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38권 20화 : 강철 인형술사 – 1



강철 인형술사 – 1

모든 언데드들을 토벌한 후, 라이는 피해 있던 사막 부족 사내들에게 다가갔다. 모두 딱딱하게 굳은 얼굴이긴 했지만, 자신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라이의 모습에 약간은 마음을 놓고 있는 상태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진작에 다 도망쳐 버렸을 것이다. 그들 중 일부는 라이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벽 안쪽까지 다가가 싸움을 구경하다 언데드들이 내뿜는 강한 시독에 노출된 탓에 연신 구토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의 상태만 봐도 라이가 자신들에게 했던 조언은 틀림이 없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중독이 그리 심한 상태는 아니니,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겁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대충 언데드 처리가 끝난 거 같으니 잠시 얘기 좀 하세. 도대체 자네 정체가 뭔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사막 부족 사내들의 눈빛을 보고, 라이는 모두가 다 아즈리아와 똑같은 의문을 품고 있다는 걸 알았다. 물론 거짓말로 지금 이 순간은 당장 넘어갈 수 있겠지만, 점점 더 의문이 증폭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라이는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만약 진실을 말했을 때 저들과의 사이가 틀어진다 해도 자신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도 그의 선택에 영향을 미쳤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생명을 구해줬던 아즈리아에게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얘기를 하자면 조금 깁니다만…………….”

아즈리아는 미소를 띠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괜찮네. 우리에게 시간은 충분해. 이렇게 불편한 마음으로 자네와 함께 더 이상 움직이기는 힘들지 않겠나?”

“저는 알카사스 제국 기사단의 도망병입니다. 제 말을 믿건, 그렇지 않건 그건 여러분의 선택이 되겠지만 말이지요.”

라이는 자신이 왜 콘도르 기사단에서 도망칠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했다.

우연한 기회에 타이탄을 노획하게 되었는데, 그걸 상부에서 뺏으려고 했다는 것을.

자신이 예전에 용병단에 있을 때, 노획한 장비는 노획한 사람의 것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그걸 무시하고 상부에서 강탈하려 했기에 도망치게 되었다고 말이다.

“저보다 훨씬 더 강한 기사가 저를 붙잡으려고 쫓아왔습니다. 그 사람을 피해 정신없이 도망치다 보니 여기까지 흘러오게 된 것입니다.”

사막 부족의 사내들은 라이의 설명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자신들은 아직까지 라이만큼 강한 전사를 본 적이 없다. 그런 훌륭한 전사를 겨우 노획물 하나 때문에 잃게 되다니. 그리고 그 노획물을 회수하기 위해 라이보다 훨씬 더 강한 전사를 투입해서 추격했다는 것도.

모두의 의문을 대신해서 아즈리아가 질문했다.

“그 노획물이라는 게 대체 뭔가? 혹시 우리에게 보여줄 수는 없겠나? 솔직히, 자네 말을 믿기가 좀 힘들어서..”

여기까지 털어놓았는데 굳이 타이탄을 보여주지 않을 필요는 없다.

중에 혹시라도 바위도마뱀보다 훨씬 더 강한 언데드를 상대하게 된다면, 어차피 저들에게 보여줄 수밖에 없다.

이들과 헤어져 떠날 게 아니라면 지금 다 보여주는 게 좋을 것이다.

이렇게 마음을 정한 라이는 타이탄을 불렀다.

“케이론, 나와 봐.”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공간을 열고 모습을 드러내는 거대한 강철 골렘.

순간 사막 부족 사내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다. 개중에는 두려움에 질려 벌떡 일어서거나 무기를 집어 드는 사내도 있었다.

그들은 태어나서 아직까지 타이탄을 본 적이 없다. 그저 과거 알카사스와 싸웠던 선조들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로나 들어봤을 뿐이다. 사내들은 그 전설이 진짜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전설이라는 게 원래 그렇듯 허황한 말과 함께 적당히 살이 붙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듯 실물을 직접 눈앞에서 보게 되니 그들이 지금껏 가지고 있었던 지식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 것이다.

“허억! 이, 이것은………… 우리 조상들을 괴롭혔다는 강철 인형!”

“설마 강철 인형을 소환해서 부린다는 인형술사?!”

“인, 인형술사다! 설마하니 전설이 사실이었다니!!”

과거 그들의 조상인 사막전사들이 타이탄과 전투를 벌였다는 전설은 극히 단편적으로 전해져 내려왔다.

그들은 사람이 강철 인형에 탑승하여 싸울 수 있을 것이라고는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그들은 강철 괴물을 소환하여 부리는 마법사가 있을 거라고 추측했고, 그를 인형술사라고 칭하고 있었다.

새파랗게 질려있는 동료들을 향해 라이는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부드럽게 말했다.

“이 타이탄이 내 친구인 케이론입니다. 다른 사람과는 의사소통이 되지 않지만 나하고는 소통이 돼요. 그렇기에 소중한 친구라고 할 수 있죠. 그런 친구를 가져가 분해를 하겠다고 하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던 겁니다.”

“이 강철 괴물과 대화가 가능하다고?”

“예.”

“노, 놀랍군…….”

“허어, 난 자네가 실력 있는 검사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렇게 위대한 마법사일 줄이야..”

“이렇게 내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있으면서도 도저히 믿겨지지가 않네. 이걸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줘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거야.”

사막 부족 사내들의 말을 듣던 라이는 자신에게 자꾸 마법사라고 하고 있자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었다.

“예? 마법사라니, 그건 무슨 말씀이시죠? 저는 검사입니다. 마법은 쓸 줄 몰라요.”

“허, 말도 안 돼. 우리들의 전설에 따르면, 저 강철 인형은 인형술사라고 불리는 마법사가 소환한다고 알려져 있다네. 그런데 자네가 마법사가

“아니라고?”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아즈리아의 말에 라이는 피식 웃으며 천천히 설명해 주었다.

“여러분이 볼 때는 강철 인형일 수도 있겠지만 타이탄은 일종의 커다란 마법 갑옷 같은 겁니다. 주인으로 인정받게 되면, 타이탄에 탑승해서 조종할 수 있게 되죠.”

“아, 그런 것이었나…………”

“여기에 계신 분들 외에는 제 케이론을 봤다는 건 비밀로 해주셨으면 합니다. 알카사스 제국에서는 제가 사막에서 죽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요. 만약 혹시라도 제가 살아있다는 걸 알카사스 제국에서 알게 된다면 또다시 클리프 바그룩 같은 기사를 보내올 겁니다. 저로서는 도저히 그를 이길 수 없거든요.”

“그 사람도 인형술사인가?”

아무리 라이가 진실을 말해줘도 지금까지 믿고 있던 상식이 순식간에 바뀔 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아즈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인형술사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예. 저보다 훨씬 더 강한 인형을 가진 정말 대단한 기사예요.”

“흐음…….”

한참을 고심하던 아즈리아는 다른 사막 부족 사내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라이에 대한 비밀을 지킬 것을.

전설적인 강철 인형을 조종하는 라이가 자신들을 돕는다면, 움직이는 시체들을 처리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로서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지금으로서는 라이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으니까.

아즈리아는 라이에게 사막 부족의 사내들을 대변해서 말했다.

“걱정하지 말게. 자네의 비밀은 틀림없이 지킬 테니까. 신께 맹세해도 좋네.”

“맹세하실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믿겠습니다.”

“움직이는 시체들이 날뛰고 있을 때 인형술사인 자네를 사막에서 발견한 것도 다 신의 뜻이시겠지.”

“맞아. 신께서 보내주신 구원자야.”

“우리 사막 부족 사내들의 입은 강철보다 더 무겁고 단단하니까 너의 비밀은 틀림없이 지켜질 것이다.”

전설적인 강철 인형을 지닌 라이의 존재에 사막 부족 사내들은 용기백배했다.

전설에서 인형술사는 사막민족을 박해하는 최악의 악당이었지만, 그런 인형술사가 동료가 되어준다면 그만큼 든든한 조력자도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움직이는 시체들은 지금까지 상대해 본 적도 없는 괴상한 몬스터였으니까.

“자, 그럼 이제 다른 마을로 가보세.”

사람에게도 물과 식량이 필요하지만, 자신들이 타고 온 말에게도 그건 똑같이 적용되는 사항이었다.

먹이야 관목 잎사귀나 잡풀을 뜯어 먹으면 어느 정도 해결할 수도 있었지만, 물을 오랫동안 먹이지 않으면 말이 버티지를 못한다.

“썩어가는 언데드들이 뿜어내는 독기가 있다고 했잖아. 그것들이 득실거리던 곳인데, 우리가 마셔도 괜찮을까?”

“우물은 뚜껑으로 덮어놨으니 마실 수 있지 않을까?”

“한번 살펴보세.”

대표로 사내 세 명을 차출해 마을 안으로 들어가 살펴보기로 했다.

마을 안은 뭉개진 사체들로 끔찍한 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썩어가는 시체에서 풍겨나오는 악취는 정말 끔찍했다. 도저히 숨을 쉬기도 힘들 정도였다.

마을 안으로 들어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아 한 사람이 구역질을 하기 시작했기에, 그들은 황급히 마을 밖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저런 상태라면 우물 안을 확인해 볼 필요도 없을 테니까.

“아즈리아, 우물은 포기하는 게 좋겠어. 독기 때문에 마을 안으로 들어가기도 힘들어.”

“맞아, 시체 썩는 냄새가 정말 지독하다고.”

“어쩔 수 없지. 그럼 다음 마을로 가세.”

마실 물을 구하지 못했음에도 다음 마을을 향해 이동하는 사막 부족 사내들의 표정은 아주 밝았다.

이번 마을에서 라이라는 강력한 존재가 자신들과 함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게 되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