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5권 15화 – 도둑들과의 세 번째 만남
도둑들과의 세 번째 만남
‘오늘은 휴식이다’하는 안도감에 모두들 술에 취해서는, 이제 사람이 술을 먹는 단계를 지나 술이 사람을 먹는 단계에 접근하고 있었다. 이번 파티가 결성된 후 추격을 하며 상당한 마법사의 던전을 발견하기도 했고, 또 놈들이 어느 쪽으로 도망쳤는지 그 흔적을 놓치지 않고 계속 따라왔다. 거기에 상대와 몇 번의 대적까지 했지만 아무도 다치지 않았으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하지만 그렇게 술을 마시는 동안, 중무장을 한 여덟 명이 우루루 2층 계단으로 올라가는 것을 무심히 흘리고 말았다. 그들의 복장은 약간 특이했다. 딴 복장은 보통 사람들과 차이가 없었지만 적당히 넓은 망토는 몸속에 무기들을 숨기기 편하게 되어 있었고, 가죽 장화도 거의 무릎까지 올라와 단검 따위를 숨기기에 용이했다.
하지만 가장 큰 차이는 장화의 밑창에 있었다. 일반 신발들은 밑창에 단단한 가죽을 덧댄다든지, 또는 철판이나 구리판까지 달아서 신발이 닳는 것 을 방지하는데, 이들은 장화 밑에 무두질도 안 한 생가죽을 털이 바깥쪽으로 나오도록 붙여 놨다. 따라서 짐승의 털로 인해 발걸음 소리가 거의 나지 않았다. 어쨌든 모종의 비밀 조직원들이 매우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주문 제작된 것이었다.
“이봐, 이 방이 맞아?”
“예.”
덩치 큰 인물의 말에 그보다는 조금 덩치가 작은 남자가 대답했다. 덩치 큰 자가 살며시 단검을 뽑아 들며 손짓하자 일행들도 일제히 무기를 소리 나 지 않게 뽑아 들었다. 모든 준비가 갖춰지자 그는 살며시 문을 열었다. 방 안에는 머리를 싸안고 고민에 빠져 있는 남자의 뒤통수가 보였다.
“꼼짝 마라!”
일제히 검을 겨눈 채 상대방의 무장을 해제하기 시작했다. 하기야 무장이라고 해 봐야 허리에 찬 60센티미터 길이의 가벼운 샤벨이 전부였지 만…………. 검을 뺏은 후 튼튼한 쇠심줄을 꼬아 만든 줄로 손을 꽁꽁 묶었다.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되는지 각자 무기를 품속에 감췄다.
“좋게 말할 때 따라와.”
하지만 그 상대는 오히려 빙긋이 미소 지으며 적반하장 격으로 말했다.
“좋다. 안내해라.”
상대의 태도가 조금 거슬렸지만 이렇게 협조적으로 나오는 데야 딴 말을 할 수 있나. 한 명이 그자의 뒤에서 여차하면 단검으로 찌를 태세를 갖추고 는 그자를 안내하여(?) 자신들의 소굴로 돌아갔다.
“앉아”
다크가 의자에 앉자 곧이어 한 명이 가죽 끈을 가져와서는 더욱 튼튼하게 의자에 꽁꽁 묶었다. 묶는 작업이 거의 끝나갈 무렵 한 인물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 인물은 모자를 푹 눌러써서 거의 눈만 가까스로 보일 뿐, 이마나 귀까지 모자에 덮여 있었다. 하지만 그 분위기나 몸의 굴곡으로 봤을 때 수컷이 아닌 암컷이라는 것을 쉽게 눈치 챌 수 있었다. 그녀는 방 안의 정경을 쭉 훑어본 다음 다크를 이쪽으로 끌고 왔던 덩치 큰 남자의 옆에 가 섰다.
“실력 좋네. 그 정도만 말해 줬는데 간단히 잡아오는 걸 보면……”
“흐흐흐, 내 실력 좋은 거 이제 알았냐? 전에 망신당한 게 있다면서… 지금 갚을 거야?”
“당연히.”
“좋아, 어떻게 해 줄까? 아예 반쯤 죽도록 두들겨 패줘? 손을 아예 못 쓰게 만들어 줘?”
남자의 끔찍한 말에 그녀는 빙긋이 살기 띤 미소를 지었다.
“먼저 죽도록 패고, 아예 병신을 만들어 버려.”
“크흐흐흐, 알겠어. 얘들아, 들었냐?”
“예.”
방 안에 남아 있던 10여 명의 부하들은 일제히 몽둥이를 주워 들었다. 아까부터 오만한 미소를 짓고 있는 놈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그 명령이 내려오기만을 학수고대하던 참이었다.
이들이 몽둥이를 들고 한 발짝씩 접근하자, 갑자기 의자에 묶여 있던 다크가 힘을 한 번 썼다. 그러자 손발에 묶여 있던 가죽 끈과 쇠심줄로 만든 줄 이 썩은 새끼줄 끊어지듯 힘없이 끊어져 나갔다. 그리고 그와 함께 느껴지는 엄청난 위압감……………
“네 녀석들이 감히 본좌에게 뭘 하겠다고? 죽기로 작정을 했군.”
다크가 싸늘하게 미소를 지음과 동시에 그의 몸이 사라졌다.
쿵, 퍽 퍽!
“으악! 악! 으엑!”
이건 애당초 게임이 안 되는 한판 승부였다. 심하게 배를 두들겨 맞고는 열심히 팬케이크를 만들고 있는 놈부터 시작해, 기절해서 인사불성인 놈들 까지…………. 10여 명 모두가 한꺼번에 바닥에 쭉 뻗은 꼴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다크는 옆에 떨어져 있는 샤벨의 검대를 집어 허리에 찬 후 싱긋이 미소 지으며, 저쪽에서 엎드린 채 다행히 아직 기침만 콜록콜록 하는 우람한 덩치 를 가진 놈의 멱살을 잡고 끌어 올렸다.
“야? 네가 이놈들 두목이냐?”
“예? 예.”
“네놈들 실력에 맞는 사람을 건드려야 할 거 아냐?”
퍼퍽!
“우웨에에엑!”
그대로 복부에 직격탄 두 발을 맞은 거한은 그대로 침몰하여 부하들과 사이좋게 팬케이크를 만들기 시작했다.
쿵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 아니지 가죽 끈을 끊었을 때부터 뭔가 잘못되어 간다는 걸 느낀 후에 곧장 도망치려고 했지만, 뭔가 끈적한 것 에 잡힌 듯 도망치지도 못하고 얼어 있다 한 대 맞고 뻗은, 모자를 깊숙이 눌러 쓴 여자도 어김없이 다크의 손에 멱살이 잡혀 몸을 일으켜야 했다. “흐음, 반반하게 생기기는 했지만…………. 그러고 보니 낯이 익은데, 너 나하고 어디에서 만난 적이 있지?”
그 여자는 공포에 질린 눈빛으로 고개를 열심히 좌우로 저으며 완강히 부인(否認)했다.
“아니요, 이번이 맹세코 처음이에요.”
“콩알만 한 기집애가 감히……………. 안 그래도 요즘 기집애 하면 이 갈리는데 너 잘 만났다.”
퍽!
“꺄억…………! 우웨에에엑!”
그녀도 어김없이 두목의 옆에서 사이좋게 팬케이크를 만들기 시작했다. 배에 그 정도 타격을 받고 뱃속에 든 걸 게워 올리지 않는다면 아마 인간이 아니든지 아니면 그 전날부터 금식 기도를 하던 인물일 것이다.
아직도 잡혀 온 데(?) 대한 분이 안 풀렸는지, 다크는 팬케이크를 만들고 있는 녀석들의 머리를 지근지근 밟아서 팬케이크 위에 얼굴 도장까지 확실 하게 찍어댔다. 과연 그게 잡혀 온 데 대한 분풀이인지, 아니면 요즘 한참 받고 있는 스트레스를 운 좋게(?) 만난 이자들에게 풀고 있는지 그게 좀 모 호하긴 했지만, 이건 전적으로 힘도 없는 주제에 강자를 초대(?)한 놈들의 잘못이었다.
다크는 의자에 푸근히 앉은 채로 얼굴과 옷에 오물이 잔뜩 묻은 놈들을 향해 조용히 말했다.
“일어서.”
목소리는 매우 작았지만 모두 재빨리 일어섰다. 방금 전에 꾸물거린 여자 동료가 아예 기절할 정도로 두들겨 맞는 걸 친히 목격한 그들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앞으로 누워.”
“뒤로 누워.”
이거 한번 해 본 사람은 다 안다. 정신없이 섰다 이리 누웠다 저리 누웠다를 한 시간 정도 반복하면, 속이 울렁거려 이틀 전에 먹은 것까지 다 토해 내게 되어 있다. 그걸 지그시 감상하면서 다크는 요 며칠 동안 여행하면서 쌓인 스트레스를 열심히 풀고 있었다. 이게 웬 횡재냐 하면서 말이다. 모두의 몸이 땀과 오물로 뒤범벅이 되었을 때쯤 다크가 천천히 일어섰다.
“야. 두목!”
“옛! 헥헥…….”
“운동이 좀 되는 것 같냐?”
“옛! 헥헥헥…….”
“그럼 이렇게 너희들의 몸을 생각해서 운동씩이나 시켜 주신 이 몸께 감사의 뜻을 전해야 할 거 아냐? 응?”
퍽!
“꾸엑!”
비명을 지르기는 했지만 두목은 재빨리 자세를 다시 안정시킨 후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다크에게 내밀었다. 여전히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지만………………
“헥헥…, 약소하지만 헥헥⋯ 감사의 뜻으로… 헥헥헥………….
“뭐야? 겨우 50골드도 안 되겠는데? 이 녀석이 나하고 장난하는 거야? 내가 너희들 몸을 생각해서 무려 세 시간이나 황금 같은 시간을 쪼개서 놀아 줬는데………
그러자 두목은 재빨리 부하들에게 튀어 가서 모두의 주머니를 털기 시작했다. 아무리 돈이 들더라도 저 재수 없는 손님을 빨리 보내는 게 급선무였
기 때문이다.
“헥헥., 약소하지만 정말 헥헥헥.. 이게 몽땅 다입니다. 헥헥헥… 제발 용서해 주세요. 헥헥헥……
“흐음…, 아까보다는 그래도 낫군. 그런데, 야.”
“예? 헥헥헥…
“그런데 나는 왜 이리 데리고 온 거냐? 설마 달밤에 체조시켜 달라고 초빙한 것은 아닐 테고………….”
“죄송합니다. 헥헥헥., 사람을 잘못 보고… 헥헥헥… 제발, 용서해 주세요. 헥헥헥……..”
“정말이야? 아닌 것 같던데…………. 야! 모자, 이리 와 봐.”
모자를 깊이 눌러 쓴 여자가 재빨리 앞에 와서 섰다. 상대는 여자라고 봐주는 그런 인물이 아니었다. 여자라고 꾸물거리던 애들이 얼마나 무자비하 게 두들겨 맞았던가? 아주 더러운 성격을 가진 망나니였고, 자신의 힘이 상대에게 주는 공포를 잘 알고 그것을 매우 효과적으로 이용할 줄 아는 피도 눈물도 없는 놈이었다.
“옛! 헥헥헥…….”
“그럼 네가 날 불렀냐?”
“아뇨! 헥헥헥…, 저는 초면이라고 이미 말씀 드렸어요. 헥헥헥… 신께 맹세코 절대로 만난 적이 없습니다. 헥헥헥.
“그럼 그 모자 벗어.”
재빨리 모자를 벗자 커다란 귀가 드러났다. 금발에 오똑한 코, 붉은 입술, 커다란 눈동자, 귀가 좀 큰 게 흠이었지만 상당한 미인이었다.
“응? 그 커다란 귀는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다크의 물음에 그녀는 재빨리 고개를 가로저으며 부인했다. 만약 들통 나면 그야말로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는 것이다.
“예? 헥헥헥., 엘프는 모두 커다란 귀를 가지고 있다구요. 헥헥헥⋯, 저는 하프 엘프이기 때문에 헥헥헥…,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 귀가 클 뿐… 헥헥헥⋯ 엘프는 아주 많아요. 헥헥헥 착각하셨겠죠. 헥헥헥………..?
“흐음, 그럴지도 모르지. 좋아. 이번은 넘어가 주겠다. 만약 다음에도 귀 큰 엘프인가 하는 게 걸리면 그때부터는 표시 나게 이마에다가 낙인을 찍어 놓든지 해야겠어.”
혼잣말에 가까운 다크의 말을 들은 하프 엘프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좋아. 오늘은 사례비도 받았으니 이만 돌아가기로 하지. 오랜만에 즐거웠다. 그럼 다음에 또 만날 수 있기를……………. 흐흐흐.”
다크는 통쾌한 웃음을 터뜨리며 돌아갔다.
다음 날 시 외곽 경비병들은 얼마나 맞았는지 얼굴이 떡이 된 엘프 여자가 우울한 얼굴로 시를 떠나는 걸 목격했다고 한다.