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3권 7화 – 무서운 방문객

무서운 방문객

정사(正邪)의 모든 정보 단체들이 묵향의 위치를 포착하기 위해 거대한 동정호가 있는 호남성을 이 잡듯이 뒤지며 난리를 치고 있을 때, 묵향은 유유히 호북성의 산길을 걷고 있었다. 요즘 들어 행적을 숨기느라 산길을 걷자니 산적들이 귀찮게 구는 게 흠이긴 했지만 잡수익 또한 짭짤해서 묵향으로서는 내심 잔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묵향이 찾아가고 있는 곳은 살막(殺幕)이었다. 이번에 웃지 못할 소동이 벌어진 가장 큰 이유는 묵향의 두뇌라 할 수 있는 설무지가 묵향이 거느린 조직의 힘이 어 느 정도인지를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내려진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설무지는 묵향에게 정보 단체의 확보를 권했다. 하지만 묵향이 거느린 세력의 힘을 아직 확실히 모르는 설무지는 묵향의 힘이 마교 세력의 4할 정도에 이른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어서 살막이라는 자그마한 살수 조직의 흡수를 권했던 것이다. 원래가 살수 조직은 어느 정도 뛰어난 정보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래 야만 먹잇감을 손쉽게, 확실히 해치울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의 살막이라면 대단한 단체였지만 지금은 이미 신진 세력인 흑월회에 밀려 쇠퇴하는 조직인지라 설무지는 묵향의 능력을 최소한으로 잡아도 그들 정도라면 충분히 흡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에 반해 무영문이나 마교에서는 묵향이 거느린 세력의 공포스러움을 익히 아는지라 그들의 힘으로 먹을 수 있는 최 대한의 정보 단체를 꼽다 보니 사파 최고의 정보 소식통인 하오문을 지목하게 된 것이고, 여기서 서로가 엇갈린 것이다.

묵향은 별 어려움 없이 살막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설무지의 말대로 대홍산(大洪山)에 도착한 다음 그곳에 위치한 큼직한 장원(莊園)으로 갔다. 장원의 현판에는 큼 직하게 「柏芸莊(백운장)」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는데, 조금 낡은 것으로 보아 꽤 오랜 전통을 지닌 장원임을 알 수 있었다. 묵향은 시골 장원의 문지기로는 좀 수상 할 정도로 기골이 장대한 인물에게 말했다.

“장원 주인에게 할 말이 있어 찾아왔으니 시간 좀 내달라고 전해 주게나.”

“뭐라고 했소?”

차림새도 별 볼일 없는 주제에 다짜고짜 원주(園主)를 찾으니 장한은 별 미친놈을 다 보겠다는 듯이 퉁명스러운 대답을 했고 상대가 이렇게 나오자 묵향의 입에서 도 고운 말이 나올 이유가 없다.

“이 녀석이 귀가 먹었나? 장원 주인에게 할 말이 있어 찾아왔으니 시간 좀 내달라고 전해라.”

“여기가 어디라고……. 원주께서 너 같은 놈에게 볼일 없으시니 좋은 말 할 때 꺼져.”

“네놈이야 말로 좋은 말로 할 때 원주 불러.”

“이 자식이…….”

그와 동시에 그 거한은 그 덩치에도 불구하고 번개같이 주먹을 뻗어 왔다. 거한은 상대가 검을 차고 있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서생 냄새가 풍기기에 일부러 내력을 거의 넣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가 타고난 신력이 있기에 맞으면 떡이 될 것은 당연한 이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맞았을 때 얘기고…….

상대는 간단히 몸을 비틀어 피하면서 왼손을 번개같이 뻗어 거한의 멱줄을 쥐었다. 거한은 처음에는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하는 생각이었지만 곧이어 생각을 바꿔 야만 했다. 무시무시한 압력에 숨이 턱 막히더니, 온몸에 힘이 쭉 빠지면서 닭 목을 비틀 힘도 없을 것 같은 상대에게 목을 잡힌 채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리게 됐기 때문이다.

‘엄청난 고수다.’

이때 상대의 비웃는 듯한 음성이 들려왔다.

“지금 죽고 싶냐?”

우악스런 손에 목이 잡혀 본 사람은 다 안다. 온몸에 소름이 끼치고 숨이 콱콱 막혀 오면서 피어오르는 본능적인 공포를.. 거한은 사력을 다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와 동시에 상대가 자신의 목을 잡았던 손을 놓아 버렸고 그의 몸은 힘이 쭉 빠져 그대로 밑으로 떨어져 내리며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원주한테 내가 찾아왔다고 전해라.”

상대가 꽤 고강한 무공을 익힌 자라는 것을 깨달은 거한은 살며시 일어서서는 조금 비굴하다 싶을 정도로 공손하게 물었다.

“저… 어떤 고인(高人)께서 찾아오셨다고 전할깝쇼?”

“녀석, 이제야 말이 통하는군. 마교 부교주 묵향이 찾아왔다고 하면 알 거다.”

마교 부교주라는 그 직함이 가지는 위력은 엄청났다. 마교란 단체가 어떤 단체인가… 사파의 우두머리이자 그 무공의 악랄함과 강대함은 전 무림을 몇 번이나 치를 떨게 만들었지 않은가. 그곳의 부교주라니……. 거한은 그 우직한 덩치를 공깃돌처럼 가볍게 날려 바람처럼 안으로 사라졌다.

곧이어 안에서 몇 명의 장한이 나오더니 묵향을 공손히 내부로 안내했다. 묵향이 안내받아 간 방은 제법 큼지막했지만 큰 탁자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고 의자들 이 빽빽이 들어 있는 것이 회의실인 모양이었다. 묵향이 아무 의자에나 앉자 곧이어 시비(侍婢)인 듯한 여인이 예의 바르게 차를 놓고 나갔다. 하지만 정작 주인은 한참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으므로 묵향은 천천히 차를 마시며 기다렸다.

‘떨떠름하군…….?

묵향은 차 맛이 유난히도 떫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건 주인의 취향 탓인가, 내 기분 탓인가…….’

거의 2각(30분)이 지나서야 나타난 주인은 바퀴 달린 의자에 앉은 채 한 남자의 손에 밀려 들어왔다. 묵향은 더욱 떨떠름한 표정으로 들어온 계집을 응시했다. 유 난히도 흰 피부와 시원한 이마에 어울리는 맑고 큰 눈동자, 붉은빛을 띤 작은 입술, 가녀린 체구를 가진 뛰어난 미인이었다. 하지만 다리가 불편하다는 것이 문제라 면 문제랄까…….

“그대가 장원의 주인이오?”

묵향의 물음에 그녀는 차가운 안색으로 싸늘하게 대답했다.

“그래요.”

“그렇다면 살막의 주인도 되겠군. 맞소?”

그러자 여인은 냉기가 펄펄 날릴 정도로 더욱 싸늘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맞다면?”

“본좌는 말 돌리는 것은 싫어해.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본좌의 밑에 들어올 생각은 없소?”

“…..”

“그대들에게도 정보 조직은 있을 테니 본좌의 소개는 생략하기로 하지.”

잠깐 뜸을 들이던 여인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갑작스런 제안이라서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흐흐흐, 감히 본좌의 제안을 거절하겠다는 것은 아닐 테지?”

묵향은 사악한 웃음과 함께 일부러 강렬한 마기(氣)와 사악한 기운을 몸 외부로 극도로 뿜어내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 가면서 협박하기 시작했다. 방 안에 들 어서 있던 인물들은 모두 다 안색이 창백해지며 공력을 운용해 극악한 기운들을 몰아내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그들도 꽤 오랫동안 무림에서 활동했지만 이렇게 지 독한 마기는 처음이었던 것이다. 묵향은 거기에 한 수 더 떠서 품속에서 묵영비(墨影比)를 꺼내어 검신을 손가락으로 만지면서 무언의 압력과 공포 분위기를 더욱 농밀하게 조성하며 말을 이었다.

“너희들도 본좌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잘 알 텐데……. 감히 이따위 시골 문파의 힘을 믿고 본좌의 청을 거절해? 당장 관(棺)을 보아야 정신을 차릴 셈인가?”

“…..”

“크흐흐흐, 아니면 어딘가 단단히 믿는 구석이 있는 건가?”

묵향은 천천히 일어서서는 창백하게 질려 있는 여인에게 다가갔다. 천천히 움직임에 따라 묵향의 몸에서는 더욱 공포스러운 살기와 함께 적색 기운이 감도는 운무 (雲霧)가 피어나왔고, 그의 피부색도 붉은색 광채를 내며 더욱 기괴한 모양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본좌가 수하들을 거느리고 오지 않았다고 배짱을 튕기는 모양인데, 여기 있는 놈들 정도는 본좌 혼자서도 충분히 토막을 칠 수 있어.”

묵향이 갑자기 일부러 악귀 같은 형상을 보지 않으려고 애써 외면하고 있는 여인의 턱을 잡고 자신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획 틀자 놀란 여인의 경악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흑!”

“크크크, 제법 그럴듯한 얼굴이군. 크흐흐흐…..”

“……..”

무시무시한 살기와 마기를 뿜으며 악귀와 같은 사내가 정욕이라고는 한 점 찾아볼 수 없는 싸늘한 눈으로 예기를 뿜는 비수를 살짝 눕혀서 자신의 뺨을 문지른다 면 기분이 어떨까……. 이렇게 황당한 경우를 여태껏 한 번도 당해 보지 않은 여인은, 거의 악귀와 같은 형상을 하고 있는 눈앞의 무뢰한(無賴漢)으로 인해 까무러 치기 일보 직전인 상태였다.

“본좌를 2각씩이나 기다리게 만들었으니 시간은 충분히 준 거야. 빨리 결정을 해! 지금 죽을 거냐? 아니면 본좌 밑에 들어올 거냐?”

탕!

협박과 함께 음향 효과로 인한 위협을 더하기 위해 일부러 큰 소리가 나게 공력을 조금 넣어 탁자를 두들긴 것까지는 좋았는데, 이때 갑자기 묵향의 코에 아스라이 지린내가 스며들었다. 아마도 여인은 너무나 놀라서 찔끔 실례를 한 듯…….

‘험험, 내가 너무 과했나?”

묵향은 짐짓 모르는 척 비수를 품속에 집어넣으며 자신이 원래 앉아 있던 자리로 돌아가 털썩 앉으며 이왕 시작한 행위니 끝까지 뻔뻔스레 밀어붙였다. “결정을 햇!”

묵향이 좀 멀어지자 조금 정신을 차린 여인이 모기만 한 소리로 대답했다.

“본막은 만약 결과가 죽음뿐이라도 당신의… 당신의 협박에 응할 수 없어요.”

“흠, 제법이군.

갑자기 묵향의 몸에서 피어나오던 마기와 살기, 모든 기운이 일시에 사라져 버렸다. 묵향은 느긋하게 한쪽 팔로 뺨을 받치고는 탁자에 편안히 기대앉은 자세에서 입을 열었다.

“밑으로 들어오지 않겠다니 어쩔 수 없지. 나도 미래 상황이 불확실한 만큼 억지로 강요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어. 그대들이 내 밑에서 뼈 빠지게 일해도, 과연 영 화를 함께할 수 있을지는 나 자신도 장담할 수 없는 노릇이었거든. 참, 여기 오는 길에 아주 훈련이 잘된 추격자들을 만났었는데, 따돌리기는 했지만 어쩌면 냄새를 맡고 이리로 올지도 모르니 딴 곳으로 이사를 가는 게 현명할 거야. 나를 노리는 놈들이 원체 많아서……. 그대들이 내 청을 거절했다는 것을 믿지 않고 우선 없애 고 볼지도 모르니까. 그건 그렇고, 사파에서 꽤 실력 있는 정보 단체가 어딘지 아나?”

이제 어느 정도 이성을 회복한 여인이 즉시 대답했다.

“당연히 하오문이죠.”

그녀는 목구멍 밑까지 그것도 몰라요? 하는 말이 솟아나왔지만 감히 그 말을 뱉을 용기는 없었다.

“그것은 어디에 있지?”

“군산 천영루(影樓)에 총타가 있어요.”

“좋았어. 나는 볼일은 다 봤으니…, 이만 가 보기로 하지.”

묵향은 일어서서 밖으로 나가려다가 뒤로 돌아서며 말했다.

“참, 암기(器)를 장치하기는 좋겠지만, 그런 의자에 앉아 병신인 척할 필요 없어. 그리고 네가 한 말이 저 방에 있는 인물의 의견이라고 생각하겠다. 막주에게 다 음에 혹시 만날 일이 있으면 대리인을 세우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전해 줘. 그럼…….?

그와 동시에 묵향의 신형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묵향이 사라지고 난 다음 지독한 공포로 탈진해 버린 여인이 멍하니 앉아 있는데 옆방의 문이 열리면서 3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당당한 체구의 남자가 걸어 나왔 다. 그의 뒤로 10여 명의 검수(劍手)들이 얼핏 보였다. 그 남자는 천천히 걸어와 묵향이 앉았던 자리에 털썩 앉으면서 말했다.

“차를 다오.”

“옛!”

“온 무림이 난리를 치기에 도대체 어떤 인물인가 했더니 상상보다 더욱 뛰어난 인물이긴 한데, 성격이 좀 괴팍한 것 같군.” 여기까지 말한 사내는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동석!”

그러자 문가에 서 있던 황의를 입은 남자가 그의 앞으로 달려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예.”

“총타를 청하장(淸河莊)으로 옮긴다. 즉시 시행하라. 여기는 너무 알려져 버렸어.”

“존명!”

수하들이 준비를 위해 모두들 밖으로 나가자 여인이 두려움을 털어내려는 듯 진저리를 치면서 입을 열었다.

“아아… 정말 무서웠어요.”

“미안하다. 그런 괴상한 인물인지 모르고 너를 앞세워서.”

“하지만 덕분에 알아낸 사실도 몇 가지 있으니…….”

“수(垂)아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으냐? 또다시 피 튀기는 무림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지금처럼 방관자로서…….”

“그는 하오문으로 간 것 같은데, 과연 그가 하오문을 접수할 능력이 있을까요?”

“글쎄, 아직 확실한 정보는 없다. 그에 대한 정보는 이상하게도 거의 없어. 어쨌든 무림맹과 마교가 그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악착같이 경계하는 것으로 보아, 그 정도 능력이 있을지도 모르지.”

“그가 하오문을 접수한다면 본막의 필요성은 없어질 거예요. 여태껏 그의 행적으로 보아 모두 정면 대결을 택했지 암살을 한 적은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그가 여기 온 것도 아마 정보를 원해서였을 거예요. 오라버니의 생각은 어때요? 그의 밑에 들어가는 것과 남는 것.”

“뛰어난 인물이니 그 밑에 들어가서 밑질 것은 없을 거야. 그리고 떠나라는 말까지 곁들인 것을 보면 그렇게 피에 물든 마인(魔人)은 아닌 것이 확실해. 문제는 만 약 그에게 붙지 않는다면 철저히 무림에서 떠나든지 아니면 그의 파멸에 일조를 해야 후환이 없다는 사실이지. 아마도 내 생각으로는 저자로 인해 혈풍(血風)이 불 지도 모르겠구나.”

“오라버니 생각으로는 그를 암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남자는 잠시 생각하더니 힘없는 어조로 답했다.

“아마도 내 감각이 무뎌지지 않았다면……. 내 감각으로는 그가 대단히 힘든 상대로 느껴졌다. 어쩌면 성공할지도 모르지만, 휴… 나는 도저히 자신이 없구나.”

“그렇다면 그의 편에 붙어요. 하오문을 그가 접수하기 전에 그에게 가담한다면 우리들을 좀 더 중용해 줄 거예요. 참, 그런데 내 다리가 멀쩡하다는 것하고, 오라버 니가 거기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글쎄, 그런 것까지 눈치 챌 수 있으니 무림이 그 난리겠지. 내가 생각하기에는 아마도…….”

“아마도?”

“보통 내공을 쌓은 사람이라면 모두들 상대의 상태를 알고자 할 때 내력을 이용해서 조사를 하지. 하지만 현경, 아니지 탈마라고 하는 게 옳겠지. 그가 탈마의 경지에 올랐다고 하니, 아마도 그는 손을 직접 댈 필요 없이 허공을 격하고 내력을 보내어 상대의 상태를 알아볼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내 위치를 알아낸 것은 아마도 내 가 뿜어내는 기를 은연중에 포착한 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어. 나도 자객이기에 기를 숨기는 데는 꽤 재주가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