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21권 7화 – 질주(疾走)하는 고수들
질주(疾走)하는 고수들
흔히 모든 성들이 그렇듯, 양양성에도 먼 지점을 살펴보기 위해 설치해 둔 망루(望樓)가 몇 개 있다. 망루는 그것을 만드는 목적상 사방이 뻥 뚫린 곳에 위치할 뿐 만 아니라 높이 또한 높다. 그렇기에 겨울철 망루에 올라가는 초병(哨兵)들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지금처럼 밤이 되면 그 고생은 더욱 배가된다. 살을 에는 찬바람이 곧바로 휘몰아치며 뼛속까지 얼려놓기 때문이다.
“으으윽! 오늘은 어제보다 더 추운 것 같은데?”
다른 초병도 조금이라도 추위를 쫓아보고자 발을 동동 구르며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 말일세. 하지만 봄도 멀지 않았으니 조금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그런데 저 사람은 춥지도 않나? 이 한밤중에 뭐가 보인다고 저러고 있는지…….”
그 말에 다른 초병의 시선도 슬쩍 한쪽으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이 정도 추위는 추위도 아니라는 듯 부동자세로 서서 한쪽을 응시하고 있는 무사가 보였다. 망루에 올라 온지 1시진이 다 되어가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자세는 처음과 변화가 없었다. 간혹가다 깜빡이고 있는 그의 눈이, 눈뜬 채로 서서 잠자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대변해주고 있을 따름이었다.
“역시 황군 소속은 뭐가 달라도 다르군.”
“쉿. 목소리가 크네. 여기서 같이 보초를 서고 있지만 높으신 나으리니까 언행을 조심하라고 박 군관이 당부하지 않았던가?”
“그래도 우리를 못 믿는 것도 아니고, 자기들이 직접 보초를 올려 보내다니……. 여기 와 있는 무림인들도 그러지는 않는데, 너무 심한 거 아닌가?”
“글쎄 말일세. 하지만 자기들이 본다고 뭐 달라지는 게 있겠나? 며칠 지나지 않아 그만두겠지.”
초병은 곱지 않은 시선으로 상대를 힐끔 바라 본 후 낮은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젠장! 저것들 때문에 졸지도 못하고 이게 무슨 짓인지 원…….”
이때, 갑자기 저쪽에 부동자세로 서 있던 무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재빨리 망루 밑으로 뛰어내리더니 어딘가로 쏜살같이 달려가 버렸다. 그리고 남은 두 명 의 초병들은 너무 놀라서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허억! 여, 여기에서 밑으로 뛰어내리다니…….”
그들은 저 아래쪽으로 까마득히 내려다보이는 등불을 보며 경악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미 묵향은 수하들을 통해 서문길이 팽선 장로에게 서신을 보냈다는 보고를 들은 상태였다. 서문세가가 차지하고 있는 무림에서의 위치로 봤을 때, 팽선은 결코 그 요청을 거절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만큼 팽선의 퇴각 명령을 받은 천지문은 며칠 내로 양양성으로 돌아올 것이 분명했다.
자신이 일을 제대로 처리해 놓았음을 스스로 흐뭇해 하며 묵향은 수하들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홍택호 수군사령인 한세충 상장군이 전폭적인 지지를 약속했다고 합니다. 흑풍대의 규모가 워낙 큰지라 수군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도 도강을 완료하는 데는 적 어도 이틀은 걸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틀이라…….”
잠시 궁리하던 묵향은 보고를 올리고 있던 마화에게 질문을 던졌다.
“형님의 동향에 대해서 올라온 보고는 없나?”
“현재 알 수 있는 것은 그분께서는 단독 행동을 하고 계신다는 것 정도입니다. 관지 장로는 그분께서 다급히 홀로 떠나셨다고 하셨고, 또 무영문에서 보내온 보고 도 그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어떤 고수가 엄청난 속도로 경공술을 펼치며 질주하는 것을 포착했지만, 그가 누군지는 알 수 없다는 연락을 보내왔으니까요. 그들로 서는 그분의 뒤를 추격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겠지. 그런데 형님은 왜 혼자 달려간 거지? 알 수가 없구먼. 그러다가 괜히 장인걸한테 걸리면 험한 꼴 당할 가능성이 큰데……. 하기야 형 님 실력도 상당하니 큰일이야 있겠나?”
워낙 자신이 두서없이 설명한 탓에 만통음제가 그곳으로 급히 달려간 것은 생각지도 않고, 묵향은 그의 경솔함을 탓하고 있는 것이다. 혼자서 궁시렁거리던 묵향 은 다시금 마화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질문을 던졌다.
“그건 그렇고 천지문은 언제쯤 퇴각해 올 것으로 생각하나?”
“일단 서문세가에서 명령서를 팽선에게 보낸 만큼, 그쪽에서 천지문으로 퇴각 명령을 하달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조금만 기다려 보시면 결과가 나올 겁니다.”
이때, 문을 벌컥 열고 제7대장 차임(車林)이 뛰어 들어왔다. 그가 소연이 있는 곳에서부터 시작해서 양양성까지 연결되어 있는 연락망을 맡고 있었다.
“교주님, 큰일났습니다!”
“무슨 일인가?”
“보, 봉화가 올랐습니다.”
“봉화가?”
그 봉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고 있었던 묵향은 마화를 향해 물었다.
“마화! 봉화라니, 그게 무슨 말이냐?”
마화는 창백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관지 장로께서 출진하시기 전에 천지문과 양양성 간에 구축해 놓은 연락망입니다. 봉화가 올랐다는 것은 작전이 예정대로 실행되었다는 뜻이며, 강 건너편에서 무엇인가 변괴가 일어났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 말에 묵향은 언뜻 이해하기 힘들다는 듯 되물었다.
““변괴라니, 그게 무슨 소리지?”
“강 반대편에서 크게 접전이 벌어졌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적의 함정에 빠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죠.”
더 이상 들어 볼 것도 없었다. 함정에 빠졌다는 것은, 장인걸이 이미 눈치를 채고 만반의 준비를 갖춰 놓고 기다렸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곳에는 필히 장인걸이 대기 중이리라.
묵향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서며 마화에게 명령했다.
“아무래도 내가 직접 가 봐야겠다.”
묵향은 마화의 말은 듣지도 않고 엄청난 속도로 문을 박차고 달려가 버렸다. 그런 묵향의 뒤를 잠시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마화는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서로 간의 거리는 거의 1200여리. 아무리 당신이라고 해도 이미 늦었을 거예요.”
어느새 마화의 턱밑으로는 작은 물방울이 떨어졌다.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지? 그분께서 얼마나 상심하실까……..”
“이봐, 마화. 그렇게 큰일이 났다면 철영 부교주한테 연락을 넣는 것이 좋지 않을까?”
마화는 소맷자락으로 눈물을 닦으며 일어섰다. 맞다. 묵향도 그렇지만 마화도 소연의 목숨과 연관지어 너무 큰 심적 부담을 받다 보니 철영 부교주가 마교의 주력 을 이끌고 대별산맥에서 대기 중임을 깜빡 잊은 것이다.
“참, 철영 부교주가 있었지. 나는 철영 부교주에게 갈 테니까 뒷일을 부탁해.”
“뒷일이라고 해 봐야 뭐 처리할 게 있나? 여기에는 더 이상 병력도 뭐도 남아 있는 게 없는데 말이야.”
마화는 급히 밖으로 달려가 자신의 애마에 올라탔다. 대별산맥 부근에 도착할 때까지는 말을 타고 달려가는 것이 훨씬 빠를 테니까.
남방의 비옥한 토지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양양성을 차지해야만 했다. 결정적인 군사적 요충지인 만큼 과거부터 수많은 전쟁이 벌어졌던 곳이다 보니, 천혜 의 험지를 끼고 있는 난공불락의 성채, 양양성이 건설된 것이다.
3장에 달할 정도로 드높은 성벽 위에 선 조령은 발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야경(夜景)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이만 돌아가시지요. 밤바람이 찹니다.”
무뚝뚝한 음성이었지만, 그 밑에는 조령에 대한 따뜻한 정이 듬뿍 배여 있었다.
“아아, 어쩌면 이렇게도 아름답지?”
“주위를 한눈에 지켜볼 수 있는 위치에 축조된 성인 만큼, 경치가 좋을 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조금만 더 여기에 있을래.”
“밤바람이 찹니다. 그만 돌아가시지요. 수련도 빼먹으시고 여기서 이러고 계신 것을 알면 패력검제 영감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패력검제 영감에게 그토록 무공을 배우고 싶어 하지 않으셨습니까?”
쟈타르의 지적에 조령은 작은 입술을 삐죽이 내밀며 투덜거렸다.
“쳇! 그게 무슨 지도해 주는 거야? 그런 대단한 고수라면 뭔가 엄청난 무공이라도 가르쳐 줄 줄 알았는데…….
조령을 바라보는 쟈타르의 무표정한 얼굴에 순간 따뜻한 미소가 어렸다. 이 주인을 모신지 적지 않은 세월이 흘렀고, 그러다 보니 그녀의 장점과 단점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그였다. 사실 고수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탄탄한 기본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곧바로 그것을 파악한 패력검제는 재미없는 기본기를 계속적으로 수련시 켰고, 조령은 그것에 따분해 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쟈타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에게 있어서 강력한 무공은 별 필요가 없다는 것이 쟈타 르의 생각이었으니까.
이때, 저쪽에서 패력검제가 그의 아들 서량을 대동하고 어슬렁거리며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주위를 경계하고 있던 쟈타르는 즉시 그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넸지 만, 저 아래 펼쳐진 아름다운 야경에 매혹되어 있던 조령은 패력검제가 다가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허어, 지금은 연공(내공 수련)할 시간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여기에서 야경을 구경하고 있었구먼.”
이제야 패력검제의 등장을 눈치 챈 조령이 서당에 가지 않고 놀고 있다가 스승에게 들킨 철부지 아이처럼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옆에 서 있던 쟈타르가 급 히 고개를 숙여 철없는 주인 대신 사과했다.
“송구스럽습니다, 패력검제 대협.”
“자네가 사과할 필요는 없다네. 자네는 저 아이의 말을 거스를 수 없는 입장일 테니 말이야. 그건 그렇고, 정말 경치가 좋구먼. 잡다한 것은 다 잊어버릴 만도 하겠 어.”
그 말에 조령은 얼굴을 붉히며 작은 목소리로 사과했다.
“죄, 죄송합니다, 어르신, 지금이라도…….”
“아니, 됐느니. 수련은 나중에 해도 되는 것이고, 여기서 먼저 마음을 씻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성벽 밑을 내려다보며, 패력검제는 누구에게랄 것 없이 들으라는 듯 중얼거렸다.
“세월이 흐르다보면 언젠가는 고수가 되겠지만, 고수가 되기 전에 먼저 마음가짐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지. 량아, 네 생각은 어떻느냐?”
갑자기 아버지가 왜 이런 질문을 던진 것인지 알 수 없었던 서량이었지만, 그는 자신이 배운 대로 정석적인 대답을 했다.
“강절소 선생이 말씀하시기를 ‘하늘의 들음이 고요하여 소리가 없으니 푸르고 푸른데 어느 곳에서 찾겠는가. 높지 아니하고 또한 멀지 아니하다. 다만 모두 사람 의 마음에 있다(天聽寂無音 蒼蒼何處尋 非高亦非遠 都只在人心)’고 하셨습니다. 그런 만큼 선인의 지혜를 본받아 각자 마음의 수련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명문의 후계자답게 글공부도 착실히 한 모양이다. 아들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패력검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칭찬했다.
“좋은 대답이다. 세상만사 모든 것은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는 것이지. 무공이 높다는 것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 것이냐. 촌부들의 눈에는 저 아이 정도만 되어도 대 단한 고수로 비칠 것이다. 그런 만큼 상대적인 잣대인 남의 이목에 신경쓰지 말고, 천천히 단계를 밟아 꾸준히 무공을 수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봐야 하겠지. 그렇지 않고 과욕을 부린다면 오히려 아니 익힌 것만 못한 사태를 밟게 되는 것이니.”
이때, 그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서량의 표정에 먼저 변화가 찾아왔다. 억지로 웃음을 참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모양새를 보고서야 조령은 패력검제가 은근 히 자신을 질책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얼굴이 새빨갛게 상기되었다. 뭔가 현묘한 대화가 오가며 깊은 가르침이라도 있는가 해서 귀를 기울이고 있었는데, 그게 바로 자신의 욕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니…….
“이런 쪼잔한 영감 같으니라구. 처음에는 괜찮다고 해 놓고, 계속 그 부분을 물고 늘어지면서 은근히 욕을 해대다니…….?
조령은 마음이 상했지만 뭐라 대꾸를 할 수 없었다. 이치에는 맞는 것 같았기에 뭐라고 꼭 꼬집어 반론을 제기할 거리가 없었던 것이다.
이때, 갑자기 패력검제가 획 뒤로 돌아섰다. 그의 갑작스런 움직임에 모두들 의아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을 때, 그들은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엄청난 파 공성을 흘리며 누군가가 성벽 위로 날아가 버렸던 것이다.
“허억! 저, 저게 사람이라는 말인가?”
십여 장을 도약하여 단숨에 성벽을 뛰어넘은 괴한은 어둠 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 뒷모습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던 패력검제는 서량에게 지시했다. “나는 무슨 일인지 알아보고 오겠다. 뒷일은 네가 알아서 처리하거라.”
“아버지, 그러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패력검제는 단호한 표정으로 암흑 속에 가려져 있는 성벽 아래로 몸을 날리며 말했다.
“저 정도 속도라면 아마도 교주는 지금 자신이 지닌 전력을 다해서 경공을 펼치는 것일 게다. 지금껏 교주가 전력으로 경공을 펼친 적이 없었던 만큼 무슨 큰일이 있는 듯하구나.”
패력검제의 모습은 어둠에 완전히 가려져 있어 저 밑에 서 있는 것인지, 아니면 교주가 간 방향으로 이미 치달려가고 있는 중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것 하나는 확실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그의 목소리는 바로 옆에서 말하는 듯 나지막하면서도 또렷하게 들린다는 것이었다.
조령은 알지 못했지만, 그녀보다 훨씬 고수들인 쟈타르나 서량은 패력검제가 성 밑에 착지하는 순간 맹렬한 속도로 달려갔음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방 금 전에 들려온 패력검제의 지시가 보통 수준의 무예로는 구현하기 힘든 것을 잘 알고 경외감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전혀 안중에도 없는 조령은 딴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녀는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외쳤다.
“교주? 그렇다면 방금 전의 그 사람이 교주라는 거예요?”
그녀의 물음에 서량은 친절하게 대답해 줬다.
“그런 모양입니다, 조 소저.”
“사람이 저렇게 날아갈 수 있다고는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었어요.”
“조 소저께서는 잘 모르시는 모양인데, 각 문파에는 단숨에 높은 곳까지 도약할 수 있는 신법이 하나 정도는 있습니다.”
“혹시 그것도 문외불출(門外不出)의 비전(秘傳)인가요?”
“뭐, 비전이랄 것까지도 없습니다. 겉모습은 조금씩 다르더라도 그 근본은 똑같으니까요. 근력을 뒷받침하는 것이 내공이 아닙니까? 목표한 곳으로 뛰어오르며, 근력에 더해 내공을 함께 사용하는 것이 요령이지요. 강력한 내공의 뒷받침만 있다면, 3장에 달하는 성벽쯤은 손쉽게 오를 수 있습니다.”
「강력한 내공의 뒷받침이라는 말이 조금 마음에 걸리기는 했던 모양이지만, 조령은 희망을 잃지 않고 질문을 던졌다.
“저… 저도 가능할까요?”
그 말에 서량은 난처한 표정으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조령에게 그것을 기대하는 것은 참새보고 단숨에 천 리를 날아가라는 말과 똑같았으니까.
“아마 그건 좀..”
“그렇다면 서 소협께서는 그게 가능하세요?”
“해 본 적은 없지만, 아마도 가능할 겁니다.”
서량이 어느 정도 실력의 고수인지 대충은 짐작하고 있는 조령이었다. 그런 그가 겨우 가능할 정도라면, 자신은 언제쯤에나 그걸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한숨 만 나오는 조령이었다.
패력검제는 죽을힘을 다해 달려갔다. 하지만 아무리 달려도 교주와의 거리는 전혀 좁혀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서로 간의 거리는 점차 멀어지고 있었다. 오로지 그가 교주를 추격할 수 있는 단서는 저 앞에서 느껴지고 있는 무시무시할 정도로 거대한 존재감이었다. 상대도 전력을 다하고 있는 만큼, 그 기척은 눈을 감고도 알 아낼 수 있을 만큼 선명하게 파악되고 있었다.
“정말 지독히도 빠르구나.”
묵향은 황룡무제와 만통음제만으로도 충분할 것으로 판단하고, 패력검제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청하지 않았었다. 그렇기에 패력검제는 지금 묵향이 무슨 일로, 어 디를 이렇게 급히 달려가는 것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패력검제는 교주가 그토록 급히 가는 곳이 어디인지 궁금해서 뒤쫓아 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 시. 전력 질주가 2각 이상 지속되자 제아무리 화경급 고수인 패력검제라고 해도 슬슬 무리를 느끼기 시작했다. 이성적인 판단대로라면 그때 그는 이 쓸모없는 추격 전을 단념했어야만 했다.
하지만 슬슬 오기가 발동하기 시작한 패력검제는 이를 악물고 추격을 계속했다. 왜냐하면 이것은 자신의 자존심이 걸려 있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꼭 서로 간에 경주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대로 그냥 물러선다면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무공에도 한참 밀리지만, 경공술까지 뒤 처진다는 것을 그는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다.
과거 사부께서 세상을 떠나실 때,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경공술이 뛰어나다는 점 하나였다. 그 때문에 그는 화경에 오른 후에도 지속적으로 경공 술을 갈고닦았다. 그렇기에 그는 상대가 자신보다 한 단계 높은 경지를 개척했다고 할지라도 결코 경공에서만큼은 뒤지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것이 무너지려 하고 있었다.
“이익! 저놈도 사람일 테니 지칠 때가 오겠지. 아니, 저놈도 나처럼 악착같이 달리고 있을게야. 암. 그렇고 말고.”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고, 공력 또한 차츰 고갈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패력검제는 그것을 무시했다.
저 앞쪽으로 시커먼 물결이 출렁이는 넓은 강이 나타났다. 워낙 전속력으로 달려가고 있는 만큼 그가 앞쪽에 강이 있음을 인지하고 얼마 지나지도 않아 강은 그의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는 속력을 줄이지 않았다.
패력검제는 등평도수의 경공술을 이용하여 놀라운 속도로 강물 위를 내달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이 장면을 조령이 봤다면 기절초풍할 만큼 놀랐을지도 모르지만, 그는 그런 잡생각을 할 여유조차 없었다.
내달리기 시작한지 이제 1시진이 다되어가는 것이다. 화경이라는 지고한 경지를 개척한 그였음에도 불구하고 호흡은 이미 하수들의 그것마냥 거칠어진지 오래였 다.
“헉헉! 질 수 없다. 질 수 없어. 헉헉! 사부님의 이름을 걸고… 결코… 질 수 없음이야.”
처음보다는 그 속도가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패력검제의 신형은 엄청난 속도로 어둠 속을 질주하고 있었다. 달려가는 그의 입속은 바짝바짝 말라 들어가다 못해, 단내까지 풍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