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33권 12화 – 감찰부의 척살대

감찰부의 척살대

알카사스의 수도 다란스에서는 마도왕국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마법에 관련된 물품들을 아주 손쉽게 구할 수 있었다. 각종 마법서적은 물론이고, 시약이나 재료 등 등……. 산지(産地)에 직접 가도 구할 수 없는 것들 역시 이곳에서는 쉽게 구할 수가 있을 정도였다.

전 대륙에서 다란스만큼 마법사들의 인구 밀도가 높은 곳이 없을 정도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법사들만 득실거리는 것은 아니었다. 검사나 상인, 모험가 등 마법 물품을 구하거나 팔고자 하는 수많은 여행객들이 더 많았다. 마법사가 많은 만큼, 그들이 생산한 각종 마법물품들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륙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리는 만큼 다양한 의복의 여행객들이 뒤엉켜 상점을 둘러보며 한가롭게 걷는 게 다란스 중심가의 평상시 풍경이다. 그러다가 마음에 드 는 물품이 있으면 상인과 흥정을 벌이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그들 사이로 앞만 똑바로 보고 걸음을 서두르고 있는 무리가 지나갔다. 뭔가 급한 일이라도 있는 듯. 하지만 주변에 넘치는 게 모험가고 마법사들이었 기에 아무도 그들에게 흥미를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곧바로 공간이동 마법진이 설치되어 있는 공간이동 문으로 향했다. 다섯 명으로 이뤄진 모험가 파티가 공간이동 마법진이 설치되어 있는 건물로 가고 있는 모습에, 그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행인들이 관심을 가지는 건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신관과 마법사들뿐이다. 하지만 이들의 경우 복면으로 얼굴을 가려 눈만 내놓고 있었기에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이다.

공간이동 마법진에 배치된 경비병들이 꽤나 많았지만, 아무도 그들이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송신 마법진은 저쪽입니다.”

경비병이 가리키는 쪽으로 걸어가니 곧 매표소가 나왔다. 예쁘장한 아가씨가 손님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손님들. 어디로 가시나요?”

상큼한 목소리로 손님을 맞았음에도 그녀에게 돌아온 건 무뚝뚝한 음성이었다.

“그렉시아.”

“이용료는 사람은 30실버, 말은 40실버입니다. 사람 다섯 명, 말 다섯 필이니, 합계 7골드입니다.”

거금을 지불한 것에 비해 공간이동은 너무나도 허무하게 끝이 났다. 잠시 눈앞이 흔들리며 약간 어지러운 듯한 느낌이 전부였으니까. 하지만 그 잠깐 사이에 엄청 난 거리를 이동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되면 마법의 경이로움에 감탄사가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일반 사람들로 하여금 마법의 위대함과 편리함을 가장 확실하게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장치가 바로 공간이동 마법진이었던 것이다.

“그렉시아에 도착했습니다. 이쪽으로 나오세요.”

마법진 밖으로 나오면 경비병들이 대기하고 있는 공간으로 연결된다. 십여 명에 달하는 경비병들이 도열해 있었고, 그 중 지휘관인 듯 보이는 자가 다가오며 말했 다.

“그렉시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자, 모두들 복면을 벗고 각자의 신분증명서를 보여 주시기 바랍니다.”

여행객에 대한 신분 검사가 이뤄지는 것은 공간이동이 끝난 직후다. 수신 마법진에 한동안은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하도록 하는 마법이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아무 런 저항 없이 검사가 가능했던 것이다.

일행 중 한 사내가 복면을 벗고 앞으로 나섰다. 꽤나 인상이 좋은 사내였다. 그는 지휘관에게 자신의 신분증과 마법진 이용권을 내밀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수고가 많으시군요. 자, 여기 있습니다.”

지휘관은 신분증에 기록된 내용과 여행객의 얼굴이 맞는지 꼼꼼히 살펴보며 질문을 던졌다.

“동부지역의 관문인 그렉시아에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몰몬트 산맥에 사냥을 하러 왔습니다.”

사내는 손바닥을 펴서 슬그머니 옆으로 그으며 대답했다. 지휘관의 시선이 자신도 모르게 사내의 손바닥을 따라 움직였다.

“혹시 국경을 넘어가실 겁니까?”

“사냥이 순조롭게 이뤄지면 넘어갈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는 게 있으니…….”

그러자 사내를 향해 지휘관이 딱딱한 어조로 경고했다.

“혹, 국경을 넘어가시게 되면, 필히 그쪽 나라의 검문소에 등록을 하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자동으로 우리 쪽에도 통보가 되도록 되어 있으니까요. 만약 신고도 하 지 않고 국경을 들락거린 게 밝혀지면 큰 곤욕을 치를 수도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경비병들이 보기에는 힘든 각도에서 연신 손을 움직이고 있는 사내. 그리고 그런 손을 홀린 듯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는 지휘관. 대화 중 연신 손을 움직이는

사내에게 왜 자꾸 손장난을 하냐며 짜증을 낼 만도 하련만, 지휘관은 사내의 행동에 이상함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다.

신분증 확인이 끝나자 지휘관은 사내를 향해 말했다.

“평안한 여행되시길 바랍니다. 그럼 안녕히 가십쇼. 통과!”

일행들 전부의 신분증명서를 확인해야 했지만, 지휘관이 확인한 건 단 한 명뿐. 도열해 있던 경비병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당황해했다. 부하들이 주춤거리기만 할 뿐, 자신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있자 지휘관은 짜증어린 어조로 외쳤다.

“뭣들 하나! 빨리 비켜서지 않고.”

“대장님, 신분 확인은 아직 한 분밖에 하지를..”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빨리 비켜!”

상관의 명령에 일제히 통로를 내주는 부하들. 다섯 명의 모험가들은 무표정하게 말을 끌고 그들 앞을 지나갔다. 그들이 밖으로 나가자마자 경비병들은 상관에게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자신들이 보기에는 분명히 한 명밖에 신분 확인을 하지 않았다고. 방금 지나간 모험가들이 뭔가 이상한 마법이라도 쓴 게 아니냐고. 하지만 상관은 말도 안 된다는 듯 단호하게 말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공간이동 마법진을 방금 빠져나온 자가 무슨 짓을 할 수 있다는 말이냐? 나는 확실하게 모두의 신분증 검사를 끝냈어. 되먹지도 않은 소 리 할 시간 있으면, 이 근처 청소나 해 둬.”

상관의 불호령에 의문을 제기했던 경비병들은 입을 꽉 다물어야 했다.

복면의 모험가들은 검문소를 통과하자마자 전속력으로 말을 달렸다. 급하긴 했지만, 이곳에서 공간이동 마법을 쓸 수는 없었다. 역장이 미치지 않는 거리까지 벗 어나야만 하는 것이다.

도시에 설치되어 있는 역장 발생기에 얼마나 많은 마나가 공급되느냐에 따라 역장이 미치는 범위가 달라진다. 모험가들이 받은 기밀문서에 따르면 그렉시아의 마 법탑에서는 평균 50킬로미터 내외의 범위에 걸쳐 역장을 발산하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안전하게 공간이동하려면 마법탑에서 최소한 60킬로미터는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밤새도록 말을 달려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그들은 목표로 했던 1차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폴른이라는 영지에 소속되어 있는 작은 마을이다. 그들은 마을 에 도착하자마자 여관부터 찾아 들어가 식사를 주문했다.

“식사는 조금 있다가 나올 겁니다.”

이렇게 말한 점원은 손님들의 옷에 먼지가 잔뜩 묻어있는 걸 발견했다.

“쉬다 가실 건가요? 마침 빈방이 몇 개 남아 있습니다, 손님.”

“아니, 식사만 하고 갈 거다. 그런데…, 여기에 말을 며칠 맡겨 두고 싶은데…….”

“걱정 마십쇼, 손님. 제 말처럼 잘 돌봐드리겠습니다.”

사근사근하게 말하는 점원에게 사내는 은화 한 개를 던져 주며 말했다.

“우리가 돌아왔을 때, 말들의 상태가 좋으면 한 개 더 주마.”

“여부가 있겠습니까, 손님.”

점원이 식사를 가지러 주방으로 들어가자 사내는 품속에서 수정구를 꺼냈다. 마법사들이 통신용으로 주로 쓰는 물건이었다. 사내의 인상이 좋기는 했지만 결코 잘 생긴 얼굴은 아니다. 그걸 보면 이 마법사는 다른 마법사들과 달리 자신의 얼굴을 마법으로 뜯어고치지 않은 모양이다. 오히려 그 때문에 그가 마법사라는 것을 다 른 사람들이 알아채기가 힘든 것이었지만…….

마법사는 탁자 위에 수정구를 올려놓은 후, 품속에서 숯가루가 든 주머니를 꺼냈다. 약간의 숯가루를 수정구 위에 솔솔 뿌린 후, 그는 수정구 위에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주문이 끝났을 때, 숯가루가 저절로 움직여 수정구를 중심으로 한 마법진이 완성되어 있었다.

한순간 밝게 빛나는 듯하던 수정구에서 빛이 점차 사라졌다. 하지만 수정구 속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이럴 리가 없는데 하는 표정으로 수정구를 들여다보고 있는 마법사. 그런 마법사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온화한 표정의 중년사내가 더 이상 참지 못하겠 는지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 있는 것 같군. 이렇게까지 통신을 받지 않을 리가 없는데 말이야.”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마법사는 품속에서 숯가루 주머니를 다시 꺼내며 말을 이었다.

“본부에 한번 물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방금 전에 접속이 안 된 것이 마법사의 실수로 실패한 게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번에는 수정구 속에 영상이 맺혔다. 검은색 로브를 입은 음침한 분위기 의 상대방을 향해 마법사는 고개를 조아리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앤트러스 특무대(特務隊), 예정대로 1차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해밀턴 팀과 연락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혹시, 아시는 바는 없으십니까?”

상대편 마법사는 아직 모르는 일이었던 모양이다. 곧바로 당황한 목소리가 수정구에서 흘러나왔다.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이때, 지금까지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중년사내가 끼어들었다.

“해밀턴이 마지막 연락을 보냈을 때 보내 온 좌표가 있나?”

자신의 수정구에 중년사내의 모습이 보일 리 없을 텐데도, 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상대방 마법사의 표정이 급격히 바뀌었다.

「물론 있습니다, 앤트러스 각하.」

“그 좌표를 불러 주게. 그곳에서부터 찾아가는 수밖에 도리가 없지 않겠나.”

상대방 마법사는 다급히 좌표를 불러준 후, 공손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마법사 길드의 중앙지부에서 수백 명에 달하는 마법사들을 몰몬트 산맥으로 이동시켰다는 긴급 정보가 입수되었습니다.」

“설마…, 그들도 배신자들을 찾고 있는 건가?”

「해밀턴으로부터의 보고에 따르면 그건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들은 마을을 중심으로 외지인을 본 적이 있는지 탐문하고 있다고 했으니까요. 어쨌거나…, 그들의 목적이 뭐건 간에 각하와 동선이 겹칠 가능성이 있기에 보고 드리는 겁니다.」

“알겠네. 조심하도록 하지.”

「건투를 빌겠습니다, 각하.」

마법사가 통신을 끝마치자 앤트러스는 함께 온 일행을 둘러보며 말했다.

“식사를 끝마친 후 곧바로 출발하겠다. 모두들 피곤하겠지만 아무래도 해밀턴 팀과 연락이 안되는 게 마음에 계속 걸려서 말이야.”

“예, 대장님.”

마를린은 키메라 손실분을 보충받기 위해 지원팀으로 달려갔다. 이미 연구소장이 지시를 해 둔 덕분인지 키메라들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보고서는 별도로 쓰지 않 아도 되었다.

“소장님께서 내주라고 지시하신 분량입니다. 키메라들은 저쪽에 준비시켜 뒀습니다. 여기에 서명하시길…….”

명세서에는 CE004 5개체, CE00332개체라고 되어 있었다. 외곽경비대가 전멸당한 것에 연구소장도 내심 적잖이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이렇게 대폭적으로 전 력을 증강시켜 준 것을 보면.

“각종 테스트에 사용되고 있던 개체들까지 몽땅 다 긁어모은 겁니다. 재생산을 시작하긴 했습니다만, 당분간은 보충이 힘드니 그 점 유의하시길 부탁드립니다.” “알겠어요. 조심해서 쓰도록 하겠어요.”

외곽경비대가 경비해야 할 비밀통로는 무려 여섯 개. 주변을 둘러봐야 온통 숲밖에 없는데 비밀통로를 왜 이렇게 많이 뚫어놨나 싶겠지만, 다 이유가 있었다. 그것 들은 처음부터 사람이나 물자의 이동을 위해서 뚫은 게 아니었다. 물자는 공간이동 마법진을 통해 운반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그럼에도 비밀통로를 이렇 게 많이 뚫은 이유는 연구소가 지하에 있다 보니 원활한 환기를 위해서였다.

새로운 부하들을 충원 받은 마를린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연구소의 외곽 경비망을 재구축하는 것이었다. 꽤 오랜 시간 외곽 경비에 구멍이 뚫려 있었던 셈이지만, 그녀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내부 경비대에서 연구소로 침입자가 들어왔다는 통보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새로 부하들을 지급받은 이상, 외곽 경비망을 재구축한 뒤 행방불명된 키메라를 찾아 그 사체들을 확실히 처리해야만 했다. 이번 추적 작업에 동원될 키 메라들은 마를린이 직접 지휘할 생각이었다.

“너희들은 내가 갔다가 올 동안, 연구소 주변을 철저하게 경계하고 있도록 해. 알겠어?”

“취익!”

“만약 조금의 실수라도 있었다가는 오늘 저녁밥은 아예 없을 줄 알아.”

그녀의 협박에 험악하게 생긴 키메라들이 풀이 죽은 표정을 짓는다.

‘훗, 꼴 같지 않게 시무룩한 표정을 짓기는…….’

키메라들에게 일침을 가한 후, 마를린은 가마를 향해 걸어갔다. 경비를 맡긴 키메라들을 제외한 나머지가 그녀가 탑승할 가마를 중심으로 나란히 도열해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가마는 꽤 멋이 있었다. 마치 달걀을 눕혀 놓은 것처럼 납작한 유선형의 형태를 하고 있었고, 새하얀 겉 표면은 물방울조차 또그르르 굴러 떨어질 정도로 매끄러웠다. 키메라 두 마리가 앞뒤에서 잡고 운반하게 만들어 놓은 것으로, 그녀의 전임자가 아이디어를 짜내서 제작한 물건이다.

숲속을 헤치고 움직이기 좋도록 만들어 놓은 것인 만큼, 좌우 폭은 그리 넓지 않았다. 하지만 앞뒤로 길게 만들어 놨기에 편안한 자세로 반쯤 누워서 갈 수 있었다. 마를린은 푹신한 의자에 다리를 쭉 펴고 앉은 후 문을 닫았다. 동그란 유리창이 여러 개 뚫려 있었기에 바깥의 동정을 관찰하는 데 있어서 전혀 어려움이 없다.

외곽 경비대장에 임명되었을 때,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이 근사하게 생긴 가마에 감탄했었다. 시대를 앞서가는 듯한 멋진 외형은 물론이고 안락한 실내까지. 그 야말로 무엇 하나 마음에 안 드는 게 없는 최고의 명품! 이런 멋진 물건을 자신에게 남겨주고 간 전임자의 마음 씀씀이에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실제로 직접 타 보

기 전까지는..

가마를 타고 이동하기는 절대로 싫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가자!”

그녀의 명령에 키메라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키메라들이 걸어가는데 따라서 부드럽게 흔들리기 시작하는 가마. 주위를 지나가던 마법사들이 모두들 입 을 헤 벌리며 부러운 듯 보고 있다. 정말 어깨가 으쓱해지는 순간이다.

동굴을 벗어난 후, 그녀는 키메라들에게 속도를 내라고 지시했다. 마냥 느긋하게 걸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하지만 속도를 내자마자 가마에 숨어있던 문제점 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전임자가 최대한 안락하게 만들어 놓았다고 하지만, 사실 이건 사람이 탈만한 물건이 아니었다. 한눈에 봐도 상당한 액수를 들 여 만들었음직한 가마를 전임자가 오죽하면 그냥 놔두고 가 버렸겠는가.

키메라들이 숲속을 질주하자, 가마 안은 가만히 앉아 있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멍청하기 짝이 없는 키메라들이 탑승자의 사정 따위 전혀 고려 해 주지 않았기에 생기는 어쩔 수 없는 결과다.

앞뒤좌우로 흔들리는 것도 고역이지만, 더 큰 문제는 소음이었다.

투다다닥!

끼기긱!

주위의 나뭇가지들이 사정없이 가마에 부딪치며 만들어 내는 굉음! 튼튼한 외피가 막아 주고 있는 덕분에 나뭇가지에 얻어맞을 염려는 없었지만, 나뭇가지가 딱 딱한 외피와 부딪치는 소리는 여과 없이 실내로 전해져 들어온다. 키메라들이 운반하기 쉽도록 가벼운 재료로 만들었기에 그 소리가 더욱 크게 울리는 것인지도 모 른다.

“이런 빌어먹을!”

주변의 소리를 차단할 수 있는 마법을 익혔다면 얼마나 좋았겠느냐마는, 아직 그녀는 그 정도 실력이 되지 못하니 환장할 노릇이다. 어쩔 수 없이 그녀는 귀마개 두 개를 만들어 귓구멍을 틀어막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미쳐 버리겠네.”

처음에는 귀청을 때리는 소음이 문제였지만, 차츰 시간이 지날수록 흔들림이 더욱 큰 문제가 되기 시작한다. 가마가 흔들흔들하는데 따라서 속도 울렁울렁… 더군다나 좁은 공간 안에 갇혀 있다 보니 그 상태는 더욱 심해진다.

“자…, 잠깐만 쉬었다 가자.”

기어들어가는 듯한 마를린의 목소리를 못 들었는지 키메라들은 계속 내달린다. 그녀는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배를 움켜쥐고 뾰족한 소리로 외쳤다.

“그만! 서! 서라고, 이 망할 새끼들아!”

키메라들이 급정거를 하자마자 노랗게 질린 얼굴을 한 마를린이 급히 문을 열어젖혔다.

“우웨에엑! 우웩!!”

이렇게 미친 듯이 흔들리는 가마에 타고 있으니 멀미가 날 수밖에.

가까운 거리였다면 키메라들의 뒤를 쫓아 비행마법으로 따라가던지, 아니면 속도 증가 마법을 활용하여 달려갔을 것이다. 하지만 먼 거리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녀의 체력으로는 장거리를 고속으로 이동하는 키메라들을 뒤따라간다는 게 무리였던 것이다.

“내가 이래서 가마를 타고 싶지 않았던 거였는데…….”

갑자기 눈물이 핑 돈다. 이러려고 마법사가 된 게 아니었는데……. 키메라들만 보내서 사체를 처리해 버리라고 할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키메 라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그 사체를 확인해야만 했던 것이다.

마를린은 요동치는 가마 안에서 축 늘어진 채 연신 헛구역질만 하고 있는 중이다. 일어나 앉을 힘도 없다.

“우에에엑! 우웨엑!”

처음 몇 번인가는 구토가 치밀어 오를 때마다 가마를 세워서 밖에 토해 버렸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뱃속에 있는 걸 몽땅 다 토해 버린 것인지 이제는 아무리 구역질을 해대도 신물만 조금 올라올 뿐이다. 그녀는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기만을 빌며 키메라들이 계속 달리도록 놔두고 있었다.

“끄으억! 주, 죽을 거 같아…….”

끝날 것 같지 않았던 흔들림이 갑자기 멈췄다. 그리고 밖에서 들려오는 껄끄러운 목소리.

“취익! 도착했다.”

마를린은 황급히 문을 열고서 기다시피 밖으로 굴러 나왔다. 다리에 힘을 줘 간신히 몸을 일으키려던 그녀는 하마터면 주저앉을 뻔했다. 장시간 흔들리다가 갑자 기 탄탄한 대지를 밟고 서니, 이번에는 오히려 땅바닥이 흔들리는 듯한 진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실은 그녀의 다리가 후들거리고 있는 것이었지만.

“후우, 후우~”

심호흡을 몇 번하며 마음을 진정시키자, 그제서야 주위의 사물이 차츰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던 그녀의 눈에 띈 고깃덩이들, 키메라의 사체였다. 

“잠깐! 너희들은 그쪽으로 가지 마! 저쪽으로 가!”

그녀의 눈치를 힐끔힐끔 살피면서도 군침을 흘리며 사체 쪽으로 조금씩 다가가고 있던 키메라들이 멈칫하는 게 보였다. “저쪽으로 가라니까! 나중에 배 터지게 먹게 해 줄 테니까. 안 그래도 힘없어 죽겠는데, 날 자꾸 고함지르게 할 거야?” 그래도 꼼짝하지 않고 사체를 바라보며 침을 흘리고 있는 키메라들. 급기야 마를린은 신경질적인 어조로 놈들을 위협했다. “내가 셋 셀 동안에 저쪽으로 안가는 놈은 한 조각도 못 먹게 할 거야. 알겠어? 하나…….”

그제서야 황급히 뒤로 물러서는 키메라들.

‘멍청한 새끼들…….?

사체에게 다가간 마를린은 한눈에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사체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그래듀에이트가 저지른 짓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 었다. 손이 뽑힌 놈, 머리통이 잘린 놈, 심장에 구멍이 난 놈……. 상처는 제각각이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상처 자국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것. 뭔가 엄청 나게 강력한 몬스터가 키메라들을 붙잡고 잡아 뜯어 버린 것 같은 그런 모습이었다.

그녀는 다급히 마법을 써 ‘대지의 기억’을 읽어 가해자가 누군지 알아봤다. 대지에 저장되어 있는 데이터는 그리 많지 않았다. 깨끗한 영상을 얻을 수는 없었지만, 인간형의 뭔가가 키메라들을 학살했다는 것만은 알 수가 있었다. 그것도 단 한 마리가.

“이럴…,수가…….”

마를린은 눈으로 직접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혹시 대지의 기억이 잘못된 것일까? 그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본 그녀는 곧이어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법사가 의도적으로 기억을 왜곡시켜 놨다면 혹 모르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잠시 고민하던 마를린은 사체를 바라보며 침을 질질 흘리고 있는 키메라들에게 명령했다.

“여기 있는 거 깨끗하게 최대한 먹어치우고, 도저히 먹지 못하겠는 건 가지고 돌아와 알겠어?”

“취익!”

“그리고 저 가마, 부서지지 않게 조심해서 가져다가 창고에 넣어 둬.”

키메라들에게 지시를 내린 후, 그녀는 연구소를 향해 곧바로 공간이동했다. 이리로 올 때는 목적지를 알 수가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가마를 타고 와야 했지만, 돌 아갈 때도 그 생고생을 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급히 연구소장에게 보고할 사항도 있었고..

“소장님, 급히 보고 드릴 게 있습니다.”

마를린은 방금 전에 자신이 직접 본 광경에 대해서 보고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연구소장의 이해를 돕기 위해 수정구에 자신이 봤던 장면이 떠오르도록 했다. 사체 들의 모습은 물론이고, 대지의 기억을 읽어서 보게 된 영상까지도…….

“흐음…….”

역시, 그녀의 예상대로 연구소장의 안색도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한동안 말을 꺼내지 못하고 뭔가 고민하던 연구소장이 문득 입을 열었다.

“자네는 저게 뭐라고 생각하나?”

“사람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연구소장의 생각은 달랐다. 사람이 저런 괴력을 발휘한다는 게 가능할까? 그것도 막강한 전투력을 지닌 고성능 키메라를 상대로 말이다.

‘엘프라고 생각될 정도로 재빠른 몸놀림. 하지만 엘프에게는 저런 파괴력이 없지. 사람처럼 생겼지만, 사람은 아닌 것 같아. 물론 격투술의 달인이라면 저런 움직 임이 가능하긴 하겠지만, 키메라들을 상대로 무기도 사용하지 않고 저런 미친 짓을 하고 있을 이유가 없잖아.’

“어쨌거나 그 부분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 보는 게 좋겠군. 그래, 사체의 뒤처리는 깨끗하게 했겠지?”

“예, 소장님.”

“좋아. 그럼 가서 볼 일 보도록 하게. 나는 일이 좀 있어서 말이야.”

“그럼 나가 보겠습니다, 소장님.”

마를린을 내보낸 후 연구소장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설마…, 드래곤은 아니겠지?”

충분히 가능성은 있었다. 이곳 몰몬트 산맥에 서식하고 있는 게 확인된 드래곤만 다섯 마리다. 그 외에도 더 많을 수도 있었다. 밖으로 나와서 그 흉포함을 드러낸 놈들만 계산된 숫자였으니까.

연구소장은 지도 앞으로 걸어가 마를린에게서 방금 전에 들었던 좌표의 위치를 찾았다. 다행히도 그곳을 영토로 하고 있는 드래곤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 서 방금 전의 영상에서 봤던 그것(?)이 드래곤이 아니라는 증거는 될 수는 없었다.

‘그러고 보니 드래곤일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키메라들은 침입자들을 쫓고 있는 중이었어. 그놈들이 드래곤의 둥지 쪽으로 키메라들을 유도했을 가 능성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우리도 아직 알아내지 못한 드래곤의 둥지를 다른 자들이 알고 있다는 게 가능이나 한 일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해답을 얻기 힘들자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연구소장은 걸음을 옮기며 중얼거렸다.

“어쨌거나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얘기를 좀 해 두는 게 좋겠군.”

연구소장은 품속에서 수정구를 꺼내 마법사 길드장의 개인 채널에 접속했다.

반가운 얼굴을 하고 있는 길드장에게 연구소장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며칠 전에 연구소에 침입자가 발생했던 탓에 부하가 신세를 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에 대한 감사인사도 드릴 겸, 겸사겸사 해서..

「아, 자네 연구소에 침입자가 있었다는 얘기는 들었다네. 내가 중앙지부장에게 지시해 뒀으니, 조만간에 처리될 걸세.」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뭘, 그 정도를 가지고…….」

“그런데 이번에 외곽 경비를 맡은 부하가 입수한 정보가 한 가지 있어서 말이지요. 아무래도 알려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급하게 통신을 넣게 되었습니다. 이걸 한번 보시지요.”

연구소장은 마를린이 보여 줬었던 영상을 길드장에게로 보냈다. 그의 기억 속의 내용을 그대로 보낸 것이었기에, 길드장의 수정구에 나타난 영상은 그가 바라보는 시점이 될 것이다.

연구소장은 이 영상을 보내면서 길드장이 격한 반응을 보여줄 거라고 예상했었지만, 그의 기대와 달리 반응은 미적지근하기만 했다.

‘설마…, 뭔가 알고 있는 건가?”

그렇다면 자신에게 알려 주지 않은 다른 정보가 있는 게 확실하다.

영상을 모두 본 길드장은 난처하다는 듯 턱수염을 쓱 쓰다듬더니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

「어차피 조만간에 자네도 알게 될 것이기에 말해 주는 건데…, 자네쪽 연구소에 침입했다는 그자 말일세.」

여기까지 말한 길드장은 한층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혹시 주변에 엿듣고 있는 사람은 없겠지?」

“걱정 마십시오. 여기는 제 방입니다.”

자네 연구소에 침입했던 자들 중 하나가 코린트의 기사였다네. 그것도 오너 급의 기사 말일세.」

“오너 급이라고요?”

「그래. 놈을 잡으러 나갔던 부하들에게서 올라온 보고서를 읽어 보니, 굉장했었던 모양이야. 자네도 알고 있지? 세브롱에 호크 기사단의 분견대가 주둔하고 있는 거 말일세.」

“예, 알고 있습니다.”

「그들도 이번 작전에 동원되었었다네. 그들이 물샐틈없는 포위망을 형성한 후에 마법사들이 일제히 기습공격을 했다고 하더군. 그런데도 살아서 도망쳤다니…, 믿을 수가 있겠나?」

“기사들의 실력이 형편없었던 건 아닙니까? 소문을 들으니 분견대에 배치되는 기사들이 뭔가 문제가 있어서 좌천된 자들이라고…….”

「그렇게 선입견을 가지고 판단하면 안 된다네. 보고서의 내용대로라면 그들을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야. 완벽하게 포위망을 갖춘 상태에서 기습공격을 퍼부었는 데도 살아서 도망친 걸 보면…, 놈의 실력이 그만큼 좋았다는 말이겠지. 더군다나 그자가 지니고 있는 마법도구들도 문제였고 말일세.」

“어떤 마법도구 말입니까?”

「안티 뷰 마나 포스를 구동할 수 있는 것과 안티 뷰 매직포스를 구동할 수 있는 마법도구를 지니고 있었다고 하더군. 그 둘을 동시에 구동시키고 있다 보니, 완벽하 게 기선을 제압해 놓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자를 놓쳤다고 하더라고.」

반지 한 개에 그 두 가지 마법이 함께 새겨져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기절초풍했을 두 사람이었다. 그들은 놈이 마법도구 2개를 함께 가지고 있을 거라고만 생각 했다. 그편이 훨씬 가격이 저렴할뿐더러 구하기도 쉬웠으니까.

“아주 용의주도한 놈이로군요.”

어쨌거나 잠자고 있는 걸 기습했으니, 짐이고 뭐고 챙길 여유도 없이 알몸에 가까운 상태로 도망친 모양일세. 자네가 보낸 키메라들과 싸우고 있는 그 모습은 그 때문일 거야. 그런데 자네가 만든 키메라들은 아주 후각이 좋은 모양이구먼. 침입자를 곧바로 찾아낸 걸 보면 말이야.」

“감사합니다.”

「여력이 되면 몇 마리 수색 작전에 빌려줄 수는 없겠나? 크게 도움이 될 듯한데.

길드장의 말에 연구소장은 난처하다는 듯 말했다.

“죄송합니다, 길드장님. 아직 상부에서 사용을 허가받지 못한 녀석들이라서……..

이 정도만 말했는데도 길드장은 곧바로 알아들었다. 비밀연구소에서 연구하고 있는 키메라들이다. 훌륭한 성능에도 불구하고 원로원에서 발표를 보류하고 있다 는 건, 뭔가 말 못할 문제점이 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뭐,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그 자를 붙잡는다고 호크 기사단 전력의 절반을 동원했으니 조만간에 좋은 소식 들을 수 있을 걸세.」

그 외에도 길드장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긴 했지만, 연구소장으로서는 알고 싶었던 정보는 이미 다 얻은 셈이었다.

‘코린트의 오너 급 기사였다니……. 길드장에게 연락해 보기를 잘했어. 드래곤일지도 모른다고 괜히 걱정했잖아.’

하지만 그는 모르고 있었다. 방금 전에 길드장과 얘기를 나눴던 첩자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는 것을. 둘의 대화가 이렇게 겉돌 수밖에 없었던 것은, 길드장이나 그나 둘 다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모두 다 실토하지 않고 대략적인 수준에서 대화를 나눴던 탓이었다. 둘 다 숨겨야 할 게 너무 많은 사람들이었으니까.

어쨌거나 드래곤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사라진 대신, 첩자가 코린트의 기사라는 더 큰 문제가 발생했다. 오너 급 기사를 코린트에서 연구소에 투입했다는 것은 그쪽에서 뭔가 냄새를 맡았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더군다나 이곳 연구소에서 연구하고 있는 마물은 절대로 세상에 알려져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아무래도 연구소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게 좋겠군. 아니, 연구시설이야 차츰차츰 기회를 봐 가며 옮긴다고 하더라도 마수만큼은 빨리 옮겨 버리는 게 좋겠어.’ 연구소장은 새로운 연구소를 어디에다 다시 만드는 게 좋을지 궁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그의 머리에 번쩍 하고 떠오르는 게 있었다.

“맞아. 코린트가 이미 이곳의 시설을 알고 있다면, 이곳을 폐쇄해서는 안 되지. 그러면 놈들이 더욱 의심할 테니까. 이런 때는, 허접한 연구를 진행하는 다른 연구 소와 시설을 맞바꾸는 게 최선이야. 코린트 놈들은 포기를 모르니까 이곳에서 무슨 연구를 하는지 확실하게 파악해내기 전까지는 끊임없이 첩자를 보내올 테니까. 그렇게 되면 비밀은 비밀대로 지키고, 놈들에게 엉터리 정보까지 흘릴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아니겠어? 흐흐흣……..

생각만 해도 재미있다는 듯 비릿한 웃음을 연신 짓던 연구소장은 다시금 지도 앞으로 다가가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우리가 사용할 만큼 거대한 시설을 지녔으면서도, 허접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는 연구소가 몇 개나 되는지 좀 알아봐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