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25권 2화 – 교주의 숨겨진 혈육

교주의 숨겨진 혈육

“감찰부주께서 오셨습니다.” 

“들라고 하게.”

맹주의 책상 위에는 두툼한 서류 뭉치들이 수십 개나 쌓여 있었다. 이걸 다 검토하고 처리하려면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한데도, 맹주는 감찰부주의 방문에 전혀 싫은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감찰부주가 집무실에 들어왔을 때, 맹주는 문서에서 눈을 떼지도 않으며 물었다.

“그래, 무슨 일이냐?”

“황성사에서 밀사가 왔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말을 들었기에 맹주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황성사에서?”

“예, 천하의 악적인 교주를 없앨 수 있도록 힘을 보태라고 하더군요.”

“허허, 그거 참. 오랑캐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마교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거늘.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인지……?”

맹주가 어이가 없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중얼거리자, 감찰부주가 얼른 보충 설명을 했다.

“얼마 전에 황도에서 벌어진 사건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특히 교주에게 납치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연공공이 이를 갈고 있는 모양입니다. 밀 사의 말에 의하면 교주가 속한 마교 자체를 패역무도한 단체로 공표를 한 뒤, 그들의 만행을 천하에 알리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를 증명할 인물까지 확보해 두었 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연공공이라면?”

“현 황성사의 실세 중의 실세라고 할 수 있는 인물입니다. 그렇기에 그냥 무시를 하기에는 좀….”

아무리 현 황실을 찬밥처럼 여기고 있는 무림맹이었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릴 때부터 받은 교육으로 인해 알게 모르게 송 황실에 대한 충성심이 남아있는 무림맹의 고수들도 꽤 많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황실에 반한다고 하면 정파를 지양하는 무림맹으로서는 대의명분을 얻기가 힘들어진다. 그런 점을 익히 잘 알고 있었던 맹주는 마교를 버림으로써 얻을 수 있는 명분과 마교 없이 싸웠을 때 맹이 입게 될 피해 등을 생각해 보며 고심에 빠졌다. 잠시 후, 길 게 한숨을 내쉰 맹주는 머리가 아픈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현 상황에서 마교를 내친다면 우리들의 힘만으로 오랑캐들을 상대한다는 게 어려울 것 같네.”

완곡한 거부의 표시였다. 그러자 감찰부주는 난감한 표정으로 재차 입을 열었다.

“문제는 황성사에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옵니다, 맹주님. 그렇기에 군의 핵심적인 인물이었던 악비 대장군조차 단칼에 날린 것이 아니겠습니까. 더군 다나 얼마 전에 맹의 무사들과 함께 왜구들 10여 만을 전멸시키기도 했으니 오판을 할 만도 하지 않겠습니까.”

“허, 그까짓 왜구들 십만과 정예화 된 금나라 정병들이 어찌 같을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금나라에는 흑살마왕과 그 부하들까지 있는데 말일세.”

잠시 미간을 찌푸리며 고심을 하던 맹주는 이윽고 마음을 정했는지 입을 열었다.

“현 상황에서 마교의 힘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네. 그렇다고 아예 무시를 하기도 그러니 일단 시간을 끌도록 하세. 그러다 보면 뭔가 방법이 나오겠지. 안 그래도 날 이 풀리면 곧 대대적인 전투가 재개될 것이 아닌가.”

“예, 그렇다면 밀사에게는 제가 적당히 둘러대서 돌려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대답을 한 감찰부주는 밖으로 나가지 않고 다시 맹주를 향해 입을 열었다.

“참, 그리고 근래 이해하기 힘든 움직임을 보여 줬던 교주가 왜 그랬는지를 알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들을 찾아냈습니다, 맹주님.”

“그래? 그게 무엇이더냐?”

황성사의 건 때문에 머리가 아픈지 지그시 눈을 감고 있던 맹주는 눈도 뜨지 않고 물었다. 아니, 또 다시 교주에 대한 말이 나오자 아예 미간을 왈칵 일그러트릴 정 도였다. 하지만 감찰부주는 전혀 개의치 않으며 입을 열었다.

“개방에서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만통음제 대협이 흑살마왕에게 납치되셨다고 합니다.”

그 말에 맹주는 깜짝 놀라서 감찰부주를 바라봤다. 하지만 곧이어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설마…, 화경급 고수를 납치할 수 있을 리가……?”

“만통음제 대협께서는 그 전에 흑살마왕과의 전투에서 입은 심각한 부상에서 채 회복하지 못하고 계셨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제대로 힘도 못 쓰고 납치당하신거라고…….”

“확실한 증거나 증인은 확보했나?”

감찰부주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쉽게도 그런 건 없습니다. 개방에서 그 사실을 알게 된 건, 만현 인근에 마교의 정예가 갑자기 나타나 대규모 수색 작전을 감행했기 때문이라는군요.”

“허…. 그것 참.”

“맹주님께 일전에 보고 드렸다시피 교주는 만통음제 대협과 의형제를 맺었다고 했지 않습니까. 저는 그게 교주의 술수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입 니다. 이번에 교주가 연경을 친 것도, 그분의 실종과 절묘하게 시기가 맞아떨어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무리한 짓거리를 한 것이, 그분을 납치한 것에 대한 교 주의 보복일 수도 있다고 추정이 됩니다.”

맹주는 지금까지 자신이 알고 있었던 교주의 또 다른 모습에 내심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무엇보다 언제나 신중하던 감찰부주가 저렇게까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하지 않는가.

“흐음……. 네 말이 꽤나 일리가 있긴 하지만, 솔직히 믿어지지는 않는구나. 그는 지금껏 강철과도 같은 냉혹함을 자랑하던 살인마가 아니었더냐?”

“어쩌면 그것도 다 자신의 약점을 감추기 위한 연막 작전일 수도 있습니다.”

잠시 생각을 해 보던 맹주는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허긴…, 아무리 냉정한 인간일지라도 그런 틈 정도는 가지고 있는 게 당연하겠지.”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만약 그의 약점이 그것이 맞다고 한다면 본맹은 유래 없는 위험에 봉착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그 말에 맹주의 얼굴에는 의문이 떠올랐다. 교주의 약점을 찾아냈으면 좋은 일인데, 왜 감찰부주가 이렇게 말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왜 그의 약점이 드러났는데, 본맹이 위험하다는 말인고?”

“일전에 말씀드렸었던…, 천지문에 얽힌 그 가설 말입니다.”

비밀을 요하는 사안이었기에 감찰부주는 두리뭉실 돌려서 표현했다. 그리고 맹주 또한 그걸 재빨리 알아들었다.

“아, 그 진팔이라는 젊은이에 관한?”

“예, 맹주님. 바로 그가 이번에 흑살마왕에게 납치당했기 때문입니다.”

맹주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의 표정은 놀라움에 가득 차 있었다.

“뭣이? 그게 사실이냐?”

“예. 그 외에도 패력검제의 아들, 서량(徐梁)도 함께 납치되었답니다.”

맹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감찰부주의 앞자리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고는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그의 어조에는 강한 불신이 어려 있었다.

“허, 정말이지 놀라운 일이로고…….”

“의형인 만통음제 대협이 납치당하자 그 보복으로 연경을 기습 공격하는 무릿수를 감행한 교주입니다. 그런데 혈족인 진팔까지 흑살마왕에게 납치된 이상, 그가 무슨 짓을 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게 아닙니까?”

“네 말은, 그가 흑살마왕의 위협에 굴복할 수도 있다는 말이냐?”

감찰부주는 침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상황을 종합해 본다면 충분히 그런 추측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본맹의 뒤통수를 칠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는 말이지요. 며칠 전 금나라에서 파견한 사신 일행이 양양성에 도착하여 교주를 만나고 갔다는 서문 세가의 보고서를 맹주님께서도 보셨지 않습니까. 흑살마왕이 교주에게 사신을 보낸 이유가 무엇이었겠습니까? 바로 교주를 협박하기 위해서였겠지요.”

맹주의 눈썹이 일순 역팔자로 일그러졌다.

“교주의 동태는 어떠하더냐?”

“다행히 아직 아무런 움직임도 없습니다.”

맹주는 할 말을 잊은 듯 잠시 멍하니 앉아 있었다. 감찰부주의 가설은 그에게 너무나도 의외였던 것이다. 교주 같은 고수가 아직까지도 인연의 사슬에 얽매여 있다 니……. 그렇다면 지금껏 내려오던 말과 달리, 무공의 높은 벽을 돌파하는 데 오욕칠정(五慾七情)을 끊는 것은 별 도움이 안 된다는 말과도 같지 않은가.

자신이 지금껏 하고 있었던 수련법에 대한 회의감에 맹주는 허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던 맹주는 문득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제대로 된 증거가 있다면 결정을 내리기가 쉬울 텐데..”

“증거만 없다 뿐이지, 전체적인 정황들이 진실을 말해 주고 있지 않습니까?”

뭔가 결단을 내릴 듯하던 맹주는 갑자기 고개를 가로저으며 중얼거렸다.

“아니야, 좀 더 조사해 보기로 하지. 성급한 판단은 너무 위험해. 확실한 것도 아니고…….”

그런 맹주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감찰부주는 동감의 뜻을 표했다.

“그렇긴 하죠. 일단 뭔가 확실한 증거를 찾을 때까지 정보를 최대한 모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신, 마교쪽에 대한 감시는 좀 더 강화하도록. 그쪽에서 언제 무슨 짓을 벌일지도 모르니까 말일세.”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