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38권 21화 : 강철 인형술사 – 2


강철 인형술사 – 2

《이번에는 어디에다가 설치할까….?》

마신의 은혜가 아무리 막강한 위력을 지닌 아티펙트라고 해도, 그 수명이 무한할 수는 없다.

마신의 은혜 하나가 지니고 있는 암흑기운의 총량은 정해져 있었다. 출력을 높게 설정할수록 수명이 짧아지는 건 당연한 현상이다.

알파17, 22, 45가 열심히 마신의 은혜를 묻고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제대로 구동하고 있는 마신의 은혜의 숫자가 500개를 넘지 못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알파17은 힐끗 데스 나이트를 바라봤다.

저 데스 나이트가 알파2의 실험에 동원된 지도 3개월이 지나 있었다.

그때의 실험 덕분에 데스 나이트는 자아를 가지게 되었다. 데스 나이트들 중에서는 처음이다.

그렇기에 주인으로부터 영광스런 이름 베타1을 하사받았다. 뭐 그래봤자 아직 알파17의 하인 노릇밖에 하고 있지 못했지만 말이다.

알파2는 뭔가 수상쩍은 부분은 없는지 베타1을 세밀히 관찰할 것을 알파17에게 지시했었다. 그에 따라 그는 베타1의 언행을 꼼꼼히 관찰했었다. 하지만 3개월의 시간이 지난 지금은 거의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그것 말고도 신경 쓸 일이 얼마나 많은데……………

지도상에 찍혀있는 여러 점들에는 날짜도 함께 기록되어 있었다. 마신의 은혜를 설치했던 날짜다.

‘여기에 설치한 건 이미 수명이 끝났을 거야. 이번에는 여기에다가 설치하면 되겠네.’

그곳에 있는 오래된 사체들은 모두 언데드가 되어 있을 것이다.

거기에다가 또다시 설치해 봤자 더 이상 언데드가 될 사체는 없다.

효율을 위해서는 새로운 지점에 설치하는 게 좋을 것이다. 그리고 먹이가 다 떨어져 버린 언데드는 새로운 지점으로 이동시키고 말이다. 《이리로 와라.》

말이 통하기 시작한 다음부터는 베타1이 자신의 뜻을 재빨리 알아채서 좋았다.

예전과 달리 빠릿빠릿하게 움직인다. 서둘러 자신의 가까이로 달려온 베타1을 만족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알파17은 공간이동을 발동했다.

빛이 번쩍인 후 모습을 드러낸 알파17과 베타1.

알파17은 주위를 빙 둘러본 후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잘못왔나?>

알파17은 지도를 꺼내 확인했다. 실수는 없었다. 제대로 왔다.

하지만 이곳의 모습은 그가 기대했던 게 아니다. 주위에 언데드라고는 단 하나도 모여 있지 않았다.

‘이럴 수가 있나?’

주변에 마을들이 제법 있기에 상당히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을 거라고 예상했었다.

물론 사막 부족 남자가 상당히 뛰어난 전사라는 건 알파17도 잘 알고 있었다. 갓 언데드가 된 개체는 아주 쉽게 해치울 수 있을 정도로. 하지만 마신의 은혜에서 오랜 시간 암흑의 기운을 흡수한 개체의 전투력은 상당히 뛰어나다.

제대로 된 마법무기조차 지니지 못하고 있는 시골전사로서는 수십 명이 힘을 합친다 해도 죽었다가 깨도 상대가 불가능한 수준이다. 더구나 모래 속 깊은 곳에는 오래전에 죽은 대형 마물의 뼈대도 남아있다.

그런 게 하나라도 언데드가 되면 이 일대의 사막 부족은 완전히 씨가 마르게 된다. 그리고 그 시체들은 또다시 모두 언데드가 되고. 《이럴 수는 없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알파17은 베타1에게 지시했다.

《여기에 언데드 무리가 형성되어 있어야만 해. 하지만 그 어떤 기척도 느껴지지 않아. 찾아라. 뭔가 흔적이 남아있을 거다.> 

《알겠습니다……………》

베타1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지면을 살펴보고 있었지만, 뭘 찾아야 할지를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을 뿐이다.

알파17은 그런 베타1의 모습에 아쉬움을 느꼈다.

‘지식이 좀 더 남아있었다면 훨씬 더 쓸모가 있었을 텐데, 아깝네・・・・・・

베타1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만큼, 모든 건 알파17 홀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부드러운 모래 탓에 전투의 흔적은 남아있는 게 없었다. 하지만 알파17은 포기하지 않고 주변을 꼼꼼히 수색했다.

그 결과 그는 찾을 수 있었다. 주먹만 한 크기의 돌덩어리 십여 개를……………

《역시, 흔적이 아예 없을 수는 없지.>

돌덩어리는 크기에 비해서 무척 가벼웠다. 거의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꼼꼼히 살펴보는 알파17.

그는 이게 돌덩어리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앙상한 그의 손가락에 살짝만 힘을 줘도 푹푹 파일 정도로 무른 이것은 사멸한 언데드가 남긴 찌꺼기였다.

상당히 큰 언데드였을 것이다. 덕분에 이나마도 남아있을 수 있었던 것이고.

《누가 이런 짓을 했을까?》

알카사스의 기사단은 아니다. 그들은 사막 쪽으로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알카사스의 기사단은 대규모 부대가 괴멸된 지점을 폭넓게 뒤졌을 뿐, 일주일쯤 지나자 링카 성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 후에는 여기저기에 흩어져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을 뿐, 더 이상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알카사스 말고 어딘가 다른 나라의 기사들이 들어온 건가?》

그럴 가능성도 있었다.

지금껏 대륙 각지에서 기사급 첩자들이 들어왔고, 그중 상당수가 웜의 먹이가 되었다. 그의 직속상관인 알파3으로부터 웜들이 기사를 사냥하고 있고, 그 덕분에 꽤 많은 숫자의 타이탄을 노획했다고 들었다.

그렇다. 타이탄을 보유한 기사라면 단 한 명만으로도 어지간한 언데드 부대는 간단히 괴멸시킬 수 있다.

골렘 마법의 최고 정점에 서 있는 타이탄에는 그만한 힘이 있었으니까.

《알파3에게 건의를 해야겠군. 도시연합 쪽만 신경 쓰지 말고 이쪽으로도 웜을 좀 더 보내달라고 말이야.》

《베타1, 이리로 와서 성상의 보권을 설치해라.》

《예.≫

베타1이 성상의 보권을 설치하는 것을 보며, 알파17은 알파3에게 어떤 내용을 건의해야 할 것인지 궁리하고 있었다.

마신의 은혜 설치를 끝낸 알파17은 본부로 돌아갔다. 그리고 자신의 직속상관인 알파3을 찾아가 자신이 파악한 이변에 대해서 보고했다. 요즘 들어서 생산되는 언데드의 숫자가 급감하고 있다는 것을. 특히 사막 중북부 지방에 그 현상이 뚜렷했다.

《이유는 찾았나?》

알파17은 방금 전에 알아낸 사실에 대해서 설명했다.

누군가가 언데드 세력이 커지는 것을 막고 있다는 것을.

대형 언데드까지 없앨 능력을 지니고 있는 걸 보면, 상대의 세력은 상당히 크다고 봐야 할 것이다.

《잘했군. 어쨌거나 이렇게 정보가 부족해서야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정보 부족이 가장 큰 문제였다.

언데드들 중에서 자아를 지니고 있는 고위 존재의 숫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렇다 보니 어딘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다 해도 보고가

올라오지를 않는다.

웜들이 사막을 떠돌며 그래듀에이트 사냥을 하고 있다는 걸 최근에야 파악하게 된 것도 그놈들이 보고를 하지 않았기⋯, 아니 보고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녀석들은 말을 할 수가 없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일은 사막 전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알파3은 짜증어린 어조로 말했다.

《자네처럼 보고를 올리는 놈이 거의 없다 보니, 이런 젠장.》

《자아를 지닌 개체를 좀 더 확충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말입니다.》

획득한 고위 언데드들의 대부분을 마신의 은혜가 설치된 방에 넣어둔 것도 다 그것 때문이었다.

무수한 숫자를 자랑하는 언데드 집단이 오히려 인력 부족 때문에 고심하고 있다는 건 상당히 모순된 현상이라 할 수 있었다.

《그쪽은 자네가 자세히 조사해 봐. 그 일이 끝날 때까지는 다른 일은 하지 않아도 돼.》

《알겠습니다.》

인사를 올리고 나가려는 알파17을 알파3이 불러 세웠다.

해둘 얘기가 하나 더 있다는 게 떠올랐던 것이다.

《자네가 데리고 있는 베타1에 대해서 알파2한테 얘기를 들었는데 말이야. 뭔가 이상 현상은 발견하지 못했나?》

알파17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베타1은 태생 자체가 아주 특이해. 그런 식으로 자아를 얻은 전례가 없다 보니, 베타1이 어느 정도까지 과거의 기억을 회복했는지 알 수가 없어.》 《걱정마십시오. 오늘 일도 그 녀석 보고 흔적 좀 찾아보라고 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갈팡질팡하더군요. 과거의 기억은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만약 녀석이 뭔가 숨기고 있다고 해도 걱정하실 건 없습니다. 주도면밀한 알파2가 그런 걸 미리 예측해 이미 대비를 해 놓았습니다. 녀석의 목에는 이미 자폭용 아이템이 채워져 있습니다. 배신하는 순간 녀석은 죽은 목숨입니다.》

알파17의 말에 알파3은 고개를 갸웃하며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과거의 기억이 전혀 없다고? 그것 참 이상하군.》

알파17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전혀 없을 수는 없겠지요. 다만 우리들과 상황이 다르지 않습니까.》

알파17은 지금까지 자신이 생각하고 있었던 걸 알파3에게 설명했다.

알파17이 자아를 찾은 후, 따로 공부를 필요로 하지는 않았었다.

필요한 지식의 대부분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흑마법은 흑마법사가 사용하는 거나 리치가 사용하는 거나 똑같다.

하지만 검술은 다르다. 살아생전에는 마나를 사용하지만, 데스 나이트는 마나를 사용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죽음의 기운을 사용하는 방법을 누군가가 알려주는 것도 아니고.

그래듀에이트는 성장 과정에서 오로지 무공만을 익힌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그래듀에이트가 될 수가 없다.

그렇다 보니 기사단의 경우, 그들의 무식함을 보완하기 위해 작전관이라는 직책을 두고, 전략 전술에 능한 참모를 배치하여 지휘하게 된다. 그리고

기사단에는 머리가 영민한 마법사들도 득실거린다.

모든 머리 쓰는 일들은 마법사가 처리하고 있었다.

알파17이 기억하는 그래듀에이트라는 존재는 그러했다.

어지간히도 기사에 대해서 왜곡된 기억이다. 어쩌면 살아생전에 기사라는 존재에 대해서 꽤나 쌓인 게 많았었던 모양이다.

알파17은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그래듀에이트의 무식함에 대해 알파3에게 쭉 늘어놓은 후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베타1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습니까?》

알파3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글쎄…, 이렇게 말하는 건 좀 그렇지만, 내가 기억하는 그래듀에이트와는 좀 차이가 있군. 나는 그래듀에이트가 그렇게까지 무능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말일세.》

제 생각에는 타이탄만 없었다면, 국가의 모든 중대사는 마법사들이 컨트롤했었을 겁니다. 지금 저희들이 그렇지 않습니까. 데스 나이트는 그저 짐꾼 외에 그 어떤 가치도 지니고 있지 못하고 있죠. 최상위급 언데드임에도 공격력이 강한 것도 아니고……………》

데스 나이트가 그렇게까지 쓸모가 없는 건 아니었다

그 정도 크기에 그만한 공격력을 갖춘 건 없었으니까. 그리고 다른 동물형 언데드에 비한다면 훨씬 쓸모가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다고 데스 나이트를 경시하는 건 너무 위험해. 순간적인 기습이라면 한순간에 우리들을 분쇄해 버릴 수 있다는 걸 명심하게.》 알파17은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충고 감사드립니다.》

《어쨌거나 얘기를 잘해보게. 녀석도 뭔가 기억하고 있는 게 있긴 할 거야. 평생을 무공 수련만 하다가 죽어버린 게 아니었다면 말일세.》

《알겠습니다.》

《좋아. 내 얘기는 끝났으니까 가 봐도 좋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