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24권 2화 – 만통음제를 구출하기 위한 해결책

만통음제를 구출하기 위한 해결책

장인걸로서는 아쉽게도 묵향은 그가 던진 미끼를 물지 않았다. 만약 묵향이 그때까지도 만현에 남아 있었다면 옳다구나 하고 덥석 물었겠지만, 그는 이미 양양성 으로 돌아가 버린 후였다.

좋아하고 또 존경하던 만통음제의 실종에 묵향은 이성을 냉철하게 유지하기 힘들었다.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최고의 부하들을 모두 불러들여 만통음제의 흔적을 찾았지만, 아무리 해도 어떤 놈들이 그를 건드린 것인지 실낱같은 단서조차 찾아낼 수가 없었다.

범인을 알아야 만통음제를 구출하든지 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도 묵향이 일주일도 채 안 돼서 수색을 중단하고 양양성으로 되돌아온 이유는, 물증이 없다뿐이지 누가 범인인지 뻔한 상황에서 더 이상 시간 낭비나 하고 있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자신들이 만통음제를 납치했다는 헛소문을 퍼트려 묵향의 반응을 살피려 했던 편복대주의 의도는 헛수고로 끝나고 말았지만.

묵향이 생각했을 때, 만통음제와 같은 초절정고수를 건드릴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단체는 현 무림에 몇 되지 않았다.

1. 장인걸

2. 무림맹

3. 혈교 등 제3의 세력

20년 전, 장인걸과 함께 묵향에게 큰 곤욕을 선물했던 망할 새끼들 중 하나가 바로 혈교였다. 그 원한을 참고 넘길 묵향이 아니었기에 중원에 돌아오자마자 부하들 을 동원한 것은 물론이고 무영문에까지 의뢰해 그들의 흔적을 찾았다.

하지만 막대한 시간과 인원을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놈들의 흔적을 찾는 데 실패했다.

그토록 깊숙이 숨어든 놈들이 만통음제처럼 무림에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는 인물을 납치함으로 인해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는 위험을 감수할 리 없다. 만약 세력 확장에 도움이 될 만한 상대, 즉 수라도제 같은 인물을 납치하여 화려하게 무림의 전면에 등장한다면 혹 몰라도 말이다.

두 번째 용의 대상은 무림맹이다. 묵향과 의형제까지 맺고 호형호제하고 있는 만통음제를 배신자라 매도하는 것도 모자라 그를 없애려 하고도 남을 놈들이다. 하지만 놈들이 손을 썼다고 보기에는 시기가 별로 좋지 않았다. 봄이 되면 금나라와의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될 게 뻔한데, 전력의 핵심이 될 고수들 중 하나를 자 신들의 손으로 없애 버릴 리 없다.

더군다나 수라도제까지 빠져나간 만큼 화경급 고수의 필요성은 더욱 증대되어 있는 상황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마지막 남은 가능성은 장인걸뿐이었다.

묵향은 지도 앞에 앉아 인상을 찡그리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흐음…..”

* * *

지도 위에는 노하구 일대에 포진하고 있는 금나라 병사들에 대한 정보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무영문이 막대한 시간과 노력, 그리고 수많은 제자들의 목숨 을 잃어 가며 입수한 귀중한 정보들이다.

문제는 장인걸이 있을 걸로 추정되는 금군 진영의 중심부다. 그곳은 새하얀 백지상태. 어떤 기관이나 진식이 설치되어 있는지, 또 얼마나 많은 고수들이 배치되어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그걸 모르는 이상 정면 공격은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라고 봐야 한다.

설혹 공격이 제대로 먹혀들어간다고 해도 만통음제를 구출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가 어디 갇혀 있는지 알아야 구출 작전을 감행할 수 있을 게 아니겠는가. 한 시진이 넘도록 묵향이 지도를 노려보고 있는 걸 옆에서 지켜보고 있어야만 했던 관지의 마음은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저렇게 묘한 분위기를 잡고 싶으시다면 자기 방에 들어가서 하시지. 하필이면 왜 내 방에 와서 저러고 계시는 건지…….’

하지만 대놓고 항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금군의 동태에 대한 모든 정보들은 관지의 방에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기에, 묵향은 관지가 떨떠름한 표정을 짓 든 말든 계속해서 이 방에 뭉개고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묵향은 이런저런 생각들로 복잡하게 머리를 굴리는 중이기에 자신이 이 방에 들어온 후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옆에서 묵향의 눈치만 살피고 있는 관지에게는 바늘방석도 그런 바늘방석이 없었다. 관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방 안을 육중하게 짓누르고 있던 무거

운 침묵을 깼다.

“뭔가 고민이라도 있으십니까?”

눈치 빠른 관지였기에 교주의 대답이 뭔지 대충은 짐작하고 있었다. 만통음제를 찾는답시고 만현을 뒤지다가 빈손으로 돌아온 후, 여기서 장인걸의 진영이 그려진 지도를 한 시진째 노려보고 있으니 해답은 뻔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관지는 자신의 직감을 애써 부인했다. 왜냐하면 그건 너무나도 위험한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설마 장인걸의 소굴을 향해 돌진해 들어갈 궁리를 하고 계신 건 아니시겠지?”

하지만 관지는 지금 묵향이 만통음제를 구출하기 위해 얼마나 미쳐 있는지 잘 모르고 있었다.

관지의 물음에도 한동안 대꾸가 없던 묵향이 문득 입을 열었다.

“이곳에 대한 정보는 더 없나?”

말을 하며 묵향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바로 백지상태로 남아 있는, 장인걸이 있을 걸로 추정되는 금군 진영의 중심부였다.

“중심부로의 침입은 불가능한 모양입니다, 교주님. 내부로 들어갈수록 더욱 경계망이 조여들게 진영을 구축해 놨기에, 첩자를 침투시킬 방법이 전혀 없는 모양입 니다. 만약 저곳이 병영이 아닌 일반 문파였다면 하인이나 하녀 따위로 위장시켜 첩자를 투입하는 게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장인걸이 있는 곳이라면 그 경계 삼엄함에 어지간한 고수를 잠입시켜 정탐한다는 것도 무리일 뿐만 아니라, 또 진지를 구축해 놓은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잡부 로 위장한 첩자를 끼워 놓기도 어렵다는 말이었다.

관지의 대답을 벌써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 묵향은 별반 실망스러운 표정이 아니었다. 한동안 말없이 지도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묵향이 은근슬쩍 관지를 향해 고개 를 돌렸다.

“흐음……. 만약 말이야. 만약……?”

묵향은 어렵게 말을 꺼냈다. 왜냐하면 그가 계획하고 있는 작전이 자신이 생각해도 말도 안되는 것임을 잘 알고 있으니까.

“예, 말씀하시지요.”

“이곳에 본좌가 지닌 전력을 몽땅 다 투입한다면 승산이 얼마나 있을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관지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버렸다. 혹시나 하던 우려가 현실로 드러난 것이다.

장인걸이 있는 곳을 뚫어져라 노려볼 때 얼핏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교주의 입을 통해 직접 들으니 관지는 너무 놀라서 숨이 다 막힐 지경이었다. 왜냐하면 불을 향해 날아드는 불나방과 같이 무모한 짓이었기 때문이다.

관지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건 자살 행입니다, 교주님.”

자신이 듣고 싶은 대답이 아니었기에 묵향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반박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아니야, 승리할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어. 본좌는 부하들의 능력을 믿거든. 무엇보다 자네 역시 내 작전을 듣는 순간 무모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그건 상대 역 시 마찬가지일 테지. 저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는 만큼,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본좌는 생각하네.”

어이가 없었던 관지는 묵향의 얼굴을 힐끔 훔쳐봤다. 순간적이기는 했지만 그 짧은 순간에 묵향의 눈에 어린 고집을 읽었다. 저 인간은 하겠다고 한 번 마음먹으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하고야 마는 인간이었다. 그게 설혹 문파의 멸망이나 본인의 죽음과 연결되는 한이 있더라도…….

관지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이런 때는 교주의 관심을 다른 쪽으로 돌리는 게 최선의 방책이었다. 현재 교주가 어느 한쪽으로만 너무 깊게 파고들었기에 보지 못 하고 있는 주변 상황을 볼 수 있도록 해 주는 것 말이다.

‘뭐가 있을까? 지금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은…….?

한동안 말없이 서서 머리를 쥐어짜던 관지는 교주가 갑자기 왜 이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문득 만통음제가 떠올랐다. 교주는 만통음제의 실종이 장인걸 쪽에서 뭔가 수작을 부렸다고 생각을 한 것이 분명하다. 그만한 고수를 납치할 만한 세력은 무림맹과 장인걸밖에 없으니 충분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렇다면 교주를 말릴 수 있는 해답은 만통음제에게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참을 고민하던 관지는 결국 그 해답을 찾았는지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쳐들어가는 건 좋습니다. 교주님 말씀대로 어쩌면 승리할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겠지요. 패배할 가능성이 9할9푼이라고 해도 1푼의 가능성은 있을 테니까요.” 관지가 패배할 가능성이 9할9푼이라는 말에 강한 억양을 줬지만, 묵향은 1푼의 가능성이라는 말만 귀에 들어온 모양이다. 관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묵향은 희색을 띠며 외쳤다.

“내 말이 그 말이라니까!”

관지는 그런 묵향의 태도에 짐짓 한숨을 내쉬며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교주님께서는 지금 한 가지 놓치신 게 있습니다.”

“그게 뭔가?”

“그렇게까지 무리수를 둬 가며 이곳으로 쳐들어가야 하는 이유가 뭡니까?”

만통음제의 구출이라는 지극히 사적인 이유 때문이었기에 묵향은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런 일 때문에 자신과 부하들의 목숨을 통째로 투전판에 걸겠다는 말 을 양심상 차마 내뱉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속하의 생각으로는 장인걸도 없앨 겸, 만통음제 대협도 구출할 겸, 겸사겸사 그런 생각을 하고 계신다고 판단되는데…, 맞습니까?”

관지의 완곡한 표현에 묵향은 헛기침을 하며 멋쩍은 듯 대답했다.

“험험…, 뭐 그렇다고 봐야겠지.”

“운이 좋다면 장인걸은 없앨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만통음제 대협은 절대로 구출할 수 없을 겁니다. 단, 1푼의 가능성도 없다고 속하는 자신합니다.”

관지의 확언에 자존심이 상한 묵향의 눈이 실쭉 가늘어졌다.

“그렇게 자신하는 이유는?”

“적 진영의 내부를 전혀 파악해 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만통음제 대협이 어디에 구금되어 있는지조차 모르지 않습니까? 만약 초전에 대협을 구출해 내 지 못한다면, 장인걸은 곧바로 대협을 인질로 들고 나올 게 뻔합니다.”

관지는 잠시 말을 끊어 뜸을 들인 뒤 다시 입을 열었다.

“교주님께서 놈의 협박에 응하지 않는다면 대협의 목숨은 덧없이 사라지게 되겠죠.”

충분히 일리가 있는 추론이었다. 만통음제를 구하기 위해 애써 현실을 부정하고는 있지만 그 정도도 생각하지 못할 묵향이 아니었기에 안색이 침중하게 변해 갔 다.

관지는 묵향의 안색을 살피며 슬며시 미끼를 던졌다.

“속하에게 좋은 방책이 있는데 한번 들어보시겠습니까?”

“뭔가?”

“만약을 대비해 장인걸이 흔쾌히 만통음제 대협과 교환해 줄 만한 뭔가를 찾아내는 겁니다.”

“교환해 줄 만한 거라고?”

“예, 그런 다음 그·것·과 대협을 맞바꾸면 되겠죠. 속하는 그렇게 하는 게 대협을 구출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방법이라고 확신합니다. 물론 그 전에 대협이 있는 위 치를 파악할 수만 있다면 선택의 폭은 훨씬 넓어지겠죠.”

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맞바꾸고 싶었다. 묵향으로서도 그 말이 옳다고 생각되었기에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 없었다.

장인걸이 가장 좋아할 만한 것? 그걸 찾아서 묵향의 머리는 맹렬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림일통을 원하는 놈이니 맹주 자리를 주겠다고 제안해 볼까? 아니면 교주 자리를 두고? 그도 아니라면…….

교주의 관심이 노하구를 향한 정면 돌격에서 다른 것으로 바뀌자 관지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이제 한동안은 그런 무모한 생각은 안 할 테니까. 관지는 밖에 명령해서 술상을 봐 오라 일렀다. 시비가 술상을 들고 들어오자 묵향은 안주에는 손도 대지 않고 곧바로 술병을 집어 든 뒤 벌컥벌컥 들이켰다. 목구 멍이 화끈하게 뻥 뚫리며 불이 붙는 것 같은 고통. 그가 가장 좋아하는 술인 천일취만이 가져다줄 수 있는 쾌감이었다.

“크허~.”

한 병을 단숨에 들이켜자 근래 날카로워졌던 신경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만통음제가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후 여태까지 잠자는 것도 잊고 동분서주 했던 것이다. 그래서 홧김에 아예 장인걸의 본거지 노하구를 쑥대밭으로 만들려고 달려왔던 것인데…….

관지의 말을 듣고 묵향도 자신이 너무 한 방향으로만 생각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래, 가장 중요한 것은 형님을 무사히 구출해 내는 것이 아닌가. 좀 더 폭넓게 생각을 해 보자.’

하지만 아무리 형님의 목숨이 소중하다고 해도 그 대가로 무림의 패권을 넘겨준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그래 가지고서는 훗날의 복수는 기대하기 힘 들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패권과는 전혀 무관한, 그러니까 장인걸이 개인적으로 좋아할 만한 걸 제시해야 한다.

‘보물?”

근검절약이 생활화된 마교에서 잔뼈가 굵은 그가 보물 따위에 혹할 리 없다. 더군다나 지금은 금나라의 2인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은가. 그가 만약 황금을 모으자고 들었다면 태산처럼 쌓을 수도 있을 것이다.

‘신병이기(神兵利器)라면?”

장인걸은 대부분의 마교 고수들이 그러하듯 패도적인 장법을 중심으로 무공을 연마하며 성장했다. 그리고 흑살마장을 통해 극마의 경지를 뚫었다. 오랜 세월 장법 만을 익혀 온 그가 갑자기 무기에 흥미를 느낄 리 없지 않은가.

더군다나 장인걸이 교주가 되었을 때, 마교의 창고에는 강철을 썩은 무처럼 벤다는 무림십대기병 중 상위권에 꼽히던 무기가 세자루나 있었다. 하지만 장인걸은 그중 단 하나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무공?”

마교에서 교주가 된다는 말은 교주들만이 익힐 수 있는 최강의 무공들을 익힐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는 말과 같았다.

하지만 장인걸은 그중 어떤 것도 익히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들이 그가 익힌 무공들과 상성이 좋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더 이상 다른 무공을 익힐 필요 성을 찾지 못했던 것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마교 내에 존재하는 무공비급으로는 장인걸의 관심을 끌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면 마지막 남은 가능성은 사람밖에 없다는 말이 되는데.

“미인이라면 혹 할까? 그럴 리 없지. 눈에 띄는 미인이라면 누구든지 다 마음대로 취할 수 있을 텐데, 계집 따위에 혹할 리 있겠어?”

이리저리 궁리해 보던 묵향은 술잔을 쭉 들이켠 후 중얼거렸다.

“크~~, 어쨌거나 쉬운 문제는 아니군.”

관지는 묵향이 내려놓은 빈 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그도 일파의 지존입니다. 미인 따위야 거들떠도 안 보겠지만 우수한 인재라면 얘기가 다르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묵향은 슬쩍 고개를 가로저으며 비웃듯 말했다.

“자네, 아직까지도 본교의 물을 적게 먹은 모양이군. 본교가 얼마나 인명을 천시하는지 모르고 있으니 말이야.”

그건 묵향의 말이 옳았다. 중원에 있는 모든 문파들 중에서 마교만큼 인명을 천시하는 집단은 없었으니까. 고수로 성장하는 과정 자체가 그에 적응하지 못한 약자 의 무자비한 도태에 있었다.

“교주님의 말씀이 지당하십니다. 하지만 일단 일정 수준에 올라간 인물들은 그만큼의 대접을 받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과거 교주님께서는 산야에 묻혀 있던 설무 지를 찾아가 군사(軍師)로 받아들이는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거야 그만큼 쓸모가…….”

그렇게 중얼거리던 묵향의 머릿속을 번개 같은 것이 꿰뚫고 지나가며 충격을 안겨줬다. 맞다. 금나라에도 장인걸이 가장 아끼는 수족과도 같은 놈이 있을 게 분명 하다. 그런 놈을 잡아들이기만 하면.

“흐흐흐, 그래. 자네 말이 그럴듯하군.”

자연스레 터져 나오는 음흉스러운 웃음.

“그놈이 가장 아끼는 놈이 누굴까? 그 있잖나. 그놈하고 같이 탈출한…, 천마혈검대주가 누구였지?”

관지는 살짝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구양운(丘陽雲)이라고 들었습니다, 교주님.”

“그래, 바로 그놈. 그놈이라면 장인걸이 아~주 총애하고 있겠지?”

잠시 구양운의 납치 가능성을 이리저리 궁리해 본 관지가 대답했다.

“워낙 뛰어난 고수라서 납치하는 게 용이하지 않을 겁니다. 더군다나 구양운은 천마혈검대와 함께 있을 가능성이 크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군. 그렇다면 누가 좋을까?”

무공이 강하지 않으면서도 장인걸에게 쓸모가 있으려면 머리통과 주둥이로 먹고사는 그런 놈밖에 없다. 바로 군사 설민 같은 놈 말이다.

“그놈한테도 설민 같은 놈이 붙어 있지 않을까?”

“군사…, 말씀이십니까?”

“그래.”

관지는 잠시 그동안 입수한 장인걸 쪽의 정보를 떠올리다 입을 열었다.

“분명 그럴 테지만, 아직까지 그게 누군지는 파악해 내지 못했습니다. 과거 장인걸이 교주님께 패한 이유도 정보력의 부재 때문이 아니었습니까?”

묵향이 고개를 주억거리자 관지는 재빨리 말을 이었다.

“그 때문인지 이번에는 정보전에 꽤나 투자를 많이 한 모양입니다. 천하의 무영문조차 애를 먹고 있는 걸 보면 말입니다. 사실 장인걸이 금나라에 있다는 것도 완 벽한 물증을 통해 찾아낸 것이 아니라, 여러 정황들을 통해 유추해 낸 것만 보더라도 그들이 얼마나 정보를 확실히 통제하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놈에 대한 정보가 없는 것도 문제지만 어찌어찌해서 겨우 수하를 잡아 온다 해도 과연 장인걸이 순순히 만통음제와 바꿔 줄지가 관건이다. 그 역시 뼛속까지 마교 의 인물이다. 수하 한두 명 정도는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버릴 수 있을 게 분명하다. 그런 생각이 들었기에 묵향은 장인걸이 아끼는 수하를 납치하자는 생각을 포기 하려고 했다.

“그렇군. 그렇다면 방법이 없는…….?

실망한 듯 중얼거리던 묵향의 뇌리를 뭔가가 번쩍 스치고 지나갔다.

그렇다. 그놈이 있었다. 장인걸이 자신의 제안을 절대 거부할 수 없는…… 그는 바로 금나라의 황제였다. 금나라를 대표하는 인물인 만큼 장인걸로서도 쉽사리 버리기는 힘들 게 분명하다.

묵향의 얼굴에 음흉스러운 미소가 다시금 번지기 시작했다. 묵향은 술 한 잔을 쭉 들이켠 후 관지에게 명령했다.

“무영문에 연락을 보내 금나라 황제에 대한 모든 정보를 넘겨 달라고 요청해라.”

관지는 멍청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갑자기 황제에 대한 자료는 뭐 하려고?

“예? 황제…, 말씀이십니까?”

“그래, 황제 말이다. 금나라를 대표하는 최고의 인물은 바로 황제가 아니겠느냐? 큭큭큭!”

“존명!”

일단 명령이 내려졌기에 따르기는 하지만 밖으로 걸어 나가면서도 관지는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설마…, 황제를 납치하겠다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떠올리신 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