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23권 1화 – 꽃보직 남경 분타주
꽃보직 남경 분타주
남경으로 황도(皇都)를 이전한 후, 개방에서는 전 중원에서 남경 분타주만큼 팔자 좋은 보직이 없다는 말이 은연중에 나돌고 있었다. 과연 그 말이 사실일까? 언뜻 생각해 봐도 남경 같은 대도시의 분타주인 만큼 그가 할 일은 엄청나게 많아 보인다. 비록 오랑캐의 침략으로 대륙의 반을 잃었지만 남경은 송제국의 황제가 있는 곳이다. 당연히 황제를 모시는 수많은 고관대작들이 즐비하고, 또 송제국을 지탱하는 힘인 군부의 중추 추밀원(樞密院)까지 있다. 무림의 정보통을 자처하는 개방으로서는 이곳에서 벌어지는 아주 작은 사건 하나라도 절대 허투루 여길 수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남경 자체가 거대도시인 만큼 복잡다단한 사건들이 줄줄이 벌어질 테니, 남경 분타주는 몇 사람 몫의 일을 처리해야만 겨우 잠을 잘 수 있을 게 분명했다.
물론 이건 언뜻 생각해 봤을 때 나올 수 있는 결론이고,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현재 송 황실의 권위는 땅바닥에 떨어진 상태였다. 황명에 의해 움직일 수 있는 병력이라고 해봐야 2만 명의 황병이 고작이다. 물론 황군 전체 병력은 5만이지만 적어도 3만 명 정도는 황궁 수비를 위해 남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각지에 있는 군벌에게 명령을 내린다고 해 봐야 그 말이 씨알이나 먹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결국 송 황실에서 떠들어 대는 것은 대부분 탁상공론 에 지나지 않기에 구태여 알아내기 위해 노력할 만한 가치도 없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과거처럼 남경 시내에서 복잡다단한 사건이나 사고가 줄줄이 터지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황도를 남경으로 이전한 후, 황군들은 치안 유지를 위해 황 도 내에 존재하는 모든 무림방파들을 도시 밖으로 내쫓아 버렸다. 금과 내통한 첩자나 자객 등 불온한 자들이 들어와서 활동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황실 쪽에서 먼 저 무림맹에 양해를 구해놓은 상태였기에, 작은 문파들로서는 감히 거부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야만 했던 것이다.
문파들이 없다 보니 세력 다툼도 없었고, 강력한 황군의 존재로 도시 전체가 조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무법천지나 다름없는 다른 도시들과는 달리 남경은 매우 평온한 상태였다.
황궁에서 나오는 정보는 쓸만한 것이 거의 없고, 남경에서 치고받던 무림세력들은 다 떠나 버렸고……. 몇몇 뒷골목 주먹패들이 남아 은밀히 세력을 키우며 이권 다툼을 벌이고 있기는 했지만, 말 그대로 조무래기들이었다. 자칫 소란을 피우다 황병들의 눈에 띄는 날에는 조직 자체가 거덜나고 마니, 뒷골목 주먹패들은 숨소 리조차 죽이며 살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이유로 개방의 남경 분타는 중원에서 가장 할 일이 없는 분타로 전락해 버렸고, 개방 내에서 남경 분타주야 말로 최고의 꽃보직이라 인정받게 된 것이다. 아 무리 세상이 어수선하다지만 남경은 모든 물자가 넘쳐나는 황도가 아닌가. 동냥으로 걷어 들이는 음식은 배터지도록 먹어 대도 남아돌 지경이니, 동냥과 구걸이 본 업인 개방의 거지들로서는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생활이었다.
“타주님, 총타에서 공문이 내려왔습니다.”
햇볕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자리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던 남경 분타주 독두개(禿頭芍)는 갑작스런 큰 소리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깼는지, 눈곱이 잔득 낀 눈으로 거지를 바라보며 퉁명스럽게 물었다. 그 목소리에는 곤한 잠을 자고 있는데 왜 깨웠냐는 약간의 노여움과 나른함이 섞여 있었다.
“뭐야? 새꺄.”
거지는 문서를 독두개에게 내밀며 공손하게 대답했다.
“총타에서 공문이 내려왔습니다.”
연신 하품을 하면서도 자신의 낮잠을 깨운 거지를 곱지 못한 시선으로 흘겨본 독두개는 곧이어 공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타구니를 벅벅 긁으며 공문을 읽어 내 려가던 독두개의 입에서 퉁명스러운 말투가 흘러나왔다.
“빌어먹을! 이번에는 또 뭐야?”
중원 곳곳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혈겁이 자행되고 있는 만큼, 전 개방도들은 작은 것도 허투루 여기지 말고 정보 수집에 힘쓰라는 지시였다. 투덜거리던 독두개의 얼굴에 갑자기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남경에는 지금 개방 외에 다른 문파가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누굴 감시하고, 또 무슨 정보를 얻기 위해 뛰어다니라는 말인가?
잠시 허공을 응시하던 독두개의 얼굴에 만감이 교차했다. 개방의 장로가 되어 폼 나게 한번 살아 보겠다던 꿈 때문에 정신없이 뛰어다니던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 기 때문이다. 허구한 날 배 쫄쫄 굶어 가며 정신없이 일만 했었다. 하지만 아무리 일을 해도 개방의 장로가 된다는 것은 요원하기만 했다.
까마귀가 부러워할 정도로 새까맣던 그의 머리가 눈이 부실 정도의 대머리가 되었고, 그 때문에 독두개라는 별호가 붙을 즈음에서야 마침내 그는 꿈을 버렸다. 하 지만 그래도 좋았다. 역시 거지 팔자가 상팔자라는 걸 깨달은 후였기 때문이다. 편안한 생활에 젖어 버린 독두개는 내세에 다시 태어나도 남경 분타주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요즘 행복했다.
“저…, 어떻게 할까요?”
하지만 곧이어 들려오는 물음에 독두개의 얼굴에서 미소는 사라졌고, 대신 짜증만이 남았다. 독두개는 거지를 매섭게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이런 망할 자식! 아무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감히 노부의 낮잠을 깨워? 이 새끼, 너 한번 죽도록 맞아 볼래?”
거지는 쭈뼛쭈뼛하면서도 할 말은 다했다.
“저, 그래도 상부에서 내려온 공문인데……..”
“여기서 하루 이틀 산 것도 아니고…, 멍청한 놈 같으니라구. 한번 생각을 해 봐라, 새꺄. 남경에 이렇다 할 만한 문파가 남아 있는 게 있냐?”
“본방이 있지 않습니까. 혹 불온세력이 본방을 노린다면.”
더 이상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독두개는 거지의 머리통을 거칠게 쥐어박으며 소리쳤다.
“미친놈! 겨우 거지 새끼 몇 때려잡겠다고 황군 5만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는 황도에 쳐들어와? 너 같으면 그런 미친 짓을 하겠냐? 앙?”
거지는 흠칫한 표정으로 고개를 도리도리 내저으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뇨.”
독두개는 짜증스런 표정으로 거지의 머리통을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며 윽박질렀다.
“아무리 빌어먹는 놈이라지만 대가리 좀 굴리며 살어!”
거지가 아무 대답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자, 독두개는 신경질적인 어조로 소리쳤다.
“다음에 또 이런 쓸데없는 거 가지고 내 낮잠을 방해했다간 그날이 바로 네놈 제삿날이 될 줄 알아! 알겠냐?”
“넷!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타주님.”
잠은 이미 깨 버린 상태이기에 독두개는 보고를 마치고 나가려던 거지에게 소리쳤다.
“가서 술이나 가져와! 한잔하고 다시 자든지 해야지, 젠장……”
잠시 후 술상이 들어왔다. 뭐, 거지의 술상이라고 해 봐야 커다란 술 한 항아리에 술잔 그리고 구걸로 얻은 몇 가지 안주가 다였지만 말이다. 기갈이라도 들린 듯 한 사발 가득 술을 떠서 벌컥벌컥 들이켜던 독두개는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공문을 받아 들고 지금쯤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고생하고 있을 다른 분타주들의 처지를 생각하니 너무나도 통쾌했던 것이다.
“불쌍한 새끼들. 그러기에 줄을 잘 섰어야지.”
물론 독두개의 팔자가 처음부터 이렇게 좋았던 건 아니다. 독두개가 이곳에 왔을 때, 남경은 그리 좋은 부임지가 아니었다. 거대한 남경의 덩치만큼이나 무척이나 혼란스러운 곳이었던 것이다. 수십 개가 넘는 군소방파들과 수백 개에 달하는 뒷골목 주먹패들이 그 소란통의 주역이었다. 누구 하나 완벽하게 남경을 장악하지 못 하고 있다 보니, 하루가 멀다 하고 살인 사건이 벌어질 정도로 아수라장이었다.
그리고 그런 피래미들이 얽혀 있는 사건들에 대해 아무리 철저히 조사해서 보고서를 올려 봐야 상부에서는 그 누구도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무림에 아무런 영 향도 미칠 수 없는 그런 시시한 사건들이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래도 정보 수집을 게을리 할 수는 없었다. 그런 시시한 사건들이 간혹 커다란 사건으로 비화되 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남경 분타는 할 일만 많고 돌아오는 것은 하나도 없는 그런 곳이었다. 하지만 요 몇 년 사이에 이렇게 일하기 좋은 곳으로 바뀌었으니, 정말 사람 팔자라는 것이 어찌 바뀔지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때 또 다른 거지 하나가 누군가를 데리고 독두개에게로 다가왔다.
“타주님, 저 사람이 타주님을 뵙고 청할 게 있다고 하는뎁쇼.”
“청을 한다고?”
독두개는 술잔을 내려놓고 술기운이 돌기 시작하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부하 놈이 데려온 사내를 바라봤다. 얼핏 보기에도 사내는 상당한 수준의 무공을 익힌 자였 다. 그런데 이런 자가 왜 자신을 찾아왔을까? 상대의 속셈을 알 수 없었던 독두개는 떨떠름한 음성으로 질문을 던졌다. 평소 욕설을 입에 달고 사는 그였지만, 처음 보는 손님 앞에서 경박한 모습을 보일 정도로 어수룩한 독두개가 아니었기에 짐짓 점잖은 어조로 물었다.
“무슨 일로 노부를 찾아왔소?”
사내는 가볍게 포권을 하며 대답했다.
“저는 악비 대장군을 호위하여 이곳에 온 사람입니다.”
악비 대장군을 호위해서 왔다면 군부에 소속된 인물이거나 아니면 양양성에 집결해 있는 무림연합 소속의 무사일 것이다. 아마 그 때문에 부하 놈이 차마 거절하 지 못하고 이자를 자신에게 안내해 온 모양이다.
독두개는 사내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아는 척을 했다.
“아, 악비 대장군. 그저께 도착하셨다고 들었소이다. 그런데 그런 분이 무슨 일로 노부를 찾으셨습니까?”
“한 가지 부탁할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이걸…….?”
사내는 품속을 뒤져 금속으로 만들어진 작은 대롱 같은 걸 다섯 개나 꺼내 독두개에게 건네주며 말을 이었다. 대롱의 수가 다섯 개인 것을 보면, 전서구 다섯 마리 를 날려 달라는 말이다. 전서구가 날아가는 도중에 매한테 잡아먹히거나 실종되는 사태가 종종 벌어졌기에 보통 두세 마리를 한꺼번에 날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전서구를 다섯 마리나 날려 달라는 것을 보면 정말 중요한 일인 모양이다.
“양양성에 최대한 빨리 보내 주셨으면 합니다. 다른 곳이라면 몰라도, 개방이라면 이것들 중 하나를 내일까지 양양성에 보내 줄 수 있겠지요?”
현재 남경에서 양양성까지 가장 빠른 연락망을 갖추고 있는 곳은 개방뿐이었다. 우선 양양성과 그리 멀지 않은 인근 분타로 전서구를 날리고, 그 분타의 전령이 대 롱을 가지고 양양성까지 뛰어간다. 이런 연락 방식은 중원 각지에 수많은 분타들을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깔아 놓은 개방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양양성이라……. 그럼 이걸 누구에게 전해 주면 되겠소?”
그러면서 독두개는 사내의 눈치를 힐끔 살폈다. 이미 몸에 깊이 배어 버려 자신도 모르게 뭔가 정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던진 질문이었다. 독두개 는 사내가 양양성에 모여 있는 문파들 중에서도 꽤 세력 있는 문파의 제자일 것이라고 내심 정의를 내린 상태였다. 그렇게 생각할 만큼 사내의 기도는 잘 정리되어 있었다.
“양양성 북단에 위치한 매화 장원에 전해 주십시오.”
“매화 장원? 알겠소이다. 꼭 전해 드리도록 하지요.”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말을 끝낸 사내는 품속을 뒤져 전표 한 장을 꺼내 독두개에게 건넸다. 독두개는 무림을 위해 함께 싸우는 처지에 이런 걸 받을 이유가 없다고 딱 잘라 거절했지만, 사내는 끝내 전표를 독두개의 손에 쥐어 준 후에야 자리를 떴다.
“허, 제법 예의라는 걸 아는 놈이로구먼. 아마 뼈다귀가 굵은 명문 출신이라 그러겠지. 그런데 매화 장원이라……? 양양성에서 장원을 할당받았을 정도라면 제법 큰 문파일 텐데, 어떤 문파인지 기억에 없네.”
고개를 갸웃거리던 독두개는 부하 한 놈을 불러서 명령을 내렸다.
“이걸 양양성 북단에 위치한 매화 장원에 지급으로 보내라. 그리고 매화 장원에 기거하고 있는 문파가 어딘지 알아 보고, 나한테 회신해 달라고 덧붙이도록 해라. 알겠냐?”
“옛, 타주님.”
부하가 전서구를 날리기 위해 밖으로 나가자 사내에게서 건네받은 전표를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 번 쳐다보는 독두개였다.
“허, 자식. 손 하나는 허벌나게 크구만.”
안 받겠다고 사양하기는 했지만, 사실 그도 다른 사람처럼 돈이 필요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거지라고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거나 혹은 아름다운 기녀를 품고 싶 은 생각이 왜 없겠는가? 하지만 절대 구걸로는 맛난 음식과 아름다운 여인을 품을 수 없다. 더군다나 그는 아직 정력이 팔팔한 중년이 아닌가. 생각지도 못했던 부 수입에 독두개의 입이 찢어질 정도로 함박 벌어졌다.
“흐흐흐, 오랜만에 매향이 년 궁둥이나 두드리러 가 볼까?”
매향이의 허연 궁둥이를 떠올리며 음탕한 미소를 짓던 독두개가 자신의 사타구니를 주물럭거리고 있을 때, 이번엔 늙은 거지 하나가 달려 들어왔다. 부분타주인 소팔개(笑八)였다.
“타주님.”
독두개는 사타구니에 올라가 있던 손으로 은근슬쩍 술잔을 잡으며 시치미를 뚝 뗐다. 어느샌가 전표는 그의 품속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오, 자네, 잘 왔네. 마침 술을 마시던 중인데 같이 한잔하지.”
“그거 좋지요.”
환한 표정으로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던 소팔개는 이곳에 오게 된 용건이 떠올랐는지 급히 말을 꺼냈다.
“참, 타주님. 황궁에서 사람이 왔었습니다.”
황궁에서 거지소굴에 사람을 보내올 이유가 없었기에 독두개는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황궁에서…, 왜?”
“지선 스님께서 서신을 보내오셨습니다.”
그러면서 소팔개는 독두개에게 잘 접힌 서신을 건넸다. 지선 스님이라면 현재 황궁 수비를 담당하고 있는 아미파의 1대제자로서, 꽤나 고위급에 속하는 인물이다. 그런 그녀가 서신을 보내왔다면 절대 무시할 수가 없다.
급히 서신을 받아 읽던 독두개는 엉덩이에 손을 넣어 벅벅 긁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내용이 꽤나 황당했기 때문이다. 마교 무사들이 악비 대장군이 실종되었 다며 황궁에 난입한 것을 자신이 붙잡아 뒀으니, 그들의 신원을 확인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대체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야? 지선 스님이 술이라도 한잔하고 쓰셨나? 황궁에 마교 무사들이 난입했다니…….”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면 소팔개도 이미 서신을 읽어 본 모양이었다.
“내용이 좀 엉뚱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예 무시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게 만약 사실이라면……..”
“그렇다면 양양성에 사람을 보내 이쪽으로 마교가 무사들을 파견한 일이 있는지 알아 보라는 말인가? 젠장, 별 괴상망칙한 일을 다 부탁하고 지랄이야.” 독두개의 반응에 소팔개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꾸했다.
“그럴 필요까지야 있겠습니까? 악비 대장군이 묵고 계신 숙소로 사람을 보내 보면 되죠. 대장군께서 행방불명되신 게 맞는지 그것부터 확인하는 게 순서가 아니겠 습니까?”
그런 소팔개의 대꾸에 독두개의 얼굴이 왈칵 일그러졌다. 황군이 우글거리는 황도에서 송을 지탱하는 악비 대장군이 실종되었다고 한다면 그 누가 믿겠는가? 더 군다나 악비 대장군의 행방을 수소문하겠다며 마교의 무사들이 황궁에 침입했다니. 이건 보나마나 개방에 뭔가 시켜 먹으려고 하는 아미파의 잔대가리일 게 분명 했다.
“빌어먹을! 우리 개방이 자라대가리인 줄 아나!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둘러대며 부려먹으려고 들다니…, 젠장!”
소팔개는 독두개가 성깔을 부리자 조용히 술잔을 들어 홀짝거렸다. 이럴 때 괜히 나섰다가는 자신까지 줄초상이 난다는 것을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참을 투덜거리던 독두개는 거칠게 술잔을 들어 마신 뒤 중얼거렸다.
“대장군을 수행하는 놈들이 대장군의 행방을 순순히 말해 줄 것 같아? 보나마나 어딘가에서 기녀 궁둥이나 토닥거리며 은밀한 밀담을 나누고 있을 게 뻔한데.”
“가만히 손 놓고 있기 보다야 똘똘한 녀석 몇 뽑아서 그쪽으로 보내 보는 것도 괜찮지 않습니까? 혹시 압니까? 그러다 군부의 일급 정보가 걸려들지.”
“하긴 그것도 그렇군. 그럼 똘똘한 놈 몇 뽑아서 대장군 숙소 쪽으로 보내 봐.”
“이미 보냈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정보를 수집하는 척하면 아미파에서도 뭐라 그러지는 못할 겁니다.”
아무리 요즘 할 일이 없어 놀며 지내는 남경 분타라고는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눈썹 휘날리며 뛰어다녀도 시원치 않을 만큼 일거리가 넘쳐 나던 곳이었다. 그 런 곳의 부분타주가 능력이 없을 리가 없었다.
독두개는 부분타주의 일 처리에 흐뭇해하며, 상대의 술잔에 술을 가득 따라 준 뒤 말했다.
“이래서 내가 자네를 좋아한다니까. 자, 귀찮은 일은 대충 끝난 것 같으니 오랜만에 같이 술이나 함께하지. 자, 마시자구.”
술을 마시던 두 사람은 얼큰히 취기가 오르자 햇살이 따사로이 내리쬐는 양지쪽으로 자리를 옮겨 낮잠을 즐겼다. 전쟁의 소용돌이가 대륙을 감싸고 있음에도 이 곳은 너무나 평화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