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35권 2화 – 설마 눈치를 채고 튀었나?

설마 눈치를 채고 튀었나?

요새 내에는 이미 경계령이 떨어졌는지 성문 경계가 한층 강화되어 있었다. 평상시의 3배에 달하는 병력이 배치되어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을 철저하게 조사하고 있다. 그리고 성벽 위에도 병사들이 배치되어 주변을 향해 날카로운 눈길을 던지고 있는 게 보였다.

평상시에는 요새도시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에 대한 검문검색은 철저하게 해도,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반출하는 짐을 풀어 자세히 살펴보는 것은 물론이고, 각자의 신분증을 꼼꼼히 살펴보고 조금만 수상쩍어도 잡아들이고 있었다.

그 탓에 밖으로 나가려는 사람이 밀리고 밀려 긴 줄을 형성하고 있는 중이다. 밖으로 나가기에는 조금 늦은 시간인데도 이 정도이니, 아침에는 이 줄이 얼마나 길었을 것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그나마 앞쪽에 서 있는 사람의 숫자가 20여 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데 위안을 삼으며 라이 일행은 그들 뒤에 자리를 잡았다.

이때, 검문검색을 하던 경비병들 중 하나가 라이 일행 쪽으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대부분 경비병들의 나이가 20대 초반 정도인 것을 감안한다면 꽤 나이가 들어 보이는 경비병이었다.

“오늘도 사냥 나가려고?”

자신들을 향해 말을 거는 경비병에게 달톤을 비롯한 4명은 얼른 고개를 숙이며 최대한 공손한 표정을 지으려 노력했다. 워낙 험상궂게 생긴 얼굴이라 그게 더 어색해 보이긴 했지만, 누가 보더라도 경비병과 달톤 일행이 꽤나 친밀한 관계라는 건 금방 알 정도였다.

사실, 내막을 알고 있다면 조금만 생각해보면 뻔한 관계였다. 좋은 먹이가 포착되었을 때만 밖으로 나간다면 누구나 수상쩍게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런 만큼 달톤 일행은 평소에도 몬스터 사냥을 한다는 명목으로 부지런히 들락거렸고, 나갈 때마다 성문 경비병들에게 적당한 뇌물을 주다 보니 이런 친밀한 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에휴~, 먹고 살려니 별수 있습니까? 그런데, 오늘은 어쩐 일로 십부장님께서 밖에 나와 계십니까. 어디 높으신 분 저택에 도둑이라도 들었습니까?”

달톤의 너스레에 십부장은 인상을 잔뜩 찡그리며 투덜거렸다.

“젠장, 살인 사건이야. 어떤 미친놈이 여왕벌의 둥지를 아예 박살을 내놨다고 하더구만. 그 때문에 저 위쪽에서 엄청 쪼아대는 모양이야. 빨리 흉수를 잡아들이라고.”

“여왕벌의 둥지라면…, 샐러맨더 파라는 거대 조직이 뒤를 봐주고 있다는 소문이 돌던데…………

“보나마나 폭력배들 간의 세력 싸움이겠지. 그거 말고 뭐가 있겠어?”

“에휴, 그놈들 싸움에 엄한 우리들까지 피해를 입고 있는 거네요. 십부장님께서도 고생을 하시고.”

“내 말이. 덕분에 아침부터 범인을 색출한답시고 이 개고생 아닌가.”

그러자 달톤이 조심스럽게 십부장 얼굴 근처로 다가서며 소근거렸다.

“근데 범인은 누구랍니까? 이곳 델카에서 샐러맨더 파를 건드릴 간 큰 조직은 거의 없을 텐데…

“내 짐작이지만 샐러맨더 파와 사사건건 시비가 붙던 블랙울프 파의 소행이 아닌가 싶어.”

“그럼 그놈들을 조사해야지, 왜 성문을 막아놓고 이 난리랍니까?”

“쯧, 블랙울프를 옹호하는 간부들이 어디 한두 명인 줄 아나? 그러니 본거지를 조사해 보기는커녕 여기서 이러고 있지.”

그러자 달톤은 십부장에게 작은 주머니 하나를 슬쩍 건네며 말했다.

“에고, 우리 십부장님이 너무 고생이 많으셔서 어쩌나. 이걸로 고생하시는 부하분들과 저녁에 한잔하시죠.”

“뭘, 이런 걸 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십부장은 주머니를 곧바로 품속에 집어넣는다.

“괜찮은 놈이 잡히면, 돌아올 때 맛좋은 부위로 몇 덩이 잘라 드릴게요.”

“허허, 이거 말만이라도 고맙구먼.”

십부장은 그제서야 줄 제일 뒤쪽에 서 있는 라이를 발견했다. 낡은 가죽갑옷에 롱 소드를 허리에 차고 있긴 했지만, 혼자 나돌아다니기에는 너무 어려 보였다. 도대체 왜 여기에 서 있는 건지 이해를 하기 힘들었던 십부장은 달톤에게 슬쩍 묻는다.

“혹시, 이 친구도 자네 일행인가?”

“예. 이번에 새로 들어온 애송이입니다.”

“흠, 처음 보는 얼굴인 거 같은데?”

“얼마 전에 사냥을 하다 반병신이 된 저놈 애비가 굶어 죽게 생겼다면서 제발 사냥에 데리고 가 달라고 사정사정해서 말이죠. 어쩔 수 없이 받아주긴 했습니다만 에휴, 이러다 저놈까지 병신이 되는 건 아닌지 걱정입니다요.”

달톤의 넋두리에 십부장은 라이를 찬찬히 훑어봤다. 그리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달톤의 심란해하는 마음이 이해가 된 것이다. 십부장이 볼 때, 몬스터 사냥을 하기에 라이는 덩치가 너무 왜소했다. 그나마 장비라도 괜찮았으면 좋았을 테지만, 저런 허름한 걸로는 턱도 없다. 더군다나 롱 소드라니. 얇고 가벼운 만큼 휘두르기는 좋지만, 몬스터가 휘두르는 몽둥이 한 방에 두 토막이 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 때문에 몬스터 사냥꾼들은 좀 더 묵직하고 튼튼한 무기를 선호했다. 중검 종류나 도끼, 창 같은 거 말이다.

하고 있는 행색만 봐도 어리숙한 초보티가 팍팍 나고 있다. 십부장은 딱하다는 듯 라이를 바라보다 다시금 시선을 달톤에게로 옮기며 말했다.

“매정하다는 말을 들어도 딱 잘라서 거절을 하지 그랬어. 몬스터 사냥이 어디 애들 장난도 아니고, 이러다 자칫 사람 하나 잡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달톤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제 생각도 그런데 저놈 애비가 아들 새끼 죽어도 좋다며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데야 두 손 두 발 다 들었죠. 그래서 일단 짐꾼으로 한번 데리고 나가 보려고요.”

“젠장, 이 동네에서 그나마 돈벌이가 되는 건 사냥밖에 없으니 그 애비를 뭐라 하기도 그렇고. 그래 이번에는 얼마나 있을 예정인가?” “일단은 일주일을 생각하고 나갑니다만, 쓸 만한 사냥감을 찾지 못하면 며칠 더 걸릴지도 모르겠네요.”

“따라오게.”

십부장은 달톤 일행을 데리고 곧장 요새도시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편의를 봐줬다. 십부장이 이들을 직접 인도해 갔기에 그 누구도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십부장님 덕분에 성문을 빨리 통과할 수 있게 됐네요. 감사합니다.”

“뭘. 자네들하고 하루 이틀 본 사이도 아닌데……………. 그럼 행운을 비네.”

“감사합니다, 십부장님.”

달톤 일행이 요새도시 밖으로 나오자 마차 두 대와 십여 명의 사람들이 성문 옆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게 보였다. 자위능력이 떨어지는 일반인들의 경우, 일정 숫자가 모일 때까지 저렇게 문 앞에서 기다렸다가 일정 수 이상이 모이면 함께 출발하는 게

상식이었다.

중무장을 하고 있는 사내들이 다섯이나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자 모두의 시선이 쏠렸지만 곧이어 그들의 얼굴에 옅은 실망감이 어렸다. 달톤 일행이 착용하고 있는 갑옷의 형태와 무기를 통해 이들이 다란툼으로 가는 용병이 아니라, 산맥으로 올라가는 사냥꾼이라고 지레 짐작을 한 것이다.

몬스터 사냥꾼들이 애용하는 갑주는 둔기(純器) 공격에 대한 방어에 특화되어 있기에 약간의 지식만 있다면 알아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갑주뿐만이 아니라 무기도 용병과는 약간 차이가 있었다.

블루썬더 파의 주 수입원은 산적질이었고, 그 대상은 밀수꾼들이다. 처음부터 위법적인 일을 하는 놈들인 만큼, 산적에게 털려 전 재산을 날렸다고 해도 어디에 하소연할 수도 없다는 것을 노린 것이다.

물론, 밀수꾼들 중에서도 건드려서는 안 되는 집단도 있다. 요새도시 델카의 고관들과 연결되어 있는 거상들, 또는 샐러맨더나 블랙울프와 같은 거대 폭력조직과 연관되어 있는 밀수꾼들이다.

밀수꾼, 즉 먹잇감들에 대한 정보 수집이 루크의 주된 업무였다. “멀린 상회에서 일주일쯤 후에 물건이 들어온다고 했답니다.”

부하의 보고에 루크는 씁쓸하게 입맛을 다셨다.

“젠장! 좋은 걸 하나 놓쳤군.”

부하가 말한 물건은 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운반되어 들어오는 물품을 말하는 게 아니라, 밀수꾼들이 주로 취급하는 것을 말한다. 루크가 맡은 일은 부하들을 투입해 그런 물건들의 동향을 주의 깊게 관찰하는 것이었다. 밀수꾼들이 자신들의 행적에 대해 사방팔방 떠들고 다니는 건 절대로 아니었으니까.

일주일 후에 물건이 들어온다고 했다면, 멀린 상회에 물건을 건네주는 밀수꾼들이 밀수품을 들고 산맥을 넘어간 건 그보다 한 달쯤 앞이었을 것이다. 알카사스에서 생산되는 물건들 중에는 외국에서 군침을 흘리는 고가품들이 많다. 특히 마법물품들이……………

그에 반해 외국에서 생산되는 물건들 중에서 알카사스 쪽에서 군침을 흘릴만한 건 극히 드물었다. 그런 만큼, 밀수꾼들은 외국에 인기 있는 고급품을 밀수출하고, 산맥을 넘어 되돌아올 때는 빈손으로 돌아오기는 뭣하니까 현금으로 바꾸기 용이한 적당한 물건들을 가지고 돌아오는 게 관례였다.

즉, 돌아오는 놈은 털어 봐야 별로 돈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물론 개중에는 밀수출한 대금을 고스란히 들고 돌아오는 멍충이들도 있긴 했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상인 길드에 약간의 수수료를 지불하는 것만으로도 안전하게 현금을 이동시킬 수 있었으니까. 현금을 이동시키는 건 밀수가 아니기에 굳이 위험부담을 감수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때, 밖에서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루크 있냐?”

곧이어 그에 응하는 부하의 목소리도 들린다.

“아, 예. 안에 계십니다.”

쓰윽 안으로 들어서는 사내의 얼굴을 보자 루크는 활짝 웃으며 반겼다.

“오호, 오랜만이군. 그런데 자네가 여기까지 웬일인가?”

“두목께서 자네를 찾으셔서 말이야. 빨리 본부로 들어오래.”

“그래?”

이리로 오기 전에 두목하고 만나고 왔던 루크다. 그 사이에 뭔가 자신에게 지시할 거라도 갑자기 생긴 건가?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그의 뇌리를 번쩍 스치는 게 있었다. 왜 두목의 명령을 스팅이 전달하러 온 것일까?

스팅은 이런 일을 전담해 왔던 녀석도 아니었고, 이런 하찮은 전언을 전달하기에는 조직 내에서의 그의 지위가 너무 높았다. 이 정도 전언이라면 조직원 중 아무나 붙잡고 시켜도 되는 일이 아닌가. 게다가 루크의 의구심을 더욱 키운 것은 스팅이 부두목의 라인을 타고 있는 직속 수하라는 점이었다.

이 모든 상황이 그의 머릿속에서 번개처럼 조합되자 등골을 타고 싸늘한 기운이 퍼져나가며 온몸에 소름이 쫘악 돋는다.

아무래도 느낌이 이상해……………?

슬쩍 스팅의 눈치를 살피자 그는 왠지 안절부절못하는 듯 좌우로 눈알을 불안하게 굴리고 있었다. 조직 내에서 무투파로 분류되는 스팅이 고작 두목의 전언을 전하는 것만으로 불안해한다? 그렇다면 이건 거짓이다. 그리고 두목을 핑계 삼아 본부로 자신을 호출할 일이라면?

한 점의 표정 변화도 없이 라이에게 거짓말을 뻔뻔스럽게 나불대던 루크였다. 그런 그가 자신의 당혹스러운 내심을 드러낼 리가 없다. 루크는 애써 웃음 지으며 능청스럽게 입을 열었다.

“급히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그러는데, 잠시만 여기서 기다려 주겠나? 부하들에게 몇 가지 지시만 하고 바로 돌아옴세.”

곧바로 돌아오겠다는데 두목이 빨리 데리고 오라고 했다면서 압박하는 것도 이상한 노릇이다. 그렇기에 스팅은 루크의 요청을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게나.”

그러자 후다닥 밖으로 달려나가는 루크.

“잠시만 기다리게. 최대한 빨리 끝내고 돌아옴세.”

스팅은 그 이후 꽤 오랜 시간 루크가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렸지만, 결국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다급한 마음에 주위의 부하들을 붙잡고 루크의 행방을 수소문했지만 어디로 갔는지 아는 놈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제서야 스팅은 자신이 루크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설마, 눈치를 채고 튀었나?’

그렇게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상황. 계속 자리에 앉아 녀석을 기다려 봐야 별 뾰족한 수도 없었기에 스팅은 부두목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갔다.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기에 왕창 깨질 것을 걱정하며…………

“부두목, 스팅입니다.”

스팅이 루크를 데리고 온 줄 알고 허리춤에 단검을 챙겨 넣던 부두목은 문을 열고 스팅 혼자 들어오자 어이가 없었다는 듯 소리 질렀다.

“루크는 어디 가고, 너 혼자 돌아와?”

호된 질책에 스팅은 고개를 푹 숙인 뒤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변명했다.

“그, 그게. 급하게 일 처리할 게 있다며 나간 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아 찾아봤더니 어디로 간지 아무도 몰라서..”

“끄응……?”

부두목은 기가 막히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또한 루크 못지않게 눈치가 빠른 인물이다. 그렇지 않고 대가리 속에 근육밖에 안 들어있는 저돌적인 사내였다면, 오래전에 두목 눈 밖에 나서 산속에 파묻혔으리라. 두목의 의심을 산 부하들은 다 그렇게 죽임을 당했고, 또 흔적 없이 묻혀 버렸으니까.

물론 두목은 그들이 조직을 떠났거나, 아니면 현상금 사냥꾼 따위에게 잡혀 죽임을 당한 게 아닐까 하는 소문을 흘려 연막을 쳤었다. 그런 두목 밑에서 십수 년을 버틴 사내가 부두목이다. 몇 가지의 단서만으로도 대략적인 상황을 유추할 수 있는 눈치가 있는 것이다. 루크 녀석이 튀었다. 단순히 튀기만 했을까? 순간, 부두목은 자신이 가장 우려하던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두목을 죽인 후, 굳이 루크 녀석을 불러들여 해치우려고 했던 이유. 그건 녀석이 너무 많은 걸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지금 당장 이곳을 벗어난다.”

갑작스런 부두목의 명령에 스팅은 멍한 표정으로 물었다.

“예? 그건…, 무슨 말씀이신지?”

“시간이 없다. 내 짐작이 맞다면 녀석은 지금 샐러맨더 놈들에게 달려가 우리를 밀고하고 있는 중일 테니까. 썩을 놈! 그냥 죽고 말지, 자기 혼자 살겠다고 동료들을 팔다니…………

자신이 죽이려 했고 놈이 눈치채고 튄 것이지만, 부두목으로서는 루크놈이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성질만 내고 있어 봐야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지금은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탈출하는 것만이 살길이었다.

부두목은 다급하게 방 밖을 지키고 있던 알리까지 불러 지시를 내렸다.

“지금 당장 여기를 벗어나라고 모든 조직원들에게 전해라. 그리고 알리, 너는 지부들을 돌며 나에게서 별도 지시가 내려갈 때까지 깊숙이 잠적하라고 해. 루크 놈이 배신했다!”

스팅과 알리에게만 맡겨둘 수는 없었기에 부두목은 솔선해서 본거지 안을 돌아다니며 루크가 조직을 배신했다는 걸 알렸다. 그놈이 샐러맨더 파나 블랙울프 파에 매수되어 두목을 암살하는 만행을 저지르고는 튀었다고 말이다.

조직원들은 부두목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는 힘들었지만, 두목의 시체를 보고는 모두들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지금은 한가롭게 범인이 누구냐를 따지고 있을 시간 여유조차 없는 상황이다.

“최대한 빨리 이곳을 벗어난다! 녀석 혼자서 두목을 암살하는 대담한 짓거리를 벌였을 리가 없다. 분명 샐러맨더나 블랙울프의 사주를 받았음에 틀림없어. 그리고 그놈들이 언제 이곳을 덮칠지 알 수 없다. 이곳은 물론이고, 지부 전체가 위험하다! 각자 지부로 가서 잠적하라고 전해. 준비해 놓은 비밀거점으로 피신하지 말고, 아무 데나 다른 곳으로 튀라고 말이야. 모두들 빨리 움직여! 빨리!”

루크가 배신한 만큼, 그놈이 알고 있는 비밀거점들은 쓸 수가 없다.

““돈벼락’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거기 쌓인 물건을 모두 빼내려면

산적질을 통해 약탈한 물품들을 합법적으로 팔아먹기 위해 세운 게 바로 『돈벼락』이라는 상점이었다. 값싸고 덩치 큰 물품들은 그곳으로 가져가서 판매했고, 손쉽게 구하기 힘든 값비싼 물품들은 따로 모아뒀다가 다른 영지로 가져가서 팔았다. 그편이 가격을 비싸게 받을 수 있을뿐더러, 꼬리를 잡힐 염려가 없었으니까.

어쨌거나 그들이 가진 부피 큰 물품들은 모두 거기에 쌓여 있었고, 그걸 단시간 내에 빼돌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비밀거점들을 쓸 수 없는 만큼, 그것들을 빼돌리는 데 성공한다 해도 보관할 수 있는 장소를 확보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부두목은 눈을 질끈 감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게 어떻게 모은 물건들인데…………

“어쩔 수 없지. 값비싼 것들만 챙겨 들고 빨리 피하라고 해. 한시가 급하다!”

“알겠습니다, 두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