펼쳤을 뿐입니다. 저 자신도 제가 방금 무슨 행동을 했는지 알기 어려우니까요.”

“그렇다면 그게 무의식중에 펼쳐진 것이란 말인가? 그런 자네가 어찌해서 등 뒤에 칼을 맞았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군.”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국광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자신을 바라보자 옥영진은 자신이 좋은 뜻으로 국광의 뒤로 조심스럽게 다가간 것이 치명적인 실수였다는 것을 깨달았 다. 국광이 자신의 행동을 의심하기 시작했으니 아마 한동안은 조심해야 그 의심이 풀릴 것이었다. 옥영진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자네가 너무 열심히 국화를 바라보기에 부르기가 미안해서 조용히 다가간 것뿐일세. 그런 눈초리로 보지 말게나. 이번에 온 건 혹시 황궁무고(皇宮 武庫)에 들어가 볼 생각이 없는지 물어보려고….”

“황궁무고란 뭡니까?”

“황궁 안에 무림에서 모아들인 무공비급을 쌓아 둔 장소를 이르는 말이지. 한번 가서 읽어 보고 마음에 드는 무공이 있으면 가져다 익혀도 상관없 네. 대신 황궁의 3대 무공은 자네가 익힐 수 없어.”

“한번 읽어 보는 거야 뭐 별 상관없겠죠. 그 황궁무고란 건 어디에 있습니까?”

“내일 노부가 안내해 주겠네.”

다음 날 국광은 황궁무고로 들어갔다. 황궁무고로 국광을 넣어 놓고, 옥영진 대장군은 감시자를 보내 그를 지속적으로 살펴보며 그가 어떤 비급에 특이한 반응을 보이는지 알아보게 했다. 혹시나 눈에 익은 비급이 있다면 그는 당연히 그 비급에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며칠 후 국광을 감시하기 위해 보낸 수하가 돌아와서 보고했다.

“그는 열심히 비급을 읽고 있습니다.”

“그래, 어디 특정 비급에 관심을 보이던가?”

“아닙니다. 그냥 한쪽 귀퉁이에서부터 계속 읽고만 있습니다. 한 권의 비급을 읽고 나면 그 옆의 것을 읽고, 그걸 다 읽고 나면 또 옆에 있는 책을 집 어 읽고, 이런 식으로 밥 먹는 시간과 자는 시간, 용변 보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 그냥 읽고만 있습니다.”

“그자가 비급을 보고 초식을 흉내내 보든가 하는 행동은 하지 않던가?”

“아뇨, 그냥 계속 제자리에 앉아 읽고만 있습니다. 도대체가 무공을 익힐 생각이 없는 것 같던데요. 어찌 하면 좋겠습니까?”

“그냥 계속 놔두게나. 시간이 지나면 좀 달라질지도 모르지.”

“예.”

하지만 옥영진의 예상은 빗나갔다. 국광은 그냥 계속 비급을 읽어 댔고 열 달의 시간이 흐르자 비급의 절반 정도를 읽었다. 그러고도 그는 계속 비급 을 읽어, 2년이 흐르자 무고 안의 3천여 가지 비급 중에 읽지 않은 것이 없었다. 비급을 모두 다 읽어 버린 후에도 뭔가 달라진 점이 있나 했더니 그것 도 아니었다.

그는 옥영진 대장군의 저택으로 돌아와서 방에 틀어박혀 있거나 아니면 그가 가장 제일 좋아하는 장소인 국화밭에 가 있었다. 국광에게 거의 2년여 의 시간을 들였는데도 아무런 진척이 없자 옥영진은 초조해져서, 급기야는 그가 있는 곳으로 찾아갔다. 국광은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서는 느긋 한 표정으로 꽃도 피지 않은 국화를 보고 있었다. 전에 한 번 뜨거운 경험을 한 적이 있는지라 옥영진은 짐짓 헛기침을 하여 인기척을 내면서 그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셨는가?”

“…..”

“그래 무고에 들어갔다 나오니 뭔가 깨달은 점이 있나?”

“…..”

상대로부터 아무런 반응이 없자 그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하지만 국광은 그의 수하도 아니었고, 자신의 아들이 그냥 돌봐 주기를 부탁해서 데리고 있는 상태이니 성질을 부릴 수도 없어서, 그는 그저 조금 더 큰 소리로 물어봤다.

“그래 무고에 들어갔다 나오니 뭔가 깨달은 점이 있나?”

“…예, 책이 정말 많더군요.”

옥영진은 약간 자랑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그걸 모으는 데 정말 오랜 시간이 들었지.”

“하지만 그 내용이 그 내용이던데…, 왜 그렇게 많은 책들을 썼을까요?”

“무슨 말인가? 각 비급은 좀 비슷한 점이 있더라도 각각의 장단점을 가지고 있는 완전히 다른 것들이라구.”

“저것들이 다 다르다면, 그럼 그때 나으리가 말한 3대 무공도 그 정도라는 말입니까?”

“아니야, 황궁의 3대 무공은 여태까지 모아들인 무림의 비급들을 토대로 집대성하여 독특한 황궁만의 것으로 재편성해서 만들어 낸 아주 패도적이 고 강력한 비급이지. 너무 강한 무공이라 익히도록 허락받은 사람의 수가 적은 거야.”

“그렇다면 그 황궁의 3대 무공을 익힌 사람은 천하무적이란 말인가요?”

“노부의 생각으로는 천하무적이란 말은 아무도 쓸 수 없지. 물론 현경의 경지에 오른 구휘 정도의 인물이라면 몰라도…………. 모든 무공의 비급들은 각 각의 장단점이 있어. 그러니까 갑이란 무공을 을로 이긴다면 그 을은 병에게 지고 또 병은 다시 갑에게 지는 식으로 말이야. 아직까지도 무림에 무상 (無上)의 신공(神)은 만들어지지 않았다네.”

국광은 무상의 신공이란 말을 듣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의 뇌리에는 계속적으로 한 가지 단어만이 휘몰아치듯 돌아다녔다.

‘무상의 신공… 무상의 신공……. 무상의 무상・・・ 무상… 무상…………?

국광이 잠시 멍청한 상태로 있자 옥영진이 뭐라고 몇 마디 더 했지만 아무런 반응도 찾아볼 수 없었다. 또다시 무시를 당하자 더 이상 노화를 억누르 기 힘들었던 옥영진이 외쳤다.

“지금 노부의 말을 듣고 있는 거야?”

하지만 국광은 멍청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무상의 신공…………… 무상… 무상이란 말이 아주 마음에 와 닿는군요. 아무래도 예전에 무상이란 말이 들어가는 무공을 익혔다고 생각돼요. 무상신공? 무상장법? 무상지법? 무상지공? 참 내가 검을 가지고 있으니 무상검공? 무상검법? 무상검결? 또 뭐가 있지? 그중에서 무상검법이 가장 입에 익은 것 같은데 무상검법…, 무상검법…, 무상검법…, 무상검법, 무상검법…, 무상검법…, 무상검법…, 무상검법·

국광이 계속 무상검법이란 말만 중얼거리자 더 이상 참기 어려워진 옥영진은 꽥 소리를 질렀다.

“갈! 무상검법이라니? 그런 검법은 노부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들어 본 적도 없다. 무슨 얼어 죽을 무상검법이야. 지금까지 무상의 신공이라 불릴 만 한 건 노부가 조사해 본 결과 구휘 대협이 만든 북명신공(北冥神功)밖에 없어.”

북명신공이란 말이 튀어나오자 국광은 멍청한 눈으로 말했다.

“북명신공 북명신공・・・, 북명신공…………… 장자는 「소요유 편」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북극에 큰 바다[冥]가 있으니 그 이름은 천지(天池)라고 한다. 거기에 큰 물고기가 사는데 그 길이는 천리(千里)에 이르고 수명은 길어 헤아릴 길이 없다. 이 고기의 이름은 곤)이라고 하는데, 어느 날엔가 큰 새 로 변하니 그 새를 붕(鵬)이라 한다. 붕이 나래를 펴면 그 길이가 9만 리에 이른다. 붕은 드넓은 창공을 날아서 남쪽으로 간다. 무릇 물이 모여 깊게 되면 큰 배를 띄울 수 있나니 큰 바다도 결국은 한 잔의 물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다.

북명의 무공은 장자에서 나오는 비유와 같이 대자연(大自然)의 진기(眞氣)를 체내에 축적하여, 바닷물이 큰 배를 띄우듯 축적된 진기로 큰 힘을 발휘 하는 데에 첫 번째 묘용이 있다. 진기가 쌓여 내력이 웅후하게 되면 천하의 무공을 모두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켜 응용할 수 있으니 이는 북명(北冥)과 마찬가지로 크고 작은 배를 모두 띄우고 곤과 같이 큰 물고기도 포용할 수 있는 이치다. 따라서 진기를 으뜸으로 하고, 치고받는 동작은 하찮은 것으 로 여긴다. 우선 낮에는 태양의 양기를 밤에는 달의 음기를 흡수하며 대자연의 기를 흡수하는 요령을 익혀…………….”

국광이 멍청한 얼굴로 중얼거리기 시작하자 경악한 옥영진은 비명을 질렀다.

“악! 너는, 너는.. 북명신공을 봤구나!”

옥영진이 외치자 그 소리에 놀란 국광은 한순간에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그가 입을 다물자 뒷부분이 궁금해진 옥영진이 그를 달래며 뒷부분을 들려 달라고 했지만 국광은 막무가내였다. 한 번 다문 입은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세상에…………. 실전(失傳)된 것으로 알려진 북명신공을 익힌 자가 있을 줄이야. 이건 생각보다 더 대단한 거물(巨物)일지도 모르겠는걸?”

옥영진은 국광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북명신공은 무림의 무상지보(無上之寶)라 할 수 있다. 그걸 자네가 알고 있다니 잘되었군. 내가 서기(書記)를 붙여 줄 테니 그걸 불러 비급으로 만들 면 황궁의 무공은 더욱 발전하게 될 거야.”

“이 무공은 무상지보인지는 모르나 제 마음속에서 누구에게도 알려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저에게 묻지 말아 주십시오.”

국광은 다시 국화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옥영진은 국광이 국화로 시선을 못 박으며 입을 다물자 별수 없이 물러서고 말았다.

“저 자식은 꽃도 안 핀 국화가 뭐 볼 게 있다고 저렇게 열심히 바라보는지 원…………. 지겹지도 않나?”

괜한 국화만 옥영진의 원망을 들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