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24권 4화 – 암도진창(暗渡陣倉)

암도진창(暗渡陣倉)

무영문에서 날아온 보고서를 읽은 묵향은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정보가 부실했기 때문이다.

“상당히 기대했었는데, 이제 보니 정보력 하나만큼은 자신 있다고 까불던 무영문도 별거 아니었군.”

관지는 부실한 무영문의 정보가 오히려 반가웠다. 제대로 된 정보가 없으니 무모하게 쳐들어가자고는 하지 않을 것 아닌가.

“연경 공략은 아직 시기상줍니다. 차라리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더군다나 이번에 새로 입수된 정보에 따르면, 놈들이 만통음제 대협을 구 금하고 있다는 게 확실하게 드러났지 않습니까?”

편복대가 흘린 거짓 정보가 묵향에게 도착한 상태다. 하지만 묵향에게 있어서 변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미 그럴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던 사실을 확인한 것에 불 과했으니까.

묵향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본좌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네. 정보가 조금 모자라면 어떤가? 어차피 전투는 도박이야. 적의 규모가 그리 대단하지 않다는 확실한 정보를 가지고 쳐들어갔는데, 실제로는 바로 그 전날 적의 대규모 지원군이 도착해 있다면 결과는 어떻게 되겠나? 또 상대의 대비태세가 엄청난 줄 알았는데, 사실은 그게 다 허장성세(虛張聲勢) 였다면?”

묵향이 이런 식의 말을 꺼낸 의도는 뻔했다. 자기 행동에 대한 합리화 정보 따위는 참고 자료일 뿐, 연경 공략을 취소할 의도는 전혀 없다는 말이었다.

관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로서는 그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반항이었으니까. 무표정한 관지의 표정을 힐끔 쳐다본 묵향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내키지 않는 표정이군.”

“솔직히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묵향으로서는 관지의 반론을 듣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그래도 지금껏 자신이 듣기 싫다고 부하들의 입을 틀어막은 적은 없었다.

“물론. 본좌는 수하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걸 좋아하지.”

묵향의 표정과 말의 뜻이 완전히 정반대였기에 관지는 피식 미소 짓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그게 어이없어 짓는 미소라는 게 문제였지만….

“황제가 기거하는 곳인 만큼 분명 저들은 여기저기에 함정을 설치해 놨을 겁니다. 잘못 걸려들면 아무리 교주님이라도…….?”

거기까지 말하던 관지는 급히 입을 다물었다. 말을 하다 보니 교주의 능력을 무시하는 듯 비쳐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급히 고개를 조아리며 사죄했다.

“속하의 혀가 어떻게 됐는가 봅니다. 교주님의 능력을 의심하는 건 결코 아니었습니다.”

안 그래도 떨떠름하던 묵향의 안색에 짙은 불쾌감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는 분노를 폭발시키지는 않았다. 대신 관지를 향해 딱딱한 어조로 명령을 내렸다. “됐네. 본좌는 혈랑대를 이끌고 연경에 다녀올 테니, 무슨 일이 생기면 철영에게 통보해서 그의 지시를 따르도록!”

“존명!”

이제 더 이상 의논할 게 없다는 듯 묵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하지만 관지는 그런 묵향을 향해 황급히 말을 걸었다. 비록 묵향의 노여움을 사 목이 날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그는 충언을 주저하지 않는 강직한 무인이었기 때문이다.

“교주님, 한 가지 더 고려하셔야 할 게 있습니다.”

묵향은 관지가 사사건건 걸고넘어지는 듯하자 노기가 치밀었다. 그래도 그는 애써 불쾌감을 억누르며 대꾸했다. 딴 놈이었다면 오래전에 목을 비틀어 놨겠지만, 관지가 뛰어난 인물임을 묵향은 잘 알고 있었다. 자기 기분이 안 좋다고 해서 유능한 부하의 입을 틀어막을 정도로 묵향은 멍청하지 않았다.

“그래, 말해 보게.”

“단순히 연경만 공략해서는 안 됩니다. 장인걸은 곧바로 혈랑대의 이동을 포착해 낼 겁니다.”

뻔히 아는 소리였기에 묵향은 짜증을 억누르며 퉁명스레 대꾸했다.

“마기를 도저히 어찌할 수 없다는 걸 자네도 잘 알지 않나? 그러니 예로부터 본교는 적들이 미처 대비 태세를 갖추기 전에 돌격하는 전법을 즐겨 사용했던 거지.”

“물론입니다, 교주님. 하지만 여기서 연경까지는 거리가 너무 멉니다. 적들이 대비 태세를 갖추기에 충분한 시간 여유를 줄 수 있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쯧쯧, 그런 걸 두려워한다면 아무것도 못 해.”

“하지만 대비책은 세울 수 있습니다. 적이 이쪽의 움직임을 포착할 건 뻔한 이치니, 그걸 역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 봐야죠.”

말을 듣던 묵향의 얼굴에서 점차 짜증이 사라졌다. 무조건적인 반대를 하는 것이 아니다. 듣다 보니 뭔가 방법이 있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묵향의 얼굴에는 조금이

나마 관지의 말에 흥미를 느끼고 있다는 빛이 떠올랐다.

“그렇게 얘기하는 걸 보니 뭔가 좋은 방법이 있는 모양이군. 그게 뭔가?”

관지는 탁자에 놓여 있는 지도 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힘주어 말했다. “이쪽을 동시에 타격하는 겁니다.”

관지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은 바로 장인걸의 식량 저장고였다. 60만 대군이 소모하는 식량인 만큼, 남양에 쌓여 있는 군량미는 범인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어마 어마한 양이었다.

순간 묵향의 안색이 팍 일그러졌다. 기대했던 것만큼 별로 좋은 계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흐음…, 놈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인 만큼 대비 태세를 완벽하게 갖춰놨을 텐데?”

“이곳을 공략하는 척한다면 장인걸은 자신의 세력을 몽땅 다 이쪽으로 쓸어 넣을 겁니다. 이곳을 잃으면 끝장이라는 걸 그도 잘 알고 있을 테니까요. 그동안 교주 님께서는 혈랑대를 이끌고 연경을 치시는 겁니다. 나중에 장인걸이 혈랑대의 움직임을 포착한다고 해도 그쪽으로 병력을 빼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아니, 눈치 챘다 고 해도 연경으로 구원 부대를 보내기에는 이미 때가 늦어버린 후가 되겠지요.”

“과연! 자네 말이 옳군. 이거 꽤나 괜찮은 작전이야.”

생각해 볼수록 괜찮은 계책이었다. 그래서인지 묵향의 얼굴에는 인내심 있게 수하의 말을 듣고 있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그대로 떠올라 있었다. 자신의 계책을 듣 고 흡족해하는 주군의 표정을 바라보던 관지는 깊숙이 고개를 조아렸다. 그가 묵향을 존경하며, 그를 따르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니까.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수하의 의견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주는 인물이 묵향이었던 것이다.

“속하의 계책이 도움이 되셨다니 기쁘기 한량없습니다.”

* * *

관지와 이번 작전을 어느 정도 세밀하게 다듬은 묵향은 홀로 마교의 주력 부대가 주둔해 있는 대별산맥으로 갔다. 최악의 경우 장인걸과의 정면충돌까지 예상해야 하는 만큼 마화 등 그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연경으로 갈 생각은 전혀 없었다.

주둔지에 도착한 묵향은 곧바로 철영 부교주와 세 명의 장로들을 불러들여 작전회의를 시작했다.

묵향으로부터 이번에 행할 작전을 지시받은 철영 부교주는 불만족스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쓰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황제를 잡아들이는 일은 속하에게 맡겨 주십시오.”

“본좌가 자네의 실력을 믿지 못해서 연경에 직접 가겠다는 게 아닐세. 방금 말했지 않나? 그곳은 어떤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지 모르는 사지(死地)라고 말이야. 본 좌는 그런 곳에 수하들만 보내는 사람이 아님을 자네도 잘 알 텐데?”

“아무리 흉험한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하더라도 극복해 낼 자신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교주님의 명을 반드시 완수해 내겠습니다.”

철영 부교주가 이렇듯 고집을 부리는 것은 관지 장로에 대한 경쟁심 때문이었다. 자신이 그곳에 가서 황제를 잡아온다면, 그토록 위험한 곳이라고 주장했었던 관 지의 체면은 엉망진창이 될 테니 말이다. 물론 만통음제를 구출해야 하는 묵향으로서는 그 의견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철영 부교주의 속마음까지는 눈치 채지 못했 지만 자신이 가려고 하는 곳에 철영이 가겠다고 계속 우기자 묵향은 은근히 짜증이 치솟았다.

“자네는 따로 할 일이 있다고 했잖나. 바로 장인걸의 발목을 붙잡아 두는 것 말이야.”

여기까지 말한 묵향은 슬쩍 비웃음을 흘리며 이죽거렸다.

“왜? 장인걸과 맞서기가 두려운가?”

철영 부교주는 발끈해서 외쳤다.

“절대로 그런 건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면 시키는 대로 해! 황제는 본좌가 처리할 테니까.”

이렇게 말한 묵향은 장로들을 둘러보며 외쳤다.

“자, 모두들 가서 출동 준비하도록 해. 지금 당장 출발한다!”

“존명!”

격렬한 전투를 예감했음인지 장로들의 눈빛은 피를 향한 광기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 * *

요 며칠동안 편복대주의 마음은 심란하기 그지없었다. 묵향의 본심을 떠보기 위해 보낸, 만통음제를 자신들이 납치했다는 소문을 퍼트리라는 명령서가 만현에 있 는 첩자들에게 도착하기도 전에 마교 고수들이 한순간에 모습을 감춰 버린 것이다.

더군다나 마교 전투단이 어디로 갔는지 그 흔적을 찾는 것조차 실패했다. 마교 고수들의 경우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마기 덕분에 수십 리 밖에서도 그 위치를 쉽게

포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다 보니 미행을 하던 편복대로서는 황당하기 그지없을 수밖에 없었다.

편복대주의 명령에 의해 저들의 흔적을 왜 놓쳤는지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시작됐다. 금쪽같은 시간을 3일씩이나 잡아먹은 후에야, 그들은 왜 자신들이 마교 전투 단의 이동을 놓쳐 버릴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밝혀낼 수 있었다.

일선에 나가 있는 편복대의 조장들은 임무를 마친 마교 전투단이 십만대산으로 돌아갈 거라고 판단하고 첩자들을 만현에서부터 북쪽과 서쪽 그리고 서남쪽 방향 까지 폭넓게 배치해 놨었다. 하지만 조사 결과 놈들은 총단 쪽으로 돌아가지 않고 남동쪽 어딘가로 달려간 모양이었다.

때가 조금 늦기는 했지만 그래도 첩자들은 편복대주의 명령을 성실히 따랐다. 마교 고수들이야 만현을 떠났어도 그들을 지원하는 마교의 첩자들은 이곳에 남아 있 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을 가지고. 하지만 편복대주의 기대와 달리 호수 속에 돌맹이 하나를 던져 넣은 것처럼, 은근슬쩍 소문을 흘렸어도 지금까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정파의 명숙인 만통음제를 찾겠다고 최상급 전투단을 투입한 것만 해도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그들이 감쪽같이 종적을 감춰 버리자 편복 대주의 머리는 터질 것만 같았다. 도대체 묵향 부교주의 속셈을 짐작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쯤이면 분명 자신이 흘린 거짓 정보를 포착했을 게 분명한데 왜 아직까지도 아무런 반응이 없을까? 지금까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묵향 부교주는 만통음제와 모종의 친분 관계를 쌓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건 편복대주의 탁자 위에 두텁게 쌓여 있는 문서들이 보장하고 있는 사항이었다.

“젠장, 놈이 쳐 놓은 그물에 걸려 병신같이 자라짓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편복대주는 인상을 찡그리며 탁자 위에 쌓여 있는 문서들 중 표지가 붉은색으로 채색된 두툼한 문서 다발로 손을 뻗었다. 그건 1개월쯤 전에 있었던 전투를 종합 적으로 조사해 놓은 보고서였다. 그 당시 전투는 세 곳에서 거의 동시에 벌어졌는데, 특이하게도 그중 두 곳에서 묵향 부교주가 모습을 나타냈다. 두 곳의 거리는 꽤 나 떨어져 있었지만, 탈마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극강의 고수에게 그 정도 거리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서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인가 문서를 살펴보던 편복대주의 뇌리에 문득 의문이 떠올랐다. ‘그는 마교의 지존이 아닌가? 아무리 정파와 협정을 맺고 있다지만, 그가 왜 직 접 거기까지 달려왔을까?’하는 것이었다. 생각할수록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수하들에게 그때의 전투에 대해 정밀 조사를 하라고 명령했다. 편복대 는 무려 한 달이라는 시간을 투자해서 생존자들을 철저하게 조사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 그의 탁자 위에 쌓여 있는 이 문서들이다.

편복대주는 문서들을 통해 중요한 사실 하나를 잡아낼 수 있었다. 묵향 부교주가 천지문을 구하기 위해 달려와 살육전을 벌였을 때와 만통음제를 구하기 위해 장 인걸 교주와 충돌했을 때의 시간 차가 그리 크지 않다는 점을 말이다.

아무리 그가 초고수라도 이 정도의 시간 차라면 꽁지가 빠지게 달려갔다는 걸 의미했다. 그런 이유로 인해 편복대주의 조사 방향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피도 눈물도 없다는 냉혈한인 만큼 묵향이 달려온 이유를 다른 곳에서 찾고 있었다. 하지만 묵향이 그들을 살리기 위해 비정상적일 정도로 최선을 다했다면 얘 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천지문! 만통음제! 그 둘 다 부교주로 하여금 최선을 다하게 만들 정도로 소중한 뭔가를 지니고 있다고 봐야 하겠지. 그런데 정말 이상하군. 만통음제야 비록 다 른 길을 걷고 있다 해도 뛰어난 인물인 만큼 서로가 뭔가 통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천지문은 아무리 조사해 봐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단 말이야. 그런 보잘것없 는 문파와 불가침조약을 맺었다는 것도 의문이지만, 그들을 구하겠다고 부교주 같은 사람이 직접 달려갈 이유도 없잖아?”

편복대주는 한동안 더 자료를 뒤적거렸다. 사실 이 모든 자료는 오래전에 몇 번씩이나 읽어 본 상태였기에, 건성으로 뒤적거리고 있는 것일 뿐 정독을 하고 있었던 건 아니다. 새로운 정보가 더 입수된다면 모를까 현재로서는 더 이상 알아낼 수 있는 건 없었다.

“뭔가 있기는 있는데…, 그게 당최 뭔지를 모르겠단 말씀이야. 내가 혹시 중요한 뭔가를 간과하고 그냥 놓친 건 아닐까?”

양양성에 침투한 편복대원들이 지금까지 보고해 온 정보들을 종합해 보면, 묵향 부교주의 모습은 단순무식한 깡패 두목 정도로 그려진다.

하지만 마교 쪽에서 탈출해 온 고수들로부터 그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의 모습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 한 번 했던 실수는 절대로 되풀이 하지 않는 노회한 지략가. 그리고 그는 동조자들을 포섭하는 데 있어 특별한 재능이 있는 모양이었다. 장인걸 교주가 마교를 완전히 장악했음에도 불구하고 교주의 수하들을 야금야금 흡수해서 결국에는 판세를 뒤집어엎어 버린 걸 보면 말이다.

그걸 보면 묵향 부교주라는 인물은 무공도 뛰어나지만 음모와 술수에도 대단히 능한 인물임에 틀림없었다.

“끄응~ 뭔가가 있어, 뭔가가…….’

이때 밖에서 수하가 다급히 달려 들어와 보고했다.

“무림맹에서 특급 정보가 입수되었습니다.”

“무림맹에서?”

편복대주는 수하로부터 전서를 받아 급히 읽었다. 전서를 다 읽은 편복대주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흘러나왔다.

드디어 이해할 수 없었던 마교의 꿍꿍이속을 알게 된 것이다. 만통음제를 찾는 척하며 연막을 친 다음, 황제를 노린 것이다.

“감히 황제를 암살하겠다고? 큭큭큭…….”

비꼬는 어조로 이죽거리던 편복대주는 옆에 서 있는 수하에게 급히 명령했다.

“지금 당장 하루아 장군에게 통보해라. 고수 5백 명을 이끌고 연경으로 가서 구양운 장로께 신고하라고 말이야. 그리고 연경에 계시는 구양운 장로님께도 이 사실 을 알리도록 해.”

“옛, 대주님!”

수하가 달려 나간 후 편복대주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이죽거렸다.

“크크, 특급살수를 수십 명 투입해 봐라. 황제 근처에나 갈 수 있는지…….”

편복대주는 기분 좋게 의자에 앉아 푸근히 몸을 기대며 중얼거렸다. 마치 앓던 이가 빠진 듯한 개운함이 그의 목소리에서 묻어 나왔다.

“놈들이 감히 황제를 노렸으니 이쪽에서도 놈들의 황제를 노리는 게 예의겠지? 뭐, 황궁 쪽은 거의 드러난 거나 다름없으니 특급살수 한 명만 보내도 충분할 거야. 자, 그럼 누구를 보내는 게 좋을까? 크흐흐.”

사실 자신들의 황제를 노린 것에 대한 복수의 의미만 아니라면, 그런 무능하기 짝이 없는 황제를 구태여 죽일 필요는 없었다. 새로운 황제가 유능한 인물일 경우, 오히려 안 죽인 것보다 더 못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쪽에서 황제를 노린다면 이쪽에서도 황제를 노리는 게 옳다. 그래야 다시는 감히 황제 폐하를 노릴 엄두를 내지 못할 테니까.

* * *

“놈들이 언제 살수를 보내올까?”

복수의 의미인 만큼 편복대주는 살수를 보내는 시점을 저쪽에서 황제 암살에 실패한 후로 잡고 있었다. 따라서 구양운 장로에게서 살수를 없앴다는 연락이 오기만 을 애타게 기다렸다.

그날도 편복대주가 차를 마시며 애타는 속을 진정시키고 있을 때 밖에서 수하가 다급히 달려 들어오며 외쳤다.

“대주님, 급보가 도착했습니다!”

“크흐흣, 드디어!”

수하의 말에 편복대주는 회심의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내 놈들의 살수가 붙잡혔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의 미소는 곧이어 들려온 수하의 말에 흔 적도 없이 무너져 버렸다.

“대규모로 이동 중인 마교 집단이 포착되었답니다.”

“뭣이! 대규모라고?”

입으로는 경악성을 터뜨리면서도, 그의 눈은 수하에게서 건네받은 전서를 읽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새롭게 포착된 마교 고수의 수는 대략 2천여 명! 물론 그 숫자만으로 그들이 어느 정도 전투력을 지니고 있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예를 들면, 2천 명 규모로 이뤄진 염왕대의 전투력이 겨우 1백 명 정도인 천마혈검대보다 훨씬 뒤쳐지는 게 사실이었으니까.

그런데 마교 고수들의 이동을 포착한 첩자가 보낸 전서에는 상대의 무공에 대한 예측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특1급 고수 1백여 명, 특3급 고수 5백여 명, 나머지는 1급 고수들로 추측된다는 것이었다. 특1급 고수들이 끼어 있는 걸 보면, 얼마 전 행적을 놓친 바로 그 마교 전투단이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고 판단하는 게 옳을 것 이다.

숫자만으로 따져 본다면, 과거 장인걸 교주 시대 때 마교가 보유하고 있었던 전투단 중 천마혈검대, 수라마참대, 천랑대가 함께 출동한 것과 유사한 전력을 지녔을 거라고 추측할 수 있었다. 즉, 묵향 부교주가 그 휘하의 가장 강력한 전투단 세 개를 한꺼번에 투입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도대체 이들이 왜?”

편복대주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묵향 부교주가 미치지 않고서야 이들이 여기에 나타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건 적들의 정면 공격의 징조인가? 편복대주는 급히 수하에게 물었다.

“이들 외에 다른 움직임을 포착했다는 보고는 없었느냐?”

“전혀 없었습니다, 대주님.”

“이해할 수가 없군. 아무리 마교가 최강의 전투력을 지니고 있다손 치더라도 이들만으로 대체 뭘 할 수 있다는 거지?”

그렇게 중얼거리던 편복대주의 뇌리를 스치는 게 있었다.

“아차! 내가 실수했다. 부교주는 처음부터 살수를 투입할 생각이 없었던 거야.”

편복대주는 자신의 멍청함을 한탄했다. 사실 마교에서 살수를 보낼 거라는 정보가 무림맹에서 흘러나왔을 때부터 의심했어야 했는데……. 그게 자신이 하고 있던 생각과 맞아떨어졌기에 아무런 의심없이 받아들인 게 문제였다.

“빌어먹을! 연경에 살수를 보낸다는 건 이쪽의 병력을 분산시키기 위한 연막전술이었어! 내가 그런 초보적인 간계(奸)에 놀아나다니…….”

정말이지 묵향 부교주는 계책에 능한 인물이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그 밑에 있는 모사가 뛰어난 놈인지도 모른다. 설민이라고 했던가? 설무지라는 뛰어난 실력 자의 아들이라고 하더니, 과연 혈통이라는 건 무서운 것인 모양이다.

“놈들의 농간에 완전히 당했군.”

편복대주는 급히 지도를 활짝 펴고 상대방의 진로를 판단했다. 놈들의 전력과 그 규모로 봤을 때 노릴 만한 곳은 세 군데 정도였다. 연경과 남양, 그리고 노하구. 편 복대주는 이를 으드득 갈며 거칠게 지도를 움켜쥐었다. 놈들이 어딜 노릴지 생각할 필요조차 없었다.

남양!

만약 놈들이 이곳에 쌓여 있는 군량미를 불살라 버린다면 60만 금군 전체가 위태롭다.

“교주님께서는 어디에 계시느냐?”

“집무실에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수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편복대주는 장인걸이 있는 집무실을 향해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