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4권 9화 – 국화 향기 속에서

국화 향기 속에서

“빨리 타!”

묵향의 강압적인 태도에 약간 열을 받은 면사 여인은 따지듯 물었다.

“지금 어디로 가는 거죠?”

“빨리 타기나 해.”

일단 마차에 타기는 했지만 그래도 상대에게 꿀리기 싫어서 그런지 면사 여인은 계속 질문을 해 댔다.

“이것 보세요. 최소한 그런 간단한 것은 알려 주는 게 예의 아닌가요?”

“닥치고 있어. 재갈을 물리기 전에!”

묵향이 매서운 눈초리로 쏘아본 탓에 면사 여인은 대화의 길을 열어 보려던 생각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눈치로 보아하니 다음에는 주먹이 날아올 것 같은 분위 기였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다음부터 두 여자들은 묵향에게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묵향은 자는지, 깨어 있는지 눈을 지그시 감고는 팔짱을 끼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숨 막히는 것 같은 이 부자연스런 분위기 때문에 두 여자들은 처음에는 닥치고 있었지만, 매영인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소에게 소곤거리자 소소가 맞장구치며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묵향이 딱히 싫어하는 기색을 보인 건 아니었기에 두 여인이 소곤거리는 가운데 여행은 종착역에 다다랐다.

매영인과 소소가 섬서분타에 도착해 느낀 것은 의외로 실력 있는 고수들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놀라운 사실이었다. 그리고 딱히 마교도 같지도 않았다. 그냥 불량 배들 잡아다가 훈련시켜 놓은 정도? 그 정도로 그들에게는 마교로서의 기본적인 향기(?)가 없었다.

수문(守門) 무사들은 묵향 일행 중 말 위에 타고 있는 네 사람을 보고 곧 그 마차에 타고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챘다. 그들은 재빨리 문을 열고 마차가 지나갈 때 까지 허리를 굽히고 있었다.

두 여자가 마차의 창문을 통해 밖을 바라보니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하인들과 무사들이 꽤 많았다. 하지만 웬만한 문파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사람들이었지, 여 태껏 그들이 상상해 오던 마교도의 모습은 아니었다. 그녀들은 좀 더 살벌한 뭔가를 상상했던 것이다.

마차는 계속 달려 들어가 두 번째 문에 도착했다. 그 문을 지키는 무사들은 그래도 좀 실력이 나아 보였다. 움직임이 꽤 절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문을 통과하면 서 그들은 주위에 진법을 쳐 놓았음을 어렴풋이 짐작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알 수 없었다. 뭔가 반감(反感)이 느껴진다고 할까? 미세한 살기나 예기(氣)조차 없는 걸로 보아 살상을 위한 진법은 아닌 듯했지만, 어쨌든 진을 쳐 놓은 것은 확실했다.

세 번째 문에 다다르자 두 여인은 이곳이 마교라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세 번째 문을 지키는 무사는 정말이지 몸에서 풀풀 마기를 풍기고 있었다. 묵향 일 행이 통과하자 세 번째 문은 곧 닫혔다. 두 여인은 묵향을 따라 마차에서 내렸다. 주위에 돌아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눈에 띄는 사람들은 모두 대단한 고수였 다.

“여기가 섬서분타인가요?”

매영인의 물음에 묵향은 대꾸하지 않고 마화를 불렀다.

“마화.”

“예?”

“이 아이들을 숙소에 안내해라.”

묵향은 천천히 만악전(萬惡殿) 쪽으로 군사를 만나러 걸어갔고, 괜히 말을 걸어 손해 본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매영인과 소소는 마화의 안내에 따라 그들이 머물 처소로 갔다.

“이 방과 저 방을 써.”

제법 괜찮은 방이었다. 넓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그것이 그들의 마음을 안정시켜 줬다.

“좀 있다가 시비 둘을 골라 줄 테니까, 그 아이들에게 일을 시켜. 식사는 시비를 시켜 식당에서 가져다가 여기서 먹어.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 신경 쓰지 마. 저 사람 들도 너희들에게 신경 쓰지 않을 거니까. 그리고 무기는 가지고 있을 테니, 위급한 일이 닥치면 알아서 해결해. 솔직히 부교주님이 하시는 걸 보면 너희들 목숨은 별 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으니까 말이야.”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인질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지 않다니.”

“원래 그런 사람이야. 사실 무영문과 싸우게 되더라도 별 신경 안 쓸 사람이거든. 서로가 수준이 비슷해야 인질이 소중한 법이지, 격차가 심할 때는 그게 아니지. 언제든지 한판 해도 좋은데, 왜 인질을 소중히 여기겠어? 그러니 자신의 목숨은 자신이 소중히 여기란 말이야. 또 너희들은 저쪽 담 밖으로 나가면 안 돼. 그걸 넘어 가서 발생하는 모든 사태는 너희들이 책임져야 할 거야.”

“저 담을 넘어가도 섬서분타 안이잖아요.”

“아니, 섬서분타라 하면 담 안쪽을 말하는 거야. 설명해 줬으니까 나중에 딴 소리 하지 마. 나는 이만 바빠서…….”

매영인과 악양소소는 며칠 지나지 않아 손쉽게 이곳 생활에 적응할 수 있었다. 그들을 괴롭히는 인물도 없었고, 오히려 모두 그들에게 친절했다. 상상했던 것과는 달리 섬서분타의 내벽 안쪽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만 지킨다면, 그들에게는 매우 폭넓은 자유가 주어졌다.

그리고 가끔 산책할 만한 매우 아름다운 꽃밭도 몇 군데 있어서, 마인들에 대한 그들의 선입관을 약간 고쳐 주는 데 일조를 했다. 마인들도 사람인만큼 아마도 아 름다운 것에 대한 기호(嗜好)는 같은 모양이었다.

그중 한 꽃밭에는 국화만 심어져 있었는데, 그곳에서 그들은 아직 피지 않은 국화 밭을 바라보고 서 있는 묵향을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따스한 표정으로 그의 등을 바라보고 있는 마화도…….

“저 마화라는 여자, 부교주와 어떤 사이일까요?”

“글쎄, 여기 와서 느낀 분위기로는 안주인 정도? 하지만 대화라든지 뭐 그런 걸 들어 보면 결혼은 하지 않은 모양이던데?”

“맞을 거예요. 할머니도 그가 결혼하지 않았다고 했으니까요. 그런데 꽤 어울리는 한 쌍이네요. 하지만 군부와 무림은 별로 어울리는 관계가 아닌데…….’

이때 문 쪽에서 흑의 무사 한 명이 맹렬한 속도로 달려오더니 묵향의 앞에 부복했다. 잠시 대화를 나누더니 묵향은 그를 따라 달려갔다. 마화도 그를 따라가려다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약간 멈칫거렸다. 그녀는 생각 없이 주위를 둘러보다가 건물 한쪽 구석에 서서 이쪽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그들을 보았다. 그리고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그들에게 다가와 방그레 미소 지었다. 하지만 그녀의 미소는 어딘지 슬퍼 보였다.

“어때? 지내 볼 만해?”

“예.”

“그런데 다음부터는 이렇게 숨어서 보지 마. 아예 당당하게 눈에 띄는 곳에서 바라보든지. 부교주님은 숨어서 자신을 살펴보는 걸 아주 싫어하시거든. 나는 눈치 채지 못했지만 그분은 너희들이 여기 있다는 것을 알고도 모른 체해 줬겠지. 너희들은 그분의 수하가 아니니까 말이야. 하지만 이게 반복되면 아무리 너희들이라도 무사하지 못할 거야.”

“알겠어요, 조심할게요. 그런데 무슨 일이에요?”

“응, 부교주의 딸이 돌아왔어.”

“딸이라구요? 부교주가 결혼을 했어요?”

“아니, 양녀(養女)야. 그녀는 지금까지 마교의 뇌옥에 갇혀 있었는데, 이번에 마교하고 모종의 교섭을 진행하면서 풀려난 거지.”

“부교주의 양녀라면 대단한 고수겠네요.”

그 말에 마화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도 않아. 사실 그녀는 오래전에 부교주님하고 헤어졌거든. 부교주님은 그녀가 무림에 몸담기를 원하지 않았는데, 나중에 보니 무림인이 되어 있더라고 하 더군. 낙양에 있는 천지문의 제자야. 무공도 그리 대단하지 않고……?”

“그럼 같이 가서 만나 보시지 그래요?”

그녀들의 말에 마화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아니, 갈까 하다가 그만 뒀어. 오랜만에 부녀가 만나는 건데 내가 끼어들 수는 없잖아. 그럴 만한 이유도 없고…….”

“어서 오시오, 소저.”

묵향의 퉁명스런 인사에도 불구하고 여인은 당당하게 서 있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당당하려고 애쓰는 그녀를 바라보며 묵향은 자신도 모르게 점점 더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그 기분을 밖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어쨌든 그녀가 꽤나 고급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면 장인걸이 꽤나 선물의 포장(?)에 신경을 쓴 모양이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뇌옥에 갇혀 있었던 탓에 안색은 창 백했다. 어렸을 때의 밝고 약간 토실토실했던 생기 넘치는 소녀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던 묵향은 은연중에 가슴이 아려 오는 것을 느꼈다.

“여기는 어디인가요?”

소연은 지친 듯한 표정이었고, 사실 먼 마교 총타에서 이곳까지 오느라고 피곤한 것도 사실이었다. 갑자기 뇌옥에서 꺼내서 목욕을 시키고 좋은 옷까지 입힌 후, 잡혀 들어갈 때 압수했던 무기도 돌려주었다.

그녀는 ‘마교’라는 이름이 주는 공포를 모를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지만, 천지문과 불가침조약까지 맺은 마교가 자신을 납치해 왔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는 절망감을 느꼈다. 마교는 단일 세력으로는 최강의 방파였기에 외부에서 다가올 도움의 손길 따위는 기대할 수도 없었다. 어떤 방법으로든 이용해 먹고, 더 이상 쓸 모가 없으면 죽일 것이 뻔했다. 자신이 어디에 이용되는지도 알 수 없다는 게 그녀로서는 더욱 당황스러웠지만 말이다.

이제 그녀는 이곳에 왔고, 자신을 이곳으로 안내한 무사들은 총타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녀가 만난 게 바로 이 사람이었다. 매우 젊고 강인한 눈매를 가졌는데, 어 디선가 만난 듯도 하다는 게 좀 이상했다. 하지만 마인들 중에서 이렇듯 젊은 사람을 자신이 알고 있을 리가 없었기에 그녀는 자신이 착각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여기는 천마신교 섬서분타지요. 우선 여기서 하루 동안 머무신 후 내일 천지문으로 돌려보내 드리겠습니다. 안내해 드려라.”

묵향의 무뚝뚝한 사무적인 말투에, 묵향의 뒤에 서 있던 수하가 재빨리 답하며 그녀를 데려갔다. 묵향은 이제 완숙미(完熟)를 뿜어내는, 중년의 나이에 이른 그 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과거 티 없이 밝고 귀여웠던 모습을 회상했다. 세월이란 것은 너무나도 빨리 흘러가는 모양이다.

“나도 늙었나? 이렇게 감상적이 되다니 말이야…….”

묵향은 소연이가 도착하자마자 혹시 뭔가 수상한 짓이라도 당했는지 철저히 조사했다. 자신의 내공을 불어 넣어 소연의 몸속 구석구석을 살폈고, 혹시나 심령이

제압당했다든지 했을까 봐 특별히 철저하게 조사했기에, 그 작업은 거의 한 시진이나 걸렸다. 물론 그것은 그녀가 잠든 후에 행한 일이어서 그녀는 그걸 알지 못했 다.

다행히도 장인걸이 뒤꽁무니로 헛짓거리는 안 했다는 걸 확인한 묵향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다음 날 수하들에게 일러 그녀를 천지문으로 돌려보냈다. 더 이상 데리고 있을 생각도 없었고, 이제 죽든 살든 그건 사실 묵향과는 별로 상관도 없었다. 묵향은 그녀의 죽음이 자신 때문이 아니기를 염원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되었느냐?”

“예, 묵향 부교주는 양녀를 인수받은 다음 날 그녀를 곧장 천지문으로 돌려보냈습니다.”

“흐음, 의외로군. 본좌는 그가 데리고 있으면서 보호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장인걸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옆에서 혁무상이 말했다.

“그만큼 아낀다는 뜻이겠지요. 일부러 거리를 두는 것입니다. 그래 둬야 적들의 이목을 속일 수 있으니 말입니다. 또 그 둘은 사는 세계가 다르기에 대놓고 보호할 수도 없으니까요. 그녀를 심문했을 때도 묵향이란 이름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걸 보면 최후의 최후에나 그녀를 써먹을 수 있을까, 섣불리 손을 쓰지는 못합니다. 전 교주는 그녀를 너무 빨리 써먹었기에 낭패를 당한 것이죠.”

“좋아, 그건 그렇고 환영비마는 출발했나?”

“예, 천마혈검대를 이끌고 두 시진 전에 출발했습니다.”

“정보 공작은?”

“섬서분타가 본교의 무림재패를 이루어 낼 핵심 세력이라고 은근히 퍼트리고 있습니다. 환영비마 구양운 장로에게도 기회가 되는 대로 자신들이 섬서분타의 핵심 세력이라고 떠벌리라고 지시해 뒀습니다. 그리고 천마혈검대는 지금부터 섬서천마대(陝西闡魔隊)로 이름을 바꾸고, 앞으로 그들에게 가는 모든 전문(傳聞)은 섬서 분타에서 보내는 것임을 적도록 지시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꾸미면 조만간 정파와 섬서분타 사이에 전면전이 붙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크크크, 괜찮은 생각이군.”

“묵향 부교주는 정파와 싸우는 데 천랑대를 투입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시체들에 남은 각종 상흔으로 봤을 때, 천랑대의 무사들임이 확실합니다. 또 첩자가 보내 온 보고에 따르면 각 분타에서 약간씩의 고수들을 뽑아 갔답니다. 그 외에 이리저리 긁어모은 고수들도 꽤 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모든 증거를 종합해 보면, 묵향 부교주는 우리의 의도대로 정파와 한판 벌일 생각인 모양입니다.”

“좋아, 수고했네. 이제 그만 가 보게나.”

“예.”

묵향은 소연이 탄 마차가 그의 시야에서 사라진 후에도 하염없이 그쪽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러다가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쓸데없는 감상에 빠져 있는 자신을 일깨웠다. 사실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몰랐고, 또 그 아이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양녀라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마인의 입장에서 보면 쓸데없는 감정의 낭 비일 뿐이었다.

마화는 그가 천천히 국화밭으로 향하는 걸 멀찌감치에서 보다가 그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매우 감정이 절제된 이별. 자신이 양부라는 것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제법 오랜 시간 묵향과 함께 지낸 마화는 지금 그의 마음이 매우 불안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럴 때 묵향은 누가 말을 걸어 오는 걸 매우 싫어한다. 하지만 옆 에 아무도 없는 것보다는 자신이 옆에 조용히 있어 주는 걸 묵향이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기에 마화는 계속 그의 뒤를 따랐다.

하염없이 국화밭을 바라보며 서 있는 묵향을 마화는 끈기 있게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그녀는 자신의 품속에서 술병을 하나 꺼내 들었다. 묵향은 뒤에서 마화가 툭 치자 천천히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봤다. 마화가 들고 있는 술병을 본 묵향은 아무 말 없이 그 술병을 받아 들고 벌컥벌컥 들이키기 시작했다. 묵향이 매우 좋아하는 천일취(日醉)였다. 아무리 술 한 병 마셨다고 그 취기가 1천 일이나 갈까. 하지만 천일취는 정말 무지하게 독한 술이었기에 국일주(菊溢酒)라는 원래 이름이 무색 하게 모두 천일취라고 불렀다.

마지막 한 방울을 목구멍 속으로 털어 넣은 묵향은 아쉬운 듯한 표정으로 마화에게 물었다.

“더 없냐?”

묵향의 속마음을 어느 정도 헤아리고 있는 마화는 일부러 엄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쌀쌀맞게 대꾸했다.

“없어요. 이제 궁상 그만 떨고 들어가세요. 오랜만에 양녀를 봤고, 또 그녀가 무사한 걸 알았잖아요. 그러면 된 거 아닌가요? 이제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는데 아직 도 그녀를 대장이 걱정해 줄 이유는 없잖아요.”

“그건 그래. 이미 둥지에서 떠난… 하지만 이 경우는 내가 먼저 둥지를 떠난 것이기에 조금 아쉬움이 남는군. 임충은 어디 있지?”

“숙소에 있을 겁니다.”

“좋아, 그럼 그 녀석과 한잔하기로 하지.”

묵향의 쓸쓸한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던 마화는 품속에서 병을 하나 더 꺼내 곧 자그마한 입 안에 들이부었다. 몇 모금 꿀꺽거린 후 그녀는 심하게 기침을 해댔다. 천일취는 묵향 같은 괴물이나 좋아하는 술이지, 보통의 여자보다 조금 더 체력이 좋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여자인 그녀에게는 너무 독했던 것이다. 지독 한 술 냄새와 술기운 때문인지, 천일취가 뿜어내는 아련한 국화 향기 속에서 그녀는 눈물을 찔끔 흘렸다. 그녀는 눈물을 살짝 닦으며 그녀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묵 향에게 하는 말인지 애매한 말을 내뱉었다.

“바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