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23권 2화 – 찬황흑풍단의 흔적
찬황흑풍단의 흔적
사내의 청을 받아들여 양양성으로 전통을 보낸 후 3일이 지나자 양양성에 파견 나가 있던 개방 분타로부터 독두개에게 보내는 공문이 도착했다.
“큰일났습니다, 타주님!”
한쪽 구석에 앉아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졸고 있던 독두개는 부하의 호들갑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깼다.
“또 뭐가 큰일이라는 거야? 새꺄. 너, 별 볼일 없는 일이라면 아예 껍데기를 벗겨…….”
“양양성에서 지급으로 보낸 공문입니다. 그런데 발신자가 부운걸개(浮雲乞장로님이십니다.”
부운걸개 장로가 보냈다는 말에 독두개의 안색이 홱 바뀌었다. 부운걸개 장로 같은 거물이 자신에게 공문을 보내올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리 내놔 봐!”
빼앗듯이 공문을 받아 읽던 독두개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마교에서 대장군의 호위를 위해 무사들을 투입했다고 한다. 그리고 악비 대장군의 실종이 사실인지, 대장군의 본영이 눈에 보일 정도로 술렁거리고 있다는 말도 포함되어 있었다. 공문 말미에는 최대한 빨리 악비 대장군의 실종이 사실인지 알아 보고, 만 약 그게 사실이라면 전력을 다해 그를 찾으라는 지시가 적혀 있었다.
독두개는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정신없이 외쳤다.
“제자들을 모두 소집해! 비상이야! 비상!”
얼마 지나지 않아 개방의 남경 분타는 마치 벌집이라도 쑤셔 놓은 듯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분타 이곳저곳에 늘어져 있던 거지들이 남경 시내 곳곳으 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악비 대장군의 실종이라는 일대 사건에 남경 분타의 전 제자들이 매달린 지도 벌써 4일이 흘렀다. 엄청난 인원이 동원되어 남경 전역을 이 잡듯이 샅샅이 뒤졌음 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쓸 만한 정보는 하나도 건져 낸 것이 없었다. 그나마 독두개가 처리한 일이라고는 아미파에 귀하들이 구금하고 있는 자들은 진짜 마교도 들이니 풀어 주라’고 통보한 일뿐이었다.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상부에서 주목하고 있다. 그런데도 작은 정보 하나 건진 게 없다. 악비 대장군의 실종에 대한 이렇다할 정보조차 얻지 못한 독두개로 서는 하루하루가 피가 마르는 것만 같았다. 이렇게 되면 상부에서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진급은 고사하고, 무능한 인물로 낙인 찍혀 산골 오지로 좌천될 가 능성마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독두개 자신의 자존심이 이를 허락지 않았다.
초조해지기 시작한 독두개는 휘하의 거지들을 연일 닦달하여 족치기 시작했다. 그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욕설도 점점 더 원색적이며 걸쭉해졌지만 그런다고 없는 정보가 어디서 튀어나오겠는가?
악비 대장군에 대한 작은 실마리조차 찾지 못한 독두개는 잠도 오지 않았다. 그날도 수하들이 쓸어온 자잘한 정보들을 뒤적거리고 있을 때 부분타주 소팔개가 뛰 어 들어왔다. 그도 며칠 동안 잠을 자지 못했는지 두 눈이 벌겋게 변해 있었다.
“의외의 인물이 황도에 나타났습니다, 타주님.”
“그 새끼가 누군데?”
악비 대장군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터질 것 같은 독두개였기에 그와 관련된 정보가 아니라서 그런지 반응이 심드렁하기만 했다.
“왕태위(泰偉) 말입니다. 표풍검(懦風劍) 왕태위.”
“왕태위? 그 새끼가 왜?”
독두개가 소팔개의 말에 흥미를 보이는 것은 당연했다. 왕태위는 공동파의 1대제자들 중 가장 뛰어난 실력자로, 차기 장문인으로 주목받고 있는 인재였다. 그리고 그가 지금 경호하고 있어야 할 인물은 바로 재상 진회였다. 그런데 그가 재상의 경호는 하지 않고, 왜 황도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말인가?
“예, 무슨 일인지는 알 수 없지만 관도 인근을 전속으로 경공술을 전개해서 내달렸답니다.”
“흐음, 그것 참 요상하네.”
잠시 말없이 생각에 잠겨 있던 독두개는 갑자기 뭔가 떠올랐다는 듯 소팔개를 향해 물었다.
“그 영감탱이는 지금 어디에 있지?”
영감탱이가 바로 재상 진회를 말한다는 것을 눈치 챈 소팔개는 자신이 아는 대로 보고했다.
“남경으로 상경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남창에서 며칠 유숙한 후, 갑자기 모든 일정을 취소했다고 합니다.”
“흠…, 어쩌면 그 영감탱이가 이번 일을 꾸민 걸 수도 있겠군. 안 그래?”
“글쎄요? 오히려 그럴 가능성이 떨어진다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재상이 이번 일을 꾸몄다면 기밀 유지를 위해 모든 일을 처리할 수족을 여기에 남겨 뒀을 게 아닙니까? 아무리 자신의 호위를 맡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런 민감한 사안에 외부인인 왕태위를 끌어들인다는 건 위험 부담이 너무 크죠.”
“흠, 그건 자네 말이 옳군. 하지만 왕태위가 아무리 경공술이 뛰어나다고 해도 남창에서 여기까지 거리가 얼마나 머나? 거리로 따진다면 그 영감탱이는 우리들보 다 훨씬 더 빨리 대장군의 실종 소식을 입수했다고 봐야 할 거야. 그런 다음 그 대책을 전할 전령으로 왕태위를 써먹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소팔개는 그 말이 그럴듯한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지 않다면 재상을 호위하고 있어야 할 왕태위가 전속으로 경공을 전개하며 남경에 나타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악비 대장군이 실종된 지금, 갑작스런 왕태위의 등장은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공교로웠다.
“현재로서는 그게 가장 현실성 있는 추론인 것 같습니다, 타주님.”
“어쨌건 왕가 놈에게 꼬리를 하나 붙여. 빠릿빠릿한 놈으로 말이야. 그놈이 어디서 누구를 만났는지 눈에 불을 켜고 조사하라고 해.”
“이미 그렇게 처리했습니다.”
“그거 잘했군.”
몇 시진 뒤, 꼬리로 붙여 둔 거지의 보고를 받은 독두개는 왕태위에 대한 의구심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왕태위가 참지정사(參知政事) 섭평의 저택으로 달려 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에서 나왔고, 또 공동파가 황도에 구축해 놓은 분타에 들러 한 시진 정도 머문 후 재상이 있는 남창으로 되돌아갔다는 보고였다. 황궁의 경비를 책임진 것이 아미파라면 고관들의 신변 보호를 책임지고 있는 것이 공동파다. 그런 만큼 공동파의 제자가 참지정사 섭평의 집을 들락거리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시기였다. 악비 대장군이 실종되어 어수선한 남경에, 재상을 호위하고 있어야 할 왕태위가 무슨 일로 혼자 온 것일 까? 그리고 섭평의 집에는 왜 간 것일까? 꽤나 수상쩍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껏 제대로 된 그 어떤 정보도 얻은 게 없었던 독두개는 옳다구나 하며 곧바로 이 사실을 상부에 보고했다. 만약 재상 진회가 악비 대장군의 실종에 관련되어 있다면 자신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기녀의 궁둥이를 두드리며 밀담을 나누고 있을 거라고 생각됐던 악비 대장군의 실종은 재상 진회의 개입 여부로 전혀 새로운 상황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가롭기 그지없던 남경은 점차 대륙을 뒤흔들 태풍의 눈으로 변해 가기 시작했다.
* * *
묵향이 남경에 도착한 것은 악비 대장군의 실종 사실이 양양성에 보고된 날로부터 8일 후였다. 마화로부터 연락을 받은 후, 만현에서부터 남경에 이르는 그 먼 길 을 그는 겨우 4일 만에 주파했던 것이다. 그러자면 하루에 최소한 1천 리를 주파해야만 하는 강행군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보니 남경에 도착했을 때, 그의 모 습은 상거지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얼굴은 희뿌연 먼지를 잔뜩 덮어 써서 기괴한 몰골이었고, 의복은 먼지와 땀에 범벅이 되어 더럽기 짝이 없었다.
그는 마화와 만현을 조금 벗어난 후 헤어졌다. 양양성에서 그곳까지 3일 동안 쉬지 않고 달려온 마화는 같이 남경까지 오기에는 너무나도 지쳐 있었다. 그래서 묵 향은 그녀에게 양양성으로 돌아가 추후 대책을 수립하도록 지시한 후 혼자 남경으로 달려온 것이다.
남경은 다른 도시들과 달리 조금 특이한 방어망을 갖추고 있었다. 돌로 만든 높은 성벽으로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는 게 아니라 도시 주위를 감싸고 있는 여러 개 의 언덕에 토성(土城)들을 쌓아 방어벽을 형성해 놨다. 그렇기에 남경으로 통하는 관도를 따라 걸어가다 보면, 성문을 통과할 일은 없었지만 황병들이 군데군데 설 치해 놓은 검문소와 맞부딪치게 된다.
묵향이 상거지와 같은 꼴로 남경으로 통하는 서쪽 관도 상에 모습을 드러내자 성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고 있던 사람들이 힐끔거리며 쳐다보았다. 묵향의 지저 분한 몰골에 그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거지면 거지답게 성의 개구멍으로 들어가든지 아니면 한쪽에 안 보이게 쭈그리고 앉아 있다가 나중에 인적이 드물 때 들어가 야 하는데, 당당하게 검문소 앞으로 걸어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도 감히 뭐라 하며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그 이유는 묵향의 허리에 장검이 매달려 있었기 때문 이다.
하지만 검문소 앞을 지키던 병사들은 묵향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호패를 확인하며 성안으로 사람들을 통과시키던 군관(軍官)이 묵향을 불러 세운 것이다. “이봐, 너!”
안 그래도 좋은 일로 이곳까지 달려온 것이 아닌 묵향인지라 건방지기 짝이 없는 군관의 말투에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그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군관 은 묵향의 허리에 매달려 있는 검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오만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이런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온 놈을 보았나! 황도에는 무기를 지니고 들어가지 못한다는 사실도 모르느냐?”
그러면서 군관은 뒤에 서 있던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저놈을 당장 체포해라!”
“옛!”
군관과 함께 포진하고 있던 병사들 중, 10여 명이 칼과 창을 들고 달려들었다. 군관 뒤쪽에는 황병들의 주력 무기인 신비궁(神臂弓)이라 불리는 휴대용 쇠뇌를 지 닌 병사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곧이어 이 일이 마무리 지어질 것이라 생각했는지 신비궁을 장전하지도 않고 마치 재미난 볼거리라도 생겼다는 듯 구경에 열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태는 그들의 예상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곧 제압될 줄 알았던 상대가 의외로 빡세게 나왔기 때문이다.
“이건 또 뭐야? 이것들이 정말 죽고 싶나?”
퍼퍼퍼퍽!
몇 차례의 격타음이 들리고 난 후 군관의 안색은 새파랗게 질려 버렸다. 자신의 명령을 받고 괴한에게 달려들던 10여 명의 병사들이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길바닥 에 나뒹굴었기 때문이다. 상대가 어떻게 했는지는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단지 어느 순간 부하들이 모두 바닥에 쭉 뻗어 신음성만 흘리고 있었다.
“무, 무림인?”
멍청하게 서 있던 병사들 중 정신을 차린 두 명이 다급히 신비궁을 장전하려고 했지만, 활과 달리 쇠뇌라는 것이 그리 간단하게 장전되는 게 아니다. 특히나 부들 부들 떨리는 손으로 장전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묵향은 병사들에게로 다가가 신비궁의 활줄을 쓱 잘라 버리며 중얼거렸다.
“이런 거 가지고 장난치면 위험하지.”
그런 묵향을 향해 군관이 악을 쓰며 외쳤다.
“무, 무림인인 모양인데, 감히 황상 폐하의 군대에 손을 대다니. 네, 네놈의 악행에 대해 무, 무림맹에 알려 엄히 문책하도록 하리라!”
물론 주둥이로만 위협하는 것일 뿐, 군관의 발은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그가 무림맹을 들먹여 위협한 것은 그렇게 하는 것만이 무림인을 상대로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위협은 상대방에게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묵향은 같잖다는 듯 살기 어린 미소로 응대했다. 안 그래도 여기까지 쉬지 않고 달려오느라 짜증이 머리끝까지 가득 찬 상태다. 그러던 차에 고맙게도 상대방에서 먼저 이렇게 시비를 걸어 주다니.
“호오, 무림맹에 알려 날 문책하겠다고? 시비는 네놈이 먼저 걸어 놓고, 누구를 문책한다는 말이냐?”
“화, 황도에 무기를 휴대하고 들어갈 수 없음은 무림맹에도 이미 통보해 놓은 상태다. 그런데 어찌하여 네놈은…….?
“그래? 그럼 실컷 문책해 봐라. 나한테 두들겨 맞은 것까지 포함해서 말이야.”
퍽!
묵향의 손은 겁에 질려 끝까지 주절거리고 있던 군관의 입을 모질게 가격했고, 한 대 맞은 군관은 뒤로 벌러덩 나자빠져 버렸다. 땅바닥에 쓰러져 거품을 물고 있 는 군관의 입가에는 피에 젖은 이빨 조각 몇 개가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별 시덥잖은 놈이 시비를 걸고 있어. 안 그래도 짜증나 죽겠는데…….”
이때 검문소가 잘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있던 언덕 위 토성에서 요란한 경고성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수백에 달하는 황병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것이 보였다. “젠장, 귀찮게 됐군.”
묵향은 최대한 빨리 경공술을 펼쳐 성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런 묵향의 행동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있는 인물이 있었다. 다 떨어져 가는 허름한 옷차림을 하고 거적때기 위에 앉아있는 인물. 남경 시내로 들어오는 서쪽 관도를 감시하는 임무를 맡고 있는 거지였다.
그는 자신의 시야에 묵향의 모습이 들어오자마자 강한 호기심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이곳 황도는 일반인이 무기를 휴대한 채 들어올 수 없는 곳이다. 그런데도 저 토록 당당하게 걸어오는 것을 보면 군부 혹은 관부에 소속된 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걸 확인해 줄 인물들이 저 앞 검문소에 포진해 있었다. 만약 군부 쪽에 소속된 자라면 신분을 증명하는 명패를 군관에게 제시할 게 틀림없다. 그리고 웬만한 명 패는 자신이 알아볼 수 있으니, 상대의 정체를 금방 파악해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곧이어 벌어진 사태는 그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는 것이었다. 괴한은 검문소에 포진한 황병들을 일순간에 곤죽으로 만들어 버린 후, 엄청난 속도로 경공술 을 전개하여 시내로 들어가 버렸던 것이다.
“허어, 거 누군지 모르겠지만 정말 화끈한 놈일세. 그나저나 대장군의 실종 때문에 황군들이 독기가 잔뜩 올라 있는 상황인데 저렇게 황군을 건드리다니. 오늘부 터는 몸조심 좀 하는 게 좋겠는걸.”
중얼거리던 거지는 벌떡 일어나 분타를 향해 줄달음을 치기 시작했다. 수상한 자가 나타났다는 것을 보고하기 위해서였다. 오랜만에 굵직한 정보를 물었다는 만족 감 때문이었을까? 그의 발걸음은 아주 활기에 차 있었다. 하지만 그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그가 있는 곳으로 재앙덩어리가 달려 들어갔다는 사실을 말이다.
남경 시내로 들어온 묵향은 먼저 임충 일행이 묵고 있는 객잔으로 갔다. 그들이 어느 객잔에 묵고 있는지는 이미 마화에게 들었기에 그곳으로 찾아가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묵향의 모습에 임충은 기절할 듯 놀라 벌떡 일어섰다.
“교, 교주님!”
“마화한테 얘기 들었다. 그래, 대장군은 아직도 못 찾았나?”
묵향의 질문에 임충은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마치 쥐구멍이라도 옆에 있다면 기어 들어갈 듯이 작은 목소리로.
“송구스럽습니다만…, 그렇습니다.”
“뭔가 조그마한 단서라도 찾아낸 건 없나?”
“며칠 동안 최선을 다했지만…….”
그러면서 임충은 요 근래 자신이 조사한 것들을 묵향에게 보고했다.
“흐음, 짧은 시간이었는데 그 정도까지 조사한 걸 보니 아주 열심히 움직였군. 그런데 내가 가만히 들어 보니 가장 수상한 곳은 황궁인 것 같은데, 왜 거기는 조사 하지 않았지?”
임충은 보고를 올리기가 난처했다. 자신이 아는 교주의 성격이라면 그 일을 듣자마자 아마 황궁 내부를 발칵 뒤집어 놓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때 일을 보고해야 하나? 아니면 그냥 묻어 둬야 하나.”
머뭇거리는 임충을 보고 묵향은 무슨 일이 있었음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임충은 과거 군부에 있었던 사람이다. 그런 만큼 황실에 대한 충성심이 아직 살아 있 는 것이 당연했다. 묵향은 임충이 머뭇거리는 것이 아마 황실과 자신이 충돌을 일으키지 않을까 고민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조금의 가감도 없이 있는 대로 말해도 좋다. 황실과 충돌을 일으킬 생각은 전혀 없으니까.”
묵향이 이렇게까지 말하자 임충은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사실 황궁을 조사하러 사람을 보내기는 했었습니다.”
그리고는 며칠 전 자신이 황궁 안을 조사하기 위해 투입했던 부하들이 어떤 꼴을 당했는지 조심스럽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모든 말을 다 들은 묵향은 고개를 주억 거리기는 했지만 약간은 언짢은 표정이었다.
“흐음, 그래? 며칠 뒤 부하들은 무사히 돌아왔다 이거지?”
“예, 교주님. 그렇지만 그 일 때문에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아미파의 승려들도 그때까지 대장군이 행방불명되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 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걸 보면 황실 쪽은 이번 일과 아무런 상관이 없었던 게 아닐까요? 지금 황군들도 검문, 검색을 강화하며 열심히 대장군의 행방을 찾고 있는 걸 보면 아마 제 생각이 맞을 겁니다.”
“하긴, 그럴 수도 있겠지.”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묵향의 목소리에는 아직까지도 의심이 완전히 지워진 것이 아니었다. 사실 어떻게 생각해도 가장 수상쩍은 곳이 황실이었으니 말이다.
“무영문에는 알렸나?”
“예, 하지만 아직까지 그쪽에서도 이렇다 할 정보를 보내온 건 없습니다.”
“그래? 그것 참.”
잠시 이리저리 생각을 하던 묵향은 임충에게 명령했다.
“무영문에 다시 한 번 더 연락을 넣어라. 만약 내일까지 조금이라도 제대로 된 정보를 이쪽으로 넘기지 못한다면, 내가 그쪽의 정보력에 대해 크게 실망할 거라고 말이야. 알겠나?”
“옛, 교주님!”
임충에게 지시한 뒤, 묵향은 미련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아니, 어디를 가시려고……?”
“개방에 잠시 다녀오겠다.”
마치 개방이 마교의 분타쯤 되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기에, 그걸 듣는 임충은 자신이 혹 잘못 들은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느꼈다.
“개방에 말씀이십니까?”
“이곳에도 개방의 분타는 있을 게 아니냐?”
“예, 남경 분타가 있습니다.”
임충은 얼마 전에 묵향에게 연락을 넣기 위해 개방의 남경 분타에 부하를 보냈던 일을 떠올렸다. 그렇기에 그는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분타의 위치를 알고 있는 놈이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시면…….
“괜찮다. 거지소굴쯤 찾는 거야 일도 아니지.”
그렇게 대꾸하며 묵향이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던 임충은 갑자기 다급하게 묵향을 향해 소리쳤다.
“잠깐만요, 교주님. 그렇게 밖에 나다니시면 귀찮은 일이 벌어지게 될 겁니다.”
“그건 무슨 말이냐?”
“황도에서는 일반인이 무기를 휴대하는 것을 엄격히 금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지금은 대장군의 일로 남경 전체에 비상이 걸려 있죠. 그런 만큼. 임충은 묵향의 눈치를 힐끔 살피면서 다음 말을 이으려고 했다. 무기는 무인의 생명인 만큼 묵향이 검을 놔두고 갈 리 없으니 자신이 사람을 개방에 보내어 알아 보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임충의 예상과 달리 묵향은 곧장 검을 풀어 그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그럼 이건 네가 잠시 맡아 두고 있도록 해라.”
묵향의 예상외의 행동에 임충은 얼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예? 예.”
얼떨결에 대답한 임충의 손에는 어느샌가 묵향의 신물(信物)이자 마교의 지존병기로까지 격상되어 있는 묵혼검이 들려 있었고, 묵향의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