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38권 27화 : 발키란성 전투 – 2


발키란성 전투- 2

언데드의 대규모 공격이 예상되었기에 그 어느 때보다도 발키란 성의 분위기는 무거웠다.

사방에 불을 밝혀놨고, 경계를 서는 병사들은 어디서 작은 소리라도 들리면 신경을 집중해 감시했다.

“장군님 말씀대로 정말 오늘 올까?”

“잡담 말고 경계나 철저하게 해라.”

“옛!”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경계병들이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바람을 타고 흘러 들어오는 지독한 악취였다.

“우윽! 이게 무슨 냄새야?”

“코가 썩을 것만 같은 지독한 악취다!”

희미하게 풍겨오던 악취는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강해지기 시작했다.

어둠 속이라 보이지는 않고 있었지만, 언데드 떼가 서서히 접근하고 있다는 건 점차 심해지는 악취만으로도 파악이 가능했다.

적의 침입을 알리는 요란한 종소리가 발키란 성안에 울려 퍼졌고, 그에 맞춰 휴식을 취하고 있던 병사들이 준비를 갖추고 성벽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병사들의 방어 준비가 완벽히 갖춰진 후 한참이나 지났을 때, 어둠 속에서 뭔가가 꿈틀거리는 걸 처음으로 본 병사 하나가 외쳤다.

“적이다!”

“어디냐?”

“저쪽입니다.”

어둠 속, 그쪽까지 간신히 닿은 희미한 불빛에 노출된 적들의 움직임.

꿈틀거리는 구더기 떼가 연상될 정도로 기괴했지만, 잠시 시간이 지나 확실히 알아볼 수 있게 되자 병사들은 그게 엄청난 숫자 때문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수도 없이 많은 언데드들이 빈틈없이 빽빽하게 밀려들고 있는 탓에 마치 구더기 떼가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뭐가 저렇게 많아?”

적의 침입을 알리는 요란한 종소리가 울리고 있는 가운데 느릿하게 다가오는 언데드 떼들. 사람부터 시작해 각종 동물들까지 그 종류는 아주 다양했다.

불빛에 비친 언데드들은 꿈에 볼까 끔찍스러운 몰골을 하고 있었다. 그걸 보고 있는 병사들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휴식을 취하다가 급하게 달려 올라온 병사들 역시 언데드를 보고는 기겁을 하고 있었다.

나세르 장군은 내성에서 가장 가까운 성문인 동문에 자리 잡고 총지휘를 하고 있었다.

악취가 풍기는 것을 알게 되자마자 나세르 장군이 내린 명령은 기름을 덥히라는 것이다.

장군의 명령에 따라 병사들은 기름이 가득 들어있는 항아리들을 화톳불 위에 올려 끓이기 시작했다. 성벽 밑에 있는 적들에게 뿌릴 때도, 항아리째로 적에게 날릴 때도 이쪽이 월등하게 인화력이 높을뿐더러, 적에게 주는 피해도 크기 때문이다.

투석기 사정권 내에 적이 들어왔을 때쯤에는 기름도 펄펄 끓기 시작하고 있었다.

끝없이 몰려오고 있는 언데드의 출현에 나세르의 얼굴은 창백하게 굳어졌다. 예상한 것보다 훨씬 숫자가 많았다.

하지만 그래도 그는 절망하지는 않았다. 수는 많았지만 대형 언데드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데드들은 느릿느릿 움직이며 다가오고 있었다. 저런 상태라면 절대로 성벽 위로 올라올 수 없을 것이 뻔했다.

“다른 성문 쪽 상태는 어떻다고 하더냐?”

얼마 지나지 않아 각 지역을 방어하고 있는 지휘관들이 전령을 보내왔다.

나세르 장군이 위치한 지점에만 언데드가 몰려오는 게 아니었다. 사방에서 성을 포위한 채 무시무시한 숫자가 몰려들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성벽에 타격을 주거나, 혹은 성벽을 뛰어넘을 수 있을 정도의 거대 언데드는 포착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나세르 장군은 두려움을 애써 감추며, 부하들에게 자신 있는 목소리로 우렁차게 외쳤다.

“겁먹지 마라! 저것들의 느릿한 움직임을 봐라. 이 높은 성벽 위로는 절대로 올라오지 못한다. 모두들 걱정마라.”

나세르 장군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부하들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 다시 한번 더 소리쳤다.

“걱정할 거 없다. 놈들은 성안으로 절대 들어오지 못한다. 투석기에 기름 항아리를 장전해 쏴라.”

“oll!”

나세르 장군의 명령에 투석기에서 발사된 커다란 항아리들이 언데드 떼를 향해 날아가 박살나며 사방에 펄펄 끓는 뜨거운 기름을 흩뿌렸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궁수들이 불화살을 쏘자, 기름이 튄 쪽은 삽시간에 불바다로 변했다.

온몸에 불이 붙어 훨훨 타오르고 있는데도 언데드들의 움직임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저 느릿하게 전진해 오고 있을 뿐이다.

“설마, 화공이 통하지 않는 건가…………

절망할 뻔했지만, 여기저기서 새까맣게 불에 탄 언데드들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게 보였기에 나세르 장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자신의 작전은 틀리지 않았다. 그리고 놈들에게 대항할 수단도 있다. 그렇다면 끝까지 버티면 결국 놈들은 물러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느새 성벽에까지 접근해 온 언데드들이 파고들어 오려 용을 쓰고 있었지만 성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안전하다는 생각이 든 병사들의 분위기가 한층 밝아졌다.

“뭣들 하고 있나! 저 밑에 우글거리고 있는 마물들에게 뜨거운 기름을 쏟아부어라! 불을 질러라! 몽땅 다 태워 죽여 버리는 거다!”

처음에는 언데드들의 끔찍스러운 몰골 때문에 공포에 질린 병사들이 많았지만, 성벽에 막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불에 타죽자 모두의 안색에 생기가 넘치기 시작했다.

더구나 언데드들은 끔찍스러운 악취만 풍기고 있을 뿐, 화살 한 발 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성 밖으로 나가지만 않으면 죽거나 다칠 일조차 없게 된다. 병사들의 얼굴에 여유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름을 부었으면 불을 질러라!”

성벽 아래 곳곳에서 시뻘건 불길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입까지 썩어버린 때문인지 불 속을 허우적거리면서도 언데드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있었다.

“장군님, 저쪽을 보십쇼.”

병사 중 하나가 가리킨 어둠 속에서 거대한 뭔가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게 보였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그 정체가 드러났다. 엄청난 덩치의 장갑도마뱀이 느릿한 발걸음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번쩍이는 금속판으로 몸을 감싸고 있는 것이 뼈, 혹은 썩어가는 육신이 덕지덕지 붙은 언데드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살아있을 때와 별반 차이가 없을 정도의 외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저 장갑판 안쪽의 육신은 이미 다 썩어 없어져 버렸겠지만……………

“투석기는 모두 저놈을 노려라! 각 투석기, 준비되는 대로 발사하라!”

나세르 장군은 일부 투석기에는 기름항아리 대신 돌덩이를 장전시켜 발사하도록 했다. 과연 돌덩이가 먹혀들어 가는지 실험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투석기 여러 대에서 수많은 항아리와 돌덩이가 날아가 거대한 도마뱀에 적중되기 시작했다. 곧 거대 장갑도마뱀의 몸체 곳곳에서 화염이 치솟기 시작했지만 안타깝게도 돌덩이는 별 타격을 주는 것 같지 않았다.

돌덩이 공격이 무용하다고 판단한 나세르는 곧바로 기름항아리만을 날릴 것을 명령했다. 불화살에 맞은 거대 장갑도마뱀의 온몸에 시뻘건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다.

하지만 놈은 전혀 타격조차 입지 않았다는 듯 느릿하게 성문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움직임으로 봤을 때는 성벽 위로 뛰어오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는 게 그나마 희망적이다.

“다른 성문 쪽에도 대형 언데드가 나타났는지 확인하도록 하라. 만약 출현했다고 하면 화공이 잘 먹혀들어가니, 화공을 쓰라고 전하거라.”

나세르 장군이 가장 걱정했던 건, 성벽을 뛰어넘어 올 수 있는 날쌘 대형 언데드의 존재였다.

하지만 성 여러 곳에서 보내온 부하들의 보고에 따르면 그런 언데드는 아직 없다고 했다. 라시드에게 구원을 요청하도록 성주를 설득하지 못한 게 안타깝긴 했지만, 아직까지는 그럭저럭 막아낼 수 있을 듯했다.

그렇게 언데드 떼를 공격하느라 병사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 때였다.

“이게 무슨 소리지?”

뭔가 붕붕거리는 듯한 낮은 음향. 벌집 근처에나 갔을 때 들어봤던 소리다.

그런데 이 한밤중에 그런 소리가 들려오자 모두들 괴이하게 생각하긴 했지만, 곧이어 그들은 하던 일로 돌아갔다. 성벽 밑에 몰려있는 언데드들을 하나라도 더 없애버려야 했기 때문이다.

내일 해가 뜨면, 저것들을 완전히 토벌해서 끝장내야 한다. 그러자면 기회가 있을 때 하나라도 그 숫자를 더 줄여두는 게 좋을 것이라는 걸 모두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곧이어 병사들은 자신들이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았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아니 그들은 후회할 여유조차 없었다.

수도 없이 많은 벌레들이 온몸에 달려들어 공격을 해온 것이다. 평소 벌레에 물렸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뜨끔하는 아픔이 처음 느껴지는가 싶더니, 곧이어 불에 덴 것처럼 지독한 통증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통증은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수많은 벌레가 빽빽하게 달라붙어 있는 만큼, 온몸 전체에서 통증이 일어나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으아악!”

“흐어억!”

“이, 이게 뭐야? 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