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38권 9화 : 깨어난 미네르바 – 2
깨어난 미네르바 – 2
알파17을 만나고 돌아온 알파2의 앞에 놀라운 일이 또다시 기다리고 있었다.
‘저 데스 나이트는 나를 정말 놀라게 하는군.’
성상의 보권은 언데드의 양식인 죽음의 기운을 뿜어낸다. 그렇기에 보권을 옆에 놔둔다면 조금이라도 데스 나이트에게 보양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부하에게 지시했던 것이다.
그런데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와 보니 그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처음에는 모두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서서히 진행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알파2가 도착했을 무렵에는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의 맹렬한 기세로 죽음의 기운을 흡수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마도 흡수하는 요령을 깨닫기 시작한 모양이다.
그에 따라서 데스 나이트의 다크 베슬은 물론이고 뼈대까지 급속도로 강화되고 있는 걸 보면, 흡수한 죽음의 기운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놀랍게도 저 데스 나이트는 지금껏 알파2가 본 적도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실험이 성공적이라 볼 수도 없었다.
베슬 안에 집중되어 있는 순수한 마나 덩어리. 그게 언제 폭탄이 될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저 데스 나이트는 끝까지 안정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까? 흥미롭지 않을 수 없었다.
죽음의 기운의 흡수가 일단락되자, 알파2는 일단 실험을 중지시켰다.
이대로 계속 실험을 진행하는 것보다는 이번에 발견된 특이점을 다른 데스 나이트에게도 적용시킬 수 있는지를 알아보는 게 급선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알파2는 부하들에게 데스 나이트의 신체를 철저하게 조사하여 미처 파악하지 못한 문제점이 없는지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이상한 점은 찾지 못했습니다.》
《다행히도 베슬 속은 안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당분간은 아무런 문제도 없을 듯합니다.》
《좋아.》
부하들의 확인을 받은 후에야 알파2는 데스 나이트의 옆으로 다가갔다.
《내가 누군지 알아보겠나?》
미네르바가 눈앞의 해골을 알아볼 수 있을 리가 없다.
정신을 차리기 전에 일어났던 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기억에 남아있지 않았으니까.
데스 나이트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멀뚱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자 알파2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얘기를 시작했다.
《실험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너는 이지(理智)를 지니고 있지 못했었지.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을 거야. 그렇지 않다면 다른 데스
나이트들처럼 너도 붕괴되는 걸 피할 수 없었을 테니까. 자, 대답해 봐. 어떻게 된 거지?》
미네르바는 자아를 되찾지 못한 척하며 기회를 엿보다가 도망칠 생각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이미 확신을 하고 있는 상태다. 계속 자아를 되찾지 못한 척하고 있다면 상대의 의심만 살 뿐이다.
《나, 나는 사, 살기 위해서… 생각나는 대로 했습니다.》
미네르바는 일부러 떠듬떠듬 얘기했다.
《생각나는 대로 했다고? 마나를 어떻게 베슬의 중심에 압축시킬 수 있었지? 어떻게 한 거냐?》
《모릅니다. 그냥 그렇게 됐습니다.》
알파2는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군.》
잠시 고민하던 알파2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너는 누구냐? 마나를 제대로 다룰 수 있는 것을 보면 필시 무명의 기사는 아니었을 터. 그렇지?>
《나는… 나는……………》
대답을 해야 할까? 아니면 부정해야 할까?
몇 초 되지도 않는 시간이었지만 수도 없이 많은 생각이 오갔다.
결국 미네르바는 결론을 내렸다.
자신의 정체를 말하는 것은 그야말로 자살행위라는 것을 자신의 이름을 말한다는 것은 살아생전의 모든 기억을 다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자백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는 것이다.
《모르겠습니다. 아무것도 떠오르는 게 없습니다.》
데스 나이트의 얘기를 들으며 알파2는 생각했다.
‘나는 왜 리치가 되는 걸 선택한 거지?”
지금껏 이런 생각이 든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억을 쥐어짜 봐도 떠오르는 게 없었다.
악마와의 계약 자체가 원래 그런 것이다. 그들은 처음부터 계약을 지킬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리치건 데스 나이트건 간에 살아 생전에 자신이 뭘 했었는지에 대한 기억은 계약이 발동함과 동시에 사라져 버린다.
상당수 흑마법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으로 봐서 예전에 자신이 흑마법사였으리라는 것 정도만을 추측하고 있을 뿐이다.
‘내가 흑마법을 기억하고 있듯 기사였던 만큼 마나의 운용법을 기억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인간의 몸과 데스 나이트의 몸은 완전히 다른데,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는 게 말이 되나?’
하지만 물어볼 데가 어디에도 없다. 이곳에 있는 데스 나이트들 중에서 자아를 찾은 건 이 녀석이 최초였으니까.
어쨌거나 자신의 경우와 비교해 봤을 때 데스 나이트의 반응은 지극히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조심성 많은 알파2는 데스 나이트를 그냥 놔줄 생각이 없었다.
데스 나이트가 진실만을 말했다고 생각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알파17과 만나 얘기를 나눈 후, 이곳으로 오는 도중에 알파2는 보물고에 들러 마도구 하나를 가져왔다.
품속에서 꺼낸 마도구는 금속제의 둥근 링 형태였는데, 알파2는 그 링을 데스 나이트의 목에 채웠다. 단순한 형태라 데스 나이트가 행동하는데 아무런 불편함도 없을 것이다.
알파2는 목걸이를 채운 다음 데스 나이트에게 지시했다.
《이번 실험은 이것으로 종료하기로 한다. 다시 부를 때까지 알파17에게 돌아가 있도록.》
《알겠습니다.》
알파2는 주변에 있는 리치들 중 하나에게 지시했다.
《데스 나이트를 알파17에게 데려다주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멀어져가는 데스 나이트의 뒷모습에서 애써 눈을 떼며 알파2는 생각했다.
‘뭐, 안전장치는 해뒀으니 괜찮겠지.’
알파2는 다른 리치에게 물었다.
《새로운 실험체는 준비되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