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38권 4화 : 그루시아 후작의 욕심 – 1

묵향 38권 4화 : 그루시아 후작의 욕심 – 1


그루시아 후작의 욕심 – 1

그런데 입술을 꽉 깨물고 밖으로 나가는 다이아나 일행을 은밀히 훔쳐보고 있던 사람이 있었다.

그는 아르티어스(?)로부터 받은 힘든 임무를 수행한 후, 휴식도 취할 겸 주변 돌아가는 정세도 파악할 겸해서 이곳 술집에 죽치고 앉아 있던 올란도였다.

정보도 얻을 겸, 술도 마실 겸 술집에 앉아 있던 올란도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드래곤을 시중들기 위해 출발한 이래 그 어떤 정보나 지원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누가 적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정보조차 어두우니 만약 대규모 전투에 휩쓸리게 되면, 제아무리 자신의 실력이 좋다고 해도 살아서 돌아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이런 떠그랄…………. 내가 왜 이런 짓을 하고 있어야 하는지 생각할수록 짜증 나는군.”

얼마 전까지 룰루랄라 하면서 잘 먹고 잘살고 있었는데 드래곤 때문에 아차 실수하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그 빌어먹을 아르티어스라는 노란 드래곤은 현재 이곳 링카 성에서 유희 중이다.

올란도는 유희라는 게 무슨 뜻인지 잘 몰랐지만, 그 노랑이가 유희라고 하니 그러려니 하고 있었다.

어쨌거나 드래곤의 지시는 단 하나였다. 은밀히 뒤따르다가 자신이 위험할 듯하면 달려와 비밀리에 도우라는 것.

“망할 놈이 자기가 직접 처리할 수 있으면서 나보고 하라는 건 또 뭐야. 당최 이해를 할 수가 없잖아.”

불만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상대는 빌어먹을 드래곤이었으니까. 문제는 지금처럼 아무런 정보도 없이 돌아다닌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강력한 무력을 갖춘 조국이 한순간에 멸망하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봤으니까.

나라도 그러한데 개인의 무력 따위 아무리 강해도 한순간에 싸늘한 시체가 될 수 있다는 걸 올란도는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이곳 링카 성에 도착한 후, 한숨 돌리게 되자 그는 정보 수집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중이었다.

언제 그 망할 드래곤이 자신을 부를지 모른다. 그 전에 자신의 목숨을 지킬 수 있는 방책을 하나라도 마련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가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은, 사막의 남쪽 지역이 실버 드래곤의 영역이라는 얘기를 이곳 주민들에게 들은 다음부터였다.

올란도가 드래곤이 아닌 이상, 드래곤에게 유희가 어떤 의미인지 알 리가 없다.

하지만 드래곤도 제 목숨이 아깝다면, 도저히 방법이 없을 만큼 위급한 상황이면 슬쩍 드래곤으로 돌아가 브래스 한방 뿜어버린 다음, 다시 시작할 거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아무리 유희라지만 목숨까지 걸며 할 건 아닐 테니까.

그렇다면, 얼마 전에 봤던 초대형 언데드 샌드 웜이 비록 상대하기 힘든 적일지라도 결코 드래곤의 위협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상대가 드래곤일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드래곤 간의 역학관계 따위 올란도가 알 리가 없다. 하지만 아르티어스라는 드래곤이 조심을 하는 걸로 봤을 때, 상대 실버 드래곤이 한 수 위의 존재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만약 아르티어스가 실버 드래곤보다 강하다면 눈치 볼 거 없이 그냥 힘으로 찍어 누르면 되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만약 드래곤 간에 문제가 생겼을 때 자신은 결국 고기방패 역할일 테고, 망할 노란 드래곤은 그 틈을 타 튈 생각일 거라는 건 불을 보듯 명확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상대가 드래곤이라면 내가 아무리 발버둥 친다 해도 답이 안 나오지. 하지만 나 대신 다른 놈을 고기방패로 삼는 건 가능하지 않을까?’

병사나 용병들은 아무리 많아 봐야 고기방패의 역할조차 할 수가 없다.

최소한 타이탄을 소유하고 있는 오너급 기사 정도는 돼야 잠깐이나마 드래곤의 시선을 분산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곳에 포진하고 있는 콘도르 기사단을 끌어들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고 있었는데, 오늘 마침 적당한 인간들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저놈들!!

한눈에 봐도 상당한 실력자들이다. 거의 자신과 동급인 기사 둘. 그리고 그들을 지원하는 마법사 둘. 그들 간의 대화를 몰래 엿들은 결과 기사 둘은 타국의 귀족인 듯했고, 마법사들은 그들의 호위인 모양이다.

세상 물정 모르는 귀족이라면 다루기가 더욱 쉽다는 걸 그는 이미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척 봐도 실력 있는 마법사를 호위로 데리고 있으려면 고위 귀족일 테고, 고위 귀족임에도 타국에 저렇게 단출하게 호위를 데리고

다닌다는 소리는 아직 철없는 햇병아리들일 게 뻔했다.

‘고위 귀족에 풋내기들이라. 이건 최고의 먹잇감이지, 흐흐흐…………….’

문제는 목표인 고위 귀족들 중 한 명이 자신의 취향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근육질의 여자라는 것이었지만,


콘도르 기사단장 그루시아 후작은 부단장인 케니스 럴컨 백작을 호출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이 연달아 생기다 보니 그동안 미처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었던 323정찰조에 대한 조치를 내리기 위해서였다.

언데드 샌드 웜에게 기습을 당한 탓에 조장과 부조장이 전사했다. 이런 경우 다른 정찰조의 부조장급을 신임 조장으로 파견하는 게 관례였지만, 이번에는 좀 문제가 있었다. 죽은 줄 알았던 라이가 생환했기 때문이다.

323정찰조가 맡고 있는 가장 큰 임무는 극비리에 라이가 지닌 검술을 몰래 훔쳐내는 것이다.

현재까지의 임무 수행 결과는 굉장히 만족스러웠고, 임무가 마무리될 때까지 정보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강력하게 통제 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조의 기사를 조장으로 임명하는 건 문제가 있었다. 차라리 323정찰조 기사들 중 하나를 신임 조장으로 진급시키는 게 좋겠다고 그루시아 후작은 생각했고, 부단장은 거기에 맞춰 후임으로 누구를 선택하면 좋을지 알아보고 있었다.

“누구를 신임 조장으로 임명하는 게 좋을지 알아봤나?”

“다각도로 정보를 취합해 본 결과 아벨이 좋을 듯합니다. 서열은 로빈보다 낮지만, 아벨이 조원들의 평이 조금 더 좋았습니다.”

현재 323정찰조는 141분대와 362정찰조와 한 팀이 되어 움직이고 있는 중이었다.

아직 신임 조장이 배치되지 않았기에 323정찰조를 이끌고 있는 건 가장 선임인 로빈이었을 것이다.

강도 높은 훈련이 실시되면 개개인의 능력이 백일하에 드러난다.

그걸 바로 옆에서 본 141분대원들을 불러 면담을 했으니, 부단장의 의견은 정확할 것이 틀림없다.

특히, 아벨을 높게 평가한 건 141분대장이었다.

“그럼 아벨로 하는 게 좋겠군. 그렇게 처리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각하.”

이때, 문이 열리며 수석 마법사가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