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30권 3화 – 여긴 내 땅이야, 나가!

여긴 내 땅이야, 나가!

과연 그의 예상대로 어린 드래곤 한마리가 들어와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저희 집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자신의 기척을 읽고 밖으로 달려나오는 드래곤의 모습을 보고서야 아르티어스는 왜 이놈이 이 악명 높은 말토리오 산맥으로 제발로 기어들어 왔는지를 알 수 있었다.

물빛과도 같은 푸른 머리카락을 하고 있는 엘프. 아무리 엘프들의 외모가 특이한 데가 있다고는 하지만, 저런 색깔의 머리카락을 자연적으로 가지고 태어난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호오, 이번 손님은 실버였군. 그나저나 머리카락 색깔이 꽤나 근사한걸?”

아르티어스의 비꼬는 말투를 알아채지 못한 애송이 드래곤. 그는 자신의 머리카락 색깔의 칭찬에 활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손님. 그런데 저희 집에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아르티어스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이 말토리오가 내 영토라는 것을 모르는 드래곤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말이지. 네놈은 지금 내 영토를 무단으로 침입하 여, 내 드워프들을 강탈해 갔어. 네놈의 죄를 알겠지?”

애송이 실버 드래곤은 아연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 그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여기는 말토리오 산맥이 아니라, 쟈코니아 산맥입니다만…….”

“저쪽으로 가서 지나가는 호비트놈들을 붙잡고 물어봐라. 여기가 말토리온지, 쟈코니아인지. 내 영토에 들어와 자리를 잡은 것도 괘씸한데, 감히 내 드워프들까지 강탈해가?”

반대편인 아르곤 쪽 주민들은 이 산맥을 쟈코니아라고 불렀지만, 아르티어스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쪽에 사는 치레아 주민들은 자신들의 눈앞에 보이는 모든 산맥 을 말토리오라고 불렀다. 거대한 산맥이 쭉 연결되어 있는데, 어디에서 어디까지가 말토리오고, 쟈코니아인지 헷갈렸기에 그렇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하늘 저 높은 곳에서 볼 수 있는 드래곤의 입장에서는 말토리오와 쟈코니아가 헷갈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엄연한 쟈코니아 산맥에 와서 말토리오라고 강 짜를 부리고 있는 아르티어스의 저의가 의심스러워진 애송이 실버 드래곤. 그는 의혹이 가득 찬 시선으로 아르티어스를 탐색하며 대꾸했다.

“제가 백번 양보해서 여기가 말토리오라고 해도, 이 주변에는 그 어떤 드래곤의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는데요.”

“흥, 대답할 가치조차 없다. 정 알고 싶으면 네놈 애비한테 가서 물어봐. 말토리오 산맥의 주인이 누구인지 말이야. 그리고 어린놈의 새끼가 감히 꼬박꼬박 말대꾸 나 하다니, 너 오늘 한번 죽어봐라!”

“아, 아니……. 다짜고짜 왜 이러십니까? 우리 말로 하자구요. 꾸에에엑!”

처음부터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풀기 위해 찾아온 아르티어스가 곱게 말로 끝낼 리가 있겠는가. 몇 번 투닥거린 결과, 애송이 드래곤은 절실히 깨달아야만 했다. 마법으로는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을.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이런 미친 드래곤 같으니라고! 내가 이대로 당하고 그냥 넘어갈 줄 알았냐!”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엘프의 몸에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드래곤으로 현신하여, 상대를 짓밟아줄 생각인 것이다. 하지만 실전 경험이 전혀 없는 그는 알지 못했다. 드래곤으로 현신하는 그 짧은 순간이 가장 취약하다는 것을.

아르티어스는 그 모습을 보자 콧방귀를 뀌며 이죽거렸다.

“흥! 가지가지 하고 있네. 적을 코앞에 두고 현신을 하다니…….”

퍼퍼펑!!

현신을 하는 동안 아르티어스의 공격에 고스란히 노출되었지만, 드래곤의 외갑은 막강한 방어력을 자랑했다. 그렇다고 고통까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크으윽! 이런 젠장!>

나지막한 신음 소리와 함께 자욱한 먼지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는 은빛 거체. 성인식을 거친지 얼마 지나지도 않은 어린놈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실버 드래곤은 엄 청나게 커다란 덩치를 지니고 있었다.

오랜 세월 바다에 적응된 탓인지 실버 드래곤의 몸체는 군더더기가 거의 없는 완벽한 유선형에 가까웠다. 그리고 육상 드래곤과는 달리 날개가 붙어있지 않았다. 대신 물속을 헤치고 다니기에 알맞도록, 조금 넓적하게 진화한 꼬리는 두텁고도 강인해 보였다. 꼬리가 워낙에 튼튼해 보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뒷다리가 부실해 보 이는 것도 사실이다.

“호오, 실버 일족의 본체를 보는 건 정말 오랜만이로군.”

본체로 현신하는 도중에 두들겨 맞았기 때문인지, 애송이 실버 드래곤의 몰골은 처참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겉모습처럼 상태가 그렇게 엉망인 것은 아니었다. 본체로 현신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아주 짧다. 그 짧은 시간동안 공격을 퍼붓는 방법은 주문을 필요로 하지 않는 용언마법 뿐이다.

하지만 본체로 현신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높은 레벨의 용언마법은 사용이 불가능했다. 그 때문에 수십 방을 두들겨 맞았지만, 실버 드래곤의 외갑을 뚫고 내부에 까지 충격을 안겨줄 만큼 강한 공격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아주 박살을 내주마! 후우욱!>

본체로의 현신을 완료하자마자 머리끝까지 신경질이 나 있던 애송이 실버 드레곤의 입에서 엄청난 브래스가 터져 나왔다. 물의 기운을 지닌 실버 드래곤의 브래스 는 막강한 파괴력을 자랑한다. 세찬 물줄기가 강철을 잘라버리듯, 브래스는 그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파괴하고 지나갔다.

콰콰콰콰!

하지만…, 문제는 아르티어스 어르신이 그런 브래스를 정면으로 맞을 만큼 멍청하지 못하다는 게 애송이 실버 드래곤의 불행이었다. 드래곤끼리의 싸움이라면 이 미 도가 튼 아르티어스는 애송이를 상대로 본체로의 변환조차 하지 않았다.

마법만으로도 충분히 요리가 가능한데, 뭐하려고 귀찮게 본체로 현신하는 수고까지 하겠는가.

바로 코앞에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아르티어스는 브래스가 날아오기 직전에 초단거리 공간이동을 해버렸다. 덕분에 애송이 실버 드래곤이 내뿜은 브래스는 아르 티어스가 있었던 지점 위를 헛되이 쓸고 지나갔을 뿐이다.

그리고 곧이어 애송이 실버 드래곤은 아르티어스가 자신의 옆구리 근처로 공간이동 했음을 눈치 챘다. 약이 바짝 오른 애송이 실버 드래곤은 재빨리 목을 늘여 아 르티어스를 아예 씹어버리려고 했다.

콱!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이빨은 헛되이 허공을 씹었을 뿐이다. 그 이후로도 애송이 실버 드래곤은 아르티어스를 향해 자신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이빨과 꼬리를 미친 듯이 휘둘렀다.

하지만 죽어라 공격해도 미꾸라지처럼 살살 빠져나가는 아르티어스. 머리 뚜껑이 열릴 정도로 약이 바짝 오른 애송이 실버 드래곤은 아르티어스가 자신의 몸통 바 로 근처에 있다는 것도 잊고 공격마법을 펼쳤다. 그만큼 열이 받은 것이다.

퍼펑!

<쿠엑!>

온몸으로 전해져 오는 엄청난 충격에 애송이 실버 드래곤은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내질렀다. 자신의 몸통에까지 피해가 올 것을 각오한 공격이었다. 물론 자신의 몸은 조금 아픈 정도에서 끝나겠지만, 상대는 아마 살아남기 힘드리라. 본체로의 현신조차 하지 않은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그 순간, 애송이 실버 드래곤은 자신의 코앞으로 날아오는 시뻘건 불덩어리를 볼 수 있었다. 그동안 요리조리 도망 다니던 아르티어스가 큰 거 한방을 준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워낙 지근거리에서 가해진 공격이었기에, 실전 경험이 전혀 없었던 애송이 실버 드래곤은 당황해서 그저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하기야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헬파이어가 갑자기 날아온다면, 성체 드래곤이라고 해도 방법이 없기는 매한가지일 것이다. 처음부터 방어주문으로 몸을 튼튼하 게 감싸놨다면 또 몰라도…….

콰콰쾅!

<꺼윽!>

턱밑을 정통으로 직격당한 애송이 실버 드래곤의 머리통이 뒤쪽으로 확 꺾였다. 막강한 위력의 공격마법을 정면으로 허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애송이 실버 드래곤 은 죽지 않았다.

다만 그 엄청난 충격에 정신이 오락가락 하고 있는 상태! 그 순간, 아르티어스는 애송이 실버 드래곤의 다리와 꼬리가 연결되는 그 치명적인 급소 부위로 이동했 다. 마법에 능한 아르티어스는 처음부터 트리플 스펠(Triple spell)로 헬파이어 주문을 외웠기에, 그의 손바닥 위에는 아직도 시뻘건 구체가 2개씩이나 남아있었다.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아르티어스 어르신은 그 남은 두 방을 녀석의 거시기(?)에다 사정없이 던져버렸다.

콰쾅!

<뀈!>

쿵.

외마디 비명과 함께 애송이 실버 드래곤의 거체가 땅바닥에 처박히며 자욱한 먼지를 피워 올렸다.

부르르르.

난생 처음 느껴보는 그 지독한 고통에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온몸을 그저 부들부들 떨고만 있는 애송이 실버 드래곤. 드래곤으로 태어난 이후, 아마 처음 느꼈을 것이다. 너무 아프면 비명조차 지르기 힘들다는 것을.

그런 실버 드래곤을 보며 아르티어스는 으르렁거렸다.

“또 다시 내 영토 주변을 기웃거리면, 그때는 아예 죽여 버릴 줄 알아. 알겠냐?”

애송이 실버 드래곤은 대답을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너무 극심한 고통에 비명도 제대로 못 지르고 있는 상황인데, 대답할 정신이 어디에 있겠는가.

“이 정도로 타일렀으니 알아들었겠지. 쩝. 좀 더 큰놈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이건 너무 애송이가 되어놔서 스트레스 해소가 안 되잖아.”

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거시기 부분을 꽉 움켜쥐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애송이 실버 드래곤의 애처로운 모습은 그의 속을 확 풀리게 만들어 주었다. 

“어쨌거나 대충 기분은 풀었으니, 팔시온이라는 놈에게 가봐야겠군.”

***

쿠당당!

느긋하게 누워 차를 마시고 있던 팔시온은 노크도 없이 문을 박차고 뛰어들어온 집사를 못마땅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대, 대, 대공 전하. 밖에 드, 드…….”

팔시온은 더 이상 집사의 말을 듣지 않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집사가 경기를 일으킬 대상이라고 해봐야, 아르티어스 외에 누가 있겠는가 말이다.

“어르신, 어서 오십시오.”

팔시온의 환대에 아르티어스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마치 이곳 대공관저가 자신의 집이라도 되는 양 성큼성큼 걸어가서는 탁자에 턱 하니 자리 잡았다. 팔시 온은 마치 비 맞은 강아지처럼 잔뜩 움츠린 모습으로, 아르티어스의 눈치를 핼끔핼끔 살피며 그 옆에 자리 잡았다.

“무슨 하명하실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네가 다스리고 있는 치레아 공국 말이야.”

“네.”

“인구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 알고 있냐?”

“대충 100만 명 정도라고…….”

순간 아르티어스의 눈꼬리가 사납게 치켜 올라갔다. 그와 동시에 팔시온은 공포에 질려 온 몸에 소름이 돋아야만 했다.

“대충? 대충이라니. 말도 안 되는 헛소리 집어치우고, 당장 정확한 인구가 얼마나 되는지 알아봐!”

“그, 그게……..”

“왜? 싫다는 것이냐?”

“그, 그건 아니고…, 뭣 때문에 그러시는지 이유를 가르쳐 주시면……?”

“뭣이? 네놈 따위가 감히 내게 그딴 요구를 할 자격이나 된다고 생각하는 거냐?”

분노로 무시무시하게 번쩍이는 아르티어스의 눈동자. 지금 당장 팔시온을 씹어 먹어버릴 것만 같은 광기에 가득 차 있었다. 이미 마스터의 경지에 이른 팔시온이 었지만, 그는 지금 자신이 마스터씩이나 되는 경지를 개척했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렸다. 대신 그의 머릿속을 가득 메운 것은 지독하리만큼 끔찍한 공포였다.

“이, 이봐! 집사, 집사!”

“옛!”

팔시온의 다급한 부르짖음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집사가 미친 듯이 달려 들어왔다.

“지금 당장 본국의 인구를 조사하라고 일러라!”

“예? 평민들 인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 말에 팔시온은 아르티어스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느 정도 수준까지 조사하라고 이를까요? 평민? 아니면 농노? 하명만 하십쇼.”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노예건 귀족이건, 모두 다.”

순간 팔시온의 얼굴이 왈칵 일그러졌다. 그렇다고 대놓고 싫은 내색을 할 수가 없었기에, 팔시온은 집사를 노려보며 사납게 소리쳤다.

“어르신 말씀 들었지? 지금 당장 본국의 인구를 철저히 조사하도록! 평민이건 귀족이건, 노예건, 모두 다! 단 한 명도 빠져서는 안 돼. 알겠나!”

“옛! 즉시 그렇게 지시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때 옆에서 심드렁한 표정으로 지켜보며 앉아 있던 아르티어스가 불쑥 끼어들었다.

“정확한 숫자를 파악하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지?”

“최소한 유, 육 개월은 주셔야…….”

생각보다 긴 시간에 아르티어스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유욱개월~?”

“그게 어쩔 수 없습니다, 어르신. 제가 아무리 닦달을 한다고 해도, 휘하에 있는 영주들에게 연락을 하고, 또 그 영주들이 자신의 밑에 있는 가신들에게 지시를 내 리고……. 뭐 이런 식으로 해서 노예 한 명 한 명까지 다 숫자를 헤아려 보고를 받은 다음, 그 모든 보고서들을 받아서 집계하려면……..

더듬거리면서도 필사적으로 너무 시간이 촉박하다고 말하는 팔시온의 말을 아르티어스는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전체 인구를 다 조사하려면 당연히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렇기에 아르티어스는 최대한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그렇다면 15년 전에 태어난 아이들만을 조사한다면 어떻겠나?”

아르티어스의 말을 들은 팔시온은 머리를 갸웃하며 급히 되물었다.

“그러니까 15세 정도의 아이들만 조사하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지. 대신 약간의 오차는 있을 수 있다는 거 알지? 듣자하니 너희 인간들의 경우 예정된 날짜보다 훨씬 더 앞당기거나, 아니면 조금 늦게 태어나는 경우도 허 다한 게 사실이잖아.”

“물론입니다, 어르신.”

아르티어스는 집사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그렇게 하면 시간이 좀 절약이 되겠나?”

“14~16년 전에 태어난 아이들만을 추려서 파악하려 한다면 시간이 단축되긴 할 것이옵니다. 하오나, 생각보다는 그리 많은 시간이 단축되지는 않을 듯 하옵니다. 왜냐하면 휘하의 영주들에게 지시를 내려, 그들로부터 답신이 올라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동일하니 말이옵니다.”

아르티어스는 잠시 생각을 정리한 다음, 다시 명령을 내렸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지. 방금 전에 말한 그 나이대의 아이들을 말이야, 치레아 공국만이 아니라 스바시에 그리고 크라레스 제국 전체로 확대해서 끌어 모으도록 해.”

그 말에 팔시온은 경악했다.

“크, 크라레스 제국 저, 전체를 다 말씀이십니까?”

“그래, 전부 다!”

말도 안 되는 명령이라는 건 알지만, 팔시온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지금 바로 죽임을 당하고 싶지 않다면, 시키는 대로 하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는 것 이다. 어쩔 수 없다는 듯 가볍게 한숨을 내쉰 팔시온은 허탈한 음성으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어르신. 가스톤에게도 어르신의 명령을 전하겠습니다. 그리고 루빈스키 대공에게도 말입니다.”

“단 한 놈도 빠져서는 안 돼. 알겠어?”

“명심하겠습니다. 그런데 그 나이대의 아이들 숫자만 파악해서 알려드리면 되는 겁니까?”

아르티어스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금단의 비술을 썼으니, 분명 그 아이들 중에 자신의 아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들을 무슨 재주로 알아낼 수 있단 말인 가. 환생 전처럼 마나를 잔뜩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러다 문득 과거 아들놈이 크루마에 납치되어 행방불명되었을 때가 떠올랐다. 마나의 기운이 전부 사라져 버린 상황에서 그가 아들을 찾아낼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때는 나이아드의 도움을 받았었지만, 이번에는 육체까지 바뀌어 버렸으니 제 아무리 나이아드에게 용빼는 재주가 있다 하더라도 아들을 찾아내 지는 못하리라.

이때, 기가 막힌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아들의 영혼을 가지고 있는 만큼, 아들의 재능 역시 가지고 태어났을 가능성이 크지 않겠는가. 그리고 아들이 지닌 재능 중 에서 가장 뛰어난 것은 바로 검술에 대한 것이었다.

“숫자를 알려줄 필요는 없고, 그 아이들에게 검술을 좀 가르쳐 봐.”

“검술을…, 말씀이십니까?”

“그래, 검술. 기초적인 것이라도 괜찮아. 그래서 딴 애들보다 평균 이상으로 검술에 재능이 있는 애들은 몽땅 다 이쪽으로 끌어 모아. 알겠냐?”

“알겠습니다. 즉시 시행하라고 이르겠습니다.”

기운차게 대답한 팔시온은 곧 뭘 생각했는지 애처로운 눈빛으로 아르티어스를 잠시 바라보더니, 주저주저하며 물었다.

“그렇게 하려면 제법 시간이 걸릴 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팔시온의 걱정은 당연했다. 크라레스 제국 전역에 걸쳐 검술에 재능이 있는 아이들을 끌어 모으자면, 인구 조사를 하는 것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성질 더러운 드래곤이 그때까지 참아주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가 아는 아르티어스는 그 더러운 성질머리에 비례할 만큼, 인내심이라고는 두 눈 을 씻고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는 드래곤이었으니까.

“물론이지. 네가 농땡이만 부리지 않는다면 내 기다려 주지.”

걱정과는 달리 아르티어스가 시원스럽게 허락하자, 팔시온은 내심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느 분의 명령인데 제가 감히 농땡이를 피우겠습니까. 그런 염려는 접어두십시오. 제가 직접 나서서 독려하도록 하겠습니다.”

“대신! 단 한 명이라도 빠트려서는 안 되는 거 잘 알지?”

“옛, 어르신!”

호기롭게 대답하는 팔시온을 못미덥다는 눈초리로 쳐다보던 아르티어스는 갑자기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이죽거렸다.

“흐흐, 나중에 단 한 명이라도 빠트렸다는 것이 밝혀지면, 그때는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도록 만들어 줄 테다. 알겠냐?” 

“며, 명심하겠습니다, 어르신.”

아르티어스라는 절대적인 폭력 앞에 나약한(?) 팔시온으로서는 납쭉 엎드리는 것 말고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